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욱의 고고학 여행 - 미지의 땅에서 들려오는 삶에 대한 울림
강인욱 지음 / 흐름출판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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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읽은 책은 <강인욱 님의 고고학 여행>이라는 책이란다. 아빠가 이 책을 어떻게 알게 된 책인지 기억나지 않는구나. 몇 년 전에 알게 되어 사서 책장에 꽂혀 있는 것 같은데, 그때 어떤 경위로 알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는구나. 그것이 무슨 상관이겠냐마는얼마 전에 유튜브를 보다가 우연히 강인욱 님이 출연한 영상을 보게 되고, 이 책이 생각나서 이번에 읽게 되었단다.

고고학자라고 하면 영화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고고학을 전공한 사람이 있었구나. 지은이 강인욱 님은 대학에서 고고미술사학과를 전공하고, 지금은 사학과 교수이시기도 하다는구나. 아빠가 고고학에 관련된 책은 처음 읽는 것 같구나. 고고학이라고 하면 아주 오래 전 인류의 발자취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대충 알고 있는데, 지은이는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고고학에 대한 정의부터 이야기해주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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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고고학은 쉽게 설명하면, 유물을 연구해서 과거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 지식, 문화 등을 밝히는 것이다. 인간은 왜 그렇게 과거 사람들의 모습에 관심이 많았을까? 단순한 호기심 때문에? 그렇지 않다. 그건 바로 과거를 생각하고, 이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인류의 진화하는 숙명에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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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유물을 통해서 과거 사람들의 모든 것을 밝히는 것이 고고학이라는 것이래. 그래서 이 책은 유물로 알 수 있는 옛 사람들의 이것 저것들을 하나씩 이야기해주고 있단다. 그렇다면 옛사람의 흔적이 많이 남겨져 있는 유물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바로 무덤이란다. 이 무덤이라는 것은 사후 세계를 꿈꾸고 영생을 갈구하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고 했어. 그리고 무덤에 시신과 함께 남겨진 유물을 통해서 그 시대의 생활을 추측하게 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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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앞에서도 말했듯이 고고학 하면 일반인들이 떠올리는 보물찾기의 실상은 사실 죽은 사람을 위해서 넣어놓은 마지막 선물이다. 죽은 자를 위한 선물 그리고 영생을 갈구하는 인간의 영원한 화두를 무덤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길가메시 서사시, 진시황이 얻고자 했던 불사약, 나아가서 다양한 영화들에서 다시 살아나는 사람들은 영생을 꿈꾸는 인간 욕망의 다른 이름이다. 하지만 모두 영생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인간의 운명이다. 대신 영생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무덤을 만들었고, 우리는 그를 통하여 삶에 대해 더 배우게 된다. 영원을 향한 인간의 마지막 바람과 체념이 녹아 있는 기념물이 바로 무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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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은 그렇게 알게 된 옛 사람들의 문화들을 이야기해주는데, 무덤 속에 남겨진 토기 속의 찌꺼기를 분석하여 그들이 맥주를 만들어 먹었다는 것을 알았고, 그들이 남긴 악기를 통해서 그들이 어떤 음악을 즐겼는지도 알게 되었단다. 먼 과거의 인간 생활에서도 음악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는데, 그것은 박물관의 영어 단어인 museum이 음악의 여신에서 유래했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는구나. 박물관 museum의 어원이 음악의 여신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은 아빠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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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96)

과거의 예술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박물관이다. 원래 박물관을 뜻하는 ‘museum’은 음악의 여신 ‘Muse’를 모시는 신전의 의미에서 유래했다. 뮤즈는 고대 그리스의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이다. 기원전 7세기에 활동했던 그리스의 시인 헤시오도스에 따르면 이들은 모두 9명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음악뿐 아니라 문예, 미술, 철학 등을 관장했다고 한다. 이 뮤즈를 위한 신전은 음악을 비롯하여 당시의 다양한 예술과 학문이 한데 어우러진 문화의 공간이었다. 즉 뮤즈를 위한 의식에는 음악과 함께 당시에 제작된 최고의 예술품인 회화, 조각 등이 선보여지고, 역사와 철학에 관한 다양한 학문적 성과가 봉헌되었다. 이 뮤즈의 신전은 그리스 문화가 확산되면서 각지로 전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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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유물 중에도 음악 악기와 관련된 것들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오래된 것 중에 공후라는 악기가 있대. 공후라는 악기는 익숙지 않아도 공후라는 악기를 타면서 부르는 노래가 그 유명한 고조선 가요 <공무도하가>라는구나. <공무도하가>는 너희들도 학교에서 배우지 않을까 싶구나. 그 공후라는 악기는 하프의 일종이라고 하는데, 이 악기는 실크로드를 통해서 고조선까지 전래되었대. 그 당시에도 이미 동서 교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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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107)

가야금 이전에도 또 다른 현악기가 있었다. 서양에서 발달해 실크로드를 통해서 중국과 한국으로 전래된 하프의 일종인 공후이다. 이 공후는 동쪽으로는 알타이까지 이어졌다. 고조선 가요인 <공무도하가>는 공후를 타면서 부르는 노래다. 이 가요를 채록한 사람은 고조선의 하급관리라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고조선 당대 또는 고조선 멸망 직후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 그 지은이에 대해서는 뱃사공, 곽리자고, 곽리자고의 아내 여옥 등 다양한 설이 있는데, 아마 많은 노래가 그러하듯 채록되고 확산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하튼 이 <공무도하가>는 이후에도 계속 남아서 명실상부 한국을 대표하는 고대가요가 되었다. <공무도하가> 1세기 때 채옹의 <금조>, 4세기 초에 쓰여진 최표의 <고금주>에 이미 등장한다. 그리고 이후 동아시아 일대에서도 널리 사랑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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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은 옛사람들의 생활 전반적인 것을 복원하는 것으로 목표로 하고 있는데, 맛도 복원하려는 노력을 하였지만 쉽지는 않다는구나. 토기 등에 남아 있는 찌꺼기를 통해서 젓갈을 오래 전부터 먹었다던가, 소와 돼지를 먹었다는 것 등 일부를 알 수 있다는구나.

 

2.

이 책에서는 고고학이 하는 일뿐만 아니라 고고학 자체에 대한 이야기도 주었단다. 고고학이라는 것은 역설적인 학문이래. 과거를 밝히기 위해 발굴을 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과거의 유적을 파괴하게 되니 말이야. 최소한의 발굴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는 것인 고고학이 지향하는 바라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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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

고고학만큼 역설적인 학문이 없다. 왜냐하면 과거를 밝히기 위해서는 반드시 과거의 유적을 파괴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고고학자들이 수많은 도면과 사진을 남기며 신중하게 발굴을 진행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한번 발굴한 유적은 어떠한 경우에도 되돌릴 수 없다. 간혹 유적을 발굴하지 않고 유보하는 경우도 있다. 땅속에 있는 것이 역설적으로 유적을 오래 보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작정 발굴을 하지 않는 것도 답이 아니다. 발굴을 하지 않으면 정작 과거의 유적과 유물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없기에 오히려 고고학의 발전은 저해된다. 그러니 최소한의 발굴로 최대한의 효과를 얻는 것이 고고학 발굴이 지향하는 바다. 그래서 고고학자들은 발굴을 수술 자국이 작을수록 좋은 외과수술에 비유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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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자들의 최소한의 발굴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경제논리가 유물이나 유적보다 앞서는 경우가 많은 것이 씁쓸한 현실이구나. 그런 일들이 우리나라에도 많이 일어났었지.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인 춘천 중도에 세워진 레고랜드란다. 아빠도 이 레고랜드가 중도에 세워진다는 소식을 듣고 분개했던 이들 중에 한 명이란다. 고대 유물이 많은 것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자연 풍광의 중도를 레고랜드로 만들다니 말이야. 도대체 누구의 생각이란 말이야그렇게 유물과 자연을 훼손하면서 만들어진 레고랜드는 절대로 가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단다. 그들은 아빠와 같은 여론이 많다는 것을 확인도 안 했나 보구나. 아빠가 알기로는 레고랜드의 실적은 계속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데, 아마 아빠와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이 많지 않을까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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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98)

생각해보자. 왜 레고랜드를 유적지가 많아서 사적지로 등록된 중도 위에 세우려고 했을까. 그곳은 춘천 시내의 한가운데에 위치하여 경치도 수려하고 접근성도 좋은, 아직까지도 개발이 안 된 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땅이 개발이 되지 않은 이유는 1980년대에 이미 이곳에 엄청난 유적이 존재한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유적의 규모와 그 의의로 볼 때 긴 시간을 두고 천천히 조사해야 한다고 판단했고, 대대손손 보존하기 위해 사적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현대의 정치가와 사업가들은 개발을 포기하지 않았다. 유적이 있다면 빨리 발굴해서 그 위에 무엇인가 경제적으로 이득이 되는 것을 세우고자 결의했다. 이렇듯 춘천 중도의 문제는 경제논리를 앞세운 현대 자본주의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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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열 받는 이야기 하나 해야겠구나. 두 차례 세계대전을 전후로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 국가의 유물을 많이 빼앗아가는 일이 일어났단다. 우리나라도 피해를 입은 국가들 중에 하나이고그런 문화재 약탈은 비윤리적인 행동이야.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고 깨달았는지, 문화재를 불법으로 약탈할 수 없다는 헤이그 문화재보호조약을 체결했대. 그런데 이전에 빼앗은 문화재에는 소급 적용이 안 된다는구나. 이런 조약을 체결하려면 그 전에 약탈한 문화재를 일단 돌려주고 해야 하는 거 아니니? 열 받는구나. 더 열 받는 일은 아래 발췌록에 적힌 이집트와 영국의 사례인데, 이 헤이그 조약은 이전에 제국주의 국가가 약탈한 문화재의 소유권을 불법으로 약탈한 제국주의 국가에 있다고 인정한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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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1954년에 세계 각국은 전쟁으로부터 문화재를 보호하는 취지에서 헤이그 문화재보호조약을 체결했다. 전쟁으로 다른 나라를 침략해도 그 나라의 문화재를 불법으로 없애거나 약탈할 수 없다는 것이 골자였다. 이는 유럽의 열강들이 경쟁적으로 상대국의 문화재를 폭격하고 약탈했던 것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문화재 약탈의 한쪽 측면만 본 것이다. 서구 열강은 그때까지 전쟁과 침략을 통해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나라들에게 약탈한 문화재에 대해 어떠한 보상이나 대책도 내놓지 않았던 것이다. 다시 말해 이미 유물을 빼앗긴 나라들은 상대국이 동의하지 않으면 그 유물을 반환 받을 수 없다는 뜻이 된다. 가능성이 낮은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만약 이집트가 영국을 침략해서 승리했더라도 영국의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는 피라미드 유물이나 미라에는 손을 댈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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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면서 일제의 침략으로 오랜 기간 일제의 지배를 받아왔기 때문에 고고학의 발전이 늦었다고 하는구나. 우리나라 1호 고고학 박사 도유호라는 분이 계셨대. 1935년 오스트리아에서 고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으셨대. 안타까운 것은 해방 이후 도유호 박사는 월북을 하여 북한에서 고고학 연구를 하셨다는구나. 그래서인지 그 이름을 처음 들어보는 것 같구나. 도유호 박사의 여러 업적 중에 빗살무늬토기가 신석기 시대의 유물이라는 것을 정의하였다고 하는구나. 아빠도 학창 시절 역사 시간에 배우고, 너희들도 역사 시간에 배우는 신석기 시대의 유물 빗살무늬토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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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

