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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
정지아 지음 / 마이디어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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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정지아 님의 신간 에세이를 읽었단다. 아빠가 정지아 님의 책은 이번에 세 번째구나. 앞선 두 작품이 너무 좋아서 신간 소식에 바로 주문했단다. 이번에 나온 책은 에세이란다. 책 제목은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 책 제목에 느껴지는 한 글자 단어를 이야기해 보라고 하면 이 떠오를 거야. 너희들처럼 어린 이들에게는 이 안 떠오르겠지만 말이야. 술을 먹어본 이들이라면 책 제목을 보면 술이 떠오르지 않을까 싶구나. 그래, 이 책은 술에 대한 경험담을 적은 글이란다. 술에 대한 경험담으로 책 한 권을 낼 정도면 지은이 정주아 님은 애주가가 아닐까 싶었는데, 책을 읽어 보니 이런 애주가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하지만 알코올중독은 아닌 것 같구나. 술을 좋아하지만 적당히 술을 즐기고 절제하실 줄 아는 그런 분인 것 같았어.

지은이 정지아 님은 고향이 구례인데, 아빠도 구례에 아무런 연고가 없지만, 구례라는 곳을 좋아한단다. 너희들도 기억날지 모르겠지만, 구례에 여행을 간 적이 있어. 그리고 지리산 노고단 산장에서 하룻밤 잔 적도 있고, 노고단 꼭대기에 올라가서 멋진 풍경도 감상을 했었잖니. 아마 그때 찍은 사진을 보면 기억이 날 거야. 너희들과 함께 간 것 이외에도 아빠는 여러 번 갔었단다. 주로 지리산 등반의 출발지로 갔었지. 아빠가 산을 많이 다니는 편은 아니지만, 지리산은 참 좋더구나. 갈 때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큰 산답게 나를 안아주는 그런 느낌도 받았어. 다녀오면 다리가 아파서 며칠 절룩거리기도 하지만, 그 바람, 그 냄새, 그 경치는 잊을 수가 없단다. 지은이 정지아 님은 그런 구례가 고향이라고 하시고, 타지 생활하시다가 지금은 다시 구례에서 생활하신다고 하니  좀 부럽구나. 정지아 님도 지리산을 무척 좋아하셨나 봐. 타지에 사셨을 때도 지리산이 그리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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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4)

그 시절, 나는 엄마보다도 아빠보다도 지리산이 그리웠다. 백운산을 뒷산으로, 지리산을 앞산으로 보고 자란 탓인지 모른다. 서울 살 때도 나는 언제나 산 밑에서 살았다. 집을 고르는 조건의 첫째가 산이었다. 돈 없던 대학원 시절에는 북한산 밑에 살았고, 그 뒤에는 수락산과 불암산이 이어지는 곳에 살았다. 등 뒤에 산이 버티고 있어야 숨이 쉬어졌다. 서울 사방이 산인데 가진 것이라곤 시간밖에 없는 수배자가 왜 산에를 못 갔냐고? 그 시절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산에 가면 이렇게 적힌 플래카드나 푯말이 붙어 있었다.

홀로 가는 저 등산객 간첩인가 다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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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시절 학생 운동을 해서 지명 수배를 받고 3년간 숨어 지낸 적도 있었는데, 그때도 지리산이 너무 그리워 수배자의 신분으로 무작정 지리산을 갔었다고 하는구나. 신분을 숨긴 채 뱀사골 산장에서 혼자 패스포트라는 싸구려 양주 한 잔 하고 있었는데, 정지아 님을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나기도 했대. 그렇게 숨어 다녔는데, 지리산 산골짜기에서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을 만나다니알고 봤더니 그날 그곳에 묵었던 다들 이들도 노동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었다고 하는구나. 오랜 시월이 지나고 그들은 기억나지 않고 뱀사골 산장에서 마셨던 패스포트만 기억에 남는다고

 

1.

태어나서 처음 술을 마신 날은 다들 기억할 것 같구나. 고등학교 때 술을 마시면 안 되는데, 다들 먹었단다. 고딩 때 다들 조금씩 겉멋이 들어 있었고, 그 겉멋을 부리기 좋은 것 중에 하나가 술이었으니아빠도 친구들과 맥주를 처음 먹어봤는데, 탄산 음료를 먹지 않던 아빠는 맥주 한 모금을 먹고 별로 좋아하지 않았단다. 지금이야 가끔씩 시원한 맥주를 즐기기는 하지만 말이야. 지은이 정지아 님도 처음 술을 함께 한 기억을 이야기해주었단다. 3 겨울방학 대입 시험을 끝나고, 친구들과 밤새며 놀던 시절, 지은이의 부모님이 술상을 차려 주시고 자리까지 비켜주신 에피소드그 글을 읽는데, 괜시리 아빠도 눈이 뜨거워지더구나. 그래, 그렇게 친구들과 밤샘 이야기하면서 술잔을 기울이던 적이 있었지그때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것처럼 가까이 있어 보이는데 갈 수 없다는 것이 슬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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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내 예감이 옳았다. 영원할 것 같던 청춘은 참으로 짧았다. 우울하다,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한탄하다 보니 어느새 나는 청춘이 아니었다. 청춘을 함께했던 친구 중 둘은 미국에 있어 얼굴 보기 어렵고, 국내에 있는 친구들도 각자의 일이 바빠 얼굴 보기 어렵다. 드문드문 안부 전화나 주고받는 정도다. 그래도 환갑을 목전에 둔 나이가 믿기지 않거나 어색한 날이면 포천에서 그날 밤이 떠오른다. 쓸쓸하고 불안하고 우울한 것, 그게 청춘이었구나, 그때는 정작 그걸 몰랐구나, 무릎을 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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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은이 정지아 님은 술 종류에 관계없이 좋아하는 것 같은데, 특히 양주를 좋아하는 것 같더구나. 시바스리갈, 조니 워커 블루, 오량 살루트, 맥켈란 1926 등에 대한 이야기들도 있고, 위스키, 보드카 등에 관한 에피소드들도 있더구나. , 아빠는 양주는 너무 독해서 잘 안 먹었는데, 지은이 정지아 님께서 너무 예찬을 하시다 보니 아빠도 그런 술들을 한번 먹어볼까? 하는 생각마저 들더구나. 술까지 땡기게 하는 책이로구나. 술 회사들이 이 책에 광고비를 좀 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구나.

