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적정한 기술이 사람의 삶을 바꾸듯 적정한 심리학 이야기도 그렇게 되기를 소망한다. 이론이 아닌 실생활에서 실질적인 위력을 갖는 실용적인 심리학 정도로 바꾸어 설명할 수도 있겠다. 나와 내 옆 사람의 속마음을 이해하고 도울 수 있는 소박한 심리학을 나는 적정심리학이라 이름 붙였다.


(39)

가 흐려지면 사람은 반드시 병든다. 마음의 영역에선 그게 팩트다. 공황발작은 자기 소멸의 벼랑 끝에 몰린 사람이 버둥거리며 보내는 모르스 부호 같은 급전(急電)이다. “내가 희미해지고 있어요. 거의 다 지워진 것 같아요.”라는 단말마다. 공황발작의 원인을 생물학적 요인 중심으로 판단하면 증상을 없애기 위해 약물치료에 보다 치중하겠지만, 그러다 보면 공황발작이 의미하는 개인의 심리적 상태에 대한 집중과 해결은 놓치기 쉽다.


(50)

사람은 상대가 하는 말의 내용 자체를 메시지의 전부라고 인식하지 않는다. 순간적으로 그 말이 내포한 정서와 전제를 더 근원적인 메시지로 파악하고 받아들인다. ‘너는 옳다고 해주면 A는 지금 집밖을 배회하는 내가 참 잘하고 있구나라고 믿는 게 아니라 찌질하게 구는 나를 비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사람의 존재를 통해서 자기 존재에 대해 안심하게 된다. 산소가 희박한 순간에 고농축 산소를 들이켜는 것이다. 사람은 기계적인 존재가 아니다. 생각보다 훨씬 입체적이고 정서적인 존재다. 어른도 그렇고 아이도 그렇다.


(88)

우리나라에서 대부분의 직장 생활은 한 인간이 입체적인 모습과 다양한 역할로 사는 시간이 아니다. 회사가 필요로 하는 도구로 살아온 시간이며, 사회적 성공이란 자기 억압의 결과일 수 있다. 그런 삶의 끝에서 만나는 은퇴란 몸에 밴 가지 억압이 한꺼번에 풀리는 일대 사건이다. 과장하자면 평생 감옥에 있다 출소하면서 눈부신 햇빛에 눈을 찡그리는 출소자 같은 상태다. 24시간 정해져 있는 삶을 살다가 사방 어디로든 발을 떼어도 되고 언제 먹든 언제 잠자리에 들든 자유로운 상태다. 비로소 내 삶으로 돌아오는 순간이다.


(103)

심폐소생술은 심장 외 다른 장기들은 제쳐놓고 오로지 심장과 호흡에만 집중하는 응급처치다. 심장 기능만 돌아오면 몸의 다른 모든 기능은 알아서 연쇄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심리적  CPR도 마찬가지다. 심리적 CPR라는 존재 자체에만 집중해야 한다. 심장 압박을 할 때는 두꺼운 옷을 젖히고 옷에 붙은 액세서리도 다 떼고 정확하게 가슴의 중앙 바로 그 위 맨살에 두 손을 올려놓는다. 심리적 CPR처럼 보이지만 가 아닌 많은 것들을 젖히고 라는 존재 바로 그 위를 강하게 자극하는 것이다.


(121)

공감은 내 등골을 빼가며 누군가를 부착하는 일이 아니다. 그 방식으론 상대를 끝까지 부축해 낼 수 없다. 둘 다 늪에 빠진다. 공감은 너를 공감하기 위해 나를 소홀히 하거나 억압하지 않아야 이루어지는 일이다. 누군가를 공감한다는 건 자신까지 무겁고 복잡해지다가 마침내 둘 다 홀가분하고 자유로워지는 일이다.

너를 공감하다 보면 내 상처가 드러나서 아프기도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나도 공감받고 나도 치유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공감하는 사람이 받게 되는 특별한 선물이다.


(125)

공감은 다정한 시선으로 사람 마음을 구석구석, 찬찬히, 환하게 볼 수 있을 때 닿을 수 있는 어떤 상태다. 사람의 내면을 한 조각, 한 조각 보다가 점차로 그 마음의 전체 모습이 보이면서 도달하는 깊은 이해의 단계가 공감이다. 상황을, 그 사람을 더 자세히 알면 알수록 상대를 더 이해하게 되고 더 많이 이해할수록 공감은 깊어진다. 그래서 공감은 타고나는 성품이 아니라 내 걸음으로 한발 한발 내딛으며 얻게 되는 무엇이다.


(153)

누군가의 고통을 덜어주는 공감자가 되기 위해선 그의 마음에 대해 에게 물어야 한다. 돕는 자로서의 견해를 말하거나 주장하기보다 에게 주목하고 그의 마음에 대해 그에게 물어야 한다. 그의 세세한 속마음은 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전문가가 알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비로소 그에게 질문을 시작할 수 있다. 그만이 아는 그의 마음에서 혼돈을 끝낼 그만의 길이 나온다. 당사자가 그것을 속속들이 느끼고 만질 수 있을 때까지 그의 손을 놓지 않는 것이 공감자의 일이고 그것이 치유다.


