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란 기존의 것, 익숙한 것에서 새로운 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던가.

가족이 사업을 하게 되면 이 세상의 모든 비즈니스들이 하찮게 보이지 않는다.
1인 기업이라도 해 본 사람은 5명, 10명의 작은 인원을 꾸려 나가는 소규모 기업을 경영하는 것조차 대단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그것이 어떤 종류의 사업이든 상관없다. 길거리에서 떡볶이나 붕어빵을 팔거나 문전성시를 이루는 식당을 하거나 이런 방식도 있구나 싶은 아이디어를 뽐내는 비디오 가게도 좋다. 기존의 것을 새롭게 해석해 냄으로써 기존 시장에서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해 가는 이러한 사람들을 발견하고 그들의 성공 요인을 관찰하고 가족과 토론하는 시간은 아주 멋지다.
이 때는 ‘What’이 아니라 ‘How’에 대해서 말해야 한다는 사람들의 의도를 분명하게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최근에 나는 이렇게 멋진 비즈니스를 또 하나 발견했다.

집으로 가는 좌석 버스가 휘릭 지나가는 길인데도 내 안에 화사한 핑크 톤의 마치 패밀리 레스트랑 같은 우아함을 풍기는 치킨 집의 간판과 안의 내부가 찰나 눈에 확 들어왔다. (나는 관찰력이 아주 좋은 편에 속한다^^)
그 치킨 집에 대한 궁금점이 계속 들어 그 날 저녁 나는 그 집에 치킨을 시켜 보기로 했다. 이름을 몰랐던 터라 인터넷 검색 사이트를 뒤졌다. 혹시나 하면서. 다행히 한 사람이 자신의 블로그에 이 곳의 사진과 자신이 먹은 메뉴를 올려 놓은 것을 발견했다. 화사한 핑크 톤의 그 집이 분명했다. 글이 올라간 날짜는 바로 어제 날짜였다. 그 블로그에는 에이드 2잔과 통감자를 세트로 판매하는 아주 멋져 보이는 치킨 세트에 대한 사진이 실려 있었다. 나는 당장 전화를 걸어 주문했다. 주문을 받는 공손한 직원으로부터 주문이 밀려 45분 정도 늦을 것이며 최대한 빨리 보내드리겠다는 친절한 사전 안내를 들은 터라 45분을 쉽사리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도착했다. 예쁜 핑크 톤의 로고가 쓰인 핑크 톤의 백화점 종이 가방을 보는 순간 더욱 기대만발. 배달해 온 젊고 상냥한 직원의 공손한 사과 인사를 듣고 치킨 세트를 꺼내보았다.

확실했다. 타켓은 여자. 컨셉은 패밀리 레스토랑과 치킨 패스트푸드의 결합. 화사하고 정성스러운 포장과 이렇게 깜직하고 사랑스럽게 에이드와 감사를 포함한 세트로 구성한 이 패밀리 레스토랑의 고급스러움을 접목한 내용물. 그리고 치킨은 치킨 패스트푸드에서 먹어볼 수 있는 바로 그 치킨이었다. 집에서 시켜 먹는 일반 치킨 집에서는 이러한 치킨 패스트푸드 치킨은 판매 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우리 집 앞의 KFC에서 먹는 것도 썩 내켜하지 않는다. 그다지 친절하지도 않기도 하지만 가격도 전혀 만족스럽지 못하므로. 그런데 그 예쁜 종이 상자 안에 들어 있는 치킨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양과 질 모두. KFC에서 그 정도의 양을 먹는다면 3만원을 넘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내가 지불한 돈은 14,900원. 감동에 감탄까지 나왔다. 단 한 번의 주문이었지만 나는 이제 단골손님이 될 것이 확실하다.

누구를 겨냥하고 있는지 어떤 시장을 내다 보고 있는지 분명한 치킨 세트, 이 감동스러운 비즈니스를 발견하고 나는 마치 내가 그 사장이라도 되는 듯 뿌듯했다.

새로운 비즈니스의 기회는 멀리 있는 것은 아닌 게 분명한 듯 하다. <생각의 탄생>에서 “관찰은 생각의 한 형태이고, 생각은 관찰의 한 형태”라고 한 말이 기억난다.
기존의 것, 익숙한 것에 깃들어 있는 새로운 것을 발견한 또 어떤 멋진 새로운 비즈니스와 만나게 될 지 무척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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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 나를 위한 용서 그 아름다운 용서의 기술
프레드 러스킨 지음, 장현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용서 (원제: Forgive for good : a proven prescription for health and happiness)
프레드 러스킨 / 중앙M&B / 2003년 12월 1일


상실과 상처가 심할수록 ‘용서’가 묵인하거나 수용하는 것처럼 느껴져 왜 내가 용서를 해야 하는 것인지 의문을 가진다. ‘용서’는 용인하는 것이 아니다. ‘용서’ 후 우리는 “그 관계를 유지하든 혹은 그 관계를 그만두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용서’가 더 이상 과거 때문에 현재를 망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그 과거를 계속 끄집어 냄으로써 자신을 괴롭히는 것을 그만두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라는 것에 대해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하더라도, ‘용서’가 바로 나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더라도 ‘용서’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어떻게 하는 것인지 암담해진다. 상실이나 상처에 대해 우리가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대응 방식, 지금껏 효과적이지 못했던 방식을 되풀이하는 것 또한 용서를 어렵게 하는 이유 중의 하나다.