일본의 이 식민 패러다임을 깨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가 층을 달리해서 존재했음을 밝히면 된다. 하지만 층을 구분해서 발굴하는 방법이 한국에 널리 도입된 것은 1970년대 이후였다. 반면에 북한의 사정은 달랐다. 도유호(1935년에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한국 최초로 고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1세대 고고학자. 1946년에 월북하여 북한 고고학의 기초를 수립했다.)가 이끄는 북한의 발굴단은 1953~1954년도에 회령 오동의 수혈주거지를 발굴하고, 그 주거지들에 중첩이 있음도 함께 발견했다. 또한 1957년에는 황해도 지탑리 유적에서 빗살무늬토기층과 청동기시대 문화층을 분리시켜서 그 지긋지긋하던 금석병용기설을 폐기하고 청동기시대의 존재를 주장하게 되었다. 우리는 국사시간 첫머리에 빗살무늬토기=신석기토기’, ‘민무늬토기=청동시시대라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배운다. 그런데 이것을 발굴로 증명한 것이 바로 도유호가 발굴한 지탑리 유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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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 이 책에는 고고학에 대한 재미있는 여러 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단다. 그 중에 트로이 유적을 발견했으나, 트로이 유적을 파괴한 슐리만이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오늘 독서 편지를 마치련다. 이 책은 재미있는 상식들이 많이 남겨 있어서 너희들도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그럼, 오늘은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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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2-283)

(슐리만)가 발굴한 유물은 실제 트로이 왕국에서 사용한 것과는 다른 형식이라는 점이 지적되어 왔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지적을 무시하고 이 황금을 트로이의 마지막 왕으로 전쟁을 벌인 프라이모스의 이름을 따서 프라이모스의 황금이라고 명명해버렸다. 그러나 그가 발굴한 황금은 3200년 전에 살았던 프라이모스 왕보다 1000년이나 더 오래된, 4400년 전의 황금이라는 것이 현재의 정설이다. 물론 죽을 때까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오히려 그의 업적을 깎아내리는 빌미가 되었다. 아리러니하게도 슐리만은 이 프라이모스의 황금을 파기 위하여 그 위에 쌓여 있었던 트로이의 문화층을 파괴했기 때문이다. 그는 세계 최초로 트로이 유적을 발견한 인물이자 트로이 유적을 없애버린 인물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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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의 첫 문장: 언제부턴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시간여행을 하는 상황이 흔해졌다.

책의 끝 문장: 이 책은 이 세상을 사랑으로 살아오며 역사를 만들어온 그분들에게 바치는 게 마땅할 것 같습니다.



5000년 전 중국에서 새로운 술이 등장했다. 고고학자들이 좋아해 마지않는 술, 맥주다. 스탠포드대학교 고고학자 류리는 2016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최신의 분석방법으로 중국 최초의 맥주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그녀는 섬서성 웨이허강 유역의 5000년 전 양사오 문화에 속하는, 실크로드가 중국으로 오는 끝자락인 미자야 유적에서 밑이 뾰족하고 주둥이도 좁은, 양조를 하기에 적당한 토기를 발견했고, 그 바닥에 남은 곡물의 찌꺼기를 분석했다. 그 결과 양조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수수, 율무, 식물의 구근 덩어리 그리고 보리가 섞여 있음을 알아냈다. 단순하게 곡물을 담는 항아리였다면 이들 재료들을 같이 넣을 리가 없다. 맥주와 같은 술을 빚지 않고는 이 곡물들이 같이 나올 수 없다. 이렇게 중국에서 가장 최종의 맥주가 발견되었다. 게다가 보리는 중국에서 자생하는 곡물이 아니었다. 이는 바로 5000년 전에 유라시아를 중심으로 동서의 교류가 있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 P66

즐겁게 살아간다는 건 중요하다. 그것이 정신적인 즐거움이든 육체적인 즐거움이든, 삶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즐거움이 필요하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는 알 수 없다. 각자에서는 각자의 가치관이 있기 대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이 즐거움을 추구할 때에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절제도 필요하다. 왜냐하면 대가 없는 즐거움은 없기 때문이다. 쾌락만을 좇는 대가는 늘 생각보다 위험하고 치명적인 칼날이 되어 우리를 향한다. - P86

고고학의 원칙 중 하나가 발굴하지 않고 땅속에 두는 것이 가장 큰 보존이라는 점이다. 현재의 최신 기술로 유물을 발굴한다. 하더라도 한계는 있다. 과학과 기술이 시간이 갈수록 발전한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어떤 유물이든 지금보다 먼 훗날에 발굴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고고학적 원칙에 맞지 않는 사례가 바로 고분벽화이다. - P125

요서지역에서 홍산문화로 시작되어서 비파형동검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문명의 흐름은 만주 일대에서도 아주 독특하여 세계적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지난 20여 년간 중국과 미국 피츠버그 대학에서 매년 이 유적을 조사하는 것도 이 지역에서 독특한 문명이 발생했던 이유를 규명하기 위해서이다. 이제까지 한국과 중국에서는 홍산문화가 어느 나라의 것이냐는 소모적인 귀속 논쟁으로만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홍산문화의 숨겨진 또 다른 가치는 바로 그 소멸과 정에 있다. 홍산문화를 만든 사람들은 작게 쪼개진 마을들로 흩어졌고, 그 결과 홍산문화의 옥을 만드는 기술과 제사의 풍습은 이후 시대로 확산되었다. 그렇게 본다면 사실 버려진 홍산문화의 제사유적은 고대인들의 현명한 삶을 보여주는 증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 P245

그렇게 한국인이 주도한 첫 고분 발굴지에서는 놀랍게도 광개토대왕의 이름이 새겨진 청동그릇이 나왔다. 이에 청동그릇이라는 뜻의 ‘호우’를 따서 이 이 고분을 호우총으로 명명하게 되었다. 명문에 따르면 이 그릇은 광개토대왕의 사후 2년인 을묘년(415년)에 만든 기념 그릇 중 10번째에 해당한다. 당시 신라를 밀려오는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광개토대왕의 고구려 구원을 요청했다. 이 호우의 발견으로 당시 신라의 고구려의 관계가 유물로 증명된 것이다. 사실 신라 고분에서 고구려의 유물이 나온 예는 그때가 유일했으니, 이 호우총은 비록 일본인의 힘을 빌리긴 했지만 엄청난 발견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호우총에서는 호우 말고도 흥미로운 유물들이 다수 출토되었다. 특히 발굴단장 김재원 박사는 한 유물을 보고 소름이 돋았다고 한다. 나무에 옻칠을 한 물건인데 두 눈을 부라리듯 험상궂은 도깨비의 형상을 한 유물이었다. - 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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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자들
김초엽 지음 / 퍼블리온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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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요즘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나가는 젊은 SF 작가 중에 한 명인 김초엽 님의 두 번째 장편 소설 <파견자들>을 읽었단다. 요즘 전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기후 변화의 현상들을 보면 이젠 기후위기가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고 현재의 이야기인 것 같아 안타깝구나. 지구의 남아 있는 시간은 점점 빨리 줄어들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구나. 지구의 미래는 밝은 것보다 무섭고 어둡고 불안한 것만 떠오르게 되는 요즘이란다. 그래서 SF 작가들이 지구의 미래를 그럴 때는 유토피아의 모습보다는 디스토피아의 모습을 더 많이 그리는 것 같더구나.

김초엽 님의 첫 번째 장편 소설 <지구 끝의 온실>도 열악해진 지구 환경을 극복하려는 인간들의 삶이 그려졌는데, 두 번째 장편 소설도 열악한 지구, 정확히 이야기하면 지상 환경을 피해 지하에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 살고 있는 지구인들의 모습이 그려진단다. 여러 SF 소설들에서 이미 유사한 설정으로 땅속 세상을 그린 것을 보았는데, 김초엽 님이 만든 땅속 지구의 미래는 어떨지 이야기해줄게.

아빠의 개인적인 평을 하자면, 이번 <파견자들>은 조금 실망했단다. 기대하지 않고 읽었던 <지구 끝의 온실>이 괜찮았기 때문에, 기대를 하고 책을 펼쳤던 것이 영향을 준 것 같기도 하고아참, 아빠가 하는 이야기는 늘 그렇지만, 읽은 지 좀 되어서 아빠가 잘못 기억하고 있어 책의 내용과 다를 수 있다는 점 양해 바란다.

 

1.

먼 미래인지, 가까운 미래인지 모르겠지만, 지구의 지표면에 아포라는 물질이 생겨나게 되었단다. 아포가 몸 속으로 들어오게 되면 광증 증세를 보이게 된단다. 그 아포라는 물질은 전 세계로 계속 퍼지게 되자, 사람들은 지하세계를 만들어서 그곳에서 생활하게 되었단다. 그렇다고 아포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것은 아니야. 나도 모르게 음식물에 포함된 아포가 몸 속으로 들어올 수 있거든지하세계에 사는 사람들 중에 파견자라는 사람들이 있단다. 그들은 엄격한 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인데, 파견자들은 지상 세계를 나가 탐험하고 조사하는 임무를 갖는단다. 그리고 아포에 감염되지 않은 지역을 찾는 등 정착지를 찾는 일도 한단다.

태린이라는 지하에 살고 있는 소녀가 이 소설의 주인공이란다. 사람들은 보통 7살에 머리 보조기억장치인 뉴로브릭을 심게 되는데, 태린은 좀 늦은 나이인 12살에 뉴로브릭을 시술하게 되었고, 이것이 제대로 이식이 되지 않아서 뇌와 뉴로브릭의 연결이 끊어졌단다. 다른 사람들은 뉴로브릭에 자신의 기억을 저장하여 잊지 않는데, 태린은 뇌에 저장을 하여야 하니 공부하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어. 태린은 부모님은 안 계시고 자스완이라는 사람이 법적 보호자였단다. 자스완은 태린 이외에도 선오라는 아이의 법적 보호자이기도 해. 자스완은 파견자 출신이었고, 지금은 지하세계에서 지내고 있단다.

