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역병에 걸렸다는 느낌은 무덤 저편에서 건너온 듯 그 무엇으로도 완화되지 않는 오한, 늪에 빠지는 듯한 열병, 몽둥이질을 당한 듯한 두통, 눈과 목이 타는 듯한 열기, 바로 눈앞에서 사신이 찾아온 듯 끔찍한 섬망으로 시작되었다. 감염자의 살갗은 청보라 빛을 띠며 점차 시커메지고 손발은 검은색으로 변했고, 숨을 못 쉴 정도로 기침이 터져 나오고 폐가 부글거리는 피거품으로 가득찬 채 고통으로 신음하다가 결국 숨이 막혔다. 제아무리 운 좋은 사람도 몇 시간 안 걸려 목숨을 잃었다.


(68-69)

모든 인간이 법 앞에서 평등하다거나 신이 보기에 평등하다는 이야기는 사기란다, 카밀로. 나는 네가 그것을 믿지 않기를 바란다. 법도 하느님도 우리 모두를 똑같이 대하지 않는다. 이 나라에서는 그게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면 억양의 미세한 차이, 식탁에서 포크와 나이프를 쥐는 방식, 또는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 수많은 사회 계층 중 어느 계층에 속하는 사람인지 단 1초 만에 알아챌 수 있다. 외국인은 거의 통달하지 못하는 재능이다. 이런 걸 강조해서 미안하다. 나는 네가 지나치게 배타적이고 잔인한 계급 제도에 화를 내는 건 알고 있다. 그러나 조세핀 테일러가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려면 이 얘기를 미리 말해줘야 한단다.


(179)

인생의 여정은 한 걸음, 한 걸음, 하루하루, 충격적인 일 하나 없이 지루하게 이어지지만, 그 여정에서 일어난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기억에 새겨진다. 그 기억들이야말로 이야기할 가치가 있는 것들이다. 나처럼 오래 산 존재 안에는 잊을 수 없는 사람들과 잊을 수 없는 수많은 사건들이 깃들어 있다. 내 가엾은 몸은 닳아버렸지만 다행스럽게도 정신은 아직 흐트러지지 않았다. 잊지 모하는 것은 내게 있어 저주란다.


(316-317)

나는 딸과 단둘이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애가 살았을 때 해주지 않은 말을 마침내 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로 너를 사랑했다고, 여러 해 동안 네가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른다고. 나는 그렇게 내 딸과 헤어질 수 있었고 안녕이라는 말을 할 수 있었다. 그 애에게 키스하며 무심하고 소홀했던 내 죄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내 딸로 와주어서 고맙다는 말도 할 수 있었다. 내 마음과 아들의 마음속에 네가 언제나 살아 있을 거라는 약속도 했다. 그리고 나를 버리지 말아달라고, 꿈속에서 나를 찾아와 달라고, 신호와 암호를 보내달라고, 거리의 모든 아름다운 아가씨의 화신으로 나타나 달라고, 가장 깊은 밤이면 영혼으로 나타나 주고 한낮에는 퍼져나가는 햇살로 나타나 달라고 부탁을 했다.


(345)

우리는 오늘날까지 30년 동안 민주주의를 유지해 왔고, 강제 수용소, 고문, 살인, 수많은 사람이 겪은 탄압이라는 최악의 과거사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 어느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실제 상황이었지만, 당시에는 알지 못했고 정보도 없었고 소문만 무성했다. 아직도 어떤 사람들은 독재가 나라에 질서를 부여하고 공산주의로부터 나라를 구하는 데 필요한 조치였다며 정당화하곤 한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많은 라틴아메리카 국가에 독재가 있었다. 그때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 시대였다. 우리는 미국인들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고, 훌리안 브라보가 10년 전부터 경고한 대로 그들은 우리 대륙에 좌파 사상을 허용하지 않고자 했다. 러시아인들 또한 자기 통제권 안에 있는 나라들에 그들의 이데올로기를 강요했다.


(423)

1980년대 말에는 세계도 우리나라도 우리의 삶도 많이 변화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우리는 텔레비전에서 28년 동안 독일을 갈라놓는 장벽을 하룻밤에 망치로 부수는 베를린 사람들의 행복감을 목격할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과 소비에트 사이의 냉전이 공식적으로 종식되었고, 어떤 나라는 평화를 희망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했지만 그 시간은 너무 짧았다. 항상 어딘가에는 전쟁이 존재한다. 몇 가지 슬픈 예외를 제외하고, 오래 고통을 겪어온 온 우리 대륙은 최근에 와서 과거의 족벌, 혁명, 게릴라, 군사쿠데타, 폭정, 암살, 고문, 대량 학살의 역병으로부터 치유되기 시작했다.


(427)

그 즈음에는 내 인생도 바뀌어 여정의 또 다른 시기로 접어들고 있었다. 안토니오 마차도의 시구에 따르면 길은 없다, 길은 걷는 것으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나의 경우 길을 걷는다기보다 오히려 좁고 구불구불 이어지다가 종종 덤불 속으로 사라지는 길을 따라 비틀거리며 가는 기분이었다. 도중에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물질적 구속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랑을 안고 가벼운 마음으로 70대를 맞이했다.


