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4-315)

미국에서는 강꼬꾸징(韓國人)이니 조센징(朝鮮人)이라는 게 없었어. 왜 내가 남한 사람 아니면 북한 사람이 돼야 하는 거야? 이건 말도 안 돼! 난 시애틀에서 태어났어. 우리 부모님은 조선이 분단되지 않았을 때 미국으로 갔고.” 피비가 그날 하루 동안 편협한 대우를 받았던 일들 가운데 하나를 소리 높여 이야기했다. “왜 일본은 아직도 조선인 거주자들의 국적을 구분하려고 드는 거야? 자기 나라에서 4대째 살고 있는 조선인들을 말이야. 넌 여기서 태어났어. 외국인이 아니라고! 이건 완전 미친 짓이야. 네 아버지도 여기서 태어났는데 왜 너희 두 사람은 아직도 남한 여권을 가지고 다니는 거야? 정말 이상해.”


(327-328)

솔리, 솔리. 그러지 마. 변명할 필요 없어. 조선인들에게는 일반적인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아. 너희 아버지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파친코를 선택한 게 분명해. 아마 훌륭한 사업가겠지. 네 포커 기술이 무에서 나왔다고 생각해? 네 아버지는 후지나 소니에서 일할 수 있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런 회사에서는 조선인을 고용하지 않잖아. 알지? 어이, 컬럼비아 대학생 청년, 사실 너도 고용해줄지도 의심스러워. 일본의 많은 곳에서는 아직도 조선들을 교사와 경찰, 간호사로 고용하지 않아. 넌 돈을 많이 버는 데도 도쿄에서 방을 빌릴 수도 없잖아. 빌어먹을 1989! , 네가 그 모든 것을 공순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그건 잘못된 거야. 난 일본인이지만 멍청하지 않아. 미국과 유럽에서 오랫동안 살았어. 일본인들이 이 땅에서 태어난 조선인들과 중국인들에게 하는 짓은 미친 짓이야. 완전히 제정신이 아니야. 너희들은 혁명을 일으켜야 해. 그런데 그다지 항의를 하지 않잖아. 너와 네 아버지는 이 나라에서 태어났어. 그렇지?”


(361)

일본은 절대 변하지 않아. 외국인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내 사랑, 넌 언제나 외국인으로 살아야 할 거라고. 절대 일본인이 되지 못해. 알겠어? 자이니치(조선인)는 여행을 떠날 수 없는 거 알지? 하지만 너만 그런 게 아냐. 일본은 우리 엄마 같은 사람들도 다시 받아주지 않아. 나 같은 사람들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지. 우리는 일본인인데도 말이야! 난 병에 걸렸어. 오래된 무역회사를 운용하는 어떤 일본이 남자한테서 옮은 병이야. 그 남자는 죽었어. 하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지. 여기 의사들도 내가 떠나버리기를 바라고 있어. 잘 들어, 솔로면, 넌 여기 머물러야 해. 미국으로 돌아가서는 안 돼. 네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아야 해. 부자가 되면 무엇이든 원하는 걸 할 수 있어. 하지만 아름다운 솔로몬, 저들은 우리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절대 하지 않아.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어? 하나가 솔로몬을 노려보았다. “내가 말한 대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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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 1 - 5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5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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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콜린 매컬로의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의 제 5 <카이사르> 1권을 읽었단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올해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 남은 부분 다 읽기로 했잖아. 5 <카이사르>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겠구나. 아무래도 전체 시리즈의 주인공인 카이사르니까 말이야. 그의 대활약상이 기대되는 5 <카이사르>. 이미 여러 책들에서 카이사르를 만나보았지만, 또 색다른 재미가 있었구나. 공화정의 많은 원로원 의원들의 카이사르에 대한 열등감이 없었다면, 로마는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단다.

, 그러면 <카이사르> 1권의 이야기를 해줄게. <카이사르> 1권의 이야기는 기원전 54 1월부터 기원전 52 4월까지의 이야기란다.


1.

<카이사르> 1권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갈리아 속주로서 갈리아 지역을 평정하고 로마 최초로 바다 건너 오늘의 영국 땅인 브리타니아 원정 중인 이야기부터 시작한단다. 당시 브리타니아는 갈리아와 마찬가지로 여러 부족들이 있었어. 그 중에 트리노반테스족의 왕 만두브라키우스는 카이사르의 협조를 선택하게 된단다. 그 나름대로 자신과 자신의 부족에 이익이라고 생각했던 거야. 카이사르는 열심히 브리타니아 정벌에 힘을 썼고, 멀리 로마의 소식은 폼페이우스가 보내주는 편지로 받아보고 있었단다.

폼페이우스. 나이는 카이사르보다 많지만, 카이사르의 어린 딸과 결혼해서 지금은 카이사르의 사위잖아. 지난 <카이사르의 여자들>에서 카이사르, 폼페이우스, 크라수스와 삼두정치를 했었지. 그만큼 폼페이우스는 親 카이사르파였어. 그리고 폼페이우스는 자의 80, 타의 20의 현 로마의 일인자이기도 하고로마의 소식은 그리 좋은 소식은 별로 없었어. 反 카이사르파의 대표주자인 카토 법무관이 법의 잣대를 너무 타이트하게 들어대며 원로원 의원들을 괴롭힌다는 소식, 시인 카툴루스의 사망 소식. 크라수스가 시리아 속주가 떠난 소식 등그리고 카이사르가 궁금해하는 식구들 소식들도 있었어.

그런데 어느날 받은 폼페이우스의 편지는 눈물 자국이 가득한 편지로 읽기 전부터 불길했단다. 이내 그 이유를 알게 되었지. 자신의 사랑하는 딸 율리아가 아이를 낳다가 죽었다는 거야. 이제 스무 살도 안 된 딸의 죽음아버지가 어떻게 견딜 수 있겠니. 하지만, 현재는 자신의 임무로 그 먼 로마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었단다. 그 슬픔을 참고, 지금의 자신의 책임과 의무에 충실할 수밖에 없었어.

=====================

(82-83)

하지만 율리아를 잃은 고통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터였다. 카이사르는 크라수스와 달랐다. 돈은 카이사르의 목적이 아니었다. 그것은 존엄을 드높이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정무관 직의 사다리를 오르며 끊임없이 빚에 시달렸던 끔찍한 몇 년 동안 카이사르가 배운 교훈은 어느 일에서나 무형의 자산인 존엄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이었다. 그의 존엄을 드높이는 것은 전부 그의 죽은 딸의 존엄을 드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다. 카이사르는 위안을 느꼈다. 카이사르의 노력 덕분에, 그리고 타고난 본능에 따라 세상에 사랑을 불어넣은 율리아 자신의 선행 덕분에 세상은 율리아를 기억하게 되리라. 율리아가 카이사르의 딸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위대한 폼페이우스의 아내였기 때문도 아니다. 그리고 그는 개선장군이 되어 로마로 돌아갈 때 원로원이 율리아에게 허락해주지 않은 장례 경기대회를 직접 개최하리라. 앞서 다른 이유로 원로원에서 당당히 단언했듯이, 카이사르는 그네들의 고환을 군홧발로 전부 밟아 으깨버려서라도 반드시 자신의 뜻을 관철할 터였다.