태린은 옛스승인 이제프처럼 파견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어. 그래서 파견자 자격 시험에 응시했단다. 태린은 다른 응시자들보다 외워서 하는 시험에는 약했는데, 아포에 대한 저항 능력은 거의 최고치였단다. 그러니까 별도 장치를 하지 않고 지상에 나가도 아포에 감염되지 않는 수준이었어. 1차 시험이 끝날 즈음, 태린은 갑자기 환청과 환상 증상으로 기절하고 말았단다. 머릿속에 연결이 제대로 안된 뉴로브릭 부작용으로 보였어. 머릿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뉴로브릭이 마치 태린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어. 선오는 그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이름을 붙여주고 대화를 해보라고 했어. 그렇게 태린은 머릿속 이 존재를 쏠이라고 불렀단다. 그 이후에도 쏠은 자주 나타났는데, 쏠은 자아의식도 가지고 있는 것 같았고, 자신이 뉴로브릭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어.

그리고 파견자 2차 시험. 여러 어려움에 봉착했지만, 태린은 쏠이 잘 알려주어서 난관을 해결해 나갈 수 있었고, 결국 높은 성적으로 2차 시험도 합격을 했단다. 그리고 마지막 최종 시험에서도 태린은 쏠과 협심하여 1등으로 통과를 했단다. 파견자 자격 시험은 응시자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응원하는 하나의 큰 축제였단다. 합격을 확정 지은 태린과 쏠갑자기 쏠이 태린의 몸을 완전히 혼자 조종하여 태린이 손쓸 틈도 주지 않고 테스트용 아포 봉지를 뜯었단다. 그곳에는 파견자들을 응원하러 나온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갑작스럽게 아포가 터지게 되면서 아수라장이 되었단다. 그리고 실제로 아포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도 나타나고 그랬단다.

 

2.

태린이 이 일로 상벌위원회가 열렸어. 태린도 억울할 거야. 자신이 한 것이 아니고 쏠이 한 것인데 말이야. 처음에는 추방령에 대한 이야기도 오갔지만, 그보다 지원하는 사람이 없어서 못하고 있던 프로젝트의 일원이 되어 임무를 수행하는 일을 제안했단다. 추방보다는 낫겠다 싶어서 태린은 그 일을 수락했단다. 멤버로는 팀장인 마일라와 팀원 네샤트와 태린이 전부였단다. 그들의 임무는 지상에서 정착지 후보지를 찾는 일이었단다. 네샤트는 약간 모난 성격의 소유자로, 팀장인 마일라와 자주 의견 충돌이 있었어.

그들은 팀장 마일라의 리더 속에 지상 세계를 조심스럽게 탐험하기 시작했고, ‘범람체라고 하는 새로운 생물체들이 점령하고 있는 지역을 발견되게 되었단다. 그들은 분명 아포에 의해 중독되어 있는 것 같았지만, 미치지도 않았어. 그저 점액질로 이루어진 징그러운 모습을 가지고 있었단다. 태린은 벌을 받는 대신 프로젝트에 참가를 했는데 다른 이들은 왜 참가를 했을까. 알고 보니 마일라는 파견자로 파견 나갔다가 실종된 자신의 옛 애인 오웬을 찾으러 온 목적도 있었어. 마일라의 설정은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앤 해서웨이가 맡았던 역과 비슷한 것 같구나. 잃어버린 사랑하는 이를 찾기 위해 위험한 곳을 자원하는 캐릭터. 마일라와 네샤트, 태린은 탐험을 하다가 늪에 빠지게 되고 그것에서 범람화된 인간들을 만나게 되었단다.

앞서 이야기했던 범람체가 동물들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변화시킨 거야. 그들은 늪인이라고 불렀단다. 이렇게 늪인이 된 것 역시 아포라는 물질 때문인데, 원래 아포 물질에 감염되면 광증을 일으켜야 하는데, 늪인들은 그렇지 않았어. 상당히 이성적이었고, 겉모습만 다르지 인간과 비슷했어. 마일라와 태린은 늪인들에게 협조하고 이해하려는 입장이었으나, 네샤트는 늪인들에게 적대적이었고, 나중에 폭탄과 칼을 이용하여 늪인들을 공격하였는데 결국 늪인들의 반격으로 죽고 말았단다.

태린은 탐사 도중 늪에 빠지게 되는데 늪인이 아닌 범람체 자체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어. 그들 범람체 하나하나가 존재하는 것 같았어. 그리고 그들은 마일라가 찾고 있는 애인 오웬도 범람체들로 융화되었다고 했어. 범람체들은 늪에 빠진 태린을 구해주기도 했단다. 그리고 그들은 태린의 머릿속에 있는 쏠이라는 존재도 사실은 범람체라는 놀라운 진실을 알려주었어. 태린은 오웬의 존재를 마일라에게 알려주자, 마일라는 오웬을 찾기 위해 늪 속에 스스로 빠지게 되어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단다. 아마 마일라도 오웬처럼 범람체들로 융화되지 않을까 싶구나.

앞서 네샤트가 죽기 전에 지하세계에 도움을 청해서 지하세계의 반격이 예상되었단다. 태린은 늪인들에게 도망치라고 했지만, 늪인들은 그곳을 떠날 수 없었어. 늪에 있는 범람체들만 착해서 늪인들과 공존할 수 있는 것이지, 다른 지역의 범람체들은 그들을 어떻게 할지 몰랐어. 늪인들이 광증 증세를 보이지 않는 것도 늪에 있는 범람체들이 착한 범람체이기 때문이었단다.

 

3.

우여곡절 끝에 다시 지하세계로 돌아온 태린. 임무 수행을 성공적으로 마쳤다면서 그것에 대한 보상으로 정식 파견사 자격증을 받게 되었어.

….

사실 태린에게 숨겨진 비밀이 있었단다. 태린과 선오는 어린 시절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데, 그들은 사실 범람화된 아이들이었어. 그래서 그들을 실험체라고 부르고 보호 시설에서 그들을 조사하였단다. 범람화된 아이들은 실험을 하다가 대부분 죽고 몇 명만 생존했던 거야. 태린이 스승으로 기억하고 있는 이제프도 사실은 그 보호시설 연구원이었단다. 물론 태린을 잘 보살펴주긴 했어. 그리고 이미 어린 시절에도 태린은 머릿속에 쏠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태린이 12살에 뉴브로릭 시술을 받았다고 기억하고 있지만 그것은 사실 머릿속 범람체인 쏠을 제거하려고 했던 수술인데 실패해서 쏠이 그대로 머릿속에 있다가 나중에 다시 나타나게 된 것이란다. 그 실험체들, 그러니까 범람화된 지하 세상 사람들이 지금도 존재하고 있고, 그들은 여전히 갇혀 있다는 것을 태린이 알게 돼. 그리고 그것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 존경하고 있던 이제프라는 것도 알게 되고태린은 그들을 구출하려고 하고, 이제프도 태린이 하려는 일을 알게 되어 그를 막으려고 했단다. 둘의 충돌은 불가피한 일결국 태린은 그들을 구출하는데 성공하고 이제프는 결국

….

시간이 흘러 7년의 시간이 지났단다. 그 사이에 지하세계의 사람들과 지상세계의 범람체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그들은 서로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었단다.

해피 엔딩.

새롭게 바뀐 지구의 환경에 적응하는 방법은 전쟁이 아닌 평화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인가. 지금 이 세상에서 진행되고 있는 전쟁을 일으킨 이들도 이 쉬운 진리를 알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디스토피아는 어떤 모습일까? 잘 적응하고 잘 공존할 수 있을까? 디스토피아가 오지 않게 지금이라도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SF 소설을 읽다 보면 지구의 암울한 미래가 떠올라 우울해 지는구나.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그 애는 겨울에 도착한 불청객이었다.

책의 끝 문장: 어디선가 아득한 곳에서, 가벼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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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길 : 조정래 사진 여행 - 조정래 사진 여행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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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얼마 전에 20여 년 만에 조정래 님의 <아리랑>( 12)을 다시 한번 읽었잖아. 다시 한번 완독한 기념으로, 조정래 님의 산문집을 하나 추가로 읽었단다. 집에 있던 책들 중에서 오래 전에 사두고 읽지 않았던 <조정래 사진여행>이라는 책이란다. 이 책은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책 속에 사진이 가득 들어 있단다. 조정래 님의 갓난 아기 시절의 사진부터 학창 시절, 젊은 시절을 거쳐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의 대하 소설을 쓰시면서 취재 여행을 하면서 찍은 사진들이 가득 포함되어 있단다. 책 소개를 읽어보니 410컷의 사진이 담겨 있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조정래 님이 그리신 그림 2컷도 포함되어 있다고 했어. 뿐만 아니라 각 사진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적혀 있었어. 사진으로 보는 조정래 님의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겠구나. 싶었단다.

예전에 조정래 님의 <황홀한 글감옥>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책은 글로 쓰는 자서전이라고 하면, 이번에 읽은 <조정래 사진 여행>은 사진으로 보는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겠구나. 조정래 님의 문학과 함께 한 인생을 사진을 통해 보니 더 친근함이 가면서, 세월이 너무 빨리 지나갔다는 생각도 들었단다.

그리고는 나중에 아빠의 인생도 어렸을 때부터 중요한 사진들을 쭉 모아 놓아서 정리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너무 빨리 흘러간 시간과 지금은 연락이 끊긴 사진 속 지인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울컥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그리고 너희들이 쑥쑥 자라는 사진도 더 많이 찍어주어야겠다는 생각도 했단다.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발명품은 사진기라는 말이 있는데, 아빠도 이 말에 격하게 공감한단다.

예전에 집에 화재가 발생한다면 사진 앨범부터 챙겨서 도망간다고 했던 어떤 분의 말씀도 생각이 나는구나. 우리의 시간을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사진이야말로 그 시절을 회상할 수 있고, 잠시나마 시간을 돌릴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구나.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조정래 님의 문학에 대한 열정과 삶의 치열함에 대해 존경심을 느끼게 되었단다. 조정래 님을 따라 할 수는 없지만, 그의 방식에서 많은 가르침을 얻게 되는 것 같구나.

오늘을 이렇게 간단히 마칠게.

 

PS,

책의 첫 문장: 사진은 세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책의 끝 문장: 이 거장의 발걸음을 따라 오늘의 시대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삶에 대한 열정과 역사에 대한 신념을 필요로 한다.


