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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학과 익살을 통해 엄숙함에서 벗어난 인물들과 그들의 역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며   

  현대를 살아가는  서양 인간 군상들의 퇴폐주의를 예리하게 그려내고 있다. - 르 몽드 
   

  

디에고 수아레즈, 인도양의 작은 만 위를 내리쬐는 열대의 태양과 식민지의 잔재들을 가로질러 누군가는 새로운 시작을 위해, 또 누군가는 최후의 선택으로, 이 곳 지구의 오지 ‘마다가스카르’의 수도로 모여든다.

옛 식민지의 빈곤과 타락한 인도주의 NGO, 콤플렉스와 적의에 가득 찬 원주민, 그리고 한탕을 노리고 허황된 꿈을 품은 이방인의 세계 속에서, ‘모두 하나같이 썩 좋지 않은 이유로 마다가스카르에 온’ 이들의 일상이 서로 교차되고 뒤섞인다.

백인 중산층의 무기력한 꿈과 상투적 감수성을 날카롭게 파헤친 우리 시대의 프랑스 작가 니콜라 파르그. 그의 지적 감수성이 문명인이라 자처하는 서구백인의 허위와 위선, 현대적 일상의 악몽을 풍속코미디로 변주하며 프랑스 풍 희비극을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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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국제도서전의 주빈국 행사로 열린 카뮈 좌담회에 다녀왔습니다.
좌담회 참여 후에 카뮈에 대해 더욱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자리였습니다.
카뮈 전공자이신 두분의 국내 학자와 프랑스에서 오신 소설가이자 갈리마르 출판사의 영미문학 책임편집자라는 여성분이 카뮈에 대한 애정 가득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셨습니다. 뮤진트리 블로그의 카뮈와 관련한 포스트들에 거의 다 들어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아마도 대중적인 좌담회이다 보니 전문적으로 문학과 사상을 논하긴 힘들었을 듯 합니다. 

상처받은 남자, 오해와 경멸, 멸시와 오명에 휩싸였던 불행한 남자의 열정적인 삶에 대해 한 시간 반 정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프랑스에서의 재조명과 팡테옹이전문제, 사르트르와의 차이점과 복잡했던 관계, 파리 지식인 사회와의 단절과 소외 등이 주로 이야기되었습니다. 

이념이 아니라 인간을 택했던 남자. 카뮈. 매우 포괄적인 개념을 자기 철학의 근간으로 삼다보니, 파리의 철학자들로부터 매우 아마추어적인 철학자 혹은 순진한 친구라는 멸시를 받는 것은 당연했겠지요. 여기에 더불어 출신의 문제까지 겹쳐있구요.

올해도 어김없이 카뮈 사후50주년을 맞아 쏟아진 기사의 무게를 재어보면 수백킬로그램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통해 카뮈의 승리라 표현하기도 하더군요. 역사가 그의 손을 들어주었다고요. 그러나 이 또한 카뮈를 있는 그대로 설명하기에는 뭔가 어색한 듯합니다. 

사르트르와 카뮈의 관계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두 사람의 저작들을 활용했는데요, 사르트르는 '증오'의 개념,카뮈는 '인간'의 개념으로 풀었는데, 오해와 논란의 소지가 있어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삼가토록 하겠습니다.

사르트르에 대한 평가 역시 각자의 입장에 따라 상반된 평가가 나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은 블로거들의 지속적인 독서와 탐구로 풀어야 할 듯하구요. 

좌담회는 비교적 가벼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의외로 젊은 대학생들이 많았고요.신선했습니다.
이 자리를 정리해보면서 드는 생각은 카뮈의 현재성에 대한 부분인데요, 프랑스에서의 재조명 등이 이야기되고 있지만, 정작 한국사회에서의 평가와 한국지식인 사회의 연구 성과 내지는 재평가 작업 등은 숙제로 남겨진 상황인 듯합니다.


 


소설가이자 갈리마르 영미문학 책임편집자인 크리스틴 조디스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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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아 2010-05-19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식의 문제보다는 소수특권계층으로서의 지배계층과 다수 대중의 관계라는 시선으로 보아야 하는 이유는 현실적이고도 역사적인 삶 그자체의 문제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감사합니다. 좌담회 내용이 궁금했는데요, 해소시켜 주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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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미 2010-06-09 09: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벤트 당첨되었어요~ 감사합니다^-^ 책 열심히 읽고 블로그에 서평쓸게요~^-^!!

뮤진트리 2010-06-11 11:42   좋아요 0 | URL
네 축하드립니다. 6월9일 도서 발송해드렸습니다.
즐거운 독서 되시길 바래요. 리뷰도 꼭^^
 

 원문주소 : http://blog.aladin.co.kr/729034103/3716199  글쓴이 : 필리아

“죽음은 소리 없이 엄습하고 피는 조용히 흐른다.”  - 오델로 中에서

‘카뮈’하면 “바바리코트를 걸치고 손에는 담배 한 대를 들고 있는 비스듬한 시선”의 익숙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애정과 무관심이 동시에 깃들어 있는 시선”, 이 소설을 통해 그의 시선에 깃든 무관심의 정체를 헤아릴 수 있게 된다.
1960년 1월4일 파리근교‘프티-빌블르뱅’에서 자동차사고로 유명을 달리하게 되는 그 시간에 이르는 이틀을 시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카뮈의 작품들과 작품 속 인물들, 그리고 그의 친지와 친구, 동반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카뮈에 대한 그 어떤 글들보다 이해와 애정이 깊게 담겨있는 작품이라 하겠다.

