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체 3부 : 사신의 영생 - 완결
류츠신 지음, 허유영 옮김 / 자음과모음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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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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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드디어 <삼체>의 마지막 3부를 이야기해줄게. 3부는 1부와 2부보다 더 광범위한 공간과 더 광범위한 시간을 다루고 있다. 지은이가 소설을 쓸 시점에서 가까운 미래인 201x년에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때는 그들이 위기의 세기라고 한지 4년째 되던 해였다. 위기의 세기는 삼체가 지구를 쳐들어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 시점이었어. 2부의 마지막보다는 앞선 시간대의 이야기이지.. , 오늘도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 곧바로 시작해볼게.

...

윈텐밍이라는 스물여덟 살 천문학 학자가 있었어. 하지만 폐암말기로 서너 달 시한부 인생을 판정 받았어. 중국에서는 얼마 전에 안락사가 합법화되어서 그는 안락사를 신청하고 기다리고 있었단다. 그런 와중에 그가 냈던 특허가 대박이 나서 특허비로 엄청난 돈을 받게 되었어.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 이제 곧 죽을 텐데부질없는 일이지. 당시 UN에서는 삼체에 대항하기 위한 임무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우주의 별을 파는 이벤트를 했는데, 윈톈밍은 갑자기 생긴 엄청난 돈으로 항성을 하나 사기로 했어. 대학교 때 짝사랑하던 청신이라는 사람에게 익명으로 선물을 했어.

누군가는 별을 돈 주고 파는 것을 사기극이라고 했지만, 삶을 얼마 안 남긴 윈톈밍에게는 낭만적인 일이라 생각했지. 윈톈밍은 그렇게 DX3906이라는 별을 샀단다. 날씨가 좋은 날이나 아주 희미하게 보이는 별이었어. 그리고 시간이 되어 안락사를 진행했어. 다섯 개의 질문이 모두 끝나면 안락사가 진행되는데 마지막 질문을 남겨두고... 누군가 황급히 찾아왔는데, 꿈을 꾸고 있는가? 청신이 그를 찾아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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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신이 왜 윈톈밍을 찾아왔을까. 그 이야기를 해볼게. 3년 전인 위기의 세기 1. 청신은 UN 소속 우주연구팀에 취직을 했어. 당시 UN에서는 속도 빠른 우주선을 만들려는 계획을 했지만 쉽지 않았어. 이때 청신이 핵폭탄을 연쇄적으로 폭발시켜 속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제안했어. 연구팀 일원들은 청신의 아이디어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여 그 프로젝트를 실행했어. 일명 계단 프로젝트라고 불렀지. 하지만 문제점이 있었어. 우주선의 무게를 최대한 줄어야 했고, 그렇다 보니 그곳에 탑승할 사람도 무게를 줄어야 했어. 심지어 한 사람의 무게도 실어 보낼 수 없었어. 그러자 어차피 동면 상태로 가야 한다면 ''만 보내기로 했어. ''가 삼체를 만나게 되면 삼체의 기술력으로 ''만 가지고 복원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지...

그럼에도 이 작전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추진하였단다.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의 뇌를 보낼 수 없으니 죽음을 앞둔 이, 특히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데 죽음을 앞둔 이의 뇌를 보내기로 했어.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찾지 위해서 몇몇 국가에 안락사를 합법화하게 했고 그런 와중에 윈톈밍이라는 적임자가 나타난 거야. 청신은 윈톈밍이 자신이 대학 동기라는 것을 알고, 어렵지만 그에게 이 프로젝트에 참여 달라고 부탁하려고 그를 찾아간 것이란다. 청신에게 별을 선물한 사람이 윈톈밍이라는 사실은 모른 채. 윈톈밍이 여전히 청신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청신의 이야기를 들은 윈톈밍은 자신이 참가하겠다고 했어. 다른 몇몇 후보들과 심사를 하게 되었어. 그러던 중 다른 친구로부터 청신은 윈톈밍이 자신에게 별을 선물한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되고, 뒤늦게 그 프로젝트 참여를 막아보려고 했지만..(그만큼 성공할 확률이 거의 없었어) 윈톈밍은 참가하기로 했고 최종 일인으로 선발되었어. 그리고 계단프로젝트로 윈톈밍의 뇌가 우주로 쏘아 올려졌지만, 그만 마지막 단계에서 궤도가 이탈되어 윈톈밍의 뇌는 항로를 벗어나 우주로 날아갔단다. 우주의 미아가 되었어. 프로젝트 실패. 한편, 청신은 미래에 삼체의 침입에 대응하기 하기 동면하기로 했단다.

 

1.

세월이 흘러 위협의 세기가 되었단다. 위협의 세기는 2208년부터 2270년까지라고 했단다. 이때가 2부에서 뤄지가 '암흑의 숲' 작전으로 삼체를 위협한 것이 먹혀서 지구와 삼체가 불안하긴 하지만 평화를 유지하던 시기였단다. 삼체도 그 동안 지구의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닮아가기도 했어. 1부와 2부에서 모습을 차원 속에 숨긴 채 지구를 감시하던 지자도 3부에서는 인간의 모습으로 변형되어 활동했단다. 왜 그랬을까? 장점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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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에서 우주 함대가 물방울의 공격으로 모두 파손되고 몇몇 남은 함대들을 내분이 일어나 또 사라져 두 대만 남았다고 했었잖아. 두 대는 지구 귀환을 명 받았단다. 그 중에 한 대가 청동시대호였는데 그들은 지구에 도착하자마자 대원들은 함대 내분의 책임을 묻고 모두 감방에 보냈단다 이 소식을 들은 나머지 생존 함대인 블루스페이스호는 지구로 귀환하지 않고 도망을 갔단다. 그래서 지구는 이 함대를 뒤쫓는 그래비티호를 보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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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협의 세기가 시작된 지 60여 년이 지난 뒤 청신이 깨어났어. 청신이 깨어난 것은 거의 200여 년 후였고, 완전 새로운 세상이었어. 남자는 별로 없고 있는 남자들도 많이 여성화되었단다. 그 시대에 사는 사람 중에 AA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AA는 청신의 별인 DX3906에 행성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사람이었어. 그런 연유로 AA는 청신과 친해지게 되었단다. 그런데 어느날 청신의 옛 상사인 웨이드가 청신을 죽이려고 했으나 실패했어. 웨이드가 청신을 죽이려고 했던 이유는 유력한 검잡이 후보였던 청신을 죽이고 자신이 검잡이가 되려고 했거든. 그런데 실패해서 감옥에 가고 말았단다. 검잡이가 뭐냐고? 2부 마지막에서 뤄지가 삼체를 협박했던 방법 생각나니? 지구와 삼체의 우주좌표를 온 우주에 퍼트린다고 위협했잖니.. 그러면 더 우월한 우주의 종족이 지구와 삼체를 폭파시킬 거라고... 그 작전이 '암흑의 숲' 작전이라고 불렀고, 지구와 삼체의 우주좌표로 보내는 발신기의 버튼 장치를 뤄지가 갖고 있었는데 그런 뤄지를 검잡이라고 불렀어.

그런데 뤄지도 나이가 많이 들어서 버튼 장치를 다른 사람에게 전수하려고 했어. 그러니까 2대 검잡이가 필요했던 거지. 여러 후보 중에 청신이 2대 검잡이가 되었단다. 청신이 검잡이가 되자마자 숨어 있던 삼체의 물방울들이 공격을 해왔어. 어디에? 우주좌표를 보낼 수 있는 중력파 통신소들을 모두 파괴했단다. 그러니까 더 이상 '암흑의 숲'의 협박 작전은 먹히지 않게 된 거야. 삼체는 지구와 평화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사실 이 날만을 기다렸던 것 같구나. 청신이 유약하다고 판단하여 버튼을 누르지 못할 것으로 판단했던 삼체는 청신이 검잡이가 되자마자 작전을 펼쳤던 것이란다.

