14일에 있었던 도서관이 세들어 있던 건물의 2차 경매는 유찰되었다.

8월에 더 낮은 가격으로 3차 경매가 이루어진다.

70억대로 경매에 나왔던 건물과 땅이 4차 경매까지 가면 30억대로 떨어진다니,

돈만 있으면 누구든 탐낼만 하다.

게다가 왕십리 역과 한양대 사이, 큰길(6차선 도로였던가...?)가의 건물이라

쫓겨날 위기에 놓인 우리 눈에는 누구든 손에 넣고 싶은 보석으로 보여 더욱 불안하다.

 

 

 

건물은 노후되어 낡았어도 팍팍한 서울이라는 도시 속에 숨겨진

촉촉하고 시원한 샘물같은 공간이었더래서

이대로 사라지면 안될 것 같아 이런저런 해결책들을 강구중이다.

작년에 공들여 도서관 출입문도 새로 달고, 옥상에는 텃밭 공간도 꾸몄는데

낙찰이 되면 아무래도 이 공간을 유지하기는 어렵지 싶다.

 

듣기로는 건물주가 2001년 도서관 개관 이후 단 한 번도 전세금을 올려달라고 하지 않았단다.

건물주는 부도가 나고 경매에 들어가면서도 어떻게든 도서관은 지킬 수 있도록 해보겠다고 했다던데

이렇게 되고 보니 건물주에 대한 그동안의 고마움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

 

250여 가족의 후원금으로 근근히 버텨오던 가난하고 작은 도서관.

그러면서도 서울시나 문화재단, 아름다운 가게 등등에서 벌이는 각종 프로젝트 사업을 따내어

그 혜택을 엄마들과 아이들이 맛볼 수 있게 해줬던 도서관이다.

개관하던 2001년 즈음 도서관에 들락거리던 아이들은 자라서 대학생이 되고

군에 입대한다며 인사를 오기도 한다.

도서관에서 품앗이 활동을 하고, 프로젝트 사업을 해오던 엄마들은

도서관 선생님이 되기도 하고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도서관 활동을 밑천삼아

협동조합을 꾸리기도 한다.

그만큼 도서관은 엄마들과 아이들을 키웠다.

 

서울시 천만인소 열린청원에 도서관을 지켜달라는 글이 올라가 있다. 

지난번 페이퍼에 걱정거리를 꺼내놓았을 때만해도 지지한 사람이 겨우 13명이었는데

지금 134명까지 올라갔다.

함께 걱정해주고 지켜주고자 하는 분들이 늘어난 것 같아 고맙고 고맙고 고맙고...

그저 고맙고 감사할 뿐이다.

 

이런 일을 맞닥뜨리고서 내가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한다.

도서관 엄마들이 모두 그렇다.

주변에 아는 재벌 없느냐며 실없이 서로 묻기도 한다.

어떤 이는 조상님이 나타나 숫자들 좍 보여주는 그런 꿈을 꾸기도 한다는데,

평생동안 맨날 개꿈만 꾸고 살아온 것 같아 살짝 억울한 기분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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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4-07-17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쩌면 좋아요~ 13년이나 주민과 함께 한 도서관이 위기에 처했네요.ㅠ
(사) 작은도서관을 만드는 사람들~~에도 알아보시면 어떨지...

섬사이 2014-07-17 18:23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고맙습니다.
네, 도서관 운영위원회의에서 건의하겠습니다.
일단 서울시청 천만인소 청원지지 천명을 이루려고 힘을 모으고 있는 중입니다.
청원 지지가 천명이 넘으면 서울시에서 어떤 형태로든 관여해주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말리 2014-07-17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라도 들어가 보고 싶을 예쁜 도서관이네요. 시청, 구청 등에 다 알아보셨겠지만, 행정당국에서 신경을 써주었으면 좋겠네요. 시립 도서관 산하로 들어간다거나 하는 방법은 없나 하는 생각을 해보네요. 잘 되기를 진정 바랍니다.

