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대한민국 전자출판 대상 작가부문 대상 수상 작가

임선경 신작 소설


나는 죽었다. 내가 죽었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연이가 다섯 살 때, 그러니까 2년 전, 햇수로는 3년 전이다.


놀랄만큼 정확하게 묘사한 1970년대의 풍경들


내가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그래서 한 번이라도 제대로 엄마 노릇을 할 수 있다면.


일곱 살 소녀 연이의 곁을 떠나지 못하는 죽은 엄마,

그리고 살아 있는 사람들, 아빠, 새엄마, 동네 사람들,

언젠가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내야만 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

[나는 마음 놓고 죽었다]




나는 죽었다. 내가 죽었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연이가 다섯 살 때, 그러니까 2년 전, 햇수로는 3년 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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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여러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남편과 평생을 함께 해온 아내가 인생 황혼기에 남편과의 이혼을 결심한다. 오로지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킹메이커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온 아내가, 드디어 남편이 국제적으로 명망 있는 문학상을 수상하며 자타가 공인하는 킹이 된 시점에, 남편을 떠나기로, 그것도 그동안 숨겨 왔던 남편의 비밀까지 밝히겠다고 결심하면, 우리는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엄청난 상금만으로도 전 세계 모든 작가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는 헬싱키 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남편과, 평생을 그림자로 살며 남편을 그 자리까지 올려세운 아내의 숨겨진 진실을 그린 매그 윌리처의 더 와이프를 읽고 나면 세 개의 단어가 떠오른다. gender, writing, identity. 이 책의 제목만큼이나 이제는 흔한 주제들이지만 메그 월리처는 이 무겁고 씁쓰레한 주제들로부터 경쾌하고 날렵한 소설 더 와이프를 뽑아냈다.

 

 


더 와이프의 주인공은 아내와 남편이다. 아내인 조안은 뉴욕의 유복한 집에서 자란 스미스 칼리지 여학생으로, 오래전부터 작가가 되는 것에 대해 생각해왔으나 대학에서 글쓰기 수업을 들으며 자신의 이야기로 소설 습작을 하다 보니, 지도 교수로부터 재능이 있다는 말은 듣지만, 스스로 인생의 경험이 너무 없고 세상을 보는 시각도 좁다는 걸 느낀다.

 

일찍 아버지를 잃고 엄마와 할머니와 이모들에 둘러싸여 살아온 남편 조는, 어려서부터 동네 도서관을 드나들며 책을 읽는 것으로 자기만의 세상을 만들어 온 터라 몇 권의 소설을 쓰고도 남을 만큼의 이야깃거리를 갖고 있지만, 자신의 재능으로는 제임스 조이스의 발끝이라도 따라가고자 하는 희망이 달성 불가능한 것임을 안다. 그런 두 사람이 명문 여자 대학교인 스미스 칼리지에서 선생과 제자로 만나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한 후 선택한 삶의 방도는 무엇이었을까.

 

세상을 모두 가진 듯한 남자들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세상에서, 어딜 가나 여자들에 둘러싸이고 본인 또한 넘치는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지만 다행히 정치적으로 건전하고 세상에 대해 균형 있는 시각을 가지고 있고 작가 남편과, 그 남편의 그림자로 어디든 함께 하며 그야말로 보살피고 가이드하고 챙기는 아내가 함께 만들어나가는 문학 인생은, 남편의 소설들이 인정을 받고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성취감과 자신감을 더해 자리를 잡아가는 듯했다.




부부의 사십오 년 인생을 조망한 이 소설 더 와이프에서는 자주 두 사람의 삶이 회상되고, 현재와 과거가 겹쳐지며 교차한다. 스미스 칼리지의 창조적 글쓰기과목을 새로 맡은 젊은 조 캐슬먼은, 자신에게 문학 재능이 있기를 바라며 홀로 도서관에서 단편을 습작하는 여학생 조안의 욕망을 끄집어냈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 부부가 된다.

 

하지만 결국 아내보다 재능이 부족한 것을 견디지 못해하는 남편을 위해 자신의 재능을 묻는 삶을 선택한 아내의 재능과 헌신 덕에 남편은 작가로서의 최고의 명성을 누리지만, 공교롭게도 그 시점에 아내는 자신의 삶을 감싸고 있던 허무와 위선의 그림자를 본다. 둘만의 내밀한 공감과 타협으로 살아온 삶이 결국 거짓된 삶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그녀는 그동안 숨겨온 이야기를 밝히기로 마음먹는다.


