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깊은 바다 속에 잠들어 있던 고래였다
수산나 타마로 지음, 이현경 옮김 / 인디북(인디아이)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누가 슈퍼맨인데?”
그때 내가 물었다.
“나.”
그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그리고 너,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바로 우리들이지.”  (p.79)

가슴 속에 부모와 세상에 대한 증오와 경멸, 분노의 불을 갖고 있던 발테르와 안드레아는 자신을 슈퍼맨이라고 인식한다. 난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 그 시선의 변화를 돌아보았다.  발테르와 안드레아의 시선과 의식세계를 좇아가다보면 예전 나의 모습과 겹쳐지는 부분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작가는 그렇게 심도있고 날카롭게 한 인간이 자신의 내부와 외부 세계를 탐색하고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었고 그것이 이 소설이 가진 힘이 아니었나 싶다.

내게도 치기어린 시절이 있었고, 세상의 부당함에 대해, 부모의 꽉 막힌 사고방식과 고집스런 삶의 태도에 대해 분노하던 때가 있었다. 그 때는 나도 나 자신을 예민한 감각으로 세상을 직관하는 능력을 가진 슈퍼맨쯤으로 여겼던 것 같다. 그 시절  세상은 싸워야 할 상대였고, 나는 세상에 대해 엄정한 심판을 내려야 했다. 세상은 이해 불가능한 혼돈이었으나 웃기지 않게도 나는 그 혼돈의 수수께끼를 풀고 승리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플라스틱 장난감 칼 하나 들고서 세계대전을 막아보겠다는 무모함과 다를 게 없었다.

“분명 우리를 위한 가까운 길도 있을 거야.”
페데리코가 결론을 내렸다.
“그렇지 않다면 평등이란 게 얼마나 거지같은 거겠어? 하지만 여긴 흐르는 모래들로 이루어진 미묘한 구역이야.  냄새를 맡고 철저히 검사할 필요가 있어. (중략) 그 안에서는 이 모든 것이 불안정한 균형을 이루고 있어.  어느 날이든 그 균형은 깨질 수 있어.  (중략) 그 안에 들어가고 싶으면 네 자신의 꽃다발을 만들어야만 해. ” (p.185)

바깥세상의 혼돈은 생각보다 훨씬 더 심했다. 어떤 방법을 쓰든 패배가 자명해 보였다. 난 내가 들고 있는 것이 겨우 플라스틱 장난감 칼이었다는 것을 알아챘고 저 페데리코 같은 인물들이 오히려 더 큰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내 손에 쥔 것이 플라스틱 장난감이었다는 걸 확인한 순간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무릎 꿇기? 패배 인정?  아니었다.  내게 플라스틱 장난감 칼밖에 쥐어주지 않은 누군가에 대한 원망이었다. 나는 속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장난감 칼을 놓지 않았다. 우습게도 그건 내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꽃다발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난 가끔 아버지가 말했던 ‘미안하다.’라는 말과 안드레아가 되풀이 했던 말을 되새겨 보았다.
“무엇 때문에 죽는 순간에 두 사람 모두 똑같은 말을 했을까요?”
수녀님이 대답했다.

“여정의 끝에 서 있을 때에서야 뒤에 있던 게 분명히 보이는 경우가 있지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생겨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빛으로 자신의 행동을 비춰 볼 수 있게 해 줍니다.  갑자기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깨닫지만 과거의 일들을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어 버린 거예요.  그래서 미안하다고 하는 거지요.  아마 나 역시 그럴 겁니다.”  (p.340)

