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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솔직히 말씀드리건대 나는 꽤 오래 살았습니다.햇수로 보나 명성으로 보나 말이죠. 하지만 나는 아직 인생에 그리 싫증이 나지 않았으며 살해당하는 것으로 삶을 끝낼 생각이 없습니다. 나를 제거해보십시오, 그러면 장담컨대 로마는 독재관 카이사르보다 훨씬 더 나쁜 병폐들을 겪게 될 겁니다. 로마의 현상황은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가 독재관 직을 맡을 때와 다릅니다. 로마는 하나의 강력한 손이 필요하고, 그 손을 내게서 찾았습니다. 내 법들을 확립시키고 로마가 그 어느 때보다 위대하게 살아남을 거라는 확신이 들면 나는 독재관 직을 내려놓을 것입니다. 하지만 내 일이 완전히 끝나기 전에는 그러지 않을 것이며, 그때까지는 수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경고하겠습니다. 내게 예전의 영광으로 공화국을 되돌려 놓으라는 부탁은 이제 그만하십시오.


(203-204)

문제의 핵심은 어느 특정 단체에 있지 않았다. 카이사르가 실패한 지점은 바로 그가 이 모든 일을 사실상 혼자 했다는 사실이었다. 독재관으로서. 그런데 로마에는 자기도 카이사르와 똑같이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었다. 카이사르가 독재관을 지내는 기간이 장기화되면서 뭔가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그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 뾰족한 해결책은 없었다. 그는 여생 동안 독재관 직을 유지해야 할 터였고, 그가 죽은 후 로마가 부디 충분한 교훈을 깨달아 후퇴가 아닌 전진하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무엇을 위한 전진이란 말인가? 그것은 그도 몰랐다. 카이사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그가 도입한 변화들이 훌륭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그를 따르는 자들이 그 훌륭함에 충분히 감화되어 이 변화들을 지속해나가리라고 믿는 것뿐이었다.


(231-232)

원로원 의원 여러분, 나는 이 우스꽝스러운 아첨을 당장에 그만두라고 말하겠습니다. 나는 그런 것들을 요구한 적도 바란 적도 없습니다. 앞으로도 결코 받지 않을 겁니다. 이것이 나의 지시이며, 이 지시는 반드시 준수되어야 합니다. 원로원에서 나를 로마의 왕으로 만들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 있는 결의안이 통과되는 것을 묵과하지 않겠습니다! 우리 로마에서 왕정은 폐지되었고 그 대신 공화정이 탄생했습니다. 나는 왕정을 혐오합니다. 나는 결단코 로마의 왕이 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나는 합법적으로 임명된 로마의 독재관이며 이 독재관 직만이 내게 필요한 전부입니다.”


(325)

해방자들이 광기 어린 눈빛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브루투스는 손등에 흐르는 피를 멎게 하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들은 순간적으로, 하지만 무언의 동의라도 한 듯 일제히 돌아서서 문을 향해 달렸다. 데카무스 역시 넋이 나가 있었다. 평의원들은 현장을 목격하자마자 이미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달아난 터였다. 그가 죽었다, 카이사르가 죽었다! 해방자들마저 정원으로 뛰쳐나오자 밖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공황상태에 빠졌다. 해방자들의 토가에는 선혈이 낭자했고 끈적끈적한 주먹에는 칼이 들려있었다.


(400)

편지를 끝맺기 전에 꼭 말해두어야 할 게 있다. 네가 상속받은 유산 말이다. 옥타비우스, 제발 유산을 물려받지 마라! 재산을 똑같이 나눠서 8분의 1만 받겠다고 하고 입양되는 것은 거부하렴. 이대로 유산을 받는 것은 죽음을 부르는 짓이야. 너는 안토니우스와 해방자들과 돌라벨라의 등쌀에 올해를 넘기기 힘들 거야. 그들은 열여덟 살 어린애인 너를 박살대고 말 거라고. 안토니우스는 고작 어린애한테 밀려서 유산을 상속받지 못했다고 화가 나서 제정신이 아니야. 나는 그가 카이사르의 암살자들과 공모했다고까지 말하진 않겠다. 그랬다는 증거가 없으니까. 하지만 그자가 도덕이나 윤리 따윈 없는 인간이라는 건 분명해. 그러니 널 만났을 때 카이사르의 유산을 거부하기로 결심했다는 말을 듣길 기대하마. 오래오래, 늙은이가 될 때까지 살아라, 옥타비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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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적은 외국의 문화권에서 오는 것이지 나와 같은 민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오, 대시종장. 상대라는 말이 더 낫겠군. 일반적인 표현에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단어니까. 아니, 나는 폼페이우스 마그누스를 보복 대상으로 보지 않소.” 카이사르는 꿈쩍도 하지 않고 말했으나, 그의 마음속 어딘가에는 차가운 응어리가 생겨나고 있었다. 그는 차분히 말을 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관용을 방침으로 삼아왔고, 앞으로도 계속 관용의 입장을 고수할 거요. 내가 폼페이우스 마그누스를 직접 찾으러 온 까닭은 진실한 우정으로 그에게 손을 내밀고 싶어서요. 아첨꾼들만 우글거리는 원로원으로 들어가는 건 딱한 노릇일 테니까.”