=====================

카이사르는 브리타니아 원정을 마치고 군단들을 데리고 다시 장발의 갈리아 지역에 도착했단다. 그곳에서 겨울을 나면서 정비하기로 했고, 자신들의 부하들을 갈리아 지역 각 영지로 보냈어. 카이사르의 주요 부하를 소개해 보면, 트레보니우스, 마르쿠스 크라수스, 파비우스, 퀸투스 키케로 등이었어. 퀸투스 키케로는 그 유명한 키케로의 동생인데, 처음에는 카이사르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서로 신뢰하는 그런 사이가 되었단다. 카이사르는 자신들의 부하들을 신뢰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다 보니, 그들의 부하들은 카이사르를 저절로 잘 따르게 되었단다.

갈리아 지역에서 많은 승리로 전리품을 많이 얻어서 그와 그의 부하들은 부자가 되었고, 로마에서 카이사르의 위상이 많이 올라갔단다. 反 카이사르파에서 가장 싫어하는 일이지. 자신들의 나라의 번성보다 카이사르가 잘 되는 꼴은 절대로 볼 수 없는 인간들이니까 말이야. 그런 이들이 의외로 많았단다. 로마 원로원이 오래되다 보니 로마를 생각하는 것보다 자신의 이익을 더 중시하는 것 같았단다. 어찌 정치하는 이들이 義가 아니고 利를 생각하는가. (문득 얼마 전 읽은 맹자가 생각나는구나.^^)

카이사르는 고민이 하나 있었어. 율리아의 죽음 이후 과연 폼페이우스와 계속 친분을 유지할 수 있을까?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의 친분의 팔 할은 율리아에 의한 것이었거든. 카이사르도 그걸 처음부터 노리고 자신의 딸 율리아를 폼페이우스와 결혼시킨 것이고 말이야. 폼페이우스가 로마에서 영향력이 크긴 하지만, 그의 그릇은 밥그릇 수준이라고 할까? 아주 작았어. 그 이유는 나중에 이야기해줄게.

슬픈 소식은 율리아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단다. 카이사르의 한 평생 큰 버팀목이자 후원자였던 엄마 아우렐리아마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받았단다. 율리아가 그렇게 죽고 난 이루 아우렐리아는 삶의 의미를 잃고, 괴로워만 하시다가 돌아가셨다고 했어. 이번에도 로마로 곧바로 돌아올 수 없었단다.


2.

카이사르의 갈리아 정벌은 침략이 아니었단다. 그들을 로마化하여 로마를 넓혀가는 정책이었던 거야. 카이사르는 그것이 로마와 갈리아 양 진영의 평화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최선이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갈리아 지역에는 여러 부족들이 있는데, 그들은 서로 간에도 적대적이어서 이를 잘 활용하면 쉽게 로마색을 칠할 수 있었단다. 때론 전쟁으로 차지하고 했지만, 때로는 전쟁 없이 차지하기도 했단다. 그런 이야기를 카이사르는 모두 글로 기록하였는데, 그것이 나중에 로마에서 책으로 출간되어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는구나. 그 책은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우리도 볼 수 있단다. 아빠도 오래 전에 읽은 기억이 있구나.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말이야.

카이사르는 로마의 공화정에 대해 자부심이 무척 사람이었단다. 그런 공화정 체제로 인해 로마가 오랫동안 무너지지 않고 이어졌다고 생각했어. 왕정은 구시대의 유물이라면서 말이야.

=====================

(174-175)

리안논, 로마는 왕을 세우지 않소! 나 역시 로마에 왕이 서는 걸 동의하지 않고! 로마는 공화국이고 그 역사가 500년에 이르오! 나는 로마의 일인자가 될 것이지만 그렇다고 로마의 왕이 되겠다는 뜻은 아니오. 왕정은 구시대의 유물이오. 심지어 당신네 갈리아인들도 깨닫고 있는 사실 아니오. 나라는 선거 제도를 통해 바뀌는 사람들이 운영해야 더욱 번영하는 거요.” 그가 뒤틀린 미소를 지었다. “능력 있는 사람들이 최고의 인물이 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선거요. 때로는 최악의 인물이 될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

(200-201)

아니.” 카이사르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아니오. 로마라는 거대한 행렬의 한 부분일 뿐이오. 중요한 부분이라는 건 나도 알고 있소. 훗날 사람들이 가장 위대한 부분으로 기억해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고. 하지만 나는 여전히 전체의 일부일 뿐이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었을 때 마케도니아는 죽었소. 그의 나라는 그와 함께 사라졌소. 그는 스스로를 왕으로 생각했기에 그리스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버리고 제국의 중심을 다른 곳으로 옮겼소.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나라가 위대했던 것은 오르기 알렉산드로스 대왕 때문이었소. 그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했고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갔소. 그는 왕이었으니까, 베르킹게토릭스! 그는 자기 자신을 목적으로 착각했소. 그 목적이 결실을 거두려면 그는 영원히 살아야 했을 거요. 반면 나는 내 나라의 종복이오. 로마는 로마가 낳은 그 누구보다도 훨씬 위대하오. 내각 죽더라도 로마는 계속 다른 위대한 인물들을 낳을 것이오. 내가 떠날 때 로마는 내가 오기 전보다 더 세고 더 부유하고 더 강력해져 있을 것이오. 내 뒤에 올 자들은 내가 남김 업적을 활용하고 향상시킬 것이오. 민주주의에서는 바보와 현자가 늘 공전하지만, 전반적으로 왕가의 계보보다는 낫소. 위대한 왕이 하나 나오려면 보잘것없는 왕을 열 명은 거쳐야 하니까.”

=====================

그의 말은 아빠도 인정한단다. 간혹 민주주의 공화정보다 어떤 똑똑한 사람에 의한 엘리트 정치가 나을 수도 있겠다 싶지만, 그 똑똑한 사람이 죽고 나면 나라가 쫄딱 망하는 사례를 여러 차례 봤기 때문에, 그보다는 그나마 시스템으로 받쳐주는 민주주의 공화정이 낫다고 말이야.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원로원 분들은 마음에 썩 안 드는구나. 미래에 어떤 것이 중요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잘 모르고, 오직 권력 투쟁만 하는 것처럼 보여서 말이야. 안타깝구나. 이야기가 잠시 딴 곳으로 빠졌는데, 다시 이야기를 할게

갈리아 여러 영지로 부하들을 보냈다고 했잖아. 모든 부하들이 똑똑할 수는 없어. 13군단 퀸투스 사비누스는 갈리아의 한 부족의 계략에 넘어가 전멸하고 말았단다. 갈리아 부족을 로마化하고 있지만, 아직 저항하는 부족들도 많단다. 13군단을 속임수를 써서 전멸시킨 이는 암비오릭스라는 사람인데, 그는 퀸투스 키케로에게도 같은 작전을 썼어. 하지만, 퀸투스는 안 넘어갔어. 그래서 암비오릭스는 수만 갈리아 군대를 이끌고 공격했어. 퀸투스 키케로가 관리하고 있던 영지는 고립되어 위기에 빠졌단다. 카이사르에게 전령을 보내려고 했지만 번번히 실패를 했고, 네 번째 만에 성공을 해서 카이사르가 지원에 나섰단다. 그로 인해 퀸투스를 공격하는 갈리아 군대를 쫓아낼 수 있었단다.


