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조천리 김해 김씨의 젊은 반역아 집단을 대표하는 최초의 인물은 솔뫼 김명식과 목우 김문준이었다. 솔뫼는 이론가였고 목우는 현장 활동가였다. 처음에는 서울의 같은 단체에서 함께 일하던 두 젊은이는 곧 헤어져 한 사람은 서울, 다른 한 사람은 일본 오사카로 활동 영역을 달리했다. 김명식은 <동아일보> 창간 역원이면서 1면의 논설란을 거의 전담하다시피 한 열정적인 논객이었다. 자유가 무엇이고 평등이 무엇인지, 제국주의가 무엇인지, 루소와 몽테스키외가 누구이고 맑스가 누구인지 아는 이가 별로 없던 그 시절에 그 시절에 그의 논설은 새로운 사상에 목마른 청년들에게 특히 인기가 있었다. 나중에 신문사를 떠나 정치조직운동에 투신한 그는 조선 최초의 사회주의 필화사건을 일으켜 세간의 이목을 모은 바 있었다. 그 사건으로 투옥된 그는 모진 고문과 옥독(獄毒)으로 병을 얻어 형기 중간에 출감했지만, 이미 몸은 형편없이 망가져 반신불수에 청각장애인이 되어 있었다.


(271-272)

면장을 마을 밖으로 내친 시위대는 예순살의 원로 김시범 선생을 모시고 동쪽으로 일주도로변에 위치한 만세동산으로 행진해갔다. 기미년 3.1만세운동 때 올라 만세를 불렀던 동산에 그 운동의 주역으로 징역살이를 한 김시범 선생을 모시고 오른 조천리민들의 가슴에는 참으로 만감이 교차했다. 조천리의 모든 항일운동의 원천은 만세동산이었고, 항일로 점철된 마을의 수난사는 언제나 그들의 자부심이었다. 그런 만세동산에서 만세 소리가 다시 터져나온 것이다. 만세동산의 남쪽 사면을 빈틈없이 뒤덮은 군중은 강풍 맞은 대숲처럼 다 함께 온몸을 흔들면서 열렬하게 만세를 불렀다. 이십육년 만에 터져나오는 조선 독립 만세였다. 열세살 창세도, 열여섯살 행필도 땅에 두 발을 쿵쿵 구르면서 목이 쉬도록 소리쳤다. 일제에 의해 억눌렸던 땅, 그 땅에서 기운이 솟아올라 그들의 몸에 넘쳐오르는 것 같았다. 온 세상, 온 우주가 환희로 가득 찬 느낌이었다. 한층 가깝게 다가온 한라산을 향하여, 그 아래 질펀하게 펼쳐진 푸른 들판을 향하여, 저 푸른 희망을 향하여 함성을 지르고 또 질렀다. 휑하니 비어 있는 일주도로 또한 밝은 미래를 향한 새로운 질주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조선 독립 만세!


(295-296)

우리 삼팔선이 그어진 중도 몰랐수다. 전쟁 중에 정신없이 살아서…… 시모노세키 항구에서 출국심사하는 맥아더 사령부 미군이 우리한테 물읍디다. 북조선으로 가겠느냐, 남조선으로 가겠느냐고. 허 참! 북조선, 남조선이라니, 난생처음 듣는 말 아니우꽈? 그래서 물어십주. 거 무슨 말이냐고, 북조선은 뭐고 남조선은 뭐냐고 하니까 삼팔선이 그어졌다는 거라예. , 그것참!”

그래서 모두 이구동성으로 말해십주. ‘우린 남도 아니고 북도 아니고, 제주도로 가겠다!’ 하고.”


(327-328)

조천리민 여러분! 그동안 우리가 나라를 빼앗기고 얼마나 고생이 많았수과? 얼마나 많은 피눈물을 흘렸수과? 부모 없는 설움보다 나라 없는 설움이 더 컸수다. 왜 놈들한테 당한 일을 생각하면 참말로 치가 떨립니다. 멸시당하고 매 맞고…… 아아, 그러나 이제는 해방이우다. 압제의 굴레에서 풀려났수다. 여러분, 고맙수다. 이 기쁜 자리에 우리를 불러 이렇게 축하해주시니 참말로 고맙수다. 하지만 우리가 축하받기 전에 먼저 생각해야 할 어른님들이 있수다. 극악무도한 살인적, 강도적 일본제국주의와 싸우다가 해방을 보지 못한 채 돌아가신 순국열사, 우리 마을 조천리가 낳은 영웅들, 그분들을 먼저 생각하면서 애도를 표합시다!”


(333)

청년 여러분, 지난날을 생각하면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저 악독한 왜놈들을 위해 종노릇한 일을 생각하면 참으로 지긋지긋해여마씸. 식민지 청년이란 얼마나 가난하고 누추하고 비굴한 존재였수과? 우리는 채찍 맞아 돌아가는 팽이처럼 날이면 날마다 매 맞고 구박을 당해야만 했수다. 그러나 이제는 해방이우다. 압제의 족쇄와 쇠사슬이 풀리고 해방이 왔수다. 금방 안세훈 선생님의 말씀, 참말로 옳은 말씀이우다. 이제 청년의 시대입니다. 우리의 시대란 말이우다!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375)

일제의 극심한 압박에 짓눌렸던 제주 사회는 일본군이 떠나자 도처에 신생의 기운이 넘쳐흘렀다. 사방 초목도 억압에서 벗어난 듯 더욱 푸르고 푸른 바다, 푸른 하늘도 새로운 빛으로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밭마다 돌담 안에 가득 실린 조 이삭들이 탐스럽게 자라 풍작을 기약하고 있었고, 알뜨르, 진뜨르 비행장도 농토로 복구하여 주인에게 돌려주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었다. 전분 공장, 단추 공장, 방직 공장이 작업을 재개했고, 공습으로 파괴된 주정 공장은 복구 중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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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5 - 제2부 민족혼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조정래 님의 아리랑 5권을 이야기해줄게. 송수익 일행은 만주에 정착하게 되잖아. 우리 백성들은 어디를 가나 논을 일구는 능력자들이란다. 만주에는 버려진 황무지 같은 땅이 많았는데, 중국 사람들은 끽해야 밭이나 일구고 그랬어. 그런데 우리 백성들은 그곳에 논을 일구었단다. 물을 끌어들여야 하기 때문에 논을 일구는 것이 훨씬 힘든 일이야. 그래서 중국 사람들은 조선사람들은 메기라는 부르기도 했대. 부작용은 그렇게 논으로 일구고 나니 중국 땅주인이 뒤늦게 나타나서 소작하겠다고 큰소리를 쳤으니 우리 백성들은 또 얼마나 가슴 아팠겠니.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이 중국 땅주인과 잘 협상하는 것뿐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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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중국사람들은 만주의 조선사람들을 <메기>라고 불렀다. 한사코 물가를 찾아가 논을 일구기 때문에 붙인 별명이었다. 그런 별명을 붙여 놀리는 것은 중국사람들이 마음의 여유를 찾았다는 표시이기도 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중국사람들은 조선사람들이 만주로 건너오는 것을 노골적으로 싫어했다. 자기네들의 농토가 줄어들까봐 갖게 된 적대감이었다. 그런데 조선사람들은 밭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저 물 가까운 습지나 저지를 찾아다니며 논을 일구어냈던 것이다. 그러자 밭농사밖에 지을 줄 모르는 중국사람들은 마음이 편안해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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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 땅으로 많은 조선사람들이 넘어오고, 중국 땅이 독립운동의 본거지가 되다 보니, 일제도 독립군을 색출하려는 밀정들을 만주로 보냈단다. 그래서 송수익 일행도 새로 정착하려는 사람들에 대해 철저히 조사를 했단다.

