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인
이혁진 지음 / 민음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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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작년에 아빠가 새로 알게 된 작가들 중에 최고는 이혁진이라는 작가란다. <누운 배>를 통해 알게 된 다음, 그의 장편을 다 찾아 읽었단다. ‘라고 해 봤자 데뷔하신 지가 얼마 안 되어 권뿐이더구나..^^ 3권뿐이라서 아쉬웠지. 그런데 두어 달 전에 신간 소식 알림이 떴어. 그 책이 이번에 아빠가 읽은 <광인>이라는 소설이란다. 책 두께가 어마어마 하구나. 700페이지 가까이 되는 책인데,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책은 두께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는 책이었어. 한 번 잡은 책을 놓지 못하게 하는 재미가 있었단다. 아빠가 회사를 다니다 보니 평일에는 책을 읽는데 아무래도 제한이 있단다. 이 책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지만 다음날 출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잠이 들고 했어. 주말이 되자마자 남아 있는 페이지들을 한 자리에 앉아서 읽었단다.

전작들에서도 등장인물들의 심리 묘사를 잘 했는데, 이 책에서도 여전하구나. 그리고 이혁진 님의 소설의 장점은 기억하고 싶은 좋은 문구들이 책에 많이 실려 있다는 거야. 어떻게 그런 공감 가는 글들을 쉼 없이 쏟아낼 수 있는지 모르겠구나. 이따가 몇 개 소개해줄게. 한가지 아쉬웠다면, 소설의 뒷부분에 소설의 제목처럼 광인이 되어가는 등장인물이란다. 그가 그렇게 되어갈 수밖에 없는지 조금 이해가 가질 않았단다. 아빠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장면들이 있었어. 사람마다 제각각이니까 그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겠거니 하겠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아무튼 평범치는 않았지.

아빠가 이 소설을 너무 극찬한 것 같은데, 아빠가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다는 점, 알지? 이혁진 님의 그 전에 작품들을 좋아했던 아빠의 관점에 이번 <광인>이라는 소설을 이야기한 것이니까 말이야. 아참, 아빠의 기억력을 위해서 책의 내용은 거의 끝까지 다 이야기를 하는데, 스포일러를 방지하기 위해서 어디서 이야기를 끊어야 할지 고민 좀 해야겠구나.

 

1.

주인공은 41살의 싱글남 정해원. 41살의 싱글남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듣는 소리 중에 하나가 결혼이 아닐까 싶구나. 해원도 엄마의 결혼하라는 잔소리에 싫증을 내고 뭔가 새로운 것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오히려 들었어. 벽보에 붙은 플루트 레슨 광고를 우연히 보고 무작정 교습소로 갔단다. 그곳에는 권준연이라는 동년배로 보이는(알고 보니 한 살 적은 40) 권준연이라는 이가 있었어. 권준연은 가난한 작곡가이지만 생계를 위해서 레슨도 한다고 했어. 플루트 배우러 갔다가 플루트 가르치는 여자 선생님과 썸씽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나 싶었는데, 강사는 남자였구나.

준연은 상담 온 해연에게 대뜸 위스키를 하자고 해서 처음 만난 자리에 술을 같이 하고 금방 절친이 되었단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해연은 준연이 자신과 잘 맞는 친구라고 생각해서 오래된 친구처럼 느껴졌어. 그 이후 본격적으로 플루트 레슨을 받으면서 둘은 더 친해졌어. 준연이 엄마가 자궁암에 걸리셨는데 돈이 없어 걱정하는 모습에 해원은 선뜻 1000만원을 빌려주기도 했어. 해원은 그동안 직장 생활이 잘 풀려서 스톡옵션 등으로 큰 돈을 벌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단다.

어느날 준연은 고향 친구가 위스키를 직접 만들어 올 거라면서 같이 마시자고 했어. 고향 친구라고 하니, 그리고 위스키를 만든다고 하니 당연히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위스키를 들고 온 조하진이라는 사람은 여자였단다. 플루트 강사는 여자일 줄 알았는데 남자이고, 고향 친구는 남자일 줄 알았는데 여자이고.. 약간의 비틀림을 줌으로써 읽는 이로 하여금 긴장감을 갖게 했단다.

해원은 첫눈에 하진에 반했단다. 하지만 하진은 준연의 친구였고, 옆에서 보니 준연도 하진을 여자로 대하는 느낌이었어 해원은 준연을 둘도 없는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하진이 처음 보는 그 자리에서 그 완벽한 친구의 금이 가는 것이 느껴지더구나. 하진인 위스키 사업 때문에 당분간 서울에 머물러서 가끔씩 셋이 술자리를 했단다. 해원은 하진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거짓말도 하고 그랬어. 함께 대화를 나누다 보니 점점 하진의 매력에 빠지고 말았단다. 하진은 위스키 사업 설명 PPT를 만들었는데, 해원이 도와주었단다. 해원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 PPT는 많이 만들어봤거든. 하진에게 잘 보이려고 했던 해원은 퇴근하고 하고 PPT에만 매달렸지. 하진은 고맙다면서 술을 사겠다고 했는데 이때 처음으로 해원은 하진과 단 둘이 만났단다. 하진은 정말 스스럼 없이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다 했단다.

이 만남 이후 해원의 머릿속은 온통 하진뿐이었단다. 하지만 하진은 절친 준연이 좋아하는 친구라는 것에 해원을 괴롭혔어. 몇 번을 고민하던 해원은 결국 하진에게 고백을 했단다. 그리고 하진도 해원을 좋아하고 있었다면서 그 고백을 받아주고 둘은 사랑을 하기 시작했어. 해원은 이 사실을 준연에게도 이야기했고 준연도 속마음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겉으로는 축하해준다고 했단다. 하진에게 준연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하진에게 준연은 세상에서 가장 친한, 둘도 없는 친구였단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했던 죽마고우. 그건 하진이 해원과 사랑을 시작해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단다. 이것이 앞으로 이야기에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란다. 지금까지는 왜 소설 제목이 애인이 아닌 광인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단다. 하지만 앞으로는

 

2.

해원은 하진이 운영하는 시골에 있는 증류소를 찾아가 일도 도와주었단다. 시간 날 때마다 하진의 증류소를 찾아가고 가지 못할 때는 매일 전화하고….

그러던 어느날 암에 걸렸던 준연의 어머니가 결국 돌아가셨어. 준연의 어머니는 치료가 호전되어 시골집으로 내려가시고 얼마 후 돌아가신 것이라 예상치 못한 죽음이었단다. 알고 보니 준연의 어머니는 처방해 간 약을 하나도 드시지 않았어. 준연은 충격을 받고 무척 힘들어했단다. 장례식을 마치고 해원, 하진, 준연과 술을 먹었는데 힘들어 하는 준연은 자해까지 했단다. 그런 그를 하진은 자신이 옆에서 보살펴주겠다고 했어. 해원은 자신의 여자친구가 밤새 다른 남자와 함께 하겠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어. 몇 번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냐고 물었고, 하진 대신 자신이 준연 옆에 있겠다고 했지만, 하진의 뜻을 꺾을 수는 없었단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하진에게 준연은 둘도 없는 친구이고,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말이야.

해원도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그 때는 하진을 믿어주었어야 하지 않을까 싶구나. 장례식을 마친 준연은 어머니의 시골집에 내려갔어. 준연이 없어지자 해원은 하진과 둘만의 시간을 갖게 되어 좋아했단다. 하진은 위스키 투자자와 미팅도 가졌는데 큰돈을 대면서 사업하겠다고 하는 투자자도 있었어. 해원도 그 투자자의 제안을 들어보니 정말 좋은 계획이었어. 하지만, 하진은 그 투자자의 제안을 거절했단다. 이유는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과 맞지 않다는 거였어. 오랜 회사 생활로 인해 실적을 중요시 생각하는 해원에게 그 투자자의 제안은 둘도 없는 기회였는데 그것을 거절한 하진을 이해할 수 없어서 또 티격태격했어. 금방 화해를 하긴 했지만, 점점 부딪히는 일들이 많아졌어.

둘이 깊이 사랑할수록 둘은 서로 더 많이 알게 되어가고 그러면서 실망하는 모습도 보일 텐데,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해. 그런데 해원은 그때마다 이해하지 못하고 하진과 말다툼을 하는구나. 하진도 자존심이 세어서 해원의 말을 그냥 넘기지 못하고 맞부닥치고둘 다 나이가 마흔 살이 넘었는데 사랑도 여러 번 해봤을 텐데, 사랑의 초짜처럼 구는 것이 안타까웠단다. 그래서 그 때까지 혼자였던가, 싶기도 하고아무튼 해원은 하진을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정성 들여 편지와 꽃을 준비하여 하진에게 청혼을 했지만, 그 자리에서 거절당했단다. 그럴 줄 알았어. 하진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위스키 사업이었거든. 타이밍이 좋지 않았지. 하지만 해원은 굽히지 않고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결혼하자고 설득을 하려고 했어. 하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단다. 해원이 아직 하진을 잘 모르고 있구나. 하지만 나이 사십에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서 놓치고 싶지 않은 해원의 마음도 이해는 가는구나.

 

3.