섬사이 2014-07-17 18:27   좋아요 0 | URL
말리님, 반갑습니다.
처음 인사드리는 것 같네요.
네, 참 예쁜 도서관이죠.
언제나 와글와글 항상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재미있는 도서관이기도 하구요.
시립이나 구립 도서관의 산하로 들어가는 것도 이야기가 나왔었어요.
문제는 '공간'인데, 그 문제가 쉽지가 않네요.
걱정해주시고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상에 도서관 하나가 사라진다는 건 슬픈 일이죠.
사라지지 않도록 열심히 힘을 내겠습니다. ^^
 

걱정거리가 하나 있다.

아이와 함께 자주 이용하던.. 아니 이용이라기 보다 제 2의 집 같았던

도서관이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2001년부터 한 자리에서 아이와 엄마들을 위한 사랑방이 되어주었던 도서관이

건물주의 부도로 인해 터를 잃게 되었다.

 

250여 가구의 적은 후원에 기대어

14년째 묵묵히 천천히 자라온 작은 어린이 도서관.

그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대출하고 반납하는 공간이 아니었고,

엄마들이 모여 더 큰 품 안에서 아이들을 함께 키우는..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정서적인 공간이었다.

책을 매개로 사람이 모이고, 사람을 만나고,

함께 뭔가를 이루고, 함께 성장하는..

 

작지만 사람 소리 가득한 도서관이어서

그렇게 내 아이가 사람과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아이 뿐 아니라 나도 도서관을 통해 많이 배우고 어울리고 여물었다.

가까운 거리에 그런 도서관이 있다는 것,

아니 세상에 이런 도서관이 있다는 게 그저 좋았다.

 

나는 가끔 내 아이가 자라서 엄마가 된 다음에

자기 아이의 손을 잡고 이 도서관을 찾게 될 거라고 상상을 하곤 했다.

"여기가 엄마가 어릴 때 자주 갔던 도서관이야.

여기서 그림도 그리고, 친구도 만나고, 놀았지.

사실, 책을 많이 읽지는 않았어.

하지만 이 작은 도서관에서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했던 것 같아."

그 때가 되면 내 아이는 자기 아이에게 이렇게 말할 거라고.

그러니까 도서관은 계속 이 자리에 이 모습으로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늘이 도서관 건물의 2차 경매가 있는 날이었다.

아직 결과를 알지 못한다.

 

도서관을 사랑하는 한 분이 서울 시청 홈피에 정원 글을 올렸다.

지지자가 1000명이 되어야 서울시의 공식적인 답변이라도 받아볼 수 있다고 한다.

7월 8일에 올린 청원글에 이제야 지지자가 13명이다.

관장님이 도서관이 위태롭다는 사실을 도서관 엄마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은 까닭이다.

 

http://petition.seoul.go.kr/petition/petition_view.web

(청원을 지지해 주세요)

 

뭔가 방법을 찾아야겠다.

서명운동을 벌이던지, 아니면.. 또 어떤 방법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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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기후 2014-07-16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장님 트위터에 멘션을 남겨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책 좋아하시고 지역공동체문화에도 관심이 깊은 분이시니...

섬사이 2014-07-16 17:42   좋아요 0 | URL
마음을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건조기후님.
덕분에 13명이었던 청원지지자가 방금 전 107명이 되었습니다.
시장님 트위터에 멘션을 남기는 방법은 생각하지 못했던 건데,
상황 돌아가는 걸 봐서 그 방법도 써보려고 합니다.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4월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충주에 간다.  그 곳에는 <강아지 똥>, <오소리네 집 꽃밭>, <까막나라에서 온 삽사리>의 그림을 그리신 정승각 선생님이 살고 계신다. 한 달에 한 번 충주에 가서 정승각 선생님을 뵙고 오는 이유는 도서관 아이들 열 명 남짓이 정승각 선생님과 여러가지 활동을 하며 감각을 다듬고 표현하는 법을 배우기 때문이다.