(203-204)

인색하게 굴지 마시오, 클레오파트라! 당신 돈을 써서 백성들을 먹이시오. 가난한 자들에게 비용을 떠넘기지 마시오! 로마가 무산자들과 별 갈등이 없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오? 전차 경주 입장료를 받지 말고, 아고라에 무료로 몇 가지 구경거리를 오릴 생각을 하시오. 그리스인 배우들로 이루어진 극단을 데려다가 아리스토파네스와 메난드로스같이 유쾌한 희극작가들의 작품을 공연하게 하시오. 일반 민중은 자기네 삶 자체가 비극에 가까워서 비극을 좋아하지 않으니까. 그들은 한나절 잠깐이라도 웃으면서 걱정근심을 잊어버리고 싶어한다오. 공공 분수를 지금보다 훨씬 많이 설치하고 공중목욕탕도 몇 개 만드시오. 로마에서는 목욕탕에서 한 번 마음껏 즐기는 데 4분의 1세스테르티우스 밖에 들지 않소. 그 돈이면 사람들은 몸도 깨끗해지고 기분도 좋아져서 나가는 거요. 여름 동안 저 망할 새들을 관리하시오! 남녀 몇 명을 고용해서 거리 청소를 하고, 오물을 내보내는 하수구가 있는 곳마다 제대로 된 공중변소를 설치하시오. 알렉산드리아와 이집트는 관료들로 꽉 차 있으니 귀족은 물론 다른 인구까지 포함하는 시민 명부를 마련하시오. 또 빈민들에게 매달 밀 1메담노스를 받을 자격을 주는 곡물 목록을 작성하고 맥주를 빚어 마실 수 있게 보리 배급도 포함하시오. 당신이 소득으로 받는 돈은 썩어 없어지게 처박아두지 말고 고루 분배해야 할 것이오. 그 돈을 쌓아두면 경제가 붕괴하는 거요. 알렉산드리아는 이제 길들었지만, 계속 그 상태로 있을지는 당신 하기에 달렸소.”


(207)

나는 군주가 아니오! 로마에는 집정관과 법무관과 다수의 정무관이 있소. 독재관은 임시방편일 뿐, 다른 의미는 없소. 독재관으로서 로마를 바로 세우는 일이 끝나는 즉시 그 자리에서 물러날 거요. 술라가 그랬듯이. 내게 법적으로 로마를 지배할 특권은 없소. 그런 게 있었다면 로마를 벗어나지 않았을 거요. 당신이 이집트를 떠나선 안 되는 것처럼 말이오.”


(340)

브루투스는 솔직해지기로 마음먹었다. “카이사르는 내전의 승자로서 권리가 있어. 이봐, 카시우스, 이번 전쟁이 로마 최초의 내전도 아니잖나. 우린 가이우스 그라쿠스 이후 최소 여덟 번 내전을 치렀고, 승자들은 고난을 겪는 법이 없었어. 물론 패자들은 그 반대였고, 지금까지는 말이네. 그런데 이제 카이사르라는 사람이, 과거는 과거로 기꺼이 묻어두려는 승자가 나타났어. 이런 승자는 처음이네, 카시우스, 처음이라고! 사면을 받는 게 어때서 그래? 사면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른 말로 부르게. ‘과거는 과거로 묻기도 괜찮아. 카이사르는 자네한테 무릎을 꿇으라고 하지도 않을 거고, 자넬 벌레처럼 본다는 인상도 주지 않을 거야! 그는 내게 더할 수 없이 친절했네. 내가 잘못을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조차 않는 것 같았다니까. 그가 나를 위해 사소한 무언가라도 해줄 수 있어서 진심으로 기뻐한다는 느낌을 받았어. 정말이지 카이사르는 그랬다네, 카시우스! 마치 폼페이우스의 편에 선 게 별일 아니라는 것처럼, 각자 서야 하는 편에 서는 것이 모두의 권리라는 것처럼 말이네. 카이사르는 지극히 예의바른 사람이야. 그는 남들을 하찮게 보이게 하거나 그렇게 느끼게 해서 본인을 드높이겠다는 필요를 전혀, 조금도 느끼지 않아.”


(383)

베니, 비디, 비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이 말을 모토로 삼을까 생각중이네. 이 말에 들어맞는 상황이 걸핏하면 생기는데다 간명한 표현이기까지하니 말이지.