준연은 시골집에서 돌아와 교습소를 그만두고 배달일을 했어. 준연이 다소 대책 없이 일을 관두고 또 다른 일은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 또한 해원은 좀 이해가 가길 않았단다. 오토바이에 익숙하지 않던 준연이 배달을 하다니.. 얼마 못가 교통사고가 났어. 이 일이 있자 곧바로 하진이 서울로 올라왔단다. 하진의 남자친구해원은 속이 끓겠지. 이젠 준연이 친구로 보이지 않으려고 했어. 그런데 며칠 뒤 하진이 이야기 하기를 준연이 자신의 증류소에게 일하기로 했다는구나. 해원은 이것만은 참을 수 없었어. 하지만 하진의 뜻을 꺾지 못하리라는 것도 알았어. 아빠 생각에는 하진이 이건 좀 너무 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애인이 있는데, 아무리 둘도 없는 친구라지만 이성인데, 단 둘이 그 시골집에서 지낸다고 하면 괜찮다고 할 남자친구가 얼마나 될까. 남자친구 생각도 좀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하진의 뜻을 꺾을 수 없다고 생각한 해원은 준연의 뜻을 꺾어보려고 준연을 찾아갔어. 해원은 준연에게 자신이 돈을 대 줄 테니 교습소를 다시 차려 보라고 했어. 제발 증류소에 가지 말라고 애원하고 설득했단다. 하지만 준연도 뜻을 굽히지 않았어. 준연도 잘못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같은 남자로서 해원이 왜 그러는지 이해를 할 것 같은데 말이야. 해원이 그렇게 애원하고 설득을 해도 준연이 하진의 증류소를 가겠다는 뜻은 증류소의 일보다 다른 마음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랑 똑같다고 생각해. 결국 해원은 큰 소리를 치게 되었고, 해원과 준연은 크게 말다툼을 했단다.

준연은 하진의 증류소에 내려가서 일을 하기 시작했어. 일만 한 것이 아니라 준연과 하진은 증류소를 배경으로 악기 연주도 하고 그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려 인기를 끌게 되었단다. 위스키와 듀엣 연주이 동영상들이 인기를 끌면서 대중들의 위스키에 대한 관심도 늘어났단다. 하지만 해원이 속은 새까맣게 타 들어갔어.

그렇지.. 아빠가 해원이라면 이쯤에서 끝냈을 것 같구나. 하진이 아직 해원을 좋아하고 남자친구로 생각을 하고 있지만, 이런 상황은 너무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구나. 해원은 이 모든 일의 원인의 제거하려고 했단다. 그렇다고 사람을 죽이고 그런 것은 아니야. 해원이 생각하기에 하진의 시골 증류소만 없어지면 될 것 같았어. 증류소야 자신이 다시 지어주면 될 거라 생각했지. 그것도 시골이 아닌 서울 근처에 말이야. 해원은 다음 완전 범죄를 하려고 눈이나 비오는 날에 몰래 가서 증류소만 불태워 없애려고 했단다. 괜히 맑은 날 일을 벌였다가는 증류소 뿐만 아니라 인근에 있는 산과 집까지 다 탈 수 있으니

하지만 해원이 준비를 한다고 했지만 그런 일을 해봤나. 예상치 못한 일들이 계속 벌어졌지. 눈이 많이 온 날 밤에 몰래 아무도 없는 증류소에 가서 불을 냈. 예상치 못한 증류소 폭발에 해원은 당황했단다. 증류소가 알코올 등 발화물질이 엄청 많았으니 그런 폭발이 있었던 거야. 해원은 당황하여 여기저기 증거물들을 다 떨어뜨리고 간신히 몸만 빠져 나왔단다. 증류소의 폭발과 강한 바람으로 인해 눈이 왔지만, 불은 무섭게 번져나갔단다. 인근 집들과 산이 모두 화마에 휩싸였어. 증거물을 남기고 온 해원은 그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단다. 화마가 다 쓸고 갔으니화재로 증류소를 잃어버린 하진은 망연자실하고 말도 하지 않으려고 했어. 엄청난 충격을 받았지. 해원은 하진에게 그 증류소가 자신의 생명보다 소중했다는 사실을 몰랐을까. 사랑에 눈에 멀었는데 그 사랑을 잃을까 봐 이성을 잃어버린 모습이 해원의 모습이었어.

 

4.

아빠가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서 이야기를 중간에서 끊는다고 했는데, 이쯤 그만 해야겠구나. 해원과 준연과 하진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해원은 자신이 계획했던 대로 완전범죄가 되었을까? 과연 누가 광인인가? 초반부의 잔잔한 우정과 사랑은 끝으로 갈수록 극단적인 전개가 이어진단다.

사실 소설 제목이 광인이었기 때문에 앞 부분에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이어질 때도 계속 불안감이 있었단다. 해원과 하진과 준연이 조금씩만 상대방을 이해해 주었다면 소설의 제목을 광인이라 하지 못했을 텐데 말이야. 지은이 이혁진 님께서 사랑의 극단을 보여주려고 하신 것 같구나. 그 부분은 평범한 삶을 지향하는 아빠로서는 좀 공감이 가지 않았지만, 그래도 재미 부분에서는 최고였단다. 이혁진 님의 전작 <사랑의 이해>가 이미 드라마로 만들어졌는데 이 소설 또한 영상화가 되지 않을까 싶구나. 드라마로 영화로 만들어지면 꼭 한번 봐야겠구나.

이 책에서는 등장인물들이 음악을 하다 보니 음악도 많이 소개되었단다. 아빠가 처음 들어보는 음악들이 대부분이었어. 아래 세 곡은 제목을 적어 두고, 유튜브로 들어보기도 했단다. 좋은 음악들도 알게 되어 좋았어.

‘Chega de Saudade’

‘Skating In Central Park’.

‘What are you doing the rest of your life’

아참, 아빠가 이 책에 좋은 문구들이 많아서 소개해 준다고 했지? 아빠가 발췌기를 통해 따로 정리한 것이 있는데 거기를 봐도 되긴 하는데 특히 좋은 구절은 여기에도 세 개 정도 소개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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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179)

친구와 연인이 다른 것 같지만 진실한 의미일 때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연인이란 내가 이성을 발견한 타인이었다. 친구란 내가 나 자신을 발견한 타인이었다. 친구는 나 자신처럼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연인은 이성으로서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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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6)

사랑은 인정이고 긍정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사랑이 죽음에 반항하는 방식이었다. 사랑하고 있을 때, 단지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것을 열렬히 실감할 때, 죽음은 단지 침묵에 불과해진다. 하진의 연주가 끝났을 때 들였던 그 의심도 두려움도 없고 외로움마저 없는 침묵. 사랑은 환상이나 감상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것 없이도 사랑은 이미 사랑이었고 절실히 필요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것만으로, 허기를 채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니까. 살아 있다는 걸 실감할 때 죽음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니까. 자식들이 커 간다는 그 실감 속에서 부모들이 다 그런 거지, 한마디로 자신들의 늙음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듯. 그 긍정, 인정이 슬프면서도 기쁜 것이듯 사랑도 기쁘고 그래서 슬펐다. 모두, 모든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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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6)

마음이라는 건 세면대 같아요. 거기엔 뭘 붓든 모두 한곳으로 흘러 들어가죠. 우리 자신이라는 그 구멍으로요. 하지만 그 구멍이 이어지는 곳은 결국 하수구, 하수도예요. 썩어 가고 악취를 풍기고 끈적거리고 질척거리는, 토악질 나는 것들밖에 없죠. 거긴 우리한테 묻은 더러운 걸 씻어 내는 데지 우릴 욱여넣어서 더러워지는 데가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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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제가 왜 이별은 싫어하면서 이별 노래는 좋아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책의 끝 문장: 노래는 끝난다.


거울에 비친 제 얼굴이 막걸리라면 그걸 그린 자화상은, 그나마 볼 만한, 증류식 소주 같은 거고 역사가 보리로 담근 발효주라면 소설은 그걸 증류한 위스키라고 할 수 있을 테죠. 히치콕이라는 영화감독도 비슷한 말을 했어요. 극(劇)이란 지루한 부분을 오려 낸 인생이다. 영화가 인생을 그대로 옮겨 놓기만 한 거라면 사람들이 왜 그걸 보고 있겠어요? 더럽게 지루한데다 매일 신물나게 보고 겪는 게 그건데요. 저처럼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죠. 창밖의 소리가 아무리 싱그럽고 청량해도 그걸 그대로 옮겨 놓은 건 음악이 아니라는 걸요. 반대로 아무리 비싼 악기로 만들어낸 것이라고 해도 낯설고 기이하기만 한,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감정과 무관한 소리들 역시 음악이 아니죠. 그건 그냥 악기로 만들어 낸 소음일 뿐이니까요. - P8

좋은 사람이란 그 한 사람만 있어도 살 만하다 생각이 드는 사람이죠. 싫은 사람이란 그냥 생각하기도 싫은, 결국엔 우리와 무관한 사람들일 뿐이고요. 제 생각에, 분명한 건 이거예요. 우리는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살 수는 있지만 싫어하는 사람을 위해 잘, 열심히 살 수는 없어요. 그게 우리가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이유고 그런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싫은 사람에게도 자지가 어떤 사람인지 드러낼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렇게 밑진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싫은 사람을 만나고 겪어 봐야 좋은 사람이 왜 좋고 어떻게 좋은지 알 수 있으니까요. 또 우리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요. 다만 싫은 사람은 대가고 좋은 사람은 목표죠. 좋은 사람, 싫은 사람이란 글자 수만 같을 뿐 사실 그렇게나 다른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 P27