(158)

공감은 상처를 더 그러낼 수 있게 만들고 제대로 드러난 상처 위에서 녹아드는 연고다. 상처 위에 바로 스민다. 상처 부위를 덮고 있는 겉옷 위에 뿌리는 분무제가 아니라 옷을 젖히고 상처 난 바로 그 부위 맨살에 바르는 약이다. 정확하고 집중력 있는 공감은 문제 해결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책임진다. 공감은 치유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관장하는 강력한 치유제다.


(171)

친구를 때린 아이와 엄마의 관계처럼 부모와 미성년 자식 간에 생기는 대부분의 정서적 갈등은 부모가 아이를 제대로 공감하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다. 부모만 잘하면 해결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부모가 관계의 본질을 이해하고 사과하고 제대로 공감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허무할 만큼 어렵지 않게 갈등이 풀린다.

그러나 성인 간의 관계는 다르다.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 있지만 나만 잘한다고 되지 않는다. 상대가 감당해야 할 몫도 있다. 그것까지 내가 짊어질 이유는 없다. 너도 있지만 나도 있다. 어떤 관계에서든 납득할 수 없는 심리적 갑을 관계가 일방적이고 극단적으로 계속된다면 이런 관계를 끊을 수 있는 것이 더 건강하다. 우선 내 건강성을 지켜야만 나중을 기약할 수도 있다.


(203-204)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그 관계가 기쁨과 즐거움이거나 배움과 성숙, 성찰의 기회일 때다. 그것이 관계의 본질이다. 끊임없는 자기 학대와 자기혐오로 채워진 관계에서 배움과 성숙은 불가능하다. 자기 학대와 자기혐오가 커질 수밖에 없는 관계라면 그 관계는 끊어야 한다. 주변을 찬찬히 돌아보면 끊어야만 자기를 지킬 수 있는 관계들이 의외로 많다. .관계를 끊으면 그때서야 상대방도 자기를 돌아볼 수 있는 최소한의 계기가 만들어진다. 그런 계기로 삼지 못해서 결국 대가를 치르게 되어도 그건 그의 몫이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247)

공감이란 제대로 된 관계와 소통의 다른 이름이다. 공감이란 한 존재의 개별성에 깊이 눈을 포개는 일, 상대방의 마음, 느낌의 차원까지 들어가 그를 만나고 내 마음을 포개는 일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도 내 마음, 내 느낌을 꺼내서 그와 함께 나누고 소통하는 일이다. 그렇게 서로의 개별성까지 닿지 않으면서 함께 사는 부부는 서로의 역할에 충실한 기능적 관계이기 쉽다.


(315)

공감이 그렇다. 옴짝달싹할 수 없을 것처럼 숨 막히는 고통과 상처 속에서도 공감이 몸에 배인 사람은 순식간에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 없는 것 같던 공간이 순식간에 눈 앞에 펼쳐진다. 사람들 마음속에서 공감이 하는 일이다. 사람은 그렇게 해서 사지를 빠져나올 수 있다. 공감의 힘이다. 그렇게 놀랍고 아름다운 공감의 힘을 내가 가진 경험과 정성을 다해 펼쳐놓았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이것이 지금 내가 가진 나의 모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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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시간 - 아픔과 진실 말하지 못한 생각
조국 지음 / 한길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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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우리나라 언론과 검찰은 문제가 참 많은 조직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단다. 우선 언론은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이 가장 문제라고 생각해. 요즘에는 종이 신문을 많이 보지 않지만, 여전히 포털을 통해서 기사를 접하게 되고, 그 기사들을 읽고 나면 그 기사들이 우리의 머릿속에 녹아 들게 되고 결국 내 생각에 영향을 주게 된단다. 그렇기 때문에 언론이 무척 중요한데, 우리나라 언론은 언론의 자유라는 명목 아래, 너무 왜곡된 기사를 써 내고, 아님 말고 식의 확인 안된 기사를 쏟아내게 된단다. 너희들도 나중에 커서 기사나 보도를 볼 때, 그것이 백퍼센트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점 명심하고 봐야 한단다.

그리고 검찰이라는 조직도 정말 무서운 조직이란다. 우리 같이 평범한 사람들은 법을 지키면 만날 일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늘날 우리나라 검찰은 우리나라 권력 구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단다. 자신들과 대립을 하게 된 정치인들이나 유력 인사가 있다면, 뒷조사를 해서 온갖 의혹을 만들어 낸단다. 그리고 그 검증 안된 의혹들을 언론과 자신들과 호흡이 맞는 정당(지금은 야당)에 그 내용을 흘리면 확대 왜곡되어 포털 1면에 실리게 된단다. 그러면 그것으로 검찰은 다시 수사하고아주 철저하게 말이야. 그래도 쓰러지지 않으면 그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족, 친척, 친구, 지인들까지 모조리 뒤져서 조사한단다. 그렇게 가족, 친척, 친구까지 괴롭힘을 당하면 당사자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단다. 이런 것들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일들이란다. 조국 前 법무부 장관님도 그런 일을 경험했다고 하더구나. 검찰의 의도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꿋꿋하게 버티셨다고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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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