 

저기, 오래된 교회당으로 보이는 하얀 건물이 있는 곳이 정승각 선생님의 작업실이다. 5월에 갔을 때만해도 자그마하던 옥수수가 한달 만에 쑥 자라있었고 복숭아 나무는 열매들을 봉지 속에 감추고 있었다.  초록으로 뒤덮힌 밭 사이로 난 하얀 길 위를  걸어가는 딸아이의 뒷모습이 예쁘다. 서울이라는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공간에 있을 때보다 한결 편안해 보인다고나 할까..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인데 저 책 속에 들어 있는 여러 이야기 중에 <챌로 켜는 고슈>를 선생님은 장장 40분에 걸쳐 아이들에게 읽어 주셨다.  아이들이 선생님과 활동하는 동안 엄마들은 마당의 작은 평상 위에 앉아 있었는데 선생님이 읽어주시는 목소리가 밖에까지 들렸는데 얼마나 실감이 나던지..

 

선생님과 만나는 날에는 오전 8시에 서울에서 출발해서 10시 경에 충주에 도착, 그리고 늦은 오후까지 활동이 이어진다. 이 날은 오후 6시가 되어서야 활동이 끝났다. 정승각 선생님의 목은 다 쉬어 있었다.

 

이번에는 촉각을 활용한 활동이었던 것 같다.  아이들은 의자를 상상하고 만져보며 각각 4장의 그림을 그렸는데 색연필, 붓펜, 물감, 콘테 등 활용한 재료들도 다양하다.

 

     

 

     

 

 

 

 우리 개똥이의 그림이다.  의자를 보고 어떻게 꼬리 여섯 개 달린 여우가 연상된 건지 의아했는데 나중에 아이의 설명을 들어보니까 의자에 달린 바퀴 여섯 개를 보고 그런 상상을 했다고 한다.

 

아이들이 정승각 선생님과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건 참 커다란 복이다.  정승각 선생님의 작업실에서 조금만 더 움직이면 수필가이신 김애자 선생님이 사시는 집이 있다. 그 옆에는 개울이 흐르고 수필가 선생님이 꾸미신 사유지 산 속으로 들어가면 정말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봄에 그 산에 올라 아카시아 꽃도 따먹고, 할미꽃도 보고, 심지어 뱀도 보았다.

 

아이들은 7월을 기다린다. 7월에는 마을회관을 빌려 1박을 할 작정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실컷 물놀이할 시간, 함께 어울려 놀 시간을 줄 예정이다. 수필가 선생님은 가을엔 꼭 밤을 따러 오라고 하셨다. 

 

셋째를 임신했을 때 사람들은 '정말 낳을 거냐'고 물었다.  특히 친정엄마는 몹시 안타까워 하셨다. 아이들이 커서 잔손 갈 일이 없어지고 이제 좀 편안하게, 자유롭게 살겠구나 여겼던 딸이 셋째를 임신했다니까 '이제 얘 낳아서 키우면 넌 할머니가 된다'며 속상해 하셨다.  나도 사회에 나가 내 일을 갖는다던가 하는 꿈은 다 접어야 한다는 생각에 조금은 씁쓸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고 했던가.  막내 덕분에 열린 세상은 생각보다 크고 환하고 다채롭고 흥미진진했다.

 

어느새 열 살이 된 딸.  딸과 함께 충주로 갈 때마다 버스 안에서 조잘거리는 아이들을 보며 아이들 덕에 내가 크는 걸 감사하게 된다.