이번에는 죽산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이야기해줄게. 4권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죽산면의 땅은 일본인 농장주 하시모토와 죽산면 면장 백종두가 서로 땅을 차지하려고 보이지 않는 싸움이 있었다고 했잖아. 하시모토는 군산부청에서 일하는 쓰지무라 과장을 찾아가 몰래 백종두의 비리를 고자질했단다. 백종두가 쓰지무라 과장의 이름을 팔아서 권력을 휘두르고 다닌다고 했어. 그렇게 해서 땅을 사들이고 정미소를 지어서 미곡을 독점한다고 했단다. 쓰지무라는 자신의 이름을 판다는 이야기를 듣고 화가 났지. 쓰지무라는 당장 백종두를 파면시켰단다. 백종두는 하루아침에 이유도 제대로 모르고 죽산면 면장에서 쫓겨났단다. 그의 더 높은 꿈이었던 군수 자리는 날라가는 것처럼 보였어. 백종두는 면장에서 쫓겨난 이유를 몰랐기 때문에 친하다고 생각하는 일본인들인 하시모토와 쓰지마루를 찾아가 도와달라고 했단다. 그들이 자신을 자른 것도 모른 채 말이야. 꼴 좋더구나.

..

토지조사사업은 거의 다 되었단다. 땅을 빼앗긴 이들은 억울함을 호소해도 알아봐주는 이는 없고, 업무집행 방해로 감옥에 가거나 태형을 맞을 뿐이었어. 그 중에 감옥에 갔던 박병진이라는 사람이 있었잖아결국 박병진은 감옥에서 죽고 말았단다. 박병진의 아들 박건식은 슬픔을 뒤로 하고, 아버지의 유언이나 마찬가지인 자신의 땅을 되찾기 위해 계속 노력했단다.

일제는 독립군 색출하는데 밀정을 심는다고 했는데, 조선인 노동자들 사이에도 바람잡이를 심어 놓고 몰래 의병 활동하는 이들을 색출했단다. 그런 인간 중에 서무룡이라는 자가 있어. 서무룡은 원래 방대근과 함께 부두에서 일하던 노동자였는데, 완전치 일제의 하수인이 되었지. 서무룡이 방대근의 누나인 수국이를 좋아했는데, 방대근 가족들이 모두 만주로 도망을 가버렸잖아.. 그런데 결혼했던 보름이 누나만 국내에 있단다. 손판석 아저씨 가게로 왔다고 했잖아. 기억나지? 그런 보름이를 서무룡이 보고 자신의 마음에 그리던 수국인줄 알고 깜짝 놀랐단다. 보름이와 수국은 자매로 꼭 닮았거든. 이때부터 서무룡은 보름이에게 연정을 품고 매일 같이 찾아왔단다. 그런데 순사가 된 장칠문도 보름이를 보고 반해서 흑심을 품게 되었단다. , 이 나쁜 놈들

보름이만 불쌍하구나. 만주가 너무나 먼 곳이라서 혼자 갈 수도 없고결국 보름이는 장칠문에게 겁탈을 당하고 만단다. 그렇게 보름이는 장칠문의 첩이 된단다. 그러자 어느날은 장칠문의 아내가 보름이를 찾아와 마구 폭행을 했단다. 그리고 서무룡은 수국이에 이어서 보름이까지 빼앗기자 엄청 화를 냈고, 장칠문을 죽일 기회만 노리고 있었단다. 그래 둘이 치고 박고 둘 다 죽어라. 장칠문은 자신의 첩이 예쁘다고 자랑하고 싶었어. 일본인 경찰 계장에게도 자랑을 했는데, 바보 같으니일본인 경찰 계장이 이번에는 보름이를 눈독 들였고, 보름이를 차지하기 위해 장칠문을 오지 중에 오지로 발령 보냈단다. 결국 장칠문은 보름이를 일본인 계장에게 넘기고 오지에 안 갈 수 있었단다.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지은이 조정래 님께서 보름이를 너무 불쌍하게 만드시는구나. 보름이가 경찰 계장에서 넘어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서무룡은 복수 리스트에 경찰 계장도 추가했어. 그리고 자신이 더 힘을 갖는 것은 싸움패가 만드는 것이라 생각했어. 서무룡이 싸움 하나는 타고 났거든. 그래서 서무룡은 부두일을 그만두고 싸움패의 오야붕이 되었단다. 서무룡은 일본 헌병과도 친해져서 줄을 잇게 되었단다.

 

1.

한편, 신세호는 자신의 딸 하엽과 송수익의 아들 중원을 결혼시키려고 했단다. 친구인 송수익이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고 있는데, 자신은 국내에 편히 있다는 죄책감도 있고, 애들이 어렸을 때 크면 결혼시키자는 약속도 있었어. 신세호가 이 일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단다.

3권에서 나왔던 우체국장 하야가와의 양아들이었던 양치성 기억나니? 양치성은 일본 유학과 일본 정보 학교를 마치고 순사보가 되었단다. 양치성은 신세호를 찾아와 송수식이 어디 있는지 협박조로 물어왔어. 신세호는 송수익이 의병활동 하다가 죽었다고 했단다. 양치성은 계속 신세호를 감시했고, 송중원과 신하엽의 결혼식도 방해했단다. 하지만, 신세호가 잘 대응하여 송중원과 신하엽은 결혼을 하게 된단다.

….

이번에는 하와이의 일을 이야기해줄게. 질투의 화신이자 열등감 만땅인 이승만은 국민회와 국민군단을 이끌었던 박용만을 헐뜯었단다. 온갖 거짓으로 기사를 써댔어. 참 비열한 사람이 아닐 수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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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

그즈음에 이승만은 자신이 펴내는 <태평양> 잡지에 박용만이 이끌고 있는 국민군단을 맹렬히 비난해대고 있었다. 그런 소수의 병력으로 일본 세력을 물리친다는 것은 전혀 가망이 없는 철부지한 짓이며 허황된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박용만은 불필요한 일을 시작해 동포들이 피땀 흘려 번 돈으로 비축한 국민회의 경비를 탕진하고 있다. 조선의 독립을 그런 가망없는 짓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먼저 무식한 동포들을 교육시켜 독립할 준비를 해나가는 동시에 대국인 미국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므로 국민군단은 마땅히 해산시켜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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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이라는 이 작자는 정말 기회주의자이자 이기주의자 인 것 같구나. 이런 이승만을 빠는 영화가 얼마 전에 개봉했다고 하는데, 역사 공부를 제대로 했다면 그런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싶구나. 정말이지 부끄럽기 그지없구나. 박용만은 독립군 양성을 위해 힘써야 하는 시간으로 바쁜데, 이승만의 비난에 대해 반박을 해야 했단다. 그래야 하와이에 있는 동포들이 이승만의 거짓에 넘어가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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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

