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 왕자 - 갱상도 (Gyeongsang-do Dialect)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저자, 최현애 역자 / 이팝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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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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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블로그인 알라딘서재에서 알게 된 책을 읽었단다.

애린 왕자. 이 책이 눈에 띈 것은 분명 겉표지는 어린 왕자이고, 지은이도 생텍쥐페리라고 써 있는데, 번역본의 제목은 어린 왕자가 아니고 애린 왕자였어. 왜 그런가 궁금해서 책 소개를 봤더니, 이 책은 어린 왕자의 경상도 사투리 버전이라고 써 있다고 하더구나.

미리 보기를 통해 어떻게 번역되어 있나 봤더니, 억세고 사나이 냄새 잔뜩 나는 경상도 사투리로 적혀 있더구나. 눈으로 읽어도 경상도 사투리가 들리는 듯 했어. 재미있겠다 싶어 주문했단다. 그런데 좀 알아 보니, 전라도 사투리 버전인 에린 왕자도 있다는 구나. ㅎㅎ 그리고 충청도 사투리 버전도 나올 예정이라고 하고

<애린 왕자> <에린 왕자>를 같이 주문했어. 집에 왔을 때 앞에 몇 페이지만 보고, 큭큭거렸던 기억이 있구나. 얼마 전에 독서 앱 밀리의 서재에서 책을 검색하다가 애린 왕자가 오디오 북으로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그래서 책장 속에 잠자고 있는 <애린 왕자>를 꺼내 들고, ‘밀리의 서재의 오디오북과 함께 읽어보았단다. ‘밀리의 서재 <애린 왕자> 오디오북을 녹음하신 분이 경상도 네이티브인지 아빠는 잘 모르겠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듣기에 나쁘지 않았단다. 1배속보다는 1.5배속 정도로 해서 들어야 경상도 사투리의 제맛을 느낄 수 있었단다.

경상도 사투리로 읽고 들어도 어린 왕자의 순수함은 변하지 않는 것 같구나. 좀더 정감 어린 것 같더구나. 어린 왕자의 내용은 아빠가 재작년에 표준어 번역본 <어린 왕자>를 읽고 이야기해준 내용이 있으니 따로 하지는 않을게. 이 책을 기획하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밀리의 서재를 검색해 보니 <에린 왕자>의 오디오북도 있더구나. 그것도 기회가 될 때 들어봐야겠구나. 충청도 버전의 <어린 왕자>도 출간되었는지, 검색해 보니 충청도 버전은 소문만 있었고, 출간은 안 된 모양이더구나. <어린 왕자>뿐만 아니라 유명한 고전들을 사투리 버전으로 번역 출간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잘 찾아보면 어울릴 만한 고전이 있지 않을까 싶구나.

오늘은 아주 간단히 소감만 이야기하고 마치련다.

이상.


PS,

책의 첫 문장: 나는 보아뱀이라 카능 기 정글에서 젤로 무서븐 기라꼬 생각했데이.

책의 끝 문장: 구란데 어느 으른도 이게 이마이 중요하다는 걸 이해하지는 몬 할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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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4-02-13 23: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투리 버전, 괜찮은 아이디어같네요.ㅎㅎ

bookholic 2024-02-15 09:43   좋아요 0 | URL
네.. 사투리로 번역하면 어울리는 책 선정해서 시리즈로 나와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꼬마요정 2024-02-14 1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저도 오디오북 들어보고 싶어요!! 재밌겠어요^^

끝문장 웃깁니다. 구란데... 구라래... ㅋㅋㅋㅋㅋㅋㅋ

bookholic 2024-02-15 09:45   좋아요 1 | URL
직접 낭독하면서 녹음해 보셔도좋을 것 같아요~~~^^ 지인들한테 선물~~
 
한국 근대사 산책 8권 - 만주사변에서 신사참배까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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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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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한국 근대사 산책 8권의 이야기를 할게. 8권의 부제는 만주사변에서 신사참배까지란다. 만주사변은 1931년이고, 신사참배는 1930년대 중반부터 많이 강요했으므로, 8권의 다룬 시대는 1930년대 초반부터 중후반까지라고 보면 돼.

그럼 바로 시작해 볼게. 일제의 강압과 폭력을 피해 많은 우리나라 동포들이 만주 지역에 가서 터를 잡았단다. 그러다 보니 가끔씩 만주 지역의 한인 농민과 중국 농민 간의 다툼이 있곤 했어. 심각한 정도는 아니고, 가끔씩 일어나는 일이지. 그런데, 일본이 이것을 사악하게 이용하려고 했어. 일본은 일상적이 이 사소한 마찰을 허구로 왜곡하여 중국 사람이 한국 사람을 죽였다고 소문을 퍼뜨렸어. 국내에도 이 소식이 전해지고, 조선일보는 이 소식을 호외까지 내면서 대서특필했단다. 이 소식에 대해 신중하게 대응했던 동아일보와 다른 행보였어.

조선일보를 통해 전해진 이 소식은 국내에 있는 백성들을 열 받게 했어. 분풀이 하겠다면서 국내에 살고 있는 화교들을 공격하였고, 이 사건으로 100여 명의 화교들이 죽는 사건이 일어났어. 그런데 이것도 알고 보니, 혼란의 틈을 타서 일본인들이 죽인 것이 대부분이었다고 하는구나. 이 소식은 다시 중국으로 전해지면서, 중국에서는 중국사람들이 조선 사람들을 공격하는 일들이 벌어졌단다. 완전히 일본의 음모에 말려든 거지. 일본은 중국에 있는 조선 사람들을 중국인으로부터 보호하겠다는 핑계를 대고 일본군을 대거 투입하였고, 이 군대를 이용하여 그대로 만주를 점령하였단다. 이것이 바로 만주 사변이란다. 때는 1931 9 18일이었어. 여기서 안타까운 것은 조선일보의 이 소식을 접하는 자세였단다. 일본의 앞잡이 신문이 다 되었다고는 하지만, 신문의 영향력을 생각했을 했을 때, 좀더 정확한 정보를 입수한 후 기사를 썼어야 했어.

근현대에 와서 신문은 이렇게 많은 영향력을 넘어 권력까지 갖게 된단다. 1930년대에도 그런 신문의 권력에 대한 비판을 한 이가 있었다고 하는구나. 그 당시 신문을 비판하는 글을 읽어보면 오늘날 신문에도 딱 맞는 글 같더구나. 많은 매체들이 생겨나서 옛날보다 신문의 영향력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듯 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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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117)

당시 신문이 누린 권력과 신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로 월간 <동광> 1931 12월호에 실린 <신문 비판 특집>은 주목할 만하다. 이 기사는 대화형식으로 신문에 대한 세평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조선의 신문계에 사장이면 판서 격은 되고 중역이면 참판 격은 된다는 말을 못 들었나? 그 밑에 국장도 있고 부장도 있으니까 벼슬 못한 조선 민간 유지에게는 이것이나마 훌륭한 벼슬자리인 줄을 모르는가? …… 연전에 모 신문에서 수재금을 모집하니까 푼푼이 들어온 것이 5만여 원이요, 또 요새 이충무공 성금모집도 2만 원을 돌파했으니, 이 돈 없는 조선에서 그만한 돈을 모은다는 것은 신문의 위력이 아니고는 못할 일이 아닌가. 아닌 게 아니라 시골 가서 보면 석유 등잔 희미한 불빛 밑에서 동리 사람들이 모여 앉아서 신문지가 해지도록 돌려가며 읽고, 신문에 난 말이면 만고의 진리로 듣는 형편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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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30년대 들어서면서 독립운동은 한풀 꺾이게 되었단다. 일본 침략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많은 이들이 변절하여 친일파가 되었고, 해외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도 그 열정을 이어가기 힘들었나 봐. 이때 다시 독립운동의 횃불을 켠 이들이 있으니, 바로 김구 선생이 만든 임시정부 의열 투쟁 단체인 한인애국단이란다. 1932 1, 이봉창 의사가 일본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도쿄에서 일왕 암살 시도를 했단다. 폭탄이 안타깝게도 불발이라서 실패를 했지만 큰 반향을 일으켰어. 그리고 1932 4월에는 상해 홍커우 공원에서 윤봉길 의사가 전승기념 및 천장절 기념식 행사장에 폭탄을 투척하여 일본군 요인들을 죽인 사건이었단다. 윤봉길 의사는 그 자리에서 체포되었고, 1932 12 19일 총살형으로 삶을 마감하셨단다. 아직 100년도 채 안된 시절이었구나.

1920년대부터 유행하던 사회주의 노선의 국내 활동은 1930년대 들어서면서 일본의 탄압에 의해 더욱 힘들어졌단다. 국내 공산당을 이끌던 이들은 이재유, 이현상, 김삼룡 등이 있었어. 이들은 경성 트로이카로도 불렀는데, 국내에서 공산당 재건을 위해 노력했단다. 이들의 이야기는 아빠도 오래 전에 안재성 님의 <경성 트로이카>라는 책들 통해서 읽어본 적이 있구나. 기억은 거의 나지 않지만일제의 탄압에 의해 이재유는 여섯 번 체포 당하고 여섯 번을 탈출했대. 대단하시구나.

