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그들을 변호하는가 - 국선변호사 사건 일지
신민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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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얼마 전에 우리가 함께 재미있게 본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많은 사람들이 이 드라마에 대해 극찬을 했는데, 아빠도 정말 재미있게 잘 봤단다. 너희들도 이 드라마를 무척 좋아했잖아. 그 드라마에 나오는 노래도 무한반복으로 듣기도 하고그 드라마는 법정드라마라서 에피소드마다 재판이 나오는데, 그 재판들은 실제 있었던 일들을 참고했다고 했어. 그러면서 그 재판들이 실린 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그래서 읽게 된 것이 신민영 변호사님이 쓴 <왜 나는 그들을 변호하는가>라는 책이란다.

신민영 님은 국선전담변호사로 일하시고, 자신의 겪은 재판들과 변호사로써 갖고 있는 생각들이 책에 담겨 있단다. 재판을 다룬 영화나 소설을 읽다 보면 변호사와 검사의 논리적인 논쟁에 푹 빠져드는데, 실제 사건을 다른 에세이도 마찬가지로 푹 빠져들게 되는구나. 지은이 신민영 변호사님의 글솜씨가 좋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지은이 신민영 변호사님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국선전담변호사시라고 하는구나. 아빠는 법에 관련된 것은 아는 것이 별로 없어서, 국선변호사는 전담하는 줄도 처음 알았단다. 변호사들이 돌아가면서 하는 줄 알았는데, 2004년부터는 국선전담변호사가 생겼다고 하더구나.


1.

이 책을 읽다 보면 각 사건의 이야기들도 재미있지만, 법조계에 일어나는 일들과 법정 용어들도 새롭게 알게 되어 좋았단다. 우리나라에서는 정당방위가 정말 드물다는 이야기도 처음 알게 되었단다. 어떤 사건의 경우 정당방위가 안 된 경우도 있어 안타까운 적이 있지만, 정당방위의 범위를 좁게 가져가는 이유를 읽어보니 그 또한 나름 일리가 있어 보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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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초기 소지가 불법이고 인구밀도가 높으며 경찰서가 비교적 가까이 있는 우리나라에서 정당방위의 범위를 좁게 가져가는 것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정당방위가 허용될 수도 있다는 믿음을 주어 보복성 폭력 행위로 이어지게 하는 것보다, 팔을 잡는 등의 현상 유지만 하게 하고 공권력을 빌어 사건을 처리하는 편이 폭력의 총량을 줄일 수 있는 길이다. 물론 몇몇 아쉬운 사건이 있긴 하지만 더 큰 위험을 줄이기 위해선 현행법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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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나 실제 뉴스에서도 보면 집행유예를 받게 되면 좋아하는 장면들을 많이 볼 수 있단다. 집행유예를 받으면 거의 무죄나 마찬가지로 생각들을 하는 편이고.. 그런데 집행유예를 만류하는 경우도 있다고 해서, 의아해했는데 집행유예를 받더라도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있어서 그렇다고 하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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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69)

현행법상 집행유예 이상 전과자는 공무원이 될 수 없다. 벌금형이 가능한 젊은 피고인들의 집행유예형 요청을 만류하는 이유다. 인생 어떻게 될지 모른다. 뒤늦게 공무원 시험 응시를 마음먹었다가 집행유예 전과에 발목을 잡힐 수 있다. 나이 많은 피고인이라고 다르지 않다. 취업할 때 전과 기록을 제출해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형 실효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집행유예 전과는 5년이 지나야 전과 조회 결과에서 사라지지만, 벌금 전과는 2년만 지나면 사라진다. 물론 둘 다 아예 사라지는 건 아니고 취업이나 기타 목적으로 조회할 때에만 보이지 않는 것이긴 하지만 그 차이는 분명 크다. 나도 변호사지만 우리나라 법 전체를 다 알지는 못한다. 집행유예 전과가 어디서 어떤 불이익을 가져올 지 도저히 예상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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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것이 있단다. 증거가 명백한 피고인이라고 하더라도 유죄 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고한 사람, 그러니까 무죄로 간주한다는 원칙이란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인권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고 하더구나. 그래서 유죄가 밝혀지기 전까지는 얼굴도 가리고 그러는 것인데,  증거가 명명백백한 흉악범의 얼굴을 가리는 것을 두고, 그런 사람이 무슨 인권이 있냐고 비판하는 이들이 많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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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도대체 왜 무죄추정의 원칙을 지켜야만 하는 걸까? 바로 인권 때문이다. 형사재판이라는 게 국가 대 개인의 싸움이라 체급 차이가 어마어마하다. 이 과정에서 사수하려 애를 써도 보장하기 힘든 것이 개인의 인권이다. 하지만 요즘 인권을 얘기하는 것만큼 허무한 일은 없는 듯하다. ‘흉악범은 인간이기를 포기했는데 무슨 놈의 인권이냐. 도리어 피해자의 인권을 지켜야 한다반론이 대번에 돌아온다. 사실 그 간의 형법이 피해자에게 소홀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피고인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면 반대급부로 피해자의 인권이 지켜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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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 책에 실린 재판들 중에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각색된 사건들은 4편이 있었단다. 먼저 이 책에 실린 치매 남편을 폭행한 아내에 관한 이야기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1화에서 그려졌단다. 드라마 대사 중에도 나왔던 사람의 마음에 따라 죄명이 바뀐다는 내용도 책에 실려 있었단다. 드라마를 보면서 법이 마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구나, 이러면서 봤는데 이 책을 참고했던 것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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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살인미수 혐의를 받는 사람들 대부분이 이 같은 주장을 하곤 한다. A라는 사람 때문에 B가 죽었다 치자. 이때 A에게 적용되는 죄명은 살인죄만 있는 게 아니다. A가 무슨 마음을 먹고 행위를 했느냐에 따라 죄명은 네 가지로 갈린다. 죽일 마음이었다면 살인죄, 다치게 할 마음이었다면 상해치사죄, 그냥 좀 때려줄 마음이었다면 폭행치사죄,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실수로 죽게 했다면 과실치사죄. 똑같이 피해자가 사망했더라도 가해자의 마음속에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에 따라 죄명을 갈린다. 이러다 보니 살인(미수)혐의를 받는 피고인들 십중팔구는 형을 줄여보려 죽일 의도는 없었고 그냥 좀 혼내주려고만 했다고 주장들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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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10화에 보면 자폐 장애인과 성관계를 한 남자가 피고인으로 나오는데, 그는 사랑이라고 주장하지만 자폐 장애인의 부모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 자신의 딸을 꼬셔서 겁탈한 것이라고 주장했지. 이 에피소드를 보면서 판결하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피고인, 심지어 상대방인 자폐 장애인도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말이야. 이 사건도 실제 있었던 사건을 각색한 것이라고 하는데, 지적 장애인의 권리를 부모님의 의지에 의해서 보장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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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사실상 주변 정황으로 성범죄 여부를 판단하는 지금의 방식은 무죄추정의 원칙 관점에서 문제가 있다. 하지만 이 방식이 과연 피고인만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 걸까? 지적장애인 역시 상대를 선택하고 성관계를 즐길 권리가 있다. 그 관계에 대해 국가가 광범위하게 개입한다면 결국 사람들은 지적장애인과의 성적 접촉을 기피하게 될 것이다. 같은 장애인이라고 해서 처벌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니니 이는 비장애인이나 장애인이나 매한가지다. 눈앞의 불행을 막기 위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장애인과 그 가족들 앞에서, 멀리 있어 잘 보이지도 않는 행복을 얘기하는 건 무책임한 태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항상 궁금한 건 지적장애인 본인들의 얘기다. 어느날 갑자기 내가 그동안 만났던 연인들이 모두 수사를 받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여전히 심연을 바라보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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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에피소드는 지적 장애인이 형의 자살을 막으려다가 피고인이 된 3화로, 지적 장애인이 아버지의 자살을 막으려다 살인자로 재판을 받은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는구나. 마지막 에피소드는 놀랍게도 6화란다. 많은 시청자들의 눈물을 쏟게 한 탈북민이 아이 때문에 5년간 도망 다니다가 뒤늦게 자수를 한 사건.. 실제 사건도 드라마에서처럼 변호사가 캐치하지 못한 피고인의 자수로 집행유예를 받았단다. 이 에피소드가 실제 있었던 일이다니

….