이 책 ‘용서’는 정신적이고 영적인 부분에 대해 어렵지 않게 접근하고 있는 점에서 매우 주목할 만하다. 자칫 많이 무거울 수 있는 주제임에도 흥미로웠다, 저자는 ‘용서’의 과정을 손에 잡히는 쉬운 글로 설명하고 이해하도록 돕는다. 지금 분노로 고통스러워 지금 당장 ‘용서’에 대한 처방을 받고 싶은 사람 뿐만 아니라 자신이 현재 엷고 지속적인 분노 속에 있어 스스로도 잘 몰랐던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명상에 비유하자면 ‘깊이 호흡하라, 자신의 생각을 바라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몸의 긴장부터 어떻게 푸는지부터 초보자라도 큰 어려움없이 따라하며 자연스럽게 명상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해 주는 것과 유사하다.

이 책을 만나게 된 것은 마침 내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각성하는 한 경험을 한 바로 뒤였다. 어느 날 나는 나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문득 또렷하게 알아차리고 충격을 받았다.그것은, 격렬한 분노의 감정에 사로잡혀 있을 때와 아주 달라 야금야금 나를 잠식하는 것처럼 스스로 잊혀졌다가 가끔씩 무언가를 건드릴 때마다 드러나곤 하는 화였다. 나는 얇고도 지속적인 분노 속에서 ‘계속 그 생각’을 하면서 일종의 스토리를 만들고 있었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이었지만, 나 자신의 모습을 통해 알 수 있었고 바로 이 책을 만나게 되어 자신을 알아차리는 데 도움을 받았다. 책의 저자는 “원망 넋두리” 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우리가 현재 “원망 넋두리” 를 만들고 있지 않은지 묻는다.

이 넋두리에 사로잡혀 있을 때 나는 상대방을 비난하는 부분 그리고 상대방이 나에게 무엇을 잘 못 했는지에 집중했다. 그것은 사실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나의 생각, 판단, 감정과 느낌이 가미된 내 방식대로 편집된 스토리 형태를 띠고 있었다. 이는 상황을 있는 그대로 자각하는 것을 막고 내가 내 생각과 감정의 틀 안에 사로잡히게 하여 자신이 만든 스토리에 갇히게 했다. 다른 관점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거나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반응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가능성을 막았던 것이다.

 고통의 악순환을 불러일으키는 “원망 넋두리” 를 포함하여
 자신이 울화에 사로잡히기 쉬운 사람이 아닌지를 쉽사리 돌아보게 하며,
 우리가 상처나 상실에 대해 어떻게 습관적으로 반응하는지
 울화가 어떻게 시작되어 점점 더 힘을 얻게 되는지,
 울화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스스로 이해해야 할 자신의 패턴,
 용서할 수 있게 되기 위해 울화와 분노를 정확하고 분명하게 알아차리는 것 등
‘용서’에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해 준다.


“진정한 용서란 평화의 느낌이다.
바로 지금, 바로 여기서 경험하는 평화의 느낌, 그것이 다름 아닌 용서인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의 목표는 평화스러운 느낌을 갖는 것이다.

본래의 좋은 취지와 다시 연결될 때, 우리는 용서를 발견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겪는 어려움은 자신의 참된 인생 목표가 무엇이었는지를 깨달을 때 비로소 풀린다.
자신의 좋은 취지를 자각하는 것이 용서의 중요한 첫걸음이다.

좋은 취지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구성하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개개의 사건으로 인한 울화 말고
전체 인생에 관계되는 목표가 중심 내용을 이루도록 당신의 이야기를 바꾸는 것이다.
상처를 인생 무대의 중심에서 끌어 내고, 그 자리에 치유를 대신 세워놓는 일이다.”
- 프레드 러스킨, <용서> 중에서 -



언제든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그리고 처음부터 어떻게 울화가 시작될 수 있는지를 이해함으로써
저자는 “매일 매일 용서를 실행”할 것을 제안한다.

이 제안에 따라 나는 나의 매일 아침의 명상 시간에 ‘용서 5가지’를 함께 하고 있다.
이 매일 하는 ‘용서 5가지’는 매번 ‘나 자신을 용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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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에 가장 우선순위에 오르는 것 중 하나가 음악이겠지요.
과거 굉장히 힘들었던 시절, 추운 바람을 쐬면서 무작정 걷던 날, 어느 지나가던 레코드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고 5분간을 가만히 서 있었던 기억이 나요. 눈물이 흘러내렸지만 부끄러운 줄을 몰랐죠. 하지만 그 5분간 저는 마치 영원에 잠시 머물다 온 것처럼 힘을 얻었던 기억이 나요.