담배를 하루 평균 3~4갑을 피우고, 커피를 5~6잔 마시며 열흘에서 보름을 자는 시간 빼놓고는 책상에 앉아 있다 보면 첫째 나타나는 증상이 두 다리가 10배 20배로 퉁퉁 부어오른 착각이 든다. 그래서 얼른 만져보면 그렇지 않아 주무르고는 한다. 두 번째가 변비 증상이다. 옛날에 똥줄이 탄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실감하게 된다. 세 번째가 머리에서부터 차츰 차츰 피가 줄어들어 온몸이 하얗게 표백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네 번째가 걷는데 다리가 내 뜻과는 다르게 휘뚱거릴 뿐만 아니라 발 밑이 어질어질 기울어지고 흔들리고 출렁거린다. 그런 증상들이 날이 갈수록 겹쳐져오다가 막바지에는 잠자리에 누우면서 온몸이 녹아 흘러 땅속으로 잠기는 듯한 느낌 속에서 ‘내일 아침에 못 일어나고 말지’ 하는 생각으로 정신을 잃듯 잠이 든다. 그 죽음과 소생의 되풀이 속에서 원고지는 쌓여갔다. - P98

하바로프스크의 아무르 강변에 동포들이 일군 마을 이름은 ‘3.1촌’. 조국에서 일어난 3.1운동에서 따온 것이다. 그 독립 의지가 가슴 뭉클하다. 동포들은 짧은 여름에는 농사를 짓고, 긴 겨울에는 아무르강의 두꺼운 얼음을 뚫어 생선 중에서 최고로 치는 철갑상어를 낚었다. 영하 30도의 추위를 견디며, 그것을 판 돈이 독립 자금이 되고 자식들의 학자금이 되었다. - P188

원고를 쓴 기간만 <태백산맥>이 6년. <아리랑>이 4년 8개월이었다. 마흔에 <태백산맥>을 시작했는데 <아리랑>을 끝내고 보니 쉰셋이 되어 있었다. 내 인생 장년의 세월이 정말 ‘눈 깜짝할 아이’에 흘러가버린 느낌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어떻게 그렇게 긴장을 유지할 수 있느냐고, 무엇 때문에 그렇게 쓰느냐고. 삶의 보람이 가장 커서인가? 소설은 사나이의 생애를 바칠 만한 가치가 있어서인가? 그 대답은 꼭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두 원고를 쌓아놓고 그 사이에 서며 얼굴은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왜 그렇게 눈물이 나려 했는지 모른다. -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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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걸 조로 열린책들 세계문학 74
존스턴 매컬리 지음, 김훈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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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아빠가 좋아하는 작가 중에 여러 번 이야기를 했던 이사벨 아옌데라는 분이 있단다. 그래서 그분의 책들을 몇 권 샀는데 그 중에 <이사벨 아옌데의 조로>라는 책이 있었어. 그 책 소개를 읽다 보니 <조로>는 원작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존스턴 매컬리라는 사람이 <카피스트라노의 재앙>이라는 5부작 시리즈를 잡지에 연재했는데, <카피스트라노의 재앙>가 다름 아닌 조로의 이야기였다는구나. 그래서 혹시 존스턴 매컬리의 책도 있나 검색해보니 아빠가 좋아하는 열린책들 세계문학 시리즈에 존스턴 매컬리의 <쾌걸 조로>라는 책이 있더구나. 그래서 <이사벨 아옌데의 조로>를 읽기 전에 먼저 원작인 존스턴 매컬리의 <쾌걸 조로>를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단다.

지은이 존스턴 매컬리는 1883년 미국에서 태어나서 신문 기자로 일하다가 앞서 이야기했던 <카피스트라노의 재앙>의 조로 시리즈를 썼고 그 시리즈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하는구나. 이 소설은 곧바로 영화로 제작되었는데 그 이후에 많은 만화, 드라마, 영화 등으로 나왔단다. 아빠가 기억하는 영화로는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주연한 <마스크 오브 조로>라는 영화가 기억나는구나. 지은이 존스턴 매컬리의 약력을 보니, 아빠가 어린 시절 어린이 TV 시리즈를 인기를 끌었던 <검은별>의 원작도 이 사람이 지은 것이라고 하더구나. 그럼 존스턴 매컬리의 <쾌걸 조로>를 이야기해줄게.

 

1.

조로는 여우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구나. 배경은 서부 개척 시대이고, 라스 캘리포니아 스페인 식민지가 주무대란다. 그 마을에 얼마 전부터 조로라는 사람이 인디언 같은 억압받는 사람들과 약자의 편에 서서 폭압을 휘두르는 강자를 혼내주고 사라지는 일들이 일어났어. 마치 홍길동처럼 말이야. 그는 얼굴에 마스크를 쓰고 검은 망토를 입고 있어서 누구도 그의 정체를 알지 못했어. 강자들이 당하다 보니, 경철과 군대는 그를 노상강도라 하고 쫓고 있었단다.

….

돈 디에고 베가라는 사람이 있어. 부잣집 젊은이로 무능하면서 어리버리한 캐릭터를 가진 사람이야. 그는 결혼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여 돈 카를로스의 딸 롤리타를 찾아갔단다. 그리고 어리버리하게 한번도 사랑이란 걸 해본 적 없는 사람처럼 형식적이고 무미건조하게 청혼을 했어. 롤리타의 아버지 카를로스는 부잣집 젊은이의 청혼을 반겼지만, 롤리타는 매력 없는 돈 디에고 베가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어.

어느날 불쑥 찾아왔다가 간 세뇨르 조로라는 의문의 남자를 마음에 두고 있었단다. 조로는 롤리타를 찾아와서 박력 있으면서 솔직하게 사랑을 고백했거든. 하지만 롤리타도 조로가 노상강도로 경찰과 군인들에 쫓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그래서 조로에게도 선뜻 마음을 주지 않았어. 돈 디에고 베가가 조로의 반만큼만 박력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단다.

조로를 쫓는 이 중에 라몬 대위와 곤잘레스 상사가 있는데 그들은 조로와 대면하게 되었을 때 조로한테 조롱당하며 결투에서는 지고 말았단다. 그런데 라몬 대위도 롤리타를 보고는 반해서 구애를 하게 되었어. 어느날은 집에 혼자 있는 롤리타를 강제로 추행하려고 하다가 갑자기 나타난 조로에 온갖 창피를 다 당하고 부상까지 입게 되었단다. 조로가 어려움에 빠진 롤리타를 구해준 이후 롤리타는 조로에 푹 빠지게 되었단다.

...

라몬 대위는 그의 부대를 이끌고 조로를 추격했어. 이 소설의 이야기는 라몬 대위와 조로의 쫓고 쫓기는 이야기가 이어진단다. 그런데 돈 디에고 베가와 조로가 같은 장소에서 나오는 적이 없고, 근소한 시간차로 엇갈려 나오게 되는데 이로 인해 돈 디에고 베가가 바로 조로라는 것을 조로를 처음 알게 된 사람들도 모두 알게 되었을 거야. 하지만 이미 조로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소설 초반부에 등장하는 어리버리한 젊은이 돈 디에고 베가가 조로라는 것을 바로 알았을 것 같구나.^^

조로는 나중에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을 모아 응징자들이라는 비밀 조직을 만들었단다. 라몬 대위와 쫓겨 쫓기는 추격전과 대결로 소설은 이어지고 결국은 조로가 승리한다는, 약간은 뻔한 결과로 끝이 났단다. 그리고 조로의 정체도 밝혀지고 말이야.

….

소설 <쾌걸 조로>속 조로는 그동안 영화나 만화에서 봐왔던 유쾌하고 쾌활한 상남자조로 그대로였단다. 소설이 원작이었으니, 영화나 만화에서 소설 원작을 잘 살렸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옳겠구나. , 이제 원작을 읽었으니 앞서 이야기했던 <이사벨 아옌데의 조로>는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갈지 읽어봐야겠구나. 곧바로 읽을 것 같지는 않고, 오늘 이야기한 <쾌걸 조로>의 기억이 다 사라지기 전에는 읽어보려 해. 그럼 그때 또 한번 조로의 이야기를 해줄게.

, 그럼 오늘은 이렇게 짧게 마무리.

 

PS,

책의 첫 문장: 요란한 빗발이 붉은 스페인식 기와지붕을 다시 두드려 댔다.

책의 끝 문장: “얼씨구,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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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 레이 - 혁명과 낭만의 유체 과학사
민태기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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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작년에 <조선이 만난 아인슈타인>이라는 책을 읽고 재미있게 읽고 나서 그 책의 지은이 민태기 님이 아빠가 예전부터 읽고 싶었던 <판타 레이>라는 책의 지은이라고 이야기를 했었는데 기억날지 모르겠구나. <판타 레이>라는 책을 이번에 읽었단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지은이한테 존경심이 생길 정도로 이 책은 정말 대단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이 책은 <코스모스>, <거의 모든 것의 역사>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과학책을 뛰어 넘는 책이라고 아빠는 생각한단다. <판타 레이>의 부제가 혁명과 낭만의 유체 과학사여서 유체 역학의 역사를 알려주는 책인가 싶은 생각으로 책을 폈단다.

유체 역학이라는 것은 과학의 한 영역으로 일반 사람들에게는 익숙지 않는 분야란다. 대학 시절 기계공학과 친구들이 배우는 여러 역학들 중에 하나로만 알고 있지,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른단다. 그렇다 보니 이 책이 어려운 내용으로 되어 있을 거라 생각했어. 책도 500페이지도 넘는 분량인데 유체 역학에 대해 이렇게 할 이야기가 많은가 싶었어. 그런데 읽는 내내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고 그 모든 것들을 물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처럼 이야기를 풀어내는 지은이의 천재성에 정말 놀랬단다.

이 책은 유체 과학사에 관한 책이지만 그보다 부제의 앞쪽의 있는 혁명과 낭만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어. 이 책은 분명 과학책이지만, 정치, 미술, 음악, 경제, 철학이 모두 포함되어 있단다. 과학 하나만 떼어놓아 설명할 수 없고 모든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해 주었단다. 이 무지막지한 책을 너희들에게 아빠가 잘 이야기해줄 자신은 없단다. 이건 직접 읽어봐야 그 진가를 알 수 있을 것 같구나.