<조선일보> 기자는 내가 치료받은 병원까지 찾아가 무슨 치료였는지 묻고 갔다. 동네 카페와 세탁소 등 상점을 방문해 나와 내가족에 대한 불만이 없는지도 탐문했다. 채널A는 등교하는 아들을 따라붙어 버스에 올라타서 카메라를 들이대고 질문을 퍼부었다. 아파트 인근에 회사명이 붙어 있지 않은 취재 차량을 항상 주차해놓고 가족이 이동하면 추격전을 벌였다. 서울에 오셨다가 부산으로 돌아가는 어머니를 모시고 버스터미널로 가는 길을 계속 쫓아오더니, 어머니가 내리자 어머니를 가로막고 카메라를 들이댔다. 친구와 지인을 만나러 나갔다가 쫓아오는 차를 확인하고 돌아온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만남 장소에서 기다리다가 친구와 지인에게 카메라를 들이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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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자세히 알지 못해서 알고 있는 수준에서 이야기를 한 것이지만, 아무튼 검찰이란 권력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최고 권력이라고 할 수 있단다. 법이라는 이름 아래, 칼을 휘두르고 있거든. 그것도 자기 입맛에 맞게 말이야. 자기 내부의 잘못이나 검찰의 친한 세력의 잘못은 대충대충 넘겨 버리고 말이야. 일부 양심 있는 내부고발자들에 의해 검찰의 비리를 세상에 공개되기도 하지만, 그러면 그런 이들이 바로 왕따 당하고 검찰 옷을 벗게 되는 것이 현실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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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출신으로 검찰의 민낯을 폭로한 비판서 <내가 검찰을 떠난 이유>를 출간한 이연주 변호사는 개탄했다.

검사들은 과거 언론 탄압하고, 민간인 사찰하고, 거짓 자백을 강요했던 잘못은 한 번도 되돌아보지 않으면서, 검찰이 휘두른 칼에 억울하게 고통받은 사람들에 대한 연민은 느끼지 않으면서, 검찰 조직 문제에만 기개 있게 덤비고 정의를 내세운다. 정말 부끄러움을 모르는 비겁한 사람들이다.”

이어 이 변호사는 검찰의 모토를 간명하게 정리했다.

정권은 유한하고, 검찰은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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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수 수구 정당은 검찰과 합이 잘 맞아서 검찰이 잘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 크게 뭐라 하지 않는단다. 그들이 잘못을 하면 오히려 도움도 받는 경우가 많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진보 또는 민주 정당의 경우는, 검찰이 이 잘못된 부분을 고치려고 오랫동안 노력을 해왔단다. 노무현 전 대통령님도 검찰 개혁을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하시고, 검찰의 칼을 맞으셨단다.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도 가장 후회하는 것이 바로 검찰 개혁을 하지 못한 것이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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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이랬던 검찰이 지금은 달라졌을까. 나는 항상 고 노무현 대통령의 한탄을 잊지 않으려 했다.

검찰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가운데 검찰은 임기 내내 청와대 참모들과 대통령의 친인척들, 후원자와 측근들을 집요하게 공격했다.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추진한 대가로 생각하고 묵묵히 받아들였다. 그런데 정치적 독립과 정치적 중립은 다른 문제였다. 검찰 자체가 정치적으로 편향되어 있으면 정치적 독립을 보장해주어도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는다. 정권이 바뀌자 정치적 중립은 물론이요 정치적 독립마저 스스로 팽개쳐버렸다. 검경수사권조정과 공수처 설치를 밀어붙이지 못한 것이 정말 후회스럽다. 이러한 제도 개혁을 하지 않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려 한 것은 미련한 짓이었다. 퇴임한 후 나와 동지들이 검찰에서 당한 모욕과 박해는 그런 미련한 짓을 한 대가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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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님께서 당선되시면서 다시 검찰 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커졌단다. 그 검찰 개혁에 있어 가장 중요한 직책인 법무부 장관. 2019 8, 민정수석을 했던 조국 서울대 교수님이 법무부 장관 후보에 지명되었단다. 검찰에 있어 조국 법무부 장관은 치명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를 무조건 낙마 시키기 위한 작전에 들어갔단다. 앞서 이야기했던, 당사자, 가족, 친척, 지인들의 먼지 털기 또는 없는 먼지도 만들어내기 작전이를 받아 증폭시켜서 온 세상에 퍼뜨리는 언론들까지 합세. 세상 사람들은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를 이젠 색안경으로 끼고 보게 된단다.

물론 조국 법무부 장관도 백퍼센트 청렴 결백한 사람은 아니란다. 그렇다고 불법을 저지른 것은 아니고,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혜택을 누린 것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상실감을 주게 된 점은 자신도 반성하셨어. 소위 금수저를 갖고 태어난 강남좌파셨지.

====================

(357)

2019 9 2일 기자간담회에서 토로했다.