그런 이승만의 공격을 받고 박용만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박용만은 국민회의에서 발간하는 <신한국보>를 통해서 이승만의 비방에 맞서고 나섰다. 우리가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것이 조선백성들이 무식해서인가 아니면 나라의 무력이 약해서인가. 그런 재론의 여지도 없이 나라의 무력이 허약했기 때문이다. 나라의 힘은 왜 약해졌는가. 나라를 다스리는 벼슬아치들이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층층이 부패하고 타락하면서 국고를 탕진하고 가렴주구를 일삼았기 때문이다. 이런 부동의 엄연한 사실을 두고 망국의 책임을 어찌하여 백성의 무식함으로 돌리려 하는가. 또한 나라를 되찾는 데 있어서 백성이 무식해서 안된다는 말은 절대 용납되지 않는다. 저 치욕의 을사보호조약 직후부터 전국토에서 불길처럼 일어난 의병들을 보라. 그들 중에 유식한 양반들이 더 많았던가. 무식한 백성들이 더 많았던가. 무식한 백성들이 열 배가 더 많았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바이며, 끝까지 싸우다 죽어간 사람들도 무식한 백성들이었음을 하늘이 다 아는 바이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백성의 무식함을 탓할 것인가. 그리고 또 직시할 바가 있다. 무력을 휘두르는 자들은 무력이 아니고서는 물리칠 수가 없다는 천고의 진리를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왜놈의 무력 앞에 무력으로 맞서지 않고는 나라를 되찾을 그 어떠한 방도도 없다. 무식한 동포들을 교육시켜 가면서 독립을 준비하자고 하나, 교육이란 하루이틀에 되는 것이 아닐 뿐더더, 우리가 교육으로 허송세월을 하고 있는 동안에 왜놈들은 우리 동포들의 피를 빨아 더욱 강대해질 뿐이며 우리 동포들은 핍박 속에서 갈수로 허약해질 뿐이다. 또한, 우리가 동포들을 교육시켜 모두가 유식해진 10년이고 20년 후에 그때 가서 왜놈들과 학식으로 겨루자고 할 것인가. 물론 교육은 중요하다. 그러나 교육이 조국의 독립을 위한 최선의 방책일 수는 없다. 무력을 양성하면서 동시에 교육을 실시해 나가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힘을 빌려 독립을 하겠다 함인데, 이것이야말로 얼마나 허황된 망상인가. 우리와 일본은 원수지간이지만 미국과 일본은 원수지간이 아니며, 우리에게 독립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지만 미국에게 조선의 독립은 강 건너 불일 뿐이다. 미국은 일본과 사이가 나빠지지 않는 범위 내에서 우리에게 약간은 협조를 할지 모르지만, 전적으로 미국의 힘을 빌려 독립을 하겠다 함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몽상일 뿐이다. 그리고 끝으로 밝히는 바는, 국민군단은 훈련소 낙성식을 최종으로 하여 더 이상 동포들의 혈전(血錢)을 모금하지 않게 되었다. 모든 병사들이 이미 확보된 파인애플농장에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훈련받는 노고 속에서 자립을 구축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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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미 이승만이라는 미꾸라지로 인해 하와이뿐만 아니라 미국의 동포사회는 혼란에 빠졌어. 아마 이승만은 이걸 노렸을 거야. 결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던 안창호까지 하와이까지 와서 중재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단다. 이승만이 이런 사람이었단다. 남용석과 결혼한 말녀도 이승만을 돕는 일을 했는데, 집안일은 젖혀 두고 이승만 비서로만 일을 했단다. 이 일로 남용석과 말녀의 부부싸움은 끊이질 않았어. 남용석과 말녀의 결혼을 중재해주었던 방영근은 미안할 뿐이었지. 방대근이 말녀에게 따끔하게 충고를 해도 말을 듣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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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184)

나도 무식헌 놈이제만 용석이허고 한고향 동무고 헝께 한마디만 허겄소. 남정네덜이 날마동 땡볕 속이서 일허는 기운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겄소? 하로 세 끄니 밥 지대로 챙겨묵는 디서 나오는 것이요. 아까 밥 한 끄니가 머시가 그리 중허냐고 혔는디, 고것이야 우리겉이 몸띵이 하나 부려감서 묵고 사는 사람덜헌티넌 중허고말고라. 거그서 말허는 것 찬찬이 듣자닝게 이승만 박사가 허는 일언 중허고, 우리겉이 몸띵이 굴리는 일언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 말인디, 그 말언 앞뒤가 안 맞는 것이 잘못 되야도 아주 잘못된 말이오. 이승만 박사가 핵교럴 세우고, 잡지럴 내고, 묵고 살고 허는 돈은 다 어디서 나온 것입디여? 하늘서 떨어졌소 땅에서 솟았소? 그 한푼, 한푼이 다 우리 겉은 무식쟁이 농사꾼덜이 사시장철 땡볕 속에서 살가죽이 타들고 뼉다구가 녹아내리게 일혀서 아까운지 몰르고 성금으로 낸 돈이다 그것이오. 막말로 우리가 눈 딱 감고 성금 안 내불먼 판이 어찌 되는지 알기나 허요? 그놈에 핵교고 잡지고 머시고 다 문 닫아걸어야 된다 그것이오. 근디도 이승만 박사가 허는 일만 장허고 우리 겉은 사람이 허는 일언 쥐조도 아닝게……”

방영근은 여기서 멈칫했다. 말을 하다보니 성질이  돋아서 자신도 모르게 상소리가 튀어나왔던 것이다. 그러나 방영근은 에라 모르겠다 싶어 내처 말을 해나갔다.

서방 밥얼 굶겨도 괜찮허다 그런 말인갑는디, 고것만언 어디다가 내놔도 편들 사람 하나또 없구만이라. 이승만 박사라고 편들어 주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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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백종두는 면장 자리에서 쫓겨난 것이 하시모토의 짓이란 걸 알게 되었어. 심한 배신감을 느꼈지만 그에게 덤빌 수 없는 노릇이었어. 면장 자리에서 쫓겨난 백종두는 호남친화회라는 조직을 만들고 자신이 회장이 되었단다. 면장님에서 회장님 소리를 들으니 다시 권세를 찾을 줄 알고 있었지.

당시 경복궁에서 조선물산공진회라는 것이 열려서 전국의 재력가들은 모두 서울로 몰려 들었단다. 이 조선물산공진회는 일제의 신문물을 소개하는 자리였는데, 어떻게 하면 조선을 약탈할까 검은 흑심을 품은 사람들의 행사였던 거지. 조선물산공진회에 소개된 물건 중에 고무신이 최고 인기였다고 하더구나. 그때부터 고무신이 전국적으로 유행하게 되었다는구나.

공허 스님은 만주에서 얻은 역사책을 국내로 반입을 했고, 그걸 신세호 등에게 주어 필사하게 했어. 신세호는 며칠 밤새 여러 권 필사를 해서 공허 스님을 주면 공허 스님은 다시 다른 야학 선생님들에게 전달해 주었단다. 그렇게 민족의식을 키우려고 노력했단다.

4권에 나왔던 차득보라는 아이 기억나지? 부모님 모두 돌아가시고 여동생 옥녀는 노래패에 끌려가서, 혼자 옥녀를 찾으러 다니던 차득보. 차득보는 옥녀를 찾으러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결국 거지패에서 들어가게 되었단다. 늙은 거지로부터 장타령을 배워 동냥을 하러 다니면서 지냈단다. 정말이지 한에 맺힌 이들이 너무 많구나. 이것은 누구 때문에 일어난 일들인가. 나라를 팔아먹은 일부 고위 관직자들 때문 아닌가. 그들은 떵떵거리면 배불리 살고 있는데, 백성들의 한()만 쌓여가는구나.

조선총독부 건물은 원래 남산 중턱에 위치했는데, 그들은 조선의 상징인 경복궁 앞자리에 짓기로 결정했단다. 일제는 하루아침에 광화문을 부숴버렸어. 조선 백성들이 그것을 보고 얼마나 울분에 찼을까. 허문 광화문 자리에 조선총독부 건물이 세우기 시작했단다. 아빠도 중학교 때인가 소풍을 경복궁으로 갔는데, 그때 조선총독부 옛 건물이 있었던 것이 기억나는구나. 조선총독부 건물은 1995년에 허물기 시작해서 1996년에 완전히 철거했단다.

, 여기까지가 대충 5권의 이야기란다. 줄여서 한다고 했는데 워낙 많은 비중 있는 인물들이 등장하고, 책에서 역사적인 교훈도 담겨 있어서 발췌하다 보니 글이 길어졌구나. 오늘도 긴 글 읽느라 고생했단다. 그럼,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어이, 필려 있능가, 필녀!”