상해에서 체포되어 국내 감옥에 수감 중인 여운형은 가출옥하게 되었는데, 그 후에 조선중앙일보 사장에 취임하기도 했대. 당시 신문 시장은 동아일보가 독보적인 위치에 있었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금광으로 떼돈을 번 방응모가 조선일보를 인수하면서 동아일보의 인력을 빼오면서 조선일보가 성장하게 되었대. 그때 빼온 인력들 중에 밉상 이광수도 있었단다. 이광수는 조선일보 부사장을 비롯하여 다섯 가지 직책을 맡으면서 조선일보를 동아일보와 함께 양강체제를 만드는데 일조를 했다는구나. 당시 신문 구독자수를 늘리기 위한 방법 중에 하나가 연재 소설을 싣는 것이었어. 그래서 1930년대는 신문 연재 소설의 전성기였다고 하는구나. 많은 작품들이 신문에 연재되었는데, 그 중 가장 인기를 끈 작품은 홍명희의 <임꺽정>이라고 하는구나. 이 책은 그 이후에 오랫동안 인기를 끈 역사소설이 되었지.

1920년대 사회주의 문학예술문학운동단체로 번성했던 카프도 일제의 탄압으로 몰락했다는구나. 카프 멤버 중 안막이라는 작가가 있어. 물론 아빠는 처음 들어보는 작가야. 그런데 왜 이 사람을 이야기하냐면, 안막의 아내가 엄청 유명한 무용가인 최승희라는 사람이란다. 최승희라는 사람의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일제 시대 유명한 무용가라는 것은 알고 있었거든. 이 책에서 잠깐 최승희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이 분이 전세계로 활동하는 무용가였더구나. 그렇게 유명한 사람인줄은 몰랐네. 친일 논란이 있었지만, 당시 무용이라는 재능을 펼치려면 어쩔 수 없다고 변론하는 이들도 있었어. 해방 후에는 남편 따라 북한으로 갔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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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139)

167센티미터의 큰 키를 가졌던 최승희는 1937년부터 5년간 세계 공연을 나섰으며, 이때에 반도의 무희’ ‘동양의 진주’ ‘동양의 이사도라 던컨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전성기 당시 최승희는 톱스타답게 각국의 최정상급 명사 예술인들과 교류를 맺었다. 그와 교류한 서양인으로는 미국 공연 시절 사귄 지휘자 스토코프스키, 소설가 존 스타인벡, 루이스 레에나, 존 그로프, 영화배우 찰리 채플린, 로버트 테일러, 게리 쿠퍼 등이 있다. 유럽에서는 화가 피카소를 비롯하여 시인 장 콕토, 소설가 로맹 롤랑, 미셀 지몽, 영화배우 샬 보아에이 등이 그녀와 친교를 맺었다. 파리 공연 때 파카소로부터 그림 한 점을 선사받았는데, 시가로 수억대를 호가하는 이 그림의 행방을 두고 나중에 안씨 집안(시댁)과 최씨 집안(친정) 간에 한 때 불화가 있었던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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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문학 단체로 구인회가 있었는데 이효석, 이무영, 정지용, 이상, 김유정 등도 이 단체의 멤버였대. 이상과 김유정이 비슷한 시기에 폐결핵을 사망했다고 하네. 창단 멤버는 아니지만 나중에 박태원이라는 분도 구인회 멤버가 되는데, 박태원은 아빠가 좋아하는 작가 중에 한 분이란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읽어봤으면 하네. 몇 년 전에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오스카 상을 수상하면서, 봉준호 감독의 외할아버지로 박태원 작가가 소개된 적도 있어.


2.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엄청 높은 것으로 유명한데, 그 시작인지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일제시대에도 교육열이 엄청 높았대. 보통학교 설립 운동이 일어나서 1 1교제라 하여 한 개 면에 한 개 보통학교를 세웠대. 보통학교를 6년제로 바꾼 것도 이 시기였다고 하고과학이나 우생계몽운동도 일었는데, 지금은 우생학이 잘못된 학문이라서 폐기처분 당했지만, 당시에는 많이 유행했나 보구나. 우리나라에도 1933년 조선우생협회가 생겼대. 우생학이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는 아빠가 작년에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책을 읽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지. 세계대공황과 히틀러가 우생학을 악용하면서 우생학은 쇠퇴했다고 하는구나.

1930년대에 조선을 제대로 알리자는 취지에서 조선학이 등장했다는구나. 많은 학자들이 참여하여 책들을 쓰셨어. 신채호도 합류하여 <조선상고사> 등 많은 역사책을 쓰셨단다. <조선상고사>는 여순 감옥에 수감되어 있을 때 쓰셨다고 하는구나.

당시 농촌계몽운동인 브나로드 운동이 유행했단다. 브나로드 운동은 아빠가 학창 시절에도 시험문제에 자주 출제되었던 기억이 있구나. 브나로드라는 말은 러시아로 민중 속으로라는 뜻이래. 이 운동의 취지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문자보급운동을 하였고, 이광수의 <>, 이기영의 <고향>, 심훈의 <상록수> 등이 출간되었어. 사실 심훈의 <상록수>라는 책은 브나로드가 끝난 1935년에 출간하긴 했지만, 농촌 계몽 소설로 브나로드 운동과 맥을 같이 하고 있었어. 이런 좋은 운동을 변절자 이광수가 주도한 것을 보면, 다른 뜻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었어. 어떤 평론가는 이광수의 <>은 일본의 제국주의 노선이 담겨 있다고 평하기도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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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

브나로드운동을 주도한 것은 편집국장 이광수였으며, 그 운동의 시범작으로 쓴 것이 <>이다. 지수걸은 <>에 대해 이광수가 <>에서 표방한 하면 된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 ‘아는 것이 힘’ ‘티끌 모아 태산등의 헛구호는 제국주의 지배모순을 은폐하기 위하여 일제가 선전한 자력갱생운동 구호와 거의 동일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이러한 구호는 안 해도 이미 되어 있는 자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잘 안 될 사람들에게 안주 삼아 내뱉는 비아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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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이 발표한 <상록수>는 동아일보 공모전에 당선되었는데, 상금으로 야학당을 지었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그 야학당은 해방 후에 이름을 상록초등학교(충남 당진에 있는 학교)로 바꾸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단다.

우리나라 선수로써 올림픽에서 가장 먼저 금메달을 딴 사람은 손기정이라는 분이란다. 비록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참가했지만, 당시 우리나라 백성들에게 큰 힘을 주었다고 하는구나.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종목에서 1등은 손기정, 3등은 남승룡이 차지하면서 시상대에는 조선의 젊은이들이 두 명이나 있었어. 심훈은 당시의 감격을 글로 쓰셨는데, 지금 읽어봐도 감격이 전해지는 듯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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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

시인 심훈은 8 10일 새벽 <조선중앙일보>가 발행한 신문 호외를 받아들고 그 뒷장에 그대들(손기정, 남승룡 선수)의 첩보를 전하는 호외 뒷등에 붓을 달리는 이 손은 형용 못할 감격에 떨린다. 이역의 하늘 아래서 그들의 심장 속에 솟음치던 피가 2300만의 한 사람인 내 혈관 속을 달리기 때문이다. 오오 나는 외치고 싶다. 마이크를 쥐고 전세계의 인류를 향해 외치고 싶다. 인제는 너희들은 우리를 약한 족속이라고 부를 터이냐!”라고 갈겨썼다. 감격에 몸을 떤 심훈은 그 즉흥시를 들고 <조선중앙일보>의 편집실을 찾아가 한바탕 읽어 들려주고는 사라졌는데, 그 이튿날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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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식이 국내에 전해지면서, 동아일보 등 일부 신문에서 손기정 선수의 소식을 전하면서 일장기를 지우고 신문에 실었단다. 일본은 크게 격분했지. 이후 동아일보는 일제의 강력한 탄압을 받게 되는데, 탄압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조선일보와 함께 일제 어용지로 전락하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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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

<동아일보>는 일장기 말소 사건 후 일제의 압력에 굴복하여 친일 어용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물론 <조선일보>의 경우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조선일보>는 일제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찬양하기에 바빴다. 1937 1 1 <조선일보>는 일왕 부부의 사진을 1면에 크게 싣고 같은 지면에 총독의 새해 기념사와 휘호를 실었다. 이후 해마다 1 1일자 1면에 일왕 부부의 사진을 커다랗게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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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937 7월 일본은 중일 전쟁을 일으켰어. 승리한 일본은 중국 난징을 공격하여 민간인들을 포함한 수십만 명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난징대학살도 이 시기에 일어났단다.

김구의 한인애국단 활동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독립운동의 침체기는 이어졌단다. 독립투쟁에 있어서 분열과 연합이 이어졌는데, 우파는 김구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벌였단다. 김원봉은 김구의 단체에 가담하지 않고 독자적인 노선을 걸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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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

김원봉은 1937 12월 초에 김구 중심의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에 가담하지 않은 중간파, 좌파세력을 결집해 조선민족전선연맹을 결성했다.

한상도는 이로써 1930년대 후반기, 중국 관내 지역 한인들은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김구의 우파그룹과, 상대적으로 진보적 민족주의 성향으로 가던 김원봉 중심의 중간좌파그룹으로 양극화되어갔다.”고 했다. 1938년엔 장제스가 직접 나서 한인세력의 단결과 재편성을 촉구하게 된다. 끝없는 분열! 당시 독립군세력이 처해 있던 최악의 열악한 상황을 감안하면 이해 못할 것도 없지만, 잘했다고 박수를 쳐주긴 어렵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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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1938년에는 김원봉이 조선의용대를 이끌면서, 반대로 김구의 한국광복운동단체 연합회에 조선의용대 합류를 제안했지만, 이번에는 김구가 거절을 했다고 하는구나.