압도적인 풍경을 볼 때 풍경과 그 풍경을 보고 있는 아주 작은 자신을 함께 지각하게 되는 것처럼, 침묵과 그 침묵을 드는 내가 거기에 있었다. 이전에 준연이 말했던, 음악이 끝나고 달라진다는 침묵이 바로 이런 것임을 나는 실감할 수 있었다. 무음이 아닌, 음악에 빗질이 된 것처럼 정갈하고 가지런한 고요함. 거긴엔 침묵이 주기 마련인 두려움도 의심도 없었다. 오직 파고들 듯 깊숙이 간직되는 환희만이 있었다. 연주회장에서 우리를 포효하듯 환호하게 하고 열렬히 박수치게 만드는 환희. 어쩌면 우리는 이런 침묵을 듣기 위해 음악을 듣는 건지도 몰랐다. - P67

하진의 말대로 그때는 몰랐다. 어렸기 때문에 모르는 건 많고 아는 건 적었지만, 생각은 늘 반대였다. 다 안다고, 내가 아는 걸 사람들은 모른다고 생각했다. 실상은 사람들이 아는 걸 내가 모르는 것이었는데, 뭔가를 안다는 건 나만 안다고 게 아니라 사람들이 아는 것보다 조금 더 안다는 뜻에 불과한데도. - P127

서로 다른 것 같지만 실은 하나로 이어져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준연이 말했다. 꿈과 이상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라고요. 현실과 반대라거나 동떨어진 거라고들 생각하지만, 꿈이나 이상이 없다면 현실은 점점 더 시궁창이 될 수밖에 없고 또 현실이 온전하지 않으면 꿈이나 이상도 건강할 수가 없잖아요. 가난하고 못살았기 때문에 다들 희석식 소주밖에 마실 게 없었고 그래서 술이라고 하면 그런 소주가 전부라고 생각했던 것처럼요. 더 나은 건 늘 있어요. 현실에 아직 없기 때문에 꿈이나 이상이라는 망원경으로 볼 수밖에 없을 뿐이죠. - P195

맞아. 배부른 소리야. 하지만 배가 부르니까 해야 하는 소리지. 배가 부르다고 만족할 수 없는 게 우리니까. 인간이란 먹고 살기 위한 존재에 그쳐지지가 않으니까. 우리한텐 좋은 술이 필요해. 좋은 집, 좋은 차, 외식도 하고 드레스도 입어야 돼. 그래야 ‘살았다’가 아니라 ‘살아 있다’고 느낄 수 있으니까, 먹고 살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으로, 인간답게 살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건, 남들보다 더 많이 먹고 마시는 게 아니라 더 좋은 걸 먹고 마실 때니까. 물론 없어도 먹고사는 데아무 지장 없지. 하지만 그것뿐이면 우리가 먹고살기만 하는 존재 같아지는 거야. - P270

이건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4번, 흔히 <월광 소나타>라고 하는 곡이에요. 들어 본 적 있어요? 준연이 말하며 비장한 느낌의 셋잇단음표를 연주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워낙 유명한 곡이었다. 준연이 나를 보고 말했다. 이건 죽음의 선율이에요. 다가오는 죽음, 피할 수 없는 죽음, 억울하고 비통한 죽음이죠. 제 마음대로 하는 말이 아니라 실제로 베토벤이 모차르트에게서 빌려 온 선율이에요. 모차르트 오페라에 그렇게 나오거든요. <돈 조반니>에서 기사단장이 살해당할 때 거의 똑 같은 선율이 현악으로 연주되죠. 그리고 베토벤도 이 곡을 쓸 무렵 청력을 상실해 가고 있었어요. 그런 음악가로서 죽음을 의미했죠. 역시나 다가오고 피할 수 없는, 억울하고 비통한 죽으미요. - P293

아버지가 말했다. 세상만사 다 길이 있는 법이다. 왜냐하면 다들 이렇게 길을, 누가 봐도 아무 쓸 데 없는 길을 뚫어 놓으니까. 이렇게 뚫어야 알뜰살뜰 여기저기서 기름칠해 주는 사람이 생기거든. 시키지 않아도 똥 치워 주는 사람들이 줄을 서고, 우습지. 크고 빳빳한 기름종이들 살랑살랑 흔들어 주면 다들 혓바닥 내밀 듯 손을 내밀지. 아버지는 나를 봤다. 인간이란 다들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죄 한두 개쯤은 지어 가면서 사는 거다. 어느 자리쯤 올라서면 짓지 않을 도리도 없고, 짓지 않을 이유도 없지. 감당할 수 있으니까. 감당이 되면 죄가 아니니까. 감칠맛이 돌지. 남들 다 하는 거 하면서, 지키라는 거 지켜 가면서 남들 안 볼 때 한번씩 혀를 낼름, 낼름해서 핥아 보는 그맛이 혀에 감겨서 잊히질 않거든. 그럴 때야 사는 거 같으니까, 사는 맛이 그거니까. 남들 못하는 걸 나만 할 때, 남들 모르게 나만 아는 걸 하는, 바로 그때. - P488

무엇을 사는지(購買)가 어떻게 사는지(生活)고 살 수 있는 능력이 살 수 있는 능력이다. 아버지는 톡톡 시가를 떨어 재떨이에 떨어진 재를 시가 끝으로 부쉈다. 그러고는 끄트머리를 세워 내게 보였다. 여기 있는, 요 타고 있는 까만 재, 이게 우리 인간이야. 그 가운데에 빨갛고 뜨거운 불이 세상이지, 불가에서 말하는 아수라. 아버지가 깊게 한 모금을 빨자 빠직거리며 담뱃잎이 타 들어갔다. 가운데가 빨갛게 환해졌다. - P500

사랑의 본연이 그런 것이기 때문에 사랑은 다른 사랑과 비교당하지도 평가당하지도 않았다. 가장 좋은 것, 값비싼 걸 해 주는 게 사랑이 아니니까, 최악을 지워 주고 최악이 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 모든 수고를 다해 마지막까지 같이 있어 주는 것으로 충분하니까, 같이 있어 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게 바로 사랑하는 사람의 의미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일 수 없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같이 있는 것만으로 충분한 사람이 된다는 건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 믿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뜻이니까. 그게 늘 하진에게 해 주지 못한 것, 그래서 매번 틀리고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사랑한다면서도 이해하는 만큼만 이해하고, 믿을 수 있는 만큼만 믿으려 했으니까. 그래서 그건 이해도 믿음도 아니었다. 알던 만큼만 아는 건 앎이 아니니까, 모르던 걸 아는 앎이니까. - P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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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쪽 강변에 완만하고 묵직한 자태로 뻗어나가고 있는 산줄기는 진초록으로 치장한 몸을 압록강에 그림자로 담그고 있었다. 느린 파도의 굽이침처럼 봉우리 봉우리를 이루어나가고 있는 그 긴 산줄기는 동쪽으로 가면서 점점 높아지고 억세지면서 그 모습을 아스라하게 감추고 있었다. 그 산줄기를 따라서 따라서 가면 이르게 되는 곳, 그곳이 백두산이었다. 그러니까 압록강 양쪽으로 뻗어내리고 있는 산줄기는 사방팔방으로 뻗치고 있는 백두산의 서쪽 일부 자태였고, 압록강 철교 부근에서 자취를 감추는 산줄기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드리워진 백두산의 머리카락 그 한오라기 끝이었던 것이다.

(14)


나남은 프랑스의 수도 파리식으로 꾸며졌다고 했다. 나남은 그야말로 군대가 중심이고 군이니 주인인 도시였다. 군사업무를 총괄하는 건물이 시가지 중앙에 크게 자리잡고 있었고, 바로 그 옆에 있는 원형공원을 중심으로 해서 일곱 개의 도로가 방사선으로 곧게 뻗어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도로들에서 다시 가지를 치며 다른 도로가 뻗어나가기도 했다. 나남은 억센 산줄기 많기로 유명한 함경북고의 산들로 에워싸여 있는 자연요새 같은 분지였다. 그 궁벽한 오지에 어찌 그리 멋들어진 서양식 건물들을 즐비하게 세워 도시를 이루어낸 것인지 양치성은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그런데 나남에서는 조선사람들의 집이라고는 기와집이든 초가집이든 간에 단 한 채도 찾을 수가 없었다. 온통 서양식 관공서들과 일본식 상점이나 집들로 차 있는 것을 양치성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군산이 개명한 줄 알았는데 군산은 나남에 댈 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의문은 한마디의 설명으로 쉽게 풀렸다. 일본군이 처음 나남에 주둔한 것은 노일전쟁이 끝나면서였고, 그때 나남은 조선사람들 30호 정도가 마을을 이루고 산 한촌이었다는 것이었다. 그 뒤로 10년 세월 동안에 순전히 일본사람들 손으로 새 도시가 꾸며졌으니 한옥이 있을 리 없었다.


(27)

나철은 유서 <순명삼조(殉命三條>를 통해 자신이 왜 목숨을 바치는지를 밝히고 있었다. 첫째 배달민족의 번성이 걸린 대교를 위해 죽는 것이며, 둘째 한배님의 은혜를 갚지 못한 죄로 한배님을 위해 죽는 것이며, 셋째 온 천하의 동포 형제자매가 암흑세상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대신 죽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계기로 하여 대종교가 더욱 번창하고, 그 힘으로 일본을 물리쳐 배달민족이 광명을 되찾기를 소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84)

동회는 향촌 어디에서나 저마다 운영하는 마을사람들의 모임이었다. 동네마다 당산나무가 있듯 동회가 없는 마을은 없었다. 동회에서는 마을을 위해 서로 힘을 모아야 하는 대소사에서부터 공동의 질서와 규율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모임이었다.

동네제사 날짜, 계모음, 두레와 품앗이 순서, 농로나 수로 보수의 부역, 명절놀이 계획, 예절과 풍기, 각종 부고, 남녀 품삯, 구휼 같은 것을 결정해서 서로서로 힘을 합쳐 돕고 마을이 화목하고 평온하게 유지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 여러가지 마을일들을 결정하는 기본이 되는 규범이 바로 향약이었다.


