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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연대기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조호근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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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레이 브래드버리. 그런 작가가 있는 줄도 몰랐단다. 화성과 목성 사이의 소행성 중에 그의 이름을 따서 지은 소행성도 있다고 하는구나. 그 정도로 유명한 사람인가 보구나. SF로 유명한 사람이래. 사실 지은이의 이름은 처음 들어봤지만, 그의 책들은 심심치 않게 들어봤단다. 아빠가 이번에 읽은 <화성 연대기>뿐만 아니라 <화씨 451>도 알고 있는 책제목이었단다. 이 책들은 괜찮다는 평이 있어서 언젠가는 읽어보려고 했던 책들이거든. 그런데 지은이를 관심 있게 보지 않아서, 지은이 레이 브래드버리라는 사람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던 거야.

이 책은 1950년 작품으로 화성의 정체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시기의 작품이란다. 작가의 상상 속에서 화성에는 문명을 이룬 화성인들이 살고 있었어. 읽고 나니 왜 그가 대단한 작가인지 알겠더구나.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성인들은지구인들보다 좀더 감성적이고, 예술이 발달한 사람들. 영적인 것을 중요시 하고, 텔레파시 능력도 있는 그런 사람들이었단다. 어느날 지구 원정대가 도착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을 엮은 것이 바로 <화성연대기>라는 책이란다. 처음에는 각각의 단편들로 출간을 했는데, 시대순으로 엮었다는구나. 단순히 지구인의 화성 탐험기가 아니고, 새로운 곳을 개척한다는 말로 그곳을 망쳐놓는 지구인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그런 짓 좀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그런 책으로 아빠는 이해했단다.

이 책이 나온 지 70년이 지난 오늘날, 지구인들은 화성 탐험까지는 아직 못했어. 어딘가 부서야 직성이 풀리는 지구인들은 자신들의 아름다운 행성을 부수고 있단다.

아빠가 예전부터 이 책을 읽고 싶어했는데, 작년에 깔끔하게 개정판이 나와서 반가웠단다.


1.

1999년 화성에 살고 있는 부부, 일르와 일라. 일라는 이상한 꿈을 꾸곤 했단다. 지구에서 화성에 온 지구인들을 만나는 꿈이야. 하지만, 그들에게는 말도 안 되는 꿈이었단다. 그들이 알기로는, 세 번째 행성에서는 생명체가 없거든

하지만, 있었다. 그리고 일라의 꿈처럼 화성에 사람을 보내는 원정대가 있었단다. 첫 번째 원정대의 소식이 끊어져 두 번째 원정대가 화성을 향했단다. 4 명으로 이루어진 원정대는 성공적으로 화성에 도착을 했단다. 하지만 화성인들은 그들이 자신들을 지구인이라고 소개를 했는데, 믿지 않고 정신병자 취급을 했단다. 그래서 정신과 의사한테 보냈어. 정신과 의사의 진료 결과는 이랬어. 대장이라고 하는 사람이 자신의 망상을 실제로 구현한 것이라고 했어. 화성인들은 텔리파시 능력이 뛰어나서, 자신이 생각한 것을 실제처럼 구현할 수 있고, 다른 이들도 그것을 볼 수 있었거든. 정신과 의사는 그렇게 생각했어 그를 치료하려고 했으나 잘 들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그를 안락사를 시키게 된단다. 원래 죽고 나면 만들어낸 망상은 사라져야 하는데, 하나도 사라지지 않았단다. 의사는 자신도 오염이 되었다고 하면서 자살을 선택했단다.

두 번째 원정대의 허망한 죽음. 지구에서는 그 소식을 모르고 있으니 세 번째 원정대를 보낸단다. 이번에는 17명이나 보냈어. 그들이 도착한 화성은 마치 죽은 이들이 모여 살고 있는 천국과 같은 곳이었어. 오래 전에 죽은 가족들, 친지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단다. 그리고 집도 자신이 어렸을 때 살던 그 집 그대로였어이번 원정대를 이끈 대장 존 블랙도 옛 가족들을 다시 만났어. 본격적인 탐험을 시작하기 전에 하루 정도 옛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뭔가 이상한 느낌앞서도 이야기했지만, 화성인들은 생각을 실제로 구현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했잖아. 자신의 생각뿐만 아니라, 남의 생각까지 실제로 구현할 수 있었던 거야. 원정대들이 만나고 보고 있던 것은 모두 화성인들이 만들어낸 가상이었어. 뒤늦게 속임수를 알게 된 원정대장 존 블랙.. 이미 늦었어. 그들은 모두 화성인에게 죽음을 당했단다.