3.

잠시 로마로 시선을 돌려서 로마에서는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이야기해줄게. 로마 원로원은 혼란의 시기를 겪고 있었단다. 해가 바뀌었는데도 아직 집정관을 비롯한 모든 공직들을 뽑지 못하고 있었어. 그래서 원로원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집정관 대리 역할인 섭정관을 하고 있었어. 아무튼 혼란의 로마원로원이었어.

율리아가 죽고 폼페이우스는 다시 혼자가 되었잖아. 보니 파(대표적인 反 카이사르 파의 모임, 기억나지?)의 메텔루스 스키피오가 폼페이우스를 찾아왔어. 다른 것을 논의하려고 온 척 했지만, 그의 속셈은 자신의 딸을 폼페이우스에게 소개시켜주려는 것이었어. 카이사르가 그랬던 것처럼 폼페이우스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려고 말이야. 속 좁은 폼페이우스는 쉽게 그 말에 귀를 기울였단다. 이런 움직임을 모르는 카이사르도 폼페이우스를 다시 자신과 혈연 관계를 만들려고 했어. 그래서 폼페이우스에게 편지를 썼단다. 이번에는 카이사르 자신이 폼페이우스의 사위가 되겠다고.. 그러기 위해서는 폼페이우스의 딸도 이혼을 해야 하고, 카이사르 자신도 이혼을 해야 했어. 그 뿐만 아니라 카이사르의 먼 친척 딸이 폼페이우스와 결혼하면 좋겠다고 했어. 이미 스키피오의 딸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폼페이우스는 이 편지를 받고 격노했단다. 자신을 비천한 가문의 딸과 결혼시키려고 한다고쯧쯧..

별난 행동을 좀 많이 하는 클로디우스라는 사람이 있어. (그의 이전 이야기는 <카이사르와 여자들>의 독서편지를 참고하렴.) 아내가 로마 최고의 부자 중에 한 명인 풀비아였고 말이야. 원로원이 된 그는 원로원에서 좀 별난 정책들을 내놓았단다. 별나다고 해서 그것이 그른 것은 아니고 다른 원로원들과 다른 정책들이었어. 좀 개혁 진보적인 정책이라고나 할까? 예를 들어, 해방노예에게 더 많은 권리를 주자고 했어. 하지만 그에게는 속셈이 있었지. 해방 노예에게 권리를 더 주면서 자신의 지지세력을 확보하고, 호민관 10명을 모두 자신의 측근으로 만들어서 결국 로마를 지배하려는 야심이 있었어. 그의 이런 정책을 반대하는 보수파 원로원들이 많았어. 그 중에 말로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우연히 길에서 말로와 클로디우스가 마주쳤단다. 클로디우스에게 화가 잔뜩 나 있던 말로는 시비가 붙고 클로디우스를 죽였단다.  

이후 말로는 범행 사실을 부정했단다. 나중에 말로는 결국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키케로가 그의 변호를 맡게 되었단다. 폼페이우스가 사전에 키케로를 찾아와 협박을 했더니, 유능하지만 겁쟁이인 키케로는 재판에서 한 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고, 말로는 유죄 판결을 받고 추방을 당하게 되었단다.

….

폼페이우스는 권력욕이 대단한 사람이었는데, 反 카이사르 파인 보니 파는 이걸 이용했어. 폼페이우스에게 독재관을 제안해보니 그건 거절을 했어. 폼페이우스가 권력욕이 있지만, 독재관은 아니다 싶었거든. 독재관이었던 술라의 끝이 어땠는지 알고 있거든그래서 보니 파는 폼페이우스에게 동료 없는 집정관을 제안했어. 이건 합법적이면서, 권력을 최대한 가질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해서 폼페이우스는 받아들였단다. 그리고 폼페이우스는 결국 스키피오의 딸과 결혼했단다. 뻔히 카이사르와 보니 파의 관계를 알고 있으면서, 보니 파의 유혹에 이렇게 쉽게 넘어가다니, 진짜 그의 그릇은 밥그릇도 아니고 간장 종기 수준이구나. 권력욕이 심했던 폼페이우스는 로마에서 인기가 점점 올라가는 카이사르를 점점 미워하는 마음도 커졌을 거야. 다른 원로원 의원들처럼 카이사르에 대한 열등감이 점점 커져만 갔던 거지….

….

여기까지가 <카이사르> 1권의 이야기란다. 밀린 독서 편지 만회하려고 짧고 굵게 이야기하려는데, 그것도 능력인 것 같구나. 짧으면서 전체 핵심을 잘 전달하는 것 말이야. 오늘도 주저리주저리 쓰긴 했는데, 앞뒤 안 맞는 부분도 있고... 너희들이 잘 이해하면서 읽었으리라 믿는다.^^


PS:

책의 첫 문장: 카이사르가 주요 부대들을 이끌고 브리타니아에 가 있는 동안에는 꼭 긴급한 전갈만 그리로 보내라는 명령이 있었다.

책의 끝 문장: 친애하는 키케로, 당신이 이대로 연설할 만큼 강심장이었다면 지금 이 순간 나는 마실리아의 수염숭어를 즐길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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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7-24 07:0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마스터스 오브 로마 검색해보니 무려 25권짜리 세트네요. 덜덜~ 북홀릭님 완전 홀릭이십니다 👍👍

bookholic 2021-07-24 14:27   좋아요 5 | URL
도끼 선생님 전집을 읽으시는 새파랑님에 비하면...^^ 이번 주말도 즐독하세요~~

그레이스 2021-07-24 07:4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작가 매컬로우는 로마의 1인자 쓰다가 중단하고 별세한걸로 아는데... 계속 책이 나오는건 다시 시리즈로 제목 달고 나오는것 같네요.
제가 제일 안타까워 하는 작가예요 ㅠ

bookholic 2021-07-24 14:29   좋아요 5 | URL
그야말로 혼신을 다하신 작품 같아요... 늦게나마 매컬로님의 명복을 빕니다..

scott 2021-07-24 16:2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북홀릭님
‘마스터스 오브 로마‘
제가 아끼는 시리즈물

작가가 이거 집필하는데 열중 하다가 시력까지 ㅜ.ㅜ

25권 완독 응원합니다!!

bookholic 2021-07-24 20:23   좋아요 2 | URL
고맙습니다~~~ 꼭 완독하겠습니다~~^^

바람돌이 2021-07-25 02: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헉 벌써 5부라니....
저는 5부까지 읽고 그 때 6부 나오길 손꼽아 기다리다가 기다리기만 했어요.
올 여름에 6부와 7부를 읽을 예정인데 우리 같이 읽어요. ^^
근데 북홀릭님이 더 빨리 읽으실듯..... ^^

bookholic 2021-07-26 06:12   좋아요 0 | URL
저의 계획은 가을에 6부, 겨울에 7부입니다~~
바람돌이님께서 먼저 읽고 리뷰 부탁드려요~~^^

bluebluesky 2021-07-25 06: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꾸준하시네요.
전 이제 풀잎관 2까지 완독;;

bookholic 2021-07-26 06:12   좋아요 1 | URL
bluebluesky님도 쉬업쉬엄 끝까지 달려보아요~~^^
 















(20-21)

알렉세이는 도스토옙스키의 여러 작품에 등장하는 이름이지만 그중 대표를 꼽으라면 역시 그의 마지막 작품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의 알렉세이를 들어야겠다. 까라마조프 씨네 막내아들이자 참으로 비현실적이어서 기이하게 다가오는 캐릭터. 모두의 벗이자, 형제 같은 사람. 남녀노소 불문, 한 번이라도 그를 만나면 금세 사랑하게 만드는 마성의 남자. 누군가를 어떤 이유로도 비난하지 않으며, 그가 모든 이의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믿게 만드는 사람. 그렇기에 부도덕하기 짝이 없는 그의 혈육들도 알렉세이만은 자신들과 다른 카테고리에 넣는다. 그러곤 모두 그에게 고백하고, 이해받길 원한다.