….

술에 대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해주다 보니 아무래도 친구를 비롯하여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많이 해주더구나. 그러면서 아빠의 옛 추억 속의 사람들도 많이 생각나게 했어. 아빠가 최근에는 술자리가 많지 않아서 아빠의 술에 관한 추억은 거의 오래 전 일이다 보니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시절 함께 했던 사람들이 많이 떠올랐단다. 다들 어떻게들 살고 있는지이 책은 지은이 정지아 님의 글 솜씨로 재미를 주기도 했지만 그보다 추억을 잔뜩 소환해 주었단다. 그것이 더욱 좋았어.

작년에 처음 <아버지의 해방일지>로 처음 알게 된 정지아 님. 그 동안 어디 숨어 계셨던 건 가요? 정지아 님의 책들이 다 재미있구나. 이 책에도 소개 된 <빨치산의 딸들>도 조만간 읽어봐야겠구나. 이 책 때문에 수배를 당하기도 하셨다고 하는데, 책 제목부터 강렬하구나.

 

PS,

책의 첫 문장: 오래전, 부모님 이야기를 <빨치산의 딸>이라는 실록으로 쓰고 수배를 당했다.

책의 끝 문장: 이 책을 나의 사랑하는 친구들과 나의 블루와 요즘 나의 벗이 된 참이슬에게 바친다.

 


어쩌면 인생이란 그렇게 속절없는 게 아닐까. 무슨 일로 심사 복잡한 날이면 고립된 우주 같던 큰아버지의 방이 떠오르고, 큰아버지에게 술 한잔 대접하지 못한 게 마음에 얹히고, 위스키가 아닌 소주가 그리워진다. 위스키로는 달래지지 않는, 소주로밖에는 달랠 수 없는 어떤 슬픔이, 우리 민족에게는 있는 모양이다. - P106

이런 젠장, 달팽이가 존나 빨라 봤자 얼마나 갈 수 있겠는가. 작가로서의 내 인생이 빤히 보이는 것 같았다. 그날 존나 빠른 달팽이는 시바스리갈 700밀리 한 병을 다 비우고 꽐라가 되었다. 가관이었겠지만 뭐 괜찮다. 아무도 보지 못했으니까. 유일한 목격자인 A는 맥주 세 캔에 취해서 나보다 빨리 기억이 끊겼고, 내 기억도 끊겼으니, 뭐 아무 일도 없었던 걸로! 쿨하게. 어디에 가닿건 존나 빨리는 달려보자. 그게 그날의 결론이었다. - P164

청춘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보다 깊고 넓다고 생각했던 A 또한 나와 똑같이 청춘의 허세를 부렸을 뿐이라는 걸. 청춘은 허세다. 그러니까 청춘이지. 스무 살 언저리의 A는 인생도 문학도 독고다이, 쓸쓸하게 홀로 감당해야 하는 것, 그런 찬란하게 유치한 마음으로 홀로 걷고 홀로 마셨던 것이다. - P195

다정한 제자는 더없이 다정한 눈빛으로 빈 잔에 위스키를 따랐다. 그날 나는 다정에 대한 오랜 갈급함을 버렸다. 다정한 사람도 무심한 사람도 표현을 잘 하는 사람도 못 하는 사람도 다 괜찮다. 각기 다른 한계를 끌어안고 사는 셈이니까.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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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사 산책 6권 - 사진신부에서 민족개조론까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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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어느덧 강준만의 <한국 근대사 산책> 6권이구나. 6권의 부제는 사진신부에서 민족개조론까지로 되어 있단다. 사진신부가 뭐지? 이렇게 생각했다가 내용을 읽어보니 슬픈 내용이구나. 1900년대 초반부터 이어진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하와이에 이민을 갔잖아. 그런데 대부분 남자들이어서, 결혼적령기에 든 남자들이 결혼을 못하고 있던 거야. 그래서 하와이에 있는 남자들이 사진을 보내고 국내에 있는 여자들이 그 사진을 보고 마음에 들면 하와이로 가서 결혼을 하는 것이었단다. 그런데 문제는 사진이 지금의 사진이 아니라 젊었을 때 사진을 보내서, 신부가 하와이에 도착하고 보니 신랑이 아버지뻘인 경우도 있었대. 그래서 다시 도망하는 이들도 있었고참 슬픈 현실이구나.

1910 8 29일 경술국치로 일본에 나라를 완전히 빼앗긴 이후, 독립운동가들은 더욱 활동은 더욱 활발해졌단다. 그에 따라 일본의 대응도 더욱 강력해졌단다. 경찰의 강력한 통제에 의한 공포 정치로 우리나라를 통치했단다. 역사 시간에 무단 통치 시대라고 배웠던 기억이 있구나. 1910 12월 안중근의 동생인 안명근이 독립자금마련을 도모하던 중 체포되기도 하고, 105인 사건이라고 하는 신민회 사건도 일어났어. 신민회 사건은 총독암살모의 사건을 조작한 다음 독립운동가 105명을 투옥한 사건이란다. 신민회 사건을 이용하여 일본은 기독교를 탄압하고 박해하는데 이용했어. 당시 신민회 회장이었던 윤치호도 투옥되었지. 안타까운 것은 윤치호는 3년 형을 마치고 나와서 친일파로 변절을 했다고 하는구나.


1.