그래, ‘미안하다.’는 게 어떤 마음의 결을 타고 흘러나오는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지점에 왔다.  언젠가는 꼭 ‘미안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은 사람도 몇 있다.  난 이레네 수녀님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레네 수녀님은 안드레아를 파멸로 몰고 간 것은 그의 지적 능력이었으며 안드레아가 자신을 현미경 같은 존재라고 믿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안드레아는) 날카로운 사고를 통해 자신이 전능하다고 느끼게 되었고 그 위에 숨겨져 있는 것들을 볼 수 있다고 확신했어요.  아마 부분적으로는 그랬을 거예요.  하지만 그 도구 위에 딱 달라붙어 있는 눈 때문에 자기 앞에 열린 건 아주 작은 조각의 현실뿐이라는 걸 깨닫지 못했죠. 망원경들은 사물을 가깝게 볼 수 있게 해주고 제한된 모퉁이를 확대시켜 주지요.  안드레아는 망원경으로 20도 각도의 현실을 보았는데 그 주위에는 340도가 있었지요.  결국 안드레아는 망원경에서 눈을 뗐을 때 그 총체적인 광경을 지탱해 낼 수 없었어요. 그는 참을 수가 없었지요.” (p.342)

이제 화해할 시간이 되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난 이제 나의 부모님보다 인생을 더 훌륭하게 살았다고 자신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분들이 이루어 놓은 것보다 난 훨씬 더 적은 것을 이루었고, 그 분들보다 더 치열하게 삶을 살지도 않았다.  세상은 거칠었지만 장난감 칼을 내려놓은 나에게 세상살이에  필요한 것은 활활 타오르는 불도 차가운 얼음도 아니었다.  그저 따스한 온기,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온기였다. 어린 아기를 안았을 때 느낄 수 있는 그 순수의 온기, 연민, 애정 같은 것들... 

발테르는 허름한 수녀원에서 고백한다.
‘성장한다는 것은 그 상태를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되찾는 것이다.  우리들 본래의 눈빛을 되찾는 것이다.’(p.354)라고.  그리고 ‘나는 숨을 쉬고 성장을 하는 우주였다.’(p.355)고.  세상은 내 건너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내가, 우주와 내가, 모든 생명과 내가 함께 하는 그 어떤 것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일 터이다. 발테르의 방황과 고민은 세상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더하고 숨겨진 의미를 찾기 위해 누구나 겪는 통과의례의 과정이었으리라.  그리고 안드레아가 사막에서 여우를 만나고, 살육의 현장에서 어린아이의 눈빛을 마주하고 괴로워했던 것은 지성만으로 살아지지 않는 세계를 발견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의 차가운 지적 판단 체계에 틈을 내고 올라온 연민과 동정의 싹 때문에 그는 그가 여지까지 확신했던 가치체계가 무너지는 혼란을 겪고 당황했던 것은 아닐까. 

충분히 방황하고 부족함 없이 고민하는 것이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자 유일한 방법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 과정에서 이레네 수녀 같은 현자를 만나는 행운을 얻는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이 서평의 글이 책에 대한 평가라기 보다 책을 통해 만난 나의 모습을 고백한 게 돼버린 것 같아 어쩐지 불편하다. 그러나 끝나지 않은 나의 삶에서도 방황과 고민 앞에 놓여있는 다른 이들의 삶에서도 그 마지막엔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겸손함과 ‘본래의 눈빛을 되찾는’ 지혜와 세상에 대한 연민과 타인의 대한 사랑, 구름 속에 가려진 어두운 허공이 아니라 작은 씨앗 속에도 가득차 있는 완전한 세계를 만나게 되기를 빌어본다. 

사족 ; 책 표지에 어둡고 흐릿한 색으로 그려진 물고기 떼에서 슬쩍 벗어난 물고기의 반짝이는 몸통 반쪽이 보인다.   물결을 타고 흘러가는 어둡고 흐릿한 물고기 떼 속에서 가끔은 슬쩍 빠져나와 빛나고 싶다는 생각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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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고 또 누가 이 밥그릇에 누웠을까
김선우 지음 / 새움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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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카롭게 후벼 파는 듯 했다.  상처 난 자리가 절절하게 아파 글썽이면서도 통증에 대한 묘한 애정을 느꼈다.  후벼 파는 듯한 작가의 글이 절망이나 냉소에 닿아 있지 않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약자에 대한 연민, 생명에 대한 사랑, 인간의 선한 가치에 대한 희망,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다시 일어나는 용기에 대한 믿음.. 그런 것들에 따스하게 닿아 있기 때문에 작가가 아무리 후벼 파더라도 그것이 ‘살아가기’를 위한 애정의 표현임을 의심치 않았다.