저는 통상적 기준으로 금수저가 맞습니다. 세상에서 강남 좌파라고 부르는 것도 맞습니다. 그런데 금수저면 항상 보수로 살아야 합니까. 강남에 살면 보수여야 합니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금수저이고 강남에 살아도 우리 사회 제도가 좀더 좋게 바뀌면 좋겠다, 공평하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그런 고민을 했고 공부했다 해도 실제 흙수저 청년, 흙수저 사람들의 마음을 고통을 제가 얼마나 알겠습니까. 10분의 1도 모를 것입니다. 그것이 제 한계입니다. 그런데도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해보려고 합니다. 금수저라 해도, 강남 좌파라 야유받아도 국가권력이 어떻게 바뀌는 게 좋겠다, 정치적 민주화가 어떻게 되면 좋겠다고 고민해왔습니다. 그 점에 대해 나쁜 평가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해보려고, 그 기회를 달라고 여기에 비난받으며 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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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검찰과 언론의 일방적인 공격에 조국 前 법무부 장관님도 자신의 심정을 이야기할 곳이 필요했어. 언론에서는 잘 받아주지 않으니, 이렇게 책을 통해서 자신의 심정을 이야기하게 된 것이란다. 누군가는 핑계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싸움을 하더라도 양쪽 이야기를 다 들어봐야 하니, 조국 前 법무부 장관님의 이야기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해. 특히 언론에서 일방적으로 떠드는 것만 보고, 조국 前 법무부 장관님을 욕했던 사람들이 이 책들을 보면 좋겠지만, 그런 사람들은 또 이런 책들을 잘 안 본단다. 검찰과 언론의 작전 성공.


2.

언론으로 만들어진 나쁜 여론에도 불구하고, 조국 님은 법무부 장관에 되셨단다. 괴롭힘을 당하는 가족, 친척, 지인들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그만두었겠지만, 이런 일들은 (이 정도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일이고, 자신이 아니면 또 검찰 개혁은 뒤로 무한정 미뤄질 것이라 생각해서 법무부 장관이 되셨단다. 그리고 최단 기간 일을 하시고 사퇴를 하셨지만, 검찰 개혁의 초석을 쌓으셨단다. 후임 법무부 장관님들이 이어서 잘 검찰 개혁을 할 수 있도록 말이야.

====================

(240-241)

장관 사퇴 후 정의당도 유상진 대변인 논평을 통해 덕담을 해주었다.

취임 이후 36일 동안 장관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개혁을 해왔고, 오늘까지도 개혁안을 발표하며 쉼 없이 달려왔다. 그러면서 45년 만에 특수부를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한 것 등 그동안 검찰개혁의 초석을 마련했다. 가족들에 대한 수사 등으로 어려움 속에서도 불구하고, 검찰개혁에 대한 신념을 포기하지 않고 추진해온 것을 높이 평가한다. 장관으로서 최선을 다했으며, 수고 많았다.”

====================

검찰 개혁에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여기에 적진 않을게. 검찰 개혁이 한 걸음 아제 나아갔으니, 앞으로 좀더 진척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긴 해.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검찰 조직의 우두머리께서 검찰을 그만두고 대통령을 하겠다고 소리치고 있거든. 그런데 그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면, 한 발짝 나아간 검찰개혁은 어떻게 될까. 안 봐도 눈에 선하구나. 더 강력한 검찰공화국이 되지 않을까 싶어. 아무튼 올해 진행되는 대통령 선거에서 우리나라 백성들이 올바른 선택을 해서, 검찰 개혁도 잘 이루어졌으면 좋겠구나. 그리고 법의 잣대가 누구에게나 공평했으면 좋겠구나. 최근 재판 결과들을 보면 당사자가 아닌 아빠가 엄청 속상하고 분노가 일 정도이거든


PS:

책의 첫 문장: 2019년 봄날, 청와대 뜰에는 봄꽃이 피어 있었다.

책의 끝 문장: 사람은 파괴될 수는 있지만 패배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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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4)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여러분들이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고 어른들에게 말하면, 어른들은 도무지 가장 중요한 것은 물어보지 않는다. <그 애의 목소리는 어떠니? 그 애는 무슨 놀이를 좋아하니? 그 애도 나비를 채집하니?> 절대로 이렇게 묻는 법이 없다. <그 앤 나이가 몇이지? 형제들은 몇이나 되고? 몸무게는 얼마지? 그 애 아버지는 얼마나 버니?> 항상 이렇게 묻는다. 이렇게 묻고 나서야 어른들은 그 친구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만일 여러분들이 <나는 아주 아름다운 장밋빛 벽돌집을 보았는데요, 창문에 제라늄이 있고, 지붕 위에 비둘기가 있고……> 이런 식으로 어른들에게 말한다면, 어른들에겐 이렇게 말해야 한다. <나는 10만 프랑짜리 집을 보았어요.> 비로소 그들은 소리친다. <정말 예쁜 집이겠구나.>


(44)

그때 난 아무것도 알지 못한 거야!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그 꽃을 판단했어야 했는데. 그 꽃은 나를 향기롭게 해주고 내 마음을 밝게 해주었어. 거기서 도망쳐 나오는 것이 아니었는데! 그 어설픈 거짓말 뒤에 따뜻한 마음이 숨어 있는 걸 눈치챘어야 했는데. 꽃들은 정말 모순덩어리야! 하지만 난 꽃을 사랑하기엔 너무 어렸어.”


(53)

바로 그렇다. 누구에게나 그가 할 수 있는 것을 요구해야 하느니라.” 왕은 계속했다. “권위는 무엇보다도 이성에 근거를 두는 법이니라. 네가 만일 네 백성들에게 바다에 빠져 죽으라고 명령을 한다면 그들은 혁명을 일으키리라. 짐이 복종을 요구할 권리가 있음은 짐의 명령이 지당하기 때문이니라.”