(469)

살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다. 그 둘 사이에는 기억을 떠올려야 할 시간이 있다. 나는 이 며칠간 침묵 속에서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고, 그 시간 동안 물질적인 문제보다 감정에 관한 것이기도 한 이 유언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세세한 내용을 기록할 수 있었다. 나는 손으로 글을 쓰지 못하게 된 지 몇 년 되었다. 글씨도 알아보기 어려워지고 어릴 적 미스 테일러에게 배운 우아한 글쓰체도 잃어버렸다. 그러나 관절염도 내가 컴퓨터를 사용하는 걸 막지는 못한다. 컴퓨터는 마비되다시피 한 내 몸에서 가장 유용한 수족이다. 카밀로 너는 나를 놀리고 있지. 내가 죽어가는 백 세 노인 중에 기도보다 컴퓨터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단 한 사람일 거라고 말이다.


(476-477)

한 세기를 살다 보니 시간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느낌이 든다. 이 백 년은 어디로 갔을까?

너에게 고해성사를 할 수가 없구나, 카밀로. 너는 내 손자지만 네가 원한다면 내 죄를 사해 줄 수 있겠지. 그러면 에텔비나가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거다. 죄 없는 영혼들은 우주 공간을 가볍게 떠다니며 별 가루로 변한다.

안녕, 카밀로, 니에베스가 나를 데리러 왔다. 하늘이 예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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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지삼출이나 감골댁이 보부상에 대해 똑같이 거부감을 나타내는 데는 그럴 만한 연유가 있었다. 그때 갑오년에 수많은 농민들이 호남평야를 중심으로 해서 들고일어났고, 공주까지 쳐올라간 농민군들이 신식무기를 가진 일본군과 싸우다가 밀리기 시작하면서 농민군들은 어쩔 수 없이 산으로 섬으로 피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군과 관군은 먼저 산으로 들어간 농민군들로부터 뒤쫓기 시작했다. 그때 그들의 길잡이 노릇을 해서 수없이 많은 농민군들을 죽이게 한 것이 바로 보부상들이었다.

등짐을 하고 산길을 따라 이쪽 지방과 저쪽 지방을 문지방 넘듯 넘나드는 보부상들은 산길을 샅샅이 아는데다가, 산속의 정보 또한 신속하게 잘 탐지했다. 그뿐만 아니라 산을 타는 발까지 포수 뺨치게 빨라서 그런 길잡이로는 더없이 안성맞춤이었던 것이다.


(19)

그런데 보부상들은 농민전쟁 때만 그런 행악질을 한 것이 아니었다. 그 뒤로도 나라를 외세로부터 막고 근대화시키려는 대중운동단체인 독립협회에 맞서 그들은 어용폭력단체인 황국협회를 조직했다. 그리고 자체 폭력부대인 봉군을 만들어가지고 만민공동회를 습격하는 한편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폭행을 가했다. 그런 몇 년 뒤에는 또 일본에 합병통치를 해달라고 애원하는 이용구와 송병준을 우두머리로 모시고 일진회에 가담하기도 했다.


(107)

포구에 바닷물이 가득 실려 있을 때 군산 쪽에서 바라다보면 건너편의 낮춤한 산줄기는 바닷물에 그대로 비쳐드는 듯한 정취를 자아냈다. 섬들을 품고 서쪽으로 펼쳐진 바다, 아슴하게 멀고 긴 수평선, 그리고 그 산줄기는 서로 어우러져 그지없이 아담하고 고운 풍광을 이루고 있었다. 그 풍광은 어느 때나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겨 머물게 하는 힘을 지녔지만 특히 빼어난 아름다움으로 치장할 때는 따로 있었다. 물안개가 잠포록이 끼었을 때, 노을이 자욱하게 피어나는 이른 아침이면 그 풍광은 한없이 신비스러웠고, 노늘이 황금빛 현란함으로 타오를 때면 그 풍광은 더없이 황홀했으며, 빛이 사위어가는 달이 적막 속에 기울어져 가고 있을 즈음이면 그 풍광은 그지없이 환상적이었다. 그러나 비가 내리는 날은 비가 내리는 대로 애상적이었고, 눈이 내리는 날은 눈이 내리는 대로 허무적이었다.

그리고 산줄기는 끊긴 듯 이어진 듯하며 동쪽으로 어미줄기를 찾아 뻗어가고 있었는데, 그 오른쪽으로 들판이 널따랗게 펼쳐져 나갔다. 바다와 대칭을 이루고 있는 그 벌판 가운데로 기다란 몸짓을 지으며 유유하게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금강이었다. 몇백리인지 모르게 굽이굽이 흘러내린 금강이 제 몸을 바다에 풀어 맡기는 지점에서 오른쪽 포구에 장항이 자리잡았고 왼쪽 포구로 군산이 앉아 있었다.


