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행하는 말을 빌리자면 일본이 늙기 전에 부자가 되었고, 한국이 늙으면서 부자가 되었다면, 중국은 부자가 되기 전에 늙어버린 것이다. 한국과 일본 양국이 국민소득 1만 달러를 찍은 시점은 한국은1994년도, 일본은 1983년도였다. 그 해에 두 나라의 중위연령은 한국은28~29세, 일본은 33세 정도였다. 그런데 이제 막 1인당 GDP 1만 달러에 돌입한 중국의 중위연령이 38.4세이다. - P189
중국의 부채 문제는 오랜기간 쌓여 온 구조적 문제이며 과거에는 경제성장에 큰 기여를 했던 성공적 방식의 후유증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더욱 해결이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일단 중국 지방정부들의 재정적 구조 자체가 대단히 취약하다. 지방정부는 전체 세출의 80%를 차지하는 보건, 교육, 연금 등을 책임지지만 전체 세입은 절반밖에 차지하지 못한다. 중앙정부가 최소한의 일부 차액을 세입 부족에 시달리는 지방정부에 다시 이전하는 식으로 보전해주고 있지만 구멍 난 재정을 메꾸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 지속되어 왔다. - P207
앞서 소개한 중국식 현능주의 시스템은 중앙정부가 도덕적·기능적측면에서 모두 전지전능하다는 걸 전제로 한다. HSMC 사태에서 드러난정부 재정의 심각한 누수는, 우리에게 현능주의의 한계 지점에 관한 중요한 포인트를 보여주는 게 분명하다. 여기에 더해 앞서 「빚의 만리장성 1, 2」에서 자세히 다루었듯, 현재 중국 국가 재정은 화수분은커녕 되레 부채 폭발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갈수록 위험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처럼 부패하고 해이하며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무작정 돈을 태운다면 중국은 반도체 굴기 이전에 국가부도가 더 빨리 찾아올 개연성이 훨씬 커 보인다. 적어도 내게는 말이다. - P232
최근 몇 년간 발생한 국제적 대형 사건들을 각각 독립된 별개의 이벤트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2021년 미얀마 쿠데타에 이은 내전,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 철수와 탈레반의 권력 장악, 그리고 2022년우크라이나 전쟁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이 사건들을 미국과 중국, 러시아라는 유라시아 강대국 간의 대치라는 국제 지정학적 관점과 맥락에서 파악해야 한다. 국제사회를 이러한 소용돌이로 빨아들이는 힘에서 한국은 당연히 자유롭지 않다. 당장 한국경제는 대외무역에 7할 이상을 의존하는데, 이러한 무역의 물동량 대부분은 인도양과 남중국해, 그리고 동중국해를 거친다. 특히나 한국이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전략 에너지인 중동산 석유를 포함해서 말이다. - P258
한국 반도체 산업의 위상은 2017년 북한의 핵 ICBM 도발, 이에 대한 당시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응징 움직임이 이어지며 전쟁 분위기와 긴장이 최고조로 달할 때에도 극명하게 드러났다. 당시 외신과 국내 매체는 미국과 북한 간의 긴장이 아무리 최고조에 달한다 하더라도 실제전쟁 발발 가능성은 낮게 보았는데, 바로 한국의 반도체 산업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점유율을 모두합치면 2021년 기준 D램이 70%, 낸드플래시가 45.6% 정도이다. 만약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져 한국산 메모리 반도체 생산과 공급에 큰 차질이 생기면 글로벌 IT 전자 산업이 올 스톱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세계 경제가 대혼란에 빠질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일이었다. 이런 엄청난 리스크 때문이라도 워싱턴과 베이징이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는걸 용인하겠느냐는 논리였다. - P267
대중 외교 기조에 있어 철저히 국익에 기초한 초당파적인 컨센서스를 이루고, 어느 정당이 집권을 하고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상관없이, 그것을 따르고 일관되게 유지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 P285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시작된 2022년은 한국이 다시 한번 적응력과 유연성을 발휘해야 할 새로운 시대에 정식으로 진입했다는 상징적인 한해로 기록될 것이다. 그 새로운 시대란 바로 ‘신냉전이라는 뉴노멀‘이다. 지난 30년간 이어진 탈냉전 세계화 시대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터진 후 균열을 생기더니, 이어진 미중 간 무역전쟁과 이어진 기술전쟁,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사실상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다시 한번 새로운 질서에 대처하고 적응하는 데 있어 우리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에 처한 것이다. - P288
비록 이번 위기의 진원지가 오랜 기간 한반도에 주기적 충격을 가했던 중국이며, 시진핑 정권이 초래한 지정학적 쇼크와 지금의 신냉전상황이 아무리 엄혹하더라도, 나는 우리가 이를 충분히 극복해 나갈 수있다는 것을 믿고 있다. 당연히 근거 없는 믿음이 아니다. 한국이 이미 갖고 있는 장점과 과거의 위기 극복 경험들을 다시금 잘 복기하고, 무엇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현실을 더욱 정확하게 파악하고자 힘쓰면서 대응책을 찾는 논의에 적극 참여해 줄 수만 있다면 말이다. - P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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