지은이 민태기라는 분이 도대체 어떤 분인가 찾아보다가 지은이가 이 책의 내용을 직접 설명해주는 유튜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그 유튜브 영상이 길긴 한데 아빠는 다시 한번 보고, 책에 대한 리뷰를 했단다. 이 영상은 너희들과 다시 한번 보고 싶구나. 지은이 민태기 님은 서울대에서 박사 출신으로 UCLA 연구원으로도 재직을 했고 현재는 누리호 및 차세대 발사체 엔진 개발에 참여하고 계신다고 하는구나. , 그러면 아빠가 적어 놓은 메모와 책을 발췌한 부분을 참고하여 이야기해 보마. 아참, 이 책의 제목 <판타 레이>는 모든 것을 흐른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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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나는 이 잃어버린 고리판타 레이라는 개념에서 찾고자 한다. ‘판타 레이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Heracleitos)의 유명한 언명으로 만물유전(萬物流傳)”, 모든 것은 흐른다라는 뜻이다. 모든 사물은 고정되어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마치 흐르는 유체(流體)와 같이 시간에 따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모든 것들을 유체 현상으로 이해하려고 했다. 대표적인 예가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상의 물체들은 물, , 공기, 흙의 조합으로 이루저졌다는 4원소설을 제시했다. 그리고 천상 세계의 물체들, 즉 우주와 행성 같은 천체들은 제5원소라 불리는 유체 에테르(aether)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력이 여전히 남아 있던 르네상스 시대와 과학 혁명 초기, 학자들은 천체의 움직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에테르의 움직임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러기 위해 보텍스(vortex, 소용돌이)’라는 유동 현상에 주목했다. (유체 역학에서는 와류(渦流)’, ‘와동(渦動)’이라고 부르지만, 이 책에서는 훨씬 포괄적인 의미를 가진 보텍스라는 단어를 사용할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의 보텍스 스케치에서 볼 수 있듯이, 그 시대 사람들은 우리가 사는 세계를 판타 레이의 관점으로 보고, 모든 물리 현상을 유체의 보텍스로 이해하고 설명하고자 했다. 그것은 그들에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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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혁명이라는 말. 이 말의 영어 단어는 Revolution가 혁명이라는 뜻이 된 이유가 코페르니쿠스 때문이라고 하는구나. Revolution은 원래 천체의 회전을 의미하는데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하면서 천체의 회전이라는 의미로 Revolution 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그것이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꾼다는 혁신적인 생각이라는 의미여서 나중에는 혁명이라는 뜻까지 발전하게 되었다는구나. Revolution이 혁명이라는 뜻으로 처음 쓰인 것은 영국의 명예혁명 때 처음 사용되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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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7)

다행히 코페르니쿠스는 자신의 책의 인쇄본을 보고 난 뒤 눈을 감았다. 이렇게 서구 문명에 가장 큰 충격을 준 저작물 <천구의 회전에 대하여(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가 세상에 드러났다.

이 책은 소수의 전문가만이 이해할 수 있었기에 단 400부만 인쇄되었고, 그나마도 다 팔리지도 않았다. 6권으로 이루어진 이 책의 원제에서 레볼루티오니부스(revolutionibus)’, 레볼루션(revolution)’은 천체의 회전을 의미한다. ‘레볼루션혁명이라는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은 뉴턴의 <프린키피아>가 출판되던 1688년 영국의 명예 혁명(Glorious Revolution)부터이다. 이처럼 원래 천문학 용어였던 레볼루션은 코페르니쿠스 이후 혁명적인 변화라는 의미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는 코페르니쿠스의 레볼루션코페르니쿠스적 전환(Kopernikanische Wendung)”이라고 명명했으며, 토머스 쿤(Thomas Kuhn)은 이를 다시 코페르니쿠스 혁명(Copernican Revolution)”이라고 부르며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는 과정을 일컫는 용어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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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많은 과학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케플러야. 아빠가 몇 달 전에 케플러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잖니. 그 때의 이야기가 이 책에도 등장을 한단다. 케플러의 스승 티코 브라헤는 오줌을 참다가 방광염에 걸려 죽고 말았다는데 안타깝구나. 브라헤는 그렇게 안타깝게 죽었지만 방대한 천문관측에 대한 자료를 남겼어. 케플러는 브라헤가 남긴 그 방대한 자료를 분석하게 되는데 그 자료를 통해 코페르니쿠스의 오류를 발견하게 된단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맞긴 한데, 코페르니쿠스가 주장한 것 중에 지구가 태양 주위를 등속원운동을 한다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밝혀냈어.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 때 타원형운동을 하고 속도가 바뀐다는 것을 밝혀낸 거야. 이것도 <케플러> 이야기할 때 했었지? 케플러와 거의 동시대 활동한 또 한명의 천재 과학자 갈릴레이갈릴레이의 아버지 빈첸초 갈릴레이는 오페라를 창시한 음악가였다는구나. 갈릴레이는 종교 재판에서는 비록 승복하고 은둔했지만, 지동설을 완벽하게 증명하게 된단다.

 

2.

이제 뉴턴과 데카르트의 논쟁을 살펴보자꾸나. 둘이 논쟁을 했다는 사실 또한 새로 알게 된 사실이란다. 데카르트의 유명한 책으로 알려진 <방법서설>이란 책이 있단다. 그런데 이 책은 사실 <이성을 올바르게 이끄는 방법, 그리고 이 방법에 실험들인 굴절 광학, 기상학 및 기하학 등의 과학에서 진리를 찾기 위한 방법의 서설>이라고 하는 긴 제목의 책의 서설 부문만 해당한다고 하는구나. 그러니까 <이성을 올바르게 이끄는 방법, 그리고 이 방법에 실험들인 굴절 광학, 기상학 및 기하학 등의 과학에서 진리를 찾기 위한 방법의 서설> 500페이지가 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그 책의 서설 70여 페이지만 번역하여 <방법 서설>로 출간한 것이래. 이 책의 전체 500여페이지 모두를 번역한 우리나라 책은 아직 없다고 하는구나. 출판사들 뭣들 하시나.

앞쪽 70여 페이지만 번역하여 <방법서설>로 출간하다 보니 데카르트를 철학자로만 알고 있는데, 데카르트는 철학자 이전에 과학자였단다. 위 긴 제목의 책제목만 읽어봐도 이 책이 과학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겠지?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의심하려고 했대. 그리고 그는 x, y 좌표를 만든 사람으로도 유명하단다. 수학의 함수를 x, y 좌표에 표기할 수 있는 것도 데카르트의 덕분이라는 거야. 데카르트 덕분에 고생을 하고 있을 수도 있고…^^

데카르트는 운동은 반드시 충돌에 의해서 발생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기 때문에 지구가 움직이는 운동을 하려면 무엇인가 충돌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우주는 에테르라는 물질로 채워져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고, 보텍스(소용돌이)에 의해 지구가 회전한다고 주장했단다. 데카르트가 활동하던 17세기 유럽은 커피하우스가 유행을 했대. 그 전에는 술집에서 사람들이 주로 모였는데, 커피하우스가 유행하면서 커피하우스에서 맨 정신으로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는구나. 과학, 철학에 대한 토론도 이 커피하우스에서 많이 이루어졌대.

그런데 뉴턴은 이런 커피하우스에 잘 안 갔대. 커피하우스에는 데카르트와 그를 따르는 이들의 목소리가 컸는데 뉴턴은 그들과 다른 주장을 하고 있었거든. 뉴턴은 20대에 이미 중력 법칙을 밝혔지만 발표를 하지 않고 있었어. 왜냐하면 데카르트와 당시 대가로 불리는 이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중력 법칙은 에테르 같은 매질이 없이 두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힘의 법칙이었거든. 중력 법칙을 발견한 지 20년이 지나서야 헬리 혜성으로 유명한 헬리가 뉴턴을 찾아와 책을 자신이 내주겠다고 해서 그렇게 나온 책이 그 유명한 <프린키피아>였단다. 뉴턴의 <프린키피아>는 데카르트의 보텍스 이론을 비판했대. 보텍스 이론은 케플러의 법칙에도 맞지 않고, 우주에 에테르라는 물질로 가득 차 있으면 저항 때문에 지구의 회전을 멈추게 되기 때문에 잘못된 이론이라고 했어.

뉴턴의 다른 일화들도 이야기해주었는데, 뉴턴이 20대 때 중력 법칙을 발견하고 발표하기 전까지 연금술을 연구했었대. 그리고 조폐국에서 약 30년간 일하기도 했다는구나. 당시 불법 동전들이 통용되고 있었는데, 뉴턴은 동전의 옆면을 빗금 내는 아이디어로 불법 동전의 유통을 막았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말년에 주식으로 엄청난 돈을 날렸다고 하니, 뉴턴 같은 천재에게도 주식은 정말 어려운 것인가 보구나. 암튼 뉴턴의 <프린키피아>가 출간되고 나서 뉴턴과 데카르트뿐만 아니라 그들을 지지하는 이들 사이에 논쟁이 일어났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다들 멀리 떨어져 있으니 그 논쟁이 주고 편지로 이루어졌어. 나중에 이 편지를 모아서 책으로 출간했는데, 이렇게 생겨난 것이 <저널>이라고 하는구나.

뉴턴의 프린키피아는 프랑스에서 번역이 되었는데, 번역한 이는 유명한 철학자 볼테르의 연인인 샤틀레라고 하는구나. 샤틀레는 수학에 뛰어난 재능을 하지고 있어서 <프린키피아>를 프랑스어로 번역하면서 번역만 것이 아니라 자세한 주석까지 달았다고 했어. 프랑스에서는 그런 주석 달린 <프린키피아>를 접해서 그런지 오히려 영국보다 뉴턴역학이 더 발전했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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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학계가 뉴턴파와 라이프니츠파로 나뉘어 대립하던 무렵, 1738년 베르누이 정리가 발표되자 샤틀레는 소멸하지 않는 유체의 보존량으로 도입된 속도의 제곱에 주목한다. 이후 라이프니츠의 다니엘 베르누이, 오일러 등과 적극 교류하던 그녀는 연인 볼테르가 너무 뉴턴파의 입장만 고집하자 볼테르와의 관계가 틀어진다. 그녀는 새로운 연하의 연인을 사귀고 그의 아이를 가지게 된다. 하지만 당시는 노산의 사망률이 높아 42세인 그녀는 삶이 얼마 남지 않음을 직감하고 평소 추진하던 뉴턴의 <프린키피아>의 프랑스 어 번역을 서두른다. 그녀는 하루에 3~4시간만 자며 마침내 1749 9월 번역을 마무리하고 3일 뒤 출산했으나 일주일 뒤 사망하고 만다. 이 번역본은 단순한 번역이 아니라 뉴턴 이 진행된 미적분학의 발전과 논쟁을 정리한 수많은 주석이 달렸고, 이러한 그녀의 방대한 프랑스 어판 주석 덕분에 프랑스는 영국을 제치고 수학과 물리학에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전하다. 샤틀레는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관점이 동일하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조제프루이 라그랑주는 뉴턴의 힘을 시간에 대해 적분하면 운동량이고, 거리에 대해 적분하면 운동 에너지라며, 그녀의 아이디어를 깔끔하게 정리한다. 또한, 보존량이 속도의 제곱이라는 개념은 후에 갈릴레오 좌표 변환이 로렌츠 변환으로 일반화되면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의 유명한 공식 E=mc의 토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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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는 철학자들에 대한 편견을 좀 깨야겠구나. 철학자들 대부분은 과학도 함께 공부하고 그에 관한 책이나 논문도 냈다고 하는구나. 칸트는 <일반자연사와 천체이론>을 발표하여 성운이 모여 행성이 된다고 주장했는데, 이것은 나중에 라플라스가 증명을 했다는구나. 헤겔도 천체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는구나.

 

3.