(141)

하와이 이민은 노동력 충당을 위해 하와이 사탕수수농장협회에서 주한미국공사 알렌을 통해 교섭하게 한 것이었다. 고종은 1902 11월에 수민원(綏民院)을 설치하게 하고, 12 22일 인천항에서 121명을 떠나 보냈다. 그러나 <백성을 편안케 한다>는 뜻인 수민원은 처음부터 그 직무를 유기하고 있었다. 이민자 121명 중 반 이상이 미국 선교사 존스의 <대한사람이 인간의 천국인 미국에 이민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은혜>라는 설교에 회유된 영동교회 교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뒤로도 여러 선교사들이 각 개항장을 중신으로 사람들을 모집하러 다녔다.


(170)

그들이 기쁨에 넘치는 고문정치의 시작이란 제1차 한일협약이었다. 러시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재빨리 군대를 한양에 진입시킨 다음 무력의 위협 아래 한일의정서를 조인하여 조선 안에 군사기지를 확보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그것이 2월의 일이었다. 그 뒤로 러시아군을 계속 궁지로 몰아넣으며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게 되자 그들은 그 기세를 조선정부로 확대시켰다. 재정고문과 외교고문을 초빙하라는 강요였다. 결국 정부는 그 강압에 굴복하여 협정서 체결에 도장을 찍고 말았다. 1904 8 22일이었다. 그 협정에 따라 재정고문에 일본인 메가다가, 외교고문에는 미국인 스티븐스가 앉게 되었다.


(225)

재산을 더 모을라고 허지 마라. 땅으로 재산을 모으는 것은 결국 농부들의 살을 깎고 피를 빠는 일이다. 세상에 그보다 더 큰 죄가 어디 있느냐. 재산을 탐하면 마음이 썩는다. 마음이 썩으면 죄짓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죄짓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는 자가 어찌 바르게 살 수 있겠느냐. 내가 남기는 전답을 주색잡기 하지 않고 간수만 제대로 하면 네 권속 입고 먹는 것은 족하다. 재산을 탐하지 말고 바르게 살도록 마음을 가꾸기에 게을리 하지 마라. 그것이 바른 사람의 길이고, 옳은 양반의 길이다.”

그 탄식을 꾸짖기라도 하듯 쟁쟁히 들려오는 아버지의 말씀이었다.


(291)

그런데 마침내 을사보호조약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장지연이 <황성신문>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을 쓴 것이다.

비분에 찬 그 글을 먼저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의 가슴을 쳤고, 그런 사람들의 입을 통해 글을 모르는 일반인들에게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동양 삼국의 평화를 솔선주선하기로 나선 이토가 천만 꿈밖에 어찌 오조약을 내놓았는가. 개가죽을 쓴 우리 대신들은 일신의 영달만 위해 황제폐하와 2천만 동포를 배반하고 4천년 강토를 외인에게 주었도다. 슬프도다! 우리 2천만 동포여, 살아야 할거나 죽어야 할거나.


(299)

임금을 호위하던 시종무관장 민영환이 할복자결을 했다. 전 의정부대신 조병세가 자결했다. 전 참판 이명재가 자결했다.

그 연이은 자결의 소문은 겨울바람을 타고 산지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배를 갈라 붉은 피 쏟으며 죽었다는 그 소문들은 그전의 어떤 소문들보다도 뜨겁고 거센 파도가 되어 사람이 사는 곳이면 퍼지지 않은 데가 없었다.

그런데, 그 소문들은 단순히 나라 잃은 비분으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만이 아니었다. 민영환이 흘린 피는 방을 넘치고 마루를 흘러 토방으로 떨어져 내렸는데 그 자리에 푸르른 대나무가 솟아났다고 했고, 조병세가 목숨을 끊자 그가 기르던 난초들이 일제히 꽃을 피웠다고 하는가 하면, 이명재가 숨을 거두면서 뜰의 매화나무가 사흘 밤을 통곡했다는 것이었다.

그건 충절을 상징하는 매난국죽에 근거를 둔 이야기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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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37)

(최재천)10년 전에 긍정심리학의 대가라 불리는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선생님과 나눈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사회의 고통은 과목별로 오지 않는데 아직도 교실에서는 20세기 방식으로 과목별로 가르친다. 그 점이 오늘날 복합적으로 융합하는 산업 사회에서 살아갈 방법을 찾기 힘들게 한다라고 하셨어요. 생각해보니 시대에 발맞춰가지 못하는 교과목식 분류가 교실뿐 아니라 우리의 통치 프레임에도 깊게 새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39)

(최재천) 평소에 알면 사랑한다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요. 자꾸 알아가려는 노력이 축적될수록 이해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어요. 공부와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입니다. 교육의 내용이 사실을 분별할 수 있도록 채워져야 하고요. 진실을 말하는 전문가들의 말이 일반인에게 신뢰를 받아 통용될 수 있도록 사회의 갈등이 잦아들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위정자들이 힘써 노력해야 하지요. 갈등의 골이 깊으면 진영논리로 사실을 외면하려는 경향이 커집니다. 저는 무엇보다 앎이 가져오는 사랑이 소중하다고 여겨요. 우리 인간은 사실을 많이 알면 알수록 결국엔 이해하고 사랑하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45-46)