국제적으로 세상을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어. 1914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단다. 유럽에 많은 열강들이 아시아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있던 와중에 유럽에서 지들끼리 싸움이 붙은 거야. 식민지를 제대로 볼 시간이 없어진 거지. 일본은 이때다, 싶을 것 같구나. 일본은 연합국 편에 들고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다는구나. 완벽한 기회주의자. 유럽에 있는 독일에 무슨 선전포고냐고? 독일이 산둥반도를 점령하고 있었거든. 청일전쟁 후 일본이 산둥반도를 차지했다가, 열강들의 입김 때문에 뱉었는데, 거길 독일이 차지하고 있었잖니. 독일이 산둥반도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그곳에 맥주공장을 만들게 되고, 그것이 칭다오 맥주의 기원이었고... 아무튼 일본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고 독일이 차지하고 있던 산둥반도를 꿀꺽했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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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일본의 참전 목적은 유럽에서 전쟁 중인 서구 열강들이 아시아에 신경 쓸 겨를이 없음을 틈타서 힘의 공백상태에 있는 중국을 침략하려는 것이었다. 일본은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여 중국 안에 있는 독일 조차지(租借地)와 독일령 남양제도에 주둔하고 있는 영세한 규모의 독일군 병력을 공격하여 쉽게 점령함으로써 중국 대륙을 침략을 교두보를 마련하는 데 성공하게 된다. 또한 일본은 유럽에는 군수품을 수출하고 동남아에는 생필품들을 수출하는 거대한 공급기지가 됨으로써 제1차 세계대전이 일으킨 특수경기의 수혜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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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뿐만 아니라 러일전쟁 이후 대립 관계를 갖고 있던 러시아와도 같은 편이 되었어. 그래서 연해주 지역에 있는 우리나라 독립운동가의 희망이 사라져버렸지. 1918 1차 세계 대전이 연합국에 승리하면서 일본도 덩달아 승전국이 되었단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가 식민지 국가들에게 희망을 주었지만 그건 패전국의 식민지들이지, 승리한 연합국의 식민지들은 해당사항 없음이었다고 하는구나.

1910년대 일본의 무단통치는 조선왕조 지우기에도 열일을 했단다. 경복궁 등 많은 궁궐들을 파헤치고 궁 안에 조선총독부 청사 같은 흉측한 건물들을 세우기도 했어. 그러면서 조선을 철저하게 없애려고 했단다. 신문도 다 폐쇄하고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같은 것만 남겨 두었단다. 을사늑약 이후 <시일야방성대곡>으로 백성들을 감동시켰던 장지연이 이 <대한신보>에 글을 실었다고 하는구나. 글들도 일본을 지지하는 글들을 써서 친일논란이 일었다고 하는구나. 그것은 최근까지도 이어졌다고 했어.

앞서 이야기했던 1918년 윌슨의 민족자결론이 오독이든 연합국 식민지 국가와 관련이 없든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많은 희망을 안겨준 것은 사실이란다. 그리고 파란만장하지만 무능했던 왕 고종이 세상을 떴단다. 그런데 그것이 일본의 독살설이라는 소문이 돌았어. 계속된 일본의 강경 대응에 일본에 있는 조선인 유학생들 중심으로 1919 2.8독립선언이 있었단다. 윌슨의 민족자결권, 고종의 죽음으로 민심의 동요, 2.8 독립선언 등의 기류로 3.1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단다. 아빠가 올해는 이 시대에 관련된 책들을 여럿 읽어서 3.1운동에 대해서는 몇 번 이야기한 것 같구나. 특히 <만세열전>을 읽고 나서 자세히 이야기했던 것 같네. 오늘은 3.1운동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민족대표 33인의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자세를 비판한 글만 하나 소개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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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

신복룡은 세상사를 속속들이 알고나면 우리는 늘 마음이 쓸쓸해진다는 노엄 촘스키의 말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3.1운동 지도부의 전략과 당일의 처사를 볼 때 우리는 꼭 같은 심정을 느낀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3.1운동을 영웅사관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3.1운동을 민중운동의 시각에서 볼 때 그 참된 위대함과 진면목을 이해할 수 있다. 3.1운동의 주역에는 이름 없는 사람이 더 많다. 역사의 조타수(操舵手)는 당대의 지식인들이지만, 역사의 추진세력은 그 시대의 민중일 수밖에 없다.”

33인의 감옥생활은 길어야 3년이었던 데 반해 지방시위를 주도한 농민 지도자의 감옥생활은 15년이나 되었다는 지적도 있다.

김성보는 “33인 개개인을 존경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이들이 마치 민족대표로서 3.1운동을 지도한 것처럼 인식한다면 이것은 오히려 3.1운동에서 표출된 전민족의 숭고한 민족해방의 의지와 정신을 손상해버릴 수 있다그들이 보여준 모습은 그들을 민족대표라 부르기에는 너무나 나약하였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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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1운동을 보고 깜짝 놀란 일본은 태세 전환을 한단다. 무단 통치 시대를 끝내고 일명 문화 통치 시대를 연단다. 강경책만 내세우는 것이 아닌 당근과 채찍을 병행하는 방법을 썼단다. 하지만 그들의 본질은 다르지 않았어. 신문들도 몇 개 허용했는데 이때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도 출간했단다. 조선일보는 창간 때부터 친일신문이라서 일본이 허용하는데 어렵지 않았지만, 동아일보는 민족지여서 일본이 그런 신문을 허용하는 것이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있었단다. 그런데 그것도 알고 보니 일본의 꼼수였어. 눈에 보이는데 있으니 관리하기 편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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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221)

일제가 1920년에 <동아일보>의 발행을 허가한 속셈은 무엇이었을까? <조선일보>는 친일단체에게 허가한 것이므로 굳이 그 속셈을 따질 필요가 없다 하더라도 <동아일보>의 경우엔 보다 깊은 뜻이 있었을 것이다. 그 깊은 뜻은 당시 일본 고등경찰과장의 다음과 같은 술회에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동아일보>를 한다는 청년들이 장래 조선의 치안을 소란테 할 것인가 안할 것인가를 판가름하는 중심인물들임에도 틀림없습니다. 그럴수록 이런 인물들을 항상 한 자리에 모이게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적을 알아야 이쪽의 방비책도 쓸 수 있을 줄 압니다. 저의 정보망만으로 그들의 움직임을 완전 파악할 수는 없습니다. 신문을 허가함으로써 그들의 동정을 낱낱이 알 수 있을 줄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모아 놓아야만 일조유사시에 일망타진하는 경찰행동을 취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단 문제가 생겼을 때는 정간이든 발행 중지든 마음대로 시킬 수도 있습니다. 이 신문을 허용하는 것은 백 가지 이득이 있을지언정 한 가지 해도 없을 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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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이후 여기저기서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단다. 그랬다가 논의 끝에 상해에 통합 임시정부가 만들어진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란다. 하지만 처음부터 상해의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반발한 이들도 있었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공도 크긴 한데, 시작에 있어서 가장 큰 잘못은 이승만은 대통령 자리에 앉힌 것이 아닌가 싶구나. 시간이 지나면서 계파 간 갈등도 많아지기도 했지. 임시정부 내에 공산당 세력과 주류 세력의 갈등은 우리 동족을 암살하는 사건까지 벌어졌단다. 아빠가 지난 봄에 <독립 운동 열전>이라는 책에서도 소개해주었던 김립 암살 사건에 대해서도 이야기되었단다.