시인의 산문이라 하기에, 그럴 듯한 표현들로 삶은 아름답다는 식의 최면을 걸어주겠구나, 했다.  그래, 가끔은 최면에 걸리는 것도 나쁘지 않지, 싶었다.

그런데 이 시인은 최면은커녕 거의 반수면 상태에 빠져 있던 내 정신을 깨우는 데 거침이 없다.  굵직하게는 한미 FTA, 이라크 파병, 새만금 간척 사업 등등에 대한 비판의 날을 세우는데 난 그저 ‘맞아, 바로 그거야.’하면서 맞장구만 치고 있었다.  마치 가슴 속에 일어나는 생각들을 정리 못하고 어수선히 맥을 놓고 있는데 누군가가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하면서 일사천리로 정리하고 표현해 줄 때 느끼는 쾌감이랄까..  현직 대통령에 대한 마땅치 않은 심기를 드러내고, 미당 서정주에 대한 시인으로서의 자질을 거론하고, 노동자와 위안부 할머니, 지율스님과 농민들을 끌어안는 모든 글들이 시인의 명징한 언어와 표현으로 살아나 울고 웃고 애태우고 안타까워하는 듯 했다.

일상의 흐름을 타고 살다보면 어느 새 나도 모르게 동그란 조약돌이 되고 만다.  그걸 삶의 지혜라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다른 쪽에서 보면 냉철한 의식 없이, 내가 타고 있는 삶의 물결의 수질 오염조차 확인할 생각도 못하고 그저 둥글게 둥글게, 물 섞은 맥주 같은 인생이 되었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러다가 점점 작아지고 마침내 모래처럼 부서져 버리면, 저항의 힘을 아예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며 다시 조금은 모난 돌이 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예민한 촉수를 뻗어 내가 살아가는 강물의 오염을 느끼면 즉시 경고음이라도 한 번 삑~ 울릴 수 있는. 그 정도의 감각은 늘 갈고 닦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이 아름다운 지구별에서 살다 가는 한 목숨으로서의 최소한의 값어치라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산 인디고 서원의 아이들과 함께 꿈과 시에 대해 토론하는 글에서도 따스한 파동이 느껴진다.  그 파동의 마루와 골 사이를 오가다 보면 늘 가슴에 묵직하게 얹혀있던 죄책감 하나가 더욱 그 무게를 더한다. 아이들에게서 꿈을 빼앗고 경쟁을 심어준 죄, 아이들을 오로지 ‘학생’이라는 틀로만 바라보고 그들 안에서 좀 더 다양한 가능성을 찾아주지 못한 죄, 아이들의 눈에서 빛을 사멸시킨 죄, 아이들의 정신을 노예화시킨 죄...  더 넓은 품을 갖지 못한, 세심하고 여린 아이들의 마음결을 어루만져 줄 더 부드럽고 따뜻한 손을 갖고 있지 못한 이 어른들의 잘못이라고 부끄러워하며 고해소라도 찾아들고 싶은 심정이 되곤 했다.  

시인은 ‘살면서 얻어지는 작품들이 역시 저처럼 무언가에 목마른 사람들과 새로운 공감을 형성할 때, 내 작품이 누군가와 공명하면서 일상의 상처랄지 틈이랄지 하는 것들에 스미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될 때, 행복하죠.’(p.29)라고 했다. 
그렇다면, 시인은 지금 이 순간 충분히 행복하시기를.  공명의 울림이 아직도 이 가을을 흔들고 있으니.

 * 덧붙임 (2008.2.12)
시인의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이라는 시집을 읽다가 이 책과 같은 제목의 시를 찾아서 덧붙인다.