1937년 연해주에서도 아픈 역사가 만들어지고 있었단다. 스탈린의 지시에 따라 고려인들이 강제로 중앙아시아로 이주해야 했어. 그 먼 길을 좁은 기차 칸에서 빽빽이 이동을 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병에 걸려 죽고 말았단다. 그뿐만 아니라 소련은 반역죄의 명목으로 2000여 명의 고려인이 총살 당했다고 하는구나. 나라 잃음 설움은 국내외 가릴 것 없이 우리 백성들의 희생으로 돌아왔단다. 왜 소련은 스탈린이라는 독재자가 정권을 잡게 되었는지, 안타깝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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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

1934년 사할인에서 출생해 <고려일보>의 사장을 지낸 조영환은 러시아는 한인 이주민을 교묘히 이용하여 연해주 일대의 미개간지를 개척한 후에는 이 개간지에 러시아인을 이주시킨 다음 한인들을 다시 오지인 미개간지대로 추방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35년 이후 연해주에 상주하는 한민족 수가 근 30만 명이었는데 그 후에도 인구수가 증가하고 있었다. 조국이 인접한 이 지대가 장래에는 한민족의 자치지역으로 변할 수 있었다. 그래서 스탈린 체제는 1932년부터 한민족 중 인텔리, 기술자, 농업전문가, 당 관리요원, 군무자 등 민족의 두뇌를 제거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일제 스파이라는 것이다. 한평생 조선의 독립을 위해 반일투쟁에 몸바쳐온 연해주 한민족들에게 역사의 철천지원수인 일제의 스파이라는 혐의는 만인의 단죄를 받는 야수적인 행위였다. 그 때문에 1932~1937년까지만해도 한민족의 핵심 지식인 2000여 명이 학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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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전에도 일제의 탄압으로 만주로 이민 가는 백성들이 많았는데, 1930년대도 열풍이라고 할 정도로 만주로 이민 가는 사람들이 많았단다. 한편 1930년대 국내에도 자본주의 시스템이 들어오면서, 갑부가 되려는 이들이 많았어. 그로 인해  금광과 부동산 열풍이 일었고, 주식 투기꾼들도 많았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여러 큰 기업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그 중에 경성방직이 대표적인 기업이라고 하는구나. 경성방직은 1937년부터 1945년까지 이어졌는데, 김성수, 김연수 형제가 이 기업을 이끌었는데, 이들 또한 친일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단다. 친일이 아니고 자본주의 흐름을 탔을 뿐이라고 핑계를 대신 해하는 이도 있다는구나.


4.

일본은 1930년대 중반으로 넘어오면서 황국식민화 운동을 하였고, 그 일환으로 한글 교육을 중단하고 신사참배를 강요했단다. 1938 6월에는 국민정신 총동원 조선연맹을 만들어서 언론사가 주도하는 국민총동원도 했어. 이것의 목적은 내선일체를 강화하는 것이었어. 그리고 일본군에 지원하도록 언론사들이 앞장서 독려했단다. 지원병에 대한 대우로 좋게 해주다보니 지원병이 증가했는데, 이것은 먹기 살기 위한 생계형 지원이 대부분이었다고 하는구나. 일제는 역사에 있어도 식민사관을 주입하려고 했어. 단군조선에 관련된 모든 책들을 태워버렸단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삼국시대 이전의 역사에 대한 자료가 적게 되었나 보구나.

조선사편수회를 만들어 우리나라 역사를 왜곡하기 시작했단다. 이 조직에 최남선도 참여하여 일선동조를 주장하는 만행을 저질렀어. 일본은 우리나라 역사를 식민사관으로 서술한 <조선사> 35권을 펴내기도 했어. <조선사>는 박은식이 1915년에 쓴 <한국통사>가 한국에서 인기를 끌자 식민사관으로 기획하여 만든 책이라고 하는구나. 이젠 완전히 조선을 식민지가 아닌 자신의 나라로 끌어들이려고 한 거야. 조선사편수회에 참여하여 <조선사> 제작에 참여한 대표적인 식민사관 사학자 이병도라는 사람이 있단다. 이 사람은 아빠도 알만큼 유명한 식민사관 역사가란다. 그런데 문제는 해방 후에도 이병도와 그의 제자들이 한국사를 주도했다는 거야. 그래서 오랫동안 한국사는 식민사관 역사를 배워 온 것이라고 예전에도 들었어. 이런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안되니, 오늘날 정치판에도 아직도 친일파들이 많은 것 같구나. 된장.

1937 6월 수양동우회라는 사건이 있었는데, 아빠는 처음 들어보는 사건이란다. 무려 181명의 독립운동가들이 체포되었는데, 4 5개월 재판 끝에 다행해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대. 그런데 그동안 감옥에 있으면 대부분 전향을 했고, 모진 고문으로 죽은 이들도 있었어. 그 중에 도산 안창도도 포함되어 있었단다. 감옥에서는 죽지 않았지만, 투옥 중에 병을 얻어 병 보석이 되었고, 감옥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죽고 말았다고 하는구나. (1938 3)

의아한 것은 안창호의 제자였던 이광수는 안창호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일본에 자신이 전향할 테니 동우회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을 모두 무죄를 받게 해달라고 했다는구나. 이것은 이광수가 자신이 친일 하게 된 변명으로 많이 이야기를 한대. 자신의 말대로 친일이 동우회 사건의 무죄를 받기 위한 위장 친일이었다면, 그 이후 그런 행동을 하면 안되지. 그는 이 사건 이후 주요한 등과 함께 철저하고 악랄한 친일파가 되었단다.

신사 참배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전국 곳곳에 신사를 지었다고 하는구나. 1943년에는 무려 854개를 지었대. 신사 참배를 신을 숭배하는 것으로 유일신을 믿는 가톨릭이나 개신교에서는 원칙적으로 용납이 안 되는 것이나, 가톨릭과 개신교 모두 신사참배를 허용했다고 하는구나. 종교도 결국 강자의 편이구나. 개신교도들 중에는 신사참배를 거부한 이들도 있었는데, 이로 인해 2000여 명이 투옥되고, 200여개의 교회가 폐쇄되고, 50여 명이 순교했다는 아픈 역사가 있구나.

….

여기까지 8권의 이야기란다. 오늘은 다른 때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한 것 같구나. 글이 엄청 길어졌네. 그 만큼 아픈 역사가 많던 시절이라서 그랬나 보구나. 이제 두 권 남았구나. 아빠가 부지런을 좀 떨어서 얼른 이야기해줄게. 말뿐일 수도 있지만…^^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미국에서 1920년대는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 또는 재즈 시대(Jazz Age)’라고도 할 만큼 번영과 즐거움이 솟구친 시대였다.

책의 끝 문장: 1940년대 들어 그 전쟁기계 국가의 광란은 극을 치닫게 되며, 그 와중에서 조선인의 신음 소리는 더욱 높아져만 간다.


1929년의 대공황은 인류 문명사에도 한 가지 큰 변화를 몰고왔으니, 그건 바로 소비(consumption)라는 개념의 재탄생이었다. "소비"는 14세기 초에 만들어진 단어로 ‘consume’이라는 동사의 본래 뜻은 파괴하고, 약탈하고, 정복하고, 소진시킨다는 의미였다. 19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소비(consumption)’라는 단어는 낭비, 약탈, 탕진, 고갈 등과 같은 부정적인 뜻으로 쓰였으며, 심지어 폐병을 뜻하는 말로 쓰이기도 했다. 그러나 ‘소비’에 대한 이런 부정적인 이미지는 대공황 이후 대중광고와 마케팅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긍정적 이미지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소비’라는 단어는 ‘선택’과 동일시되면서 ‘축복’으로 다시 태어났다. - P11

"반민생단투쟁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열광으로 전개되어 심지어 4살짜리 어린애까지도 죽였다. 결국 자신을 보호하고 적극성을 표현하기 위해 고문, 타살까지 자행했던 것이다. …… 자기보호 혹은 지나친 불안감이나 과시욕에서 나온 적극성의 과잉표현으로 중국인들 앞에서 조선인을 믿을 수 없음을 고백하며 조직에 자신의 청백함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심리가 민생단 적발과 비판투쟁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자기의 혁명성을 나타내기 위해 조그만 일도 큰 문제로 고발하고 또 거짓진술을 해댄 것이 반민생단투쟁을 확대, 지속시킨 중요한 원인이라고 인정된다." - P74

그러나 1929년 주식시장 붕괴는 우생학의 기본 사상에 큰 충격을 주었다. 제레미 리프킨에 따르면 "이탈리아계, 폴란드계, 유태계 이주민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금융 엘리트들의 실직사태가 벌어지고, 중산계층 전문가와 학자들도 이들과 나란히 실업자 대열에 들어서게 되자, 어떤 인종은 다른 인종보다 생물학적으로 우월하다는 신화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게 되었다. 대공황은 수백만 미국인들을 평등하게 하여, 북유럽계 인종이든 남유럽계 인종이든, 백인 앵글로색슨 신교도들이건 유태인이건 모두 똑같이 가난하고 어려운 환경에 처하게 되었다. - P161