(386)

내 말이 무정하고 다소 경박하고 답답하게 들린다는 것 아네. 하지만 난 몰라볼 정도로 변했어, 마티우스. 한 사람이 반드시 필적할 자가 없을 만큼 높이 올라갈 필요는 없는데, 유감스럽게도 내게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네. 나와 치열하게 경쟁할 만한 사람들은 다 죽었어. 푸블리우스 클로디우스. 가이우스 쿠리오. 마르쿠스 크라수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파로스의 등대가 된 기분이야-자기의 반만큼 높은 것조차 전혀 없는 등대 말이지. 이런 걸 원했던 건 아닌데, 내겐 선택권이 없었어.


(532)

게다가 <파이돈>은 또 뭔가? 스타틸로스한테서 이야기를 듣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지만, 카이사르가 스타틸로스를 곧 브루투스한테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취소할 수도 있다는 낌새를 보이자 그 끔찍한 자살의 전모를 샅샅이 듣게 되었다. , 카토의 그 담금질할 강철 같은 불굴의 페르소나가 속으로는 완전히 부스러졌다는 걸 알게 되니 기분이 무척 좋은걸. 죽을 때가 되자 카토는 죽기를 두려워했어. <파이돈>을 읽어 자신이 영원히 살 것임을 스스로에게 확신시켜야 했던 거지. 거참 흥미롭군. 그리스어로 쓰인 가장 아름답고 시적인 저서 중 하나지만, 그 책을 쓴 사람은 제삼자의 입을 빌려 말하고 있지. 저자도, 최고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논리와 합리성, 상식에 있어 타당하지 않아. <파이돈>, <파이드로스>, 그 밖의 책들도 궤변으로 때로는 순진한 거짓으로 점철되었고 케케묵은 철학적 죄를 저지르고 있어. 다시 말해 그들은 진실이 아니라 자기들 입맛에 맞는 결론에 도달한다. 스토어 철학보다 더 편협한 철학이 어디 있겠나? 그 외의 어떤 정신적 강령이 그렇게 완벽한 미치광이를 그토록 성공적으로 탄생시킬 수 있겠는가?


(533)

, 하지만 카이사르의 인생은 갈수록 고독해지고 있다. 카토, 비불루스, 아헤노바르부스, 렌툴루스 크루스, 렌툴루스 스펜테르, 아프라니우스, 페트레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쿠리오까지 다 죽었다. 로마는 과부들의 도시가 되었고 제대로 된 카이사르의 경쟁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카이사르에게 동기부여가 될 반대 없이 그가 어떻게 발전할 수 있는가? 하지만 절대, 절대로, 그의 군대로부터 반대를 당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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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9-29 00:4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북홀릭님 가장 재밌는 부분만 발췌!

시월의 말 아끼며 읽었습니다 ^ㅅ^

bookholic 2021-09-30 08:06   좋아요 1 | URL
ㅎㅎ 그렇게 생각해주셔서 감사!!
어느덧 구월의 마지막날이네요...
구월 마지막 하루 즐겁게 보내세요~~^^
 














(39)

경제성장을 하면서도 온실가스를 감축할 수 있다는, 소위 탈동조화론에 기반한 생태적 현대화론이라는 환상에 매달리고 있다. 이런 접근 탓에 기업들을 해결 주체로 삼아 이들을 지원하고 기술과 시장을 활성화하여 탈탄소경제로의 전환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국회는 논의과정에서는 기존 지배적 자본의 이해관계에 맞설 배포도 없이 감축목표 상향을 깎아내리는 데 매달리고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기후위기는 그렇게 접근해서는 해결될 수 없다. 기후위기의 책임이 적지만 그로 인해 피해를 떠안고 있는 민중들을 해결 주체로 세워 정보와 기업의 책임을 묻고, 무한한 경제성장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체제를 넘어서려는 목표와 전략으로써만 기후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


(51)

농업의 지속가능성이 무너지면 결국 피해는 국민의 것이다. 그래서 세계는 먹거리를 생산하고 공급하는 데 있어서 국가의 역할을 확장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먹거리를 공공재로 인식한다. 서유럽에서는 폭우로 18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동토 시베리아가 펄펄 끓고 있다.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도 인간의 경제활동에 의한 기후위기의 결과물이다. 기후위기에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것은 농업이다. 그리고 농업이 붕괴되면 식량위기에 직면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특히 한국은 식탁의 5분의 1만을 자급하고 있기 때문에, 위기가 닥쳤을 때 극심한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을 근본적으로 바꿀 농정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공공농업이다.