우리말고 또 누가 이 밥그릇에 누웠을까

이 집 한채는
쥐들의 밥그릇
바퀴벌레들의 밥그릇
이 방을 관 삼아 누운
오래 전 죽은 자의 밥그릇
추억의, 욕창을 앓는 세월의 밥그릇
맴고 짠 눈물 찐득찐득 흘려대던
병든 복숭아나무의 밥그릇
멍든 구름의 밥그릇
상처들의,
이 집 한그릇

밥그릇 텅텅 비면 배고플까봐
그대와 나 밥그릇 속에 눕네
그대에게서 아아 세상에서 제일 좋은
눈물 많은 밥냄새 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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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정진영 지음 / 징검다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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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삼국유사, 일본서기를 먼저 탐독한 후 현대 사가들이 그 시대에 대해 쓴 여러 책들을 참고로 읽었다.’(p.331)는 작가는 이 책에서 선덕여왕의 아버지인 진평왕 대부터 시작해서 진덕여왕, 태종무열왕을 거쳐 문무왕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펼쳐내고 있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다보면 선덕여왕을 향한 이야기의 초점이 자꾸 흐려진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여러 역사적 자료에 적당히 살을 붙여 이야기를 이어가는 듯한 부분들도 자주 등장한다. 


예를 들어
‘진평왕 47년 11월
당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고 호소했다.  고구려가 신라에서 당으로 통하는 길을 막고 또 자주 신라에 침입한다고 하였다.
백제 역시 사신을 당에 보내 명광개를 전하고, 고구려가 길을 막고 당에 내조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호소하였다.
이에 당 태종은 산기시랑 주자사를 시켜 조서를 가지고 고구려에 가서 서로 화해하도록 달랬다.  고구려 영류왕이 사과하는 글월을 보내며 두 나라와 화평하기를 청하였다.
진평왕 48년 8월,
백제가 주재성을 치니, 성주 동소가 거전하다가 죽었다.
진평왕 49년 7월,
백제 장군 사걸이 서변의 두 성을 빼앗고 남녀 300여 명을 사로잡아갔다.  무왕은 이 전에 신라가 빼앗은 토지를 회복하려고 군사를 크게 일으켜 웅진에 주둔하였다.  진평왕이 이를 듣고 사신을 당에 보내 위급을 고하자 무왕이 듣고 그만 두었다.‘(p.181) 와 같은 ○○왕 ○년 식의 서술이 종종 보이는데 이야기의 역사적 흐름과 배경을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런 서술 방식이 너무 자주 등장하는 바람에 소설의 분위기를 깨뜨리는 요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들이 작가적 상상력 속에서 농익어 피어나는 것이 역사소설의 묘미라고 볼 때, 작가적 상상력에서 탄생했을 선덕여왕과 비형의 사랑 이야기와 그 배경에 깔리는 역사적 사실과 시대배경에 대한 이야기가 잘 어우러지지 못한 것 같다.

또 마음에 걸리는 것은, 선덕여왕의 말에서 자주 보이는 ‘~하오’체와 ‘~다’체의 혼용이다. 
“그러지. 앞으로 전쟁은 군신에게 맡겨둘 생각이다.  그렇지만 이번만은 전장에서 직접 그 상황이 돌아가는 것을 한번 지켜볼 생각이오. 내가 없는 동안 그대가 도성을 잘 지키시오.”(p.213)라거나 “잘잘못을 따지며 서로 흠집 낼 때가 아니오.  모두들 정신 차리시오.  우리가 놓여 있는 긴급한 입장을 생각해 본다면, 분열을 일으키기 보다는 시대의 흐름에 거역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분열하면 파멸밖에 초래하는 것이 없소.”(p.267)와 같은 부분이 자주 눈에 걸린다. 

그리고 선덕여왕이 죽어가는 장면이 두 번 되풀이 되는데, 이야기의 도입 장면이 곧 이야기의 결말 장면과 겹쳐지는 것은 소설에서 자주 쓰이는 방법이지만 그렇다고 토씨 하나 틀리지 않는 선덕여왕과 승만의 대화와 김유신과 비담의 내전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은 피해야 하지 않았을까.