(109)

윤철운은 앉음새를 고치며 목례를 차리고는, “제가 동지들을 만나고자 한 뜻을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여기 연해주는 사태가 급박합니다. 일본군은 반혁명군인 백군을 지원하는 동시에 우리 조선 사람들을 회유하고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조선사람들이 택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적군을 지원하면서 일본군을 치는 빨치산투쟁을 전개하는 것입니다. 그건 소비에트 혁명을 돕는 길인 동시에 우리 조선을 위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일본군들을 연해주에서 몰아내야만 우리의 독립투쟁지를 회복하게 됩니다. 또한 우리가 혁명을 도와야 혁명이 완수되면 소비에트는 식민지 약소민족의 해방선언에 입각해 우리의 독립을 한층 더 적극적으로 돕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청년단을 조직했고, 단원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침 동지들이 오셨다기에 인사도 드릴 겸 해서 찾아뵌 것입니다.”


(120)

만주땅의 가을은 너무 짧아 9월로 접어들면서 며칠 간 가을빛이 스치는 것 같으면서 나뭇잎들이 와짝 단풍이 들었다. 그 단풍들도 며칠이 못가 낙엽 지며 10월의 문턱에서 얼음이 얼었다. 그리고 설한풍이 몰려오는 11월의 만주땅에 뜻밖의 열풍이 일어났다. 독립지사 39명의 이름으로 <대한독립선언서>가 발표된 것이었다. 그 독립선언서는 만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박은식 신채호 박규식을 대표로 하여 중국 전역을, 이동휘 이범윤 등을 대표로 하여 노령 일대를, 박용만 안창호 이승만을 대표로 하여 미주지역까지 포괄하는 그야말로 범민족적 대표성을 확보한 최초의 대한독립선언서였던 것이다. 1918 11 13일 터져오른 함성이었다. 사람들은 그 선언을 무오(戊午)독립선언이라고도 불렀다.


(135)

백관수 : ……오족(吾族)은 생존의 권리를 위하여 모든 자유행동을 수()하여 최후의 일인까지 자유를 위하여 열혈의 투쟁을 불사할 것이다. …… 일본이 만약 오족의 정당한 요구에 응치 않으면 오족은 일본에 대하여 영원히 혈전을 선언하겠다. …… ()에 오족은 일본 또는 세계 각국이 오족에게 민족자결의 기회를 부여할 것을 요구하여 만불성(萬不成)하면 오족은 생존을 위하여 자유행동을 취하여 오족의 독립을 기성(期成)할 것을 선언한다.


(203-204)

, 그 말언 맞구만요. 허나 독립단체라고 혀서 다 똑겉지가 않다는 것얼 명백허니 알아둬야 헐 것이구만요. 시방 독립운 단체덜언 서로 다른 두 가지 주의 주장을 내세우고 있는디, 그것이 무엇인고 허니 보황주의허고 공화주의로구만요. 요것이 무신 뜻이냐 허면 우리가 뺏긴 나라럴 되찾자고 독립투쟁얼 허기넌 허는디, 누구럴 위허는 어떤 나라럴 세울 것이야 허는 중대서럴 논허는 것이올시다. 다른 말로 복벽주의라고도 하는 보황주의넌 나라에 주인언 임금이니 독립운동도 임금얼 다시 받들기 위해 해햐 헌다는 것이고, 공화주의넌 그 반대로 나라에 주인언 백성이니 독립운동도 온 백성의 뜻얼 받드는 나라럴 세우기 위해 해야 헌다는 것이오. 우리 군정부에서넌 공화주의럴 내세우는 것이고, 아까 그 대한독립단언 복벽주의럴 내세움스로 여러분덜얼 끌어갈라고 헌 것이구만요. 그러니 쌈이 안 일어날 수가 있겄소?”


(213)

본국에서 3.1 만세가 일어나고 그 불길이 서간도로 옮겨붙자 북간도의 여러 단체들은 만세시위를 계획했다. 그 단체들은 대종교의 중광단, 기독교계의 간민회, 공자를 모시는 공교도, 성리교 단체 등이었다. 그들은 시위가 벌어진 그날 저녁 연길현 국자가에서 통일조직으로 조선독립기성회를 결성했다. 그리고 4월에 접어들어 명칭을 대한국민회로 바꾸면서 조직을 개편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기독교인들이 간부직을 장악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중광단에서는 그 사태를 묵과하지 않았다. 외래 종교에 대해서 비판적인 대종교들로서는 기독교인들의 그런 독주를 용납할 수 없었고, 또 그동안 많은 학교를 세우고 무오독립선언을 추진하는 등 북간도의 독립운동을 주도해 왔던 중광단의 명예를 지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래서 중광단은 5월에 대한국민회를 탈퇴하여 대한정의단을 결성한 것이다.


(219)

11월의 만주는 한겨울이었다. 북풍은 칼날이었고, 하늘도 땅도 다 얼어붙어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엮어내는 소문이나 소식들은 전혀 얼어붙을 줄을 모르고 싱싱하게 살아움직이고 있었다. 서간도의 군정부가 명칭을 바꾸었다는 소식이 전해져 왔다. 새로 붙인 이르이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라고 했다. 그 까닭인즉 상해임시정부에서 여운형을 파견하여 군정부도 상해임시정부에 통합해 줄 것을 요청했고, 군정부의 총재 이상룡은 하나의 민족이 두 개의 정부를 가져서야 되겠느냐고 간부들을 설득하여 <군정부>라는 명칭을 양보한 것이라 했다. 그것은 곧 상해임시정부를 유일 정부로 인정함과 아울러 그 위상을 높여주는 조처였던 것이다.


(249)

자아, 들어보시오. 신채호 선생은 성균관 학사가 되실 정도로 철저한 유학자셨오. 헌데 열강의 세력들이 우리나라에 뻗치면서 국운이 쇠퇴해가자 그분은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소. 나라를 바로세우기 위해서는 유학으로 안된다는 걸 깨달으신 것이오. 그래 구분은 애국계몽운동에 가담하면서 신문에 논설을 쓰는 논객으로 변모한 것이오. 그리고 을사조약으로 일본에 나라를 뺏길 것이 확실해지자 백성들을 일깨우고 힘을 주기 위해 을지문덕이며 이충무공의 전기를 짓기도 했오. 그러다가 왜놈들의 마수를 피해 독립운동을 펼치려고 만주로 망명했소. 만주에서 그분은 대종교도가 되셨소. 대종됴는 조국의 독립 실현을 목표로 삼는 단군신앙이었기 때문이오. 그리고 상해임정의 설립을 놓고 보황주의냐 공화주의냐로 국체논쟁이 치열하게 벌어졌을 때 공화주의를 가장 열렬하게 주장한 사람이 누군지 알지요? 바로 신채호 선생이시오. 보황주의자들은 수만 많았지 논쟁에서 신채호 선생을 이길 수 없으니까 어찌했소? 젊은이들을 시켜 감금까지 시켜가며 국체를 보황주의로 결정하려고 했소. 그러나 신채호 선생은 끝끝내 뜻을 굽히지 않았소. 신채호 선생 같은 분이 아니었더라면 임정은 국체를 공화주의로 내세우기가 어려웠을 것이오. 한마디로 말하자면 신채호 선생은 나라의 독립을 절대적인 목표로 세워놓고 일거일동을 그 수단으로 총동원하시는 거요. 이동휘 선생도 신채호 선생과 마찬가지라 생각하오.”


(250)

그러니까 그 문제도 복잡하고 어렵게 생각할 게 없소. 아까 말한 것과 똑같이 이해하면 되는 거요. 상해임정이야말로 최대 목표가 뭐겠소? 대한민국의 독립 아니겠소? 그 목표를 성취시키기 위해서 상해임정은 국체를 공화주의로 내세운 속에 복벽주의자 공화주의자 공산주의자 들이 연합을 이루고 있는 것이오. 그 연합은 아주 중요한 문제고, 소중한 결실인 것이오. 그런데 그렇게 주의 주장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정부를 이룬 것은, 내가 알기로는 이 세상에 하나도 없소. 임정 요인들은 독립을 달성시켜야 하는 우리의 특수 상황을 이해해서 서로가 양보하고 인내해 가며 세계에서 유일한 성격의 정부를 탄생시킨 것이오. 그 불가능한 일을 해내자니 오랜 논쟁을 거친 것은 당연한 일이오. 그런데 총독부의 왜놈들은 그 건설적인 논쟁을 조선놈들의 고질적인 파당싸움이니, 지방색을 드러낸 파벌싸움이니 했다는 것이오. 그건 임정이 설립되는 것을 무엇보다 싫어했던 왜놈들이 고의적이고 악질적으로 임정을 모함하고 헐뜯으려고 지껄여대는 소리요. 그리고 왜놈들한테는 군국주의 하나밖에 없으니까 못하는 야만인들이오. 다시 말해 임정의 연합은 독립운동 방책의 시범이고 모범을 보인 것이라는 점을 여러분들은 잘 이해해야 할 것이오. 다들 그렇게 이해가 됩니까?”


(286)

그 노랫소리는 금방 독립군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많은 목소리들이 그 노랫소리에 합해졌다.


기다리던 독립전쟁 돌아왔다네


노랫소리는 모든 독립군들의 마음을 끌어잡으며 뒤흔들고 있었다. 노래는 마침내 합창이 되었다.