이제 '암흑의 숲' 작전은 무력화되어 다시 지구는 삼체의 영향권 아래 두게 되었단다. 삼체 함대는 다시 지구로 향하게 되었어. 삼체는 지구인들에게 기회를 주는 듯 했어. 삼체인들이 지구에 도착하기 전에 지구인들에게 모두 호주 대륙으로 이전하라고 명령했어. 나머지 지역은 삼체인들이 거주해야 하니까 말이야. 지구인들은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어서 삼체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고, 수십억 인구는 모두 호주 대륙으로 이전하게 되었단다. 인프라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으니 난민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어. 물과 먹을 것이 보급되었지만 원활하지 않았단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어. 삼체는 지자를 통해 한가지 지시사항을 전달했단다. 호주 대륙에 보급을 끊겠다고 했어. 알아서 해결하고 했지. 그러니까 생존을 위해서는 서로 싸우고 죽이게 한 거야. 삼체가 판단하기에는 지구의 많은 인구수는 그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으니 싸움을 통해서 3000~5000만까지 줄이려는 의도였어. 자기네 손은 하나도 건들지 않고 말이야.

 

2.

지구에서 이런 혼란의 시기를 겪는 동안 우주에서는 블루스페이스호(함장 : 추옌)가 도망을 가고 그래비티호가 여전히 쫓고 있었어. 그런데 삼체의 물방울이 그 두 함대를 빠른 속도로 쫓아오고 있었단다. 왜냐하면 사실 블루스페이스호에도 중력파 발사대가 하나 있었거든. 지구에 있는 중력파 통신도는 모두 파괴했지만 아직 하나가 남아 있던 거야. 그걸 물방울이 파괴하려고 접근하고 있던 거야. 그런데 우연히 물방울이 4차원의 비틀린 공간에 들어가게 되면서 물방울이 작동불능상태에 빠졌단다. 물방울뿐만 아니라 블루스페이스호와 그래비티호도 4차원의 비틀린 공간 속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로 인해 블루스페이스호에서 바로 그래비티호 안으로 이동할 수 있었어.

블루 스페이스 함장인 추옌이 이렇게 해서 그래비티 호를 점령했단다. 그리고 그는 검잡이 교체 후 중력파 통신소들이 모두 파괴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어. 추옌은 함선에 남아 있던 마지막 중력파 발사대를 이용하여 지구와 삼쳬의 우주좌표를 전우주에 쏘아 보냈단다. 삼체의 전략도 이로 인해 실패. 잘못하면 삼체와 지구는 어떤 우주의 존재에 의해 파괴가 되어 그들도 우주의 미아가 될 판이었어. 삼체인들도 삼체와 지구의 우주좌표가 공개되었다는 것을 알고, 지구로 향하던 함체들의 방향을 우주로 틀었단다. 지구는 얼마 못 가 파괴될 것이라고 생각한 거야. 그리고 호주대륙으로 이민 갔던 지구인들에게도 다시 돌아가도 좋다고 해서 지구인들은 다시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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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후 우려했던 일이 일어났단다. 삼체의 항성이 우주 어디선가 날아온 광립의 공격을 받아 파괴되어 멸망했단다. 실제로 삼체 항성의 파괴를 눈으로 본 지구인들도 지구가 얼마 못 가 파괴될 것이라고 생각했어. '지자'도 지구를 떠나게 되는데 떠나기 전에 뤄지와 청신에게 지구가 안전보장 한다는 메시지를 전우주에 뿌리면 공격을 안 받을 수도 있다고 했는데 치사하게 구체적인 방법은 안 알려주고 떠나버렸단다.

아빠가 너희들에게 이야기를 해주긴 하지만 이런 장면 같은 경우는 아빠가 제대로 이해를 한 것인지 잘 모르겠구나. 지자는 그냥 떠나면 되지, 아리송한 말을 하고 떠난 것도 이해가 안 가고 이왕 방법을 알려주려면 속 시원히 알려주고 갈 것이지... 그리고 지구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면 삼체도 살릴 것이지.. 그리 허무하게 파괴되는 것을 그냥 보기만 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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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뜬금없이 청신은 윈톈밍의 뇌(?)를 만나러 우주선을 타고 떠났단다. ? 갑자기? 궤도에 벗어나 우주의 미아가 되었을 것이라 생각했던 윈톈밍의 뇌는, 어떻게 삼체인들을 만나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삼체인들이 윈텐밍의 뇌를 만나게 되었고 육체를 복원시켜서 윈톈밍은 삼체 함대에서 지내게 되었어. 또 뜬금없이 유명한 동화작가가 되어 일하게 되었어. 청신은 결국 윈톈밍과 만나게 되었지. 삼체의 감시로 인해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 삼체와 함께 생활하는 윈톈밍은 지구를 살릴 수 있는 뭔가를 알고 있는 것 같았지만, 감시 때문에 이야기를 해주지 못했어. 또 뜬금없이 동화 세편을 이야기해주었단다. 이야기가 산으로 가고 있는 느낌.

청신은 다시 지구로 돌아와서 윈톈밍이 해준 동화 세편은 동료 연구진들에게 이야기를 해주었어. 그 이야기 속에 답이 있을 것이라고 말이야. 그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어 곡률추진식광속 우주선을 개발하자고 했고, 광속저하 방법을 이용하여 태양계의 빛을 우주로 발산하지 못하게 하여 다른 우주에서 발견되지 못하게 하는 블랙존 방안도 제시했어. 아빠가 생각하기에는 이 블랙존 방안이 좋아 보였는데, 지구인들은 그것을 채택하면 영영 태양계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태양계에서만 갇혀 지내야 한다고 해서 그 방법은 채택되지 못했단다. 아빠가 놓친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떤 이유에 의해서 곡률추진식광속이 불법화되어 청신은 그 프로젝트를 그만두어야 했단다.

그런데 웨이드가 그걸 자신이 하겠다고 했어. 웨이드 기억나지? 청신의 옛상사로 검잡이가 되겠다고 청신을 공격했다가 감옥에 갔던 사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웨이드가 검잡이가 되었다면 지구와 삼체 사이의 평화가 지금도 계속 유지되고 있지 않았을까 싶구나.

....

 

3.

청신은 다시 동면에 들어갔단다. 그를 따르던 AA도 같이 동면에 들어갔어. 60여년 만에 깨어난 청신. 그 시기는 벙커의 세기라고 불렀어. 수십 개의 우주도시들이 태양계 안에 위치하여 살고 있었어. 지구가 파괴되니 지구에서 못살고 우주도시를 만들어 태양계 여기저기에 건설한 거지. 주로 토성과 목성의 후면 쪽에 위치하고 있었어. 왜냐하면 지구와 태양이 폭발할 때 잔해로부터 피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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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고도 문명의 우주의 말단 공무원 '가자'라는 존재가 있었어. 그는 우주를 감시하고 위험 항성이라고 판단되면 제거하는 일을 했는데, 어느날 좌표를 받은 태양계를 위험지역이라고 생각하여 태양계를 제거하기로 했단다. 방법은 차원붕괴공격으로 3차원을 2차원으로 만드는 것이었어. 그러니까 태양계를 2차원으로 만들어버린 거야.. 그렇게 되지 수많은 우주도시들이 쓸모가 없어져 버렸단다. 그들도 태양계 안에 위치하고 있으니 모두 2차원으로 붕괴되니까 말이야.

이 공격은 태양부터 외곽으로 퍼지면서 2차원으로 변해갔단다. 우주함체들도 살기 위해서는 태양계 밖으로 벗어나야 하는데, 속도가 2차원으로 변하는 속도보다 느렸단다. 뭐야, 결국 태양계가 멸망하는 거야? 이 소설은 그러니까.. 결국 태양계가 어떻게 망하는지 예상한 소설이었구나. 아빠는 처음 이 소설을 읽을 때 당연히 삼체의 공격으로부터 승리하여 다시 지구의 평화를 되찾았다, 이렇게 끝나는 소설일 줄 알았는데 말이야. 이런 극악한 디스토피아일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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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신은 뤄지를 만나러 명왕성으로 갔어. 뭐야, 뤄지가 아직까지 살아 있었어? 그럼 그냥 계속 검잡이를 하고 있으면 되지... 어차피 버튼 누르는 것이 임무였는데... 그걸 굳이 청신에게 넘겨줘가지고 이 사태를 만들었나. 뤄지의 조언을 듣고 청신은 태양계를 벗어나기로 했어. 아참, 청신은 계속 AA와 함께 해서 AA도 같이 태양계를 벗어났단다. 어디로 가야할 지 막막했어. 청신과 AA는 웬톈밍이 청신에게 선물한 별 DX3906으로 향했어. 그곳에 행성에 어떤 남자가 있었고 그가 말하길 윈톈밍이 아직 살아 있다고 했어. 윈톈밍과 통신에도 성공하지만 실수가 발생하여 청신 혼자 저광속 블랙홀에 빠지게 되었어.