 

 

 

안국역 근처 사비나 미술관에서 열렸던 3D 프린팅 앤 아트 전. 이것도 어제 도서관 아이들과 함께 간 전시다. 3D 프린터는 나에게 참 생소한 것이었는데 전시된 작품들을 보니 정말 놀랍다.  전시 설명을 해주시는 훈남 선생님의 말씀으로는 앞으로 출시될 아이폰 6에는 3D 스캐너 기능이 들어있을 수 있다고.. 그만큼 독일이나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3D 프린트가 많이 보급되어 있다고 한다. 10가구 중 4가구 정도가 가정에 3D 프린터를 갖고 있다나? 

 

전시를 보면서 "아, 이제 정말 기술문명의 발달 속도를 따라 갈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절했다. 그러다가, 그게 뭐? 세상 사람 모두가 기술문명을 따라 갈 필요는 없지. 난 그냥 이대로 살아도 돼,  누군가는 지나간 시대를 지키는 것도 좋잖아, 하는 자기합리화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집에 돌아와 큰딸에게 전시 이야기를 했더니 자기 세대가 엄마인 내 세대보다 훨씬 더 기술문명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세대간의 격차가 벌어질 거라며 토닥토닥 위로해줬다. 

 

한 가지 더.  전시를 보면서 느낀 건, 복제 예술품들에서 느껴지는 삭막함 같은 거다. 3D 프린터를 사용했건 돌을 깎아 조각을 했건 방법이나 수단의 차이는 큰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난 따뜻함이 느껴지는 작품이 좋은데 새로움은 있을지언정 따뜻함이 없다는 점이 좀 아쉬웠다. 내가 이제 구세대이기 때문에 느끼는 갈증인 걸까..?

 

2층 전시장으로 올라가는 층계참 창문에 있던 작품.

 

 

적층방식의 3D프린터를 보고 서예를 연상했다는 작가가 3D프린터로 뽑아낸 글자체로 어느 시인의 시구를 창문에 붙여 놓았다.  '기술문명의 환한 빛 속에서 때때로 자주 사람들은 어둡다.'라는 뜻으로 보였다. 작가의 뜻은 그게 아닐지도 모르지만.

 

 

 

 

     아이들이 교육프로그램에 들어가 있는 2시간 여의 시간동안 엄마아빠들은 근처 콩다방에서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다.  시간의 순간과 영속성을 담았다는 저 작품처럼  즐거운 이 순간들이 모여 소중한 추억으로 쌓일 거라는 걸 믿는다. 적층방식은 3D프린트에만 해당하는 방식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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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4-07-08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막내가 이쁘게 잘 크고 있네요. 페이퍼에 올린 사진이 증명....
정승각선생님 작업실에서 누리는 복은 전생에 나라를 구했을까요?@@
제가 셋째를 가졌을 때도 다들 심란해했는데, 벌써 대학생이 되었어요.

섬사이 2014-07-08 23:20   좋아요 0 | URL
네, 복 받은 아이들이지요.
아이들도 자기에게 온 행운을 느끼는지 충주가는 걸 참 좋아합니다.
순오기님도 셋째를 가졌을 때 주변 반응이... 축복보다는 걱정이었군요.
하하... 울 셋째는 아직도 더 많이 키워야 합니다.
언제 클까,, 하다가 훌쩍 커버린 아이를 보면 서운하기도 하고.. 그러네요. ^^

세실 2014-07-08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승각 선생님께 수업을 듣다니....참으로 멋진 프로그램이네요. 이곳에서 충주는 20분이면 가는 거리인데.....
우리 아이들에게도 기회를 줘야겠군요.
3D.....두렵기까지 합니다^^

섬사이 2014-07-08 23:25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충주 가는 길에서 가끔 세실님 생각을 해요.
세실님 도서관도 충주 어디라고 했던 것 같은데.. 하면서요.
정승각 선생님은 아이들과 이런 활동을 하시는 걸 즐기시는 듯 해요.
아이들을 데리고 뭘 한다는 게 참 힘들고 신경이 많이 쓰이는 일인데
저희가 죄송할 정도로 정성을 쏟아 주십니다.
요즘 평화그림책 작업으로 바쁘신데도 한 달에 한 번, 꼭 시간을 내 주시구요.
3D는.... 하.. 굳이 알려고 하지 않으려고요. ^^;;
 