(76)

할아버지 생각엔 제가 어딜 찾아갔으면 좋겠어요?” 그는 물었다.

지구가 괜찮아.” 지리학자가 대답했다. “그 별은 평판이 좋아……”

그래서 어린 왕자는 자기 꽃을 생각하며 길을 떠났다.


(92-93)

나는 친구들을 찾고 있어. <길들인다>는 게 무슨 뜻이야?”

그건 모두를 너무나 잊고 있는 것이지.” 여우가 말했다. “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관계를 맺는다고?”

물론이지.” 여우가 말했다. “너는 아직 내게 세상에 흔한 여러 아이들과 전혀 다를 게 없는 한 아이에 지나지 않아. 그래서 나는 네가 필요 없어. 너도 역시 내가 필요 없지. 나도 세상에 흔한 여러 여우들과 전혀 다를 게 없는 한 여우에 지나지 않는 거야. 그러나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 필요하게 되지. 너는 나한테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이 될 거야. 나는 너한테 이 세상의 하나밖에 없는 것이 될 거고……”


(94-95)

자기가 길들인 것밖에 알수 없는 거야.” 여우가 말했다. “사람들은 이제 어느 것도 알 시간이 없어. 그들은 미리 만들어진 것을 모두 상점에서 사지. 그러나 친구를 파는 상인은 없어. 그래서 사람들은 친구가 없지. 네가 친구를 갖고 싶다면, 나를 길들여 줘!”

어떻게 해야 하는데?” 어린 왕자가 말했다.

아주 참을성이 있어야 해.” 여우가 대답했다. “처음에는 나한테서 조금 떨어져서 바로 그렇게 풀밭에 앉아 있어. 나는 곁눈질로 너를 볼 텐데, 너는 말을 하지 마. 말은 오해의 근원이야. 그러나 하루하루 조금씩 가까이 앉아도 돼……”


(98-99)

잘 가.” 여우가 말했다. “내 비밀은 이거야. 아주 간단해. 마음으로 보아야만 잘 보인다. 중요한 것은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어린 왕자는 기억해 두려고 되풀이했다.

네 장미를 그토록 소중하게 만든 건 네가 너의 장미에게 소비한 시간 때문이야.”

나의 장미에게 소비한 시간 때문이야.” 어린 왕자는 기억해 두려고 되풀이했다.

사람들은 이 진실을 잊어버렸어.” 여우는 말했다. “그러나 너는 잊으면 안 돼. 네가 길들인 것에 너는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어. 너는 네 장미한테 책임이 있어……”

나는 내 장미한테 책임이 있어……” 어린 왕자는 기억해 두려고 되풀이했다.


(110-111)

아저씨네 별에 사는 사람들은,” 어린 왕자가 말했다.

정원 하나에 장미를 5천 송이나 가꾸고 있어…… 그래도 거기서 자기들이 구하는 것을 찾지는 못해……”

찾지 못하지.” 내가 대답했다.

하지만 자기들이 구하는 것을 장미꽃 한 송이에서도 물 한 모금에서도 찾을 수 있을 텐데……”

물론이야.”내가 대답했다.

그리고 어린 왕자는 덧붙였다.

하지만 눈은 장님이야. 마음으로 찾아야 해.”


(119)

사람들에겐 별이라고 해서 다 똑 같은 별은 아니야. 여행을 하는 사람들에겐 별이 길잡이일 거고, 어떤 사람들에겐 작은 빛에 지나지 않을 거야. 학자들이라면 별을 문젯거리로 생각하겠지. 내가 만난 사업가들한텐 별은 황금이야. 그러나 별은 말이 없어. 아저씨가 보는 별은 다른 사람들하곤 좀 다를 거야……”

무슨 말을 하는 거니?”

아저씨가 밤에 하늘을 바라볼 때면, 내가 그 별들 중의 어느 별에서 살고 있을 테니까, 그 별들 중의 어느 별에서 웃고 있을 테니까. 아저씨에겐 모든 별들이 웃고 있는 것으로 보일 거야. 아저씨는 웃을 줄 아는 별들을 가지게 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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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31 1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1-31 1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2-01-31 11: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어린왕자는 명작인거 같아요~!!

bookholic 2022-02-01 09:42   좋아요 1 | URL
저도 다시 이번에 다시 읽었는데, 예전과는 또 다른 느낌이더라구요~~^^ 다음엔 또 어떤 느낌일지...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 안전가옥 오리지널 8
천선란 지음 / 안전가옥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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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천선란 님의 소설을 두 권 연속 재미있게 읽고 나서, 또 다른 책을 찾아 읽은 것이 이번에 읽은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란 소설이란다. 안전가옥 오리지널 중에 하나인데, 안전가옥라는 출판사에서 출간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모르겠지만, 뱀파이어가 나오는 이 소설과 안전가옥과 왠지 잘 어울리는 것 같았어. 집 밖에는 뱀파이어가 있으니 위험하니까, 안전하게 집 안에만 있으라고 말이야

그래, 이 소설은 뱀파이어가 나오는 소설이란다. 뱀파이어 관련 소설과 영화는 정말 많고, 특히 트와일라잇 시리즈 같은 경우는 많은 인기를 끌기도 했단다. 그런데 우리나라 작가가 쓴 뱀파이어 소설이 있나, 한참 생각해 보았는데, 아빠의 독서 이력으로는 잘 생각이 나질 않더구나. 따뜻한 SF를 써 오신 천선란 님의 뱀파이어 소설 또한 따뜻한 소설이더구나.