청신과 헤어진 AA가 나중에 윈톈밍과 만나게 되고 둘뿐인 행성에서 살아간 것 같구나. 윈톈밍은 청신이 살 수 있도록 소우주를 만들어 준 것 같았어. (이해하기 쉽지 않은 스토리) 그 소우주에서 청신은 살았단다. 나중에도 다시 더 큰 우주로 향했단다.

그렇게 길고 긴 소설은 대충 이렇게 끝을 맺었단다. 2부 이야기할 때, 이 책에 대해 아빠가 평하기를

"하드 SF를 추구하지만 좀 유치하다"고 했는데, 3부를 읽으면서 이 생각이 더 확고해지더구나. 차원붕괴라는 발상은 나름 독창적이고 괜찮았지만, 그 외 이야기전개는 좀 뜬금없어 보이는 경우도 있었고, 시간과 공간의 광범위한 확장이 오히려 현실성을 너무 떨어뜨렸다는 생각도 들었단다. 그래도 우주의 무한히 넓다 보니 우주 어디선가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는, 공격성이 강한 존재들이 진짜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어. 하지만 그런 존재를 걱정하기 전에 기후위기로 인해 인류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를 먼저 걱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이제 드라마 <삼체>를 함 봐야겠구나.

 

PS,

책의 첫 문장: 사실 이 이야기는 역사라고 불러야 하지만 필자가 기억에만 의지해 쓴 것이므로 엄밀히 말해 역사라고 할 수 없다.

책의 끝 문장: 작은 육지의 풀잎에서 굴러 떨어진 이슬 한 방울이 핑그르르 돌아 날아오르며 우주를 향해 한 가닥 투명한 햇빛을 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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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소민아 2024-08-20 11: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삼체...너무 버거워요~~ㅎㅎ 언젠가는 도전!

bookholic 2024-08-20 23:27   좋아요 0 | URL
내용도 버겁고, 책 무게도 버거워요..^^
꼭 도전해 보시길....
 
삼체 2부 : 암흑의 숲
류츠신 지음, 허유영 옮김 / 자음과모음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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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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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류츠신의 <삼체> 2부를 이야기해줄게. 삼체 1부 이야기 기억나지? 삼체 항성계에 살고 있는 삼체인들이 지구로 오고 있었으며, 400년후에 도착할 예정이라는 사실을 지구의 사람들이 모두 알게 되면서 끝이 났잖니. 2부 이야기는 그 이후의 이야기가 펼쳐진단다.

400년 뒤에 고도의 발전한 삼체가 와서 지구를 공격한다는 소문이 퍼졌어. 지구에서는 이것에 대해 대비를 어떻게 할지 말들이 많았어. 인류를 계속 보존하기 위해 일부 인원을 선출하여 도피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어. 그런데 이런 정책들을 펼치려고 해도 삼체인들이 보낸 감시자 역할을 하는 지자 때문에 모든 정보가 삼체에 전달되었지. 지자라는 존재는 11차원에 존재하기 때문에 지구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어. 그러니까 지구인들은 무엇인가 대비를 해야 하는데 이 지자의 감시망을 벗어나서 대비를 해야 하는 거였지. 그런데 이 지자는 어디에 있는 줄 모르고엄청 어려운 조건인 것 알겠지?

1부의 주인공 중에 한 명인 예원제예원제가 지구의 좌표를 삼체인들에 알려준 장본인이었잖니. 예원제의 딸 양둥은 삼체인들에 의해 죽게 되었고양둥의 친구 뤄지라는 사람이 예원제를 찾아왔어. 뤄지는 사회학을 전공하다가 전공을 바꾸어 천문학을 연구하게 되어 양둥과 알게 되었지. 예원제는 뤄지에게 두 학문을 접목한 천문사회학을 해보라고 권유하였고, 그래서 뤄지는 천문사회학을 공부하게 되었단다. 뤄지는 어떤 여자와 함께 길을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는데 뤄지는 살았고 같이 있던 여자가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단다.

1부에서 나왔던 경찰 스창이 뤄지를 찾아오고 그 교통사고는 우연이 아니라고 했어. 스창은 뤄지를 데리고 어디론가 갔어. 그곳이 어디인지 말할 수 없다면서 자신의 임무는 뤄지를 그곳에 데려다 주는 것이라고 했어. 스창은 뤄지를 데리고 간 곳은 뉴욕에 있는 UN본부였단다. 도대체 그곳에 왜?

 

1.

뤄지가 도착한 UN본부에는 전세계 유력한 인사들이 모두 모여 있었어. 그들인 삼체의 공격에 대한 대비책을 논의하기 위해 모인 것이었어. 그러면서 면벽자 프로젝트를 만들었어. 면벽이라는 것은 불교의 수행 방법 중 하나인데 혼자서 벽을 보면서 수행하는 것이란다. 왜 이런 프로젝트를 만들었다면, 누군가와 논의를 하게 되면 지자들이 다 알게 되잖니. 그래서 유능한 사람이 머릿속에서 혼자 작전을 세우고 실행하면 지자들이 눈치채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거야. 그 면벽자들에게 뽑힌 사람들에게는 최대한 물심양면 다 지원해준다고 했어.

면벽자로 뽑힌 사람들은 미국 국방부 장관 출신의 프레드릭 타일러, 전직 베네수엘라 대통령인 마누엘 레이디아즈, EU 집행위원장 출신에 뇌과학자 빌하인즈, 그리고 마지막으로 뤄지가 선출되었단다. 나머지 세 사람은 어느 정도 경력이 있었지만, 뤄지는 아무런 경력도 없지 선정되었어. 왜 자신이 선정되었는지도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어. 아빠가 이해한 바로는 삼체인들이 계속 뤄지를 죽이려고 했는데 그 이유가 뤄지가 삼체인들에게 있어 엄청 중요한 인물이라고 여긴다고 UN에서 판단했던 거야. 뤄지는 자신은 면벽자가 되지 않겠다고 거부를 했단다. UN에서는 알겠다고 하면서도 뤄지가 하고 싶어하는 것에 모든 것을 지원하겠다고 했어. 이런 면벽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것을 알게 된 삼체인들은 그들을 제거하려는 친삼체 지구인들 중에 파벽자를 뽑았단다.

면벽자로 뽑힌 사람들은 뤄지를 제외하고 열심히 활동했단다. 타일러와 레이디아즈는 무기 관련된 연구를 하고 빌 하인즈는 두뇌 연구를 하여 뇌를 빨린 진화시켜서 미래의 인간들이 삼체에 대항하는 기술을 만들게 하는 연구를 했어. 뤄지는 면벽자의 지원을 개인의 행복에 이용했어. 자신의 이상형을 찾아달라고 했고, 그렇게 만난 좡옌이라는 여자와 데이트도 하고 나중에는 결혼도 하게 되었어. 아주 잘 활용하는구나.

….

시간이 지난 5년이 흘렀어. 어느날 타일러를 찾아온 파벽자. 파벽자는 타일러의 모든 계획을 알고 있었고, 타일러의 계획을 모두 이야기해주었어. 이 사실에 허무와 회의를 느낀 타일러는 (공감이 잘 안 가지만) 자살을 했단다. 레이디아즈와 하인즈는 자신들의 계획은 현재 기술로 어렵다면서 동면에 들어가 미래로 가게 된단다. 뤄지는 좡옌과 결혼 후 아이도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좡옌과 아이가 사라졌어. UN 관계자가 이야기하기를 좡옌과 아이는 동면에 취했고, 미래세계에서 깨어나기로 했다는 거야. 뤄지를 자극하기 위한 방법 같았어.

뤄지는 가족을 위해서라도 면벽자 활동을 하기로 했단다. 지자가 최대한 감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만든 지하 벙커에서는 임무를 시작했어. 하지만 뤄지는 심한 바이러스에 걸렸고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어. 이것 또한 삼체가 뤄지를 죽이려고 했던 음모 중에 하나였단다. 뤄지는 미래세계에서는 이 병을 고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동면에 들어갔단다. 동면을 너무 쉽게 하는 것이 미래라고 가능할 지 모르겠구나. 호텔 방에서 하룻밤 자는 것처럼 아주 쉽고 일상이 된 것 같았어.