 

5월에는 우리집 막내의 첫영성체 교리가 있었다. 첫영성체를 하려면 일주일에 4번 성당에 가서 교리를 받아야 했는데 성당까지 가는 길이 좀 빡쎄다. 난 운전을 할 줄 모르고 버스를 타고 가기엔 애매해서 막내랑 같이 비탈 심한 길을 걸어다니느라 헉헉거렸다.  그나마 더워지기 전이라 다행이었지 요즘처럼 날씨가 무더웠다면 첫영성체를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신앙심이 그 정도로 깊은 사람이 아니니까. (나이를 먹고 늙어갈수록 종교생활이란 게 도움이 된다는데...) 내가 내내 안나가고 있던 성당을 다시 나가면서까지 막내에게 첫영성체를 받게 한건 시댁이 독실한 카톨릭 집안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신앙심 때문이라기 보다는 집안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라고나 할까.

막내는 5월 내내 교리를 받고 6월 첫 날 무사히 첫영성체를 마쳤다. 첫영성체를 하는 날에는 인천에서 시부모님이 축하해주러 오셨다. 처음에 성당을 낯설어하던 막내는 첫영성체 교리를 받는 동안 친구들도 사귀게 되면서 성당에 많이 재미를 붙였다. 첫영성체를 마친지 한 달이 지난 요즘에는 일요일 아침마다 남편의 차를 타고 성당에 간다. 대학생 큰애들은 실컷 늦잠자라고 놔두고 남편과 나, 막내 셋이서만 간다. 미사가 끝나고 나면 남편이 사주는 커피를 마시며 막내의 주일학교가 끝나길 기다린다.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함께 장을 보고 집에 돌아와 점심을 준비해 먹는 게 일요일 아침의 우리집 풍경이 되었다.

열심인 신자는 결코 아니고, 성당 사람들이 어떤 단체에 들어서 같이 활동하자고 하면 미꾸라지처럼 빠져 달아나는 날나리 신자라서 미안하지만 그냥 딱 이 정도. 일요일 아침 두 명이 빠지긴 했지만, 암튼 가족이 함께 미사에 참례하고 커피 한 잔 마시고 돌아오는, 이 나들이 같기도 하고 산책 같기도 한, 딱 이 정도의 종교생활이 난 좋다.

 

 

 

 

몇 년 전에 내가 다니는 도서관에 햇빛공방이라는 엄마들의 바느질 모임이 만들어졌었다. 함께 모여 그림책 속에 나오는 캐릭터를 인형으로 만들고, 헝겊 그림책도 만드는 아주 재미난 소모임이었다. 나도 잠깐 햇빛공방에 들어가서 <야옹이가 제일 좋아하는 색깔은?>에 나오는 고양이 캐릭터를 넣어서 막내의 가방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바느질이라면 적성에 안맞는 일이라고 손사레를 치던 내가 한땀 한땀 손바느질로. (그 책은 우리 막내가 어릴 때 좋아하던 그림책 중 하나였다)

그런 작은 모임이었던 햇빛공방이 작년에 협동조합으로 재탄생해서 따로 공간을 만들었다. 지금은 마을 기업으로 자리를 잡아 바쁘게 일을 하고 있다.  살림하고 애들 챙기면서 바쁘게 일하는 햇빛공방 엄마들을 보면 안쓰럽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그렇다.