더 와이프의 아내는 영리하면서도 어리석고, 터프하지만 의지가 약하고, 끝내주는 위트와 유머의 소유자이지만 슬픔 또한 깊다. 여성의 재능을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는 세상에서 편견에 맞서 용기 있게 싸우기보다는 우회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재능을 실현해 온 조안, 그러나 그 사실을 평생 남편의 이름에 묻고 살아야 했던 여인, 남편의 그림자를 자처하며 살아왔지만 아내는 저보다 나은 반쪽입니다라는 남편의 입에 발린 인사를 이제는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다.




 

메그 윌리처는 이 소설에서 최고의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작가라는 사람들의 욕망과, 부부라는 특별함으로 묶인 결혼 생활의 갈등을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세상을 다 가진 듯 거만하고 우쭐대고 이기적이고 남에게는 도대체 관심이 없는 남자의 허와 실을, 스스로 그 남자를 선택했고 거들기로 판단했기에 평생 모든 것을 보살피며 때로는 모른 척해야 했던 그 모든 배덕의 순간을 함께해 온 여자의 내면을, 늘 방문을 잠그고 함께 작업을 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며 자란 아이들의 결핍과 일탈을 다독여야 하는 가족 내의 긴장감을, 나도 마음만 먹으면 저 남자들처럼 될 수 있다고 늘 생각했으면서도 결코 그러지 못했던 자신을 돌아보며, 수상 소감을 발표하는 남편의 모습에 질투심을 느끼고야 마는 아내의 꿈과 욕망을 감탄스러울 정도로 치밀하게 묘사한다.

 

킹메이커로, 세 아이의 엄마로 살아온 한 여자가 원했던 삶은 결국 무엇일까. 그보다는 생의 황혼에 이른 아내가 오직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 내리는 새로운 선택이 더 기대가 된다.




부부의 삶을 지탱했던 한 부분, 그 어두운 진실을 그대로 밝힐 수 있을지, 아니면 아내는 진정 저보다 나은 반쪽입니다라고 말하는 순간처럼 누군가의 아내로서 살아온 덕택으로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실현할 수 있었다고 인정할 것인지.

 

혹은, “인생에서는 당신의 노력을 인정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던 남편의 조언을 되새기며, 이제 그녀만의 실력으로 새롭게 두 사람의 이야기를 쓸 것인가. 이 소설의 관전 포인트는 참으로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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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좋아하는 전직 신부이자 최고의 유방 절제술을 갖고 있는 암 전문의 헨델.

어려서부터 오빠에게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했고 자살 기도 전력이 있으며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어두운 성격 탓이라고 말하는 가족과 절연하고 사는 화가 피카소.

스스로를 호색가로 주장하며 언어와 욕정의 결합을 좇는 사포.

 

피카소와 사포와 헨델이라는 세 캐릭터가 시공을 초월하여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형태의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이 이야기는 철학과 예술과 성에 관한 질문이자 모색이고 궁극적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하는 아름다운 미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피카소사포헨델 세 사람이 돌아가며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예술과 역사와 종교를 논하고 자신의 현재를 고백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진실을 찾아 미로를 더듬어 나가는 체험. 전혀 다른 지점에서 출발한 등장인물들이 한데 모이고 어지러운 이야기의 가닥들이 하나의 타래로 엮이는 순간, 퍼즐을 풀고 미로를 탈출하는 후련한 쾌감이 기다립니다.

우리 모두 예술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예술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진실이 주어질 때 그 진실을 깨닫게 해주는 거짓말이다.”

_파블로 피카소

 


시간을 초월한 근미래의 런던에서 이들 셋은 각자의 도시에서 도망쳐 같은 열차에 탑승하게 되고, 흥미로운 한 권의 책을 통해 서로에게 끌리게 됩니다. 바로 어느 창녀의 철저하고 정직한 회고록이라 불리는 책. 이야기 속의 이야기인 어느 창녀의 철저하고 정직한 회고록을 통해 우리는 18세기 창녀인 돌 스니어피스라는 여인의 황당무계한 연애를 엿보고, 언어가 치유능력을 갖는 고통스러운 아름다움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이야기를 읽는 독자일 수도 있는 창녀 돌 스니어피스( 스니어피스Sneerpiece라는 성은 남자의 물건을 비웃는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어 인형이라는 의미의 이름 돌Doll과 충돌한다)는 전통적으로 남성이 차지한 전지적 화자와 독자의 역할 모두를 대체합니다.


