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국제도서전의 주빈국 행사로 열린 카뮈 좌담회에 다녀왔습니다.
좌담회 참여 후에 카뮈에 대해 더욱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자리였습니다.
카뮈 전공자이신 두분의 국내 학자와 프랑스에서 오신 소설가이자 갈리마르 출판사의 영미문학 책임편집자라는 여성분이 카뮈에 대한 애정 가득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셨습니다. 뮤진트리 블로그의 카뮈와 관련한 포스트들에 거의 다 들어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아마도 대중적인 좌담회이다 보니 전문적으로 문학과 사상을 논하긴 힘들었을 듯 합니다. 

상처받은 남자, 오해와 경멸, 멸시와 오명에 휩싸였던 불행한 남자의 열정적인 삶에 대해 한 시간 반 정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프랑스에서의 재조명과 팡테옹이전문제, 사르트르와의 차이점과 복잡했던 관계, 파리 지식인 사회와의 단절과 소외 등이 주로 이야기되었습니다. 

이념이 아니라 인간을 택했던 남자. 카뮈. 매우 포괄적인 개념을 자기 철학의 근간으로 삼다보니, 파리의 철학자들로부터 매우 아마추어적인 철학자 혹은 순진한 친구라는 멸시를 받는 것은 당연했겠지요. 여기에 더불어 출신의 문제까지 겹쳐있구요.

올해도 어김없이 카뮈 사후50주년을 맞아 쏟아진 기사의 무게를 재어보면 수백킬로그램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통해 카뮈의 승리라 표현하기도 하더군요. 역사가 그의 손을 들어주었다고요. 그러나 이 또한 카뮈를 있는 그대로 설명하기에는 뭔가 어색한 듯합니다. 

사르트르와 카뮈의 관계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두 사람의 저작들을 활용했는데요, 사르트르는 '증오'의 개념,카뮈는 '인간'의 개념으로 풀었는데, 오해와 논란의 소지가 있어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삼가토록 하겠습니다.

사르트르에 대한 평가 역시 각자의 입장에 따라 상반된 평가가 나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은 블로거들의 지속적인 독서와 탐구로 풀어야 할 듯하구요. 

좌담회는 비교적 가벼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의외로 젊은 대학생들이 많았고요.신선했습니다.
이 자리를 정리해보면서 드는 생각은 카뮈의 현재성에 대한 부분인데요, 프랑스에서의 재조명 등이 이야기되고 있지만, 정작 한국사회에서의 평가와 한국지식인 사회의 연구 성과 내지는 재평가 작업 등은 숙제로 남겨진 상황인 듯합니다.


 


소설가이자 갈리마르 영미문학 책임편집자인 크리스틴 조디스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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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아 2010-05-19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식의 문제보다는 소수특권계층으로서의 지배계층과 다수 대중의 관계라는 시선으로 보아야 하는 이유는 현실적이고도 역사적인 삶 그자체의 문제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감사합니다. 좌담회 내용이 궁금했는데요, 해소시켜 주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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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미 2010-06-09 09: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벤트 당첨되었어요~ 감사합니다^-^ 책 열심히 읽고 블로그에 서평쓸게요~^-^!!

뮤진트리 2010-06-11 11:42   좋아요 0 | URL
네 축하드립니다. 6월9일 도서 발송해드렸습니다.
즐거운 독서 되시길 바래요. 리뷰도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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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2010년 알베르 까뮈의 사후 50주기를 맞아 관련 서적들이 수없이 쏟아져 나온 이 현상은 현재까지도 압도적인 베스트셀러를 차지하고 있는 소설 ‘이방인’의 저자, 알베르 카뮈의 영향력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있다.



  소설 [카뮈의 마지막 날들]의 저자인 조제 렌지니가 이 철학적인 작가  가 지닌 현대성과 1950년대의 아이콘을 향한 젊은이들의 열광에 대해 이야기한다.  


 

왜 알베르 카뮈의 마지막 순간을 그린 소설을 쓰게 되었는가?

한 마디로 요약하면, 카뮈에게 있어서 침묵의 중요성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거의 귀머거리인 어머니의 침묵, 그리고 글을 읽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 스스로를 방어할 언어를 갖지 못한 사람들의 침묵에 대하여 카뮈는 그 스스로가 대변인이 되고자 했었다.

1960년 1월3일, 갈리마르출판사의 사장인 미쉘 갈리마르와 루르마랭에서 파리로 가기위해 길을 나선 그는 집필중인 ‘최초의 인간’을 놓고 깊은 고민에 빠져있었다. 그 시기는 3년 전 최연소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평단의 가혹한 비방에 시달리면서 자신이 여전히 글을 쓸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에 사로잡혀 있었던 시기였다. 이 고립된 자동차 여행이야말로 그에 대한 깊은 성찰에 이르는 적합한 공간이었다.

                               

자동차는 플라타너스 나무를 들이받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날 카뮈는 기차를 탈 예정이었다. ‘자동차 사고로 죽는 것처럼 부조리한 것은 없다’라고 항상 이야기했던 그의 이런 죽음이야말로 기이하다. 삶을 그토록 사랑했던 47살의 이 남자가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신화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러나 본질은 다른 곳에 있었다.  