 

 

 

 

 

 

햇빛공방 엄마들이라고 해도 오랫동안 도서관에서 함께 일을 해오던 엄마들인데 이번에 도서관협회에서 도서산간벽지의 작은 학교들에 책꾸러미를 만들어 보내면서 권윤덕 선생님의 <시리동동 거미동동>에 나오는 여자 아이와 토끼, 까마귀를 인형으로 만들어 선물로 보내기로 했다고 한다. 그 인형의 제작을 햇빛공방이 맡았고 권윤덕 선생님과의 협의 끝에 드디어 인형제작에 들어갔는데 일일이 핸드메이드로 만들다보니 일손이 부족...  내 코를 석자로 만들어놓은 일이 있어서 그 일을 먼저 마치느라 일찍부터 일을 돕지 못했다. 하지만 과거 햇빛공방의 한 멤버였고 오랫동안 함께 도서관 일을 해온 충만한 의리감으로 무장하고 마지막 이틀, 일손을 도왔다. 무사히 일을 마치고 80박스의 인형을 트럭에 실어 보내는 햇빛공방 엄마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엄마들은 힘이 무지무지 세다. 흠!!

 

 

 

 

트럭이 와서 인형박스를 실어가는 걸 보고 저녁 무렵 집에 돌아왔더니 막내가 나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울먹이며 떠듬떠듬 하는 말이.. 그러니까,  수요일이라 4교시밖에 안하고 집에 일찍 왔는데 밖에 같이 놀 친구가 하나도 없더란다. 혹시 같이 놀 친구가 나오려나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저녁 시간이 되었고, 그게 너무 속상하고 억울해서.. 그래서 열 살 막내가 나를 붙잡고 엉엉 우는 거였다.

"내 시간 어떡해~~~ 어떡해, 내 시간~~~"

저런 멘트를 날리며 우는 아이는 처음이었다. 장난감 자동차를 좋아하던 둘째가 어릴 때 "빵빵~~ 빵빵~~"하고 운 적은 있었지만 놀지 못하고 지나간 시간이 아까워서 통곡처럼 우는 아이는 처음인데, 그 모습이 너무 웃겨서 엉엉 우는 딸을 앞에 두고 엄마인 나는 우하하하하 웃고 만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막내가 평소에 못놀고 지내는 것도 아니다. 매일 저녁 7시 30분까지 신나게 밖에서 노는 아이다. 옛말에 틀린 말 없다더니..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맛을 안다는 말이 딱 이런 경우에 맞는 말이다. 놀아본 놈이 노는 맛을 안다. 그 맛을 못 봤으니 저렇게 서러웠던 거다.

우는 아이를 달래서 토닥토닥 해줬더니 금세 내 품안에서 곯아떨어졌다. 큰애들은 혼자 놀 줄을 모른다고 걱정을 늘어놓았다.

 

이제 7월이다. 한 해의 반이 지나고 한여름으로 접어들었다. 올해 지나간 반은 내 뜻보다는 주어진 상황을 따라가기에 바빴던 것 같다. 이제 남은 반은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위한 시간을 더 늘릴 수 있을까. 작년까지 도서관 사서 선생님으로 계셨던, 나랑 동갑인 선생님이 사서 일을 그만두고 황토집 짓는 걸 배우러 다니신다. 건강하고 즐거워하신다고 전해들었다. 나이가 들수록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내 시간을 살아야지'하는 조바심 비슷한 게 꾸물거린다.

나는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지도 않고, 성공을 하고 싶다거나 돈을 많이 벌고 싶다거나 하는 마음도 별로 없다. 그냥 지금의 일상을 잘 지켜나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족하다. 그냥 조용한 내 시간을 더 많이 갖고 싶고, 책을 읽고 싶고, 마음이 내킬 때는 이렇게 주절주절 혼잣말하듯 끄적거리고 싶다. 아직은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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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4-07-04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님 첫 영성체 축하드립니다. 대견하네요^^
따뜻한 일상입니다. 성당을 나들이처럼........ㅎㅎ
일 그만두고 황토집 짓는걸 배우러 다니는 그 사서님 멋지시네요.