이번에 읽은 책 말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참고한 책이 또 있다고 하더구나. 그 책도 기회 되면 함 읽어봐야겠구나. 그나저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시즌 2를 하려나.


PS:

책의 첫 문장: 대검찰청은 종종 영화나 드라마 작가들을 초청해 간담회를 개최한다.

책의 끝 문장: 하늘로 돌아가신 나의 어머니 안효숙 님께 이 책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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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야겠다
김탁환 지음 / 북스피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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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코로나 바이러스라 퉁쳐서 부르는 코비드-19가 어느덧 3년을 꽉 채워가는구나. 요즘에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규제도 많이 풀려서, 어느 정도 일상을 회복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다니고 있단다. 아빠는 그 마스크라는 것이 그렇게 오래 써도 적응이 안되어 여전히 답답하기 그지 없구나. 전세계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의 열풍에 휘청거리는 동안, 우리나라는 방역을 잘 한 나라로 손꼽혀 세계 여러 나라의 귀감이 되곤 했단다.

그런데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전염병에 대해 방역을 제대로 못해서 국가 망신을 당하곤 했단다.

그보다 더 오래 전에 완벽한 방역으로 SAS라는 전염병 환자가 국내에 한 명도 발발하지 않게 해서 세계에서 극찬을 받았던 나라에서, 방역 때문에 망신을 당하게 되었으니 다른 나라에서 보면 참 이상하다고 하겠구나.

어떤 이들이 정권을 잡고 있느냐에 따라 방역 우수 국가가 될 수도 있고, 방역 망신 국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아빠는 이해가 가지 않았단다. 국가 시스템이라는 것이 한번 만들어지면 집권 정당에 관계 없이 잘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했었거든. 그런데 그게 아니더구나. 무능한 정권이 들어서면 국민들이 고생하고 희생할 수 있다는 것을 절감했단다. 최근 들어 또 그런 일이 일어나서 가슴 아프구나.

아빠가 서두가 길었구나. 이번에 아빠가 읽은 김탁환 님의 <살아야겠다>라는 소설은 몇 년 전 방역 망신 국가를 만든 메르스 사태에 관한 소설이라서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것이란다. 메르스가 처음 발발한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였단다. 창피한 일이지사우디아라비아와 한참 떨어져 있는 나라에서 희생자가 가장 많이 나왔다니. 당시 대통령이 방문한 병원의 벽에 A4지에 적혀있던 살려야한다라는 문구가 아직도 생각나는구나. 그런 설정샷을 누가 생각했는지, 코미디가 따로 없었단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메르스 사태와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했던 메르스 마지막 환자에 관한 이야기가 소설로 다시 태어났단다.

소설이라는 형식을 띠었지만, 소설 속의 이야기가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했단다. 그래서 더욱 가슴이 먹먹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질 않길 바라고, 제발 국민들이 제발 선거를 잘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미 우리 국민들은 당시 그렇게 국가 시스템을 엉망으로 만들었던 이들에게 다시 정권을 넘겨주었단다.


1.

이 소설은 2015년 메르스 사태를 소설로 한 것으로 제목 살아야겠다는 앞서 이야기했던 병원의 벽에 A4지에 적어 두었던 살려야 한다를 풍자해서 지은 것이 아닌가 싶구나. 메르스 병원의 첫 번째 확진자가 다녀갔던 서울 삼성 병원을 소설 속에서는 F병원이라고 했단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메르스 첫 확진자가 발생했던 F병원과 정부는 왜 모든 것을 숨기려고만 했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구나. 전염병이 처음 생긴 것도 아닐 텐데 말이야. 이로 인해 초기 진압을 실패하고, F 병원 응급실을 찾았던 사람들이 연이어 메르스에 확진되면서 메르스는 일파만파 퍼지게 되었단다.

이 소설은 2015 5 27일에서 29 F병원 응급실에 방문했던 세 사람의 중심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단다.

김석주. 다니던 회사도 그만 두고 치과 의사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림프종이라는 암을 받아 한동안 항암 치료를 받고 일 년 전 완치 판정을 받음. 그리고 치과 의사로 첫 출근을 했는데, 한 달도 안되어 림프종 재발 증세로 F병원 응급실에 왔다가 그만 메르스에 확진 됨. 식구는 아내 남영아와 네 살 짜리 아들 우람이 있음.

이첫꽃송이. 직업 수습 기자. 아버지의 병환으로 F병원 응급실에 왔다가 결국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F병원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름. 그 이후 메르스 증상이 발현되고 확진 판정 받음. 이첫꽃송이뿐만 아니라 친척분들도 줄줄이 메르스 확진됨. 퇴원 후에 막내이모부가 메르스로 돌아가신 것을 알게 됨.

길동화. 출판물 물류회사 베테랑 회사원. 막냇동생이 아파서 F병원 응급실에 같이 왔다가 메르스 확진됨. 아들 예석은 제주도에 왔다가 그곳에서 격리됨. 15일간 혼수 상태에 빠져 죽을 위기도 여러 번 겪음.

이첫꽃송이는 나이도 젊고 기저 질환도 없어서 그런지 그나마 건강한 몸으로 퇴원을 했지만, 길동화와 김석주는 그렇지 못했단다. 길동화는 음압 병동까지 이동했다가 퇴원을 하긴 했는데, 후유증이 심했단다. 숨쉬기가 예전처럼 쉽지 않았어. 그리고 다니던 회사에서 잘렸는데, 그 이유는 메르스 환자라는 것이 소문나면서, 거래처에서 거부 반응을 보인다는 거야. 억울했지만, 어쩔 수 없었어. 다른 직장으로 알아보려고 했지만, 메르스 환자였다고 하자 받아주지 않았어. 어렵게 얻은 일자리도 거래처에서 알게 되어 다시 해고되고 말았단다. 이 억울함을 어디에 하소연을 해야 하나? 그가 메르스에 걸리고 싶어서 걸린 것도 아니고 말이야. 이런 일을 겪게 되자, 자살 결심까지 하게 되었단다. 두 번이나 자살 기도를 하다가 아들 예석에 의해 성공하지 못했단다.

예석은 예전에 F병원에서 만난 윤해선 변호사에게 전화를 해서 도움을 요청했단다. 윤해선 변호사는 소송을 해보자고 했단다. 윤해선 변호사는 인권 변호사로 세월호 변호도 맡고 있었는데, 이첫꽃송이의 돌아가신 엄마의 옛 제자였단다. 이첫꽃송이와도 오래 전부터 친분이 있었고, 이첫꽃송이의 부모님이 안 계시고, 친척분들도 메르스에 걸려서 보호자 역할을 할 사람이 마땅치 않아서 윤해선 변호사가 이첫꽃송이의 보호자로 병원에 왔었단다. 그때 같이 입원했던 김석주, 길동화, 그리고 가족들도 알게 된 거야.

이첫꽃송이는 메르스 완치 후 다행히 기자로 복귀했단다. 문화부 기자 소속이었지만, 메르스 경험을 바탕으로 환자들 인터뷰를 하기도 했단다.


2.