(최재천) 지금 중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모든 내용이 사회에서 정말 필요한 것일까요? 솔직히 아무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삶의 중요한 시기에 있는 아이들의 시간을 우리가 지금처럼 빼앗아도 될까?’ 자주 의문을 가져요. 저는 어른들이 그들의 삶을 유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걸 인권 문제라고 보는데요. 청소년 시절에는 왜 인권을 보호받지 못할까요? 먼저 살아봤다는 이유로 기성세대가 청소년에게 삶을 접고 공부만 해라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의 교육 제도는 위 세대가 아래 세대를 압박하는 장치가 됐습니다. 이제라도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게 뭔지 고민하고, 모두가 삶을 즐기면서 자라나도록 길을 내야 합니다. 왜 우리가 교육하고 공부하는지를 숙고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87)

(최재천) 30분 단위로 쪼개서 일해요. 학생 상담 30, 회의 한 시간, 그 중간에 30분이 비면 원고 재검토, 그러고는 약속된 곳으로 뛰어나갑니다. 집이 연희동인데 학교까지 매일 걸어 다녀요. 연세대학교 안으로 들어가 동산을 넘어 이화여자대학교 안으로 들어가 고개를 올라 연구실로 오죠. 10년 정도 이렇게 했어요. 3.5킬로미터를 30분 내에 걷습니다. 그 속도로 연구실에서 이대역까지 언덕을 내려와 지하철을 타고 강연장으로 갑니다. 강연이 끝나면 지하철을 타고 다시 연구실로 들어와 뒷일을 하고요. 오후 5시 반에 집으로 출발합니다. 그럼 오후 6시에 도착해요. 하루 평균 1 5천 보 정도는 걷는 일과입니다.


(146)

(최재천) 독서를 일처럼 하면서 지식의 영토를 계속 공략해나가다 보면 거짓말처럼, 새로운 분야를 공략할 때 수월하게 넘어드는 나를 만나게 됩니다. 그날이 오면 스스로가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우실 거예요. 100세 시대에 20대 초에 배운 지식으로 수십 년 우려먹기가 불가능합니다. 학교를 다시 들어갈 게 아니라면 결국 책을 보면서 새로운 분야에 진입해야 하죠. 취미 독서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독서는 기획해서 씨름하는 입니다.


(166)

(최재천) 그런데, 적자생존이란 말이 부각되면서 진화에 대한 오해가 생겼습니다. 다윈이 친구인 사회학자 허버트 스펜서의 표현을 받아들여 쓴 말이 적자생존입니다.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라고 최상급으로 썼어요. 이 말이 다윈 진화론의 존폐에 굉장히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해요.

스펜서는 다윈의 진화론을 제대로 잘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흥분된 마음으로 견해를 열정적으로 풀어냈습니다. 저는 그를 다윈의 전도사 중에 한 명이었다고 표현하는데요. 다만 한 가지 단서를 붙이죠. 아직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다 이해하지 못한 전도사님이라고요. 그런 사람이 적자생존을 최상급으로 표현하는 사람에 우리가 무지무지 적응을 잘해야만 살아남는 것처럼 이해하게 됐어요.


(223-224)

(최재천) 문화인류학자 김정운 선생님은 모든 게 편집이다라고 말합니다. 상당히 의미 있는 말이에요. 지금 인터넷을 뒤지는 젊은 세대는 스스로 편집합니다. 기성세대는 명저 한 권을 붙들고 흡수했죠. ‘이 대가가 이렇게 이야기하시는구나라면서 쭉 읽고, ‘다 이해했어하며 책을 덮었습니다. 이해했다는 건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거죠. 젊은 세대는 스스로 여러 정보를 검색해 나름대로 취사선택하고, ‘뭐 이래?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니야?’라고 판단도 하면서 그 화면은 닫고 다음 걸 읽죠. 자기가 편집합니다. 저는 그 방식이 결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232-233)

(최재천) 동물 세계에는 선생님이 없는 것 같아요. 선생님이 있어도 적극적으로 가르치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그냥 거기 있고 아이들이 보고 배웁니다. 저는 우리가 약간 동물스러운 교육을 하면 좋겠어요. 선생님은 먼저 가르치려고 덤벼들지 말고, 아이들이 스스로 배울 수 있도록 일종의 촉진자가 되어 분위기를 만들어주면 어떨까 싶습니다. 엄마 침팬지가 새끼가 실패하는 것을 모르지 않아요. 관찰해보면 계속된 실패를 보는 엄마 침팬지의 표정이 착잡합니다. 마치 붙들고 가르쳐봐?’ 이런 고뇌를 하는 듯해요. 사실은 아니겠죠. 관찰하는 저의 감정이 이입됐을 텐데요. 엄마 침팬지는 실패하는 새끼 옆에서 자기 열매만 계속 깨먹고 있습니다. 가끔은 새끼가 엄마 침팬지 걸 뺏어 먹어요. 뺏기면 할 수 없지만 배고프지? 엄마가 까줄게그러지는 않습니다. 새끼는 배고프니까 어떻게든 기술을 익혀서 먹으려고 엄마 침팬지를 더 세심하게 관찰하겠죠. 마침내 자기가 혼자서 탁! 깨 먹는 순간이 오는 거예요.