그 밖에 독립운동 투쟁도 다변화되었단다. 1919 11 9일에는 중국 지린성에서 김원봉이 의열단을 창단했어. 박재혁의 부산경찰서 폭탄을 투척하여 경찰서장을 죽인 사건을 비롯하여 여러 의열 활동을 했단다. 아빠가 얼마 전에 이야기해 준 홍범도 장군의 대학독립군도 이 즈음 활약했단다. 1920 6월 봉오동 전투가 있었고, 1920 10월에는 김좌진 장군과 연합하여 승리를 거둔 청산리 전투가 있었단다. 승리는 값졌지만 만여 명의 민간인을 사살한 일본의 참혹한 복수가 가슴이 아팠단다.(경신참변)

앞서 장지연의 친일논란에 대해서 이야기 했는데, 많은 이들이 변절하여 친일을 했단다. 그런 사람 중에 빠지지 않고 손 꼽히는 사람이 이광수란다. 이광수는 많은 문학 작품을 남기고 2.8 독립선언서를 작성하고 3.1운도 이후 상해로 건너가 활동하기도 했지만, 일본의 회유로 인해 국내로 귀국 후 친일을 하기 시작했다는구나. 상해에서 국내로 귀국한 이유가 애인을 만나기 위해서 귀국했다는 설도 있었어. 아무튼 이광수는 배신의 아이콘이란다. 그렇게 변절하여 아무도 그의 글을 받아주지 않았어. 그래서 익명으로 <개벽>이라는 잡지에 <민족개조론>이라는 글을 썼단다. 글의 내용은 우리 민족이 열등하니 변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지만, 친일 관련된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어. 그 글이 이광수의 글이라는 것이 밝혀진 이후 자신이 친일을 한 것에 대한 변명거리밖에 안된다는 평이 주를 이루었단다. 이광수뿐이겠니? 그들이 친일을 한 것은 개인적인 자유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광복 후 그런 친일을 한 이들에 대한 별다른 처벌이 없었다는 것이 더욱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구나. 그에 대한 대가를 받아야 했으나 당시 이승만 정부는 너무 관대하다 못해 그런 친일파들을 다시 정부 일을 맡겨 오늘날까지 친일파의 후예들이 큰소리를 치고 있으니 어찌 답답하지 않겠니.

한국 근대사 산책 6권의 이야기는 대충 이 정도로 할게. 이제 4권이 남았구나.


PS,

책의 첫 문장: 1910 8 29일은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날이었다.

책의 끝 문장: 이렇듯 겨레의 새싹으로 등장한 어린이는 훗날 가족의 제왕으로 군림하게 된다.


윌슨의 민족자결권이든 레닌의 민족자결권이든, 민족자결권에 대한 한반도의 오독은 이념적 경계선을 훌쩍 넘어버린다. 윌슨의 그 유명한 ‘14개조’에는 ‘자결’이라는 용어는 없다. 그러니 아무리 눈 씻고 찾아도 ‘민족자결권’이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진 것은 영국 수상 로이드 조지(Lloyd George, 1863~1945)가 1918년 1월 5일 영국 노동조합연맹에서의 연설에서 볼셰비키의 ‘자결’이라는 용어와 윌슨의 ‘피치자의 동의’를 섞어 쓴 이후의 일이었다. 아직까지도 한국의 역사 서술에서 ‘윌슨의 민족자결권’은 부동의 상식이자 진리다. ‘레닌의 민족자결권’ 또한 20세기 한반도의 역사에서 ‘해석학적 오류의 생산성’을 잘 드러내준다. - P130

이완용이 "어떻게 하면 기독교를 믿을 수 있느냐?"고 묻자 스코필드는 ‘기독교를 믿으려면 먼저 이천만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한다’며 일침을 놓았다고 한다. 프로그램을 제작한 김동관 프로듀서는 "우리가 모르던 역사적 사실을 담고 싶었다. 독립기념관을 비롯해 공공기관에서도 비무장, 비폭력 만세운동이 있었던 삼일절과 석호필 박사에 대한 만족할 만한 자료를 찾고 보여주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며 "특히 석 박사는 유품으로 지갑과 여권만 남길 정도로 남에게 베풀고 검소한 삶을 살아갔다"고 전했다. - P180

"우리들의 희망은 오직 한 가지 어린이들을 잘 키우는 데 있을 뿐입니다. 내 아들놈 내 딸년들을 자기의 물건 같이 여기지 말고 자기보다 한결 더 새로운 시대의 인물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린이를 어른보다 더 높게 대접해주십시오. 어린이를 결코 윽박지르지 마십시오. 어린이는 항상 칭찬해가며 기르십시오."
방정환의 연설이 끝나자 참석한 천도교, 기독교, 불교단체의 소년회장과 조선소년단장 등이 어린이, 어른들에게 당부하는 말씀을 계속 한다.
"돋는 해와 지는 해를 반드시 보기로 합시다."
"어린이를 책망할 때는 성만 내지 말고 자세하게 타일러 주십시오."
- P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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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
류시화 지음 / 수오서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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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아빠가 오랜만에 읽은 시집을 소개해줄게.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아빠는 시()를 즐겨 읽는 편은 아니란다. 시에 함축된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있고, 시인이 이야기하려는 것을 잘 모르겠더라구. 그런데 간혹 읽으면 바로 온몸으로 느껴지는 시도 있긴 했어. 그런 시인들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류시화 시인이란다. 류시화 님은 시뿐만 아니라 에세이와 여행기도 많이 쓰시는데

그런 책들도 모두 좋았어. 외국에 숨겨진, 좋은 책들도 번역해서 소개해 주시고, 아름다운 시들도 찾아서 엮어서 출간하시기도 하지. 류시화 님이 직접 지으신 시 말고, 류시화 님이 소개해 준 시들도 류시화 님의 시들처럼 읽으면 바로 받아지는 시들이었단다. 그래서 류시화 님이 다른 사람들의 시를 엮은 책들도 몇 권 읽었지.