그리고 또 한 사람 김석주. 그는 림프종이 재발하긴 했지만, 메르스 증세는 다른 사람들보다 좋았단다. 아직 젊어서 그랬던 것 같아. 그래서 림프종 담당 의사도 메르스를 먼저 완치시키고 림프종을 치료하자고 했어. 메르스 증세는 많이 좋아졌으나 PCR 검사를 받으면 아직 양성이었어. 그래서 림프종 치료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었어. 그런 와중에 국가방침이 바뀌면서 갑자기 국가지정병원으로 이동하라고 했어. 김석주의 림프종 담당 의사는 F병원에 있어서 병원을 옮기면 안 좋을 것이 눈에 뻔했거든. 김석주의 아내 남영아도 병원 옮기지 말아달라고 항의했지만 그 항의는 묵살되었고, 김석주는 국가지정병원으로 옮겨졌고, 문을 몇 개나 지나고, 방호복을 입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격리 병동에 입원했단다.

김석주의 메르스 양성 반응은 50일이 넘어도 계속되었고, 이제 국내 메르스 마지막 환자로 남게 되었단다. 림프종도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항암치료를 병행하기로 했는데, 격리 시설에서 받을 수 있는 치료는 극히 제한적이었단다. 의료진들이 방호복을 입고 오는 것뿐만 아니라 림프종 치료에 필요한 장비들도 들고 오지 못하니까 말이야. 격리병동에 있으면서 가족들도 제대로 만나지 못했어. 이것은 입원이 아니라 감금 수준이었단다. PCR 검사를 하면 계속 음성과 양성이 반복해서 나왔어. 그래서 격리병동에서 퇴원도 못하고, 림프종 치료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상태는 악화되어 갔단다.

2015 10월 초 드디어 최종 음성 판정을 받고 퇴원을 하게 되었단다. 담당 의료진은 김석주가 특이한 케이스라고 하면서, PCR 검사에서도 다시 양성이 나올 수 있고, 그렇게 양성이 나와도 전염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격리병동에는 가지 않아도 된다고 했어. 4개월만에 집에 온 김석주는 림프종 항암 치료 전에 일주일 간 집에 머물렀단다. 그 동안 보지 못했던 식구들 친구들과 함께 퇴원파티도 했어.

그런데 며칠 뒤 기침 증상이 있어서 병원에 들렀는데 다시 메르스 양성 반응이 나왔단다. 일전에 이야기와 달리 병원에서는 김석주를 다시 격리 병동에 감금시켰어. 남영아는 병원에 항의를 했어. 격리 기준도 없이 무조건 격리를 한다고병원에서는 질병관리본부의 방침을 따를 수밖에 없다고 했어. 격리를 하고 나서 메르스 치료를 하는 것도 아니고, 림프종 치료는 다시 미뤄지게 되었어. 메르스 치료도 안해, 림프종 치료도 안해, 격리 해제도 안해...

남영아의 항의가 묵살되자, 윤해선 변호사는 이 일을 세상에 알리자고 해서 남영아는 언론과 인터뷰를 하게 되었단다. 그래서 김석주의 사연이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그제서야 병원에서도 뭔가 하려고 했어. 그 뭔가라는 것은 격리병동에서 림프종 치료를 하는 것인데,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격리 병동에서 림프종 치료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단다. 결국 김석주의 병세는 점점 악화되어 11 25일 세상을 등지고 말았단다. 그리고 국가는 메르스 종식 선언을 했다고 하는구나.

….

아빠가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이것이 실제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더구나. 그래도 마지막 확진자가 잘 치유가 되길 바라면서 읽었는데, 결국 절망으로 끝이 났구나. 이 소설을 읽는 아빠도 이렇게 억울한데, 마지막 순간까지 희망을 잃지 않았던 김석주와 그의 가족들의 억울함은 얼마나 컸을까. 어떤 보상이라도 죽음 목숨을 되돌릴 수 없는 법. 아빠는 사실 메르스 마지막 확진자에 대한 이야기를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단다. 이 책을 읽고,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단다. 당시 메르스 마지막 확진자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있어서 봤더니 이 소설 속 이야기가 이름만 달랐지 완전히 실화더구나.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전염병뿐만 아니라 말도 안 되는 국가시스템에 의해 국민들이 희생되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질 않길이렇게 쓰려고 했는데, 얼마 전에 또 엄청난 비극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말았단다. 오래 전에 떠돌던 말들이 다시 나오기 시작했단다. “이게 나라냐?”


PS:

책의 첫 문장: 5 20일 오전 11, 역학 조사관 세 명이 경기도 W병원 8층 준비실을 나섰다.

책의 끝 문장: 할 수 있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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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서 자연으로, 마음에서 우주로 - with 동의보감 & 숫타니파타
고미숙 지음 / 북튜브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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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좋아하는 작가님 중에 고미숙이란 분이 계시단다. 다양한 고전들을 쉬우면서도 색다른 시각으로 이야기해주셔서 아빠도 고미숙 님의 책들을 여럿 읽었단다. 우연히 고미숙 님의 <몸에서 자연으로, 마음에서 우주로>라는 책을 알게 되었는데, 부제가 눈에 더 띄었단다. “with 동의보감 & 숫타니파타” <동의보감>은 고미숙 님께서 여러 번 책으로 다룬 고전이었고, <숫타니파타>는 아빠가 좋아하는 불교 경전이란다. 예전에 법정스님이 번역하신 <숫타니파타>를 너무 감명 깊게 읽어서 여러 사람들에게 추천하기도 했었거든. <숫타니파타>를 고미숙 님께서 이야기를 해주신다고 하니 궁금했단다. 그리고 <숫타니파타>와 동의보감을 함께 어떤 식으로 풀어나가실지 궁금했어. 그리고 고미숙 님의 책을 한 동안 안 읽어서 얼른 책을 보고 싶었단다.

….

이 책은 코로나 초기 시대 고미숙 님이 진행하신 강연을 바탕으로 책으로 엮은 것이란다. 읽다 보면 고미숙 님의 목소리가 귀에서 들리는 것 같았단다. 그렇게 대화체로 이루어져 있다 보니 읽기도 편했단다. 전대미문의 전염병이 우리의 일상생활을 모두 바꾸어 놓고, 코로나 이후의 삶은 바뀔 것이라고 많은 사람이 말하던 그 시절, 고미숙 님은 <동의보감> <숫타니파타>에서 그 답을 찾아보려고 하셨단다. 검색을 해보니 유튜브에도 이 책의 원본이라고 할 수도 있는 강의도 올라와 있어서 아빠도 몇 편 보았단다.

, 그럼 이 책에 대한 내용을 간단히 소개해 볼게.


1.

불교라는 것의 이미지를 생각해보면, 나이 드신 분들이 주로 믿는 종교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어. 하지만 석가모니가 큰 깨달음을 얻고 불교 사상을 전파한 나이가 35, 한창 젊은 시절이었단다. 그러니까 불교라는 것이 젊은 사상이라는 거지. 그래서 고미숙 님은 불교를 청년의 파토스라고 이야기했단다. 파토스라는 것은 청중의 가슴을 파고드는 호소와 공감력이라고 이해하면 되고, 로고스라는 것은 논리적 근거로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단다. 파토스와 로고스는 반대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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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일단 불교는 이전의 모든 사상을 전복하면서 등장했고, 이후에도 기존의 지배적인 사유구조를 해체하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이 점만 보더라도 그야말로 청년의 사상이죠. 그에 비하면, 중화 문명의 도교나 유교, 즉 공자나 노자의 사상은 노년의 사상이에요. 청년의 역동성이나 이미지를 떠올리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점에서 중화사상이 노년의 로고소라면, 불교는 청년의 파토스라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불교는 마음을 탐구하는데, 그 마음의 격정이 가장 심한 때도 청년기잖아요. ‘질풍노도의 시절이라고 하죠. 불교는 바로 그 역동성이 산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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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불교의 초기 경전 <숫타니파타>는 마음의 심연을 탐사하는데 도움을 주는 책이고, <동의보감>은 우리 몸과 소통을 잘 하기 위한 책이란다. 그러니까 <동의보감>을 통해서 몸을 건강하게 하고, <숫타니파타>를 통해서 마음을 건강하게 하고

<동의보감>에 보면 몸 안에 중요한 세 가지 요소로 정기신(精氣神)’이 있다고 한단다. 먼저 정()은 신장이 주관하여 정액, 생리혈을 만드는 등 생식 작용과 관련이 있으며 에로스의 원천이 된다고 하는데, 이 욕망을 다스리고 정()을 보존해야 건강할 수 있다고 했어. ()는 폐가 주관하고 에너지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그 에너지를 온 몸 곳곳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고 했어. 우리가 숨을 쉬어 산소를 온 몸으로 전달하는 것이 바로 에너지를 온 몸으로 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마지막 신()은 심장이 주관하는 것으로 정신활동을 이야기하는 것이란다. 긴장하거나 마음이 안정치 못하면 심박수가 변하는 것을 보면 심장과 마음은 이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겠구나.