           이때를 기다리고 십년 동안데

           갈았던 날랜 칼을 시험할 날이

           나아가세 대한민국 독립군사야

           자유독립 광복함이 오늘이로다

           정의의 태극 깃발 날리는 곳에

           적의 군대 낙엽같이 쓰러지리라


           탄환이 빗발같이 퍼붓더라도

           창과 칼이 네 앞을 가로막아도

           대한의 용장한 독립군사야

           나아가고 나아가고 다시 나아가라

           최후의 네 핏방울 떨어지는 날

           최후의 네 살점이 떨어지는 날

           네 그리던 조상나라 다시 살리라

           네 그리던 자유꽃이 다시 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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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장자수업 2 - 밀쳐진 삶을 위한 찬가 강신주의 장자수업 2
강신주 지음 / EBS BOOKS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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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얼마 전에 읽은 <강신주의 장자수업> 1권에 이어서 오늘은 2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줄게. 장자에 관한 책을 읽을수록 늘 느끼는 거지만, 장자는 일반적인 관념을 깨는 그런 사람인 것 같더구나. 보통 동양 철학자 중에 맹자를 혁명가에 어울린다고들 하는데, 장자의 사상 또한 관념과 상식을 깨는 측면에서 봤을 때 혁명가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구나. 1권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누가 쓸모 없음을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겠니. 2권에서도 그렇게 일반적인 상식과 다르게 생각하는데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장자의 사상들이 계속 나온단다. 아빠가 기억력이 안 좋아서 자꾸 잊혀져서 문제지만 말이야

장자의 이야기 속에 장자는 장자로 나오는 언급되는 경우도 있지만, 장주라고 하는 경우도 있단다. 장주는 장자의 본명이야. 장자(莊子)에서 ()’는 공자, 맹자, 노자와 마찬가지로 선생님이라는 의미가 있는 것이란다. 그러니까 장자는 장 선생님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면 돼.

..            

우리가 한 곳에 정신을 팔리면 자신을 잊는 경우가 있단다. 이것은 일상생활에서도 많이 경험할 수 있지. 재미있는 텔레비전을 보거나 게임에 열중하다 보면, 옆에서 부르는 소리를 못 들을 수도 있잖니. 우리가 한 곳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 위험한 상황을 인지하지 못 하면 그 위험이 그대로 닥칠 수가 있어. 이런 점을 경계하는 글이 장자의 조릉 이야기에서 나온단다. 그늘에 정신 팔린 매미를 사마귀가 노리고 있고, 매미에 정신 팔린 사마귀를 까치가 노리고 있고, 까치에 정신 팔린 사마귀를 장주가 노리고 있는 상황이란다. 그렇다면 정신 팔린 장주를 노리는 무엇인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장주는 이내 정신을 차리게 되는 거지. 역시나 까치를 쫓아 경계선을 넘어 온 자신을 보게 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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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40)

장주가 대답했다. “지금까지 나는 드러난 것을 지키며 나 자신을 잊으려 했고, 혼탁한 물을 보며 맑은 연못에 매료되어 있었다. 게다가 나는 선생님으로부터 이미 그 사회에 들어가서는 그곳의 규칙을 따르라고 하신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얼마 전 조릉에서 노닐 때 나는 나 자신을 잊었다. 기이한 까치가 이마를 스치고 날아들었을 때 나는 밤나무 숲에서 노닐며 나의 실제상황을 잊었다. 아니나 다를까, 밤나무 숲을 지키던 사냥터 관리인은 나를 범죄자로 여겼다. 이것이 내가 마음이 편하지 않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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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빠가 얼마 전부터 사진 찍는 것을 꺼려하게 되더구나. 언제 생겼는지 모를 주름과 흰 머리. 낯선 아빠의 모습. 그러면서 떠오르는 젊은 시절의 얼굴. 아빠의 마음을 읽었는지 이 책에서 아빠에게 가르침을 주는구나. 사라진 젊음을 생각하지 말라고 하는구나. 지나가고 사라진 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지금의 삶을 허비하는 것이라고, 젊음은 없어진 것이 아니고, 지금 중년의 삶이 생겨난 것이라고 말이야. 세상에는 없음은 없고, 오직 있음만 있다고생각의 차이로구나.  그 문구를 읽고 나서 가끔씩 셀카를 찍어본단다. , 아직 괜찮군.. 하면서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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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어쨌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긍정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주변에 존재하는 사람이나 사물 혹은 사건들과 제대로 관계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겁니다. 자신감을 상실한 그는 집 밖으로 나가기를 피할 테니까요.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면, 그래서 타자나 사건과 마주치지 않는다면, 그래서 타자나 사건과 마주치지 않는다면, 그는 새로운 삶을 만들 수 없습니다. 50대 중년은 20대의 젊음에 집착하느라 지금 여기(now & here)’ 50대의 삶을 허비하고 있는 겁니다.<대종사> 편의 현해 이야기가 이 중년에게 힘이 될지도 모릅니다. 세상에는 없는 것은 없고 오직 있음만 있다는 걸 가르쳐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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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에는 늙음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또 있는데 맹손재 이야기에서도 늙음과 죽음을 다루고 있단다. 여기서는 늙음을 젊음의 부재로, 죽음을 삶의 부재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 이야기한단다. 늙음을 젊음의 부재가 아닌 늙음 그 자체로 생각하라고, 유목민님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생활을 하므로 집에 소유와 정착이라는 개념이 없단다. 이곳에서 생활하다가 저곳에서 생활하고젊음과 늙음 또한 마찬가지라는 거야. 잠깐 젊음이라는 집에서 생활하다가 늙음이라는 집에서 생활하는 거지. 죽음 또한 삶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죽음이라는 집이라는 거야. 장자의 말씀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쉽지가 않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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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

젊은 내가 나이고, 사지가 멀쩡한 내가 나이고, 살아 있는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게 바로 장자가 말한 헛된 꿈입니다. 이런 자의식은 늙음을 젊음의 부재로, 불구가 정상의 부재로, 죽음을 삶의 부재로 느끼게 됩니다. 늙음은 늙음으로, 불구는 불구로, 그리고 죽음은 죽음으로 긍정해야 합니다. 물론 젊음을 늙음의 부재로, 정상을 불구의 부재로, 삶을 죽음의 부재로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젊음은 젊음으로, 정상은 정상으로, 삶은 삶으로 긍정해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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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이런 식으로 생각하니, 죽기 전에 제자들에게 장자는 자신의 장례식도 유목민처럼 풍장(風葬)으로 지내라고 했단다. 제자들이 까마귀가 선생님을 쪼아먹을까 두렵다 하니, 제자들이 더 이상 반박하지 못할 말씀을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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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

장자가 곧 죽으려 할 때, 제자들은 장례를 후하게 치르려고 했다.

장자가 말했다. “나는 하늘과 땅을 관곽으로, 해와 달을 한쌍의 옥으로, 별들을 다양한 구슬로, 그리고 만물을 부장품으로 생각하고 있네. 내 장례용품에 어찌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있겠는가? 무엇을 여기에 더 보태려 하는가!”

제자들이 말했다. “저희는 까마귀나 솔개가 선생님을 쪼아 먹을까 두렵기만 합니다.”

장자가 말했다. “땅 위에서는 까마귀와 솔개의 먹이가 되고, 땅 밑에서는 땅강아지와 개미의 먹이가 되는 것이네. 그런데 까마귀와 솔개의 먹이를 빼앗아 땅강아지나 개미에 주려고 허니, 어찌 이렇게도 편파적인가!”  <열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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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 중에 유명한 것 중에 당랑거철(螳螂拒轍)이라는 이야기가 있단다. 수레가 지나가는데 사마귀가 앞발을 들고 수레를 상대하려고 했다는 이야기 자신의 분수를 모르고 강한 상대에 덤벼드는 무모한 행동을 이 한자성어로 빗대어 말하곤 한단다. 그런데 아빠는 그 거대한 수레의 맞짱 뜨는 사마귀의 용기에도 박수를 한번 보내주고 싶구나. 무모하지만 도전하는 자세, 나쁘지 않다고지은이 강신주는 장자 또한 사마귀였을지 모른다고 이야기하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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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어쩌면 장자도 수레와 맞서던 사마귀였는지도 모릅니다. 폭주하는 전거와 그것이 남긴 바퀴 자국 바깥에 거대한 초원과 우거진 산림이 있다는 걸 아는 순간, 장자는 대붕이 됩니다. 물론 그곳에서도 위험은 존재하지만, 그것은 여유와 당당함으로 충분히 살아낼 수 있는 정도입니다. 국가를 너무 과대평가하지 말고, 폭풍우나 산불 혹은 맹금 정도로 보아야 합니다. 천하로 상징되는 국가 질서쯤은 가볍게 날아 넘어가는 대붕의 길입니다. 바퀴 자국에도 잠시 머물고, 수레 위에도 잠시 머물고, 아니면 끝이 보이지 않는 먼 어딘가에도 머물 수 있는 대붕입니다. 수레에 잠시 날아든 대붕은 타인을 자유롭게 만들 수 없다는 걸 압니다. 그저 자유로운 삶을 보여주며 그들이 자유를 결단하기를 바랄 뿐! 잠시 뒤 대붕은 그 광막한 초원으로 바람만 남긴 채 날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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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에서도 여러 달인들의 이야기가 있었는데 2권에서도 <재경 이야기>에 달인 목수 재경이 등장한단다. 악기받침대를 단순히 악기만 잘 받쳐주면 되지만, 재경이 만든 악기받침대는 예술이 되어 악기보다 더 주목을 받는단다. 재경이 이런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것은 나무라는 대상과 재경 사이에 아무런 간섭 없이 하나가 되어 그런 작품이 나올 수 있었다고 하는구나. 사람과 사람 사이도 마찬가지라고 하는구나. 사랑하는 사이라면 둘 사이에 아무 간섭 없이 둘이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고 말이야. 이 또한 공감 가는 이야기로구나.