(48)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프로가 되는 지름길이며 또 그것만큼 인생에 도움이 되는 조건도 없다. 그렇게 산다 해서 모든 일이 잘되진 않겠지만 모른 채 산다면 자신을 더 힘들게 할 선택을 하게 될 것만은 분명하다. 잘 맞지 않은 회사에 아무 문제의식도 없이 입사하고 퇴사하기를 반복했던 나처럼 말이다.


(74-75)

물론 성숙한 인간이라면 죽는 순간까지 섣불리 자기 생각을 말하기보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세상 돌아가는 것도 살피며 진상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나 역시 성숙한 인간이 되고 싶다. 하지만 시대가 계속 변하고 있다는 사실, 그 변화 속도를 내가 따라가지 못해 때로 꼰대적 발상과 발언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 받아들이기로 했다.


(102)

나는 자신만의 소박한 일상을 잘 지켜 나가면서도 품위 있고, 지적이며, 편안하고 자유롭게 관계를 맺는 이를 몇 알고 있다. 나는 그 사람들이 내적 자산을 비교적 쉬이 갖출 수 있는 환경에서 살아온 이들보다 대단해 보이고, 그래서 그들을 만날 때마다 질투하고 부러워한다. 그렇게 부러워하다 보면 나도 어느 정도는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 말은 어쩌면 틀렸다. 부러우면 이기는 건지도 모른다.


(171)

UCLA에서 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참가자들에게 호감에 관련된 500개가 넘는 형용사에 점수를 매기게 했다. 다음 중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한 형용사는 무엇일까?

(1) 지성적인(intelligent)

(2) 타고난 매력이 있는(attractive)

(3) 사교적인(gregarious)

(4) 진심의(sincere)


(182)

솔직함은 그 내용이 자기 자신일 때 빛을 발한다. 타인의 장점을 인정하고 칭찬하는 것도 호감을 얻는 방법이겠지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내보이는 용기에 타인의 마음은 더 크게 움직이지 않을까. 상대에게 자신도 진심을 내보여도 안전하겠단 느낌을 주니 말이다.
따라서 사람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고 싶다면 자기 자신을 잘 알 것, 그런 자신을 받아들일 것, 솔직함의 대상을 자기 자신으로 둘 것.


(193)

도스토옙스키 소설을 읽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한 사람을 긴 풀 네임, 약칭, 여러 애칭으로 불러서 누가 누구인지 판단하는 데 시간이 걸리도록 하는 불친절함, 하루 이틀 밤 이야기를 1000쪽 이상의 분량으로 풀어내는 집요함과 심오함에 임하기가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대체 내가 왜 이 인간 소설을 이렇게 파고 있나 회의감을 느낄 즈음이었다. 도스토옙스키가 날 대체 뭘로 보는 거냐며 뒤통수를 한 대 쳤다. <스쩨빤치코보 마을 사람들>이란 소설을 통해서였다.


(206)

도스토예스키 장편 <노름꾼>은 여러 가지로 유명하다. 장편 <죄와 벌>을 쓰는 동안 27일 만에 완성했다는 것, 그것도 구두로 완성한 소설을 속기사 안나가 문자로 옮겨 출판사로 넘겼으며, 그 뒤 도스토예스크의 청혼으로 두 사람이 결혼했다는 것, 이 소설을 쓸 당시 작가 자신도 도박으로 인해 돈에 쪼들리며 급하게 완성했다는 사실 등 제목만큼이나 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가 많다.


(214)

그렇다고 해서 삶의 주도권까지 내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직장에서 누군가 나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해서 내 삶까지 좌우하려 할 때, 즉 내 삶의 주도권이 본인에게 있는 양 굴려 할 때 거절할 만한 지혜와 배짱은 필요하다. 그러자면 우선, 내 인생의 모든 행운과 불운을 스스로 만들어 가고 감당하겠다는 주인 의식이 가장 필요하지 않을까. 물론 나는 아직 멀었단 걸 알았다. <노름꾼>의 가정교사의 대처에 정말 놀랐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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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7-21 08: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곧<스쩨빤치코보 마을 사람들> 읽으려고 하는데 뒤통수를 쳤다니 완전 기대되네요. 저도 이책 도선생님 책 다 읽고 읽어봐야겠어요 😊

페넬로페 2021-07-21 09:10   좋아요 3 | URL
다른분들은 어떠셨는지 모르지만 전 이 책 넘 재밌게 잘 읽었어요^^

scott 2021-07-21 14:53   좋아요 3 | URL
이책 컨셉도 좋고 도끼 선생님 작품과 사회인으로 마주 하게 되는 문제점들(개인과 조직)과 연결 시킨 점들이 좋았습니다.



bookholic 2021-07-22 05:05   좋아요 3 | URL
저도 도끼 선생님의 작품들을 많이 읽고 이 책을 읽었으면 더 공감했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오래 전에 읽은 두어권이 전부라서...
뭐, 그렇지 않아도 나쁘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도끼 선생님들의 책들을 좀 많이 읽고 이 책을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
 
빅 슬립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1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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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는 아빠가 가끔 읽는 고전 시리즈란다. 많이는 읽지는 않았지만, 아빠가 읽었던 책들은 다들 괜찮았어. 번역도 나름 잘 되어 있는 것 같았고 말이야. 그래서 간혹 살펴보곤 한단다. 이번에 읽은 레이먼드 챈들러라는 처음 보는 사람의 <빅 슬립>이란 책은 먼저 책 표지가 끌렸단다. 고전을 소개해주는 시리즈에 한 남자가 권총을 멋지게 뽑아 들은 그림이라니책 소개를 읽어보니 하드보일드 소설이라고 하는구나? 하드보일드라면 폭력이 난무하고, 중절모를 이들이 담배를 머금고 총 싸움하는 장면이 먼저 떠오르는구나.

지은이 레이먼드 챈들러라는 사람이 쓴 소설들은 나중에 누아르 영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하는구나. 이번에 읽은 <빅 슬립>은 그의 대표작으로, 아주 오래 전에 험프리 보가트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는구나. <카사블랑카>로 유명한 험프리 보가트. 엄마가 <카사블랑카>를 너무 좋아하셔서 알게 된 영화와 배우란다. 영화 <빅 슬립>에서 험프리 보가트의 상대 배역인 로렌 바셀이었는데, 둘이 실제로 결혼하기도 했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나이 차이가 25살 차이이고, 험프리 보가트는 세 번째 결혼이라고 하네. 더 깊은 사연을 찾아볼 생각은 없었고, 거기까지… <빅 슬립>을 인터넷 검색해 보니, 이런 이야기들이 있어서 그냥 이야기해보았단다.