<숫타니파타>를 통해서 마음을 건강하게 한다고 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탐진치(貪瞋癡)를 없애야 한다고 한단다. 탐진치가 괴로움의 원천이기 때문이야. ()은 탐욕, 소유욕, 성취욕을 이야기하고, ()은 분노를 이야기하고, ()는 어리석음을 이야기한단다. 이 탐진치를 없애기 위해서는 치닫지도 않고 뒤처지지도 않아야 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동의보감>의 태과불급, 즉 지나쳐도 안 되고, 모자라도 안 된다는 말과 일맥상통하게 된다고 설명해주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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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은 것 중 하나가 존재는 삼독, 즉 세 가지 독에 물들어 있다는 거였습니다. 앞에 말씀드렸던 탐진치,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이 삼독이고요. 그래서 삼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설법을 많이 하십니다. 계속해서 <숫타니파타>의 구절들을 보죠. “치닫지도 뒤처지도 않아, 모든 것이 허망한 것임을 알고 어리석음을 버린 수행자는, 마치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 버리는 것처럼,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뱀의 경> 여기서 치닫지도 않고 뒤처지지도 않는다라는 말은 <동의보감>에서 말하는 태과불급을 넘어선다는 것과 상통하는 말이에요. 정기신을 바탕으로 오장육부가 구성되지만 그 기운 역시 항상 넘치거나 모자라게 됩니다. 목기가 넘치면 간 기운이 넘쳐서 술에 빠지게 되고, 토기가 넘치면 비위 기능이 너무 활발해서 식탐을 주체하지 못하고, 수 기운이 범람하면 성욕이 함부로 날뛰게 되고이렇게 넘치는 것이 있으면 모자라는 것도 있겠죠. 그것을 불급이라고 합니다. 그건 또 그것대로 온갖 병증들이 만들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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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 책에는 총 열 개의 강의가 있는데 모든 강의가 좋았지만, 그 중에 두어 가지만 더 이야기해 볼게. 먼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동서양 고금을 막론하고 많이들 한단다. 정말 궁금하구나, 내가 누구인지몸 뿐만 아니라 아빠가 머릿속 가득 채운 의식의 정체는 무엇인지 말이야. <동의보감>내경편에 보면 라는 것은 하나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여러 타자들로 이루어진 공동체라고 이야기하고 있단다. 그리고 그 타자들을 통해서 몸의 건강 상태를 알 수 있다고 했어.

먼저 꿈이 있는데 꿈도 우리 몸의 상태를 알려준다고 하는구나. 꿈에 따라 현재 나의 몸의 건강을 알 수 있다는 거지. 가장 좋은 꿈은 꿈을 꾸지는 않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최고의 상태, 도의 경지라고 하는구나. 프로이트는 꿈을 성()과 관련 지어서만 이야기하는데, 그보다 <동의보감>에서의 해석이 더 공감이 가는구나. 실제로 아빠의 건강, 특히 정신 건강이 좋지 않을 때 온갖 잡다한 꿈을 꾸는 것을 보면 <동의보감>의 이야기가 맞는 것 같구나.

..

나를 이루는 것 중에 목소리가 있단다. 목소리에도 자신의 건강이 새겨져 있다는 것은 너무 쉽게 이해가 가는구나. 건강을 잃으면 목소리도 확 변하니까 말이야. 목소리에 관여하는 내장기관으로는 신장, 심장, , 폐 등이 있다니 모든 중요한 요소는 다 관여를 하고 있구나. , 그럼 목소리뿐만 아니라 목소리는 내는 말들은 어떨까? 상스러운 말이나 비속어만 하는 목소리와 곱고 좋은 말을 하는 목소리... 그리고 인문학적 지식이 담긴 목소리는? 목소리뿐만 아니라 목소리에서 나오는 언어들도 건강에 중요하다고 하면서 고전을 많이 읽으라고 하는구나. ㅎㅎ 돌고 돌아 건강을 위해서는 많이 읽으라고 하는구나. 그것도 고전을

내 몸을 이루는 또 하나, 벌레가 있단다. 이것은 내 몸 속에 있는 세균, 박테리아, 바이러스 등을 이야기한단다. 이런 것들을 떨쳐버려야 하는 것이 아니고, 공생해야 한다고 하는구나. 삼시충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 벌레가 뇌에 들어가게 되면 공부를 하기 싫게 만들고 색을 밝히게 하는 벌레라고 하는구나. , 이런 무서운 벌레가 있냐.^^ 내 몸을 이루는 것 중에 또 하나 똥과 오줌이 있는데, 이 또한 몸의 상태를 진단하는 요소가 된단다. 건강검진을 할 때 대변 검사와 소변 검사하는 이유가 다 있지.

…..

<동의보감>에서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는 것 중에 음양오행설이 있단다. 음양오행설은 그냥 책으로만 읽어서는 기억에 잘 안 남는구나. 예전에 여러 책에서 이 음양오행설을 접했는데, 책을 읽을 때는 재미있게 읽었지만, 책을 덮고 나면 모두 증발해 버리는구나. 이 책에도 음양오행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는데, 또 잊어지겠지만 다시 집중해서 읽어보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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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270)

그다음 여름의 기운인 화는, 우리 몸에서는 심장과 소장입니다. 간과 담을 가까이 있으니까 금방 이해되는데, , 소장은 좀 생소할 수도 있어요. 현대의학에서 보자면, 심장은 순환계고, 소장은 소화계에 속하는 장기니까요. 하지만 한의학적으로는 분류의 기분이 오행의 기능이기 때문에 심장과 소장을 화기에 배속시킵니다. 그다음 토는 비위를 말합니다. 비위, 즉 비장과 위장은 몸의 가운데에 위치하여 모든 걸 조정해 주는 거죠. 음식물을 완전히 분해한 다음 영양분을 몸 전체로 공급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조정과 배분, 이런 활동은 토의 기운이라고 보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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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행에는 상생과 상극이 다같이 존재한다고 했고, 이런 것이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정신활동을 많이 해야 한다고 했단다. 즉 뇌활동을 활발하게 해야 하는데, 뇌활동이 둔해지면 성격도 한쪽으로 치우치게 된다고 했단다. 그렇지, 공감하는 내용이란다. 나이를 먹어서 뇌활동을 하지 않은 꼰대가 되는 거고, 뇌활동을 많이 하게 되면 슬기로운 노인이 되는 거지그런데 뇌활동을 한다고 책도 보고 그러는데, 예전보다 생각도 잘 떠오르고, 기억력도 안 좋아지는 것을 보면, 또 우울해지는구나. 이런 우울함 또한 괴로움의 일종인데, 이것 또한 집착 때문에 생겨나는 것을이 탐욕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해결책이니라. 그러나 이 집착을 버리는 것은 정말 쉽지 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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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401)