장자가 속세를 떠나 살았다고 하지만, 그를 등용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란다. 초나라 군주가 장자를 등용하려고 한 적이 있어. 장자는 무작정 거절한 것이 아니고, 거북이의 예를 들어 초나라 군주가 다시 제안하지 못하게 했더구나. 거북이가 화려한 비단보에 싸여 화려한 방 안과 진흙탕 속 중에 어디서 살고 싶겠냐고 하면서 말이야. 장자 같은 자유로운 영혼이 어떤 체제에 들어온다면, 병이 생기지 않을까 싶구나. 새는 가두지 않는 법. 더욱이 장자는 엄청나게 큰 대붕이잖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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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

장자가 복수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다. 초나라 왕은 두 사람의 대부(大夫)를 먼저 보내 그에게 말을 전했다. ‘국가 안의 모든 일을 선생에게 맡기고자 합니다!’ 장자는 낚싯대를 쥐고 돌아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초나라에 죽은 지 이미 3000년이나 된 신령한 거북이 있는데, 왕이 이것을 상자에 넣고 비단보에 싸서 묘당(廟堂) 안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고 내가 들었습니다. 이 거북은 죽어서 뼈를 남겨 귀하게 되기를 원했을까요, 아니면 차라리 살아서 진흙탕 속에서 꼬리를 끌며 다니기를 원했을까요?’ 두 사람의 대부는 말했다. ‘차라리 살아서 진흙탕 속에서 꼬리를 끌며 다니기를 원했을 테지요.’ 장자가 말했다. ‘그만 돌아가시오! 나는 앞으로도 진흙탕 속에서 꼬리를 끌며 다닐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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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에 나오는 또 유명한 한자성어 중에 조삼모사(朝三暮四)가 있단다. 원숭이들에게 주는 도토리를 아침에 3, 저녁에 4개를 주겠다고 하자 원숭이들이 화를 나면서 난리를 쳤고, 그래서 아침에 4, 저녁에 3개를 주겠다고 하자, 원숭이들이 군말 없이 좋다고 했다는 일화를 통해 보통 우둔한 사람을 빗대어 하는 말이란다. 그런데 지은이 강신주 님은 2000년 넘게 사람들이 조삼모사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하시더구나. 이 일화는 주인이 원숭이들을 사랑해서 부족해진 식량에 대한 배분에 대한 고민이 담긴 이야기라고 했어. 주인의 마음대로 음식을 배분하는 것이 아니고 원숭이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배분 방식을 결정하는 것이라고, 상대방 또는 아랫사람과 어떻게 소통하는지, 소통의 방식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말이야. 그렇다면 앞으로 조삼모사라는 한자성어는 소통을 잘 하는 사람에게 써야 하나? 먼저 이 이야기를 잘 설명해서 상대방이 기분상하지 않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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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생각하기에 <장자>의 이야기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호접몽(胡蝶夢)’이라고 하는 나비의 꿈이 아닌가 싶구나. 나비의 꿈을 꾸고 나서, 문득 혹시 지금의 이 생활이 나비가 꾸고 있는 꿈은 아닌가 생각하는 것이야. 오래 전에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 어쩌면 그것이 사실일 수도 있고 말이야. 우리의 삶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 많으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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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1)

옛날 장주는 나비가 된 꿈을 꾸었다. 훨훨 나는 나비였고 스스로 유쾌하고 기분이 좋았기에 자신이 장주라는 걸 알지도 못했다. 갑자기 깨어나니 분명히 장주였다. 장주가 나비가 된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아비가 장주가 된 꿈을 꾸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장주와 나비 사이에는 반드시 구분이 있다. 이것을 타자와 함께 변화한다.(物化)’고 말한다.     <제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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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장자 이야기에 대해서 해보았는데, 장자 이야기의 핵심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자유란다. 자유라는 것이 지금의 테두리 안에서 벗어나서 자유롭게 떠나는 것이 자유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누군가에는 테두리 안에 머물고 있는 것도 자유란다. 사실 아빠도 머무는 자유가 더 좋긴 하구나. 그래도 가끔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도 있고 말이야. 유목민처럼 머물고 싶을 때 머물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나는 그런 자유가 진정한 자유라고 지은이 강신주 님이 말씀하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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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366)

떠날 수 있는 힘! 장자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자유의 소중한 의미입니다. 국가에서도, 회사에서도, 가정에서도, 심지어 우리 자신의 삶에서마저 우리는 떠날 수 있습니다. 떠나면 불행할 것 같고, 떠나면 살지 못할 것 같고, 떠나면 외로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떠나본 적 없는 불행한 영혼들의 착각입니다. 떠나서 행복할 수 있고, 떠나서 살 수 있고, 떠나서 새로운 누군가와 든든할 수 있으니까요. 물론 강박적으로 떠나야 한다는 건 아닙니다. 떠날 수도 있지만 머무는 것도 진정한 자유의 또 다른 의미니까요. 그래서 자유인의 머물기는 가치가 있는 겁니다. 억지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머물고 싶어서 머무는 것이니까요. 자유롭게 떠나고 자유롭게 머뭅니다. 그래서 자유인의 거동은 여러모로 유목민과 유사합니다. 유목민이 어딘가를 떠났다면 그는 그곳에서 기쁨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그가 어느 곳에 머물고 있다면 그곳의 풀들이, 바람들이, 물들이, 구름들이, 그리고 석양의 장관이 그를 행복하게 했기 때문일 겁니다. 자신이 삶의 주인일 수 있는 곳, 자신에게 충만한 삶의 뿌듯함을 안겨주는 곳에서 자유인은 머물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체의 불만과 투정도 없이 그냥 쿨하게 떠나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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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장자수업 끝.


PS,

책의 첫 문장: 내가 누군가 귀가 밝다고 말한 것은 그가 특정한 저것의 소리를 듣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가 스스로 듣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책의 끝 문장: 개골개골!


불교에서 인간은 부처를 숭배해야 하지만 동시에 인간도 부처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원칙적으로 부처의 눈으로 보아야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눈으로 볼 수도 있다는 가르침, 종교로서는 정말 개운치 않은 종교가 불교입니다. 분명한 것은, 승려들에게 복이 있으려면 중생들은 부처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아야 한다는 겁니다. 자기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면, 중생들이 사찰을 찾아 시주할 일도 없을 테니까요. 모든 사람이 부처가 되면 붕괴되는 종교! 탄생할 때부터 그 내부에 시한폭탄을 장착했던 종교! 그것이 불교입니다. 시한폭탄의 초침이 돌아가고 있다는 긴박감 때문인지, 종교성과 함께하는 불교의 인문성은 더 극적인 데가 있습니다. - P15

공수가 선을 그리면 양각기와 곱자에 부합했고, 그의 손가락은 사물에 따라 변할 뿐 마음으로 헤아리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의 영재(靈臺)는 하나로 통일되어 있지만 막혀 있지는 않았던 것이다. 우리가 발을 잊는 것은 신발에 딱 맞은 것이고, 허리를 잊는 것은 허리띠에 딱 맞는 것이다. 앎에서 옳고 그름을 잊는 것은 마음에 딱 맞는 것이고, 내면의 변화도 없고 외부 사람의 말을 따르지 않는 것은 마주친 사태에 딱 맞는 것이다. 처음으로 딱 맞았지만 일찍이 딱 맞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느끼는 것은 딱 맞음의 잊음에 딱 맞는 것이다. <달생> - P85

장자에게 ‘허(虛)’, ‘상(喪)’, 혹은 ‘망(忘)’ 등은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 세 개념은 모두 마음을 대상으로 합니다. 마음을 비우고, 마음을 잃어버리고, 마음을 잊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불교를 제외하고 동서양 사유의 전통과는 어딘가 이질적인 주장입니다. - P87

예(羿)는 아주 작은 표적이라도 활로 맞추는 데 능숙했지만, 사람들이 자기를 찬양하지 않도록 하는 데는 서툴렀다. 성인은 ‘자연적인 것(天)’에 능숙했지만, ‘인위적인 것(人)’에는 서툴다. 자연적인 것에도 능숙하고 인위적인 것에도 잘 대처하는 것은 오직 ‘완전한 인간(全人)’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오직 벌레만이 벌레일 수 있고, 오직 벌레여야 자연적일 수 있다. 완전한 인간은 자연적인 것을 싫어한다. 사람들이 자신을 자연적이라고 여기는 것도 싫어하는데, ‘나는 자연적인가? 아니면 인위적인가?’라는 의문에 대해서는 말해 무엇하겠는가! <경상초> - P203

젊은 내가 나이고, 사지가 멀쩡한 내가 나이고, 살아 있는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게 바로 장자가 말한 헛된 꿈입니다. 이런 자의식은 늙음을 젊음의 부재로, 불구가 정상의 부재로, 죽음을 삶의 부재로 느끼게 됩니다. 늙음은 늙음으로, 불구는 불구로, 그리고 죽음은 죽음으로 긍정해야 합니다. 물론 젊음을 늙음의 부재로, 정상을 불구의 부재로, 삶을 죽음의 부재로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젊음은 젊음으로, 정상은 정상으로, 삶은 삶으로 긍정해야 하니까요. - P229

<제물론>편 여희 이야기에서 장자는 "단지 크게 깨어날 때만, 우리는 큰 꿈을 꾸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20여 년 동안 지속되었던 장자꿈에 대한 최종 보고서를 마무리하는 날, 애틋함과 아련함이 교차하는 작은 느낌마저 상쾌한 바람으로 씻어보는 날입니다. 안녕! 장자! "지금까지 나는 장자가 된 꿈을 꾸었다. 자유롭게 당당한 장자였고 스스로 유쾌하고 기분이 좋았기에 자신이 나라는 걸 알지도 못했다. 갑자기 깨어나니 분명히 나였다. 내가 장자가 된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장자가 내가 된 꿈을 꾸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와 장자 사이에는 반드시 구분이 있다. 이것을 ‘타자와 함께 변화한다’고 말한다." - P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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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대부분의 용어는 어원만 제대로 알아도 의미를 거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금융도 마찬가지예요. 금융은 한자로 금 금()자 녹일 융()자를 써요. 여기서의 금은 광물 금(gold)이라기보다 돈을 뜻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융의 경우 좁게는 녹인다는 뜻이지만, 크게는 기존과 다른 상태로 변화한다는 의미에서 융합’, ‘융통성등에 쓰이는 한자고요.