(83)

물론 이들 각자의 목적들 사이에는 갈등과 경합이 불가피하게 예상된다. 하지만 사회적 효율성, 사회적 이동성, 그리고 민주적 시민성이 적절하게 균형을 잡아야 한다. 아동 중심 진보주의 교육과 사회 중심 진보주의 교육이 분리되어서는 안된다. 사회화의 기능과 주체화의 기능도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양자의 가치를 적절하게 배합하는 국가의 조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학교 현장에서는 새로운 질서를 창출할 수 있는 비판적 학문활동과 함께, 학교의 시민문화를 꽃피울 수 있는 결사체의 활성화와 집단적 학습공동체 구성과 문화적 진지가 구축하여야 한다. 공존과 상생의 평화시대를 모색해야 하는 시대의 새로운 교육체제는 단순히 공교육만을 통해서 실현될 수 없다.


(93)

실제로 신입생이 줄어드는 대안학교가 있는 반면에 입시에 최적화된 대안학교의 숫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미 숫자상으로는 기독교 대안학교와 창의적으로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곳이 대안학교의 주류가 되었다.


(99)

학교의 쉬는 시간은 아이들이 단지 지적인 요구로부터 숨을 돌리거나 긴장을 푸는 휴지기가 아니다. 그것은 어른들에 의해서 면밀히 감독되는 사회적 물리적 조건들로부터 잠시 벗어나는 기회이다. 바로 그때에 아이들은 성인 권위자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신들의 관계를 스스로 협상할 수 있는 가장 큰 자유를 누린다. 그럼에도 미국 전역에서 이런 기회가 사라지고 있다. 뉴올리언스 대학 주디스 키에프 부교수의 2001년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 기준으로 40%가 넘는 미국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쉬는 시간이 완전히 철폐했다. 동시에 이와 대조적으로 미국 교육부 통계자료는 학교들의 기술에 대한 지출이 1990년에서 2000년 사이에 300% 이상 증가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105)

아이들이 컴퓨터 환경에 그토록 매혹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아이들이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 경험을 하고 좌절감을 느끼게 만드는 저항들이 그 속에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의 세계에서 한 아이가(누구든 마찬가지이지만) 자연세계의 물리적 한계와 자연에 대한 자신의 지배력의 한계, 그리고 그 안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타자들의 의지를 존중해야 할 필요를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무제한으로 조작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바로 그런 사물들의 저항이다. 한 아이가 정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기 마음대로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를 무릎 위에 가만히 앉아 있게 만들 수도, 장미꽃 봉오리를 피어나게 할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또 친구에게 상처를 준 뒤에는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 다시 시작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130)

사람은 뜻으로 살지만, 그 뜻은 말과 행동으로 꽃이 핍니다. 사람의 향기 그득했던 김종철 선생님, 따스하고 향기로운 선생님의 내음을 어찌 잊겠습니까. 세월은 가도 그 향기 내내 남아 우리의 가슴을 진동시킬 거라 믿습니다.


(146)

지식은 공동체와 정치경제의 산물이다. 이 구조를 개인의 능력과 성실성, 의지로 돌파하려는 이들이 혁명가다. 나는 김종철이 한국 현대사에서 그런 인물이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지식인들이 로컬에서 작시 지식을 생산하지 못하고 서구 지식의 수입상이라는 소리는 듣는데,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식민주의 사회에서는 요약을 잘하는 공부 잘하는 학생도 없다. 실제 더 큰 문제는 제대로 된 수입상조차 없다는 현실이다. 페미니즘을 포함, 서구 지식을 소개하려면 그 지식이 생산된 특정 사회(또하나의 로컬인 서구)의 역사적 맥락을 충분히 알아야 한다.


(147)

한국사회처럼 지식인이 부재한 사회에서 진정한 혁명은 혼자 도모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인식의 혁명이 훨씬 어려운 이유다. 제도권에서의 권력으로 자신의 능력을 대신하는 이들에게 보조를 맞춰주다가는 공부할 시간이 없다. 게다가 바우만이 온라인을 두고 말한 새로운 중세우중의 시대에서, 공동체의 지속성을 고민하는 이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지식인은 없고 발전주의에 사로잡힌 한국사회에서 우울증이 많다는 사실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156)

다시 <녹색평론> 창간사로 돌아가 정리해보면 우선 여기서 과학은 기술이 아니다. “오늘의 크나큰 비극을 가중시키는 주요한 요인은 과학기술이 모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주리라는 어리석은 믿음인바, 오히려 과학과 기술공학은 사태를 줄곧 악화시켜왔다. 이때 과학기술은 대중이 비판 없이 수용해온 기술의 의미로 이해해야 옳은데, 그것은 바로 이어지는 단락에 과학사의 관점에서 과학의 진리에 대한 관계는 언제나 잠정적이고 모색적인 것이므로 진정하게 과학적인 태도는 그러니까 늘 열려있는 겸손한 태도라고 쓴 데서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이어서, 따라서 자신의 현재 능력이나 인식방법으로써 포착할 수 없는 경험이라고 하여 그것을 무시하거나 비과학적이라고 매도하거나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것은 참다운 과학정신과 인연이 먼 태도라고 밝힌 부분이다. 이 부분은 앞뒤 문맥을 보더라도 튀는논리인데, 나는 여기에 과학을 대하는 선생의 관점이 응축되어 있다고 본다. (<생명의 문화를 위하여>, <간디의 물레>, 15~16)