이번에 읽은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이라는 시집은 오랜만에 출간한 류시화 님의 시집이란다. 책 제목이 책의 역할을 다한 경우도 있는데, 이번 시집도 책 제목부터 울림이 남다르단다.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 어떻게 부가 설명을 붙이지 않아도 읽는 순간 바람에 흔들리는 아름다운 꽃이 머릿속에 그려지는구나. 이 시집의 제목은 책 속에 포함되어 있는 시들 중 하나 인데, 시 전체도 좋아서 너희들에게 전체를 소개해 줄게. 추위에 시달리고 바람에 힘들어도, 그러니까 지금 삶이 힘들고 지치고 그래도 그건 너가 꽃이기 때문인 것이고, 곧 꽃이 필 것이라는 희망 섞인 시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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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5)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이다


모든 꽃나무는

홀로 봄앓이하는 겨울

봉오리를 열어

자신의 봄이 되려고 하는


너의 전 생애는

안으로 꽃 피려는 노력과

바깥으로 꽃 피려는 노력

두 가지일 것이니


꽃이 필 때

그 꽃을 맨 먼저 보는 이는

꽃나무 자신


꽃샘추위에 시달린다면

너는 곧 꽃 필 것이다

======================

1.

시집을 읽고 이야기를 해준다는 것은 그 시집에서 좋았던 시 몇 편을 소개해주는 것이 더 좋겠다 싶어 아빠가 이 시집을 읽고 따로 발췌 해 놓은 몇 편 소개하는 것으로 오늘 독서 편지를 대신하련다. 너희들도 이 시집을 한번 읽어보면 좋겠구나. 가끔 학교에서 시를 쓰는 숙제가 있는 것 같은데, 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구나.

먼저 소개해 줄 시는

흉터를 재해석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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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5)

흉터의 문장


흉터는 보여 준다

네가 상처보다 더 큰 존재라는 걸

네가 상처를 이겨 냈음을


흉터는 말해 준다

네가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지

그럼에도 네가 살아남았음을


흉터는 물에 지워지지 않는다

네가 한때 상처와 싸웠음을 기억하라고

그러므로 흉터를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그러므로 몸의 온전한 부분을

잘 보호하라고


흉터는 어쩌면

네가 무엇을 통과했는지 상기시키기 위해

스스로에게 화상 입힌 불의 흔적

네가 네 몸에 새긴 이야기


완벽한 기쁨으로 나아가기 위한

완벽한 고통


흉터는 작은 닿음에도 전율하고

숨이 멎는다

상처받은 일을 잊지 말라고

영혼을 더 이상 아픔에 내어 주지 말라고


너의 흉터를 내게 보여 달라

나는 내 흉터를 보여 줄 테니

우리는 생각보다 가까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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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다음은 색다른 시선으로 사물이나 현상을 바라보는 길을 알려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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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53)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뭇잎의 집합이 나뭇잎들이 아니라

나무라고 말하는 사람

꽃의 집합이 꽃들이 아니라

봄이라는 걸 아는 사람

물방울의 집합이 파도이고

파도의 집합이 바다라고 믿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길의 집합이 길들이 아니라

여행이라는 걸 발견한 사람

절망의 집합이 절망들이 아니라

희망이 될 수도 있음을

슬픔의 집합이 슬픔들이 아니라

힘이 될 수도 있음을 잊지 않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벽의 집합이 벽들이 아니라

감옥임을 깨달은 사람

하지만 문은 벽에 산다는 걸 기억하는 사람

날개의 집합이 날개들이 아니라

비상임을 믿는 사람

그리움의 집합이 사랑임을 아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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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사람들이 여기 저기서 때론 힘들게 때론 아름답게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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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83)

우리가 입맞춤하는 동안


우리가 입맞춤하는 동안

북극의 빙하는 무너지고

시리아 난민들은 영국 해협에서 떠오르고

카불의 여성들은 검은 히잡 속에 숨는다


우리가 입맞춤하는 동안

티베트 승려들은 몸에 불을 붙이고

후쿠시마에서는 원전수가 바다로 흘러가고

멕시코인 밀입국자들은 트럭 안에서 숨이 막힌다


우리가 입맞춤하는 동안

우한에서는 바이러스가 폐를 잠식하고

갠지스강은 성스러운 중금속으로 오염되고

인도의 노동자들은 수천 리 걸어 집으로 간다


우리가 입맞춤하는 동안

바그바드에서는 자살 폭탄 테러가 이어지고

미얀마에서는 시위 군중이 영화처럼 쓰러지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어린이 병원에 미사일을 쏜다


우리가 입맞춤하는 동안

알래스카에서는 신생아가 울음을 터뜨리고

이스탄불에서는 수도승들이 회전춤을 추고

제주 바다에서는 해녀가 숨비소리 내며 자맥질한다


우리가 입맞춤하는 동안

지구는 초속 30킬로미터로 태양 둘레를 내달리고

야생 기러기는 희망의 날갯짓으로 대륙을 건너고

혹등고래는 새끼 업고 북극해로 이동한다


우리가 입맞춤하는 동안

신이 하루를 더 허락하고

맹인 소녀는 점자로 시를 읽고

아이는 나무 아래서 주운 새를 품에 안는다

======================

마지막으로 달에 대한 예찬과 그 달을 닮은 이에 대한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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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달에 관한 명상


완전해야만 빛나는 것은

아니다

너는 너의 안에 언제나 빛날 수 있는

너를 가지고 있다

겉으로 보이는 너보다

더 큰 너를


달을 보라

완전하지 않을 때에도

매 순간 빛나는 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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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몇 편의 시들을 더 발췌하긴 했는데 너희들에게는 이 정도만 소개해 주었단다. 이 시집은 가끔씩 기분이 우울하거니 정신이 복잡할 때 아무 페이지나 펴서 한 두 편 조용히 정독하면 좋을 것 같았어.