(33)

저축은행은 이익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일반 회사에 가깝습니다. 웬만한 사람들은 이 차이를 모르지만 구분할 필요가 있어요. 은행인지 아닌지에 따라 문제가 생겼을 때 구제받을 수 있는 범위가 다르거든요. 은행은 사회 공익적인 업무를 일부 담당하는 만큼 국가로부터 각종 혜택을 받습니다. 대신 관리 감독을 열심히 받아야 하고요. 은행 아닌 금융기관에는 그런 혜택을 주지 않는 대신 규제를 좀 더 느슨하게 적용하죠. 아무튼 이처럼 우리 주변엔 은행이 아닌 금융기관이 생각보다 많고, 보험사도 그중 하나예요.


(99)

금본위제 사회에선 거래가 이뤄질 때마다 비싼 금을 일일이 다 싸들고 다녀야 했으니 위험하고 비효율적이었거든요. 그래서 은행에 금을 넣어두고 금 보관증을 받아 지폐처럼 사용하는 방식이 자연스레 발달한 거예요.

지폐가 있으면 금이 일상에서 사용할 만큼 충분하지 않다는 문제도 해결됩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은행이 금고에 보관 중인 금보다 더 많은 액수의 지폐를 발행하면 돼요. 실제로 금본위제 당시 영국 중앙은행이 보관하고 있던 금의 양은 실제 유통되는 지폐의 액면가액보다 훨씬 적었습니다.


(103)

결국 본위제는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던 거죠. 시장 규모는 점점 커지는데 금과 은의 양은 한정돼 있으니 말입니다. 화폐를 새로 찍기 위해서는 광산을 뚫어 금은을 더 캐거나 국가와 가계, 기업이 금은 생산량에 맞춰 씀씀이를 줄이는 수밖에 없는데 현실적으로 둘 다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경제의 중심이 된 미국이 금 실물을 화폐와 연동하는 일을 시도했습니다만 결국에는 한계를 느껴 포기하게 되죠.


(242-243)

실제로 당시 미국이 보유한 금은 세계 곳곳에 뿌려진 달러화와 교환해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었습니다. 결국 1971년 미국 대통령 닉슨은 달러와 금의 교환을 전면 중단한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했어요. 금과 달러의 연약한 고리가 마침내 끊어진 거죠. 모두가 금 교환증이라 믿었던 미국의 달러화를 포함해 전 세계의 통화는 이때부터 한낱 종이쪼가리로 전락할 가능성을 안게 됩니다. 돈과 금을 영원히 결별하게 만든 이 사건을 닉슨쇼크라고 합니다.


(252)

미국은 어떻게 해서든 달러의 지위를 지키려 하고, 중국은 달러화 대신 위안화로 석유 결제가 되도록 페트로위안 시스템을 만들려는 시도를 하면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죠.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통화, 즉 기축통화를 발생하는 나라가 누릴 수 있는 막대한 정치, 경제적 이익 때문입니다.


(276)

게다가 일본 정부가 발행한 국채는 대부분 자국 내에서 소화되고 있습니다. 사실 이 부분이 대단히 중요해요. 만약 일본 국채를 해외에서 많이 샀더라면 이미 국가 부도 사태로 이어졌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는 족족 일본 중앙은행을 비롯해 보험, 연기금 등이 대부분 사들이고 있어요. 쉽게 말해 일본 기관들의 자금을 정부가 매해 국채를 통해 빨아들이면서 다시 예산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288)

나는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지만 인간의 광기는 측정할 수 없다.

 - 아이작 뉴턴(추정)


(350)

예를 들어 지금의 A사의 주식이 7만 원이라고 칩시다. 증권사를 통해 익명의 누군가에게 7만 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빌린 주식이니까 나중에 사서 갚아야겠지요? 이틀 뒤에 A사 주식이 4만 원으로 폭락할 때 주식을 다시 사서 빌린 사람에게 갚습니다. 4만 원의 지출이 생긴 거죠. 그럼 주식 한 주를 빌려서 팔고, 나중에 빌린 주식을 갚는 것뿐인데도 7만 원 -4만원=3만원의 차액을 얻을 수 있어요. 이런 방식으로 시세차익을 노리는 게 공매도입니다.


(417-418)

그렇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돈은 인간의 욕망에 이끌려 더 큰 이익을 가져다주기 위해 여러 금융자산 사이로 쉴 새 없이 이동하고 있습니다. 결국 돈은 미래의 이익을 어느 정도로, 그리고 얼마나 안정적으로 가져다줄 것인가에 따라 움직입니다. 우리는 앞서 은행, 보험, 채권, 환율, 주식, 펀드, 암호화폐 등이 각자의 방식대로 작동하는 동시에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걸 배웠죠. 물길이 더 낮고 깊은 곳으로 흐르기 마련인 것처럼 돈은 언제나 더 안전하고 더 많은 이익을 주는 곳으로 끊임없이 이동합니다. 이것이 바로 금융의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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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중국사람들은 만주의 조선사람들을 <메기>라고 불렀다. 한사코 물가를 찾아가 논을 일구기 때문에 붙인 별명이었다. 그런 별명을 붙여 놀리는 것은 중국사람들이 마음의 여유를 찾았다는 표시이기도 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중국사람들은 조선사람들이 만주로 건너오는 것을 노골적으로 싫어했다. 자기네들의 농토가 줄어들까봐 갖게 된 적대감이었다. 그런데 조선사람들은 밭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저 물 가까운 습지나 저지를 찾아다니며 논을 일구어냈던 것이다. 그러자 밭농사밖에 지을 줄 모르는 중국사람들은 마음이 편안해진 것이었다.


(102)

신세호는 또 신비스러운 변화에 경이감을 느끼며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밤이면 이슬이 내리면서 안개가 끼고, 아침에 해가 뜨면 안개가 걷히는 것은 하나도 새로울 것이 없었다. 그리고 언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을 뿐이었다. 그러나 신세호는 그 범상 속에 감추어진 자연의 오묘한 신비와 경이를 갈수록 새롭게 느끼고 있었다. 해의 그 무한한 생명력과 창조력을 새로운 깊이로 생각하게 되고, 만상의 생성과 소멸을 다시금 음미하게 되고, 삶의 소중함과 자연의 고마움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고…… 손수 농사를 짓게 되면서부터 눈과 마음이 더 깊고 넓게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138)

일본관리들이 조선말을 강습받고 조선으로 건너왔고, 그들이 조선말을 익히려고 애쓴다는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래서 이삼 년 전부터는 함부로 욕을 할 수도 없게 되었다. 그러나 관리가 아닌 군인이 더듬거리지도 않고 그렇게 유창하게 조선말을 하는 것을 보고 공허는 새삼스럽게 나라 잃어버린 것을 절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국경지역이라 특별히 조선말을 잘하는 자들을 골라서 배치했다 하더라도 그 충격은 가벼워지지 않았다. 나라를 빼앗긴 세월은 그렇게 해마다 달라져 가며 조선사람들의 마음까지 빼앗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143)

마적떼는 장사꾼들한테만 걱정거리가 아니라 만주땅에 흩어져 사는 모든 동포들을 괴롭히고 위협하는 몹시 흉포한 도둑떼들이었다. 그 마적떼들이 갈수록 불어난다는 것은 왜놈들의 세력이 커지는 것이나 다를 것이 없었다. 마적떼들이 동포들의 마을을 기습해서 생명을 살해하고 재산을 약탈하는 것은 그만큼 독립투쟁의 힘을 약화시키고, 따라서 왜놈들을 도와주는 결과가 되는 것이었다.


(183-184)

나도 무식헌 놈이제만 용석이허고 한고향 동무고 헝께 한마디만 허겄소. 남정네덜이 날마동 땡볕 속이서 일허는 기운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겄소? 하로 세 끄니 밥 지대로 챙겨묵는 디서 나오는 것이요. 아까 밥 한 끄니가 머시가 그리 중허냐고 혔는디, 고것이야 우리겉이 몸띵이 하나 부려감서 묵고 사는 사람덜헌티넌 중허고말고라. 거그서 말허는 것 찬찬이 듣자닝게 이승만 박사가 허는 일언 중허고, 우리겉이 몸띵이 굴리는 일언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 말인디, 그 말언 앞뒤가 안 맞는 것이 잘못 되야도 아주 잘못된 말이오. 이승만 박사가 핵교럴 세우고, 잡지럴 내고, 묵고 살고 허는 돈은 다 어디서 나온 것입디여? 하늘서 떨어졌소 땅에서 솟았소? 그 한푼, 한푼이 다 우리 겉은 무식쟁이 농사꾼덜이 사시장철 땡볕 속에서 살가죽이 타들고 뼉다구가 녹아내리게 일혀서 아까운지 몰르고 성금으로 낸 돈이다 그것이오. 막말로 우리가 눈 딱 감고 성금 안 내불먼 판이 어찌 되는지 알기나 허요? 그놈에 핵교고 잡지고 머시고 다 문 닫아걸어야 된다 그것이오. 근디도 이승만 박사가 허는 일만 장허고 우리 겉은 사람이 허는 일언 쥐조도 아닝게……”

방영근은 여기서 멈칫했다. 말을 하다보니 성질이  돋아서 자신도 모르게 상소리가 튀어나왔던 것이다. 그러나 방영근은 에라 모르겠다 싶어 내처 말을 해나갔다.