"첫째, 신채호의 무정부주의는 사회진화론의 내적 모순을 해결하는 이념으로서 수용되었다기보다는, 시대적 조건의 변화와 독립 이후의 새로운 사회 건설에 대처할 수 있도록 저항적 민족주의의 내용과 방법 그리고 목표를 심화하는 발전적 계기로서 수용되었다. 둘째, 신채호의 무정부주의는 그의 민족주의와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양자는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신채호에게 있어서 무정부주의가 민족주의의 방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무정부주의는 민족주의의 발전된(혹은 민족주의가 지양되는( 단계로서 간주함이 타당하다. 셋째, 신채호의 무정부주의는 좌우 양쪽을 모두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과정에서 수용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종합하여 지양하는 제3의 가능성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 P181

김원봉은 1937년 12월 초에 김구 중심의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에 가담하지 않은 중간파, 좌파세력을 결집해 조선민족전선연맹을 결성했다.
한상도는 "이로써 1930년대 후반기, 중국 관내 지역 한인들은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김구의 우파그룹과, 상대적으로 진보적 민족주의 성향으로 가던 김원봉 중심의 중간좌파그룹으로 양극화되어갔다."고 했다. 1938년엔 장제스가 직접 나서 한인세력의 단결과 재편성을 촉구하게 된다. 끝없는 분열! 당시 독립군세력이 처해 있던 최악의 열악한 상황을 감안하면 이해 못할 것도 없지만, 잘했다고 박수를 쳐주긴 어렵겠다.
- P249

<한국통사>는 대원군시대부터 한일합방까지 50여년의 뼈아픈 망국사로, 국가는 비록 망하였지만 국혼(국가의 정신적인 힘)인 국교, 국가 등을 보존하고 교육과 독립투쟁을 통해 끊임없이 노력하면 결국 국백인 국가를 되찾을 수 있다는 정신사적인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다.
이어 박은식은 1920년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간행했다. 이 책은 글자 그대로 쓴 독립운동사다. 1919년 3.1독립운동에 고무되어 1884년 갑신정변부터 1920년까지의 독립투쟁사를 서술했다.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선 민중의 힘과 민의의 결집이 독립실현의 중요수단임을 강조했다.
-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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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증 해방 - 병 없이 오래 사는 사람들의 비밀
정세연 지음 / 다산라이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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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나이가 들면서 이유도 없이 몸 이곳 저곳이 아픈 경우가 있어. 참다가 낫질 않아서 병원에 가 보면, 비슷한 말들을 하곤 해. 염증이 있다고. 그리고 염증을 없애는 주사를 맞거나 약을 받아 먹는단다. 그래서 좀 나아지고그리고 또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곳이 아프고나이 탓을 해야 하나, 운동 안 한 탓을 해야 하나. 건강에 관심을 가지는 나이가 되다 보니, 유튜브도 그렇고 책도 그렇고 건강에 관련된 것들이 눈에 들어오더구나.

아빠가 이번에 읽은 책도 몇 달 전에 유연히 인터넷 서점에서 알게 된 정세연 님의 <염증 해방>도 그렇게 알게 된 책이란다. 정세연 님은 한의사로 유튜브도 운영하신다고 하더구나. 지은이 정세연 님은 식치라는 단어를 쓰더구나. 식치란 음식으로 병을 치유하는 개념이래. 이 책의 주제이기도 하지. 그러니까 염증을 해방을 하려면 먹는 것을 잘 먹어야 한다는 거야.

이 책은 1부는 염증의 정체와 염증을 없애는 생활 습관 등을 알려주고, 2부에서는 염증 식치라고 해서 염증을 없애고 내 몸을 살리는 음식 처방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고 있단다. 2부에서 소개된 음식들을 보면, 아빠가 좋아하는 음식이 별로 없더구나. 그러니 아빠의 몸에 염증이 생길 수 밖에나이를 먹은 만큼 몸을 생각하면서 몸에 좋은 음식을 먹어야 하는데, 더 늙으면 단짠단짠 음식을 못 먹으니 먹을 수 있을 때 먹자는 괴상한 논리를 갖고 있으니, 음식에 대한 아빠의 자세부터 바꿔야겠구나.


1.

염증은 왜 생기는 걸까. 염증은 몸을 살리기 위해서 생기는 거란다. 아빠는 이유 없이 염증이 생겨서 아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염증은 파괴된 조직과 괴사된 세포를 제거하고 조식을 재생하면서 생기는 것이라고 하더구나. 염증을 미워하지 말고, 염증을 생기게 한 아빠를 미워해야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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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염증의 목적은 세포의 손상을 초기 단계에서 억제하고, 파괴된 조직 및 괴사된 세포를 제거하며, 동시에 조직을 재생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붓고 아프기에 나쁜 것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무조건 해로운 것은 아니며 건강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수단입니다. 그렇게 발생한 염증은 약을 먹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사라집니다. 몸을 지키기 위해 발생한 염증이 오래 이어진다면 정상세포에도 손상을 입히게 될 테니 우리 몸은 스스로 적당한 시점에 제동을 거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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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서 일어나는 많은 반응이 이 염증과 관련이 있대. 아빠가 놀란 것은 뱃살의 원인도 염증이라는 거야. 뱃살은 그냥 많이 먹고 운동을 하지 않아서 생긴 거지, 그게 염증과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런데 뱃살 중에서 특히 내장지방에는 염증 물질을 분비하고 있대. 그러니까 내장지방이 많은 사람은 염증도 많이 갖고 있다는 거야.

========================

(106)

내장지방의 세포에서 아디포카인이라는 염증물질을 분비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뱃살을 계속 달고 있으면 만성염증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다시 말해 뱃살은 만성염증 그 자체입니다. 만성염증은 혈관을 공격하는 성질이 있어서 혈관벽에 상처를 내고, 혈액을 탁하게 해서 소위 피떡이라고 말하는 혈전을 생기게 합니다. 면역계를 교란시키고 암 발병률을 높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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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동을 좀더 열심히 해야겠는데그렇다고 무턱대고 운동만 하면 안되고, 생활습관을 바꿔야 하는 거야. 염증에 가장 큰 주범은 설탕이라고 하는구나. 달콤한 음식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그 설탕은 염증의 주범이고, 뇌신경도 갉아 먹는 주범이라서 치매를 부르는 음식에는 당독소가 있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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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당독소가 혈관에 쌓이면 혈관 내피세포에 염증을 일으켜 동맥경화를 유발합니다. 뇌신경에 축적되며 신경독성을 일으켜 파킨슨질환이나 알츠하이머 치매 같은 퇴행성질환을 촉진하고요. 피부에 축적되면 피부세포의 염증반응을 촉진해 주름살을 늘리고 노화를 앞당깁니다. 특히 당뇨 환자라면 더 조심해야 합니다. 혈당 검사 항목 중의 하나인 당화혈색소는 혈색소라는 단백질을 당화시킨 당독소 중 하나인데, 이 수치가 너무 높으면 눈과 콩팥에 만성염증을 일으켜 당뇨합병증을 유발하기 때문입니다.

========================

치매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 머리를 자주 쓰고, 손을 자주 쓰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데, 그보다 먹는 것을 먼저 신경을 써야 하는구나.


2.

2부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염증을 줄이는 음식들을 한방 의학으로 설명하고, 간단한 레시피도 포함하고 있단다. 이 책을 보고 간단하게 요리를 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아. 눈의 염증을 다스리는 구기자 차, 코의 염증을 다스리는 파, 목의 염증을 다스리는 도라지, 뇌신경의 염증을 다스리는 달걀, 자율신경을 다스리는 대추 등이 있어. 감기 걸렸을 때 배도라지 차를 먹곤 하는데 도라지가 목의 염증에 좋아서 그런 거구나. , 고지혈증과 지방간을 다스리는 키위, 췌장의 염증을 다스리는 우엉, 위식도의 염증을 다스리는 양배추, 장의 염증을 다스리는 밤과 목이버섯, 내장지방 염증을 다스리는 황태가 있단다. 예전에 목이버섯은 방사능을 흡수를 잘 해서 몸에 안 좋다고 본 것 같고, 황태는 일본의 방사능 바다 유출로 믿고 먹고 찜찜한데,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려나. 음식의 장단점이 있을 경우 말이야. 그런 점은 설명이 없어서 조금 아쉽네.

, 통풍을 다스리는 레몬, 신우신염을 다스리는 옥수수수염, 방광염을 다스리는 복분자, 질염을 다스리는 연꽃, 전립선 염증을 다스리는 토마토가 있단다. 과일이나 야채의 경우 생으로 먹는 경우가 몸에 더 좋은 경우가 많은데, 토마토의 경우는 익혀서 기름과 먹어야 더 좋다고 하는구나. 좀 특이하네. 아빠도 토마토를 좋아하는데, 익힌 것보다 생으로 먹는 것을 훨씬 좋아하는데, 역시 건강하게 먹는 것은 쉽지 않구나.