 

2.

동면에 들어갔던 레이디아즈와 빌 하인즈는 8년만에 깨어났어. 빌 하인즈는 아내 게이코와 함께 맨털 스탬프라는 것을 개발하였어. 맨털 스팸프라는 것은 패배의식이 짙은 군인들에게 이것을 주입하게 되면 승리한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다고 했어. 아빠가 생각하기에는 이런 것들이 정말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소설 속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것으로 나온단다. 잘 모르겠네

레이디아즈는 자신의 계획을 실행하려고 했어. 초대형 항성형 수소폭탄을 개발하는 것이었어. 이것을 수성에서 폭발 시험을 하려고 했지그런데 준비를 하던 와중에 파벽자가 찾아왔어. 파벽자는 레이디아즈의 작전을 모두 밝혀냈어. 사실 레이디아즈의 작전은 태양계를 모두 없애려는 작전이었어. 그래서 삼체가 지구를 찾아왔을 때는 쓸 수 없는 행성으로 만들려고 한 거지. 이것은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의 생명을 담보로 한 작전이야. UN도 이 사실을 알고 레이디아즈의 면벽자 자격을 박탈시켰단다. 자격을 잃은 레이디아즈는 고국인 베네수엘라로 돌아갔는데 격분한 시민들의 돌멩이 세례로 그만 죽고 말았단다.

뤄지가 동면한 지 185년이 지나 동면에서 깨어났단다. 185년이라니그때 지구는 어떤 모습일까? 소설 속 삼체가 아니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185년은 상상하기 좀 어렵구나. 기후변화로 인해 지구의 온도가 점점 뜨거워지고 있는데 185년 후에는 얼마나 뜨거워져 있을지 아무도 모르잖니. 생물체들은 제대로 살고 있을까. 아무튼 삼체 소설 속 185년 후 미래도 그리 좋은 환경은 아니었어. 지하 세계가 일반적이었단다. 마치 얼마 전에 아빠가 이야기해준 김초엽 님의 <파견자들>의 미래처럼 말이야.

지구인들이 지하 세계에서 살고 있었던 이유는 치고 박고 싸우던 대혼란의 시기인 대협곡 시대를 거치면서 지상 세계는 폐허가 되고 말았기 때문이야. 그렇게 지하 세계로 들어와 살던 지구인들. 다행히 기술의 발전은 계속 진행되었고, 지구의 기술 수준 특히 무기 수준이 이미 삼체를 앞질러 있었어. 지구로 오고 있는 삼체 함대들은 속도가 느려지고 일부는 고장이 나서 300대만 지구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되었어. 와봤자 지구의 무기에 눌려 위협이 되지 않을 거라고 했단다.

185년만 깨어난 세상에는 면벽 프로젝트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어. 하기야 200년 전에 잠깐 만들어졌던 프로젝트이니지금은 오히려 삼체에서 먼저 지구에게 평화협정을 요청하는 그런 상황이었어. 지구에서는 삼체인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어. 외행성에게 자리를 내주자는 의견통 크게 화성을 내주자는 의견 등등 뤄지 뿐만 아니라 동면에 들어갔던 하인즈도 같이 깨어났어. 남아 있는 면벽자들이 깨어났으니 마지막 면벽 청문회를 하자고 했단다. 그렇게 면벽 프로젝트를 끝내소 뤄지는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왔단다. 아참, 200년 전 뤄지가 걸렸던 바이러스는 아주 손쉽게 치료를 했단다. 200년 전 경찰이었던 스창도 백혈병에 걸려 치료를 위해 동면에 들어갔다가 뤄지보다 2달 먼저 동면에서 깨어나 병도 싹 고쳤단다. 뤄지는 스창과 함께 스창의 가족들이 살고 있는 지상세계로 갔단다. 스창의 아들도 동면을 통해 미래에 살고 있었어.

….

중국 해군 대령으로 국제우주군 소속에 있는 장베이하이라는 사람이 있었어. 장베이하이도 200년 전에 동면에 들어갔다가 최근에 깨어났단다. 200년의 미래는 엄청 많은 우주함대가 태양계 안에 돌아다녔으며, 우주 함대 연합은 하나의 국가로 인정받을 만큼 성장해 있었어. 장베이하이는 200년 전 삼체의 공격에 맞서 싸우자고 했으나 사실 그는 패배주의에 물든 도피주의자였단다. 그것을 속에 숨기고 있었던 거야. 200년 후에 깨어나서 자연선택호라는 함대에 탑승한 그는 다른 함대원들 몰래 함대를 태양계 밖으로 궤도를 돌리고 도망가기 시작했어. 그는 여전히 지구인들은 삼체인들에 질 것이라고 생각했고 지구인들은 보존시키기 위해서 태양계 밖으로 도망을 가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러나 지구에서 보는 입장은 달랐어. 그의 행동을 반란으로 규정하고 함체 네 대를 보내 자연선택호를 추격하라고 했어.

 

3.

지구로 오는 삼체 함대들의 본진에 앞서 빠른 속도로 오던 탐측기들이 있었는데 그 탐측기 중 첫 번째가 태양계에 진입을 했고 당랑호라는 우주 함대와 조우하게 되었단다. 그 탐측기는 100% 빛을 반사하고 겉이 매끈하게 생겨서 지구인들은 그것을 물방울이라고 불렀어. 그런데 평화협상으로 오러 온 줄 알았던 물방울은 갑자기 당랑호를 향해 돌진하였고 빠른 속도로 당랑호를 관통했어. 물방울은 멀쩡했고 당랑호는 폭발하고 말았지. 물방울은 이후 빠른 속도로 방향을 바꿔가면서 우주 함대를 계속 공격했어. 이 장면을 읽다 보니 아빠는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욘두 우돈타의 화살 무기가 생각나더구나. 그렇게 빠르고 자유자재로 방향을 바꾸어 모든 것을 관통하는 그런 무기

물방울은 순식간에 수천 대의 우주함대를 괴멸시켜 버렸단다. 태양계 안에 있는 함대 중에 2대만 생존했어. 그리고 태양계 밖으로 도망간 장베이하이의 자연선택호와 자연선택호를 쫓고 있던 4대의 함대 7대의 함대만 남게 되었단다. 이로써 장베이하이의 예상이 맞았던 거야. 평화는 무슨 평화. 그렇다고 장베이하이가 이순신장군도 아니고 뾰족한 대책이 없었어. 이 삼체라는 소설의 특징 중에 하나가 그런 거더구나. 그래도 희망을 주다가도 그런 희망은 없다면서 좌절시키는 것남아 있던 함대들도 얼마 후 서로 내전이 일어나서 두 대만 남고 모두 폭발해 버렸단다. 아빠가 장베이하이의 이야기를 적게 했지만 2부의 비중 있는 역할이고, 그의 예상도 맞아서 마치 무엇인가 준비를 할 것 같았는데 그렇게 허무하게 자신들의 내전으로 인해 죽고 말았구나.

물방울의 함대 공격 이후 지구는 대혼란에 빠지게 된단다. 물방울이 지구로 다가 오고 있으니 말이야. 뤄지는 스창과 함께 있으면서 이 물방울이 자신에게 올 것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사람들 피해가 없도록 외진 벌판에서 물방울을 맞이하기로 했어. 그러나 뤄지의 괜한 영웅 심리였나? 물방울은 지구에 와서 지구 궤도를 돌면서 태양주파수 증폭 차폐활동을 시작했단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아빠는 잘 모르겠더구나. 소설이 무척 두꺼운데 소설 곳곳에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었어. 중국인들만 공감하는 감성이 있는 것인지 하드 SF를 아빠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지

뤄지는 지구를 지켜내기 위한 묘수를 하나 생각해냈어. 뤄지는 삼체인들에게 경고했단다. 자신을 죽이게 되면 자동으로 온 우주에 자동 전파 송신이 되는데 그 전파에는 지구의 우주 좌표와 삼체의 우주 좌표가 들어 있다고 했어. 우주에는 삼체보다 더 문명이 발달한 존재가 있을 테고 그 중에 파괴를 일삼는 이들이 있을 텐데, 그 좌표들을 그들이 알게 되면 분명 지구와 삼체를 파괴할 것이라고그러면 삼체인들이 지구에 오더라도 지구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야. 그런데 웃긴 건 이런 협박 아닌 협박이 먹힌 거야.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던 지자가 모습을 드러내서 뤄지와 대화를 했고, 뤄지의 요구 사항 대부분을 들어주었단다. 그렇게 지구와 삼체는 휴전을 맺게 된단다.