,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손을 내밀어 보라

책의 끝 문장: 다시 이곳에 돌아와 충분히 사랑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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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12-06 08: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에 좋은 시를 감상할 수 있었네요.

bookholic 2023-12-06 23:08   좋아요 0 | URL
네~ 고맙습니다...^^
한 달 남은 2023년 좋은 시와 함께 행복한 시간 되시길...
 
범도 2 - 봉오동의 그들
방현석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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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지난 번에 이어서 방현석 님의 <범도> 2권을 이야기해줄게. 함경도를 거점으로 다시 의병대를 조직해서 홍범도는 참모총장으로 활약한다고 했잖아. 홍범도의 의병대가 또 활약을 하게 되자, 이번에도 전국 의병연합대에서 합류할 것을 제안 받았단다. 이미 1권에서 유인석의 의병대와 연합했다가 실패했던 경험이 있어서 지휘부 회의를 거쳐 이번에는 보류하고 독자적으로 일본군을 공격하면서 의병연합대를 지원하기로 했단다. 의병연합대를 알아보니 역시나 지휘부는 양반들이 다 차지하고 있었단다. 나라를 위해 의병을 일으킨 뜻은 거룩하나, 아직 신분을 따지는 이 조직은 거룩하다 할 수 없을 것 같구나.

의병연합대를 이끌고 있던 대장 이인영은 일본군과 대전을 앞두고 부친상을 당하게 된단다. 그런데 부친상이 더 중요하다면서 고향으로 가버렸단다. 장례식 때문에 며칠 떠나 있는 것도 아니고 삼년상을 마치고 돌아오겠다면 떠났다는구나. 유림의 입장에서 효()에 대한 예의를 저버릴 수 없다는 의미겠지. 그렇다고 그 거대한 의병대를 이끄는 대장이 개인적인 일로 의병대를 버린다는 것이 정말 황당하지 않을 수 없구나. 의병대도 따지자면 나라에 대한 충()을 위해 모인 것인데, ()은 유교의 으뜸 아니던가. 아무튼 전국 연합의병대를 와해되었어.

한편 홍범도가 이끄는 의병대는 일본의 하세가와가 이끄는 대규모 정규군과 결전을 벌였단다. 총대장 임창근과 참모총장 홍범도가 이끄는 의병대는 일본군의 공격을 막아냈단다. 하지만 많은 희생들도 있었어. 총대장이었던 임창근이 전사하고 말았단다. 그리고 홍범도의 아들 양순도 총상을 입었단다. 의병대를 이끌고 있는 이가 홍범도라는 사실이 일본군에도 알려지면서 집에 있는 식구들이 걱정되었단다. 이를 눈치 챈 다른 동지들이 홍범도에게 식구들을 피신시키라고 하여 총상을 입고 치료중인 아들 양순을 보냈단다. 하지만 약속했던 날이 지나도 양순이 오지 않았어. 그러자 몇몇 동지들이 홍범도를 비난했단다. 자기의 아들만 빼돌렸다고 말이야. 제 발로 의병대를 찾아왔던 양순인데, 그럴 리가 없었는데 말이야.

그렇게 홍범도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이유가 있었어. 계속된 일본의 회유 정책에 마음을 흔들리고 있던 이들이었거든. 그리고 의병대 사정도 좋지 않았어. 식량 부족으로 늘 굶주리고 있었고, 병기도 부족했어. 결국 홍범도는 산을 내려가는 것은 자유의지에 맡겼고, 일부 사람들은 의병대를 떠나 산을 내려갔단다. 그들을 기다라고 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죽음이나 감옥행이었단다. 일본의 간사한 말을 믿었던 대가였지. 일본에 속아 산에 내려갔던 이들 중에 차도선은 감옥에 갇혔다가 다시 탈옥해서 홍범도에게 돌아왔단다.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면서홍범도도 물론 그를 다시 받아주었어.


1.

아들 양순이 몰골이 초췌해져서 돌아왔단다. 어머니의 편지를 들고 왔어. 양산의 어머니, 그러니까 홍범도의 아내는 일본군에 끌려가 옥살이를 하고 있다고 했어. 감옥에서 편지를 써서 양순에게 보내줬다고 한다. 그런데 그 내용이 회유하는 내용이었어. 홍범도는 보자마자 가짜 편지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 그런데도 어머니를 위해서 회유하자는 아들 양순에게 홍범도는 총을 겨누고 화를 이기지 못하고 발사까지 했고 양순은 그 총에 귀를 맞아 다쳤단다. 주위에서 말리지 않았다면 더 큰 일이 일어날 뻔했을 거야. 며칠 뒤 홍범도의 부인 수경이 일본군의 고문을 받다가 자결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단다.

홍범도는 슬픔을 머금고 일본군과 계속 전투를 이어갔단다. 승전보를 올리기는 했지만 아군의 피해도 적지 않았어. 홍범도의 아들 양순도 전투 중에 죽고 말았단다. 아내는 고문 끝에 자결을 하고, 아들은 전투 중에 전사하고마음이 찢어지겠지만, 홍범도는 겉으로 슬픔을 드러낼 수 없었단다.

어느날 백무아가 찾아왔단다. 1권에서 수경을 만나기 전에 잠깐 썸을 탔던 여인, 백무아. 기억 나지? 백무아는 미국에 갔다고 했잖아. 백무아는 미국의 정보원이 되어 다시 우리나라에 왔어. 백무아는 이제 조선 안에서 활동하기에는 역부족한 상황이라면서, 국경 너머에서 활동하라고 조언을 했단다.

일본군의 반격은 야비했단다. 홍범도의 의병대를 도와주었던 백성들을 무차별 사살했단다. 백무아의 말대로 일본군의 화력이 막강하여 정면 승부를 할 수 없었어. 친일 앞잡이를 상대로 한 테러를 했고, 그들로부터 군자금을 확보했단다. 그리고 홍범도는 일단 국경을 넘어가기로 결정한단다. 그 많은 의병대를 다 데리고 가기가 어려워 의병대는 해산하고, 자신이 이끌었던 저격여단의 소수정예만 데리고 두만강 너머 연해주로 갔단다.