책의 끝 문장: “역시 눈치빠르군. 그럼 말야……”

신세호는 또 신비스러운 변화에 경이감을 느끼며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밤이면 이슬이 내리면서 안개가 끼고, 아침에 해가 뜨면 안개가 걷히는 것은 하나도 새로울 것이 없었다. 그리고 언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을 뿐이었다. 그러나 신세호는 그 범상 속에 감추어진 자연의 오묘한 신비와 경이를 갈수록 새롭게 느끼고 있었다. 해의 그 무한한 생명력과 창조력을 새로운 깊이로 생각하게 되고, 만상의 생성과 소멸을 다시금 음미하게 되고, 삶의 소중함과 자연의 고마움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고…… 손수 농사를 짓게 되면서부터 눈과 마음이 더 깊고 넓게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 P102

일본관리들이 조선말을 강습받고 조선으로 건너왔고, 그들이 조선말을 익히려고 애쓴다는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래서 이삼 년 전부터는 함부로 욕을 할 수도 없게 되었다. 그러나 관리가 아닌 군인이 더듬거리지도 않고 그렇게 유창하게 조선말을 하는 것을 보고 공허는 새삼스럽게 나라 잃어버린 것을 절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국경지역이라 특별히 조선말을 잘하는 자들을 골라서 배치했다 하더라도 그 충격은 가벼워지지 않았다. 나라를 빼앗긴 세월은 그렇게 해마다 달라져 가며 조선사람들의 마음까지 빼앗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 P138

마적떼는 장사꾼들한테만 걱정거리가 아니라 만주땅에 흩어져 사는 모든 동포들을 괴롭히고 위협하는 몹시 흉포한 도둑떼들이었다. 그 마적떼들이 갈수록 불어난다는 것은 왜놈들의 세력이 커지는 것이나 다를 것이 없었다. 마적떼들이 동포들의 마을을 기습해서 생명을 살해하고 재산을 약탈하는 것은 그만큼 독립투쟁의 힘을 약화시키고, 따라서 왜놈들을 도와주는 결과가 되는 것이었다. - P143

고무신바람에 들린 것은 특히 여자들이었고, 여자들 중에서도 처녀들이었다. 한 마을에서 고무신을 신은 사람은 한둘에 지나지 않았다. 그 새로 나온 희한한 물건은 값이 너무 비싸 부자가 아니고서는 가질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그 귀한 물건은 그야말로 남자 여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의 관심거리였고 구경거리였다. 그 누구나 고무신을 손에 쥐었다 하면 이리저리 매만져보고, 엎어서 밑바닥을 보고, 고개를 돌려가며 코 안을 들여다보고, 주인의 눈길을 피해 잡아늘여 보고 하는 것이었다. 그 말랑말랑하고 보들보들하고 매끈하게 생긴 고무신을 신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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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스 크로싱
존 윌리엄스 지음, 정세윤 옮김 / 구픽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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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존 윌리엄스라는 조금은 불운한 소설가가 있단다. 왜냐하면 그가 쓴 소설들이 생전에 빛을 보지 못하고, 사후에 빛을 보고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야. 아빠도 그를 유명하게 만든 소설 <스토너> <아우구스투스>를 읽었는데, 그가 쓴 소설 <스토너> 1965년에 쓴 소설인데, 그가 죽고 난 2010년대 들어서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게 되었고, 2013년에는 영국의 최대 체인 서점인 워터스톤의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단다. 그의 직업이 교수여서 소설은 많이 쓰지 않았다고 하더구나. 네 권. 그가 뒤늦게 인기를 끌게 되자 그의 책들이 뒤늦게 번역 출간되고 있구나.

이번에 아빠가 읽은 <부처스 크로싱>이라는 책은 그가 쓴 두 번째 소설로 <스토너> <아우구스투스>보다 먼저 쓴 소설이란다. Butcher’s crossing. Butcher는 정육점 주인을 뜻하는데, crossing이라고 하면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하나 싶었다. 책을 읽다 보니 부처스 크로싱은 지명 이름이더구나. 교차로에 푸줏간이 있어서 그런 지명이 되지 않았을까 싶구나. 존 윌리엄스의 다른 작품인 <스토너> <아우구스투스>는 한 남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그렸는데, <부처스 크로싱>도 주인공이 한 남자란다. 다만 전체 삶을 이야기한 것은 아니고, 젊은 날 방황하던 시기를 이야기해주고 있단다.

전체적인 평가를 하라고 하면, <스토너> <아우구스투스>보다는 별로였다고 이야기하고 싶구나. 평론가 이동진 님께서 2023년 올해의 소설 중 하나로 뽑은 소설이라 읽기 전에 너무 기대를 했던 탓도 있으리라.

 

1.

때는 미국 1870년대가 배경이란다. 아빠가 이 시설 미국의 역사를 잘 모르지만 대충 상식으로 보자면 남북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되었고, 사람들이 금광을 위해 서부로 몰려들던 시기인 것으로 알고 있단다. 주인공 윌리엄 앤드루스는 하버드 대학교 3학년이었는데 휴학을 하고 무작정 서부 부처스 크로싱으로 떠났단다. 도시 생활의 무료함과 따분함으로 변화를 주고 싶었던 것 같아. 20대 초반의 나이는 겁 없이 그렇게 도전하기에 딱 좋은 나이지. 10여년 전 아버지의 지인이었던 맥도널드 씨가 부처스 크로싱에서 가죽 가게를 하고 있었는데, 무작정 그를 만나러 갔단다.

맥도널드는 멀쩡한 명문대 학생인 윌리엄이 시골 깡촌으로 왜 왔나 싶었을 거야. 윌리엄은 사냥꾼을 소개해 달라고 했고, 맥도널드는 밀러를 소개해 주었단다. 윌리엄은 밀러를 만나고 사냥을 함께 가기로 한단다. 밀러는 험난해서 쉽지는 않지만, 많은 들소를 잡을 수 있는 콜로라도 산악지대로 가려고 했단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무모한 짓이라고 했단다. 밀러가 말한 것처럼 들소가 그렇게 많지 않고 위험하기만 하다고 말이야.

밀러는 며칠 간 사냥 준비를 하고, 함께 떠날 멤버를 찾았어. 그렇게 해서 리더인 밀러, 완전 사냥 초보자 윌리엄, 마차를 끌 찰리 호지, 가죽 벗기는 전문가 슈나이더가 한 팀이 되었단다. 이 부분까지 읽으면서 아빠는 소설 <모비딕>과 조금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망망대해 죽을지도 모를 곳으로 고래를 잡으러 떠나는 주인공들과 험난한 산악지대로 들소떼 사냥을 잡으러 떠나는 주인공들

밀러가 사냥 준비를 하는 동안 윌리엄은 호텔에서 머물렀는데 그때 술집에서 알게 된 프랜신이라는 사람을 사랑하게 돼. 프랜신도 윌리엄을 좋아하는 것 같았는데, 프랜신의 직업이 창녀라는 것이 윌리엄은 마음에 걸렸는지, 마음을 다잡고 멀리했단다.

 

2.

준비가 끝난 밀러 일행은 식량과 마차를 끌고 길을 떠났단다. 처음부터 쉽지 않을 길이라고 생각했지만, 힘든 정도가 더 심한 것 같았어. 빨리 도착을 하기 위해 지름길인 평원으로 들어섰는데, 그쪽 길은 물이 없었단다. 며칠 동안 물이 보이지 않아서 사람, 동물 할 것 없이 죽기 일보 직전이었단다. 다행히 죽기 일보 직전에 물을 찾아서 갈증을 해소했단다. 계속된 추적 끝에 윌리엄 일행은 수천 마리의 들소 떼를 발견했단다. 밀러의 지휘 아래 사냥이 시작되었는데, 앤드루스는 처음 하는 사냥이었기 때문에 서툴렀단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사냥과 가죽 벗기는 작업에 점점 능숙해졌어. , 성장 소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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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

윌 앤드루스의 가죽 벗기는 기술은 점점 능숙해졌다. 손은 강하고 단단해졌다. 칼은 새것 같은 반짝임은 사라졌지만 점점 더 확실하게 가죽을 잘라 냈다. 이제 앤드루스는 슈나이더가 두 마리의 가죽을 벗겨 낼 때 한 마리는 해낼 수 있었다. 들소가 악취가 나도, 뜨뜻한 살이 손에 닿는 느낌이 들어도, 피가 엉긴 걸 보아도 점점 더 아무렇지 않아졌다. 얼마 되지 않아 그는 가죽 벗기는 작업을 마치 자동 기계처럼 했고, 죽은 들소의 가죽을 벗겨 내 땅에 놓으면서도 거의 의식하지 않았다. 가죽을 벗긴 들소 위에 파리가 새까맣게 들끓어도 그 사이로 다닐 수 있었고, 썩은 살에서 나는 악취도 거의 의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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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된 사냥으로 그들이 목표한 충분한 들소들을 잡았단다. 거기서 멈췄어야 했는데밀러는 멈추지 않고 계속 사냥을 했단다. 이 일로 슈나이너와 다투기도 했어. 슈나이더는 이제 그만 하고 돌아가자고 했거든밀러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사냥을 했고, 죽은 들소들은 쌓여만 갔지. 시간도 잊은 채 사냥을 하던 밀러는 결국 시간의 공격을 받았단다. 어느날 눈이 내리기 시작했어. 겨울이 접어드는 줄도 모르고 사냥하고 있었던 거지. 뒤늦게 지금까지 얻은 물소가죽들을 마차에 싣고 집으로 향했지만, 엄청난 눈으로 길이 다 막히고 말았단다.