제임스 와트가 산업혁명을 이끈 증기기관을 개발한 것은 1776, 애덤스미스가 국부론을 발표한 것도 1776, 벤자민 프랭클린이 미국 독립선언서를 발표한 것도 1776년이라고 하더구나. 이 때 즈음 조지프 블랙이 이산화탄소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4원소를 깨는 첫 번째 증거라는구나. 프리스틀리는 산소를 발견하여 플로지스톤 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했대. 플로지스톤 설은 아빠가 예전에 두어 번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산소가 발견되기 전까지 사람들은 연소는 플로지스톤을 가지고 있는 물질에서 일어나며 연소하게 되면 플로지스톤이 물질에서 빠져나간다고 생각했어. 프리스틀리는 이산화탄소를 이용하여 소다수도 처음으로 만들었다고 하는구나. 또한 프리스틀리는 한 모임에서 제임스 와트를 만났는데, 프리스틀리가 제임스 와트에게 보링 기술을 알려주어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완성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하는구나.

허셜 망원경으로 유명한 허셜은 원래 음악가였대. 교향곡도 많이 작곡했다는구나. 그도 모임에서 과학자들과 교류를 하면서 친분을 쌓았는데 나중에는 아예 천문학자로 직업을 바꾸고 천왕성을 발견하였다는구나. 라부아지에는 얼마 전 Jiny 교과서에서 본 것처럼 물을 산소와 수소로 분해할 수 있다는 것을 밝혔는데 이로써 물이 4원소 중에 하라고 주장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증명했단다. 하지만 라부아지에는 프랑스 혁명 당시 조세국에서 일하며 무거운 세금을 부과했다는 죄목으로 단두대에서 처형당했다고 하니 안타깝구나.

 프랑스 혁명 당시 혁명군의 군수품을 만들기 위해 에꼴 폴리테크니크라는 학교가 생겼는데, 이후 이 학교는 프랑스 공교육 영재학교로 탈바꿈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많은 노벨상 수상자들을 배출했다고 하는구나.

푸리에 변환으로 유명한 조지프 푸리에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물리학자인줄로만 알았는데, 나폴레옹 측근으로 나폴레옹이 정복 작전에도 함께 참여하여 이집트에도 같이 갔다고 하는구나. 이집트에 갔다가 그곳에서 로제타석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포로가 잡히는 바람에 로제타석을 가져오지 못했어. 로제타석은 영국에서 가져갔지만, 푸리에는 다행히 사본을 떠 놓았단다. 나중에 푸리에는 로제타석 사본을 샹폴리앵이라는 사람한테 건네주었고, 샹폴리앵은 로제타석을 통해 처음으로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했다는구나.

프랑스 혁명 이후 정권을 차지한 나폴레옹은 전 유럽에서 승전보를 보내왔지만, 넬슨이 이끄는 영국군에 패배를 했단다. 이후 나폴레옹은 몰락하고 프랑스는 부르봉 왕조가 부활했어. (1814) 1816년 프랑스에서 아프리카로 식민지 구축하려 떠난 메두사호라는 배가 있었는데, 그 메두사호가 모래톱에 걸려 좌초하게 되었어. 그때 뗏목을 이용하여 탈출하게 되는데 귀족들만 탈출하여 논란이 일어났단다.그렇지 않아도 부르봉 왕조에 불만이 늘어나고 있던 시기였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자 민중들은 다시 봉기하게 되었어.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프랑스에서는 왕정과 공화정이 반복되면서 크고 작은 혁명들이 이어졌단다. 1830 7월혁명도 그런 흐름 중에 하나였는데 이 1830 7월혁명은 너희들도 잘 알고 있는 <레 미제라블>의 배경이 되는 혁명이란다. 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라는 그림은 1830 7월혁명을 기념한 유명한 그림인데 그 그림에서 여신의 오른쪽에 보면 총을 들고 있는 어린 소년이 있단다. 그 소년을 보고 빅토르 위고가 <레 미제라블>의 소년 혁명가 가부로쉬라는 캐릭터를 만들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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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0 7월 혁명을 그린 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빅토르 위고는 이 그림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1832 6월 학생 무장 봉기를 배경으로 <레 미제라블>을 집필했다. 이 그림 오른쪽에 권총을 들고 등장하는 소년은 <레 미제라블>가브로쉬의 모델이 되었다. 메두사 호 사고에서 보듯이 왕정 복고 이후 프랑스의 사회 부조리는 더욱 심해진다. 하지만 기득권 세력이 총동원되어 이 모든 게 볼테르 때문이고, 이 모든 게 루소 때문이라며 오히려 진보 진영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프레임을 만들기 시작한다. 이러한 한심한 작태에 분노한 빅토르 위고는 <레 미제라블>에 이 표현을 가브로쉬가 반어적으로 부르는 노래로 삽입했다. 대략적은 내용은 내가 못생긴 것도 가난한 것도 이게 다 볼테르 때문이고 루소 때문이라는. 가브로쉬는 바리케이드에서 이 노래를 부르며 진압군을 조롱하며 실탄을 구하다 진압군의 총에 사망한다. 1985년 캐머런 매킨토시가 <레 미제라블>을 뮤지컬로 각색하며 이 노래의 역사적 배경을 전혀 알지 못하는 영어권 관객들을 위해 “Little People”이라고 가사의 내용을 바꾸었다. 루브르에서는 들라크루아 작품 옆에 제리코의 <메두사 호의 뗏목>을 나란히 전시하고 있어, 7월 혁명의 배경이 무엇인지 명확히 보여 준다. 한편, 요즘 제일 인기 있는 록그룹 중 하나인 영국의 콜드플레이(Cold Play)의 대표작 <비바 라 비라(Viva la Vida)> 역시 들라크루아의 바로 이 그림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참고로 제목은 인생 만세라는 뜻의 스페인 어로 20세기 멕시코 혁명 화가 프리다 칼로의 마지막 작품에서 따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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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0 7월 혁명으로 부르봉 왕조가 쫓겨나고 군주가 헌법 내에서 권한을 갖는 입헌군주제가 들어서게 되었단다. 이 시절 천재 수학자 갈루아라는 사람이 있었어. 갈루아는 어린 나이에 권총 결투로 일찍 죽었다는 이야기를 아빠가 전에 한 적이 있는데 기억나니? 갈루아의 아버지는 공화파의 아버지였지만, 갈루아는 공화파에 맞서 학생 운동을 주도했대. 사랑하는 여인을 두고 결투를 했는데, 결투 전날 자신이 죽을 걸 예감하고 후대에 길이 남을 논문을 남겼다고 하는구나. 그렇게 갈루아가 죽고 난 후 그의 장례식날 좌파 진영은 다시 봉기하였다고 하는구나. 이때가 1832 6월이었대. 프랑스 혁명이 이어지는 동안 과학자, 수학자들도 그 혁명 한 가운데에 있었음을, 그들도 혁명의 일원이었음을 새삼 알게 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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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는 바다 건너로 가보자꾸나. 영국 왕립 연구소에서는 과학콘서트를 열어서 과학 대중화에 앞장섰다는구나. 패러데이는 1926년 크리스마스 때 아이들을 위한 과학 강연도 했는데,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아주 재미있는 강연이었다고 하는구나. 이 강연에 찰스 디킨스도 참석했었다고 하는구나. 유명한 사람들이 여기저기 연결되어 있으니 읽는 재미가 더 있는 것 같아.

영국의 수학자 찰스 배비지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톱니바퀴를 이용하면 손쉽게 계산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가 고안한 이 엔진을 사람들이 잘 이해를 하지 못했어. 여기서 엔진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엔진이란 자동차를 굴리는 기계장치라고 하면 협소한 의미로 사용한 것이고, 원래 엔진이란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뜻이고, 엔지니어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사람, 크리에이터라고 하면 생각하면 된단다.. 아무튼 찰스 배비지의 톱니바퀴 엔진을 이해한 사람이 한 명 나타났는데 러브레이스라는 여인이란다. 찰스 배비지도 자신의 엔진을 이해하는 사람은 러브레이스뿐이라고 했어. 러브레이스는 최초의 프로그래머로 알려져 있는데, 그의 아버지는 철학자이자 시인으로 유명한 바이런이라고 하는구나.

제임스 프레스콧 줄이라는 사람이 있어. 너희들도 학교에서 에너지의 단위로 ''을 배울 텐데 그 단위가 바로 이 사람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란다. 줄은 성공한 양조장집 아들로 부유하게 살았다는구나. 가정교수가 돌턴이었다고 하니 말 다했지, . 줄은 양조장을 근대화하려는 노력을 했는데 그 일을 하다가 일과 열이 같다는 것을 발견하고 논문을 발표했대. 윌리엄 톰슨이라는 사람과도 교류를 하여 함께 열열학을 연구하였고, 그들은 칼로릭 이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게 된단다.

칼로릭 이론은 열이란 것이 칼로릭이라는 무게가 없는 물질입자라고 생각한 이론으로 그 이전까지 칼로릭이라는 물질이 열을 낸다고 믿고 있었어. 나중에 윌리엄 톰슨은 해저 케이블을 만들게 되는데, 그 업적을 높이 사서 Lord()이라는 호칭까지 얻게 되었대. 그때 경 이름을 켈빈으로 지어서 켈빈 경으로 불렀어. 절대온도의 단위로 그 켈빈 맞단다.

 

4.

프랑스 혁명 이후 유태인들의 지위도 많이 올라갔대. 독일에 사는 유태인 마그누스는 부유한 집안 사람인데, 큰 실험실을 갖춘 집을 만들고, 독일 최초 물리학회를 만들었다는구나. 참고로 마그누스의 사촌은 로이터 통신으로 유명한 로이터라는구나. 헬름홀츠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가난해서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의대에 들어갔대. 나중에 마그누스의 실험실이 있는 집에 갔다가 물리학에 대한 연구에 빠지게 되었고, 그 유명한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발견했다는구나. 학창 시절 그렇게 골치 아프게 했던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이 분이 발견했구나. 이 사람은 자신뿐만 아니라 제자 중에도 헤르츠, 마이클슨 등 유명한 사람들이 있고 친구 중에는 오늘날까지 영상의료기기의 독보적인 회사 지멘스의 창시자인 베르너 폰 지멘스라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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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넬이라는 영국의 과학자가 있어. 그의 아버지는 프랑스 사람으로 사업을 하셨는데, 왕당파였기 때문에 프랑스 혁명 때 영국으로 도망을 왔다고 하는구나. 브루넬은 영국에서 큰 배를 많이 제작한 사람이래. 우리에게는 익숙한 사람이 아니지만, 영국에서는 처칠 다음으로 존경 받는 위인 2위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는구나. 그가 큰 배를 많이 제작하여 영국이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다는구나. 브루넬이 만든 배 중에 비글호도 있어. 비글호 이야기가 나왔으니, 어디로 이어질 지 감이 오겠지?