여기까지 아빠가 이해한삼체 2부의 이야기란다. 소설의 스케일이 큰 것은 이해하겠는데, 아무리 미래라고 하지만 공감할 수 없는 기술들이 너무 많이 나와서 아빠는 소설이 좀 유치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단다. 하드 SF를 추구하지만 좀 유치하다는 것이 아빠의 생각. 이미 3부도 책을 구입해 놓아서 읽어야 하는데 3부는 또 어떤 설정들이 나올까. 이런, 3부는 책이 더 두껍네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갈색개미는 이곳이 자신의 고향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책의 끝 문장: 내일 태양이 다시 떠오르는 걸 아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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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시대의 지성 이어령과 ‘인터스텔라’ 김지수의 ‘라스트 인터뷰’
김지수 지음, 이어령 / 열림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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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이어령이라고 다재다능한 분이 계셨단다. 생전에는 살아있는 지식인이라고도 불렸어. 1988년 올림픽 개폐회식을 기획하시기도 하고 이후 문화부장관 등 국가의 중요한 일도 하셨단다.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인터뷰에서 죽음에 해탈한 듯 무척 편안한 모습으로 여러분 행복하시라면서 작별 인사를 하시는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구나. 아무리 나이가 많으시다고 하지만 죽음 앞에 저렇게 초연할 수 있을까 싶었지.

이어령 님은 책들도 많이 쓰셨는데 엄마는 몇 권 읽은 것은 같은데 아빠는 이어령 님의 책은 읽어 본 적은 없단다. 오늘 너희들에게 이야기해줄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은 아빠의 친구가 추천해 주어 읽어보게 되었단다. 이 책은 인터뷰어로 유명한 김지수 님이 이어령 님과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서 인터뷰한 내용을 담은 책이란다.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서 인터뷰를 하다 보니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라는 책이 연상되기도 하더구나.

이 인터뷰를 진행할 때는 이미 이어령 님께서는 시한부 판정을 받으시고 항암 치료도 거절하면서 삶을 정리하고 계시던 시기였단다. 하지만 여전히 열정과 함께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죽음에 초연함을 느낄 수 있었단다. 또 하지만 죽음에 대해 직접적으로 무섭지 않냐는 질문을 받으셨을 때는 철창 속의 사자가 우리 밖으로 나와 있다는 비유로 말씀하였어. 다른 사람의 죽음은 나와는 상관없는 철창 속의 사자와 같으나 나의 죽음은 그 사자가 철창 밖으로 나와 내 앞에 있는 것이라고 말이야. 죽음이라는 것은 편히 생각하기 쉽지 않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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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공포는 없으신가요?”

자신은 없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라는 사람은 최초로 죽음학을 했고 죽음에 대한 강의를 그렇게 많이 했는데도, 정작 자기가 암에 걸리고는 감당을 못 했어. 그것을 본 한 기자가 물었지.

당신은 임종하는 사람을 지켜보며 그렇게 많은 희망을 줬는데 왜 정작 당신의 죽음 앞에서 화를  내고 있느냐?’

로스가 이렇게 답했다네.

지금까지 내가 말한 것은 타인의 죽음이었어. 동물원 철창 속에 있는 호랑이였지. 지금은 아니야. 철창을 나온 호랑이가 나한테 덤벼들어. 바깥에 있던 죽음이 내 살갗을 뚫고 오지. 전혀 다른 거야.’

전두엽으로 생각하는 죽음과 척추 신경으로 감각하는 죽음은 이토록 거리가 멀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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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은 인터뷰 형식을 띠고 있어서 인터뷰어인 김지수 님이 주로 묻고 이어령 님이 답변하는 식으로 되어 있단다. 자신의 삶 속에서 축적된 지식과 교양을 조곤조곤 말씀해 주셨어. 그가 한 말을 모두 기억하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는 게 현실이잖니. 아빠가 인상적인 문구를 몇 개 발췌했는데 그것들과 너희들과 함께 다시 한번 읽어보는 것으로 오늘의 독서 편지를 대신하려고 한다. 베이컨이 인간을 개미, 거미, 꿀벌 이렇게 세 가지 부류로 분류했대. 너희들은 어떤 부류가 가장 나은 것 같니? 거미는 좀 징그럽고 다른 벌레들을 거미줄에 잡아 먹으니 안 좋을 것 같고개미와 꿀벌 중에 하나일 것 같은데답은 꿀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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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56)

내가 그 사람에게 물었지.

자네가 가장 잘 아는 게 뭔가?’

꿀벌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꿀벌을 잘 봐. 꿀벌처럼만 하면 좋은 문학이 돼.’

영국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 그랬지. 인간은 세 가지 부류가 있다네. 개미처럼 땅만 보고 달리는 부류. 거미처럼 시스템을 만들어놓고 사는 부류. 개미 부류는 땅만 보고 가면서 눈앞의 먹이를 주워먹는 현실적인 사람들이야. 거미 부류는 허공에 거미줄을 치고 재수 없는 놈이 걸려들기를 기다리지. 뜬구름 잡고 추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학자들이 대표적이야.

마지막이 꿀벌이네. 개미는 있는 것 먹고, 거미는 얻어걸린 것만 먹지만, 꿀벌은 화분으로 꽃가루를 옮기고 스스로의 힘으로 꿀을 만들어. 개미와 거미는 있는 걸 gathering 하지만, 벌은 화분을 transfer하는 거야. 그게 창조야.

여기저기 비정형으로 날아다니며 매일매일 꿀을 따는 벌! 꿀벌에 문학의 메타포가 있어. 작가는 벌처럼 현실의 먹이를 찾아 다니는 사람이야. 밥 뻗는 순간 그게 꽃가루인 줄 아는 게 꿀벌이고 곧 작가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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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겨울 아침 일어났을 때 밤새 눈이 내린 날이면 괜히 설레고 기분이 좋았거든. 당시에는 어려서 그런가 했는데, 지금까지도 겨울날 밤새 내린 눈을 보게 되면 설레고 기분이 좋단다. 왜 그럴까? 눈이 그냥 예뻐서 그런 걸까? 이어령 님께서 그 이유를 콕 짚어서 이야기해주셨단다. 풍경이 하룻밤에 변해서 그런 것이라고 마치 해외 여행을 갔을 때처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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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

밤사이 내린 눈은 왜 그렇게 경이로울까요?”

변화잖아. 하룻밤 사이에 돌연 풍경이 바뀌어버린 거야. 우리가 외국 갔을 때 왜 가슴이 뛰지? 비행기 타고 몇 시간 날아왔더니 다른 세상이 된 거야. 하루하루 똑같던 날들에서, 갑자기 커튼콜 하듯 커튼이 내려왔다 싹 올라가니까 장면이 바뀌어버린 거야. 막이 내렸다 올라가는 건 일생 중에 그렇게 많지 않거든. 외국 여행을 한다든지, 수술했다 마취에서 깨어난다든지…… 그런데 일상에서 유일하게 겪을 수 있는 게 간밤에 내린 눈이라네. 잠자는 사이 세상이 바뀐 거지. 보통 쿠데타가 밤에 일어나잖아. 자고 일어났는데 탱크가 한강은 넘어 세상이 싹 달라진 거야. 밤에 내린 첫눈이 그래. 쿠데타야. 오래 권력을 누리지 않고 바로 사라지는 쿠데타. 오래 있어 봐. 눈 녹으면 지옥이지. 곧 사라지니까 그만큼 좋은 거야. 아름다운 쿠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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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이어령 님의 경험담 중에 하나 인데요즘 전세계적으로 한류가 큰 열풍을 일으키고 있어서 온 국민들이 자부심을 갖고 있잖니. 한류의 중심인 케이팝, 케이클래식, 케이뮤비 등의 주요 인재를 많이 배출한 곳이 바로 한국예술종합학교인데 그 학교를 처음 만들자고 한 것도 이어령 님이라고 하시는구나. 천재적인 능력이 있는 아이들을 위한 곳을 만들겠다고 말이야. 선견지명이 있으셨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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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천재가 있으면 특별 교육시켜야 해요. 특권이 아니에요. 오히려 불쌍한 애들이지. 하나님이 인간들 만들어 세상에 내보내기 전에, 쓸모를 못 찾은 놈에게 눈곱 하나 떼서 붙여주면 그 아이가 화가가 되고, 귀지 좀 후벼서 넣어주면 그 아이가 음악가가 되는 거예요.