작가의 욕심이 너무 과했던 걸까?  선덕여왕이야기에서 그 동생 선화공주와 무왕 서동의 이야기로 빠지는 것이야 그렇다 치고, 백제와의 아막산성 전투에서 전사한 귀산과 추항의 이야기를 위해서 갑자기 “귀산의 아버지가 무은인데~”(p.62)하며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 그리고 김유신을 등장시키면서 ‘김유신은 경주 사람인데~’(p.182)하며 그 12대조가 금관가야의 시조 수로였다는 사실에서부터 금관가야의 왕 김구해가 신라에 항복한 이야기, 김유신의 조부 무력이 백제 성왕을 죽인 이야기, 그리고 아버지 서현의 벼슬에서부터 신라왕족의 딸 만명을 만나 혼인하는 이야기까지 꺼내는 것과 같은 서술방법은 그야말로 옛 사료를 읽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했다. 

이 책의 장점은 정말 많은 인물들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 읽고 나면 진평왕에서 문무왕에 이르기까지의 고구려, 신라, 백제, 그리고 수와 당 간의 여러 전투를 비롯해서 여러 화랑과 장수들, 그리고 삼국유사에 나올 법한 전설들(선덕여왕이 사랑한 비형랑의 탄생과 귀신과 잘 어울린다는 이야기도 삼국유사 제 1권에 나오는 걸로 알고 있다.)에 대한 지식을 얻는 데 크게 도움이 될 책이다.  여러 역사적 자료들을 아우른 작가의 노고를 높이 사고 싶다.  그러나 역사소설이 역사가 작가의 상상력 안에서 무르익어 소설로 열매 맺는 것이라면 소설로서의 『선덕여왕』은 설익은 과일처럼 신 맛이 난다.

그리고 “역사가 시대를 부르듯 난세 이 나라를 이끌어 갈 제 2의 선덕여왕의 출현은 필연적이다.”라는 속 보이는 홍보문구 좀 치워 주었으면 한다면 내 욕심이 과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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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9-27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별 두개 ㅎㅎ
참고하겠습니다~ :)

섬사이 2007-09-28 09:37   좋아요 0 | URL
제가 너무 심했나요? ^^;;
 
벽장 속의 치요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신유희 옮김, 박상희 그림 / 예담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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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방학이면 작은 아버지 댁에 놀러가서 사촌 형제들과 밤늦도록 잠들지 않고 놀던 기억이 났다.  신나게 떠들어대다가 어른들께 몇 차례 꾸중을 듣고 나면 마지막엔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는 서로 돌아가며 무서운 이야기를 숨을 죽이며 소곤거리곤 했었다.  머리털이 쭈뼛 일어서고 등줄기가 서늘해지지만 눈동자는 반짝였고 작은 기척에도 소스라치게 놀라던 기억.  그러다 하나, 둘 잠이 들기 시작하면 혼자 남아 맨 나중에 잠드는 사람이 될까봐 가슴 조이던 기억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느꼈던 기분이 어릴 적 사촌 집에서 느끼던 것과 비슷했다.  괴기스럽고 무서운 이야기, 읽으면서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하며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게 만들던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여름철 밤에 캄캄한 방에서 작은 전등 하나만 켜 놓고 이불 속에서 읽으면 딱 좋을 이야기다.

이 책의 이야기 속에서 굳이 어떤 의미를 캐내려 하는 게 현명할까?  ‘냉혹한 간병인’에서 사라져가는 효의식과 현대 사회에서의 노인 문제를 떠올려야 할까?  ‘어머니와 러시안 스프’에서 전쟁의 참혹함과 어머니의 눈물겨운 모성을 들먹여야 할까?  ‘살인레시피’에서 현대의 가정 붕괴와 이혼률 증가를 논해야 할까?  그건 ‘개그콘서트’를 ‘100분 토론’처럼 보는 것과 똑같은 우스꽝스러운 짓이 될 것이다. 