그래서 모든 괴로움은 다 자아에 대한 집착 때문이에요. 나를 확장하고 계속 증폭시키려다 보니 괴로움을 겪는 거예요. 게다가 자본주의는 소유밖에 없는 거죠. 이렇게 와 소유, 이런 자아에 대한 집착이 허망하다는 걸 불교는 계속 강조하는 겁니다. “열반은 허망한 것이 아니다. 고귀한 님들은 이것을 진리로 아는 님들이다. 그들은 진리를 이해하기 때문에 탐욕 없이 완전한 열반에 든다.”<두 가지 관찰의 경> 내가 아닌 것을 나라고 우기지 않는 것이야말로 고귀한 것이고, 그러면 탐욕에서 벗어나 지극한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겁니다. 쉽게 말하면 자아로부터 해방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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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강의 중에 몇몇을 소개해 주었는데, 아빠가 쓴 편지를 다시 읽어보니 책의 진면목을 제대로 소개해주지 못한 것 같구나. 아빠의 한계이니 이해해 주고나이를 먹으면서 몸에서 이상 신호를 주는 경우가 있단다. 그러다 보니 점점 건강에 신경 쓰일 수밖에 없구나. 그래서 동의보감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은데, 또 시간을 핑계되는구나. 얼마 전부터 듣기 시작한 도올 선생의 <주역> 강의도 자꾸 늦어지고 있는데 말이야. 완벽한 멀티캐스팅이 되어 왼쪽 뇌는 왼쪽 눈을 통해서 책을 읽고, 오른쪽 뇌는 오른쪽 눈을 통해서 강의를 보고 그러면 얼마나 좋으려만. , 또 탐욕을 부리는구나. 탐욕과 집착을 버리라는 책을 읽자마자 말이야.  

오늘은 이만 마치련다. 나중에 너희도 <동의보감> <숫타니파타>를 좋아하게 되었으면 좋겠구나.


PS:

책의 첫 문장: 반갑습니다.

책의 끝 문장: 감사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자기의 몸을 탐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 몸의 토대인 생명과 자연에 대한 앎의 비전을 가져야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내 안의 자연성이 회복되면서 타인의 인정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삶이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거죠. 그러면 예기치 않은 재난이나 고난에 처하더라도 그다지 스트레스를 받지 않습니다. - P29

하루의 리듬, 일상의 흐름을 잘 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이 항목은 쏙 빠져 있어요. 밤에 잠을 못 자는데 로열젤리나 홍삼을 아무리 많이 먹으면 뭐합니까. 또 하나, 물질이 아닌 정신의 면역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이 없어요. 마음이 ‘불안지옥’인데, 각종 비타민을 먹는다고 그게 재대로 효능을 발휘할까요? 약간만 스트레스 받아도 소화가 안 되는 게 우리의 몸인데, 감정, 정신, 마음, 이런 영역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소홀한 거죠. 달라이라마께서 유튜브로 하는 설법에서 누누이 강조하듯이 이제 생리적 위생뿐 아니라 정신적 위생에 대해서도 깊이 탐구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 P36

사후의 지복을 원한다면, 누구든 애착을 갖지 않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열정과 집착을 부추기는 분위기 속에서 살고 있으니까 살아서도 늘 무겁고, 사후에도 혼이 탁해서 구천을 맴돌지 않을까 싶네요. 그런 점에서 <동의보감>의 비전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요절에서 장수로, 장수에서 신선으로 가는 이 경로의 핵심은 장수나 신선 자체가 아니라 존재가 점점 더 자유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데 방점이 있는 겁니다. - P112

그리고 이건 제 소견인데, ‘우리는 동등해’라는 견해를 고집하다 보면 그 또한 폭력적인 동일성에 빠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회주의가 주장한 과격한 평등주의가 실패한 것도 이런 맥락이 아닐까 싶기도 하구요. 물론 이건 앞으로 더 깊이 탐구해 볼만한 과제입니다. 아무튼 비교라는 척도가 작동하는 한 모든 견해는 다 망상이라고 보는 겁니다. 우월하다, 열등하다, 동등하다, 이 셋은 다 같은 범주의 산물이니까요. 가장 중요한 건 이런 식의 척도에서 벗어나는 거겠죠. 각자의 차이를 존중하되 어떤 방식으로든 비교하지 않는 것. 그것이 붓다의 평등안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 P175

내가 지금 보고 경험하는 세계는 어떤 종류의 마주침 속에서 잠시 구성된 것일 뿐입니다. 연기조건이 만들어 낸 환영이라는 겁니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들어도 ‘설마’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내 눈앞에 리얼한 세계가 있는데 왜 없다고 하지?’ ‘이게 가짜라고? 미친 거 아냐?’ 등등. 서양철학사, 과학사가 그렇게 세상을 파악해 왔고 우리도 20세기 내내 ‘주객 이원론’, ‘물질의 합법칙성’, ‘변증법적 발전’ 등을 수도 없이 들어 왔기 때문에 그런 식의 사유를 받아들일 수가 없는 거죠. - P238

불교는 참 특이한 게 무신론이잖아요. 앞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신들의 세계에 가거나 신이 되어 태어나는 것조차 윤회의 한 코스라고 여기거든요. 인간, 아수라, 신, 축생, 아귀, 지옥, 이렇게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는 거예요. 대부분의 종교는 죽은 다음에 신들에 세계에 태어나는 걸 목표로 하죠. 그래서 많은 제물을 바치고 날마다 예배를 드려서 그 신에게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신들의 세계에 갈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불교는 그것을 목표를 하지 않습니다. 내세에 대한 표상을 강하게 갖고 있으면 거기에 다시 끄달리게 됩니다. ‘과연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아닐까", 이런 걸 의식하면서 자기검열에 빠지게 되겠죠. 그럼 일단 마음이 늘 초조합니다. 생리적 균형도 깨지게 됩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음허화동이나 상화망동의 상태에 빠지기 십상이에요. - P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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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우 2022-11-06 08: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고미숙님 좋아합니다. 숫타니파타도 좋아해요. 이 책은 숫타니파타를 잘 해설해주는 책이군요. 읽어보고 싶네요.

bookholic 2022-11-06 19:05   좋아요 1 | URL
숫타니파타 참 좋죠?^^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이 저희 좌우명입니다.
늘 놀라지만요... ㅎ
즐거운 저녁 시간되세요~~
 
불편한 편의점 2 (단풍 에디션) 불편한 편의점 2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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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이번에 읽은 김호연 님의 <불편한 편의점 2>는 우리 jiny 가 기다린 책이잖아. 그래서 아빠도 jiny가 읽고 나서 빌려 읽었단다. 지난 봄에 <불편한 편의점>을 뒤늦게 재미있게 읽었는데, 올 여름에 <불편한 편의점> 두 번째 이야기가 출간된다는 소식을 듣고, Jiny 가 예약 구매를 해달라고 한 책. <불편한 편의점> 첫 번째 이야기에서 따뜻한 사람 이야기를 전해주었던 지은이 김호연 님은 두 번째 이야기에서도 마찬가지로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그것이 비록 의도적으로 감성팔이를 한 이야기라고 해도 책도 술술 잘 읽히고, 가슴 찡한 이야기를 들려주면 됐지, 이렇게 생각한단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염영숙 사장님과 독고 씨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졌잖니, 두 번째 이야기는 또 다른 사람들이 등장한단다. 1권에서 나왔던 염영숙 사장님은 Always 편의점을 아들 강민식에게 넘겼단다. 강민식은 1권에서도 나왔지만 말썽쟁이 아들이었단다. 크게 바뀌지 않아서,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않았어. 편의점을 직접 관리하지 않고, 편의점에서 일하시던 오선숙에게 점장직을 주고 전담하게 했단다. 그리고 돈에 우선된 것들만 간섭을 했어. 오선숙 점장은 1권에서도 나왔던 인물로, 염영숙 사장과는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단다. 2권의 시작은 야간 타임 아르바이트를 하던 곽씨가 그만 두는 것에서 시작했단다.