이 소설에 등장하는 뱀파이어도 전형적으로 차가운 피부를 가지고 있지만, 마음만은 따뜻함이 느껴졌단다. 소설 <나인>에서는 평범한 지구인들 사이에서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식물 외계인에 대해 그렸다면, 소설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에서는 평범한 지구인들 사이에서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뱀파이어의 이야기를 그렸더구나.


1.

줄거리는 간단히 이야기해줄게. 인천 구시가지 철마재활병원이 있었어. 재개발 지역에 있어서 주변도 썰렁하고 음산한 분위기 마저 드는 곳이야. 이 병원에는 치매 환자나 몸이 불편한 환자들이 대부분이었단다. 그런데 이곳에서 연속 자살 사건이 발생하고 있단다. 모두 유서도 있고, 타살 흔적이 없어서 자살로 사건 종결 처리를 했지만, 최근에 갑자기 늘어난 자살이 이상하긴 했어.

형사인 수연은 이 점을 의심스럽게 생각하고, 자살 사건이 일어난 병원을 조사했단다. 그리고 그 병원에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을 보살펴 준 은심 할머니가 계셨어. 친할머니는 아니지만, 인연이 닿아 보살펴 주었는데, 지금은 서로 의지하는 그런 사이란다. 수연은 이 자살들이 단순 자살이 아니라면, 은심 할머니도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수사를 해보니 이상한 점들이 있었어. 대부분 투신 자살인데, 시신에 피가 별로 없는 거야. (눈치 챘지? 이 소설은 뱀파이어 소설이라니까.) 그리고 시신들이 건물에서 좀 멀리 떨어져 있었어이상하군.

수연이 현장 탐방을 하고 있을 때, 어떤 여자가 그 곳을 서성거렸어. 완다라는 여자였단다. 우리가 좋아하는 <어벤저스 시리즈>의 완다와 이름이 똑같아 반갑네. 완다는 다섯 살 때 프랑스로 입양을 했고, 모르스와 클레어 부부의 보살핌으로 잘 자랐단다. 그러다가 16살 때 릴리라는 독특한 친구와 절친이 되었는데아빠가 릴리를 왜 독특한 친구라고 했냐면, 창백한 피부를 가지고 있었고, 추운 겨울에도 맨발로 다니고 있었거든. 그래, 이 릴리가 뱀파이어란다. 그리고 나이도 수백 살이었어. 수백 살이 되어도 여전히 젊음을 유지하는 것. 소설이나 영화 속에 나오는 뱀파이어의 전형적인 특징 중에 하나지. 완다도 릴리와 친해지면서, 릴리가 뱀파이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 뱀파이들 중에도 착한 뱀파이어와 나쁜 뱀파이어가 있다고 하는구나. 뱀파이어들은 주기적으로 피를 먹어야 살아갈 수 있는데, 착한 뱀파이어들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맛은 없지만 주로 동물의 피를 먹는다고 했어. 그리고 영화와 달리 뱀파이어에게 물렸다고 해도 뱀파이어가 되지는 않는대. 릴리가 한동안 피를 못하고 힘들어 할 때, 완다는 자신의 피를 릴리에게 주기도 했단다. 그만큼 완다와 릴리는 많이 친했어.

그런데 어느날 릴리가 다른 사람의 피를 먹는 것을 완다에게 들키고, 돌연 사라졌단다. 죄책감 때문인 것 같았어. 완다는 이해해 줄 수 있는데 말이야. 완다는 이후 릴리를 찾아 나섰단다. 뱀파이어들을 뒤를 쫓으면서 말이야. 일명 뱀파이어 헌터. 그런 완다가 철마재활병원 사건 현장에 온 거야. 수연을 만나 대뜸 한다는 이야기가 이 사건은 뱀파이어의 소행이라고 했어. 증거로 시신의 목에 구멍 두 개가 있고, 시신의 피가 적을 것이라고 했어. 수연은 이 황당무계한 소리를 처음에는 믿지 않았지만, 시신에서 발견된 구멍 두 개를 보고 완다의 말을 믿기 시작했단다. 그리고 수연과 완다는 사건의 범인을 함께 쫓게 된단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주요 인물 서난주. 어렸을 때 불우한 가정 환경에 가고 싶었던 의대를 가지 못하고, 간호사가 되었단다. 늘 가난에 찌들어 사는 난주는 불법으로 프로포폴을 주사해서 뒷돈을 벌기도 했어. 그리고 우연히 만난 뱀파이어 울란을 도와 병원 환자들을 자살하게 만들었단다. 그러니까 뱀파이어 울란이 이 사건의 범인이었던 거야.