(250)

(안희경) ‘메기 효과라는 말이 있습니다. 북유럽 해역에서 많이 잡히는 생선이 청어인데, 바다에서 잡은 청어는 항구에 도착하는 동안 대다수 죽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연히 따라 들어온 메기가 있던 수족관의 경우 꽤 많은 청어가 항구까지 살아 있었다고 해요. ‘한 조직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효과메기 효과라는 말을 씁니다. 누군가 선생님 말씀을 언뜻 들으면, ‘공부 잘하는 아이를 위해 공부 못하는 아이가 희생해야 하는가? 성적은 낮지만, 창의력이 뛰어나거나 특기가 있는 아이들이 또 희생해야 하는가?’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요. 성적 중심으로 뽑는 대학 입시가 바뀔 가능성이 없는 지금,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할 수 있도록 숨통을 여는 작업은 양쪽 모두에게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경쟁에 매몰된 교육 문화를 흔들 단초가 될 것 같습니다.


(271)

(최재천)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한때 공개적으로 불평한 적이 있었어요. 대학 교육이 엉망이라서 기업들이 신입사원들을 재교육시켜야 한다고요. 제가 신문에 이런 요지의 칼럼을 썼어요. ‘내가 알기로 외국의 유수한 기업들은 신입사원을 뽑아서 재교육을 시킨다. 당신들은 왜 국가의 세금으로 당신들 회사를 위한 교육까지 시켜달라고 하느냐. 그럴 거면 모든 대학생이 등록금 없이 다니도록 대학에 돈을 내라. 당신들이 다시 교육시키는 게 맞다. 세금은 내 돈이다. 왜 내 돈을 가지고 당신들 회사에서 일할 사람을 교육시켜 달라고 떼를 쓰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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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마리 앙투아네트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것은 수백 년에 걸쳐 벌여온 재판을 세상 밖으로 다시 꺼내는 일과 같다. 진실과 정치가 한 지붕 아래에 같이 산다는 건 보기 드문 일이다. 선동을 목적으로 한 인물이 그려질 때, 여론과 그 추종자들로부터 정의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영혼의 진실은 대개 중간 그 어디쯤에 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왕실의 위대한 성인도 아니었고, 특별히 똑똑하지도 어리석지도 않은 평범한 성격에, 불타는 열정도 얼음 같은 차가움도 없는 사람이었다. 착한 뜻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악한 의도를 품은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의 평범한 인물이었기에 비극의 대상이 되기에는 적당하지 않았다. 비극적인 긴장감은 인간과 그의 운명 사이에 존재하는 불균형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불균형은 영웅이나 천재들이 그들에게 내려진 사명에 비해서 너무나 좁고 적대적인 주위 세계와 충돌할 때 생겨난다.


(10)

운명은 평범한 사람도 뒤집어 놓을 수 있고, 한계를 넘어 나아가도록 강제로 몰아가기도 한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삶이 바로 그러한 역사의 예시이다. 명랑하고 구김살 없던 그녀의 세계 안에 혁명이 들이닥치지만 않았더라면, 이 합스부르크의 여인은 수많은 다른 황녀들처럼 평범하게 인류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갔을 것이다. 더 큰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먼저 밖으로 내던져야 한다. 그 목적을 위해 운명이 쥐고 있는 것이 바로 불행이라는 채찍이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 불행의 손길은 비정하게도 마리 앙투아네트의 곁을 좀처럼 떠나려 하지 않았다. “불행 속에서야 겨우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진정한 나를 알게 된다.” 고통을 통해서, 자신의 하찮은 평범한 삶이 후세에 어떠한 본보기가 되리라는 예감이 엄습했다. 책임 의식을 느끼며 그녀는 자신을 초월하여 성장한다. 필며의 형체가 부서지기 직전에, 영원히 지속되는 예술작품이 탄생한 것이다.


(27-28)

세상사는 대개 개개인의 내적 갈등의 결과물들일 뿐이다. 아주 작은 계기가 엄청난 결과를 불러오게 되는 것은 역사가 지닌 위대한 비결 중 하나이다. 1차 세계대전의 나비효과라고 불리는 세르비아의 알렉산다르와 드라가 마신의 결혼, 두 사람의 암살, 카라조르제비치의 즉위, 오스트리아와의 적대. 빈틈없이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과 세계대전. 역사란 거미줄처럼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그물을 짜는 것이다. 정교하게 조합된 역사라는 장치 속에서는 아주 작은 톱니바퀴라도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이렇듯 마리 앙투아네트의 생애 가운데 아무것도 아니었던 일들, 결혼 이후에 몇몇 해들은 세상의 모습을 바꾸게 되었다.