좋은 음악을 듣고 건강하고 푸르게 자라나는 식물 이야기, 좋은 음악을 듣고 심신의 안정을 찾아 범죄에 대한 욕구를 낮추는 게 성공했다는 이야기들도 있죠. 모든 것이 자신만의 고유의 파장을 내뿜고 있다고 한다면 음악 또한 그 고유의 파장을 가지고 있을 테니 아주 공상과학 소설 같은 이야기는 아니겠죠.

명상 중에 음악을 들으면서 음악에 따라 공명하는 동작을 저절로 취함으로써 치유하는 과정이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명상 중에 하나인데요, 저의 경험으로는 심신으로 모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눈을 감고 자신의 몸에 집중하는 거예요. 그리고 음악은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트는 것이 좋아요. 완전히 몰입할 수 있거든요. 가끔 저는 제 상태가 따라 신나는 음악을 틀어 놓기도 하고 어떨 땐 김영동님의 음악을 틀죠. 물소리를 틀 때도 있어요. 그 음악에 따라 저절로 나오는 동작이 다 달라요. 그것은 음악의 파장과 몸의 상태가 어떻게 작용하는 데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오프라 윈프리는 힘들 때마다 ‘Amazing grace’를 듣는다고 하던데요, 저는 ‘You raise me up’을 들어요. 시크릿 가든에서 듣고 무척 감동 받아서 이 노래의 아주 다양한 버전을 다 듣고 있답니다.
2008년의 목표에는 “You raise me up’을 잘 부르기가 있어요. 이 노래를 멋지게 완성하고 싶어요. 그래서 올해가 엄마 칠순이신데요, 열심히 봉사하시며 아름다운 삶을 살고 게시는 사랑하는 엄마를 위해 불러 드리고 싶거든요.
지금도 “You raise me up”을 듣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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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이 이 세상에서 가장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질문은 ‘인생이 친절한가?’라는 질문이라고 했습니다.

인생이 친절한가…이 질문을 접하고 울음을 터트릴 뻔 했어요. 삶이 정말로 나에게 친절하다고 믿는다면, 혹은 신앙이 있으시다면 신이 정말로 나를 사랑한다고 믿는다면 지금 나에게 일어나는 이 모든 일들이 나를 일깨우고 나를 돕고자 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겠지요. 인생이 친절한가는 자신을 믿는냐는 질문과도 바로 통하는 것 같아요.

삶과 인생이 나를 언제나 돕고자 하며 행복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다면 그 어떤 선택의 상황에서 그렇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겠지요. 물론 나중에 그게 아니었는데..라는 생각이 드는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많을 지도 몰라요. 하지만 인생이 친절하다는 것을 믿는다면 우리가 나아가는 방향에 추호도 의심이 없겠지요.

나는 과연 무엇을 그토록 두려워하고 힘들어 했던 것일까..생각해 보면 나의 생각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잘 될지 알 수 없어서, 잘못된 것이 될까봐 걱정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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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흐린 날이라도 정오에서 낮 2시에는 햇살이 간간히 비춘다. 하루 중 가장 햇살 좋은, 추운 겨울에도 제법 따스함을 느낄 수 있는 정오~낮 2시, 탄천.

통통거리며 계단을 가볍게 내려오는 그녀는 기분이 좋다. 그녀는 매일 어김없이 이 시간에 탄천을 모습을 드러낸다. 아마도 그녀가 좋아하는 코스는 오솔길처럼 나무에 싸여 있는 한 탄천길의 시작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녀는 특히 햇살 좋은 날에는 겨울 나무 가지 사이로 비쳐 드는 햇살과 무언가를 주고 받을 듯 손을 하늘로 향하며 무언가 메시지를 보내는 듯 보인다. 한참 서서 하늘을 바라보며 생글 거리며 웃고 있기도 한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상한 듯 수상한 듯 그녀를 바라보지만 그녀는 귀에 꽂힌 음악 때문인지 햇살 때문인지 개의치 않는 눈치이다.

팔짝이며 걷기도 하고 깊게 심호흡을 하며 나무 냄새를 한 가득 들이마시기도 하고 탄천가에 모인 오리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웃기도 하고…그녀는 분명 ‘행복하고 있음’이 틀림 없다. 그녀는 간혹 그녀 주변을 지나가는 사람을 향해 살짝 종종 짧은 이런 기도를 드리기도 한다. ‘건강과 행복이 함께 하시길..’

정오~오후 2시의 탄천에는, 행복 에너지가 유독 강하게 내리쬐는 것인지, 통통 거리며 경쾌하게 걷는 그녀의 뒷모습이 행복으로 가득차 보이기 때문인지, 행복 에너지가 넘실 거린다.

햇살 좋은 정오~낮 2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탄천으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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