========================

(274-275)

다음의 세 가지가 중요한데 껍질째, 익혀서 그리고 기름과 함께섭취해야 식치 효능이 증대됩니다. 라이코페 함유량이 가장 높은 부위는 과육보다는 껍질입니다. 그리고 대부분 토마토를 생으로 많이 먹지만 생식할 경우 좋은 성분의 소화흡수율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라이코펜은 선 모형으로 이루어져 있어 트랜스 라이코펜이라 하는데, 열이 가해지면 구부러진 모형인 시스 라이코펜으로 바뀌게 됩니다. 사람의 장에서 흡수하기 훨씬 용이한 구조가 바로 이 시스 라이코펜이지요. 항산화 효능 역시 88도 정도의 온도에서 2, 15, 30분 가열했을 때 각각 28%, 34%, 62%로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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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뼈 건강을 다스리는 멸치, 근육 염증을 다스리는 바나나, 말초신경 염증을 다스리는 김, 혈관의 염증을 다스리는 호두, 림프의 염증을 다스리는 공심채가 있어. 우리가 근육 운동을 꾸준히 하게 되면 근육도 붙고 그러거든. 그런데 근육 운동을 하면 근육에 미세한 염증이 생긴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근육 운동을 하게 되면 근육 회복을 위해 먹기도 잘 먹어야 한대. , 아빠가 운동을 하고, 그에 맞게 먹질 않아서 근육이 없나? 근육 회복에 좋은 대표적인 음식이 바나나라고 하는데, 의외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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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4)

근육에 염증이 생기게 하는 가장 흔한 원인은 근육운동입니다. 대부분 운동을 하면 근육이 건강해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반대지요. 근력운동을 하면 근육에 상처가 생기고 미세한 염증이 발생합니다. 운동은 근육을 손상시키지만 운동 후 잘 먹고 쉬는 과정을 통해서 건강한 근육이 새로 생겨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근육 건강을 지키려면 꾸준한 운동과 함께 반드시 근육 회복에 도움이 되는 음식으로 관리해야 합니다. 근육에 좋은 음식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사시사철 일상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식품으로 바나나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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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성염증을 다스릴 때는 자신의 체질을 잘 알아야 한대. 열이 많으면서 습한 체질인 사람은 콩을 먹고, 열이 많으면서 건조한 체질인 사람은 자두를 먹고, 냉하면서 건조한 체질은 잣을 먹고, 냉하면서 습한 체질은 생강을 먹으라고 하는구나.

...

그런데, 몸의 각 부위에 짝이 맞는 음식은 어떻게 알게 된 걸까? 무척 궁금하네. 이제 이 책을 통해서 어떤 음식을 어떻게 먹고, 어떤 생활 습관을 가져야 하는지 알게 되었는데, 문제는 늘 그렇지만 실천이란다. 2부에서 소개된 음식 중에 진짜 안 좋아하는 음식들도 있는데, 이것을 건강을 생각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먹어야 하는가. 맛있게 먹으면 그게 보약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건 먹고 싶은 거 맘대로 먹고 싶은 사람이 지어낸 말인가.

아빠도 아빠가 먹은 것이 아빠를 만든다는 것은 동의해. 그러니 몸에 좋은 것을 먹어야 하는 것도 알겠고너무 늦게 후회하지 말고, 지금부터 좀 식생활 개선을 하도록 노력해야겠구나.  건강은 건강할 때 챙겨야 한다는 당연한 말을 다시 되새기면서, 오늘은 이만 하련다.


PS,

책의 첫 문장: 오래 전 일입니다.

책의 끝 문장: 또 생강은 귤껍질과 함께 먹으면 수독 배출에 시너지 효과를 내는데, 귤껍질은 진피라는 약재를 검색해 구입할 수 있습니다.


장은 장내 미생물이 일하는 공장입니다. 미생물은 장 공장에서 먹고 자고 활동하면서 건강에 매우 유리한 물질을 만들어주는데요. 이들이 생산하는 주된 물질은 대부분 짧은 사슬로 연결된 모양이라 단쇄지방산(SCFA, Short Chain Fatty Acid)이라고 부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뷰티르산이 면역을 조절하고, 염증을 줄여주고, 식욕을 조절하고, 인슐린 감수성을 증가시켜서 혈당 조절이 잘되게 하고, 손상된 장 점막을 복구하는 등 놀라운 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장을 비롯해 인체 건강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것은 미생물 자체가 아니라, 이들이 먹이를 먹고 난 후 분해해서 만들어낸 단쇄지방산이라는 것이지요. - P37

여기서 포드맵은 장내 가스를 많이 생성시키는 음식을 뜻합니다. 정확하게는 소화나 흡수가 잘되지 않고 장에 남아 미생물에 의해 발효되기 쉬운(Fermentable) 올리고당(Oligosaccharides), 이당류(Disacharides), 단당류(Monosacherides) 그리고|(And) 폴리올(Polys)을 포함한 음식들인데, 이들의 영문 앞글자만 따서 ‘포드맵(FODMAP)’이라고 부릅니다. - P58

교감신경은 하루 중 양의 구간에 해당하는 아침부터 오후 시간대까지 활성화됩니다. 해가 지는 음의 구간에 들어서면 반대로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지요. 이렇듯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은 세력이 변화하면서 서로를 견제하고 또 협응합니다.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섬세하게 반응하면서 우리 몸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염증을 조절하는 작용을 합니다. - P80

<꿀벌 호흡법 따라 하기>
1> 앉거나 누운 상태에서 편안한 자세를 취한다.
2> 평소대로 자연 호흡을 몇 번 들이쉬고 내뱉는다.
3> 입을 다문 상태에서 코로 숨을 마신다.
4> ‘훔(Hum)’이라는 소리를 내면서 숨을 천천히 내쉰다. 소리가 사그라들 때까지 진행한다.
5> 5회 반복한 뒤 평소의 자연 호흡으로 돌아와 들숨과 날숨을 편안하게 느껴본다.
- P97

웨이트 같은 근력운동을 한다는 것은 근육에 상처를 내는 과정이기 때문에 이후 근육 회복과 성장을 위해 식단에 몇 배 더 신경을 써야 합니다. 그런데 이때 단백질만 챙겨 먹고 탄수화물과 수분 섭취를 충분히 해주지 않으면 근육은 어떻게 될까요? 육포처럼 수분이 다 빠진 상태로 뻣뻣해지고 돌처럼 딱딱해지겠지요. 이런 근육은 염증을 달고 살고, 통증이 자주 생기며, 부상에도 매우 취약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고가의 보충제나 값비싼 음식을 챙겨 먹으라는 것은 아닙니다. - P248

사람 몸의 70%는 근육도 뼈도 아닌 물입니다. 그리고 너무나 경이롭게도 우리 몸엔 상하수도 시스템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습니다. 혈관이 상수도라고 하면, 림프관은 하수도의 역할을 합니다. 림프액은 혈액에서 각종 염증물질과 노폐물을 수거해 말초에서부터 쇄골까지 천천히 순환합니다. 그 과정에서 서혜부(사타구니), 액와(겨드랑이), 귀밑 등 중간중간 림프절이라는 정거장을 지나게 되는데요. 면역세포 중 하나인 킬러 T 세포들이 림프액 속에 있던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나 암 세포 등을 직접 파괴합니다. - 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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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봄
조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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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몇 년 전에 너무 재미있게 읽고,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도 하고, 추천도 한 책이 있어. <세 여자>라고아빠가 아마 몇 번 이야기 했을 거야. 그래서 그 이후 그 책의 지은이 조선희 님의 책을 찾아 읽기도 했었지. 신간 알림도 해 놓았더니, 몇 달 전에 신간 알림이 왔단다. 지은이 좃ㅅㅅㅅㅅㅅ 님은 기자 출신으로 아빠가 알기로 <세 여자>가 첫 번째 소설이었어. 그리고 소설은 이번에 출간한 <그리고 봄>이 두 번째일 거야. ‘아빠가 알기로는이라는 단서가 붙어서 찾아보니, 아주 오래 전에 소설을 한 편 쓰신 것이 있더구나. 그러니까 <세 여자>가 소설로는 두 번째, <그리고 봄>은 세 번째가 되겠구나. 아무튼 <세 여자>를 재미있게 봐서 신간 <그리고 봄>도 읽었단다.

<그리고 봄> <세 여자> 같은 역사 소설은 아니고 현재를 그린 사회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구나.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한 가족의 모습을 그리면서, 우리 사회의 여러 이슈들을 담았더구나. 지금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읽기 깔맞춤인 그런 소설인 것 같았어. 소설은 2022년 봄부터 2023년 봄까지 1년 남짓의 시간을 다루고 있단다. 아빠를 비롯한 일부 사람들에게는 악몽 같은 시간이었지. 새로운 대통령이 뽑혔고, 그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거처를 옮겼고,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렸단다. 그에 좌절한 사람들이 이 소설에서 나오는 50대 후반의 부부란다. 그들도 민주당 대통령 경선이 있기 전까지는 지지하는 사람이 달랐는데, 경선이 끝난 이후로 1번 후보로 지지를 통일했단다. 그들에게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으니 말이야. 2번을 찍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었고, 3번은 뜻은 있으나 현실적이지 않았으니 말이야. 그런데 그들의 딸은 곧 죽어도 3번을 찍었고, 아들은 소위 말하는 2찍남이었어. 이렇게 가족구성원들의 정치적 성향이 전혀 다르면 어떨까?


1.