1.

주인공은 필립 말로. 사설 탐정이야. 스턴우드라는 퇴역 장군의 의뢰를 받고 그의 집, 아니 저택을 갔단다. 스턴우드 장군은 늦게 딸들을 얻었는데 오냐 오냐 하면서 키워서 그런지 버릇없이 자라 말썽만 피우곤 했어. 첫째 딸은 비비언, 둘째 딸은 카멘. 비비언은 러스티라고 하는 전직 밀수업자와 결혼을 했어. 밀수업자라고는 하지만, 스턴우드가 신임을 갖고 있던 사위였는데,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 버렸단다.

스턴우드가 필립에게 의뢰한 것은 어떤 협박 편지를 조사해 달라는 것이었단다. 돈을 뜯어 내기위한 협박 편지였어. 그 협박 편지를 보낸 사람으로 알려진 가이거를 추적해 보았어. 가이거는 서점을 운영하는데 평범한 서점은 아닌 것처럼 보였어. 그의 집을 살피고 있는데, 안에서 들려온 총소리. 그리고 성급히 도망가는 누군가의 발소리. 필립은 그 집으로 들어갔는데, 그 안에는 예상치 못한 장면이 있었어. 가이거는 총에 맞아 죽어 있었고, 카멘이 그 집안에서 마약에 취해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단다. 스턴우드의 말썽쟁이 둘째 딸 카멘 말이야. 필립은 카멘을 우선 집에 데려다 주고 다시 가이거의 집으로 왔어. 그런데 가이거의 시신이 사라졌어. 아니, 어찌된 일이지?

다음 날 알고 지내는 검찰 지검장인 올즈의 전화가 왔어. 스턴우드의 차가 강에 빠져 있다고 말이야. 그곳에 가보니 차 안에 젊은 흑인이 죽어 있었단다. 살해당한 것인지, 자살한 것이지 아직 몰랐어. 그는 오웬 테일러라는 사람으로 스턴우드의 운전사로 밝혀졌단다. 의문의 살인 사건이 계속 일어나는데 그것이 협박 편지와 관련이 있는 것일까?

스턴우드의 첫째 딸 비비언이 필립을 찾아왔어. 누군가로부터 또 편지를 받았다고동생의 나체 사진을 가지고 있다면서, 원본을 돌려줄 테니 그 대가로 5천불을 요구했다는 거야. 필립은 다시 가이거의 집으로 가 보았어. 그런데 그곳에 카멘이 다시 와 있었어. 어제 일을 기억하는 것도 같았어. 그러면서 범인은 조 브로디라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했어. 필립이 가이거의 집에 있을 때, 에디 마스라는 건달이 찾아왔단다. 자신이 집 주인이라고 하면서

에디 마스.. 이 사람은 또 누구지? 나중에 알고 보니 카지노를 운영하는 사람인데, 그 카지노에 비비언이 자주 출입을 했다는구나. 사람들이 많이 등장하고 관계가 얽히고 설켜서 너희들에게 설명해주기 쉽지 않구나. 아무튼 필립은 조 브로디라는 사람을 찾아갔지. 이 사람은 예전에도 스턴우드의 집에 협박 편지를 보내서 돈을 뜯어낸 이력이 있는 사람이었어. 필립이 조 브로디를 추궁하자, 자신이 어제 가이거의 집에 가긴 했지만 집 안까지는 들어가지 않았다고 했고, 그 집에서 뛰쳐나오는 오웬을 보게 되었고, 그래서 그를 쫓아갔고, 경찰 행세로 하며 그를 협박해서 그에게서 필름을 빼앗고, 그 필름으로 스턴우드에 협박편지를 보내 돈을 뜯어내려고 한 것뿐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어. 앞뒤가 맞는 것 같긴 한데, 의심을 완전히 거둘 수는 없었지.

그 때 누군가 찾아왔어. 조 브로디가 문을 열어주는 순간 문 밖에 있던 이는 조 브로디를 총으로 쏘고 도망을 갔단다. 필립이 잽싸게 쫓아가 잡고 보니, 캐럴 런드그런이라는 사람이었어. 이 사람은 가이거의 동성 애인이었는데, 조 브로디가 가이거를 죽을 것이라 생각하고 복수한 것이야. 필립은 캐럴을 데리고 가이거의 집으로 갔어. 가이거의 집에는 겉으로 보이지 않는 비밀의 방이 하나 있었는데, 그 비밀의 방 안에 사라졌던 가이거의 시신이 있었단다. 캐럴이 가이거의 시신을 그리로 옮겨 놓았던 거야. 그렇다면 오웬을 죽인 것도 캐럴의 짓이었나? 필립은 지검장 올즈에게 연락을 했고, 올즈는 살인 사건의 지역 지검장 크론재거에게 연락했어. 필립은 그 동안 있었던 일을 모두 이야기해주었단다. 그렇게 사건을 종결되었단다.


2.

그런데 필립의 마음 속에 찜찜함이 하나 있었단다. 처음 의뢰를 받았을 때부터 의식하게 된 비비언의 남편 러스티 리건의 실종. 담당했던 경찰을 찾아가니, 러스티는 에디 마스의 아내와 불륜에 빠지고 둘이 야반도주를 한 것으로 추정했어.

하지만 사건의 내막은 따로 있었단다. 비비안과 카멘의 그 내막의 주인공이었어. 그 내막을 알아낸 필립. 어떻게 했을까? 굳이 다들 잊혀져 있는 사건을 들출 필요는 없었지. 자신의 궁금증을 자신이 해결을 해냈으니 그걸로 만족한 것 같았어. 어쩌면 두 자매에 연정을 느꼈을 수도 있고 말이야.

소설은 그렇게 끝이 났단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 소설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그 영화를 보고 싶은데 1946년에 만들어진 영화를 어떻게 하면 볼 수 있나. 1978년에 다시 리메이크해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아빠는 1946년 작품을 보고 싶구나

이 소설 주인공들의 대화 속에 마르셀 프루스트라는 작가가 등장했는데, 재미있어서 발췌해 보았단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대표작 <읽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로 유명한데, 유명한 이유는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를 받지만 그보다 너무 읽기 어려워서 유명하단다. 아빠도 우선 1권만 사두고 감히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있는 책이야. 이 소설에서 마르셀 프루스트는 변태들이 잘 아는 작가라고 하더구나. ㅎㅎㅎ 이 소설이 1939년 작품인데, 그 시절부터 마르셀 프루스트의 평판이 대단했구나.^^ 아빠도 언젠가는 읽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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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마르셀 프루스트처럼 침대에서 일하는 분인 줄 알았네요.”

그게 누구요?” 나는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그녀를 빤히 보았다. 조금 창백하게 긴장한 듯했지만 아무리 긴장해도 제 앞가림은 하는 여자 같았다.

프랑스 소설가예요. 변태들이 잘 아는 사람이죠. 당신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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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의 첫 문장 : 10월 중순 어느 날 오전 열한시경, 태양은 보이지 않고 한결 뚜렷해진 언덕들이 폭우를 예고했다.