1.

야간 타임 아르바이트는 구하기 어려웠는데, 불리한 모든 근무 조건을 감수하고도 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단다. 40대의 황근배라는 사람인데,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그의 이력서에는 온갖 아르바이트가 다 적혀 있었단다. 덩치가 크고 둥글둥글한 모습이 오래 전 홍콩 영화에 자주 등장했던 홍금보를 닮았다고 해서 별명도 홍금보라고 했어. 그래서 명찰도 본명이 아닌 별명 홍금보로 달았단다. 이 황근배 씨가 바로 <불편한 편의점> 두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이란다. 그를 중심으로 편의점에 들리는 손님과 여러 사람들의 사연들이 소개가 된단다.

숙명여대 출신의 3년차 취업준비생 소진은 힘든 생활에 자신을 위로해 주는 것은 자갈치 한 봉지에 소주 한 잔이었단다. 자갈치는 자신의 아버지와 추억이 깃들어 있는 그의 소울 스낵이었어. 소울 스낵이라는 말을 보니, 아빠에게 소울 스낵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단다. 아빠도 너희들처럼 과자를 좋아하긴 하는데, 최근에 좋아하게 된 과자 말고 오래 전 어린 시절부터 쭉 좋아했던 과자나 추억에 깃든 과자를 생각해보려니 잘 떠오르지 않는구나. 소설 속 소진처럼 소울 스낵을 하나 정하면 좋을 것 같기도 한데너희들과 함께 소울 스낵을 하나 정해봐야겠구나. 소진은 지방 출신으로 서울에서 살기 위한 생활비를 벌기 위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어 황근배 씨와도 알게 되었어. 우연히 나눈 황근배 씨와 대화에서 도움을 얻어 취업 면접에서 합격을 하게 되었단다.

소고기 집 최 사장은 코로나로 가게 운영에 직격탄을 맞았단다. 코로나로 시장 환경은 바뀌어서 아내와 아들이 배달도 하는 등 가게 운영 방식을 바꾸자고 조언을 했지만, 자신만의 방식이 옳고 생각하는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어. 그런데 자존감이 강한 것이 아니라 고집이 센 것이었지. 최 사장은 가끔 편의점을 들르는 손님이기도 했는데, 황근배 씨는 최 사장과 어느 정도 친분이 생기고 나서 최 사장에게 현실을 직시하라고 직설적으로 이야기해주었단다. 최 사장이 옛방식만 고집하는 것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꼰대 중에서 상꼰대라고 이야기했어. 최 사장은 그런 이야기를 듣고 아내와 아들과 진솔하게 이야기를 해봤어. 변화를 해보겠다는 마음과 함께 말이야.

고등학교 1학년을 다니는 민규는 저녁마다 편의점에서 1+1 행사 상품을 사고 그것을 먹으면서 편의점에서 죽치곤 했단다. 민규가 그러는 이유는 집에서는 부모님이 부부싸움을 해서 그랬던 거야. 민규가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황근배 씨는 민규에게 편의점과 가까운 남산 도서관을 추천해 주었단다. 편의점보다는 그곳에 낫지 않냐고, 민규는 근처에 도서관이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는데, 황근배 씨의 추천으로 남산 도서관에 가보니, 완전 자신의 취향이었어. 그래서 이젠 편의점이 아닌 남산 도서관에서 죽치는 학생이 되었단다.

….


2.

이런 에피소들 이외에도 황근배 씨는 까칠하고 싸가지 없는 편의점 사장인 강민식과도 친해지고 되었어. 알고 보니 황근배 씨도 강민식이 나온 대학교를 나왔던 거야. 대학교 앞의 식당들도 모두 알고 있는 등 옛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어. 그 이후 강민식은 자주 황근배 씨와 대화도 하고 밥도 먹고 그랬단다. 그러면서 강민식도 변하게 되는데, 결정타는 황근배 씨가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기로 하면서 강민식을 설득해서 황근배 씨 후임으로 야간 타임 아르바이트를 하게 한 거야.

강민식은 자신이 사장을 하고 있지만 편의점 보다는 좀더 큰 사업, 사실은 허황된 사업만 구상하고 있었거든. 하지만 황근배 씨가 그를 잘 설득해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편의점 사장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란다. 그렇게 일해봐야 편의점을 잘 아는 사장이 될 수 있다면 서 말이야. 그런데 황근배 씨는 왜 갑자기 편의점을 그만 두냐고?

사실 황근배 씨는 연극 배우였어. 황근배 씨의 지인 중에 연극 시나리오 작가인 인경 씨가 있었어. 혹시 인경 씨 기억나니? 1권에서도 나왔던, 편의점이 맞은 편 빌라에 잠깐 살았던 그 사람그 인경 씨가 편의점에서 일했던 독고 씨를 주인공으로 한 연극 시나리오를 썼고, 그 역을 황근배 씨가 맡기로 했거든그래서 황근배 씨는 그 연극을 위해 직접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해 보고 독고 씨를 알고 지냈던 사람들에게 독고 씨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그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던 것이란다. 이제는 연극 준비를 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그만 둔 것이고 말이야.

….

몇 달 뒤 황근배 씨가 독고 씨 역할을 맡은 연극의 막이 올랐단다. 관객으로는 Always 편의점에 관련된 사람들이 모두 참석을 했단다. 전 사장이었던 염영숙 사장님, 그리고 독고 씨도 연락을 받고 찾아왔단다. 그렇게 훈훈하게 소설은 마무리 되었어.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소설은 읽는 내내 따뜻한 이야기들이 이어져서, 책에서도 실제로 따뜻함이 느껴지는 듯 했단다.


PS:

책의 첫 문장: 출근하던 선숙은 사람들의 시선이 연달아 자신에게 꽂히고 나서야 마스크를 안 쓴 걸 깨달았다.

책의 끝 문장: 옆에서 미소를 나눌 누군가를 소중히 여기며 함께 웃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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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11-02 22: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리뷰만 읽어도 머릿속에서 상황이 막 그려지네요
불편한 편의점 2편도 1편 만큼 재밌을것 같습니다 ^^

bookholic 2022-11-03 23:15   좋아요 1 | URL
네, 잔잔하고 따뜻하고 재미있습니다~~^^

파이버 2022-11-03 00: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날씨가 추워짐에 따라 따뜻한 이야기들이 더 끌리는 시기가 된 것 같습니다. 1권과 2권의 인물들이 연결되는군요~

bookholic 2022-11-03 23:15   좋아요 2 | URL
네.. 따뜻한 날씨와 어울리는 소설 같아요...
기회되시면 함 읽어보세요^^
 
역사저널 그날 조선 편 8 - 순조에서 순종까지 역사저널 그날 조선편 8
역사저널 그날 제작팀 지음, 신병주 감수 / 민음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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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역사저널 그날 조선 편 마지막 8권을 읽었단다. 즉 조선이 망해가는 시절의 이야기를 하고 있단다. 그 즈음 조선이 망하는 것이 마치 운명인 것처럼, 되는 것 하나 없는 시절이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순조, 헌종, 철종, 고종, 순종까지조선 시대의 왕 중에 존경하는 왕을 뽑으라고 할 때, 위 다섯 명 중에 한 명을 뽑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을까 싶구나. 지난번 7권의 마지막 부분에서, 정조의 뒤를 이어 순조가 왕이 되었을 때, 세도 정치가 득세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했는데, 8권의 첫 부분은 그 세도정치부터 이야기를 해야겠구나.