(29)

오늘날에도 베르사유는 절대 왕정의 가장 웅장하고 도전적인 모습으로 남아있다. 도심에서 떨어진 시골 한가운데, 별다른 이유 없이 언덕 위에 자리한 궁전에는 수백 개의 창문들이 인공 운하와 정원을 바라보고 있다. 이곳에는 원래 도로도 기차도 이어지지 않았었다. 한순간의 기분으로 굳어진, 무의미하게 거대한 호화로움이었다. 바로 이것이 루이 14세의 절대 왕정이 원하던 것이었다. 이러한 의지는 국왕 개인에게서 비롯된 것이었기 때문에 모든 영광은 그 개인에게로 다시 돌아가야만 했다. “짐이 곧 국가다.” 그는 지위의 무한함을 표출하기 위해 궁전을 의도적으로 파리 밖으로 옮겼다. 그가 팔을 뻗어 명령만 하면 모래밭은 정원과 숲으로 변하고, 아름다운 궁전이 세워졌다.


(58)

네가 얻은 새로운 지위에 대해 축하의 말은 하지 않겠다. 그것은 값비싼 대가를 치르며 얻은 것이다. 시할아버지의 자비와 관용으로 지난 3년동안 누려온 평안한 생활, 그리고 프랑스 국민들이 너희에게 안겨준 사랑. 그 감사한 일들을 앞으로도 계속 이어 나가겠다는 결심을 하지 못할 때에는 더욱더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국민의 지지와 사랑을 받는 것은 너의 지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은 그 지위를 유지하며, 국왕과 국가의 안녕을 위해 올바르게 사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너희 둘은 아직 너무 어린데…… 이 어미는 걱정이구나. 지금 내가 너희에게 조언할 수 있는 것은 너무 서둘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스스로의 눈으로 살펴보고 아무것도 바꾸려 하지 말고, 흐르는 대로 두거라. 그렇지 않으면 혼란과 음모가 끊이질 않을 것이다.”


(64)

하지만 부정은 못 해도 용서할 수는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올곧은 성격의 사람이라도 이런 유혹은 뿌리치기 어려웠을 것이다. 궁궐의 뒷방에서 정신적으로 채 성장하기도 전에 하룻밤 사이 최고 권력의 자리에 부름을 받은 그녀. 게다가 18세기라는 이 시대는 그녀를 유혹하기에 절묘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왕비가 된 첫날부터 자신을 신격화하는 숭배의 향연에 휩싸였다. 그녀가 하는 말은 무엇이든 현명한 것으로 간주되었고, 그녀의 행동은 곧 법이 되었으며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변덕을 한번 부려주면 그다음 날에는 벌써 유행이 되어 있었다. 어리석은 짓을 하더라도 궁중은 열광적으로 따랐다. 허영심에 찬 아들에게는 그녀 곁에 한 번 서는 것이 소원이었다. ‘지불한다는 단어 한마디를 종이 위에 휘갈겨 쓰기만 하면 수천 두카트가 쏟아져 나왔다. 빛나는 날개가 하늘에서 내려왔는데 어찌 경솔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144-145)

왕비에게는 적자 부인(Madame Defizit)’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붙여졌다. 미국 독립전쟁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민주적인 나라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궁정이나 왕, 귀족은 없고 오직 시민만이 있는 나라, 완전한 평등과 자유가 있는 나라를 말했다. 그리고 루소의 사회계약론과 볼테르, 디드로의 저서에서 말하다시피 왕권은 결코 신이 부여한 유일한 정치체제가 아니었다. 존경심은 호기심으로, 두려움은 분노로 바뀌며 귀족과 시민들은 점점 확신했다.


(241)

오래된 비법: 국가나 정부는 내부적인 위기를 더 이상 통제할 능력이 없을 때, 외부 세계와의 긴장을 조성하면서 눈을 돌린다. 이 불변의 법칙에 따라, 혁명의 지도자들은 내란을 피하기 위해 몇 달 전부터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을 요구했다. 헌법을 받아들이며 루이 16세의 왕권은 약화되었고 라파예트 같은 순진한 사람들은 이제 혁명은 끝이 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입법의회를 지해하고 있던 지롱드당은 공화정을 바라고 있었다. 왕국을 아예 없애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쟁보다 더 좋은 수단이 없었다. 전쟁이 나면 왕실 가족과 국민을 완전히 갈라놓을 수 있었다. 최전선에는 시끄러운 왕의 두 형제가 나설 것이고, 적군은 왕비의 오빠가 지휘할 것이기 때문이다.


(254)

왕정과 공화정 사이에 마지막 결전이 일어난 이날, 튈르리 궁 앞 사람들 속에 젊은 소위 한 명이 서 있었다. 코르시카 출신의 장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였다. 누군가 그에게 자네는 언젠가 루이 16세의 후계자가 되어 이 궁전에서 살게 되리라 말했다면 바보 같은 소리라며 무시했을 것이다. 그는 마친 근무 중이 아니었기에 양쪽 진영을 예리한 눈으로 관찰할 수 있었다. ‘두세 발 대포를 쏘아대기만 하면 이 폭도들을 쓸어버릴 수 있을 텐데.’ 왕이 이 보잘것없는 포병 소위를 기용하기만 했다면 그는 파리 전체를 상대로 맞설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왕궁 안에 나폴레옹처럼 강철 같은 심장을 가진 자는 아무도 없었다. “공격은 하지 말고 단단히 버티면서 강력하게 수비하라!” 이것만이 병사들에게 내려진 명령이었다.