책의 끝 문장 : 술기운 때문에 은색 가발을 쓴 여자만 자꾸 떠올랐지만 다시는 그녀를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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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7-19 08:2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깨알같은 프루스트 언급 ㅋ 표현이 너무 재미있네요. 북홀릭님이시라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금방 읽으실듯~!! 저도 이책 보관함에 있는데 아직 못읽었어요 ㅜㅜ 리뷰를 보니 재미있어 보이네요😊

bookholic 2021-07-19 18:29   좋아요 3 | URL
전에 어떤 분께서 이야기한 것처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자기 전에 10페이지씩 읽어보려고 합니다..^^

scott 2021-08-06 15:3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북홀릭님 이달의 당선 추카 합니다

이리뷰 명품이라 생각했는데 역쉬 알라딘 ^ㅅ^

bookholic 2021-08-07 06:05   좋아요 1 | URL
저는 늘 북플 친구님들이 졸필에 ˝좋아요˝를 눌러주셔서 당선 턱걸이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늘 고맙습니다~~

mini74 2021-08-06 15:4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변태들이 잘 아는 사람이란 구절에 빵 터졌었는데 ㅎㅎ 축하드려요 *^^*

bookholic 2021-08-07 06:10   좋아요 0 | URL
변태에 합류하려고 하는데 쉽지 않아요...
축하 고맙습니다~

새파랑 2021-08-06 16:1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역시 북홀릭님! 축하드려요. 이번달에도 역시 딸과 아들들에게는 비밀로^^

bookholic 2021-08-07 06:12   좋아요 1 | URL
ㅎㅎ 네 비밀로..^^
얼마 전에 열린책들 35주년 thanks to 한 것 중에 midnight만 주문했었는데요..
새로 생긴 비자금으로 35주년 noon 마저 주문해야겠어요.. ㅎ

페넬로페 2021-08-06 17:5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북홀릭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근데 정말 북홀릭님의 글쓰기를 자제분들은 모르는 건가요?

scott 2021-08-06 18:25   좋아요 3 | URL
비밀로 ^.~

bookholic 2021-08-07 06:13   좋아요 2 | URL
고맙습니다~~~
예전에는 애들이 어려서 알려준다는 것이 의미가 없었고...
지금은 제가 쑥쓰러워서 ㅎㅎ
애들이 좀더 커서 알라딘에서 책 검색하다가 알게 되기를~~^^

그레이스 2021-08-06 17: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

bookholic 2021-08-07 06:14   좋아요 0 | URL
그레이스 님, 늘 고맙습니다~~
즐거운 주말 되십시오~~

초딩 2021-08-06 17: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bookholic 2021-08-07 06:15   좋아요 0 | URL
초딩 님, 늘 고맙습니다...
제 절친 중에도 ‘초딩‘이라는 별명을 가진 친구가 있어 늘 친근합니다 ㅎㅎ
시원한 주말 되십시오~~

이하라 2021-08-06 18: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bookholic 2021-08-07 06:16   좋아요 0 | URL
이하라 님, 늘 고맙습니다~~
행복한 주말 되십시오~~

서니데이 2021-08-06 18: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bookholic 2021-08-07 06:16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 님, 늘 고맙습니다...
여유로운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

강나루 2021-08-06 2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bookholic 2021-08-07 06:17   좋아요 1 | URL
강나루 님, 늘 고맙습니다~~
웃음 가득한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의책장 2021-08-14 02: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bookholic 2021-08-14 21:43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즐거운 연휴 되십시오~~^^
 














(11)

한 공기의 사랑이다. 그의 고통을 완화시켜주는 한 공기의 사랑을 할 수 있느냐가 문제다. 한 공기를 넘어서는 모든 사랑은 정말 사랑했다!”라는 나의 정신 승리는 가능하게 하지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에게 온갖 고통을 가하는 끔찍한 일이다. 심지어 나를 사랑하면 세 공기든 네 공기든 한 가마든 먹어야 한다고 그를 압박한다. 세 공기, 네 공기의 밥을 지은 자신의 수고를 내세우면서 말이다. “당신을 위한 나의 수고를 헛되게 하지 말아줘. 그러면 나는 정말 슬플 거야.” 어느새 그의 배고픔과 포만감보다 나의 수고가 핵심이 되고 만다. 한 공기를 넘어서는 사랑은 이제 사랑의 궤도를 이탈해 공회전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더 이상 애지중지(愛之重之)하지 않게 되니까. 애지중지하는 마음은 그를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것, 한마디로 그를 내 뜻대로 부리지 않겠다는 마음이다.


(28)

과거 독재 시절, 시대에 걸맞게 학교에는 사랑의 매라는 것이 있었다. 학생들을 미워해서 때리는 것이 아니라 사랑해서 때린다는 체벌의 논리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선생님이 학생들의 종아리에 매를 대는 순간 아이들의 고통이 느껴진다면, 과연 선생님은 계속 매를 댈 수 있을까. 한 대 두 대 때리면 때릴수록 아이들의 아픔이 느껴진다면, 어떻게 아이들을 계속 때릴 수 있을까? 아내에 대한 사랑, 남편에 대한 사랑, 아이에 대한 사랑, 후배에 대한 사랑 등 타인에 대한 사랑은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사랑은 타인의 고통을 완화시키려는, 다시 말해 타인의 행복을 증진시키려는 의지이자 감정이기 때문이다.


(31)

사실 모든 생명체의 고통을 느끼고 그것들을 사랑한다면 아무것도 먹어서는 안 된다. 정확히 말하면 먹기가 힘들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자기 자신을 죽이게 된다. 아무것도 먹지 않으면 우리는 배고픔의 고통을 견디다 굶어 죽을 테니 말이다. 식물도, 토끼도, 사슴도, 독수리도, 늑대도, 그리도 인간도 생명체다. 식물을 살리려고 토끼를 죽여서도 안 된다. 토끼를 살리려고 늑대나 인간을 죽여서도 안 된다. 엄청난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사슴과 늑대가 동시에 배고픔의 고통을 토로한다면 싯다르타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난감한 일이다. 어쩌면 이 딜레마, 이 난감함, 이 애절함, 그리고 이 간절함 속에서 산다는 것, 바로 이것이 일체개고의 진정한 의미, 혹은 고통의 기원이 아닐까.


(34-35)

내가 옆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은 최소한 그 사람이 나 때문에 더 힘들지 않게 하는 일이다. 존재한다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고통을 가중시킬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고통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메를로-퐁티의 최소 폭력의 논리가 고통에 대한 감수성에 기초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세계가 모두 고통 속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고통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지만, 고통을 완화시킬 수는 있다. 결국 죽을 때까지 우리는 걷지 힘든 길을 걸어가야만 한다. 나의 고통과 타자의 고통을 동시에 최소화할 수 있는 어떤 균형을 매번 찾아내야만 하는 길, 균형을 찾는다 해도 그것이 진정한 균형인지 여전히 의문이 남는 그런 개운치 않은 길 말이다.


(41)

진짜 사랑이 열정적인, 그리고 자발적인 노동을 낳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렇기에 사랑하는 사람이 배부르면, 사랑하는 사람이 지인과 행복한 담소를 나누면, 사랑하는 사람이 건강하면, 사랑하는 사람이 힘차게 잘 걸으면, 사랑하는 사람이 명랑하면, 우리는 고맙기만 하다. 진짜 사랑할 때에는 질투라는 감정이 상대적으로 약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누군가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완화시켜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이 완화되었는지 여부뿐이기 때문이다. 잊지 말자. 질투심이 강해질수록 우리의 사랑은 진짜가 아니라 가짜가 되어간다는 사실을.