(192)

정부는 완벽한 사회를 만들어내기 위한 시도에서 실패를 거듭할수록 다음번에는 더 잘하겠다고 약속하면서 더 많은 권력과 더 많은 돈을 가져간다. 정부는 최대의 고용주가 된다. 정당들은 생겨났다가 사라지기도 하지만 국가권력은 계속해서 성장해서 이제 많은 경우 국가 수입의 50% 가까이를 흡수하고 있다.

정부는 시민들을 뜯어먹고 살아가므로 불가피하게 (가장 좋은 의미에서) 기생적이다. 다만, 원래는 사회의 소관이었던 문제들을 인계받음으로써, 말하자면 좀더 악성 종양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현실에서 이 국가통제의 악순환은 바닥을 치에 된다. 국가가 더 이상 빌릴 것이 없는 지경까지 자국 시민들을 빚지게 만들면 결국 파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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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no책읽기yes 2021-10-14 1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은 뜻으로 살지만, 그 뜻은 말과 행동으로 꽃이 핍니다.- 이 구절 참 좋네요.

bookholic 2021-10-16 09:04   좋아요 0 | URL
그런 좋은 말씀 많이 하신 김종철 선생님이 너무 일찍 돌아가셔서 아직도 안타깝습니다..

걷기no책읽기yes 2021-10-16 09: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인이 북홀릭님의 말씀을 들으면 하늘에서도 뿌듯하시겠어요. 좋은 뜻이 누군가에게로 끊임없이 이어져 좋은 세상으로까지 이어지길 바랍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23)

상당한 시간을 컴퓨터 앞에서 보낸 후, 국내에서 유일무이한 타이탄 전공자가 되어 대학원을 졸업했다. 물론 모든 박사는 유일무이한 존재다. 남의 연구를 그대로 따라 하는 사람에게 주는 학위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유일무이하다고 감시 말할 수 있는 이유는 한국에서는 타이탄에 관심을, 학위논문 주제로 삼을 만큼의 관심을 갖는 자가 나 이후로는 아직까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내 연구가 그렇게 지루해 보였나. 하하, 난 괜찮으니 혹시 지금 안쓰럽다는 표정을 하고 있다면 거두길 바란다. 국내 천문학계는 대단히 좁은데, 천문학의 범위는 천문학적으로 넓어서 관심을 줄 대상이 너무 많다. 그리고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는 것은 외롭지만 아주 흥미로운 일이다.


(50)

76년마다 돌아오는 핼리혜성도 우리나라 사료에 기록이 많이 남아 있다. 989년 고려 성종 때의 기록을 시작으로, 조선시대 말인 1835년까지 매번 핼리혜성을 관측하고 기록했다. , 성실한 공무원들이요. 우리 세대도 선조들 못지않게 훌륭하다.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사 데이터베이스에는 <조선왕조실록>을 위시하여 수많은 사료가 인터넷으로 무상 제공되고 있다. 본래의 기록은 한자로 된 것이었지만 아주 많은 부분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다. 주제별로 열람할 수도 있고 검색도 할 수 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숙제로 내기 딱 좋다.


(55)

학생들은 대학에 학문을 배우러 오지 않는다. 초등학교 다음 중학교 다음 고등학교에 간 것과 같이 고등학교를 마쳤으니 대학에 진학할 뿐이다. 차이가 있다면 과거의 학비보다 열 배는 비싼 등록금이요, 모두가 입어야 하는 교복 대신 모두가 가져야 하는 스펙을 등에 업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의 젊음은 싸구려 술과 술값보다 비싼 커피와 크고 작은 성추행과 미필자조차 향유하는 선배들의 군대식 갑질, 전공과목 들을 시간을 뺏는 교양 강의와 대학생다운 교양을 쌓을 틈을 주지 않는 전공 강의, 토익 시험과 한국사 시험과 각종 컴퓨터 자격증과 크고 작은 기업의 공모전과 인턴 경력에 소모된다. 과제로 수많은 보고서를 작성하지만 제대로 된 글쓰기를 연습할 기회는 별로 없다. 대신 비문으로 A4 용지 다섯 장을 채워내는 끈기, 남의 것을 베끼되 표절 여부를 자동으로 검사하는 프로그램에 걸리지 않게 몇몇 표현을 바꿔치기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그 비용과 시간과 어처구니없는 문화와 그 젊음은 대체 무엇을 위한 제물인가.