2.

당시 연해주는 독립운동의 본거지였단다. 홍범도는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이들과 교류를 하면서 미래를 도모했단다. 홍범도가 연해주에서 만난 이들 중에는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기 전의 안중근도 있었고, 독립 운동의 대부 최재형도 있었고, 간도의 책임을 맡으며 독립운동을 하던 이범윤도 있었단다. 그 밖에 많은 이들이 있었는데, 아빠가 일일이 기억을 못하겠구나. 그리고 아빠가 다른 읽은 책들에서 등장하는 아들도 있었단다. 아빠가 몇 년 전에 책을 통해 알게 된 김 알렉산드리아도 나왔고, 얼마 전에 <독립운동 열전>에서 읽었던 철혈광복단의 조선은행 현금 탈취 사건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단다. 안중근과 함께 의병 활동을 했던 엄인섭의 배신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는데 이 이야기도 <독립운동 열전>에서 나왔었지. 이 소설에서 다시 한번 이 이야기가 나와서 머리에 다시 한번 새겼단다.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이들이 가장 의지했던 세력은 바로 러시아였단다. 러일 전쟁에서 패배한 러시아는 일본의 복수의 칼을 갈고 있었거든. 독립운동가들은 이런 러시아와 연합하여 일본을 공격하려고 했어. 하지만 하늘도 무심하시지, 국제 정세는 우리에게 불리하게 이어졌단다. 1914년 세계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고, 얼마 후 러시아와 일본 모두 연합국 소속으로 전쟁에 참여하게 된단다. 그러니까 같은 편이 된 거야. 두 나라 모두 자신들의 나라에 이득이 되기 위한 선택이었단다. 그러니 둘이 싸울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단다. 일본이 연합국에 참여한 것은 일본은 독일이 차지하고 있는 산둥반도를 차지하기 위한 술수였단다. 연합국에 참여하고 바로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고 독일이 차지하고 있던 산둥반도를 공격하여 점령해 버렸단다. 유럽에서 한창 싸우고 있는 독일이 산둥반동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지.

러시아는 더 상황이 복잡했단다. 1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단다. 그러면서 1차 세계 대전에서 발을 뺐어. 독일이 망명 중이던 레닌을 소련 국내로 잠입시키는데 도움을 주었던 이유도 바로 러시아를 세계대전에서 발을 빼도록 수를 쓴 거지. 러시아 혁명을 성공한 러시아는 다시 흰 파와 붉은 파로 나뉘어 내분이 일어났어. 우리나라의 독립운동가들도 흰 파와 붉은 파를 지지하는 사람들로 양분되기도 했어. 이 때 붉은 파 소속이었던 김 알렉산드라는 외무장관을 맡고 있었어. 홍범도는 대한독립군 소속으로 외무장관인 김 알렉산드라와 만났단다. 러시아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 말이야. 그런데 안타깝게도 김 알렉산드라는 혁명 전쟁 도중 죽고 말았단다. 김 알렉산드라가 계속 살았다면 홍범도와 우리나라 독립운동에도 도움이 되었을 텐데

3.1운동 소식이 전해지고 연해주도 독립운동에 대한 열의가 더 뜨거워졌고, 홍범도도 대한국민회의를 통해 임시정부와 협력하게 되었단다. 대한독립군의 사령관이 되어 북간도 쪽으로 이동을 했고, 봉오동 전투를 치르게 된단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영화 <봉오동>은 한번 같이 보자꾸나. 아빠는 봤는데 한번 더 볼 의향이 있단다. 그 영화의 주인공은 홍범도가 아니고 봉오동에 참여한 일반 의병들이긴 하지만 재미있게 봤단다.

봉오동에서 대승을 거두긴 했지만 일본군의 야비한 복수극은 더 많은 희생자들이 생겨 가슴 아팠단다. 이 부분과 청산리 전투 부분은 아빠가 예전에 읽은 김삼웅 님의 <빨치산 대장 홍범도 평전>의 독서편지를 참고하렴. 그래서 그 때 쓴 독서편지 일부를 발췌해 보았단다. 아빠가 쓴 독서편지를 아빠가 쓰는 독서편지에 발췌하다니참 게으른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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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 6 7. 독립전쟁 제 1회전이라고도 부르는 봉오동 전투. 이것은 사실 작은 전투에서 시작했다고 하더구나. 소규모 헌병순찰대를 격파했는데이에 일본군의 반격이 있었고, 삼둔자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게 되었는데일본군을 전멸시키는 성과를 냈단다. 이에 일본군의 대대적인 보복전이 있었어. 홍범도는 전략을 세웠어. 먼저 마을의 사람들을 모두 다른 곳으로 옮기는 마을 공동화 작전을 폈고, 이후 유인 작전 전술을 폈어. 그날 날씨는 천둥 번개를 동반하여 좋지 않았지만그것은 일본군에도 마찬가지. 봉오동에 있었던 전투에서 적군 500여명을 살상하는 대승을 거두었단다.