너 세상 나가면 쓸모없다 조롱받을 테니, 내 눈곱으로 미술 해먹어라. 너 세상 나가면 이상한 놈이라고 왕따 당할 테니 내 귀지로 음악 해먹어라.’

그게 예술가예요. 예술가들은 그 재능 빼면 세상 못 살아요. 아무것도 못해서 범죄자 돼요. 그러니 자비를 베풀라는 말이에요. 학교 만들어주는 게 자비에요.’

그 얘기 듣고 사람들이 웃고 잠시 침묵했어. 총리가 그럼, 통과된 걸로 알겠습니다하고 땅땅땅 때린 거야. 그 순간 한국예술종합학교가 생겨났다네. 한예종 아이들이 세계적인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오면 내가 그래.

너희들은 five minute kids, 5분 동안 태어난 아이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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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님께도 아픔이 있었단다. 촉망 받고 능력 있던 목사 딸이 병으로 먼저 돌아가신 거야. 암이라고 진단 받은 이후에는 항암 치료도 거부하시고 더욱 신학에 몰두하셨다고 하는구나. 딸뿐만 아니라 손자도 이십 대에 알 수 없는 병으로 죽었다고 하니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이어령 님은 죽음을 앞두시고 이제야 딸과 손자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셔서 그리 편안하셨던 것인지.. 딸이 죽음 앞에 초연할 수 있었던 것은 진정한 영성의 세계에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시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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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

그렇지. 갑작스럽게. 물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해. 영적 판, 인화지가 있어야 셔터를 눌렀을 때 빛이 담기지. 종이 넣고 아무리 셔터 눌러봐야 거기에 뭐가 나와. 0.001초의 셔터를 끊어주는 그 짧은 순간에 감광지에 비치는 모습, 그게 영의 세계야. 순식간에 다른 세상을 보는 거지. 그런데 내 딸 민아처럼 하나님을 진실로 믿으면 영성의 세계에 들어가 거기서 머무는데, 나는 미끄러져서 계속 땅에 떨어져. 그래서 영성이 아니라 땅 지()자 지성이 되는 거야. 땅의 성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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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님이 하신 일들이 많지만 1988년 올림픽 개폐회식을 빼놓을 수가 없겠구나. 특히 개회식. 한 장면만 이야기해보라고 하면 다들 굴렁쇠 소년을 이야기하지 않을까 싶구나. 누군가는 뜬금없는 연출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화려한 축제의 갑작스런 침묵을 만들고 모든 관중들이 굴렁쇠를 굴리는 소년. 그는 침묵의 소리를 보여주려고 했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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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246)

제 기억으로는 88올림픽 때 굴렁쇠 소년이 반바지를 입고 굴렁쇠를 굴리며 갈 때, 사이렌이 울렸던 것 같습니다.”

그 제목이 silence였지. 내가 올림픽에서 수십 억 지구인들에게 들려준 것도 바로 그 침묵의 소리야. 꽹과리 치고 수천 명이 돌아다니던 운동장에 모든 소리가 딱 끊어지고 어린애 하나가 나올 때, 사람들은 듣고 본 거야. 귀가 멍멍한 침묵과 휑뎅그레한 빈 광장을…… 그게 얼마나 강력한 이미지였으면, 그 많은 돈 들여서 한 공연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나고 시끄럽던 운동장이 조용해지고 소년이 굴리던 굴렁쇠만 기억들을 하겠나. 그게 어린 시절 미나리꽝에서 돌 던지며 정적에서 나온 이미지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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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오늘은 책의 발췌한 일부를 이야기해주는 것으로 독서 편지를 대신할게.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어느 깊은 가을밤 잠에서 깨어난 제자가 울고 있었다.

책의 끝 문장: 이어서 또 다른 영화를 트는 극장이 있을 뿐이지요.


"인터뷰가 뭔가? Inter. 사이에서 보는 거야. 우리말로 대담이라고도 번역하는데, 대담은 대립이라는 뜻이야. 대결하는 거지. 그런데 말 그대로 서로 과시하고 떠보고 찌르면 거기서 무슨 진실한 말이 나오겠나. 위장술밖에 더 나오겠어? 군인들이 전투할 때 왜 위장복을 입겠어? 살기 위해서 감추고 색을 바꾸는 거지. 인터뷰는 그래선 안 되네. 인터뷰는 대담(對談)이 아니라 상담(相談)이야. 대립이 아니라 상생이지. 정확한 맥을 잡아 우물이 샘솟게 하는 거지. 그게 나 혼자 할 수 없는 inter의 신비라네. 자네가 나의 마지막 시간과 공간으로 들어왔으니, 이어령과 김수지의 틈새에서 자네의 눈으로 보며 독창적으로 쓰게나." - P44

"차이는 있어. 남자들만 느낄 수 있는 고독의 신호가 있다네. 파이브 어 클락 새도(five o’clock shadow)라고 들어봤나? 샐러리맨들이 오후 다섯시가 되면, 깨끗했던 턱 밑이 파래져. 퇴근 무렵, 면도 자국에서 수염이 자라 그림자가 생기네. 그게 오후 다섯시의 그림자야. 매일 쳇바퀴 돌 듯 회사에 나와 하루를 보낸다. 문득 정식 차리면 오후 다섯시. 수염 자국 그림자가 얼굴에 드리워지면 우수가 차오른다네. 오늘 뭘 했지? 내일도 또 이렇겠지. 다시 전철을 타고, 술집에 가고, 이윽고 집에 돌아가 아내를 만나고….. 그게 샐러리맨의 고독이지."
"오후 다섯시. 남자의 얼굴에 수염 그림자가 생길 때, 여자는 립스틱 자국이 지워진답니다."
- P74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건 "떼’로 사는 거라네. 떼 지어 몰려다니는 거지. 그게 어떻게 인간인가? 그냥 무리 지어 사는 거지. 인간이면 언어를 가졌고, 이름을 가졌고, 지문을 가졌어. 그게 바로 only one이야. 무리 중의 ‘그놈이 그놈’이 아니라 유일한 한 놈이라는 거지. 그렇게 내가 유일한 존재가 되었을 때 비로소 남을 사랑하고 끌어안고 눈물도 흘릴 줄 아는 거야. 내가 없는데 어떻게 남을 끌어안겠나? 내가 없는데 우리가 있어? 그런데 ‘나 없는 우리?’ 아니 될 말씀이야. 큰일 날 소리지. 그래서 내가 사이를 강조했잖아. 나와 너 사이. 그 사이에 나도 있고 너도 있다는 거지. 자네와 나 사이에 interview가 있는 것처럼." - P125

"길 잃은 양은 자기 자신을 보았고 구름을 보았고 지평선을 보았네. 목자의 엉덩이만 쫓아다닌 게 아니라, 멀리 떨어져 목자를 바라본 거지. 그러다 길을 잃어버린 거야. 남의 뒤통수만 쫓아다니면서 길 잃지 않은 사람과 혼자 길을 찾다 헤매본 사람 중 누가 진짜 자기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겠나. 길 잃은 양은 그런 존재라네. 그런 의미에서 나한테는 종교조차 문학이었다네. 신학에서 ‘ㄴ’자를 빼면 시학이잖아. 보들레르도 니체도 나는 성경을 읽는 마음으로 읽었지." - P168