예술작품의 본질은 (흔히 오해하듯) 현실세계의 일부가 되는 것이 아니고, 현실세계의 복제품이 되는 것도 아니며,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 독립적이고 완전하고 자치적인 세계가 되는 것이다. 또한 예술작품을 온전히 소유하기 위해서는 그 세계 안으로 들어가 그 세계의 법규에 순응하고, 현실이라는 다른 세계에서 당신이 가졌던 믿음, 목표, 그리고 특정한 조건들을 당분간 묵살해야 한다.


소설의 첫 장을 열기 전에 이런 문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의 길잡이 같은 구절이지만 온전하게 예술을 온전히 향유하려는 많은 이들에게 기본을 돌아보게 하는 소중한 제언이 아닐까 합니다. 가벼운 소설들에 싫증이 난 독자라면 이 구절을 떠올리며 잠시 깊은 사색에 잠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넷 윈터슨


이 소설의 작가 지넷 윈터슨은 독실한 기독교도인 양부모 밑에서 자랐습니다. 열여섯 살에 자신이 레즈비언임을 깨달은 후, 그 경험을 소재로 스물다섯 살에 발표한 첫 소설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로 휫브레드상 데뷔 장편소설 부문을 수상합니다. 이후 30년 넘는 세월 동안 다양한 장르에서 종교예술성적 정체성 등을 소재로 글을 써온 그녀는 피카소헨델사포라는 거장들의 이름을 지닌 주인공들을 통해 성별의 차이에 어마어마한 사회적 법률적 함의가 담겨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당연하게 통용되는 세상의 이치에 수많은 물음표를 던지며 그물망 같은 권력들이 더께처럼 굳어진 기존의 질서에 저항하는 지넷 윈터슨은 페미니즘과 문학, 성과 정체성, 가족 안에서의 성폭행, 종교음악과 거세, 아동성애 등의 날카로운 주제들을 대담하고 시적인 산문으로 유연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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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장소에 머물다 간다. 집과 일터는 물론이고 여행지, 혹은 일상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장소들, 거리, 카페, 친구 들과 어울리는 어떤 곳, 우연히 발길을 들여놓은 낯선 동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실제로 더 다양하고 많은 장소를 경험한다.

 

어찌 보면 이들 장소에 대한 기억이 곧 자기 삶의 역사이기도 하다. 반대로 장소들의 역사는 수많은 사람과 사건들이 벌어진 기억들로 채워진다. 자신의 삶을 자기가 거쳐 온 장소들을 지표로 기록하는 것은 흥미롭다. 그것은 내밀한 일기일 수도 있고 한 시대의 기록일 수도 있다. 여기 프랑스 파리의 장소들을 지표로 자신의 삶과 시대를 기록한 책이 있다.





파리를 사랑하는 사람들



1919년에 태어나 98년을 살고 201711월 세상을 떠난 로제 그르니에, 기자이자 작가로서 생전에는 '걸어 다니는 현대 프랑스 문학의 역사'라 불릴 만큼 시대의 기록자로 충실했던 그는 죽음을 앞두고 자기 삶을 파리라는 '위대한 도시'를 중심에 놓고 회고한다. 어린 시절 이후 그가 평생 거쳐갔던 파리의 장소들에 대한 기억은 곧 그의 역사이자 파리의 역사가 된다. 파리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으나 파리를 사랑하고 파리에서 생을 마친 한 파리지엥의 삶.


작가 로제 그르니에는 자신과 연관된 100여 곳이 넘는 파리의 거리들을 기억하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회상함으로써, 20세기라는 격변기에 기자로 작가로 편집자로 살아온 삶을 회고한다. 파리에서 보낸 첫 밤에 대한 기억은 물론이고 파리 해방 전투에 직접 참여하면서 당시 파리 시내를 묘사한 풍경은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막연한 전쟁의 모습이 아니라 구체적인 생존의 현장으로서의 한 도시와 사람들을 보여준다. 도심에서 벌어지는 시가전에 대한 묘사가 이토록 슬프고, 비참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예는 찾아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왼쪽 끝) 알베르 카뮈, 오른쪽 끝)로제 그르니에


50여 년 동안 기자이자 편집자, 작가로 일하며 만났던 수많은 작가와 예술가들의 이야기는 그들이 머물렀던 장소들을 중심으로 아련하지만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알베르 카뮈의 죽음을 전하는 순간의 기록은 오랫동안 가슴에 담길 만하다.


우리는 할 말을 잃고 작업실 한쪽 구석에 모여 있었다. 나는 문 가까이에 있는 선반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카뮈는 자주 페이지 레이아웃을 검열하고, 마지막 교정쇄를 수정했다. 누군가 결국 내게 말했다.

카뮈에 대해 기사를 쓰게 되면 우리가 그의 친구였다고 말해주게.”