비글호는 첫 번째 선장은 항해 중에 우울증에 걸려 자살하고 말았대. 두 번째 선장 피츠로이라는 사람은 자신의 지루함을 달래주기 위해 과학자 한 명을 데리고 갔는데 그 사람이 바로 다윈이란다. 그렇게 다윈의 진화론이 시작된 것이란다. 하지만 다윈은 자신의 이론이 신을 거부하는 것이라 출판을 조심했지. 토마스 헉슬리(<멋진 신세계>의 작가 올더스 헉슬리의 할아버지)가 다윈 이론을 정설로 만들어 주기 위해 과학 관련 조직을 만들고 그 조직에서 학술지를 만들어 다윈의 진화론을 실었단다. 그렇게 만들어진 학술지가 오늘날까지 이어진 <네이처>라는구나. <네이처>라는 학술지를 보고 비슷한 형식으로 에디슨이 만든 학술지는 <사이언스>라고 하는구나.

프랑스는 공화정이 다시 왕정으로 바뀌어 나폴레옹 3세가 집권하게 되었어. 프랑스와 프로이센 사이에 전쟁인 보불전쟁이 일어났고, 프랑스는 보기 좋게 패배했단다. 파리시민은 이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고 시위를 벌이게 된단다. 프로이센은 프랑스 시민의 시위를 프랑스 군대로 진압하게 했어. 프랑스 시민과 프랑스 군대의 무력 출동이 일어나서 10만여 명이 죽었다고 하는구나. 이 비극적인 사건을 파리코민이라고 한단다. 이 때 루브르박물관의 일부가 불탔는데 그들의 아픈 역사를 잊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불타 사라진 부분은 복원하지 않았대. 우리가 작년에 루브르 박물관에 갔을 때 서쪽이 뻥 뚫려 있었는데, 그 부분이 불타고 사라진 부분이라고 하는구나. 파리코민 당시 시민들은 오페라 극장을 본거지로 사용하다 보니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말았다는구나. 이때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 바로, 뮤지컬로도 유명한 <오페라의 유령>이라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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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코뮌으로 파리 전체가 내전에 휩싸이며 주요 시설물들이 불타 없어진다. 그림은 파리의 상징 루브르 궁이 불타는 장면이다. 이 화재로 루브르 궁의 서쪽 면이었던 튈르리 궁이 전소되었다. 르네상스 군주 프랑수아 1세가 짓기 시작해 앙리 4세를 거치며 프랑스 최고 권력의 중심이던 이곳이 불타 버리자 프랑스 제3공화국 정부는 루브르 궁의 재건을 검토한다. 하지만 치욕의 역사도 역사의 한 부분이라는 의견에 따라 루브르 궁을 훼손된 채로 그대로 두게 되었다. 현재 루브르 궁은 서쪽 편이 뻥 뚫린 채로 남아 있다. 루브르 궁 맞은 편에 있던 오르세 궁 역시 불타 없어진다. 이 건물에는 프랑스 정부 주요 부서인 재무부와 최고재판소가 있었다. 폐허로 남아 있던 그 자리에 기차역이 세워졌다가, 훗날 미테랑 대통령에 의해 리노베이션이 시작되어 1986년 오르세 미술관으로 개관했다. 한편, 당시 건축 중이었던 오페라 가르니에는 코뮌 군의 시설로 쓰이던 관계로 참화를 피할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1875년 완공된 이 화려한 오페라 극장에서 코뮌 군의 시체가 발견되자 이 건물에 유령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다. 이 소문은 추리 소설 작가 가스통 르루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그는 코뮌 직후의 오페라 가르니에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잘표한다. 이것이 1911년 소설 <오페라의 유령>이다. 그는 소설의 서문에서 축음기를 파묻기 위해 인부들이 오페라 하우스의 바닥을 팠을 때 시신 한 구가 발견되었다. 나는 곧바로 이것이 오페라의 유령의 시신임을 증명할 수 있었다. 이 시신이 파리 코뮌의 희생자 중 한 사람의 것이라고 신문이 아무리 떠들어도 나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가스통 르루의 소설을 뮤지컬로 만든 것이 1986년 런던 여왕 폐하 극장에서 초연된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오페라의 유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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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코민으로 힘든 시절을 보낸 프랑스는 다시 재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1889년 프랑스혁명 100주년 기념으로 그 유명한 에펠탑을 만들게 되는데, 에펠탑이 자유의 여신상과 동일한 철골 구조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단다. 프랑스에서 미국의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선물한 자유의 여신상은 에펠과 쾨클랭이 함께 만들었는데 철골 구조로 만든 다음 겉을 씌운 것이라고 하는구나. 자유의 여신상이 속도 꽉 찬 그런 동상인줄 알았는데 아니구나. 자유의 여신상의 철골구조가 성공한 후, 에펠과 쾨클탱이 철골구조로 최대한 높게 세운 만든 것이 바로 에펠탑이란다. 에펠은 자신에게 영향을 주었던 과학자들 72명의 이름을 에펠탑에 새겼다고 하는구나. 작년에 우리가 에펠탑에 갔을 때 이 사실을 알았다면 좀더 유심히 봤을 텐데맨 눈으로 보이지 않겠지만, 줌으로 당겨보면 보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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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5)

마치 기술과 예술의 대결인 듯한 논란이 벌어지자, 에펠은 에펠탑 4면에 자신에게 가장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는 72명의 프랑스 과학 기술자들의 이름을 보란듯이 새겼다. 72명 중 상당수가 열유체 관련 인물들이며,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로는 보르다, 쿨롱, 라그랑주, 라부아지에, 몽주, 라플라스, 드장드르, 프로니, 푸리에, 앙페르, 게이뤼삭, 푸아송, 나비에, 코시, 코리올리, 카르노, 클라페롱, 스트럼, 푸코 등이 있다. 여기서 카르노는 카르노 사이클의 사디 카르노가 아니라 그의 아버지 라자르 카르노이다. 여기서 보듯 당시 사디 카르노는 그다지 유명하지 않았고, 마찬가지 이유로 에펠의 고향 선배 다르시 역시 여기에 등장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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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토마스 영이라는 사람이 빛이 파동이라는 것을 증명하면서 다시 매질 에테르가 수면 위로 올라왔단다. 파동이라고 하면 매질이 있어야 하니까 말이야. 다시 에테르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많은 사람들이 연구를 했대. 아인슈타인이 등장하기 전까지 말이야. 1900년대 과학은 산업 분야와 더욱 밀접해지면서 발전했다는구나. 존 웨슬리하얏트의 플라스틱 발명, 렌트겐의 X-ray 발견과 이를 상업화한 지멘스, 에디슨의 회사 직원으로 있다가 독립하여 자동차를 대중화 시킨 헨리 포드 등도 이야기해주었어.

헨리 포드가 자동차 사업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에디슨이 적극적으로 후원을 해주었기 때문이라는구나. 그런데 그 당시에도 가솔린 자동차가 아닌 전기 자동차와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있었다는 사실에 놀랬단다. 전기 자동차와 하이브리드를 만든 사람은 다름 아닌 포르셰.  정말 놀랄 일이로구나. 포르셰에게 전기자동차를 포기하라고 한 사람은 다름 아닌 벤츠라고 하는구나. 비싼 자동차 브랜드가 다 나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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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2-403)

하지만 석유 못지않게 유동성이 뛰어난 전기를 이용한 자동차의 개발 역시 만만치 않았다. 오스트리아 황실에 자동차를 공급하던 회사에 취직한 엔지니어 페르디난트 포르셰(Ferdinand Porsche) 1898년 전기 자동차를 개발하여 가솔린과 경쟁한다. 그는 전기 자동차의 가장 큰 문제가 무거운 배터리임을 주목하고, 1901년 세계 최초로 벤츠의 가솔린 기관을 발전기로 채택하여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개발한다. 1902년 포르셰가 군대에 입대하면서 그의 전기 자동차와 하이브리드차 개발은 중단된다. 포르셰는 군대에서 황태자의 운전병으로 일했고, 나중에 이 황태자가 암살되며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다. 한편, 포르셰가 군대에 있는 동안 세계 자동차 시장의 대변화가 미국에서 일어난다.

1903년 에디슨의 전기 회사에서 일하던 헨리 포드가 독립하여 자동차 회사를 설립한다. 아마도 전 직원 테슬라와의 싸움에서 교훈을 얻은 탓인지, 에디슨은 헨리 포드와는 친하게 지냈다. 재미있는 것은, 1903년 대한제국 황실은 포드 자동차를 구입한다. 이는 포드 자동차 회사가 설립된 직후로, 이로 보아 고종과 순종은 상당한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였음을 알 수 있다. 포드 이후 가솔린 자동차의 수요가 비약적으로 증가하며 주류였던 전기 자동차를 추월한다. 포르셰가 군대 복무를 마치고 1906년 현장에 복귀했을 즈음 대세는 이미 가솔린 자동차로 기울고 있었다. 이때 벤츠가 포르셰를 불러 전기 자동차를 포기하도록 설득하고 가솔린 자동차 개발에 투입한다. 이후 포르셰는 가솔린 자동자의 역사에 불멸의 업적들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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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플랑크는 스펙트럼을 통해 온도를 확인하는 방법을 연구했는데, 에너지를 가진 물체의 스펙트럼은 연속 스펙트럼으로만 관찰이 되었는데 어느날 보니 선 스펙트럼이 발견되었고 그로 인해 불연속 에너지의 형태의 양자를 처음으로 가정했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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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말이다. 아빠가 지금 소개해주고 있는 책은 유체과학사를 다룬 책인데 유체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안 한 것 같구나ㅠㅠ 책에 유체에 관한 이야기들도 중간중간 나오는데 그 외에 내용들이 재미있어서 유체의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은 것 같구나. 위에서 언급한 과학자들 대부분이 유체에 대한 연구를 많이 했다고 하는구나. 1900년대 들어서는 유체과학이 비행기 쪽에서 많이 발전했대.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이란 낯선 방정식이 있는데 난류를 정확히 해석할 수 있는 유체역학에서는 무척 유명한 방정식이라고 하는구나.