20대 자녀를 둔 아빠 영한과 엄마 정희. 큰 딸 하민은 3번 후보자 지지자로, 아빠와 엄마의 설득에도 넘어가지 않아 1번 후보자가 0.7%로 지는데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영한과 정희는 생각했어. 아들 동민은 2찍남으로, 아빠 영한의 속을 긁었는데, 영한은 자신의 아들이 2찍남이라는 것에 이해를 할 수 없어 몇 번이나 말다툼을 하고 그로 인해 동민이 집을 나가는 사태까지 벌어졌단다. 그래서 집은 영한과 정희와 딸 하민이 지냈어. 식구끼리 만든 단체 카톡방에서도 동민을 나갔단다. 집을 나간 동민은 친구와 함께 인디 밴드를 했단다. 인디 밴드도 잘만 뜨면 엄청 인기 있고 돈도 많이 버니까, 음악을 좋아서는 첫 번째 이유지만 인기와 돈도 음악을 하는 이유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었지.

대선이 끝나고 첫 가족 식사 모임을 했어. 하민이 쏜다고 했어. 동민도 참석했지만 여전히 영한과는 냉전 중이었지. 그런데 그 식사 시간에 전혀 예상치 못한 폭탄 선언을 한 하민외국인 여자와 진진하게 사귀고 결혼하겠다고 커밍아웃을 한 거야. 요즘 동성 커플의 공개 선언이 색다른 것이 아닐 수도 있지만, 하민의 커밍 아웃은 엄마 정희에게 큰 충격이었단다. 오히려 영한은 사랑의 한 종류로 받아들이려고 했어. 정희는 딸 하민이 결혼이 아닌 친구와 남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정희는 하민의 커밍아웃 이후 겉으로 반대는 하지 못하고(딸의 뜻을 거슬리는 엄마가 되긴 싫고) 혼자 속으로 낑낑 앓아서 잠도 제대로 못 잤단다.

하민은 커밍아웃을 하고 본격적으로 결혼준비를 했단다. 하민은 애인 엘리샤를 식구들에게 정식 소개도 했어. 결혼식은 지인들끼리 작게 하려고 한다며, 엄마 아빠한테도 일단 초대장은 보내는데 안 오셔도 된다고 했어. 그런데 문제는 하민의 애인 엘리샤의 부모님이었단다. 엘리샤는 튀르키예 사람인데, 부모님이 하민과 결혼을 완강하게 반대한다고 하셨어. 하민은 결국 둘이 친구로 지내기로 했다고 식구들에게 이야기 했단다. 정희는 안도의 한숨으로 몰래 내쉬었단다.


2.

계절마다 한 사람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하는데 봄은 엄마의 정희의 관점이고, 여름은 딸 하민의 관점이었단다. 엘리사의 부모님의 명령으로 이스탄불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어. 하민은 엘리사와 이별을 준비했단다. 그러면서 서울에서 열리는 퀴어축제에도 같이 참가했어. 그런데 그들은 이별을 준비하면서 둘은 죽어도 헤어질 수 없다는 것만 다시 확인하게 되었단다. 하민은 이것 저것 알아보더니 엘리사와 독일로 가기로 결정했어. 독일은 동성애에 관대하여 색다른 시선으로 사람도 적고, 결혼절차도 쉽고, 동성 부부가 입양하는 것도 쉽다고 했어.

일단 회사 휴직을 2년을 하고 독일에서 지내보기로 했어. 이런 계획을 하민은 엄마에게 이야기를 했단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던 엄마 정희는 전보다 더 큰 근심에 빠졌단다. 갑자기 폭삭 늙으신 것 같기도 했어. 하지만 이건 하민 자신의 인생이라서 결정을 바꿀 생각은 없었단다. 갑자기 늙어 보이는 엄마와 아빠를 걱정하는 것뿐.

이번에는 가을, 동민의 이야기란다. 동민은 수십 차례 취업 입사지원서를 넣었지만 모두 합격이었어. 얼마나 좌절감을 느꼈을까. 그래서 결국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하고 하기로 했어. 94라는 친구와 미호라는 친구와 인디 밴드를 만든 것이 2년 전이었어. 그러나 그들의 음악을 알리고 성공하는 것은 쉽지 않았단다. 미호는 얼마 전에 밴드를 그만두고 취업을 했어. 94와 동민 둘만 남았단다. 2년 동안 실패하면서 경제적으로 힘들어졌고, 집세 내는 것도 빠듯했단다. 누나 하민이 찾아와서 집에 들어가는 것은 어떠냐고 제안을 했고, 동민은 돈도 없고 음악 하는 것도 좀 지쳐 있던 상황이라서 누나의 제안에 곧바로 동의했단다. 사실 동민 자신도 집에 들어가고 싶었는데 자존심 때문에 선뜻 먼저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는데, 누나가 옆구리를 찔러주었던 거지.

동민은 악기들도 모두 처분해 버렸어. 집에 들어왔지만 아빠와는 여전히 서먹한 사이동민은 다시 취업을 한다고 여기저기 면접을 보러 다녔지만 결과는 안 좋았단다. 그러다가 미호의 소식을 들었어. 그날 이태원에 갔다가 그만 죽었다고 말이야. 동민은 큰 충격을 받았어. 아빠도 재작년에 그 뉴스를 듣고 비록 아는 사람들이 희생당한 것은 아니지만, 무척 충격이 컸던 기억이 있구나. 동민에게 미호가 단지 같은 인디 밴드 멤버만은 아니었어. 동민과 미호는 한때 사랑하던 사이였거든. 그런 미호의 죽음은 동민에게 큰 충격이었고 이겨낼 수 없는 슬픔이었단다.


3.

겨울이 왔어. 아빠 영한의 관점이지. 식구 구성원들 중에 아빠를 겨울로 삼았다는 것은 좀 의미심장한 것 같구나. 네 식구 중에 겨울을 누구와 매핑을 시켜야 할까? 하는 생각에 지은이는 전혀 고민하지 않고 아빠와 매핑시키지 않았을까 싶구나. 아빠의 계절 겨울. 어울리는 것 같다. 영한은 1980년대 치열하게 학생운동을 했었어. 1 4개월 동안 감옥에도 다녀왔어. 1 4개월이냐. 1 4개월보다 더 감옥에 가면 군대 면제가 되기 때문에 나라는 그 꼴을 볼 수 없어서 군대를 갈 수 있는 가장 긴 1 4개월을 감방에 넣은 거야.

감옥과 군대를 모두 다녀오고 뒤늦게 공부를 해서 사회학 박사가 되었지. 지방대 사회학과 교수로 일했어.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사회학과가 인기가 없어지면서 사회학과가 폐지되었어. 어쩌다 사회학과가 폐지되는 세상이 되었나, 한탄도 했지. 그래도 학교에서 버텼어. 20년을 채워서 사학 연금을 받으려고 말이야. 20년을 채우고 영한은 은퇴를 했단다. 은퇴한 영한은 친구들과 가끔 산에도 가고 그랬어. 등산은 은퇴한 남자들의 대표적인 일상인 것 같구나. 나이를 먹다 보니 건강을 잃은 친구의 소식도 가끔, 이른 나이에 친구의 부음도 듣곤 했어. 그런 나이였어.

영한도 어느날 갑자기 현관문 도어락 비밀 번호가 기억나지 않아 당황했어. 아빠도 얼마 안 있으면 소설 속 영한의 나이가 되는데, 어느날 갑자기 현관문 비밀번호가 생각나지 않으면 어떤 기분일까, 생각해 봤단다. 약간은 우울한 것 같은데그런 일을 대비해서 꼭 핸드폰을 갖고 다녀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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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

어느 날 이른 오후 집에 왔는데 영한은 현관문 잠금장치의 비번이 기억나지 않았다. 불편한 기억과 부정적인 감정들을 무의식의 아래 칸으로 쓸어냈더니 무차별 망각의 쓰나미에 몇 안 되는 실용적인 정보도 딸려 내려가 버린 모양이었다. 집엔 아무도 없었다. 영한은 현관문 앞에 한참을 서 있다가 아파트 뒷산을 넘어 보라매공원에 가서 아내가 집에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해가 와우산숲 위로 넘어가고 오리들도 사라져 텅 빈 연못에 어둠이 내릴 때 영한은 내 인생도 헛되고 헛된 공부들 끝에 이렇게 막이 내리고 있구나, 하는 비감에 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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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한은 사회학과 교수다 보니 관련 책들도 참 많이 샀단다. 그 책을 사면서 아이들도 같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졌지만, 그간 영한 만의 헛된 꿈이었지. 영한은 예전에도 책을 썼는데, 다시 한번 책을 쓰기로 마음 먹었단다. 그래서 동네 도서관에 갔어. 그런데 그곳에서 우연히 아들 동민을 보았단다. 모른 척 하려고 했는데, 동민이 먼저 와서 아는 척을 했어. 둘은 오랫동안 서먹서먹한 사이였는데, 그날따라 동민은 아버지에게 먼저 아는 척을 했어. 그리고 저녁도 같이 먹게 되었고, 술자리가 이어졌단다. 드디어 아버지와 아들의 화해의 시간인가. 영한은 그런 동민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오늘만큼은 대화 매너의 3금을 지키겠다고 다짐했단다. 그 대화 매너의 3금은 아빠도 꼭 명심해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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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

동민이 먼저 와서 말을 걸다니, 영한은 이 무슨 사건인가 싶다. 동민한테는 그동안 찜찜했는데 잘됐다. 집을 나간 2년 반은 동민이 대화를 거부했고 집에 돌아온 지 두 달이 넘었지만 대화는 번번히 핀트가 어긋났다. 노트북을 접고 자리를 정리하면서 영한은 부자간의 대화를 위한 마음의 준비를 했다. 책 안 읽는다고 타박하면 안 돼. 지적질 금지! 가르치려는 습관을 버려야 돼. 강의 금지! 너무 다 알려고 하지 마. 곤란한 질문도 금지! 영한은 대화 매너의 3금을 정해놓고 스스로에게 거듭 다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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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는 괜찮았어. 조심스레 정치 이야기도 하고동민이 왜 2찍남이 되었는지도 들었고,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해 보려고 했어. 술이 잔뜩 취하게 되자, 동민은 미호의 죽음의 이야기했어. 친한 친구인데 이태원에서 죽었다고동민은 그 일로 무척 힘들었는데 어디서 위로도 못 받고 있었던 것 같아. 술자리에서 이렇게 아버지에게 이야기하고 위로 받고 싶었던 것 같아.