"나에게 행복은 완벽한 글 하나를 쓰는 거야. 그런데 그게 안 되는 거지. 그러니까 계속 쓰는 것이고. 그런데 알고 보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글은 실패한 글이라네. 지금까지 완성된 성인들 중에 글을 쓴 사람은 없어. 예수님이 글을 썼나? 공자가 글을 썼나? 다 그 제자들이 쓴 거지. 역설적으로 말하면 쓰여진 글은 완성되지 못한 글이야. 성경도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인간이 쓴 글이고 세상의 모든 경전, 문자로 쓰여진 것은 결국 완성되지 못한 그림자의 흔적일 뿐이네. 나 또한 완성할 수 없으니 행복에 닿을 수 없어. 그저 끝없이 쓰는 것이 행복인 동시에 갈증이고 쾌락이고 고통이야. 어찌 보면 고통이 목적이 돼버린 셈이지."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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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2024-08-10 22: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어령 교수님의 마지막 수업엔 너무도 많은 어록들이 있어서 감탄하며 읽었습니다. 저도 제 자식들에게 전해 주고 싶지만 아직 이해하지 못 할 것 같아 알려주겠다는 생각 은 포기 했습니다. ㅎㅎ bookholic 님 독서 편지 애독자로서 이렇게 자식들에게 전해 주실 수 있다는게 부럽습니다,

bookholic 2024-08-11 23:06   좋아요 1 | URL
저희 아이들도 아빠가 자기들한테 이런 식으로 독서편지 쓰고 있는 것 아직 몰라요 ㅎㅎ
이 책에 이어령 님의 좋은 말씀은 많은데 금방 까먹는 제 머리가 한스럽네요..^^
주말도 휙 가버렸는데, 마힐 님, 새로운 한 주는 즐겁고 행복하고 시원한 한 주 되시길 바래요..~~

이환한 2024-09-01 1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홀릭님 자제분들이 건강히 잘 자라길 기원합니다.
독서편지 쓰느라, 습해서 올해는 더 고생하셨을 듯합니다(량이 압도적이네요 우아앙..^^).
션한 맥주래두 하면서 쓰셔요. 6캔 두잇!^^

bookholic 2024-09-02 23:08   좋아요 0 | URL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9월이 되었다고 그래도 날씨가 좀 선선해졌습니다...
이환한님도 즐거운 가을날 되시길 바랍니다.. 시원한 맥주와 함께요..^^
 















(21)

밖에서는 가끔 자동차가 지나가는 소리, 젊은이들이 허공에 대고 고함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언제 나는 그런 소리를 내는 사람이 아니라 듣는 사람이 된 것일까? 나는 늦은 밤이 의자에 앉아 나 자신에게 종종 그런 질문을 하고 술을 홀짝이며 마음의 평안을 느꼈다. 하지만 어쩐지 더 큰 목적에 이탈해 표류하는 기분, 세상과 단절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벽 바로 뒤에서 그림자가 솟아오르고 더욱 거대한 부재의 울림이 메아리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예전에 지녔던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혹은 버려두고 떠나왔다는 느낌이 늘 있었다. 이런 기분을 아내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눈을 감고 다시 쇼팽 음악에 집중했다. 이제는 다른 곡이었다. 녹턴, 섬세한, 서정적인, 부드러운.

 

(26)

그때의 우리가 어떻게 알았겠어? 그 모든 게 변한다는 것을, 그런 우리가 영원할 순 없다는 것을, 첫 아이가 태어나면 담배가 영원히 사라지고 둘째 아이가 태어나면 와인과 심야의 여유도 사라진다는 것을. 이제 우리가 함께하는 인생은 더욱 풍부해지고, 사랑과 선의는 두 배가 되고, 집안에는 더 많은 사람과 더 많은 웃음과 더 많은 재미가 있겠지만 결국 우리는 줄어들겠지.

 

(92)

지금까지 여러 달을 지나는 동안에도 우리는 계속 기다려온 것만 같았다. 이 회색 지대를 부유하면서 어떤 미래가 올지 모르는 채로 모든 결과를 조마조마 걱정하고, 혼자 있는 순간에는 요즘 우리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는 어떤 느낌을 견디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의 몸이 엄청나게 허약하며, 갑작스럽고 불가해한 방식으로 우리를 배반할 수도 있다는 느낌이었다.

 

(126)

모두가 카메라 쪽으로 고개를 돌린 채 얼마나 추운지 보여주려고 입김을 불고 있고, 우리의 숨결은 안개처럼 공기 중에 서린 채 멈춰 있다. 그 사진의 재미있는 점은 맥두걸 스트리트의 그 오래된 아파트가 겨울에 얼마나 추웠는지는 기억이 나지만-난방장치가 늘 고장났다-그날이 언제였는지, 그 사진을 누가 찍어주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궁금해진다. 그런 사소한 것들이 얼마나 많이 내 머릿속에서 사라져버렸을지, 그런 사소한 기억들이 얼마나 많이 지워져버렸을지.

 

(127)

참 이상한 일이다. 마흔세 살이 되었는데 미래가 어떻게 될지 전혀 모르다니, 삶의 어느 시점에 잘못된 기차에 올라타 정신을 차려보니 젊을 때는 예상하지도 원하지도 심지어 알지도 못했던 곳에 와버렸다는 걸 깨닫다니. 꿈에서 깨어났는데 그 꿈을 꾼 사람이 자신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는 것과 비슷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187)

아까 애들 얘기할 때 말이에요. 내가 하지 않은 말이 있는데, 아이들이 있으면 가장 좋은 점 중 하나는 잡다한 데 신경을 쓰지 않게 된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나요?” 개릿이 나를 보았다. “애들이 생기기 전에 나는 경력에 온 신경을 쏟았는데-정말로 그 생각밖에 안 했는데-그러면 너무 비참해졌죠. 그런데 지금은 전혀 신경 안 써요. 그 사소한 문제들, 알잖아요, 그 자잘한 문제들-학과 내 정치라든가 그런 것-그건 그냥 잊게 돼요.”

 

(232)

이 식당 밖의 세상에서 내 인생은 혼란 그 자체였다. 집에 어린아이가 둘 있어서 아내와 나는 잠을 거의 못 자고 심지어 대화도 거의 하지 못했다. 하지만 여기 이 식당에 있으면 그 모든 것이 사라졌다. 나는 사십오 분 동안 수프를 먹고 신문을 읽고 가끔은 와인을 마시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식당은 어둡지만 편안했고, 배경음악은 주로 경쾌한 어쿠스틱 멕시코 음악으로 1930년대와 1940년대에 나온 오래된 곡들이었다. 손님들도 대체로 나이가 많거나 그렇게 보이는 이들, 모르긴 해도 이십 년, 삼십 년 동안 이곳에 드나들었을 사람들이었다.

 

(267)

그해 봄에는 나이들어간다는 것을 한층 실감했다. 물론 거울을 보면 바로 느낄 수 있는 사실이었지만 다른 곳에서도 느꼈다. 예컨대 슈퍼마켓에서 젊은이들 사이를 걷고 있으면 아무도 나를 의식하거나 쳐다보지 않았다. 가장 큰 슬픔은 바로 그런 인정의 부재에서 왔던 것 같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 현실, 유령이 되어 세상을 살아나가는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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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스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10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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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 10번째 <폴리스>를 읽었단다. 처음 해리 홀레 시리즈를 읽고 나서 잔인한 묘사에 읽기 불편하기도 했지만 스릴러 소설을 좀 읽는 아빠의 취향에 맞아서 하나 둘 읽게 되더구나.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락밴드 출신의 독특한 지은이 이력에, 낯선 노르웨이 작가라는 점도 관심을 계속 갖게 되었어. 이번까지 해리 홀레 시리즈 10권 중에 실망한 작품들도 몇몇 있지만, 손을 못 끊게 되더구나. 지금까지 12권까지 출간되었는데 그 12권이 마지막인지 계속 출간되는지는 12권까지 읽어봐야겠구나.

아무튼 오늘은 해리 홀레 시리즈의 열 번째인 <폴리스>라는 책을 이야기해줄게. 이 소설 또한 기존 해리 홀레 시리즈처럼 잔인한 범죄 장면도 나오는 하드 코어 스릴러로 너희 같은 순진한 10대가 읽기에는 좀 적당하지 않은 듯 해. <폴리스>는 해리 홀레 시리즈 9권인 <팬텀>과 쭉 이어지게 된단다. <팬텀>의 마지막 장면에서 해리 홀레가 총에 맞으면서 끝났잖니. 그것도 사랑하는 여인의 아들이고 아들처럼 사이가 좋았던 올레그한테 말이야해리 홀레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끝이 났는데 해리 홀레 시리즈인데 설마 죽었겠냐고 아빠가 이야기했던 것 같구나. 10 <폴리스> 첫 부분에 병실에 혼수상태로 빠져 있다가 암살당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지은이 요 네스뵈는 그 사람의 정체가 마치 해리 홀레인 것처럼 서술해서 읽는 이에게 혼동을 주기도 했지만, 좀 읽다 보면 그 사람은 해리 홀레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단다.

 

1.