순조가 왕위에 오르고, 장인 어른인 김조순을 비롯하여 안동 김씨의 처가 식구들이 권력을 잡는

세도 정치가 시작되었단다. 순조는 힘 하나 쓰지 못하고 있었지. 그런데 순조에게는 똑똑한 아들이 한 명 있었으니 효명세자였단다. 효명세자가 어느 정도 컸을 때 순조는 효명세자에게 대리청정을 시켰단다. 그렇게 효명세자는 1827년 대리 청정을 시작했단다. 효명세자의 부인은 나중에 조대비라고 부르게 되는 신정왕후였단다. 신정왕후는 풍양 조씨였는데, 효명세자는 풍양 조씨의 도움을 받아 세도 정치의 주축이었던 안동 김씨를 축출해내어 권한을 약화시켰단다. 그리고 군권을 강화하고 백성이 국왕에게 바로 청원하는 상언제도를 만들었어. 그리고 춘앵무라는 궁중 무용도 직접 만들기도 했어. 그렇게 대리청정을 하면서 왕이 될 준비를 하고 있던 효명세자는 그만 갑자기 죽고 말았단다. 마지막 조선이 부활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졌다고나 할까, 순조가 죽고 손자인 헌종이 왕이 되었단다. 그런데 헌종은 아들 없이 어린 나이에 죽고 말았단다.


1.

왕이 죽었는데, 후사가 없다? 그러면 왕실 중에서 그 다음 순위가 왕이 되어야 정상인데, 복잡한 사정이 있었단다. 왕을 허수아비로 세워놓고 권력을 잡고 싶은 이들이 있었던 거야. 당시 왕실의 최고 어른은 순조의 왕비인 순원왕후였단다. 순원왕후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김조순의 딸이었잖니효명세자에 의해 권력에서 잠시 밀려 있던 안동 김씨가 이 기회를 그냥 넘길 사람들이 아니지.. 그들은 왕이 될 자격을 그나마 갖춘 사람 중에서 가장 능력이 없어 보이는 사람을 찾아내게 된단다. 정조의 이복 동생 은언군의 아들 이원범이라는 사람인데 이원범의 집안은 역모의 혐의를 받고 강화도로 유배를 가 있었단다. 왕실에서 이원범을 왕으로 모시려고 강화도로 행차를 하게 되는데, 이원범의 형은 자신들을 잡으러 오는 사람인줄 알고 도망갔다가 다치는 해프닝도 일어났다고 하는구나.

이원범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렇게 왕이 되었단다. 왕실에서 세자로 왕 수업을 받아본 적도 없이 바로 왕이 되었단다. 왕은 되었지만, 권력은 안동 김씨가 다 차지하고 있었지. 안동 김씨의 만행이 점점 심해지자 곳곳에서 민란이 일어나게 되었어. 민란이 많아지자 조정에서는 민란을 잠재우기 위한 민심 정책을 펴려고 했지만, 모두 중단되었단다. 점점 탐관오리가 판을 치고, 농민들을 착취하고 부정부패가 들끓는 사회가 되었단다. 왕노릇 제대로 하지도 못한 철종은 젊은 나이에, 이번에도 후사 없이 죽고 말았단다. 왕이 안 되고, 강화도에서 계속 살았다면 마음 편히 살았을 텐데, 왕이 되어 왕실에 갇혀 지내다가 스트레스로 일찍 죽은 것 같구나.

철종이 후사 없이 죽었으니 또 다시 왕을 골라야 했단다. 이 때의 왕실의 최고 어른은 효명세자의 부인이었던 신정왕후, 조대비였단다. 조대비는 철종이 죽기 전부터 후사를 모색해 왔었단다. 조대비는 흥선대원군과 손을 잡고, 흥선대원군의 아들 고종을 왕위에 세우는데 성공한단다. 고종의 나이 12살에 왕위에 오르고, 어린 왕을 대신해서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이 섭정을 하게 되었단다. 세도 정치를 직접 본 흥선대원군은 세도 정치를 하지 않을 집안에서 왕비를 고르기로 했단다. 그렇게 왕비가 된 사람이 바로 민치록의 딸 명성황후란다. 고종과 명성황후가 결혼할 당시에 민치록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여서, 흥선대원군이 생각하기에 세도정치를 할 수 없는 영향력 없는 집안이라고 생각했단다. 어린 명성황후가 나중에 자신과 대적할 만한 배포를 가지고 있는 줄은 그때는 몰랐을 거야.


2.

고종이 나이를 먹으면서 친정을 하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왕비인 명성황후도 움직임이 빨라졌단다. 왕비의 빽으로 민씨 척족들이 권력을 차지하게 되었고, 명성황후 주도로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는 등 개방 정책을 펼쳤단다. 당시 조선은 명성황후의 세력과 흥선대원군의 세력을 나뉜 것 같았어. 조정으로부터 홀대를 받건 군인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임오군란을 일으켰는데, 명성황후는 이 일로 피신을 하게 되고, 다시 흥선대원군이 권력을 잡게 되었단다.

명성황후는 다시 권력을 잡기 위해 청나라의 지원을 요청하고 러시아와도 손을 잡게 되었단다. 국내 문제는 점점 주변국까지 간섭하게 되는 국제 문제가 되어갔어. 그러다가 일본군의 왕실 침입으로 명성황후는 그만 죽고 말았단다. 그런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러시아의 건축가 사바틴이라는 사람에 의해서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단다.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가 서로 다른 길을 가지 않고, 화합의 길을 갔었다면 어땠을까?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그들이 화합했다면 조선의 운명은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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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주진오) 확실히 흥선대원군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했어요. 흥선대원군이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세도정치의 여러 가지 폐해를 정리하고 왕실 중심의 국가 체제를 수립할 수 있었거든요. 고종 혼자서는 할 수 없었을 거예요.

(신병주) 흥선대원군에게 그런 공은 분명히 있지만, 외교적으로 대응하는 문제라든가 국제 정세를 보는 시각에서는 부정적인 면이 있죠. 반면에 명성황후는 상당히 국제적 안목도 있고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는 움직임도 보입니다. 위기의 순간에 두 사람이 가지는 긍정적인 면이 잘 조화를 이루어서 시너지 효과를 내었다면 가장 좋았을 텐데, 결국 서로 화합하지 못함으로써 근대사 부정적으로 흘러간 것은 매우 아쉬운 측면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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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도 근대국가를 꿈꾸며 혁명을 한 이들이 있으니, 1884년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 홍영식, 박영효, 서재필 등이 그들이란다. 그들은 급진개화파로 수구 대신들을 죽이고 고종과 명성황후까지 납치한 후 권력을 잡았단다. 그들은 개혁안을 발표하면서 새로운 나라의 꿈을 꾸지만, 그들의 꿈은 3일 천하, 정확히 이야기하면 46시간만에 끝나고 말았단다. 갑신정변는 왜 실패했는가는 많은 역사들이 연구를 했는데, 가장 큰 이유는 명성황후가 청나라에 도움을 요청했고 청나라 군인들이 개입하여 진압당했단다. 그리고 처음에는 지지를 표방했던 고종도 등을 돌리는 바람에 그들은 청나라 군대를 막아낼 힘이 없었단다. 갑신정변이 실패하고 핵심 멤버들을 도피 생활을 했는데, 김옥균은 홍종우라는 프랑스 유학파에 의해 상해에서 살해당했단다. 이 이야기를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아빠가 오래 전에 읽은 조재곤 님의 <그래서 나는 김옥균을 쏘았다>라는 책을 읽어봐도 좋을 것 같구나. 그리고 김탁환 님의 소설 <리심>에서도 이 이야기가 등장했었단다. 홍종우의 배후에는 고종이 있었다고 하는구나.