(66-67)

놀이의 삶에는 근사한 표어가 주어진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라는 표어이다. 반면 노동의 삶에도 그에 어울리는 표어가 있다. ‘우리에게 내일은 있다라는 표어다. 이는 연애 시절과 결혼 생활을 구분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연애 시절에 우리는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상대방에게 몰입한다. 가장 좋은 음식을 사주고 값비싼 선물도 아끼지 않는다. 오늘 그 사람을 기쁘게 해주지 않으면 내일은 다시 만날 수 없을지 모른다는 조바심 때문이다. 그런데 결혼을 하면 오늘의 행복을 내일로 하염없이 미루기 쉽다. 대출을 갚아야 하고 아이들 양육비도 생각해야 하니, 맛있는 스파게티나 여행 등 오늘의 행복을 속절없이 미루게 된다. 오늘이 수단이 되고 내일이 목적이 되는 순간, 오늘은 수단이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것이다.


(83-84)

이렇게 현재의 삶을 수단으로 만들고 내일의 삶을 목적으로 만들면, 오늘의 행복은 계속 내일로 미루어지고 만다. 이런 식으로 반복하다 삶의 끝자락에 이르게 되면 지금까지 한 번도 제대로 행복한 적이 없다는 후회가 밀려올 것이다. 물론 이런 후회는 금방 사라질 수도 있다. 죽음 이후의 피안이나 이데아 세계, 혹은 기독교의 천국이 바로 눈앞에 있다고 마지막 기대를 걸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처럼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은 행복하지 않아도 된다는 잘못된 생각, “오늘보다 내일이 더 중요하다는 기만적인 생각은 충만하고 아름다운 현재의 삶을 좀먹는 독약과도 같아.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말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신은 영원을 꿈꾸면서 무상을 직면하지 못하게 만드는 헛된 사유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114-115)

모든 존재는 영원하거나 불멸하지도 않고 동시에 순간적이거나 찰나적인 것도 아니다. 바로 이것이 제법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 실상(實相)’이다. 결국 나 자신을 포함한 모든 존재는 영원과 불멸이라는 한 극단과 순간과 찰나라는 또 다른 극단사이 어딘가에 존재한다. 바로 이것이 싯다르타가 말한 중도(中道)의 의미다. <가전연경>에서 싯다르타는 산스크리트어로는 카차야나, 한문으로는 가전연(迦旃延)이라는 이름의 제자에게 말한다.

“’모든 것은 존재한다.’ 카차야나야! 이것은 하나의 극단이다. ‘모든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카차야나야! 이것도 또한 하나의 극단이다. 카차야나야! 두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여래는 중도로써 하나의 가르침을 설한다!” 모든 것은 존재한다는 극단은 모든 존재에는 변화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영원한 자성이 있다는 입장이다. 불교에서는 이런 입장을 상견(常見)’이라고 부른다. ‘모든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또 다른 극단은 모든 존재가 어떤 연속성도 없이 끝없이 변화한다는 입장이다. ‘단견(斷見)’이라고 불리는 입장이다.


(130)

먼저 영원할 듯한 것에서 작은 변화를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영원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별로 달라질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 대상이 무엇이든 우리가 그 대상에 관심과 애정을 기울일 가능성은 줄어드는 말이다. 아내와의 관계나 남편과의 관계, 혹은 친구와의 관계가 예전 같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 미세한 변화를 포착하려고 노력하라. 돈독하던 관계에서도 조금씩 균열이 생기는 것이 보일 수도 있다. 어제와 다름없이 보이는 부모님, 아내, 남편, 아이의 얼굴에서 변화를 읽으려고 노력하라. 작은 주름 하나, 깊은 한숨 하나, 작은 새치 하나, 작은 어둠 하나를 찾아낼 수도 있으니 말이다.


(151-152)

카페에서 스마트폰을 잃어버린 남자의 사례를 통해 번뇌망집이 그 정체를 드러낸다. 카페에서 스마트폰을 발견하지 못하자 그의 마음은 복잡하기만 하다. ‘스마트폰을 카페 의자에 둔 것이 맞을까?’ ‘스마트폰을 카페 점원이나 손님들 중 누군가 가져간 것은 아닐까?’ 등등, 번뇌란 이런 것이다. 스마트폰의 없음을 경험하자, 그의 뇌리에는 사라진 스마트폰이 떠나지를 않는다. 그는 허탈해하며 카페에서 나와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미 없어진 스마트폰이야. 없는 건 없는 거지. 잊자!’ 하지만 스마트폰의 없음을 받아들이려 할수록 없어진 스마트폰에 대한 기억은 더 강해질 뿐이다. ‘잊자, 잊아라는 생각이 오히려 사라진 스마트폰을 떠오르게 하니 말이다. 바로 망집이다.


(176)

성숙을 확인할 수 있는 시금석은 단순하다. 성숙하면 자신이 강해지고 자신이 많은 것을 가지게 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을 아끼게 되고 사랑하게 되고 아파하게 된다. 간혹 아이들은 엄마가 아파서 밥을 못 해주면 짜증을 내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는 엄마가 아플 때 혼자 라면을 끓여 먹는다. 바로 이때 아이는 나이와 상관없이 성숙했다고 할 수 있다. 아이의 마음이 타인의 아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고요한 물처럼 작동한 것이다. 비록 아이지만, 이 순간 아이는 부처다. 자신의 배고픔이 아니라 엄마의 아픔에 사무쳐 있기 때문이다.


(197)

조금 도식적일 수 있지만 편의상 정리해보자면, 생성을 설명하는 데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로 다양한 연들이 존재를 만든다는 연기의 논리’, 둘째로 하나의 원인과 많은 조건들이라는 인연의 논리’, 그리고 셋째로 하나의 원인과 하나의 결과라는 인과의 논리가 그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인과의 논리는 인연의 논리로부터, 혹은 저 멀리 연기의 논리로부터 단순화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 가지 논리는 지적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어느 논리에 따라 살아가느냐에 의해 우리의 삶은, 우리의 미래는, 그리고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의 운명은 완전히 달라진다. 육아나 교육의 사례로 세 가지 논리의 상이한 효과를 생각해보자.


(216)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거나 혹은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우리는 세상이 끝난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너무나 쉽게 만성화된 슬픔, 고질적인 우울 속에 갇히게 된다. 행복과 기쁨이 더 이상 없을 것만 같다. 그러나 앞으로 앞으로삶을 밀어붙이면 알게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람이 부재하기에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하나의 인연이 끝나야 다른 사람과 새로운 인연을 만들 수 있지 않은가? 처음에는 이별이 절벽으로 떨어지는 수평선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앞으로 앞으로걸어나가면, “앞으로 앞으로배를 수평선 쪽으로 밀어붙이면,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나새로운 인연을 맺을 수 있다.