얼마 지나지 않아 식자공들과 교정자들이 책 친구들이 알베르 카뮈에게라는 제목으로 공동 저작을 펴냈다. 그들은 내게 그 책의 서문을 청하면서 함께할 영광을 누리게 해주었다.


1931년 파리에서 열린 식민지 전시회를 기억하고, 소르본에서 들은 가스통 바슐라르의 강의를 기억하고, 파리 해방 즈음 플레옐에서 본 루이 암스트롱의 반짝이던 트럼펫을 기억하고, 물랭 루주 테라스에 세워진 보리스 비앙의 아담한 집을 기억한다. 그에게 <콩바>지에 들어오라고 권한 알베르 카뮈의 제안을 기억하고, 카페 플로르에서 본 윌리엄 포크너를 기억하고, 앙드레 지드의 집으로 찾아가 그와의 대담을 녹음하던 중 지드가 발음을 연습해야겠어라고 한 말을 기억해낸다.


카페 플로르 1949


파리, 문학의 도시


아버지가 태어난 마자린 길에서 이야기를 시작해 친구이자 동지였던 클로드 루아의 유해가 뿌려진 퐁데자르 길에서 끝맺기까지, 그는 파리의 수많은 거리와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언급함으로써 우리의 망각을 건드린다. 그가 들려주는 추억과 일화는 각각의 장소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잊힌 사람들을 되살려놓는다.


파리는 문학적 자취로 가득한 도시다.

보들레르, 그가 파리에서 살았던 서른 곳 넘는 거주지들을 돌아보자면 기진맥진해질 것이다. 제라르 드 네르발은 딱하게도 오직 한곳에 사로잡혔다. 비에유랑테른 길, 그곳에서 그는 검고 흰어느 겨울밤에 목을 맸다. 그 길은 이제 사라지고 없다. ‘테아트르 드 라 빌의 프롬프터용 구멍이 아마도 네르발이 목을 맨 창살창 자리였을 것이다. 보들레르의 말에 따르면 그는 아무도 방해하지 않고 은밀하게, 그가 찾을 수 있었던 가장 어두운 거리에서 자기 영혼을 풀어놓았다.


평생을 글과 책과 더불어 살아왔기에, 그의 기억들의 대부분은 문학과 연관되고, 파리는 문학적 자취가 가득한 도시로 그려진다. 카뮈네르발빅토르 위고보들레르스탕달로맹 가리자크 프레베르보리스 비앙샤토브리앙사르트르프루스트지드포크너헤밍웨이카렌 블릭센등 문학의 거장들이 대거 소환된다.

역사적 사건과 문학적 자취로 가득한 파리를 자신의 몸에 새긴 작가는 이 책의 출간 후 인터뷰에서 이렇게 문학과 삶, 그리고 망각에 대해서 기억해 둘 만한 이야기를 전한다.


나는 잊힐 만하지 않은 작가들이 망각되는 빠른 속도에 놀랐다. 루이 기유는 겨우 망각을 면했지만, 다른 이름들은 젊은 세대에게 아무 감흥을 주지 못한다. 이를테면 마르크 베르나르가 그렇고, 클로드 루아조차 요즘 사람들은 읽지 않는다. 30년 전에 타계한 작가들 가운데 로맹 가리와 알베르 카뮈 같은 몇몇 작가는 여전히 이론의 여지가 없는 명성을 누리고 있다. 그들이 우리의 기억 속에 살아남은 것은 비극적 운명 때문이 아닌지 모르겠다. 나는 이 책에서 이 모든 사람들에 대해 얘기한다. 그들의 문학적 자질과 무관하게 그들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이 망각은 아주 부당한 것이다.


파리지엥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알았고 사랑했으나 사라져버린 것을 찾는 데 일평생을 보낼 수 있다.”고 표현한 대로, 사랑했던 파리의 거리를 거닐며, 잊힌 사람들만남사건을 회상함으로써 우리의 망각을 다시 열어주는 로제 그르니에의 파리 기행. 새삼 그의 기억을 좇아 파리의 골목골목을 다시 걸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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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 살을 넘긴 한 사내가 아들에게 이야기한다. 그의 아들은 행복한 젊은이이다. 누나가 보기에는 행복해 보이는 동생이고 새엄마 눈에는 이제야 아버지로부터 벗어나 제 길을 찾아가는 아들이고 이웃들 눈에는 요즘 트렌드대로 자유롭게 사는 젊은이이다.