이후 소설의 이야기는 완다와 수연이 이 울란을 쫓고 쫓기는 이야기들이 이후에 펼쳐지게 된단다. 뒷 이야기도 좀더 자세히 이야기해주면 좋았겠지만, 밀린 독서 편지도 써야 하고, 아빠의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잘못된 정보를 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스포일러 방지 차원이라는 핑계도 대고아무튼 잘 마무리 되었다는 정도만 알려 줄게.

천선란 님의 소설들은 좋은 문구들이 많아서 좋았는데, 이번 소설에서도 그런 문장들이 많이 있었단다. 이런 글들이 공감하게 하는 글들은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정말 능력자인 것 같구나. 그런 글들 중에 세 개만 소개하고 오늘 독서 편지는 마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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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엄청난 힘을 가진 세력이 있다고 하자. 무시무시한 무기를 가지고 있어서 아메리카 대륙 정도는 며칠이면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는. 그들을 통제할 수 있는 단체가 있는데도 그런 세력이 있다는 걸 인간 사회 전체에 알리는 게 과연 옳을까? 나는 그게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그런 세력이 있다는 걸 인간들이 알게 된다면 아마 대부분은 나쁘고 위험한 세력이니 조심하자고 생각하겠지만 인간은, 분명 그중 몇몇은 그 세력과 손을 잡을 거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영혼이라도 내다 팔겠지. 네가 보기에는 어때? 그럴 것 같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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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밤하늘에는 별이 빼곡하게 박혀 있었다. 유난히 밝은 별들이 있다. 저 많은 별들 중에서도 유달리 존재감을 드러내는 별들. 모리스는 그것이 별이 아니고 행성일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완다는 그게 별이든 행성이든 무슨 상관인가 싶었다. 완다의 눈에는 전부 똑같아 보이는걸. 가까이 들여다보면 별도 다 같은 별이 아닐 텐데 멀리서 보면 전부 똑 같은 별이었다. 그래서 완다는 멀리서 보는 것도 좋아했다. 완다는 언젠가 모리스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냥 다 똑 같은 별로 쳐요, 멀리서 보면 다 똑같으니까, 그게 좋은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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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

세계를 넓혀 간다는 건 피부에 실을 꿰어 늘리는 과정이다. 피부가 두꺼워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사람일수록 세계를 넓혀 가는 데 거침이 없다. 그들은 세계를 넓혀 가면서 동시에 빠른 속도로 세상에 적응한다. 세상을 이용하고, 세상을 지배하기도 한다. 많이 넓히려면 세세한 것은 지나쳐야 한다. 황무지나 불모지여도 상관없다. 풀 한 포기 살지 못하는 세계라도 개의치 않는다. 피부가 두꺼운 사람은 전체에서 몇 퍼센트 되지 않는다.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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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의 첫 문장: 뱀파이어야.

책의 끝 문장: 시선이 닿지 않는 곳곳에, 세상의 어둠 면면에, 그들은 언제나 고독한 피 냄새를 맡고 있을 것이다.


"외로움과 고독 끝에 몰린 사람들은 울지 않거든. 잊었다고 해야 할지 소용없는 걸 안다고 해야 할지. 영혼 없는 눈동자로 허공만 바라보며 하루를 까먹지. 슬플 때 눈물이 난다는 거, 그래서 울 수 있다는 거, 그 나름대로 살아 있다는 의미야. 의욕을 잃은 사람들은 울지 않거든. 운다고 속이 시원해지는 것도 아니니까. 그렇게 울지 않으면 몸속 수분이 밖으로 빠져나가지를 못해. 그 수분 때문에 피가 아주 묽어지는 거지. 잘 숙성된 적포도주처럼. 그들은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후각이 발달해서 그 고독한 피의 향을 맡을 수 있어." - P118

낮에 뜬 구름보다 밤에 뜬 구름이 더 예쁘다. 해는 바라볼 수 없지만 달은 바라볼 수 있고, 해는 별을 감추지만 달은 별과 함께 뜬다. 밤에 듣는 새소리는 귀가 아닌 마음을 두드리고, 낮 동안 움직이지 않던 나무들은 그제야 부스스, 몸을 털어 낸다. 고양이 눈치를 보느라 움직이지 못했던 들쥐와 그들을 노리는 맹금류의 눈이 소란스럽게 지나가고, 그것들이 스쳐 지나간 자리에는 계절이 내려앉는다. 새싹과 꽃잎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자랐다. 부끄러움이 많아서 그렇다. 부끄러움이 많은 것들은 낮이 아니라 밤에 움직였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으면, 주변이 너무 환하면 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 P226

"그 사람을 떠나보내도 살면서 누군가를 또 만나게 될 테니까. 한 사람에게 너무 의지하는 것은 좋지 않아. 누군가를 좋아하고 의지하고 싶은 마음 바닥에는 외로움이 깔려 있으니까. 누구에게나. 모두가 각자 외로움을 깔아 두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외로움을 타인으로 치유할 수는 없단다. 다만 누군가를 만나면 나 하나만 외로운 게 아니라는 위안을 받을 뿐이지." -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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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1-29 23:4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인용하신 문장들이 좋아요. 아직 천선란 작가 책은 못봤는데 관심이 가네요.

bookholic 2022-01-30 08:37   좋아요 4 | URL
네, 저는 아주 좋았답니다...
천선란 님께서 ˝“동식물이 주류가 되고 인간이 비주류가 되는 지구를 꿈꾼다”라고 하시는 생각도 좋구요~~
<천 개의 파랑>, <나인> 조심스럽게 추천해 봅니다...