그들은 꼼짝없이 눈 속에 갇혀 지내야 했어. 콜로라도 산악지대의 겨울은 엄청 많은 눈과 추위가 이어졌어. 한번 내린 눈은 녹을 생각을 하지 않고 계속 쌓여만 갔지. 그 눈이 다 녹으려면 봄까지 기다려 했어. 윌리엄 일행은 몇 달 동안 추위와 눈과 사투를 벌여야 했단다. 고난의 시간들이 지나고 콜로라도 평원에도 봄이 다가왔단다. 하지만 눈이 녹으려면 좀더 기다려야 했어.

4월이 되고 길을 떠날 정도로 눈이 녹아 철수를 시작했단다. 들소 가죽이 너무 많아 나중에 다시 찾으러 오기로 하고, 마차에 실을 수 있는 최대한의 가죽만 싣고 철수했단다. 오늘 길도 쉽지 않은 길이었어강도 건너야 하는데 눈이 녹으면서 불어난 강물을 건너는 것도 쉽지 않았어.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나 떠내려오던 커다란 통나무를 피하지 못하고 슈나이더가 물에 빠져 죽고 말았고, 들소가죽을 싣고 오던 마차도 부서져 모두 강에 떠내려갔단다. 슈나이더를 제외한 밀러, 앤드루스, 찰리는 몸만 간신히 탈출해서 부처스 크로싱에 도착했단다. , 이 장면은 마치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이 엄청난 큰 물고기를 잡고 돌아오는 길에 상어 떼에게 모두 빼앗기고 빈 배만 타고 도착하는 장면 같았단다. 들소 가죽들이 강에 떠내려갔지만, 아직 평원에는 그보다 더 많은 가죽들이 남아 있으니 밀러는 괜찮다고 생각했단다.

 

3.

부처스 크로싱에 도착한 윌리엄 일행. 근데 마을이 좀 이상해진 것 같았어. 그 전에 있던 사람들은 사라지고 못 보던 사람들이 살고 있던 거야. 윌리엄 일행은 맥도널드 씨를 찾아 나섰단다. 맥도널드 씨는 자신의 가게가 아닌, 어떤 합숙소에서 지내고 있었어. 들소 가죽이 대폭락하여 망했다고 했어. 윌리엄 일행이 사냥을 다녀온 반년 사이에 상황이 변하여 들소 가죽이 헐값이 되었다고 했단다. 그러니까 밀러가 가지고 온 들소 가죽도 돈벌이가 안 된다는 거였어. 밀러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나 봐. 미친 듯이 맥도널드 씨 가게에 쌓여 있는 가죽들을 모두 태워버리고 길을 떠나버렸단다.

맥도널드는 윌리엄에게 경험에서 우러나는 한 마디를 해주는데, 아빠도 마음에 새길만하더구나. 세상을 가질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그 비밀은 너무 깨닫게 된다고 말이야. 그의 말이 맞는 말이 아닐 수도 있지만 마음에 와 닿아 발췌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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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6)

자네는 거짓 속에서 태어나고, 보살펴지고, 젖을 떼지. 학교에서는 더 멋진 거짓을 배우고. 인생 전부를 거짓 속에서 살다가 죽을 때쯤이면 깨닫지. 인생에는 자네 자신, 그리고 자네가 할 수 있었던 일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걸. 자네는 그 일을 하지 않았어. 거짓이 자네한테 뭔가 다른 게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지. 그제야 자네는 세상을 가질 수 있었다는 걸 알게 되지. 그 비밀을 아는 건 자네뿐이니까. 하지만 그때는 너무 늦었어. 이미 너무 늙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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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은 분명 사냥을 떠나기 전과 후 많이 바뀌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 생전 처음 해본 사냥과 추위와 사투를 벌였으니 바뀐 것은 당연하겠지. 윌리엄은 사냥을 통해서 무엇을 배운 것인가. 아빠가 그 상황이었다면 무엇을 배웠을까 생각해 봤어. 도전에 대한 자신감? 지은이는 윌리엄을 통해서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일까. 무모한 도전 같았지만, 분명 그것은 윌리엄에게 값진 도전이었을 것 같구나. 아빠의 이십 대는 너무 무난하고 평범하고 안전한 길만 갔던 것 같아. 한번 지나고 나면 다시 갈 수 없는 이십 대. 많은 것을 도전하고 많은 것을 경험했으면 좋았을 것을후회는 하지 않으련다. 평범하고 안전했지만 기억에 남는 추억들은 있으니아무튼 주인공 윌리엄 앤드루스는  또 새로운 경험을 찾아 길을 떠나면서 소설은 끝이 났단다.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엘스워스에서 부처스 크로싱으로 가는 사륜마차는 합승 마차를 소형 짐마차 겸용으로 개조한 것이었다.

책의 끝 문장: 그는 뒤에서 서서히 해가 뜨며 공기가 안정되는 걸 느꼈다.


시간의 흐름은 그와 동행하는 세 사람의 얼굴에서, 그리고 스스로 의식하는 자기 내부의 변화에서 드러났다. 그의 얼굴은 날이 갈수록 비바람에 노출되어 거칠어졌다. 얼굴 아래쪽에 까칠하게 자란 수염은 피부가 거칠어지면서 부드러워졌고, 손등은 햇볕에 타 빨개졌다가 갈색이 되었다가 까매졌다. 몸이 점점 여위고 단단해지는 걸 느꼈다. 가끔 자신이 새로운 몸, 또는 비현실적인 부드러움과 창백함과 매끄러움의 층 아래 숨어있었던 진정한 몸 안으로 움직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 P108

"자네 신세는 자네가 망쳤어. 자네와 자네 같은 인간들이. 자네가 살면서 매일 하는 일이, 자네가 하는 모든 일이. 아무도 자네한테 이래라저래라 안 했어. 그러지 않았어. 죽인 사냥감들의 악취로 땅을 뒤엎으며 제멋대로 살아왔지. 가죽을 무더기로 풀어 시장을 망하게 하고는 이제 와서 자넬 망쳤다고 징징거리는군." 맥도널드의 목소리가 점점 노기를 띠었다. "자네는, 자네들 모두는 내 말을 귀담아들어야 했어. 자네들은 자네들이 죽인 짐승들보다 나을 게 없어." - P304

그 허영심은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깜빡거리던 합숙소 등불의 불빛 아래서 맥도널드가 말했던 그 무(無)였다. 찰리 호지의 시선에 있었던 밝고 푸른 공허감-그는 찰리의 눈 안에서 그 공허감을 언뜻 보고 프랜신에게 말해 주려 애썼다-이었다. 슈나이더가 강에서 말발굽이 얼굴을 당혹하게 만들기 직전에 보였던 경멸적인 표정이었다. 산에서 하연 눈보라가 몰아치기 전에 밀러의 얼굴에 나타났던 맹목적인 인내심이었다. 찰리 호지가 꺼져 가는 불에서 몸을 돌려 밀러를 따라 밤 속으로 따라가기 전에 그의 눈에 있었던 텅 빈 반짝임이었다. 맥도널드가 가죽이 불타 버리는데 광분해 밀러를 쫓아다니는 동안, 얼굴에 격노한 가면을 쓴 것처럼 만든 끝없는 절망이었다. 베개 위에 죽은 듯 늘어진 프랜신의 잠든 얼굴에서 지금 보고 있는 그것이었다. - P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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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4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1년 10월
평점 :
품절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조정래 님의 <아리랑> 4권을 이야기해줄게. 4권부터 6권까지는 제2 <민족혼>이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단다. 제목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지만, 조정래 님께서 각 부의 제목을 정할 때 고심하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이라는 말은 이나 마음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구나. 영어로는 mind보다는 soul에 더 가까울 것 같구나. 그럼 4권의 이야기를 해줄게. 4권의 이야기는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온단다.