(266)

혁명이라는 개념은 그 자체로 넒은 의미를 포괄하는 단어이다. 이 개념은 최상의 이상주의에서부터 현실적인 잔악함에 이르기까지, 위대함에서부터 무자비함에 이르기까지, 정신적인 것에서 폭력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변화하며 변색됐다. 프랑스 혁명에는 두 부류의 혁명가가 있었다. 이상주의적인 혁명가와 복수심에 불타는 혁명가였다.


(295)

대체 언제 너는 진짜 네가 될 작정이냐?” 20년 전 절망에 빠진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는 딸에게 이런 편지를 보낸 적이 있었다. 이제 죽음을 눈앞에 둔 마리 앙투아네트는 스스로 존엄을 되찾기 시작했다. 공식적인 법 절차를 빠뜨리지 않으려는 심문자 푸키에 탱빌은 그녀에게 체포되었을 당시 어디에 살았냐고 묻는다. 그녀는 자신은 결코 체포된 것이 아니며 국민의회의 요청에 따라 탕플 탑으로 옮겨갔을 뿐이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본격적인 질문이 시작되었다. 왕비의 죄목은 혁명 이전부터 오스트리아의 국왕과 정치적인 관계를 맺은 것, 민중의 땀과 열매인 프랑스 재정을 개인적인 즐거움을 위해 반역자인 대신들과 공모하여 낭비한 것, 황제에게 돈을 보내 자신을 섬긴 백성들을 공격한 것 등이었다. 혁명 이후 프랑스에 대항하여 외국 밀사와 거래하고 남편인 국왕을 선동해서 거부권을 쓰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런 모든 비난을 마리 앙투아네트는 강력히 부정했다.


(305-306)

사랑하는 아가씨, 이것이 당신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입니다. 나는 방금 선고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범죄자들에게 내려지는 치욕적인 선고가 아닌 당신의 오빠를 다시 만날 수 있는 안도의 선고입니다. 그분은 결백합니다. 나도 그분처럼 최후의 순간을 잘 처신하기를 바라고 있어요.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는 사람이라면 모두 그렇겠지만 나는 아주 평온합니다. 불쌍한 아이들을 남기고 떠나야만 한다는 것이 정말이지 마음이 걸리는군요.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아이들만을 위해 살아왔습니다. 다정하고 마음씨가 착한 아가씨, 당신을 위해서도 나는 살아왔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 온 당신을 담겨두고 떠나게 되다니! 재판의 변론을 통해서 내 딸이 당신과 떨어져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불쌍한 어린 것! 그 아이에게는 편지를 쓰지 않으려 합니다. 쓰더라도 전해지지 않을 테니까요.

이 편지가 당신에게 전해질지도 알 수 없습니다. 부디 아이들에게 나의 축복을 전해주세요. 신념을 지키고 의무를 다하는 것이야말로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 서로를 신뢰하고 화합하면 행복해지라는 것을 가르쳐주세요. 아이들이 어떤 처치에 놓이더라도 서로 힘을 합하면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이 우리를 본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고통 가운데에도 우리들의 우정은 얼마나 많은 위로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행복이란 친구와 함께 나눌 때 배가 되는 것이지요.

아들이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을 절대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훗날을 위해 다시 한번 말하자면, 우리들의 죽음에 복수할 생각은 절대 품지 말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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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모든 것이 삶의 덧없음을 강조하는 데 집중됐다. 우리에게 기쁨을 주던 만발한 꽃이나 잘 익은 과일들이 이젠 기쁨이 아니라 삶의 덧없음을 강조하는 데 이용됐다. 만발한 꽃은 곧 시들 듯, 우리도 곧 죽는다는 것이다. 아마도 가장 전형적인 소재가 정물화 속의 해골, 모래시계, 그리고 촛불일 것이다. 모래시계의 모래가 다 떨어지면 또 촛불이 다 타고 나면, 그 다음은 말 그대로 ()’만 남는 것 아닌가? 우리가 문리를 깨우치려고 붙잡고 씨름하던 ’, 그리고 과학 관련 도구들도 바니타스의 단골 소재였다. 파우스트가 책 더미에 둘러싸여 진리를 깨우친 뒤, 결국 삶의 허무에 슬퍼했듯, 책과 과학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이 모두 허무하다고 화가들은 그린다.


(80-81)

미술사가들에 따르면 로코코의 시작은 태양왕 루이 14세의 죽음(1715)과 일치한다. 베르사유 공전의 장대하고 영웅적인 17세기의 바로크와 고전주의가 물러나고, 파리의 살롱을 중심으로 작고 예쁜 실내 장식 같은 예술들이 18세기 초엽부터 시작됐다. 절대 권력자의 독재에 질린 귀족들이 궁전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와 자신들의 고향인 파리로 돌아간 뒤, 궁전 예술과는 아주 다른 사적인 취미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작품들을 좋아했는데, 이를 예술사에선 로코코라고 부른다.