그럼 이야기를 시작해 볼게. 안톤 미테트라는 경관은 중요한 환자가 있는 병실을 지키는 임무를 하고 있었어. 실예라고 하는 경찰 대학 학생에게 근무 교대를 하고 퇴근하려고 했으나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는 연락을 받고 현장에 출동했단다. 안타깝게도 이번 살인 사건의 희생자는 경찰이었어. 이미 그곳에는 많은 경찰들이 출동했어. 아무래도 동료 경찰이 희생되었다 보니 평상시보다 많은 경찰들이 출동한 것 같았어. 총책임자인 군나르 하겐도 와 있었고 과학 수사관 베아테 뢴도 와 있었어. 이들은 해리 홀레 시리즈를 읽은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이름이겠구나. 경찰청장 미카엘 벨만도 이 사건에 관심을 가졌어. 그런데 전작 <팬텀>에서 미카엘 벨만이 정직 중인 동료 트롤스와 함께 마약 밀거래와 연루되어 있었잖니.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이들은 몇 안 되는데 그 중에 해리가 있었고 말이야.

이 사건이 있고 얼마 후 또 경찰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어. 첫 번째 피해자와 연관성은 없었지만 두 살인 사건의 공통점이 있었단다. 예전에 있던 미제 살인 사건의 장소에서, 그 미제 살인 사건과 연관된 경찰들이 동일한 날짜에 살해당한 거야. 그래서 경찰들은 다음 살인 사건의 타켓을 예전에 발생했던 미제살인사건에 초점을 맞췄어. 그런데 두 미제 사건 중 한 사건의 용의자였단 발렌틴이 감옥에서 다른 사람을 죽이고 자신이 죽인 것처럼 꾸민 다음 탈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 발렌틴이 최근 일어난 경찰 연쇄 살인 사건에 연루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추적했단다. 그리고 이 사건의 전담할 소수 조직을 결성했어. 카트리네, 군나르, 베아테, 베에른이 그들이고 그들을 도와줄 심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 스톨레도 합류했단다.

그들은 이 자리에 없는 한 사람을 생각했지. 바로 해리 홀레. 아직 해리 홀레가 어떻게 되었는지 안 나왔단다. 병실에 누워 있는 사람이 해리 홀레인 것 같았지만 이미 아빠가 이야기했듯이 그 사람은 해리가 아니었어. 그들은 카트리네가 리더가 되어 비밀리에 조사를 했어.

얼마 후 중요한 환자가 있는 병실을 지키던 안톤 미테트가 누군가 약물을 탄 커피를 마시고 잠에 빠져 들었고 그 사이에 환자가 죽고 말았단다. 그런데 그 환자는 자연사한 것으로 결론이 났어. 하지만 안톤은 자신이 잠든 사이에 죽었다는 사실을 처음에는 이야기하지 않았다가 사실대로 이야기해야겠다고 상관인 군나르에 이야기를 하려고 했으나 군나르와 연락이 되지 않았어. 그런데 얼마 후 그는 누군가에게 그만 살해당하고 말았단다. 안톤도 미제 살인 사건과 연루되어 있었는데 바로 그 살인 사건이 있었던 날 동일 장소에서 살해 당한 거야. 세 번째 경찰 연쇄 살인이 일어난 거지.

 

2.

드디어 해리가 출현했단다. 올레그가 총을 쐈을 때 다행히 해리는 방탄조끼를 입고 있어서 살 수 있었단다. 해리는 사랑하는 라켈과 평범한 삶을 살겠다고 약속을 하고 은퇴를 했단다. 그리고 지금은 경찰 대학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었어. 올레그가 자신을 쏜 사실은 경찰에 이야기하지 않았어. 올레그도 자신이 한 짓에 반성을 하고 마약 치료를 받겠다고 했어. 라켈은 스위스가 일하고 있어 올레그도 스위스에서 치료받고 라켈은 주말에만 노르웨이로 와서 해리와 함께 지냈단다. 어느날 베아테와 카르리네가 해리를 찾아와서 최근 발생한 경찰 연쇄 살인 사건에 대해 함께 하자고 도움을 요청했어. 해리는 자신은 더 이상 경찰은 하지 않겠다고 거절했고, 사건을 해결할 만한 실마리를 주었단다. 해리에 조언에 따라 경찰은 다가올 미제 살인 사건 발생일에 덫을 놓고 준비를 했단다.

한편 해리에게는 고민거리가 하나 있었어. 제자 중에 실예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기억 나지? 첫 부분에 병실을 지켰던 그 경찰 대학 학생. 그 실예가 해리에게 적극적으로 대쉬를 하는 거야. 그런 실예를 단호하게 거절했더니 오히려 실예는 변호사를 데리고 와서 해리에게 강간당했다고 했어. 해리의 동료 대학 교수 중에 아르놀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런 상황을 많이 경험했는지 사전에 해리에게 이것저것 준비를 하라고 했고 이에 해리는 자신의 결백을 완벽하게 증명할 수 있었고 오히려 실예가 이 일로 학교를 그만 두어야 했단다.

한편 경찰이 덫을 파 놓은 과거 미제 살인 사건이 있었던 날파 놓은 덫에 걸리지 않고 의외의 곳에서 사건이 발생했단다. 해리의 친한 동료인 과학수사관 베아테 뢴이 잔인하게 살해당한 거야. 어린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말이야. 지은이가 너무 잔인한 설정을 했구나. 오랫동안 해리의 동료로 해리 홀레 시리즈에 자주 출현한 사람이었는데 이렇게 죽게 그만 두다니 말이야. 해리와 베아테의 동료 경찰들은 큰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어. 베아테의 죽음은 해리를 복귀하게 할 수 밖에 없었단다. 해리는 복수심을 가득 채우고 경찰에 복귀하게 된단다.

소설의 지은이는 여려 사람이 용의자 선상에 올려 두면서 소설을 진행해 나갔어. 그 중에 가장 강력한 용의자는 앞서 이야기한 발렌틴이었어. 발렌틴의 집 천장에 오래된 시신이 발견되거나 다른 사람으로 위장하여 스톨레의 환자로 진료를 받다가 스톨레를 칼로 위협하다가 도망을 가는 등 말이야. 하지만 요 네스뵈의 소설을 읽다 보면 이런 사람은 실제 범인은 아니었어. 범인이 아닐 것 같은 사람 중에 진범이 있었지. 물론 발렌틴의 집 천장에서 시신이 발견되었으니 그 사람도 흉악범이긴 하지. 하지만 이번 경찰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이 아닐 확률은 높다는 거야.

그리고 두 번째 용의자로 자주 그려지는 사람은 앞서 이야기했던 전직 경찰 트롤스였어. 트롤스는 경찰총장인 미카엘과도 연관이 되고, 조사를 하다 보니 실예와도 연결고리가 있었어. 그렇다 보니 이 세 사람이 이번 사건과 연관되어 있을지 모른다고 사건 전개를 하게 된단다. 하지만 진범은 이들도 아니야. 예상치 못한 인물, 별로 사건과 관련이 없어 보이는 사람, 그 동안 해리와 경찰들에게 호의를 보였던 사람, 그 사람이 소설 뒷 부분에서 범인으로 짜잔하면서 나오게 된단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이야기하지는 않을게.

한가지 걱정은 시간이 흘러서 아빠가 이 리뷰 독서 편지를 다시 봤을 때 아빠도 범인이 누군인지 기억나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다시 읽기에는 책이 너무 두껍고 말이야. 읽은 지 두어 주 지난 지금도 줄거리가 헛갈리는데 말이야. 아무튼 해리 홀레 시리즈의 열 번째 소설도 그렇게 끝이 났단다. 예상치 못한 사람 중에 범인이 있다는 규칙을 지키면서 말이야. 그 규칙이 오히려 범인을 예상하기 쉽게 만들기도 하더구나. 해리 홀레 시리즈가 비슷비슷하여 어떤 게 어떤 작품인지 좀 헛갈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남은 해리 홀레 시리즈를 마무리를 해야겠지. 나중에 또 읽고 이야기해줄게. 그런데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노르웨이에 이런 잔인한 살인 사건이 실제로도 많이 일어나나? 궁금하네.

 

PS,

책의 첫 문장: 그것은 그 안에, 그 문 뒤에 잠들어 있었다.

책의 끝 문장: 모든 것이 이렇게 끝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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