섬사이 2014-07-04 16:01   좋아요 0 | URL
네, 고맙습니다. 늦었지만 세실님 생일도 축하드려요. ^^
'사서'라는 직업을 가진 분들 중에는 멋지고 좋은 생각을 갖고 사시는 분들이 많은가봐요.
세실님은... 지금은 '사서 선생님'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사서로 계셨으니까,
그래서 어르신의 워드 작업을 도와드리는 멋진 일도 하실 수 있었던 거 아닐까요?
책을 늘 가까이 하는 자리에 있는 분들이라 그만큼 생각이 깊고 마음이 넓은 게 아닌가 싶어요.
뜨거운 날이네요. 맛있는 것 많이 드시고 몸 튼튼, 즐거운 날들 보내세요.

하늘바람 2014-07-06 0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 이뻐요. 막내 울 태은이두. 저리 이쁘게 자랐으면하네요

섬사이 2014-07-07 16:04   좋아요 0 | URL
드레스를 입히니까 쪼끔 이뻐 보여요.
남자 아이들과 S보드 타면서 놀기를 좋아하는
머스마 같은 딸이랍니다.
태은이처럼 깜찍한 맛이 없어요. ㅠ.ㅠ

순오기 2014-07-08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님도 예쁘고 인형도 예쁘지만 울면서 하는 말이 최고에요!!^^

'내 시간 어떡해~~어떡해 내 시간!'

섬사이 2014-07-08 23:28   좋아요 0 | URL
하루라도 밖에 나가 친구들과 뛰어놀지 못하면
엉덩이에 뿔이 돋는 아이입니다.
그 날은 아마 잘 차려진 진수성찬을 잔뜩 기대했는데
빈 밥상을 받은... 그런 기분이었을 거예요.
걱정이지요.
갈수록 밖에서 노는 아이들이 줄고 있거든요. ㅠ,ㅠ
 

아이 셋이 방학을 맞아서 느긋한 아침을 즐기다가 오늘은 오랜만에 막내를 흔들어 깨워 준비시키고 집을 나섰다. 얼마 전에 알라딘에서 <가방 들어주는 아이> 연극 초대 이벤트에 댓글을 달았는데, 그게 당첨이 되었고, 오늘이 바로 그 공연을 보러가는 날이었다. 11시 공연이었지만 10시부터 티켓을 배부한다고 해서 앞자리에 앉고 싶은 욕심에 9시 20분에 버스를 타려고 서둘렀는데 버스를 20분이나 기다려야했다.  버스 안에서 벌써 사람들이 와서 줄을 서 있으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막상 가보니 우리가 두 번째. 첫번째 도착한 사람은 연극공연 이벤트를 하니 빨리 댓글을 달아보라고 내가 알려줬던 동생. 

 

아이들은 앞자리 티켓을 받고 어른 두 명은 맨 뒷자리 티켓을 달라고 해서 받았다. 아이가 엄마와 떨어져 앉기 싫어하는 게 아니라면 어린이 공연은 예의상 어른들이 뒤에 앉는 게 관람하러 온 아이들에게 좋다.

 

 

 

연극은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종로 5가의 '더 씨어터'는 규모가 작은 소극장이었고, 그 덕분에 아이들은 무대의 호흡을 더 잘 맞춰가는 것 같았다. 원작의 뼈대를 해치지 않으면서 아이들이 즐겁게 관람할 수 있도록 한 각색도 어색하거나 억지스럽지 않아 좋았고. 원작과는 다르게 연극에서는 문방구 아저씨의 비중이 큰데, 마지막에  하얗게 내린 눈을 치우는 아저씨의 뒷모습에 관객들 모두 "오~~"하며 웃게 만드는 반전(?)이 있었다.  연극을 보고난 후의 관람평은 아이들도, 나도, 같이 본 동생도 '매우 만족'. 