친구이자 출판업자인‘미 셸 갈리마르’가족과의 파리를 향한 이틀간의 자동차 여정 속에서 프루스트의 마들렌의 추억과 흡사한“기억과 재구성된 기억의 침묵사이에 고해”하듯이 과거의 시간을 풀어놓는다. 열병으로 말을 하지 못하는‘어머니의 침묵’은 이 작품의 가운데 놓여 카뮈의 인생을 지배했던 삶의 지향점을 풀어놓는다. 아마 작품 도입부의 표현처럼 “어머니와 함께 보낸 기나긴 무언의 시간에서 비롯된”‘선천적인 불구’에 대한 해명이라 하여야 할까?

카뮈에게‘침묵’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소리를 삼켜버리는 방식으로 언어를 표현 할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의 침묵, 밖으로 내뱉지 못한 말, 헛된 연민 뒤에 갇혀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던 어머니, 말을 하고 싶을 때조차 결국 체념의 벽을 넘지 못하던 어머니의 고통에서 말과 침묵 사이의 균형을 찾으려고 끊임없이 방황하는 카뮈를 발견하게 된다.
문득 이 작품을 침묵의 해석이라 부르고 싶어진다. 알제리의 분리독립과 프랑스령 알제리라는 서로 다른 민족의 화합이라는 명분으로 갈등하던 알제리의 프랑스인인‘카뮈’의 고뇌, 여기에 더해‘샤르트르’를 비롯한 파리 사교계의 비난과 조롱은 그의 침묵을 더욱 깊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침묵은 그의 작품『이방인』의‘뫼르소’가 재판관의 노여움을 증대시킬까봐 감히 용기를 내지 못해 고개를 숙이고 침묵하는 것과, 양로원에서의 어머니 장례식 날의 자신의 모습과 행위처럼 거짓말하기를 거부하는 진실함을 내재하고 있다. 이 소설은 이처럼 카뮈의 주요 작품들인 『전락』『페스트』『이방인』『안과 밖(表裏)』등의 인물들에서 카뮈의 전형을 찾아내고, 카뮈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절대로 혀가 할 수없는 그 이상의 의미로서의 침묵에서부터 삶의 역경을 잠재우는 행복한 침묵, 내 뱉어지지 않은 수많은 말을 담고 있는 고통스럽고 귀중한 침묵을 통해 “소리나 감정의 부재가 아닌 가득 들어차 있는 상태”라는 것을.

지나가는 풍경과 상황, 그리고 문득 떠오르는 단어가 상상의 공간과 마주하며 눈앞에 현실이 펼쳐지듯 이 작품이 그려내는 그 날의 카뮈를 보는 것은 감동이지만 그의 죽음을 알고있는 독자로서의 애잔함이 내내 콧등을 시큰거리게 하고 왠지 어떤 시원적인 고독함이 내내 가슴에 엉겨붙어있는 것 같은 느낌이 따라다닌다. 그의 예기치 않은 죽음은 우리네들에게‘부조리의 시간’과‘반항의 시간’으로서만 그의 작품을 기억하게 하지만, ‘사랑의 시간’이 그에게 시작되고 있었음을『최초의 인간』이라는 완성되지 못한 그의 작품을 통해 어렴풋하게나마 이 소설에서 느껴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비견하는 그의 야심작으로 준비되던 작품을 우린 접할 길이 없지만, 그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으로 대변되는 알제리의 사랑, 그리고 그 속의 서민들의 침묵으로부터 도출해야 했던 회고로서 그가 펼쳐냈던 그간의 기억의 편린들을 완결하는 작품으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는 것은 그의 예기치 않은 운명을 진정 애석하게 한다.
어린시절의 가난과 그 가난한“빈민가의 서민들이 침묵 할 수밖에 없는 그의 최초의 메아리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의 표시인 존재, 밀봉된 상자...”는 벙어리인 어머니이자 고향 알제의 벨쿠르 언덕과 아르카드 숲, 그리고 드넓게 펼쳐진 바다가 있는 알제리의 사랑이었을 것이다.

“최연소 프랑스인 노벨상 수상자의 어머니는 침묵 속으로 숨어버렸다”는 감정적 비약을 담은 기사에서부터 시기와 질투로 졸렬한 비난의 앞장을 섰던 엘리트주의자들의 대표인 샤르트르같은 좀스런 사상가까지 “암담한 자기도취와 상처받기 쉬운 나약함이 한데 뒤섞여 있어서...省略..”라고 카뮈라는 개인에 대한 공격을 해대었으니, 그 극단적 야비함에 대해 카뮈는 정말 아무런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개인적인 외롭고 감각적인 삶의 변두리에서 자신이 살고 떠들고 소외되는 사회에서 이방인이었던 사람, 또한 침묵의 의미를 알았던 20세기 실존주의의 커다란 한 획을 그은 천재작가의 마지막 날들의 소묘는 가난한 프랑스인 아들에 관한 아름다운 서사로 가슴 깊이 새겨진다. 어쩌면 이 작품이 바로 “어머니의 존경할 만한 침묵에 내재해 있는 사랑이나 정의를 되찾으려는 한 남자의 노력을 작품의 중심에 놓으리라는 구상”이었던‘카뮈’가 미처 완성치 못한 『최초의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친다. 마치 자전소설 같은, 그의 인생과 작품을 이해하고 작품 속 주인공들의 내면을 이해하는데 진정 유효한 완성도 높은 소설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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