(160)

마르크 샤갈(1887~1985)도 경계인이다. 그는 러시아계 유대인이다. 지금의 벨로루시공화국의 비텝스크에서 태어난 샤갈은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자유시민으로 살지 못하고 일종의 불법체류자처럼 숨어 살았다. 당시 유대인은 러시아 시민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그는 러시아인도, 그렇다고 유대인도 아닌 그 사이 어디쯤에서 방황한 인물이다.

샤갈의 세상은 집시의 세상과 닮았다. 이성과 상식은 없고, 마법적인 환상으로 가득 차 있다. 결혼한 신랑 신부는 하늘을 날고, 동물의 머리를 한 신랑은 가냘픈 신부의 뺨에 입맞춘다. 집보다 닭이 더 크게 그려져 있고, 바이올린 연주자는 늘 지붕 위에 앉아 있다. , 황소, 양들은 사람의 가장 절친한 이웃인 듯 빠짐없이 등장하고, 이들이 사는 마을은 늘 축제로 흥청망청이다. 샤갈의 세상은 쿠스투리차의 영화처럼 카오스의 미학이 지배하고 있다.


(180)

19세기 말, 데카당스의 세련되고 퇴폐적인 기운이 가득한 도시, . 문학, 음악, 미술에서 세기 말 낭만주의의 정점에 있던 예술가 세 명이 바로 쇠락의 도시 빈에서 서로 이름을 떨친다. 아르투어 슈니츨러(1862~1931), 구스타프 말러(1860~1911), 그리고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가 바로 그들이다. 슈니츨러와 클림트는 동갑이고, 말라는 이들보다 두 살 위다. 말러는, 레퀴엠보다 더 비극적인 <교향곡 5>에서 잘 보여줬듯, 지독한 비관주의자다. 그의 검은 음악은 우리를 죽음의 고요 속으로 이끈다. 반면, 클림트는 생명이 넘치는 황금빛 회화로 우리를 에로스의 환희로 초대한다. 이 두 예술가의 사이에, 곧 죽음과 에로스 사이에 슈니츨러의 문학 세계가 걸쳐 있다.


(200)

1916년 스위스의 취리히. 모든 유럽이 전쟁 속으로 휘말려 들어갔을 때, 전쟁이 싫다는 이유로 몇몇의 삐딱한 젊은이들이 영세중립국 스위스의 이 도시로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인류의 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대규모의 학살 전쟁을 겪으며 이들은 우리 인류가 이룩한 모든 긍정적인 가치들을 거부하는 극단적인 예술 운동을 전재한다. 소위 거부의 미학운동이라 하는 아방가드르 다다(Dada)’는 이렇게 전쟁을 배경으로 탄생했다.


(206-207)

어떻게나 악당이 실감 나게 연기를 해대는지, 주인공 배트맨의 존재는 잘 기억나지도 않고 조커의 인상만 강렬하게 남은 영화가 <배트맨>이기도 하다. 만약 조커 일당이 무고한 사람들만 죽이지 않는다면, 과연 누가 주인공인지 헷갈릴 정도로 캐릭터들 사이의 중심은 조커에게로 쏠려 있다. 조커 일당이 배트맨과 싸우는 방법도 아주 인상적이다. 배트맨은 첨단과학과 거대자본이 있어야만 소유할 수 있는 무기들을 지고 하늘을 날고 땅 위를 쏜살같이 달린다. 반면에, 악당들은 재래식 소총을 들고 맨몸으로 배트맨과 싸운다. 어찌 보면 요즘 세상과 참 많이 닮은 전투 장면이기도 하다.


(306)

연애소설 주에 토머스 하디의 <테스>만큼 인기가 높은 작품도 드물 것이다. 특히 여성 독자들에겐 더하다. 여성이 과거를 고백하는 게 과연 잘한 것인가 아닌가같은 소재는 우리처럼 가부장적인 사회에선 더욱 먹혀들었다. 테스는 잘 알려져 있듯이 그 과거를 고백한 대가로 인생을 망치는 순진한 처녀다. 이런 간단한 연애 이야기의 소설이 고전의 반열에 오른 것은 문학적으로 승화된 언어 때문이지, 이야기의 독특함 때문은 아닌 듯하다. 특히 토머스 하디는 영국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처럼 자연의 감정을 묘사하는 데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 선배 워즈워스가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내 가슴은 뛴다며 자연에서 희망을 찾았다면, 하디는 이와 반대로 고독을 맛본다. 하디의 자연에는 절망이 있다. 쓸쓸한 고독 속에 방황하는 농촌 사람들의 무너진 인생이 하디 소설의 테마다. <테스>는 그 정점에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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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4-01-16 06: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에 읽었던 도서가 소개되어 내 서재를 한참 둘러 보았어요. 이 도서를 찾으려고. 안타깝게도 없네요. 아마도 누군가에게 주었나 봅니다. 옛 일을 떠올리게 해줘서 고맙습니다.

bookholic 2024-01-16 23:30   좋아요 0 | URL
저는 최근에 친구의 추천으로 알게 된 책입니다.
소개된 영화를 많이 보지 않아서, 궁금증 잔뜩 유발한 책이었습니다!!! ^^
따뜻한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