 

거의 100명이 다 되는 인원을 초대해서 이렇게 예쁘고 훌륭한 연극을 선물해준 사계절 출판사에 감사. 그러고보니 지난 여름에도 사계절 출판사에서 하는 <일과 사람 전>에 다녀왔었다.  사계절 출판사에서 펴내고 있는 '일과 사람 시리즈' 중 『내가 만든 옷 어때?』의 그림을 그린 선현경 작가와 만나고 아이들이 전지로 옷을 디자인해 보는 시간이 있었는데, 도서관 아이들이 신청을 해서 같이 다녀왔었다. 이래저래 사계절 출판사에게 고마운 일이 많구나.

 

같이 갔던 딸아이 친구를 데려와서 우리집에서 놀게 했다. 좋아라 노는 아이에게 어른된 도리로 해야 할 일은 간식 챙겨 주기.

집에 있던 또띠아를 꺼내서 피자를 만들었다. 아주 간단하고 손쉽게 만들 수 있는 피자인데, 만들면서 마노아님이 생각났다. 너무 간단해서 시시한 이 레시피. 공개하자니 민망하지만, 뭐, 아무렴 어떠리. 어차피 내 서재는 아는 사람만 아는, 지극히 조용하고 한적한 서재니까, "고작 이런 보잘 것 없는 레시피라니!!!'하고 돌 던질 사람은 내가 알기론 내 서재에 오는 사람 중엔 없다.

아마도.... 유재석이랑 박명수가 하는 야식코너에 내놓는다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메뉴다. (혹시 벌써 거기에 나온 거 아닐까?)

 

재료는 또띠아, 꿀, 피자치즈, 병조림 옥수수 (또는 캔옥수수), 그냥치즈.

1. 꿀을 한 숟가락 떠서 또띠아에 잘 펴서 바른다.

2. 그 위에 피자치즈를 듬뿍 올린다.

3. 옥수수를 적당히 골고루 뿌려준다.

4. 그냥 치즈 한 장을 적당히 손으로 잘라 3 위에 올린다.

5. 예열된 오븐에 넣고 굽는다. (170~180도에서 15분~20분 정도?)

* 피자치즈가 잘 녹았을 때 꺼내주면 된다.

 

이 피자의 맛은 고르곤졸라 피자 비슷하다. 옥수수는 시중에서 파는 캔옥수수가 거의 미국에서 수입된 옥수수로 만든 것이 대부분이라 나는 한살림에서 파는 병조림 옥수수를 사용한다. 한살림 병조림 옥수수는 맛이 좀 싱거워서 넉넉히 뿌려도 괜찮지만 시중에서 파는 캔옥수수는 너무 많이 뿌리면 맛이 너무 강해서 피자가 짜진다.

 

 

 

 

식욕에 눈이 어두워서 굽자마자 아이들이랑 마구마구 먹고, 마지막 한 조각이 남았을 때 제정신을 차리고 사진을 찍었다. 오늘은 군고구마가 있어서 고구마도 작게 잘라서 올렸다.  지난 번에는 옥수수가 없어서 사과를 올린 적도 있고. 

시장이 반찬이 될 즈음, 가끔 해먹으면 꽤 맛이 있다.

 

오늘은 도서관에서 하룻밤 캠프가 있는 날이다.

큰딸은 아이들을 이끄는 교사로, 막내딸은 참가하는 학생으로 도서관에 갔다.

이 저녁이 조용하다.

지금쯤 도서관은 시끌벅적 야단법석 난리도 아닐 것이다.

 

우리집은 평화와 고요..

크리스마스에도 느끼지 못했던 'A Silent Nigh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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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4-01-12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방 들어주는 아이를 연극으로 만들었군요. 좋았겠다~
또띠아를 사야겠어요! ㅎ
전 만두피에 고구마 으깬거랑 옥수수알 넣고 프라이팬에 구워주니 잘 먹더라구요.

섬사이 2014-01-15 10:10   좋아요 0 | URL
네, 연극으로 참 잘 만들어냈어요.
음, 만두피도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는 요리 아이템인 것 같아요.
얼마전에 만두피로 만드는 츄러스도 본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