일본의 부당한 정책에 항의를 하게 되면 무조건 경찰에 끌려가니 이 억울함을 어디에 호소해야 할까. 3권에서도 이야기되었던 토지조사사업으로 땅을 빼앗긴 이들이 면사무소에 따지러 갔다가 일부는 감옥에 갇혀 재판을 받고, 일부는 태형을 받았다고 했잖아. 그렇게 분위기가 흐려진 가운데 정월대보름이 다가오고 있었단다. 동네 사람들은 이럴 때일수록 제대로 행사를 진행하자고 했어. 그래서 농악대도 준비하고 그랬는데, 일제는 농악대의 악기들도 모두 빼앗아가 버렸단다.

일제는 토지조사사업을 하면서 자신들은 뒤쪽에 빠져 있고, 지주 대표와 지주 총대들을 뽑아 행동대장처럼 썼단다. 농민들은 자신의 땅임을 입증하게 되는 서류를 제출하게 되면 땅을 빼앗기지 않게 되는데, 그 서류라는 것이 작성하기도 어려울뿐더러 도장을 지주총대가 최종적으로 찍어주어야 했어. 그렇다 보니 지주총대에게 뇌물이나 찔러주어야 겨우 도장을 찍어주었단다. 지주총대들은 그것을 이용해서 한탕 벌려고 했고 말이지. 신세호는 농민들이 어려워하는 서류 작성을 도와주었어. 그러자 지주총대들에게 협박을 받기도 했단다. 지주총대들이 도장을 찍어주지 않고, 불법으로 땅을 강탈해가려 하자 여기저기에서 지주 총대들이 피습을 당하는 사건들도 발생했단다. 그러나 대부분은 토지조사사업으로 부당함을 이야기하려던 농민들의 피해가 더 컸단다.

차득보와 차옥녀 남매의 아버지도 마찬가지였어. 토지조사사업으로 땅을 빼앗긴 처지에 놓인 득보의 아버지는 지주총대에게 이야기를 하러 갔다가 오히려 지주총대에게 맞았단다. 지주총대의 폭력에 맞서 그를 밀쳤는데, 그가 부상을 입게 되었어. 이 일로 득보의 아버지는 경찰에 붙들려 갔고, 곧바로 즉결 처분으로 당산나무에서 공개 총살형을 받고 죽었단다. 이 일이 있고 나서 득보의 엄마는 실성을 하였고, 얼마 못 가 저수지에서 빠져 죽은 채 발견되었단다. 어린 득보와 옥녀만 남았어. 우연히 어떤 주막의 주모를 만났는데, 옥녀가 노래 부르는 것을 듣더니 밥을 주겠다며 데리고 갔다가 옥녀를 노래패에 팔아 넘기고 말았단다. 그렇게 득보는 동생과도 헤어지게 되고, 잃어버린 동생을 찾으러 길을 떠나게 되었단다.

한편, 죽산면 면장인 백종두와 농장을 운영하는 하시모토는 토지조사사업을 이용하여 땅을 불리려는 욕심을 갖고 있었단다. 그런데 백종두와 하시모토 모두 죽산면의 땅을 노리다 보니 알게 모르게 그들 둘 사이에서도 경쟁이 있었지.

너희들이 나중에 학교에서 일제시대의 역사를 배우면서 토지조사사업이란 것을 배울 텐데, 일제가 토지조사사업을 한 목적이 무엇인지도 배울 텐데, 이 책에도 그 내용이 정리되어 있어 발췌해 보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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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토지조사사업은 크게 네 가지 목적을 가지고 수행되고 있었다. 첫째, 조선의 전국토를 대상으로 총독부 소유의 땅을 최대한 확보하자는 것이었다. 둘째, 모든 종류의 토지 소유자들을 명백히 하여 세금을 철저하게 징수하자는 것이었다. 셋째, 조선땅 전체를 샅샅이 측량하여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완전히 장악하자는 것이었다. 넷째, 양반계층의 재산을 보호해 줌으로써 식민성 지주로 예속시키는 동시에 친일세력을 대량으로 생산해 내자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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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송수익은 만주에서 옛 의병 동료들과 만나서 독립군을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했단다. 지삼출도 만주로 와서 송수익과 함께 했어. 송수익은 다른 독립운동가들도 교류를 했는데, 신채호, 이회영 일가와도 교류를 가졌단다. 특히 이회영 일가는 신한촌에 신흥강습소를 지어 많은 독립군을 배출하는데 공을 세웠단다. 이회영의 형제들은 엄청난 재산을 모두 가지고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 자금으로 기부하신 것으로 유명하신데, 너희들이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아빠가 여러 번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단다. 송수익과 함께 의병활동을 했던 공허스님은 스님이라는 신분을 이용하여 만주와 국내를 오가며 소식을 전하거나 군자금을 모아서 전달하기도 했단다.

백종두의 아들 백남일이 수국이를 겁탈했다가 수국의 동생 방대근에게 된통 맞고 일본으로 치료하러 갔잖아. 그가 돌아왔는데, 결국 한쪽 눈은 고치지 못하고 외눈박이가 되어 돌아왔단다. 그렇게 되자 헌병자리도 쫓겨나고 말았어. 백종두가 면장이라는 직함으로 수를 쓰려고 했지만, 결국은 백남일은 헌병자리에서 쫓겨났단다. 백종두는 속이 쓰렸고, 이를 지켜보던 사탕공장장인 장덕풍은 고소해했단다. 장덕풍은 사탕공장으로 돈을 벌어 정미소까지 차렸단다.

돈 욕심에 형제의 의까지 저버린 정재규의 집안 이야기를 해줄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정재규는 동생들에게 재산을 나눠주지 않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어머니까지 돌아가셨단다. 둘째 동생 상규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형과 대판 싸웠고, 이런 형들을 막내 도규는 부끄러워했단다. 결국 도규는 자신에게 할당된 땅을 손해보고 형들에게 땅을 더 갖게 하는 절충안을 제시해서 형들도 마지못해 수긍을 했단다. 정재규는 가장 많은 땅을 상속 받았는데, 도박에 빠져 재산이 점점 줄어들어 갔단다. 어떤 해는 수확한 쌀을 팔아 바꾼 돈을 도적들에게 빼앗기기도 했어. 어차피 도박으로 다 잃을 돈이었는데 말이야. 그런데 정재규의 돈을 훔친 도적은 다름 아닌 공허 스님의 비밀 조직이었단다. 공허 스님은 지주들의 집을 덮쳐 돈을 훔쳐 군자금으로 조성했던 거야. 공허 스님은 하시모토의 집도 몰래 들어가려고 했는데, 함정에 빠져 도망쳤고, 일행 중에 한 명이 총에 맞아 죽고 말았단다.

방영근의 동생이자 수국이의 언니인 보름이는 남편이 죽고 시아버지와 함께 지내고 있었는데, 시아버지도 토지조사사업의 부당함에 이의를 제기했다가 총에 맞아 죽고 말았단다. 시댁에는 이제 아무도 없게 되자, 보름이는 어린 아들과 함께 마을을 떠났단다. 친정 식구들은 모두 만주로 가서 갈 곳이 없는 보름이는 옛 동네 어른인 손판석의 집을 찾아 군산으로 갔단다. 손판석은 공허 스님의 말을 따라 이중 간첩 같은 역을 하고 있었어.