 

그런 아들과 불화하는 사람은 오로지 아버지 사뮈엘뿐이다. 서른여섯 살의 그 아들은 하릴없이 세계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아주 오랜만에 집에 다니러 온 참이다. 사실 사뮈엘이 불화하는 건 아들뿐만이 아니다. 하나뿐인 딸, 두 번째 아내 낭시, 가정부 다시미엔토 부인, 이혼한 첫 아내, 오랫동안 좋은 친구였던 아르튀르 등,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 중 절반 이상과 불화한다. 세상에 대한 자기만의 완고한 시선으로 옹골차게 불화한다.




물론, 그가 좋아하는 것도 있다. 자신의 전부인 정원, 단 한 시간이라도 뭔가에 홀린 상태로 살고 싶은 격렬한 감정, 조바심을 내며 욕망해야하는 삶, 목숨을 걸고 뭔가를 창조하고 싶은 기개, 바흐의 <푸가의 기법> 중 콘트라푼크투스 14, 그리고 삶의 마지막에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여인 주느비에브의 웃음소리.

 

그러나 매우 자주 그리고 지속적으로 시종일관 못마땅함을 드러내고 실망을 토로하고 한숨 쉬며 투덜거린다. 세속적인 성취에 무심한 채 유유자적 세상을 떠도는 아들도 마뜩찮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조간신문을 읽고 말리의 불법체류자들을 돕는다고 나서는 아내가 못마땅하며, 파리에 살면서 이스라엘에 아파트를 사고 유대인 트레킹 클럽에 가입하는 친구와 사위를 비난하고, 가정부 다시미엔토 부인과 자신은 계층이 다르다며 차별적인 발언을 겁내지 않는다. 그가 위악적으로 말하는 것뿐인지 실제로 괴팍하고 악한지 판단하는 것은 독자 몫이다.

 

다행스럽게도 독자가 판단할 상당한 근거들이 많다. 왜냐하면 이 소설은 오로지 이 남자의 말만 들려준다. 그는 아들에게 긴 이야기를 시작하고 혼자 170여 쪽 내내 떠들어대는 동안 아들은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는다. 그는 대답 없는 아들에게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중이다.


세상은 자기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어.


매일같이 그를 조여오는 세상에 대하여, 그 조여듦에 맞서 끊임없이 싸웠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시작부터 진 싸움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전쟁은 그게 어떤 거든 안락보다 우위에 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점차 영역을 넓혀가는 죽음에 관하여, 삶의 어떤 시기에 갑자기 닥치는 낙담에 대하여, 그것에 맞서 싸우기 위해 머리를 염색했다고 털어놓는다. 세상은 자기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다고, 한 사람의 고독과 또 한 사람의 고독을 연결하는 다리 같은 건 정말 드물다고, 욕망과 관계된 것은 모두 절박하고 무한하다고 엄살을 부리는 것도 불사한다.

 

그는 어떻게든 아들의 반응을 끌어내려 애쓰지만 아들의 눈 속에서 몰이해를 읽고 그 자신의 노쇠를 읽는다. 그래서 마음먹는다. 몇 십 년 만에 우연히 꽃 관련 행사장에서 만난,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가 사랑했던 여자 주느비에브에게 이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기로. 과연...

 

, 이 남자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은가? 먼저 이 남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삶을 바라보는 조금 다른 시선이 야기한 가족 안에서의 갈등과 불화를, 그로 인한 고독과 삶의 무상함을 작가 특유의 냉소와 풍자를 동원하여 흥미진진하게 변주한 소설이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 대한 비탄이 책 한 권을 채우고 있는데도 인간에 내재해있는 한계에 대한 냉정하고 암울하면서도 희극적인 시선이 우리의 마음을 흔든다.

 

<아트> <대학살의 신> 등의 희곡으로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프랑스의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야스미나 레자는 20대부터 몰리에르상로렌스 올리비에상토니상세자르상 등을 석권한 극작가답게, 주인공 사뮈엘의 긴 독백을 통해 삶이라는 실존적 코미디를 한 편의 연극처럼 소설로 펼쳐 보인다.



 

야스미나 레자는 1997년에 발표한 첫 소설 함머클라비어를 필두로 1999년에 이 작품 비탄, 2013년 현장감 있는 오늘날의 커플에 대한 고찰과 인간 조건의 탐색이 돋보이는 행복해서 행복한 사람들등을 발표했고, 2016년 필멸의 삶속에서 좌충우돌하는 인물들 간의 연대성에 주목하는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장 리노?로 르노도 상을 받았다. 그중 이 작품 비탄은 뮤진트리가 네 번째로 국내에 출간하는 레자의 소설로, 짧은 소설이지만 결코 작지 않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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