그 술자리 이후 네 식구는 다시 관계가 좋아졌단다. 동민이 다시 가족 카톡방에도 들어왔어. 얼마 후 동민은 선배가 차린 수제 맥주 회사에 취업했다고 했어. 영한과 정희는 그 취업이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동민이 그 일을 좋아하고 열심히 하는 것을 보고 안심했단다.

다시 봄이 되었어. 하민은 베를린에 간지 6개월이 되었고, 그곳에서 적응을 잘 한다고 했어. 레즈비언 커뮤니티에 가입하여 활동도 열심히 한다고 했어. 대학원에 들어가려고 준비도 한다고 했단다. 동민은 회사가 있는 이천에서 주로 생활했단다. 그렇게 네 식구는 각자의 자리에서 활기를 찾으면서 소설은 끝이 났단다.

가족 구성원 간의 갈등, 세대 간의 갈등, 성별 간의 갈등, 그리고 그런 것들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해결되어 가는 모습이 잔잔하면서 재미있게 그려진 소설이었어. 아빠는 아무래도 네 명의 구성원 중에 영한에게 공감이 많이 가더구나. 소설 속 영한은 아빠보다 나이가 많지만, 네 식구에서 아빠 역할을 하고 있으니 아빠와 비슷하잖아. 그리고 아빠도 요즘 들어 나이를 먹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데, 그런 점들도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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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324)

늙는 건 정말 종합적으로 어려워. 은퇴라는 것도 쉽지가 않지. 예전엔 그냥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 한가운데였는데. 일이 돌아가고 같이 움직이고 그랬는데. 이젠 자기가 자기를 추스르지 않으면 하루하루가 안 굴러가. 몸은 여기저기 빵꾸 나기 시작하지. 요새 친구들 만나면 어디 아픈 얘길 많이 하는데 무릎 하나 가지고 30분씩 떠들 때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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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아직도 3년도 더 남았구나.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어렵게 성사된 4인 가족의 점심 식사였다.

책의 끝 문장: 지금도 남편은 박스에서 책을 꺼냈다 넣었다를 계속하고 있다.


어쨌거나 지금은 너무 늦어버렸어. 미호는 너무 아름다웠어. 동민은 노래의 마지막 소절을 바꿔 불러본다. 미호는 평범한 얼굴이지만 스무 살엔 누구나 아름답다. 우리도 스무 살에 만났지. 스무 살에 저 노래를 부르며 데뷔한 서태지가 지금 오십이 됐다는 건 이상하다. 우리도 결국은 오십이 될까. 그럴 리 없어. 우리가 어떻게 오십이 될 수 있겠어. 하지만 내후년이면 서른인데 그다음에 마흔이 되고 나면 또 자동으로 오십이 되고 마는 거지. - P193

마르크스, 당신은 우리 인류에게 구원의 이름이자 저주의 이름이다. 아마 영원히 그럴 것이다. 당신은 20세기 인류를 반으로 갈라서 싸우게 만들었다. 절대권력과 독재정치가 당신의 이름을 빌리기도 했다. 하지만 당신은 식민침략과 제국주의로 질주하던 자본주의의 악마성에 제동을 걸었다. 식민침략을 당했던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당신은 복음이었다. 당신의 이론과 레닌의 혁명은 역설적이게도 당신들을 추종한 공산주의 세계를 행복하게 만드는 대신 반대편의 자본주의 세계를 더 인간답게 만들었다. 이제 편히 잠드시라. 당신이 남긴 것을 구원의 도구로 쓰거나 파멸의 정치로 쓰거나는 후대 사람들의 선택이다. - P220

여기서 진보가 정치에 희망을 잃고 정치 혐오와 정치 무관심의 안드로메다로 떠나버리면 그것이 지금 일본이다. 총선 투표율이 50% 정도, 어차피 정치는 자민당이 알아서 하든 말든, 국민 절반이 누가 국회의원이 되는지 관심 없다. 전후 70여 년의 자민당체제에서 민주당이나 사회당이 집권한 건 단 두 차례, 6년이었다. 뭔가 바뀌어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에 투표율도 높았지만 매번 실패했다. 자민당의 수족이 돼 있는 행정부에서 민주당은 거의 외계인 내각이었다. 민주화운동에서의 역할, 시민운동의 경험이 한국의 진보가 일본의 진보보다 나은 점이다. 그 다음은 집권 경험이 쌓여야 진보도 실력이 쌓인다. - P268

우리의 다음 스텝은 무엇이 될 것인가. 결국 믿을 것은 민주주의이고 의회정치인데 이상적인 의회제도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민주화의 한 세대를 지나 차세대로 넘어가는 한국사회가 어떻게 저 우아한 시스템에 올라탈 것인가. 독일은 나치를 딛고 훌쩍 건너뛰었는데, 한국에서 민주주의의 바닥을 치는 이 시기가 변화의 지렛대가 될까. 성숙한 민주주의의 다음 단계로 건너뛰는 것, 사회적 진화의 시간을 단축하는 데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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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작 - 잠 못 드는 사람들 / 올라브의 꿈 / 해질 무렵
욘 포세 지음, 홍재웅 옮김 / 새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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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매년 10월이면 애서가들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이 있단다. 바로 노벨 문학상 수상자. 인터넷 서점에서는 노벨 문학상을 예상하는 이벤트도 벌이곤 하지. 아빠도 거의 매년 그 이벤트에 참가하여 투표를 한단다. 예전에는 아빠가 좋아하는 작가를 투표했는데, 두어 년 전부터는 아빠가 모르는 작가에 투표를 한단다. 왜냐하면 노벨 문학상 수상자들 대부분 아빠가 몰랐던 작가들이었거든.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고 나서 수상자에 관심을 갖게 되어 책을 찾아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 그래서 아빠에게 노벨 문학상은 숨어 있는, 훌륭한 작가를 알게 되는 계기로 생각하고 있단다.

작년 2023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도 역시나 처음 들어보는 작가가 수상하였단다. 욘 포세라는 노르웨이 사람이 탔단다. 노르웨이 작가라고 하면 아빠가 좋아하는 요 네스뵈가 있는데, 욘 포세는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작가였단다. 한번 읽어보고 싶더구나.  그래서 대표작 중에 한 권인 <3부작>이라는 책을 읽었단다.

연작 소설 3편인 <잠 못 드는 사람들>, <올라브의 꿈>, <해질 무렵>을 하나로 엮은 것으로 우리나라에는 2019년에 출간되었단다. 책의 뒤편에 옮긴이의 글을 보니, 폰 욘세가 최근에 노벨 문학상 후보로 많이 거론된다고 써 있더구나. 몇 년 전부터 유력한 후보였구나. 많이 알려지지 않은 폰 욘세의 작품을 몇 년 전에 소개한 출판사는 노벨 문학상 발표 후에 돈 좀 벌었으려나? 하는 뜬금없는 생각도 드는구나. 대표작 3부작의 이야기를 간단히 해줄게. 역시 노벨 문학상 수상자들의 작품은 읽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으면서


1.

첫 번째 이야기는 <잠 못 드는 사람들>이란다. 노르웨이 서남부 해변가 도시 베르겐의 옛이름은 벼리빈인데, 그곳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단다. 그러니까 베르겐이 벼리빈이라고 불리던 옛날 이야기인 것이야. 벼리빈 인근에 뒬리야 지방이라는 시골 마을에 아슬레와 알리다가 살고 있었지. 아슬레의 아버지는 바이올린 연주자였고, 아슬레도 아버지와 함께 연주를 하곤 했단다. 아슬레의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아슬레는 살고 있던 보트하우스에서 쫓겨나게 되었단다. 알리다의 아버지는 오래 전에 집을 떠나셨고, 엄마와 언니 올린과 함께 지냈는데, 엄마는 언이 올린만 좋아하고 알리다에게는 막 대했단다. 그래서 알리다와 엄마 사이는 오래 전부터 좋지 않았어.

아슬레와 알리다는 17살 어린 나이지만, 둘은 사랑하는 사이였고, 알리다는 임신까지 하게 되었단다. 보트하우스에서 쫓겨난 아슬레는 알리디와 함께 뒬리야를 떠나 벼리빈으로 가기로 했어. 벼리빈은 번화한 곳이므로 그들이 묵을 방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단다. 이 소설은 마치 아슬레와 알리다, 젊은 여인의 여정을 떠나는 이야기인가 싶었어. 아빠만 그렇게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분위기가 좀 몽환적인 느낌이었단다.