(227-228)

매달린 절벽은 사실 놓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놓으면 죽을 것 같다고 믿는 집착의 대상일 뿐이다. ‘매달린 절벽은 사람마다 다르다. 젊음일 수도 있고, 건강일 수도 있고, 가족일 수도 있고, 돈일 수도 있고, 집일 수도 있고, 아이일 수도 있다. 아니면 사랑일 수도 있고, 우정일 수도 있고, 타인의 인정일 수도 있다. 아이를 잡지 않으면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 같은 사람에게 아이에게 그렇게 집착하지 말라고 쉽게 말할 수는 없다. 그렇게 권고하는 사람도 돌아보면 돈이나 건강을 매달린 절벽처럼 붙잡고 집착할 수도 있다. 또한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사람의 손을 억지로 떼어내려 해서도 안 된다. 그럴수록 그 사람은 더 억세게, 저 집요하게 매달린 절벽을 잡으려 할 테니 말이다.


(241)

독일 철학자 슬로터다이크(1947~) <냉소적 이성 비판>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성숙한 능력은 예스의 유일하게 타당한 배경이 되며, 이 둘을 통해 진정한 자유의 윤관이 비로소 뚜렷해진다.” “예스가 힘이 있으려면 라고 외쳤던 경험들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예스는 굴종의 표현이 아니라 자유의 표현일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예스라고 말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244)

멈출 수 있어야, 혹은 그만둘 수 있어야 자유다. 멈출 수 있는 사람만이 자기 뜻대로 움직일 수 있고, 관계를 단절할 수 있는 사람만이 자기 뜻대로 관계를 만들 수 있다. “!”라고 할 수 있어야 하고, 멈출 수 있어야 하고, 그만둘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이럴 때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이 당당해지고, 그만큼 우리는 주인으로서 삶을 영위하게 된다. 멈출 수 있는 자유를 가슴에 품을 때, 그가 누구이든 상대방은 우리를 사랑하지는 않더라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가슴에 사표를 품고 있는 직원에게 사장이 어떻게 갑질을 할 수 있을까? 캐리어를 들고 집을 떠날 수 있는 아내에게 남편이 어떻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을까? 학위쯤이야 우습게 여기는 학생에게 교수가 어떻게 사역을 시킬 수 있을까?


(249)

몸과 마음 사이의 거리가 점점 줄어들면 우리는 주인으로서 삶을 영위하게 되는 것이고, 반대로 몸과 마음 사이의 거리가 점점 벌어지면 주인이 아니라 노예의 삶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301)

무엇이든 애지중지하는 대상이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어쨌든 애지중지하는 대상은 그 존재만으로 우리 삶을 기쁨으로 물들이고, 우리 삶에 의미를 제공하며, 우리 삶을 활기차게 한다. 어떤 것도 아끼는 것이 없다고 생각해봐라. 삶은 짙은 잿빛으로 우울하게 변할 것이고, 그러한 삶을 사는 우리는 심각한 우울과 무기력에 빠지고 말 것이다. 문제는 애지중지하는 대상이 인간일 때 발생한다. 타인을 아낀다는 것은 그를 대신해 그의 수고를, 그의 고통을, 그리고 그의 노동을 감내하며 기뻐하고 행복해하는 일이다. 누군가의 짐을 짊어지고 심지어 그 사람을 업으면서도 미소가 얼굴에서 떠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끼는 사람을 최소한 한 명 가진 셈이다.


(303)

아끼는 사람은 그 존재만으로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던 소중한 사람이다. 아끼는 사람이 무언가 해주기를 원하는 순간, 아낌의 관계는 무너지고 그 자리에 너저분한 거래 관계가 들어선다. “내가 이만큼 했으면 너도 이만큼 해야 하는 것 아니야?” 이제 상대방이 나의 애지중지하는 모든 행동을 일종의 부채감으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아낌의 관계는 막장을 향해 치닫고 만다. 이런 비극을 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아끼는 사람을 반려견이나 반려묘처럼 보는 연습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다. 물을 가져다 달라고, 밥을 해달라고, 쓰레기 봉투를 버려달라고, 청소를 해달라고 할 수도 없다. 말귀를 알아듣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알아듣는다 해도 쫑긋한 귀와 해맑은 눈, 그리고 네 다리를 가지고 무엇을 하겠는가?


(327)

우리 각자에게 아끼는 대상이 어머니일 수도, 아버지일 수도, 아내일 수도, 남편일 수도, 아일 수도, 친구일 수도, 반려견일 수도, 반려묘일 수도, 아니면 화초일 수도 있다. 아끼는 대상이 무엇이든 우리는 그것의 행복에 있어 한 공기의 연일 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농부의 물꼬 트기처럼 이 한 공기의 연을 우리가 채우지 못하면, 아끼는 사람의 삶은 불행에 빠진다. 그러니 좋은 공기, 맛있는 음식, 쾌적한 잠자리, 따뜻한 태양, 싱그러운 바람, 아름다운 음악, 근사한 영화, 멋진 식당, 의사와 간호사, 친구들 등등이 아끼는 사람에게 건강한 연이 되어줄 때, 우리는 충분히 쉬어야 한다. 잘 쉬고 맛있는 것을 먹고 잠도 잘 자야 한다. 우리게는 한 공기의 연을 채워야 할 때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333)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아이를 아끼기 때문에 노심초사하며 아이가 잘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영어 학원에 보내고 태권도를 가르치고 수영 강습도 받게 하고 피아노도 가르치고 방학마다 여행을 가고 캠핑도 간다. 문제는 엄마가 아이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원해야만 한다고 자신이 생각하는 것’, 혹은 언젠가 아이가 원할 수도 있다고 자신이 믿는 것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경우 아이는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고, 웃음과 미소를 점점 잃어가게 될 것이다. 반대로 간혹 우리는 아이를 방임해서 키워요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엄마도 있다. 김을 매지 않아 잡초들에 둘러싸인 벼처럼, 아이는 경쟁적 교육 환경, 왕따를 시키는 차별적 문화, 자본주의적 소비문화에 둘러싸여 시름시름 앓게 될 것이다. 결국 엄마는 아이가 잘되기를 바라되 지나치게 관여해서는 안 되고, 관여하지 않되 완전히 잊어서는 안 된다. 아이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완전히 알 때까지, 혹은 엄마가 아이가 원하는 것을 알 때까지, ‘조장사이 혹은 물망물조장사이 그 어딘가를 지키며 균형을 잡아야 한다.  아끼는 일은 정말 힘든 일이다.


(342-343)

사랑도 삶도 행복도 그리고 자유도 이만하면이라는 말로 가늠할 수 있는 양적인 문제가 아니라 질적인 문제다. 사랑했거나 사랑하지 않았거나, 제대로 살았거나 그러지 못했거나, 행복했거나 행복하지 않았거나, 자유롭거나 자유롭지 않았거나, 이제 이만하면이라는 말을 우리 삶의 사전에서 지우도록 하자. 사랑도 삶도 행복도 그리고 자유도 남들의 시선이나 평가, 재산이나 소비수준과는 무관하게 전적으로 질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잘 사랑하려면, 제래도 살려면, 정말 행복하려면, 그리고 자유로우려면, 우리는 이만하면이라는 전체를 붙인 너저분한 자기만족과 정신 승리에 함몰되어서는 안 된다. 차라리 사랑도 삶도 행복도 그리고 자유도 아직까지 제대로 영위하지 못했다고, 아직도 부족하다고 이야기하자. 그래야 우리에게는 제대로 사랑하고, 제대로 살아가고, 제대로 행복하고, 제대로 자유로울 수 있는 희망이 생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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