비행기에서 가장 유명한 회사 보잉도 사람 이름이라는구나. 보잉은 비행기를 통한 항공 우편 사업을 하다가 빈 자리에 사람을 태우기 시작했고, 당시에는 비행기 사고의 위험이 있어 공포를 호소하는 승객들이 많아서 그들의 안전을 위해 간호사를 같이 태우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스튜어디스의 시작이라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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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의 대공황으로 모든 산업이 타격을 받지만, 보잉의 항공 우편 사업은 정부와 결탁하여 엄청난 성장을 기록한다. 또한, 보잉은 우편 항공기의 빈자리에 사람을 태워, 일반인도 비행기를 탈 수 있게 했다. 이렇게 항공 승객 사업까지 장악한 보잉은 1910년 에어쇼의 굴욕을 깔끔하게 만회한다. 하지만 아직 항공기는 사고의 위험이 컸고 항공 승객이 늘면서 공포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이에 보잉사는 1930년 승객들의 안전을 위해 25세의 여간호사 엘렌 처치를 객실 승무원으로 깜짝 고용한다. 그녀가 최초의 스튜어디스로, 고객들의 폭발적인 반응으로 큰 인기를 얻자 이후 항공 여객 사업의 표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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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이 책에서 소개하지 않은 많은 인물들과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더 있는데, 이미 오늘 독서 편지가 너무 길어진 것 같구나. 나머지 이야기들은 너희들이 나중에 직접 읽는 것으로 남겨두고 마지막으로 헤디 라마드라는 천재 여배우를 소개하고 마무리하련다. 우리가 현재 없어서는 안 되는 블루투스와 와이파이의 기초가 되는 특허를 낸 사람인데, 당시에는 그의 과학적 재능보다 미모에 사람들이 더 관심이 많았다고 하는구나. 우리는 그의 과학적 재능에 더욱 감탄하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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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디 라마드(Hedy Lamarr)와 빈 중앙 묘지에 있는 그녀의 묘. 그녀는 오스트리아에서 나치의 집권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유명인 중 하나였다. 그녀는 명문가에서 태어났지만 타고난 끼로 1930년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전신 노출 영화 <엑스터시>에 출현하여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재벌과의 결혼과 망명으로 언론의 조명을 받던 인물이다. 어릴 때부터 과학 기술에 심취했던 그녀는 미국 망명 후 저녁마다 화려한 할리우드의 파티보다는 지식인들과의 토론을 즐겼고, 거기에서 나온 아이디어로 발명하는 것에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나치가 승승장구하는 것을 보고 분노하여 어뢰의 무선 조종을 획기적으로 할 수 있는 아이디어로 특허를 등록한다. 당시 기술로 분노하여 특허는 상용화가 힘들었지만, 1990년대 이후 무선 통신이 발달하며 휴대 전화의 기본이 되었고, 와이파이, 블루투스 등에도 응용되면서, 그녀의 업적이 다시 부각되고 다시 한번 전세계의 찬사를 받았다. 2000년 미국에서 사망한 그녀는 빈 중앙 묘지 볼츠만의 묘 근처에 묻혔다. 그녀의 묘비에는 영화는 순간이지만, 과학 기술은 영원하다라는, 평소 그녀가 늘 하던 말이 새겨져 있다. 한편, 그녀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폰 트랍 집으로 등장하는 잘츠부르크 저택을 소유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이 영화가 오스트리라와 나치와의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예를 들어, <사운드 오브 뮤직>에 등장하는 <에델바이스>는 오스트리아 전통곡이 아니라 영화 속 창작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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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 정도에서 오늘 독서 편지는 마무리하자꾸나.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아빠도 지은이 민태기 님만큼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힘이 없어서 두서없이 장황하게 이야기를 했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부분들을 발췌해서 너희들에게 소개해준 것으로 만족하련다. 이 책을 읽기에 너희들이 아직 조금 어릴 수 있으니 나중에 좀더 커서 꼭 한번 읽어보길 바래. 아빠는 뭔가 꽉 차는 느낌이 들었어. 아빠의 휘발성 기억력으로 다시 빠져나가겠지만 말이야. , 그럼 오늘은 이만. 긴 글 읽느라 고생했어.

 

PS,

책의 첫 문장: 1989년 영국의 음악가 존 엘리엇 가디너(John Eliot Gardiner)혁명과 낭만의 오케스트라(Orchestre Revolutionnaire et Romantique)”라는 이름의 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

책의 끝 문장: 과학은 고립된 개별 분야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이 탄생시킨 우리 사회의 대한 전체적인 통합적인 사고의 산물이다


전 유럽을 휩쓴 30년 전쟁은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마무리된다. 보헤미아에서 합스부르크 가문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이 전쟁으로 신성 로마 제국은 독일에 대한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하여 오스트리아와 동유럽으로 축소되었다. 인구의 3분의 1이 사망한 독일은 수많은 제후국으로 분할되어 유럽에서 가장 낙후된 곳으로 전락한다. 하지만 전쟁 중에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공국과 합병한 프로이센은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대규모 영토를 보장받으며 신흥 강국으로 등장한다. 또하, 80년간의 기나긴 독립 전쟁 끝에 네덜란드의 독립이 최종 확정되어, 신대륙 발견 이후 강대국으로 군림하던 네덜란드의 지배자 스페인의 몰락이 시작된다. 종교의 도그마에 갇혀 국력을 낭비한 스페인과 신성 로마 제국과 달리 철저히 실리를 챙긴 프랑스와 영국이 30년 전쟁 이후 유럽의 강대국으로 급부상한다. - P35

뉴턴은 조폐국에서 일하던 수십 년간 상당한 재력가가 되었다. 한편, 1714년 앤 여왕이 후사가 없이 사망하자 영국의 스튜어트 왕조는 단절된다. 의회는 그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앤 여왕의 먼 친척인 독일 하노버 영주 게오르크 1세를 허수아비 국왕으로 데려와 조지 1세로 세웠다. 현재 영국 왕실은 이 하노버 왕조의 후손들이다. 이러한 정권 교체 시기에 1720년 런던의 커피하우스들의 미확인 소문들과 ‘묻지 마’ 투기로 시작된 ‘남해 버블 사건(South Sea Bubble)’이라는 주식 사기 사건이 일어난다. 조폐국장 뉴턴은 여기에 휘말려 2만 파운드를 날렸다. 하지만 자산 관리에 탁월했던 그는 1727년 사망 시에 어머니의 유산을 제외하고도 3만 2000파운드(현재 가치로 약 60억 원)의 유산을 남겼다. - P49

청동은 섭씨 900도에서 녹지만, 주철은 섭씨 1,300도 이상이 되어야 녹는다. 기원전부터 주철을 녹여 제품을 만들었던 중국과 달리 서양은 16세기까지 이 온도에 도달하지 못했다. 중국에서 시작된 주철 기술로 동아시아에서는 오래전부터 무쇠솥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 차이가 동서양의 식생활을 다르게 만들었다. 즉 동양은 솥으로 밥을 지어 먹었고, 솥이 없던 서양은 화덕에 빵을 구워 먹었다. 인류는 수천 년 전부터 철기 시대에 진입했지만, 서양의 철기 문화는 중세까지만 해도 기껏해야 대장간에서 수백 도로 달군 철을 망치로 두들겨 창검이나 농기구를 만드는 수준이었다. 이러한 기술 격차를 만든 것은 바로 ‘풀무’였다. - P117

1453년 동로마 제국의 멸망은 서양사에서 중세가 종말을 고하고 근대가 시작된 기점이다. 과학 기술의 측면에서는 창과 칼 같은 냉병기에 의존하던 유럽이 대포라는 화기를 앞세운 이슬람에 굴복한 사건이기도 하다. 두 세력 모두 화포를 지니고 있었으나, 오스만 제국은 훨씬 강력한 대포로 1,000년 이상 난공불락의 요새였던 콘스탄티노플의 3중 성벽을 허물어뜨리며 함락시켰다. 이는 단순한 전쟁의 결과를 넘어서, 인류사에서 전쟁의 패러다임이 활과 창검을 이용한 용맹 무쌍희 기사도에서 화포로 상징되는 과학 기술로 이동했다는 의미를 가진다. - P145

자코모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는 마렝고 전투 당시의 로마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1796년 1차 나폴레옹 원정으로 로마에 공화정이 수립되지만, 프랑스의 지배력 상실로 공화정은 무너지고 로마의 공화파들은 지하로 숨어 투쟁한다. 이 와중에 알프스를 넘은 나폴레옹이 다시 진격해 오자 로마의 혁명적 공화파가 전면에 나서고 이를 막아내려는 왕당파의 탄압 역시 필사적이었다. 오페라는 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공화파 혁명 지도자와 사랑에 빠진 여인 토스카의 비극적 운명을 담고 있다. - P162

따라서 데카르트에게는 행성을 움직이는 힘의 전달 매체로 우주를 가득 채운 유체 에테르가 필요했고, 에테르의 소멸하지 않는 운동인 보텍스가 행성 운동의 원천이라고 보았다. 이에 대해 뉴턴은 유체의 점성 저항을 도입하여 유체 유동은 지속하지 못하고 소멸한다고 지적했다. 대신 행성은 에테르의 보텍스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중력에 의해 스스로 움직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뉴턴 역시 데카르트와 마찬가지로 중력이 작용하려면 물질의 접촉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에테르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더 나아가 자력이나 전기력에도 마찬가지로 힘의 매개체가 있다고 생각했다. - P229

엥겔스는 마르크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같은 시기 맨체스터에서 활동하던 동년배 사업가 줄의 성과에 대해 언급한다. 이들은 줄의 실험이 열, 운동, 전기, 자기 등 다양한 에너지와 힘이 서로 다른 형태로 바뀌기도 하고 상호 전환되기도 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후 엥겔스와 마르크스는 자신들의 경제학에 줄의 성과를 반영하여 노동이 상품이 되고 상품이 화폐가 되고 화폐가 상품으로서의 노동을 구매하는 과정을, 보존량으로서의 ‘가치’가 형태를 바꾸어 가며 전환된다는 물리학적 개념으로 분석한다. 이렇게 하여 카를 마르크스의 최초의 경제학 저술인 <정치 경제학 비판을 위하여>가 1859년에 출판된다. 이 책이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순식간에 매진되자 고무된 마르크스는 이 책을 확장하여 새로운 책을 저술한다. 이것이 바로 1867년의 <자본론>이다. - P267

1938년 듀폰이 개발한 테플론은 핵무기 제조 등 군사용으로 쓰여 사용이 제한적이었다. 1945년 프랑스의 한 주부는 남편이 낚싯대에 사용하는 테플론에 음식물이 잘 묻지 않는 것을 보고, 남편에게 프라이팬에 테플론을 코팅해 달라고 조른다. 하는 수 없이 남편이 알루미늄에 테플론을 코핑하여 프라이팬으로 사용했더니 음식물이 묻지 않아 편리했다. 뿐만 아니라, 이전의 주철이나 스테인리스 소재 프라이팬보다 훨씬 가벼워져 주부의 손목에 무리가 가지 않아 조리가 편해졌다. 무엇보다 열전달이 뛰어나 예열이 필요 없게 되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회사가 테팔(TEFAL)이다 테팔은 테플론(Teflon)과 알루미늄(aluminum)의 합성어로, 여기서부터 조리 기구의 혁명이 이루어졌다. - P391

"’명백한 것들은 모두 다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과연 문명이란 무엇인지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의 한 문장이다. 레비스트로스는 배 위에서 일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순간, 보이던 것들이 경계가 불분명해지며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고, 실재한다고 믿던 것들이 사라지는 모습을 여러 페이지에 걸쳐 생생히 묘사한다. 세계를 움직이는 힘이라 믿었던 유체도 이렇게 사라졌다. 그러나 분명하던 것들이 사라져야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플로지스톤이 사라지며 화학이 탄생했고, 칼로릭이 사라지면 열역학이 탄생했듯이, 마지막 유체 에테르가 사라지며 새로운 과학이 출발한다.
- P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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