scott 2022-01-30 22: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책은 뱀파이어가 나와서 아이들이 무서워 할지도 ㅎㅎㅎ
북홀릭님 설 연휴 가족과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福마뉘 ^ㅅ^

bookholic 2022-01-31 00:00   좋아요 1 | URL
네, 이 책은 아이들에게 추천하지 않았어요 ㅎㅎ
scott님도 즐거운 설명절 되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11)

어쩌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우리와 비슷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꿋꿋하게 삶을 꾸려가는 모습에서 그 어떤 무용담이나 모험담보다 더 큰 용기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들이 처한 평범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제는 그들도 희망을 가질 때가 되었다. 나는 그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인류애를 지닌, 가슴이 뜨거운 피디가 되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카메라를 들도 평범한 그 누군가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한다.


(59)

전쟁이 나든 종교가 무엇이든 그것은 어른들의 일이다. 아이들은 어느 나라를 지목하여 태어날 수도 전쟁을 막을 수도 없는 힘없는 생명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적어도 세 가지 권리는 있다고 생각한다.

배고프지 않을 권리, 학교에 다니며 교육을 받을 권리, 그리고 아프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권리.


(73)

피디를 시작하던 때 내가 방송이 재미있고 신난다. 피디라는 직업 정말 좋다라고 말하자 한 선배는 시간이 지나면 그냥 단지 직업일 뿐이야. 나이를 먹으니 열정도 많이 식더라.”라고 말했다. 그런데 나는 나이가 들어도 출연자들을 만나 카메라에 담는 일이 더더욱 신나고 행복해진다. 내가 철이 안 들어 그런가 하는 생각도 해 보지만 아마도 내 생애는 마리암과 같은 출연자를 만나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으로 언제까지나 행복할 것 같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또 다른 마리암을 만나러 세계를 돌아다닌다.


(111)

남편과 가족은 아프가니스탄 여성으로 공개적으로 사랑과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집을 낸 나디아를 죽여야 했다. 그런 입에 담을 수 없는 단어를 사용한 나디아를 명예살인 한 것이다. ‘명예살인이란, 가문의 명예를 더럽히거나 죄를 지은 아내나 딸, 여동생을 죽여 가문의 위신을 세우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이 천재 시인은 시()와 자기 목숨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140)

그런데 세상에 음악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2007년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파키스탄 페샤와르로 취재 갔을 때 나는 음악을 극도로 혐오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바로 탈레반이다. 그들은 인간이 즐기기 위해 만든 음악은 신이 금지한다고 주장한다. 흥겨워 어깨를 들썩이고 음악을 흥얼거리는 것은 절대 신이 용납하지 않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탈레반은 이런 신념을 곧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음반 가게나 라디오, 텔레비전을 파는 상점에 폭탄 테러를 감행한 것이다.


(194)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로 본 전쟁과 전쟁을 겪어 본 아이들 눈에 비친 진짜 전쟁은 많이 달랐다. 우선 그림 속 사람들이 개미처럼 작았다. 반면 무기나 탱크는 사람들에 비해 과장되게 컸다. 내가 그림 전문가 수준의 안목은 아니나, 무기가 사람을 죽일 만큼 어마어마한 화력을 내뿜는다는 것이 아이들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고, 그런 무시무시한 무기 앞에서 인간이란 한없이 나약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늘과 바다 그리고 나무와 꽃 같은 아름다운 것을 그려야 할 동심이 전쟁으로 물든 것 같아 안쓰러웠다.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나라와 어른들 잘못 만나 어린 시절부터 이렇게 생과 사를 가르는 전쟁에 노출되었나 싶었다.


(246)

미군에게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겠다며 의지를 불태우는 이들은 말하자면 독립군인 셈이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 독립군들이 만주 벌판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싸우는 모습이 떠올랐다. 테러리스트냐 독립군이냐는 시대와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의 독립군도 일본 입장에서는 테러리스트이다. 이라크 저항 세력도 미군 입장에서는 테러리스트이다. 하지만 우리의 독립군과 마찬가지로 이라크 사람들에게 그들은 독립군이다. 역사의 평가는 후대에 한다지만 내가 그때 그들에게서 받은 인상은 애국심에 불타는 독립군이었다.


(302-303)

이라크는 인간이 전쟁 때문에 얼마나 많이 피폐해지는지 너무도 잘 보여 준 곳이다. 이라크 사람들도 전쟁으로 많은 희생을 치렀지만 전쟁터에 내몰린 미군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전쟁에는 승자가 없는 것 같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희생되고 나서 얻는 승리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금쯤 마이크가 집으로 돌아가 엄마와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엄마가 해 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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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1-28 16: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이분 책 좋던데 이런 책도 있었군요. 조만간 봐야겠습니다

bookholic 2022-01-29 23:05   좋아요 0 | URL
네, 글을 읽기 쉽게 잘 쓰시는 것 같아요.
전쟁이라는 무거운 주제지만, 그 속에 사람들에 촛점을 맞추셔서 글들이 따뜻합니다...
바람돌이 님, 즐거운 설명절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