(59).

학자들은 교류를 통해 지식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 자신을 기록을 발표한다. 지역적으로 가까운 사람들끼리만 학문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멀리 있는 학자들과도 교류하기 위해서 편지 형식을 취했던 것이 오늘날 논문의 전신이다. 논문에서는 과거 다른 사람이 발견하고 연구하고 논했던 내용을 정확히 밝히며 인용한다. 남의 업적을 내 것인 양하는 태도는 국가나 가족에 대한 긍지를 느낄 때나 쓰는 것이요, 남의 글 베끼기는 타자 연습할 때나 하는 일이다.


(107)

부모 중 누군가가 본인의 일을 잠시 포기하면서까지 아이를 위해 달려가는 것은 양육자로서의 의무다. 아이가 아플 때 엄마가 일을 포기하고 달려가는 건 누군가는 가야 하는데 남편이 안 혹은 못 달려가기 때문이다. 현실이 그런 걸 누가 비난할 수 있겠나. 비난의 대상은 아픈 아이도, 달려가는 엄마도, 못 달려가는 아빠도 아니다. 갈 수 있으면서 안 달려가는 아빠가 있다면 그를 비난할 수 있을 뿐이고, 그런 경우엔 그게 아빠가 아니라 엄마라도 비난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남의 가정 일에 비난할 자격과 기회가 있다면 말이다.


(131)

요즘은 우주탐사선 자료를 쓰고, 직접 관측하더라도 CCTV를 보며 원격으로 망원경에 명령을 보내기 때문에 그렇게 온몸으로 관측하는 일이 드물다. 심지어 망원경을 미국에 설치해놓았더니 시차 덕을 본다. 대낮에 내 연구실에 앉아 미국의 밤에 뜬 달을 관측하니까 밤을 지새울 필요도 없다. 그래도 하늘이 유난히 맑은 날이면, 노을도 차분히 지고 공기가 신선한 날이면 나는 관측하기 딱 좋은 날이네하고 중얼거린다. 그러고는 관측자의 일과를 상상한다.


(143-144)

촌극은 그렇게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몇 주 뒤 인터뷰가 실린 호가 출판되자 국내 여러 언론과 매체에서 연락을 해왔다. 내가 <네이처>가 선정한 젊은 달 과학자 다섯 명에 들었다나. 그렇게 해석할 수 있다니 흥미로웠다. <네이처>에서 무슨 엄청난 심사나 평가를 거친 것도 아니고 그저 기자가 여기저기 묻고 물어 몇몇 나라의 연구자들과 인터뷰를 했을 뿐인데, 그리고 기사를 읽어보았다면 엄청난 실력자를 골라내려는 목적의 인터뷰가 아니라는 것을 알 텐데, 대단한 침소봉대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하필이면 당시 나는 대학에서 학술연구교수로 일하고 있었다. 이 직급의 이름 풀이를 해보자면 호봉이 높은 박사후연구원이요, 연차나 경험은 조금 더 많지만 비정규 계약직 연구전담 인력이기는 매한가지라는 뜻인데 그걸 언론에서 약칭해 교수로 부르자 갑자기 설국열차의 꼬리 칸에서 앞칸으로 옮겨 탄 효과가 났다. 어이쿠야.


(180)

우주 탐사에는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데, 당장 상업적으로 이윤을 남길 수 있는 아이템은 아니기 때문에 대기업이 돈을 대는 일은 드물다. 정부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그러려면 정부에 우주 탐사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그것이 국가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비전을 제시해주는 자문단이 필요하다. 그 조언을 바탕으로 정책을 만드는 전문가, 이를 승인하는 최고결정권자와 국회, 그리고 그 실무를 담당하는 수많은 공무원이 현장을 방문하고, 공문서를 작성하고 낸 세금을 기꺼이 우주 탐사에 쓰도록 허락하고, 공감하고, 지지하고, 애정 어린 눈길로 지켜봐주는 국민이 필요하다. 당신이 꼭 필요하다. 천문학자가 아니라도 우주를 사랑할 수 있고, 우주탐사에 힘을 보낼 수 있다. 우주를 사랑하는 데는 수만 가지 방법이 있으니까.