 

동시대의 저명한 지성인이었던 사르트르와 비교한다면..?  

 

사르트르는 철학자이자 아주 훌륭한 교수이지만 그의 글은 구시대적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까뮈에게 있어서 작품은 인간과 분리될 수 없었다. 그는 단순했다. 그의 소설들은 아름다운 언어인 동시에 모두에게 이해될 수 있는 언어로 쓰였다. 독자들은 그의 작품에서 어떤 방식으로든지 자기 자신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6백만 부 이상이 팔린 [이방인]을 예로 들자면, 마치 범죄소설처럼 구성되어있다. ‘퀴어’라는 밴드의 히트곡 “킬링 아랍”이라는 곡에 영감을 부여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어느 누구도 사르트르의 텍스트를 가지고 록 음악을 만들 생각은 하지 않는 것처럼. 오늘 날에도 여전히 카뮈에게 열광하는 것은 무엇보다 그가 자유인이었다는 것이다.

사르트르가 오로지 명확함만을 추구했다면 카뮈의 세계는 회의와 의문들로 가득 차있다. 그는 때때로 오류를 범하곤 했지만 결코 남을 속이는 일 따윈 하지 않았다. 사르트르가 실존주의 속으로 침잠해 들어갈 때 카뮈는 흐루시초프 보고서가 나오기 5년이나 앞서 트로츠키적인 관점을 취하면서 공산주의와의 결별을 감행했다. <나는 언제나 좌파이다, 그녀 혹은 나 자신과는 상관없이>. 같은 시기에 그는 미국의 팽창주의의 유혹에 굴복하는 것을 거부했다. 

            

 
오늘날 사람들은 카뮈를 현실참여적인 인물로써 평가하고 있는지..?  

 

확실히 1960년에 이르자 그는 더욱 더 고통받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 시기에 그는 알제리/프랑스 문제에서 찬성 혹은 반대라는 확실한 태도를 취하거나 미국과 소련 사이의 제국주의 정책에서 분명한 입장을 선택해야 했다. 그러나 카뮈는 이 모든 것을 거부했다. 이러한 거부의 행위를 놓고 그를  현실참여적 인물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레지스탕스 활동을 시작으로 Combat紙의 주필이라는 언론인으로써 그는 유일하게 1945년 종전과 함께 ‘세티프’에서 벌어진 알제리 독립운동에 대한 프랑스 탄압 사건을 기사화했으며, 반 제국주의적 정서와 의식을 지닌 최초의 기자였다. 또한 히로시마 원폭이후 핵으로 문제를 푸는 핵전략에 대해 맹렬히 비난했었다. 카뮈라는 인물에게는 여러 주목할 만한 점들이 있다.

그는 긍정적인 의미의 도덕주의자라 불릴 수 있으며, 정당을 선택하지 않고도 우리를 성찰과 정치적 사유로 인도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현대적인 정신이다. 
 

           
 

이러한 현대성이 젊은 세대를 매혹하는 것인가?  


정치적 신뢰와 참여의 위기라 할 만한 우리 시대의 젊은 세대는 카뮈의 절대자유주의적인 측면과 정당이나 정치적 시스템에 대한 저항정신을 발견하곤 한다. 그는 단지 고립되었을 뿐이지 무관심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반 이상주의적인 생각들이 젊은 세대를 안심시켰을 것이다. 권력에 대한 그의 사유를 읽을 때면 그가 니콜라 사르코지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그의 언어는 형식적인 수사가 아니라 생생하고 풍요롭다. 이런 것이 그가 시간을 초월하게 하는 것들이다. 그 자신이 <<나는 철학자가 아니다, 나는 예술가이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그는 최소한의 질문만 허용되는 기성의 관념체계에 속한 다른 많은 철학자들과는 분명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그의 이야기들은 모든 것에 선행하여 존재하는 인생 그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카뮈를 '팡테옹'으로 옮기자는 니콜라 사르코지의 제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영원성, 그것은 미래 없는 관념이다>>라고 말하는 남자에게 영원성을 부여한다는 것이 과연 필요한가라고 생각한다. 프랑스 정부가 유럽연합의 문화 수도 ‘마르세이유’의 해를 맞아 2013년 이전에는 카뮈를 '팡테옹'으로 옮길 것이라고 본다. 어떻든 이것은 알베르 카뮈가, 유럽연합의 문화 수도 ‘마르세이유’를 향한 항해의 상징이자, 알제리와 프랑스 사이의 화해의 가교가 될 것을 의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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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0-05-12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잘 보고 갑니다.

뮤진트리 2010-05-12 17:59   좋아요 0 | URL
네, 자주 들러주세요.