우리나라가 근대화로 가는 과정에서 많은 일들 중에서 동학농민운동을 건너뛸 수는 없단다. 점점 심해지는 조정의 수탈은 더 이상 농민들을 참을 수 없게 만들었단다. 고부 군수 조병갑이라는 사람은 탐관오리의 갑 중의 갑인 사람이었단다. 결국 참지 못한 고부 백성들은 녹두장군 전봉준을 지휘로 군대를 만들고 관군을 공격하였단다. 백성들이 스스로 만든 군대이지만 조정의 정규군을 압도했단다. 그만큼 나라의 군대가 얼마나 썩어 있었는지 알게 해준 일 이었단다. 조정도 한 발 물러나서 동학농민들의 의견을 들어주었단다. 하지만 그건 작전이었어. 조정이 스스로 진압을 하지 못하니 청나라 군과 일본군을 끌어들여 동학농민운동을 진압하게 된단다.

청나라 군과 일본군의 화력에 결국 무릎을 꿇은 동학군전봉준은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고, 지휘부 대부분 체포되거나 죽고 말았단다. 동학농민운동 이후 청나라와 일본은 우리땅에서 나가지 않고 눈치 보면서 버티다가 둘은 우리나라에서 전쟁을 일으켰단다. 전쟁의 이름은 청일전쟁이지만, 그 전쟁이 일어난 곳은 애석하게도 우리나라 땅이었단다. 동학운동 또한 안타까운 결말로 끝이 나고, 계속되는 우리나라 수난사가 이어졌단다.


3.

고종이 왕이 된 것의 9할 아니 99푼은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역할이 컸단다. 하지만 고종이 친정을 하기 시작하면서 아버지와 대립은 끊이지 않았다고 하는구나. 고종은 왕비인 명성황후의 뜻과 함께 했고, 늘 아버지와 대척점이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고종은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죽었을 때,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고 하는구나. 놀라운 일이로다.

이 책은 역사의 큰 흐름 뿐만 아니라 재미있었던 에피소드도 들려주어 주었단다. 고종이 많은 비자금을 숨겨두었다는 사실은 아빠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단다. 그런데 고종으로부터 그 비자금을 찾아오라는 명을 받은 이는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헐버트라는 미국인이라는 점도 흥미롭구나. 여차하면 비자금을 가지고 도망갈 수도 있는데, 미국인에게 그런 걸 맡기다니.. 그런데 헐버트는 고종을 배신하지 않았단다. 결국 비자금을 찾지는 못했지만 고종이 죽은 이후 자신이 죽을 때까지 비자금을 찾으려고 노력했고, 죽은 다음에는 그의 소원대로 우리나라에 묻혔다고 하는구나. 괜찮은 미국인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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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

(그날) 근데 고종의 밀명을 받았던 헐버트라는 사람이 왠지 익숙하기는 한데 정확히 누군지는 모르겠거든요. 설명 좀 부탁드릴게요.

(신병주) 고종에게 크게 신뢰받았던 대표적인 미국인입니다. 1905년에 우리의 외교권을 박탈당한 을사늑약이 체결되기 전에도 대한제국의 위급한 상황을 미국에 전하고자 상당히 애썼던 인물이죠. 헐버트의 삶이 대단히 극적이었던 게, 이후 40여 년간 사라진 비자금의 행방을 계속 찾으려고 합니다. 해방 이후인 1949년에도 방한해서 비자금을 꼭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안타깝게도 1949년의 광복절 행사에 참석하러 왔다가 8 5일에 사망했어요. 지금은 본인이 원했던 대로 대한민국에 묻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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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기울어가는 조선은 국제 기류에 발 맞춰 제국 선언을 하는데, 말뿐인 제국이었단다. 그렇게 지은 이름이 대한제국이고, 나중에 대한민국으로 바뀌어 우리나라 이름이 된단다. 대한제국의 의미는 이렇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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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

(신병주) 큰 한이라는 뜻이지요. 우리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고조선에서 역사가 시작되는데, 고조선에서 남하한 이주민 일부가 한을 세웠다고 국사책에 나옵니다. 마한, 진한, 변한인데, 당시의 역사 인식을 보면 삼한을 통합한 나라가 고려라는 인식이 아주 굳건히 지속됩니다. 그래서 조선이라는 국호를 대신할 새로운 국호를 찾다 보니까 역사적으로 조선 다음에는 한이라는 국호가 있었다는 것을 떠올린 거죠. 그래서 삼한을 계승한다는 의식을 이어받아서 그 한 중에서도 더 큰 한, 즉 대한을 나라 이름으로 정했는데, 황제의 나라라서 대한제국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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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역사저널 그날 <조선 편> 8권으로 조선이 마무리되었단다. 조선 통사를 다루는 많은 역사책들이 있단다. 많이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이 역사저널 그날 시리즈는 인기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기반을 해서 그런지 재미도 좋고 읽기도 좋고 그렇구나. 아빠의 기억력이 좋지 않지만, 이 시리즈를 통해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들도 여럿 있고, 이 책을 읽으면서 간간히 너희들에게 역사 이야기도 해줄 수 있어 좋았단다. 조금만 더 크면 너희들도 이 책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조선에 대한 역사 상식을 키울 수 있는 그런 책이 아닐까 싶구나. 역사 저널 그날은 <고려 편>도 있던데, 그 책도 기회 되면 읽어봐야겠구나. 아빠가 고려의 역사는 더 모르거든


PS:

책의 첫 문장: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기승을 부리던 19세기 초반, 순조는 기존의 노론 벽파를 제거하고 시파를 대거 등용하면서 국정을 직접 챙기고 전국에 암행어사를 파견하는 등 왕의 국정 주도권을 확립하고자 노력했다.

책의 끝 문장: 망국의 역사로 외면하기보다는, 희망의 씨앗을 품었던 대한제국의 진면목에 집중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최태성) 신정왕후가 수렴청정한 게 4년 정도인데, 교과서에 나오는 흥성대원군의 개혁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시기가 바로 그 4년이거든요. 수렴청정 기간에 신정왕후가 내놓았던 정책들을 보면 경복궁 중건, 과제의 폐단 시정, 서얼의 허통(許通) 등이 있습니다. 효명세자가 시행하려고 했던 개혁들을 다 실행에 옮기는 거죠. 다시 말해 세도정치 이후에 추진된 개혁을 흥선대원군의 개혁이라고들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그 출발점이 효명세자에게 있다는 얘기입니다.
- P40

(박은숙) 갑신정변이라는 계획에 고종이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은 급진 개화파가 반청을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고종으로서는 청나라의 개입을 막으면 왕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 서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실제로 진행되는 걸 보니까 왕권과 왕실 제정을 제약하고 입헌군주제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거예요. 오히려 왕권이 설 자리가 없어지는 위기를 느끼면서 당연히 뒤도 안 돌아보고 태도를 바꾼 것이죠. - P137

(신영우) 동학은 갑오년에 패배하고 난 뒤에 조선 왕조와 대한제국에서 탄압받았습니다.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도 탄압받았고요. 광복 이후에는 교과서에서 반란으로 규정해서 오랫동안 매도당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 큰 원인으로 보면 일본 사람들이 교묘하게 만든 것도 있지만, 양반 지주층의 후손들이 계속해서 동학농민군을 ‘과거에 나쁜 짓을 했던 사람들’로 매도한 경향이 있었죠. 그런 인식이 오랫동안 풀리지 않다가 100주년이 될 때 명예를 회복하는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04년에야 비로소 특별법에 의해서 명예회복을 위한 법이 만들어졌습니다. - 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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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10-30 08: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선조 최악의 군왕으로
선조-인조 그리고 고종
을 꼽아 봅니다.

특히 인조는 도성을 세
번이나 뺏긴 최악의 군주
였습니다.

앞의 2인은 전란의 주범
이고, 마지막은 망국의
주범이네요.

bookholic 2022-10-30 22:35   좋아요 1 | URL
네, 공감합니다~~
저는 특히 인조가 싫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