(244-245)

뉴호라이즌스의 책임연구자 앨런 스턴 박사는 요즘도 명왕성을 행성이라 칭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우리가 명왕성을 행성이라 부르든 왜소행성이라 부르든 134340이라 부르든, 사회에서 의도적으로 따돌림받고 소외당하며 존재 자체를 위협받는 자의 심정을 명왕성에 이입시켜려 하든 말든 명왕성은 상관하지 않는다. 그 멀고 어둡고 추운 곳에서, 하트 무늬처럼 보여 지구인에게만큼은 특별한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거대한 얼음평원 스푸트니크를 소중히 품은 채 태양으로 연결된 보이지 않는 중력의 끈을 잡고 있을 뿐이다. 그 곁에 오랫동안 지켜온 위성 카론은 명왕성의 위성으로 보기에는 너무 덩치가 커서 위성이 아니라 명왕성과 이중행성계를 이루고 있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카론 역시 자신을 무엇이라 부르든 개의치 않는다. 명왕성, 그리고 자신보다 더 작은 여러 위성 친구들과 서로 중력을 주고받으며 아주 오랫동안 멈추지 않을 자신들만의 왈츠를 추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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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두 남자는 미소지으며 산책길을 따라간다. 그 모든 일이 그들 뒤로 아주 멀리 있다. 둘 중 한 사람은 이십오 년간 교직에 있었다. 대략 2500명의 학생들을 가르쳤고, 그중 상당수는 심각한 난관에 처한 학생들이었다. 두 남자는 저마다 가정을 꾸린 아버지다. 그들은 선생님이 그랬어……”라는 말의 의미를 잘 안다. 열등생이 지루한 푸념 속에 들어앉히는 희망, 그래 그거다…… 선생님의 말이라 급물살을 타고 추락하는 강물 위에서 공부 못하는 학생이 붙잡고 매달리는 부표일 뿐이다. 열등생은 선생님이 한 말을 반복한다.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고, 규칙을 구현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저 순간적으로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놓여나기 위해하는 말이다. 아니면 사랑받기 위해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47)

나를 구해냈던 그리고 나를 교사로 만들었던 선생님들은 그 일을 위해 양성된 게 아니었다. 그들은 나의 무능한 학교생활의 기원에 대해서는 괘념치 않았다. 원인을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지도 않았거니와 나에게 설교를 하려 들지도 않았다. 그들은 그저 위기에 빠진 청소년을 마주한 어른이었다. 그들은 절박한 상황이라고 생각하며 몸을 던졌다. 그들은 나를 놓쳤다. 하지만 매일같이 다시 몸을 던지고 던지도 또 던졌다…… 그리고 마침내 나를 거기서 건져냈다. 나와 더불어 다른 많은 아이도 건져냈다. 말 그대로 우리를 낚아올린 것이다. 우리는 그분들에게 생명의 빚을 지고 있다.


(82)

선생이라는 직업이 필연적으로 사라질 때까지 다시 시작하는 일. 만일 우리가 한 명의 학생을 우리 수업의 직설적 현재에 정착시키는 데 실패한다면, 우리의 앎과 그것의 활용에 대한 안목이 이 아이들에게 미치지 않는다면, 그들의 실존은 식물학적으로 표현하자면, 막연한 결핍의 늪지에서 질척거릴 것이다. 물론 우리 선생들만이 그런 갱도를 파낸 것도 아니고, 그걸 메울 줄 몰랐던 것도 우리 책임만은 아니지만, 그때 그 아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 년 혹은 몇 년의 어린 시절을 우리 앞에 마주앉아 함께 보냈던 것이다. 그리고 망쳐버린 학교생활 일 년은 하찮은 게 아니다. 어항 속에서는 영겁의 세월이다.


(96-97)

하지만 선생이 거짓말을 모른 척하는 데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그것은 좀더 깊숙이 숨겨진 이유인데, 명석한 의식에 비춰보자면 대충 이런 거다. 즉 그 아이가 교사라는 내 직업의 실패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를 발전시키지도 공부시키지도 못한 채, 그저 내 반에 들여놓고 그 아이가 여기 있다는 것만으로 안심하는 것이다.


(98)

지쳐버린 수많은 부모들은 사람의 진을 빼는 이런 거짓말을 받아들이는 척한다. 우선은 그들 자신의 고통을 잠시나마 진정시키기 위해(1515년 마리냐노 전투 같은 극소량의 진실은 진통제 역할을 한다), 그 다음엔 가족의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그리하여 저녁식사 시간이 비극으로 선회하지 않도록, 제발 오늘 저녁은 아니기를, 각자의 마음을 찢어놓은 고백의 시련을 늦추기 위해, 요컨대 틈틈이 편지함을 살펴보던 당사자에 의해 다소 교묘하게 위조된 학기말 성적표를 받아들고, 사실  별로 놀라워하지도 않으면 학교생활의 재앙의 범위를 가늠하게 될 순간을 밀어내기 위해서다.

내일 생각해보자.