필리아 2010-05-14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르트르는 세습적인 부자귀족집안의 자제였어요. 그네들은 프랑스의 지배계층으로 연결되는 소수의 엘리트를 양성하는 그랑제꼴 출신이지요. 사실 이러한 자들만이 자기들만의 울타리를 처놓은 물에서 놀수가 있죠. 잘알려진 프랑스의 걸출한 정치,철학,문학,예술인들은 거의가 이 엘리트 코스출신이죠. 그런데 카뮈는 프랑스도 아니고 알제리출신인데다 가난한 서민으로 일종의 식민지 대학인 알제대학을 나왔거든요. 당연히 이들과는 가까워질 수 없는 틈이 존재했지요. <카뮈의 마지막 날들>에서도 잠깐 언급되지만 카뮈의 스승인 '장 그르니에'가 쓴 <카뮈를 추억하며>라는 글을 보면 카뮈가 왜 부조리와 저항에 그토록 천착했는지, 샤르트르는 물론 그의 계약동거인인 보봐르같은 페미니스트까지 카뮈를 조롱하고 비난하면서 반목하게 되었는지 알 수 있죠... 샤르트르는 부모덕에 무임승차한 집단이고 카뮈는 넘을수 없는 벽을 극복한 진정한 사상가라 할 수 있죠. 당연 카뮈가 노벨상을 수상하자 이들 집단의 시기와 질투는 카뮈를 고통스럽게 하였음이 분명합니다. 2년후 샤르트르가 노벨상 수상을 거부한 것도 바로 이러한 배경이 있는 것이죠...
 

  
‘이방인'의 작가 알베르 카뮈가 사망한지 50년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프랑스 사회 곳곳에 살아있는 듯하다. 미셸 옹프리(프랑스 극좌파 철학자)에서부터 니콜라 사르코지까지 누구나 할 것 없이 카뮈를 이야기한다. 지금 프랑스 사회는 마치 21세기 도덕의식의 상징처럼 카뮈를 대하고 있다. - Observateur, 2009.8


 
 2010년 1월4일, 최연소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자 자유인의 표상처럼 여겨지는 카뮈의 사후 50주기를 맞은 프랑스 사회는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으로부터 촉발된 논쟁의 거센 물결로 출렁거리고 있습니다. 
 
카뮈의 작품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그와 악수를 하고 싶은 욕망에 휩싸인다고 했던가?
지난 2009년 겨울, 프랑스의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비문화적인 대통령으로 꼽히는 사르코지 대통령도 카뮈의 작품을 읽고 난 후 자신이"왜 알제리에   태어나지 않았는지 후회스럽다”고 까지 말하며 카뮈를 프랑스 위인들을 안치해놓은'팡테옹’으로 이전하자는 제안을 하고 나섰습니다.
 모든 면에서 카뮈와는 극단적 대비를 이루는 사르코지 대통령의 이러한 제안을 추락한 지지도를 만회하려는 정치적 술수로 여기는 언론의 집중포화 속에서 카뮈의 딸, 카트린이 팡테옹 이전을 지지하면서 논쟁에 불을 지폈지요.


 
 (카트린 카뮈)
엘리제 궁으로 초대를 받은 카뮈의 딸 카트린(작가)은 50년이 지나도록 어느 누구도 관심 갖지 않았던 문제를 유일하게 사르코지가 관심을 드러낸 것에 대해 긍정적인 의견을 피력하였습니다.
 “내가 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나는 아주 미미한 존재처럼 느껴진다. 단지 나는 아버지를 비롯해서 매우 가난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을 법한 의심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청소부였던 내 할머니에게 아버지의 ‘팡테옹’ 이전은 어떤 영광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이런 측면에서 힘든 인생을 겪는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상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언어와 관점을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발언했던 누군가가 있었다는 것, 그것은 매우 아름다운 상징이다.”             
- Observateur, 2009.11. 카트린 카뮈(카뮈의 딸)

이에 카뮈의 아들인 장 카뮈는 그의 아버지 스스로가 ‘영원성, 그것은 미래가 없는 관념’이라고 표현했던 것을 예로 들며 팡테옹 이전을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아버지가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점에 심한 우려를 느낀다”, “죽은 자들이 마지막으로 잊혀지는 ‘팡테옹’, 영원을 믿고 세워진 마을인 ‘팡테옹’. 나는 카뮈를 루르마랭의 태양아래 놓아두어야 한다고 믿는다. 맹목적인 느낌이 들지라도 아버지의 마지막 거처에서 그를 빼내오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 journal du Dimanche, 2009.11 장 카뮈(카뮈의 아들)

알베르 카뮈는 평소 자동차 사고로 죽는 것만큼 부조리한 것은 없다고 말하면서 그 자신이 부조리한 죽음을 맞았습니다. 2010년 프랑스 사회는 또 다시 부조리한 상황을 재현하고 있습니다. 아들은 반대하고 딸은 찬성하는 이 부조리. 가장 우파적인 대통령이 먼저 들고 나선 카뮈의 이전 문제. 죽어서도 여전히 문제적 인간. 알베르 카뮈.

프랑스 정부는 유럽연합과 북아프리카 국가들과의 정치적 관계 개선과 마르세이유의 유럽연합 문화수도 지정을 목표로 2013년 카뮈 탄생100주년을 기념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카뮈와 지중해’라는 대규모 전시 프로젝트, 연극과 오페라 등 그에게 헌사하는 각종 행사와 더불어 프랑스 정부는 카뮈의 팡테옹 이전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할 것이라는 분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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