서방 밥얼 굶겨도 괜찮허다 그런 말인갑는디, 고것만언 어디다가 내놔도 편들 사람 하나또 없구만이라. 이승만 박사라고 편들어 주겄소?”


(186)

그즈음에 이승만은 자신이 펴내는 <태평양> 잡지에 박용만이 이끌고 있는 국민군단을 맹렬히 비난해대고 있었다. 그런 소수의 병력으로 일본 세력을 물리친다는 것은 전혀 가망이 없는 철부지한 짓이며 허황된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박용만은 불필요한 일을 시작해 동포들이 피땀 흘려 번 돈으로 비축한 국민회의 경비를 탕진하고 있다. 조선의 독립을 그런 가망없는 짓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먼저 무식한 동포들을 교육시켜 독립할 준비를 해나가는 동시에 대국인 미국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므로 국민군단은 마땅히 해산시켜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187)

그런 이승만의 공격을 받고 박용만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박용만은 국민회의에서 발간하는 <신한국보>를 통해서 이승만의 비방에 맞서고 나섰다. 우리가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것이 조선백성들이 무식해서인가 아니면 나라의 무력이 약해서인가. 그런 재론의 여지도 없이 나라의 무력이 허약했기 때문이다. 나라의 힘은 왜 약해졌는가. 나라를 다스리는 벼슬아치들이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층층이 부패하고 타락하면서 국고를 탕진하고 가렴주구를 일삼았기 때문이다. 이런 부동의 엄연한 사실을 두고 망국의 책임을 어찌하여 백성의 무식함으로 돌리려 하는가. 또한 나라를 되찾는 데 있어서 백성이 무식해서 안된다는 말은 절대 용납되지 않는다. 저 치욕의 을사보호조약 직후부터 전국토에서 불길처럼 일어난 의병들을 보라. 그들 중에 유식한 양반들이 더 많았던가. 무식한 백성들이 더 많았던가. 무식한 백성들이 열 배가 더 많았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바이며, 끝까지 싸우다 죽어간 사람들도 무식한 백성들이었음을 하늘이 다 아는 바이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백성의 무식함을 탓할 것인가. 그리고 또 직시할 바가 있다. 무력을 휘두르는 자들은 무력이 아니고서는 물리칠 수가 없다는 천고의 진리를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왜놈의 무력 앞에 무력으로 맞서지 않고는 나라를 되찾을 그 어떠한 방도도 없다. 무식한 동포들을 교육시켜 가면서 독립을 준비하자고 하나, 교육이란 하루이틀에 되는 것이 아닐 뿐더더, 우리가 교육으로 허송세월을 하고 있는 동안에 왜놈들은 우리 동포들의 피를 빨아 더욱 강대해질 뿐이며 우리 동포들은 핍박 속에서 갈수로 허약해질 뿐이다. 또한, 우리가 동포들을 교육시켜 모두가 유식해진 10년이고 20년 후에 그때 가서 왜놈들과 학식으로 겨루자고 할 것인가. 물론 교육은 중요하다. 그러나 교육이 조국의 독립을 위한 최선의 방책일 수는 없다. 무력을 양성하면서 동시에 교육을 실시해 나가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힘을 빌려 독립을 하겠다 함인데, 이것이야말로 얼마나 허황된 망상인가. 우리와 일본은 원수지간이지만 미국과 일본은 원수지간이 아니며, 우리에게 독립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지만 미국에게 조선의 독립은 강 건너 불일 뿐이다. 미국은 일본과 사이가 나빠지지 않는 범위 내에서 우리에게 약간은 협조를 할지 모르지만, 전적으로 미국의 힘을 빌려 독립을 하겠다 함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몽상일 뿐이다. 그리고 끝으로 밝히는 바는, 국민군단은 훈련소 낙성식을 최종으로 하여 더 이상 동포들의 혈전(血錢)을 모금하지 않게 되었다. 모든 병사들이 이미 확보된 파인애플농장에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훈련받는 노고 속에서 자립을 구축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231)

고무신바람에 들린 것은 특히 여자들이었고, 여자들 중에서도 처녀들이었다. 한 마을에서 고무신을 신은 사람은 한둘에 지나지 않았다. 그 새로 나온 희한한 물건은 값이 너무 비싸 부자가 아니고서는 가질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그 귀한 물건은 그야말로 남자 여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의 관심거리였고 구경거리였다. 그 누구나 고무신을 손에 쥐었다 하면 이리저리 매만져보고, 엎어서 밑바닥을 보고, 고개를 돌려가며 코 안을 들여다보고, 주인의 눈길을 피해 잡아늘여 보고 하는 것이었다. 그 말랑말랑하고 보들보들하고 매끈하게 생긴 고무신을 신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324-325)

늙은 거지는 깨진 바가지를 끌어다가 발 굵은 소금을 손가락끝으로 집어 입에 털어놓고는 어험 큼큼 목청을 다듬었다.

짜아 시구시구 들어가는디이, 어얼 시구시구 들어간다아 저얼 시구시구 들어간다아, 어절시구 들어간다아 저절시구 들어간다아, 푼파바 푼파바 자리헌다아 푸부품파 자리헌다아, 어허이 작년에 왔든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어절 시구시구 들어간다아 저리절 시구시구 들어간다아, 일자나 한자나 들고나 봐아 일본놈에 시상 되어 10년 세월 다 돼가니, 이자나 한자나 들고나 보니 이 시상이 지옥살이 2천만이 통곡헌다, 삼자나 한자나 들고나 봐야 3천리라 금수강산 토지조사로 묶어놓고, 사자나 한자나 들고나 보니 4년이고 5년이고 땅뺏기에 혈안이라, 오자나 한자나 들고아 봐아, 오지겄다 왜놈덜어 그 맛이 꿀맛이겄다, 푼파바 푼파바 자리헌다아 푸부품과 자리헌다아, 어얼 시구시구 들어간다아 저얼 시구시구 들어간다아, 품바 품바 들어간다아, 육자나 한자나 들고나 봐야 육십 영감 분통터져 감나무에 먹얼 매고, 칠자나 한자나 들고나 보니 칠십 할멈 절통혀서 저수지에 뛰어드네, 팔자나 한자나 들고나 봐아 팔자에 없는 만주살이 떠나는 이 그 누군가, 구자나 한자나 들고나 보니 구만리 장천에 기러기도 슬피 우네, 십자나 한자나 들고나 보세 10년이야 넘겄느냐 왜놈덜아 두고 보자, 어허 품바 자리헌다.”


(339)

수전민족이 왜 부지런하고 끈질긴 기질을 가졌으며 대체로 영리한가? 그건 바로 논농사의 특성과 맞통하고 있는 문제인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논농사의 특이한 점을 먼저 파악하면 조센징의 그런 기질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겁니다. 봅시다, 논농사는 밭농사와는 정반대로 물이 없으면 지을 수가 없는 농사입니다. 또한, 농사를 짓기 이전에 농토를 조성할 때부터 논과 밭은 어떻게 다른지를 비교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처녀지나 미간지를 논과 밭으로 개간할 때, 밭은 수목을 뽑아내고 잡초뿌리를 캐내고 돌이나 자갈들을 골라내면 바로 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논의 경우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밭과 똑 같은 과정을 거쳐 개간을 하고 나서도 일은 또 남아 있습니다. 그건 바로 물 때문입니다. 가까운 개울이나 강에서 물을 끌어들일 수 있는 수로를 또 파야 하고, 물을 논에 가두기 위해 논둑을 튼튼하게 쌓아야 하고, 수량을 조절하기 위해 도량을 빼야 합니다. 이 사실만 가지고도 밭 개간에 비해 논 개간이 훨씬 더 힘이 든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농사를 짓게 되면 논농사는 밭농사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일이 많아지게 됩니다. 그것 또한 물 때문입니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비가 안 오면 안 오는 대로 잠시도 등한히 할 수 없는 것이 수전농사입니다. 왜냐하면 비가 많이 오면 벼가 침수되어 상하고, 비가 안 오면 땅이 메말라 벼들이 고사하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가 많이 오면 침수를 막기 위해 자다가도 일어나 논에 나가는 것이 수전농민들입니다. , 적기에 비가 내리지 않으면 농민들은 벼가 말라죽지 않게 하려고 들녘에서 며칠씩 밤을 새우며 물을 퍼올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홍수가 지지 않고 가뭄이 들지 않은 보통 때에도 벼가 자라는 것에 따라 수량을 조절해 줘야 하기 때문에 농부들은 아침저녁으로 논을 살피며 물꼬를 트고 막고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객토니 모내기니 하는 다른 자세한 것들은 생략하고 이런 점들만 대출 살펴보더라도 논농사가 밭농사보다도 얼마나 더 신경이 쓰이고 힘이 드는 것인지는 농사 경험이 없는 여러분들도 능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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