책이 주는 오락적 쾌감을 느껴보는 것도 오래간만인 것 같다.  무겁고 진지한 주제의 이야기가 주는 부담감에서 벗어나 가볍게 기분전환을 하고난 기분이랄까?  그동안 내가 너무 무겁게 살았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쳐간다.  (체중을 문제 삼지 말기를.....) 이런 것 저런 것 복잡한 문제들 다 한 쪽으로 치워놓고 가볍게 읽을 것을 찾는 분들에게 좋을 책이다.  단, 무섭고 괴기스러운 내용에 지나치게 민감하신 분들은 주의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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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7-09-21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읽어 보고 프네요. 요즘 왜 저런 풍의 표지에 끌리는지

섬사이 2007-09-21 20:03   좋아요 0 | URL
표지는 정말 예뻐요. 볼수록 맘에 들더라구요. 표지만 봐가지고는 무척 따스하고 정겨운 동화같은 이야기라도 펼쳐질 것 같지요? ^^

라로 2007-09-22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피해야 겠네요,,,,제가 워낙 민감해서리...ㅎㅎ

섬사이 2007-09-26 23:27   좋아요 0 | URL
저도 사실 무서운 영화나 책은 잘 안보는 편이예요. 이 책 읽고서는 가끔 이 책의 장면이 상상되곤 해요.^^
 
고슴도치의 우아함
뮈리엘 바르베리 지음, 김관오 옮김 / 아르테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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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에게 자랑을 늘어놓을 만큼 책을 많이 읽지는 못했다.  그래도 순수하고 아름다운 내용을 담은 책, 꿈의 세계가 스펙타클하게 펼쳐지는 판타지 책, 삶의 고단한 여정을 담은 책,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만을 담은 책, 가슴을 조이는 긴박감에 땀을 쥐게 하는 책 등등,,,  다양한 내용의 책들을 읽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소설은 처음이다.

이 책, <고슴도치의 우아함>은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두 마디로 정의 했다.  까칠하고 독특한 책이라고. 

처음엔 열두 살 팔로마나 쉰네 살의 르네의 세상과 사람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들이 지적 오만에 사로잡힌 고슴도치의 까칠함으로 보였다.  그 둘이 합쳐지면 슈퍼 울트라 가시가 돋은 괴물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했을 정도다.  그러나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난 여리고 따뜻한 고슴도치의 속살을 느낄 수 있었다.  르네와 팔로마가 뾰족하게 세운 고슴도치의 가시는 세상을 향해 드러낸 뾰족하고 아픈 적의의 가시라기보다 예민한 촉수와 같았다.  그 민감한 촉수가 세상의 거칠고 어두운 부분에 가서 닿을 때마다 르네와 팔로마는 숨고 감추고 도피한다.  그러면서 세상과 주변 인물에 대해, 그리고 문학, 언어, 미술, 영화, 아름다움, 인생 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철학적인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독특하다는 건 차별화된다는 것이고, 그건 참신함, 개성, 신선함 등등의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의미에선 타자들과의 소통과 이해의 측면에서 그 폭이 좁다는 뜻이기도 하다.  앞에서 말한 철학적 표현들은 바로 이 ‘독특함’의 양면을 드러내고 있다.

내가 그냥 스치고 지나가도록 방기했던 생각과 느낌들, 잠시 떠올랐다가 그 깊이를 잃고 잡념화 되어버렸던 생각들이 뮈리엘 바르베리라는 작가의 깊은 사유를 통해서 생명력을 얻고 문장 속에서 빛을 뿜고 있는 걸 보았다.  그리고 많은 부분에서 새로운 생각들, 참신한 사고의 발상들과의 만남이 있었다.  나도 이 작가처럼 생각의 깊이를 더하며 집요하게 파고드는 예리한 사유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 소설은 세상과 사물, 인물들의 외피를 묘사하지 않는다.  작가는 특유의 철학적 표현을 세상의 부조리, 인간의 내면, 삶에 대한 생각, 예술과 아름다움에 대한 고찰 등을 향해 펼쳐놓는다.  이런 면이 독자들에게 쉽게 읽을 수 없는 소설이라는 인상을 준다. 예를 들어 열두 살 소녀 팔로마의 외모는 소설 후반부(정확히 p.355)에 가서나 알 수 있다.  그 전에는 팔로마의 ‘깊은 사색’‘세상의 움직임에 대한 일기’를 통해 팔로마의 생각과 내면심리의 흐름을 좇을 수 있을 뿐이다. 