내일 생각해보자고……


(110-111)

우선 짚고 넘어갈 사실이 있다. 알다시피 어른과 아이는 시간을 동일하게 지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삶을 십 년 단위로 계산하는 어른의 눈에 십 년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이 오십이 되면 십 년은 금세 지나간다! 그렇게 빠른 속도감 때문에 어머니들은 아들의 장래를 근심하며 괴로워하는 것이다. 오 년 후면 벌써 대학 입시네, 아니 이제 금방이잖아! 이 어린 것이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근본적으로 뭐 그리 변할 수 있겠어? 그런데 아이에게 그 시절의 일 년은 천 년과도 같다. 아이의 눈에 자신의 미래는 뒤 이은 며칠 안에 몽땅 달려 있다. 아이에게 장래를 이야기하는 것은 무한을 센티미터로 재라고 요구하는 꼴이다. ‘되다라는 동사가 아이에게 주눅들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 그것이 어른들의 걱정이나 질책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장래란 최악의 상태의 나를 말하며, 바로 그것이 나는 아무것도 되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했던 선생님들의 말에서 내가 대충 이해한 바였다. 그들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시간이란 게 어떻게 구체화되는지 조금도 생각해내지 못했고, 그냥 순진하게 영원히, 언제나 바보일 거라는 그들의 말을 믿었다. ‘영원히언제나는 상처받은 자존심이 열등생에게 시간을 헤아릴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단위였다.


(133)

우리 할아버지께서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생이란 놀랍고도 짧구나.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이렇게 한마디로 말할 수 있겠는걸. 예를 들자면 한 젊은이가 우연히 맞닥뜨린 불행한 사고는 제쳐놓는다 해도 별 탈 없이 흘러가는 평범한 나날조차도 나들이를 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다는 점을 두려워하지 않고 어떻게 옆 마을로 말을 타고 나설 작정을 할 수 있는지,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으로 말이다.”

이자벨은 존경심을 표하며 그 작가의 이름을 말했다. 프란츠 카프카.


(158)

망쳐버린 시간이 나를 기진맥진하게 했다. 나는 지치고 화가 난 채로 교실에서 나왔다. 그 화는 하루종일 학생들에게 대가를 치르게 할 위험이 있다. 자기불만에 휩싸인 선생은 누구보다 재빨리 학생을 야단치기 때문이다. 얘들아, 조심해라, 바짝 기어라, 선생이 자기바하에 빠져버렸으니 맨 처음 걸려든 사람한테 불똥이 튈 거다! 그날 저녁은 집에 가서 숙제 검사 같은 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 피로와 불쾌한 의식은 좋은 충고자가 될 수 없다! 아니, 그날 저녁은 숙제 검사도, 텔레비전도, 외출도 그만두고 잠자리로 직행! 선생의 첫째 자질은 수면이다. 일찍 자야 착한 선생이 된다.


(275)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막시밀리앵은 젊음만능주의라는 동전의 이면이다. 우리 시대는 젊음의 의무로 이루어져 있다. 젊어야 하고, 젊게 사고해야 하고, 젊게 소비해야 하고, 젊게 늙어야 하고, 유행은 젊고, 축구도 젊고, 라디오방송도 젊고, 잡지도 젊고, 광고도 젊고, 텔레비전도 젊은이로 가득하고, 인터넷도 젊고, 사람들도 젊고, 살아 있는 베이비붐 세대의 마지막 사람들도 젊게 남아 있고, 우리의 정치인들마저 마침내 다시 젊어졌다. 젊음 만만세! 젊음에 영광을! 젊어야만 한다!


(281)

이때 담임선생님의 질문.

신발은 걸어다니는 데 쓰이고, 상표는 뭐에 쓰이지?”

교실 구석에서 터져나온 돌발 발언.

뽀다구 내는 데요!”

모두의 폭소.


(323-324)

모든 점을 잘 따져보면 이 세 분의 선생님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 그들은 모른다고 하는 우리의 고백에 속아넘어가지 않았다. (철자법의 결함을 이유로 내세우며 지 선생님은 내게 얼마나 여러 번 논술문을 다시 쓰게 했던가? 발 선생님은 내가 복도에 멍하니 있거나 자습실에서 몽상에 잠겨 있었다는 이유로 얼마나 여러 번 보충수업을 시켰던가? “시간이 있으니까 우리 한 십오 분만 더 사학을 해보면 어덜까? 페나키오니? , 십오 분만 해보자……”) 익사 위기에서 구해내려는 그 몸짓의 이미지, 자살하려는 몸짓을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저 위로 나를 끌어올리려는 그 손목, 내 옷자락을 단단히 움켜쥔 살아 있는 손의 생생한 이미지, 이런 것들이 바로 그분들을 생각할 때마다 맨 처음 떠오르는 모습이다. 그들의 현존 안에서 그들의 과목 안에서 나는 나 자신의 모습에 눈을 떴다. 수학자인 나, 역사가인 나, 철학자인 나로. 그러한 나는 이 스승들을 만날 때까지 진정으로 여기 있다는 느낌을 방해했던 나를 한 시간 동안 잠시 잊고, 나를 괄호 속에 집어넣고, 나로부터 나를 치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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