2.

보름이의 오빠가 고생하고 있는 하와이는 어떤지 이야기해줄게. 어느덧 방영근이 하와이에 온지 10년이 되었단다. 다들 사진결혼이라도 하는데, 영근은 관심이 없었어. 왜냐하면 영근은 무조건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굳은 의지가 있었고, 보름이의 친구인 오월이를 마음에 품고 있었는데 아직 잊지 못하고 있었거든. 사진결혼은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하와이 노동자들이 사진을 조선에 보내면 그걸 보고 여자들이 하와이에 와서 결혼을 하는 것이란다. 그렇다 보니 사진 속 남자와 실제 만난 남자가 전혀 다른 경우도 있었대. 심각한 부작용이지. 하와이까지 왔는데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그래도 도망가는 신부들이 있었대.

방영근과 남용석은 그렇게 도망간 신부 말녀라는 여자를 알게 되었단다. 용석과 말녀가 서로 좋아하는 감정이 있는 것 같아 영근이가 잘 중재해서 용석과 말녀는 결혼까지 했단다. 한편, 하와이에서는 박용만이라는 사람이 주도하여 국민군단을 창설했단다 국민군단은 무기를 갖춘 군사 훈련을 하는 조직이었어. 독립을 위해서는 무장투쟁을 해야 한다는 박용만의 강한 의지로 만들어진 군대이고, 미국의 국무장관 브라이언도 원래는 불법인 외국인 부대를 묵인해주었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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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335)

국민군단의 창설은 국민회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박용만이 주도한 것이었다. 네브래스카 대학에서 군사학을 전공한 박용만은 2년 전에 하와이로 옮겨와 국민회 기관지 <신한국보>의 주필을 맡으면서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는 무장투쟁을 전개해야 한다는 사실을 역설해 왔다. 국민군단의 창설은 바로 그 무장투쟁론의 첫 단계 실현이었다.

열여덟에서 스물두 살까지로 제한된 국민군단의 신병들은 130명이었다. 그들은 모두 어린 나이에 부모를 따라 하와이로 건너와 자라난 젊은이들이었다. 그리고 군단이 갖춘 장비는 사관용 45구경 단총 39, 장도 10, 목제총 350, 나팔 12, 드럼 7, 미합중국 보병학교 교재 28종 등속이었다.

원래 미국통치령 내부에서는 외국인들의 군사훈련이라 군사활동은 일절 금지되어 있었다. 그러나 하와이 군사령부에서는 국민군단의 창설을 묵인했다. 그건 국민회의 교섭능력만이 아니라 조선인 노동자들이 각 농장에서 발휘하고 있는 노동능력의 영향이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해에 미국 국무장관 브라이언이 발표한 이례적인 성명서와도 무관하지 않았다.

<조선인은 어느 점에서도 일본인이 아니라고 확신하는 바이다. 따라서 언제나 조선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에는 조선인 교포단체와 교섭하여 결과를 해결지을 것이며 일본인의 간여를 허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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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까지가 <아리랑> 4권의 이야기란다. 만주, 국내, 하와이를 오가면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아빠의 이야기가 끊길 수도 있겠지만, 소설 자체는 전혀 그렇지 않단다. 장소는 다르지만 모두 우리 백성들의 한()으로 다 통하고 있는 이야기란다. 4권의 이야기는 1910년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어두운 시간들이 한참 남았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밤마다 자정이면 산줄기들이 우르릉우르릉 울린다고 했다.

책의 끝 문장: 만년의 정적에 묻힌 그 산줄기 아래서 매일 아침 6시면 젊은이들의 우렁찬 노래가 울려퍼지고는 했다.


농사를 지으며 사는 사람들에게 짚은 단순한 볏대만이 아니었다. 그건 농경생활을 영위해 가는 데 다양한 쓰임새를 갖는 소중한 재료라는 것을 넘어서서 그 어떤 것보다 청결하고 신성한 뜻을 지닌 대상물로 여겨지기도 했다. 짚은 멍석 망태기 삼태기 새끼맷방석 섬 등속의 농사기구며 생활용품을 만들고, 지붕에 이엉으로 얹고, 신을 엮어 신으며, 땔감으로 썼다. 그런 생활의 긴요한 쓰임새 외에도 짚은 길운을 지키고 액을 물리치며, 저승길의 혼백을 받드는 제구(祭具)이면서, 하늘에 이승의 염원을 실어 비는 매개물로 쓰였다. 보름날을 비롯하여 온갖 액땜을 하는 허수아비가 짚으로 엮어졌고, 3년상이 끝날 때까지 사립 밖에 걸리는 사잣밥 망태기가 짚으로 짜여졌고, 제사를 지낼 때마다 사립 밖에 붓는 물밥의 깔개가 짚이었다. 그리고 집집마다 모아 만든 달집의 짚단에는 또 한해 농사가 가뭄도 홍수도 없이 풍년 들게 해달라는 사람들의 염원이 지푸라기 하나하나에 서려 있었다. - P18

"그게 그럴 만한 까닭이 있소. 산이 너무 많은 함경도의 가난한 사람들이 농토를 찾아 청나라의 봉금령을 어기면서 두만강을 건너다닌 것이 벌써 수십년 전부터였소. 밤에 두만강을 건너가 만주땅에 농사를 짓고 새벽이면 돌아오고는 하는 것이오. 그러다가 잡히면 월강죄로 목숨을 부지할 수가 없었소. 허나 배곯는 사람들은 그 죄를 무서워하지 않았소. 사람들은 자꾸 강을 건너갔고, 청나라도 힘이 쇠해지면서 봉금령도 흐지부지되기 시작했소. 그러자 조선사람들은 만주땅으로 파고들어 들이 넓고 물길이 좋은 용정에다 붙박이로 터를 닦게 된 것이오. 실은 이 만주땅이 예전에는 다 우리 땅이었소. 백두산이 가운데 솟아 북쪽으로 산줄기들이 뻗어내린 땅이 만주고, 우리 선조들이 고구려라는 나라로 또 발해라는 나라로 이 만주땅을 다스렸던 것이오." - P94

중생은 외적의 온갖 횡포 아래 죽어가고 피흘리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데 중들이 목탁 치며 색즉시공이요 공즉시색이라고 목청 높여 염불을 왼다고 하여 외적이 물러가고 중생들이 평안해질 리가 없었다. 그건 억지고 눈가림이었다. 태평세월 속에서 편안하게 한평생을 보낸 인생살이는 우주의 수억겁 세월에 견주어 무상하다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흉악한 총칼 앞에 목숨을 내놓은 채 날이면 날마다 짓밞히는 지옥살이를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인생이 어찌 무상일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의 나날은 너무 긴 고통의 유상이요 괴로움의 유상이요 절망의 유상인 것이었다. - P94

총독부에서는 <역둔토 특별처분령>이라는 것을 공포했던 것이다.
그것은 총독부가 무력을 앞세워 빼앗아 국유지로 편입시켜 버린 조선 사람들의 역토나 둔토를 일본이주민들에게 대여의 우선권을 부여해 주는 특혜법령이었다. 그건 이민정책을 활성화시켜 이민을 많이 오게 하는 조건 마련인 동시에 조선사람들의 생계를 위협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소작이나마 얻으려고 굴복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지배술책이었다.
- P211

술이 취하면 누구나 아리랑을 불렀다. 불러도 목놓아 불렀다. 목놓아 부르다보니 가락은 제멋에 겨워 더 늘어지며 슬퍼지고 넌출져 휘감기며 처연해지고, 술에 젖은 가슴은 그 가락을 못 이겨 허물어지며 더 서러워지고 녹아내리며 한스러워져 이어지고 또 이어지는 가락에는 끝내 물기가 묻어나고는 했다. 그들은 통곡을 대신해 그 가락을 목놓아 부르고, 분을 삭이려고 목놓아 부르고, 외로움을 달래려고 목놓아 부르는 것인지도 몰랐다. - P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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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일설에 의하면 안동 김씨도 나름 계산을 했다고 한다.