소설의 후반부로 갈수록 고슴도치의 가시는 부드러워지고 이야기는 따뜻한 난류를 타고 흐른다.  이는 ‘열정과 청춘의 진지함을 현자의 배려와 온정으로 연결시키고 있는’(p.336) 멋진 일본인 카쿠로 덕분인데, ‘그는 세상을 관용과 호기심으로 바라다보’고 ‘식욕, 명석함, 아량의 결탁으로 참신하고 맛있는 칵테일’(p.336)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이다.  작가의 일본에 대한 애정이 다분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일본에 대한 작가의 애정은 소설 여기저기에서 수시로 드러난다. 그럴 때마다 반항심과 질투심이 고개를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일이 따지고 들자면 너무 치졸해지는 것 같으니까 그만두자.) 카쿠로의 등장은 독자에게 비로소 이 소설에서 소설다운 흥미를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된다.

분명 손에 쥔 미꾸라지처럼 매끈하게 빠져나가며 쉽게 읽혀지는 책은 아니다.  손에 쥐고 몇 번 힘들여 주무르고 치대는 수고가 필요한 책, 그래서 다 읽고 나면 내 생각이 더해지는 책이다.  까칠하고 독특하다. 그리고 마지막엔 따뜻한 감동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소설과는 다르기 때문에 다소 어렵고 생소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얻을 게 많은 책이다.

사족 하나,
표지 바탕색이 난 화사한 분홍인 줄 알았다. 그런데 받고 보니 형광주황색에 가깝다. 처음 책과 대면하고 나서 나를 가장 당황스럽게 만든 것은 작가의 어려운 철학적 표현들이 아니라 바로 표지의 색깔이었다.  색의 중요함을 인식하는 순간이었다.  형광주황색보단 화사한 분홍이 책을 훨씬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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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8 17: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19 2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18 2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19 2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07-09-18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도 찜해야겠어요. 까칠하고 독특한 책을 읽고 싶어요,,,,더구나 마지막엔 따뜻한
감동까지 기다리고 있다니!!!

섬사이 2007-09-19 20:57   좋아요 0 | URL
지은이가 철학교사라서 그런지 생각의 방법이나 표현에서 독특한 점이 보이는 책이예요. 마지막엔 살짝 눈시울을 적셨답니다. ^^

비로그인 2007-09-19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특함은 차이이기도 하고 차이는 외면받기도 하지요. 최근에 [본 얼티메이텀]을 보다가 느낀 것은, 그가 뛰지 않고 다른 이들처럼 걸었다면 추적자들의 눈에 띄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였어요.

섬사이 2007-09-19 21:04   좋아요 0 | URL
액션이 살아야 하는 영화에서 다른 이들처럼 걷는다면... 그것도 꽤 조마조마한 긴장감이 있겠는데요.^^

하늘바람 2007-09-19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넘 읽고 프더라고요

섬사이 2007-09-19 21:05   좋아요 0 | URL
저도 너무 읽고 싶었어요. 제목에서부터 마구 끌리더라구요. ^^

비로그인 2007-09-19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슴도치의 속살이란 님의 리뷰처럼 섬세하게 펼쳐져 있어 일일이 들여다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조금 시간을 들여서라도 보고나면 뿌듯한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해주어 고마워요.

섬사이 2007-09-19 21:07   좋아요 0 | URL
민서님, 고맙습니다. 리뷰를 쓰고 나면 늘 부족함을 느끼곤 하는데, 이렇게 칭찬해주시니 쑥스럽네요. 나중에 저희 막내까지 크고 나면 그 땐 좀 더 시간과 정성을 더 들일 수 있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