봉오동 전투에서 대패한 일본군은 다시 한번 대규모 보복전을 준비하였단다. 이번에는 중국군에 압력을 넣어 중국군까지 동원했어. 하지만 홍범도는 오히려 중국군을 회유했어. 하지만 계속된 일본군의 압박때문에 홍범도는 봉오동를 떠날 수 밖에 없었어. 봉오동 전투가 있고 4개월 뒤일본군을 간도 지역에 대규모 군대를 보냈어. 홍범도는 그들을 용정촌에서 100여 리 떨어진 화룡현 삼도구로 유인하려고 했어. 그곳은 깊은 계곡으로 전략적으로 먼저 진을 치면 유리한 곳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결전지로 정했단다. 이번 전투에는 김좌진이 이끄는 ‘북로군정서군’도 함께 했단다. 한편일본군은 이 전투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전에 음모를 벌였어. 마적단을 돈주고 사서 간도 내 일본 영사관을 공격하여 아홉 명을 죽이는 자작극을 벌였어. 이 사건은 훈춘 사건이라고 한단다. 이 훈춘 사건을 빌미로 대규모 일본군은 간도에 주둔하게 되고, 1920 10 21일부터 26일까지 청산리 지역에서 대규모 교전을 벌이게 된단다. 백운평 전투를 시작으로 완루구 전투천수평 전투어랑촌 전투맹개골 전투만기구 전투, 쉬구 전투천불산 전투고등하 골짜기의 전투까지… 사전에 미리 진을 치고 있던 우리 군은 이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단다. 위에서 열거한 많은 전투들은 모두 홍범도의 연합독립군과 김좌진이 인솔하는 북로군정서군이 단독 혹은 연합적으로 수행했던 것이란다. 이 청산리 전투로 일본군은 1200 여명이 죽었어. 우리나라 독립군으로는 정말 큰 승리였단다. 홍범도도 이 전투에서 다리에 총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단다. 이런 업적에도 불구하고 왜청산리 대첩에서 홍범도가 빠진 교과서로 배워야 했을까. 홍범도가 나중에 소련공산당에 가입을 하긴 했지만,

그것보다는 한 사람의 의해서 역사의 왜곡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도 있어.

잠시 그 이야기를 해볼게 나중에 해방이 된 후 북로군정서군의 장교로 있었던 이범석이 국무총리를 맡았는데, 그 이범석이 회고록을 썼어. 그런데 그 회고록에 자신의 업적을 과장해서 쓰면서, 홍범도를 나쁘게 왜곡을 해서 쓴 거야. 홍범도가 도망치다가 아랫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했다고 말이야. 아주 노골적으로 왜곡했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이승만박정희 정권의 청산리대첩의 기록에는 홍범도가 전혀 없었다고 하는구나. 그러나 청산리 대첩의 진정한 주역은 홍범도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란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홍범도김좌진이범석의 세 주역들과 무명의 많은 독립군들그리고 간도 백성들의 적극적인 지지… 이것이 청산리 대첩 승리의 원동력이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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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는 청산리 전투의 이야기를 마치고 세월을 쭉 돌려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한 후 홍범도 장군의 삶의 마지막 부분을 이야기해주었단다. 청산리 전투 이후에도 자유시 참변 등 가슴 아픈 일들이 많이 있었는데 이 부분은 생략했어. 이 부분도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알 수 있겠지만, 아빠가 <빨치산 대장 홍범도 평전>을 읽고 쓴 독서 편지를 참고해도 될 듯싶어. 아니면 <빨치산 대장 홍범도 평전>를 통째로 읽으면 더 좋고 말이야. <빨치산 대장 홍범도 평전>와 소설 <범도>를 연이어서 읽으면 홍범도 장군님에 대해서는 박사가 되지 않을까 싶구나…^^

홍범도 장군의 삶을 돌이켜 볼 때, 누가 그보다 치열하게 살 수 있을까 싶구나. 군대 없는 나라 잃은 조국에서, 10대 소년 때부터 평생 진정한 군인이었던 홍범도 장군이야말로 진정한 우리나라 군인의 뿌리라고 할 수 있겠구나. 육군사관학교에서는 외면하고 있지만 말이야. 많은 사람들이 홍범도 장군님의 진면목을 알았으면 좋겠구나. 육군사관학교가 더욱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도록 말이야. 이 소설에서는 홍범도 장군에 대해서만 이야기한 것은 아니란다. 이름 없이 의병 활동을 하다 돌아가신 분들도 있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단다. 그들에게도 깊은 고마움을 느끼게 해 준 소설이었단다. 좀 두껍긴 하지만 너희들도 좀 커서 읽어봤으면 좋겠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소문으로만 들었던 13도창의군의 통문을 내게 들고 온 것은 뜻밖에도 달음이었다.

책의 끝 문장: 정미공장은 고려극장 수위 자리를 잃은 그가 죽기 전에 몇 달 동안 품팔이를 했던 곳이었다.


스스로 싸우지 않는 자에게 차례질 권리는 없단 말입니다. 말입니다, 김알렉산드라가 했던 말 위로 아주 오래전 다른 한 사람이 내게 했던 말이 메아리처럼 겹치며 귓전에 울렸다. 부디, 당신이 양반과 침략자, 남자의 편에 서지 않기를 바랍니다. 조선에서 양반보다 더한 계급이 남자입니다. 양반이나 아니나 다 그 더러운 계급의 혜택을 누린단 말입니다. 말입니다, 백무아가 조선을 떠나며 남긴 그 말을 들은 가을로부터 얼마나 많은 계절이 바뀌고 해가 지나간 다음, 나는 메아리가 되어 돌아온 그녀의 말을 듣고 있는가. 모든 차별과 억압, 침략에 반대하는 진정한 인민의 권력. 참된 민주공화정……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의 분신과 같은 소총을 꺼내들고 가늠자를 들여다 봤다. - P398

고려령 1고지를 떠나기 전에 나는 결과 특임분대 여덞 명의 분대장으로 남은 지휘관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나라가 망한 이래로 우리가 의병이 되어 목숨을 내걸고 싸운 것은 반드시 이길 수 있을 것이라 믿어서는 아니었소. 이기고 지고를 떠나 오직 의로써 싸워왔소. 그렇게 싸우다가, 저격여단의 창설자 김수협과 항일연합포연대의 청년중대장 현창하, 부중대장 이정재,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이 전사했소. 박한과 리범진이 스스로 목숨을 내던지며 항거했고, 허위와 박상진이 장렬하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소. 그들이 싸워왔기에 오늘의 싸움이 있소. 오늘 싸워내야 내일의 싸움도 있소. 이번에 싸우지 않으면 다음 싸움도 없소. 우리가 포기하지 않아야 언젠가, 대한의 누군가가 못다 한 우리의 이 싸움을 이어갈 것이오. 그렇지 않소?"
- P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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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12-05 2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bookholic님, 올해의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따뜻한 연말 좋은 시간 보내세요.^^

bookholic 2023-12-05 23:23   좋아요 1 | URL
늘 먼저 와서 축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올해도 어느덧 한 달 남았군요...
서니데이 님도 늘 그렇듯 한 해 마무리 잘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