왕이 되기 전, 어린 이 이명복의 연이 끊어져 어느 안동 김씨의 집으로 들어간 적이 있었다. 보통 아이들 같았으면 겁도 없이 대문을 두들기며 연을 달라고 하든지 그럴 용기가 없다며 차라리 포기할 텐데, 이명복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대문 앞에 않아서 하루 종일 울고만 있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안동 김씨는 이명복의 우유부단함이 마음에 들었다. 그를 왕으로 세워 설령 그의 아버지 이하응이 살아 있는 대원군이 된다고 하더라도 지금껏 이하응의 처신으로 보아 충분히 감당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27-28)

물론, 국가적으로 천주교를 문란하다고 여긴 시대였다고 할지라도, 무려 8천여 명에 달하는 천주교 신자를 학살하다시피 한 대원군을 마냥 존경할 만한 인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국가를 새로 창업하거나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 오직 개인의 통치력만으로 시대적 병폐를 끊고, 이전 세상과의 긍정적인 단절을 이룬 인물로 대원군만 한 인물이 또 있던가?

첫째, 60여 년의 세도정치를 끝냈다.

둘째, 300년 만에 비변사를 해체했다.

셋째, 300년 만에 붕당정치를 끝냈다.

넷째, 300년 만에 경복궁을 재건했다.

다섯째, 400년 만에 서원을 제대로 철폐했다.

여섯째, 역사상 최초로 양반들에게 군포를 부과했다.

어떤 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대원군이 300년만 일찍 태어났다면, 조선의 역사는 바뀌었을 것이다.”


(73)

미군 대위 틸톤(Mclane Tilton)은 부인에게 아래와 같은 편지를 남겼다.

나는 많은 전쟁을 겪었지만, 조선이라는 나라의 한 섬에서 치른 전투만큼 끔찍한 기억은 찾아볼 수 없소.”

신미양요는 미국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로저스 제독은 전투에서 승리한 다음 날 퇴각을 결정한다. 조선 출정을 통해 미국과 로저스 제독이 얻어 낸 것은 없었다. 조선을 개항시키기는커녕 제너럴 셔먼호 사건에 대한 사과조차 받아 내지 못한 출정이었다. 일본과는 너무나도 다른 조선에 큰코다친 미국이었다.


(96)

한 사람만 더 언급하자면 동학을 진압한다고 핑계로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했을 당시의 일본군 사령관이 오시마 요시마사다. 오시마 요시마사라는 이 낯선 이름은 사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얼마 전까지 일본의 총리였던 아베 신조의 외고조부다. 그리고 전범임에도 사형을 면하고 일본의 총리까지 역임했던 기시 노부스케도 조슈번 출신이자 아베 신보의 외조부다. 당연히 아베 신조 역시 조슈번 출신이고, 그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정한론의 창시자 요시다 쇼인이었으니 최근 일본의 정치 권력을 잡은 주류들의 사상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97-98)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본국으로 돌아가려는 일본군을 기어이 막아선 이순신.

우리 강토를 짓밟은 외적에게 공포감을 심어 주고, 침략자의 후손들이 우리의 후손을 업신여기지 못하도록 만들기 위해 노량해전을 설계했던 이순신.

이순신은 비록 노량에서 전사하지만, 그는 일본 에도막부 탄생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이후 에도막부와 조선은 250년의 평화를 유지했으니, 이순신의 노력은 결코 헛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순신에게 짓밟히고 에도막부에 눌려 있던 자들이 에도막부를 몰아내고, 메이지유신을 단행하면서 정한론이 다시 대두됐다. 그리고 그들에 의해 한반도가 다시 침략당했다.


(151-152)

 1592년 임진왜란

 1894년 청일전쟁

 1904년 러일전쟁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

 1941년 태평양전쟁

일본이 외세와 치른 전쟁들이다. 모두 일본의 선제공격이었다. 이토록 수많은 선제공격에 앞서 일본은 단 한 번도 전쟁에 대한 선전 포고를 하지 않았다.

일본인이 그리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무사도, 즉 사무라이 정신은 형식이자 겉치레에 불과했다. 사무라이는 자신들이 동경하는 이상향이었을 뿐, 그들 내면의 뿌리에는 닌자 정신이 깔려 있던 것이다.


(176-177)

민비는 임오군란 당시 도망 중에 만난 진령군이라는 무당을 신처럼 받들고 살았다. 성리학 국가 조선의 궁궐을 무당이 마음껏 드나들었고, 그곳에서 굿판이 벌어졌다. 진령군의 권위는 하늘을 찔렀고, 무당의 결정으로 벼슬이 주어지기도 했다. 민비가 세자의 건강을 기원하며 금강산 1 2천 봉마다 쌀을 뿌린 것 또한 진령군의 진언 때문이었다. 임오군란 이후부터 민비가 시해되기 전까지 조선의 서열은 고종 위에 민비가 있었고, 민비 위에 무당 진령군이 있었다.


(201)

서재필의 큰 오점은 따로 있다. 부유한 나라 미국 국적의 서재필이 가난한 나라 자신의 모국 조선에서 너무 큰 돈 욕심을 낸 것이다. 독립협회의 고문 자리를 받아들여 10년을 계약한 서재필은 독립협회가 문을 닫게 될 위기에 처하자, 남은 7 10개월의 급료를 지급하지 않으면 사퇴하지 않겠다고 버텼다.

황국협회까지 만들어 독립협의를 해산시키려 한 고종은 그깟 돈이 대수냐며 서재필의 남은 임기만큼의 급료를 모두 지급하였으니, 지금 돈으로 30억쯤이었다고 한다.

<윤치호 일기>에 이런 내용이 있다.

만일 봉급을 두 배로 올려 주었다면, 서재필은 조선에 남아 있을 생각도 있었다.”


(203-204)

1951년 서재필은 88세의 나이로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눈을 감았다. 이후 미국에서 돌보는 이 없이 방치된 서재필의 묘소가 한국 뉴스에 나오자, 여러 기독교단체가 그의 유해 송환을 주도했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서재필의 유해가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현충원에 안장되려는 순간, 한국의 역사가들은 현충원의 정문을 막아섰다.


(233-234)

회고의 애국계몽운동단체는 1907년에 조직된 신민회였다.

회장 윤치호와 부회장 안창호를 중심으로 구성된 신민회는 실력양성운동을 전개하여 교육과 산업 진흥에 힘을 쏟았다. 안창호는 평양에 대성학교를 세웠고, 이승훈은 정주에 오산학교를 세웠다. 기호흥학회, 서북학회, 호남학회 등 각 지역에 학회가 설립된 것도 신민회의 역할이 컸다. 이 밖에 신민회의 주도로 평양에 자기회사가 설립되었고, 대국에는 태극서관이라는 출판사도 설립됐다.

신민회의 또 다른 특징은 비밀결사적 성격이 짙었다는 것이다. 누구도 신민회의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지 못했다. 비밀결사의 앞뒤 연락책 정도만 알 뿐이었다. 대신 비밀조직인 만큼 신민회는 일제의 눈을 피해 무언가를 계속 준비했다.


(269)

고종은 황제 자리에서 물러나며 나라까지 잃었음에도 그는 대단히 풍족하게 살았다. 국권피탈기 고종의 행동들은 그저 황제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고, 나라가 식민지로 전락된 후 고종의 독립운동이란 것들은 모두 자신의 황제권을 되찾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고종이 독립운동을 했다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최소한 잃어버린 강토의 회복과 일본의 식민통치 아래 신음하는 만백성의 자주성 회복을 천명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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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모모 2024-04-10 2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밑줄친 내용들이 놀라워요. 몰랐던 내용들이 많아서 읽을때마다 놀랍네요.

bookholic 2024-04-11 11:23   좋아요 0 | URL
그런 내용을 오래 기억하면 좋을텐데, 금방 까먹어 버리네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