벼리빈에 도착을 한 아슬레와 알리다…. 벼리빈은 비가 내리고 날씨가 쌀쌀했어. 그런데 이 두 젊은 연인을 받아주려고 하는 집이나 여관은 없었어. 한참을 돌아다니면서 문을 두들겠지만, 그들은 묵을 만한 방을 찾지 못했단다. 아무래도 낯선 젊은 연인에, 여자는 임신해서 출산을 앞둔 것처럼 보여서 방이 있어도 그들을 받아주지 않는 것 같았어. 한참 뒤에야 한 노파의 집에서 머물 수 있었는데, 거기도 거의 억지로 부탁해서 간신히 묵을 수 있었단다. 그래도 정착할 곳을 찾기 전에 임시로나마 묵을 수 있는 곳이 생겨서 다행이구나.

그런데 며칠 뒤 알리나가 아이를 낳으려고 했어. 그들은 아이 낳는 경험이 없으니 산파의 도움을 받으려고 했어. 아슬레가 수소문 끝에 산파를 데리고 왔는데, 그 산파 왈, 아슬레와 알리다가 머물고 있는 집의 주인도 산파라고 했단다. 그러나 그 집주인인 노파는 집에 없었단다. 사실 며칠 전부터 보이질 않았어. 이때부터 아슬레가 좀 의심스러웠어. 갑자기 스릴러 장르로 바뀌는 건가? 아무튼 산모와 아이는 모두 건강하게 출산을 했단다.


2.

아슬레와 알리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의 이름은 시그발이라고 지었어. 그들은 벼리빈을 떠나서 바르벤이라는 시골 마을에서 지냈어. 새로운 출발을 하겠다면서 이름도 아슬레는 올라브로, 알리나는 오스타로 바꾸었단다. 두 번째 작품의 제목이 아슬레가 이름을 바꾼 올라브가 들어간 <올라브의 꿈>이란다. 그래서 두 번째 작품 이야기를 할 때는 올라브와 오스타라는 이름으로 이야기할게.

올라브는 오스타에게 결혼식은커녕 아무것도 준 것이 없어서 바이올린을 팔아서 반지 선물을 사려고 벼리빈에 갔단다. 그런데 어디선가부터 어떤 노인이 올라브를 따라왔는데 올라브를 안다면서 계속 말을 걸어왔어. 올라브는 아는 척하고 싶지 않은데 귀찮게 계속 따라왔단다. 빠른 걸음으로 그 노인을 따돌리고 선술집에 들어갔는데, 소름 끼치게도 그 노인은 먼저 선술집에 와 있었어. 그러면서 올라브에게 자신을 아냐고 계속 물어봤고, 올라브는 그 질문을 무시했단다. 올라브는 선술집에서 오스가우트라는 새로운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노인은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어. 그러면서 이야기를 하기를, 아슬레가 살던 보트하우스의 주인이 살해되었고, 그 마음에 어떤 딸의 엄마도 죽었고, 벼리빈의 한 산파가 실종되었다는 이야기를 그들에게 했어. 올라브는 사람을 잘못 봤다면서 자신은 아슬레가 아니라고 했단다. , 아슬레가 결국 일을 벌였던 것인가. 역시 노르웨이는 범죄 스릴서 소설에 강점이 있는 것인가. 색다른 스타일의 스릴러?

올라브는 원래 반지를 사러 벼리빈에 온 것인데, 오스가우트가 산 팔찌를 보고 너무 예뻐서 올라브도 마음이 바뀠어서. 반지 대신 팔찌를 사고 싶었어. 하지만 가격이 비쌌지. 아빠는 오스가우트도 죽는 것 아닌가 싶었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단다. 오스가우트의 도움으로 오스가우트와 같은 팔찌를 싼 가격에 살 수 있었어. 올라브는 오스타에서 그 팔찌를 줄 생각에 기뻤단다. 그런데 그날이 저물어서 벼리빈에서 하룻밤 자고 가야 했어. 어떤 노파의 집에서 묵게 되었는데, 그 노파의 딸이 올라브에게 계속 추파를 던졌단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노파의 딸이 올라브의 팔찌를 훔쳐갔단다.

더 놀라운 일은 노파의 남편이 집에 왔는데, 그 사람은 하루 종일 올라브를 쫓아다니면서 아는 척을 했던 그 노인이었단다. 그 노인은 이제서야 경찰에 신고를 했고, 올라브는 경찰에 체포되어 철창에 갇히고 말았어. 올라브는 왜 항변을 안 했는지 모르겠지만, 올라브는 그 죄가 인정되어 얼마 후에 교수형에 처해졌단다. 올라브가 진짜 범인이라고 해도, 왜 항변하지 않고 그렇게 순순히 죄를 인정하고 죽었을까. 아빠가 책을 읽다가 뭔가 놓친 것이 있나? 싶었단다. 가족을 두고 그렇게 순순히 죽을 캐릭터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3.

세 번째 작품을 읽다 보면 앞의 두 작품에서 읽다가 생긴 궁금증이 풀리려나. 빨리 책장을 넘겨보았단다. 3부작의 마지막 <해질 무렵>은 엘리스라는 할머니가 먼 옛날을 회상하면서 시작한단다. 엘리스는 다름 아닌 알리다의 딸이었단다. , 알리다와 아슬레 사이의 아기 이름은 시그발이었는데어찌 된 일인지 얼른 읽어보았단다.

아슬레가 돌아오지 않자 알리다는 시그발을 데리고 벼리빈에 갔단다. 하지만 아슬레를 찾지 못하고 길을 헤매다가 선착장에 앉아 있었어.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아기를 안고 헤매 다녔으니 힘들었겠지. 그때 고향 뒬리야의 어른 오슬레이크 씨를 만났어. 오슬레이크는 알리다가 굶주린 것을 알고 밥도 사 주면서 고향 소식을 알려주었어. 알리다의 어머니가 죽었다고 했어. 그것도 어떻게 죽었는지 모르는 의문사라고 했어.

이 소식을 들은 알리다는 충격을 받았단다.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엄마는 엄마인데 말이야. 그리고 보트하우스의 주인이 살해되었고, 벼리빈의 산파도 살해당한 후 실종된 이야기를 하면서, 이 일과 연루된 아슬레가 교수형을 당했다고 했어. 믿기지 않은 이야기를 들은 알리다는 오슬레이크가 한 이야기를 믿으려고 하지 않았어. 아슬레가 없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어디로 가야 하지? 막막했을 거야. 잠자리가 없는 알리다. 오슬레이크는 자신의 배에서 하룻밤 재워주겠다고 했어. 오슬레이크의 배로 가는 선착장에서 알리다는 팔찌를 하나 주었는데, 한 눈에 그것이 아슬레가 남긴 선물이라고 생각해서 잘 간직했단다.

알리다는 아기 시그발과 함께 오슬레이크의 배에서 하룻밤을 지냈어.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어. 오슬레이크는 고향인 뒬리야에 간다고 하니 알리다는 가지 않겠다고 했어. 하지만 그렇다고 어디 갈 곳도 없었어. 결국 오슬레이크의 제안으로 그의 집의 가정부로 일하기로 했단다. 그러면 최소한 먹는 것과 잠자는 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야. 오슬레이크는 얼마 전까지 어머니와 단둘이 살았는데, 얼마 전에 돌아가시고 집안 일 할 사람이 없다고 했어. 알리다는 그렇게 오슬레이크의 집에 머무르게 되었단다.

사실 오슬레이크는 알리다를 자신의 가정부로 둔 또 다른 검은 이유도 있었단다. 알리다는 얼마 후 오슬레이크의 첫째 딸 알레스를 낳았고, 둘째 딸도 낳았지만 둘째 딸은 어려서 죽었단다. 어느날 알리다는 해안가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는데, 자살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세월은 한참 지나서 알리다의 딸 엘리스도 할머니가 되었고, 엘리스가 과거를 회상하면서 이야기를 했던 것이란다.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단다.

아빠가 앞서 이 소설에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느꼈다고 했는데, 소설의 끝까지 그런 느낌이 들었단다. 아슬레가 예상치 못한 연쇄 살인범으로 죽어서 깜짝 놀랐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라는 반전을 기대하였지만, 그런 반전을 일어나지 않았단다. 아슬레가 죽고 나서 혼자 남은 알리다라도 해피 엔딩이면 좋았겠지만, 이미 소설의 분위기가 해피 엔딩이 아닐 것 같았단다.

지은이가 이 소설을 통해서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것인지 사실 아빠는 잘 이해하지 못했고, 이런 작품에서 어떤 우수한 점을 찾아내어 지은이 욘 포세에게 노벨 문학상이 돌아갔는지 잘 모르겠구나. 아빠는 아마추어 독서가이니, 전문가들의 높은 뜻을 알겠니. 책이란 게 그냥 재미있으면 되지…^^


PS,

책의 첫 문장: 아슬레와 알리다는 벼리빈의 거리들을 배회하고 있었는데, 아슬레는 그들이 가진 모든 물건을 담은 보따리 두 개를 어깨에 메고 손에는 아버지 시그발에게서 물려받은 바이올린이 든 가방을 쥐고, 알리다는 음식이 든 그물자루를 들고서, 그들은 이제껏 몇 시간이나 벼리빈의 거리들을 돌아다니며 머물 곳을 찾으려 했다.

책의 끝 문장: 그녀는 계속해서 걷고, 깊이 더 깊이 들어간다 그러자 파도가 그녀의 잿빛 머리를 넘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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