네 번째 원정대 도착.. 때는 2001 6. 20. 그들이 도착한 화성은 폐허가 되어 있었단다. 화성인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어. 이유를 알게 되었어. 이전 원정대들이 와서 자신들은 죽었지만, 함께 온 수두 바이러스를 본의 아니게 화성에 퍼뜨린 거야. 백신과 치료법이 없던 화성인들은 수두에 전염이 되어 거의 전멸한 것이야. 원정대로 함께 온 고고학자 스펜더는 이 현실을 보고, 지구인들이 화성을 이렇게 만들었다면서, 더 많은 지구인들이 오지 못하게 막을 작전을 세웠어. 자신과 함께 온 원정대원들을 죽이는 것이야. 그리고 자신이 화성을 지키겠다고 말이야. 하지만 역부족이었어. 원정대장 와일더에게 죽음을 당하고 만단다. 스펜더는 죽기 전 와일더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에게 화성을 지켜 달라고 부탁을 했고, 와일더는 약속을 했단다. 스펜더가 죽기 전 와일더에게 부르짖는 외침은 이 책을 읽는 지구인들을 뜨끔하게 만들었단다. 이 책이 처음 출간한 것이 1950년인데, 그 후 반세기가 훨씬 지났지만, 지구인은 하나도 안 변하고 그 동안 아름다운 것들을 정말 많이도 망쳐 놓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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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못 할 거라 생각하십니까? 우리 지구인은 크고 아름다운 것들을 망치는 일에는 일가견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집트 카르나크 신전 한복판에 핫도그 가판대를 세우지 않은 이유는, 그저 너무 외딴곳이라 대규모 상업단지 조성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집트는 지구에서도 작은 지역에 지나지 않지요. 그러나 이 행성은 모든 곳이 오래되었고 색다릅니다. 당연히도 이곳 어딘가에 정착해서 오염시키는 작업을 시작해야겠지요. 우리는 저 운하를 록펠러 운하라고 부르고, 저 산을 킹 조지산이라 부르고, 저 바를 듀폰해라 부를 겁니다. 그리고 루스벨트와 링컨과 쿨리지시키가 탄생하고 올바른 이름으로는 영영 돌아가지 못하게 될 겁니다. 제각기 적절한 이름이 있는 곳인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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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펜더가 지구인들을 못 오게 하려고 그래서 동료들을 죽이려고 했던 이유는 분명했던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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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지구의 비뚤어지고 끝도 없이 계속되는 탐욕스러운 계획에 저 홀로 맞서야 하는 상황입니다. 저들은 그 지저분한 원자폭탄을 이리고 싣고 와서, 전쟁 기지를 확보하려고 싸움을 벌일 겁니다. 행성 하나를 이미 망쳤는데도 다른 행성까지 망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거지요. 다른 이들의 여물통에까지 오물을 쏟을 필요가 있습니까? 단순무식한 떠버리들 같으니. 여기까지 올라오니 놈들의 소위 문화라는 것뿐 아니라, 놈들의 도덕과 관습에서도 해방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는 놈들의 준거 규범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제가 할 일은 당신들을 전부 죽이고 홀로 살아가는 것뿐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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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하지만, 화성은 지구인들 차지가 되었단다. 40명으로 시작한 이민자들은 이내 화성에 이민자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어. 선교사들도 찾아왔어. 얼마 남지 않은 화성인들에게 선교하려고 말이야. 그들이 생각하기에 화성인들은 죄악이 많다고 생각했어. 선교사들은 푸른 구체의 화성 생명체를 만나게 되는데, 그 화성 생명체가 아주 고귀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단다. 그 화성 생명체가 신이라고 생각하기까지 했어.

이후 다양한 이민자들의 대한 에피소드가 이어진단다. 인종 차별을 피해 돈을 모아 로켓을 장만하여 화성으로 길을 떠난 흑인들의 이야기, 화성으로 이주를 오는 노인들의 이야기 등 여러 에피소드가 있었어. 그 중에 몇 개를 이야기 해줄게. 아직 생존해 있는 몇몇 화성인들이 있었어.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화성인들은 텔레파시 능력이 있고, 생각을 실제로 드러나게 할 수 있는 능력도 있다고 했단다. 한 화성인이 어떤 노부부에게 그들의 아들, 죽은 아들의 모습으로 나타났어. 노부부는 그가 화성인이란 걸 눈치채고도 죽은 아들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같이 살고자 했어하지만 그 화성인은 또 다른 지구인에게는 그 지구인이 그리워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었어. 화성인 자신도 제어를 할 수 없었어. 여러 지구인들에 의해 그는 혼란스러운 정신 상태가 되어 그만 죽고 말았단다.

그리고 화성에 이주 온 이들은 어느날 이상한 장면을 보게 된단다. 지구 표면이 커다란 불꽃에 휩싸이는 것을 본 거야. 지구에서 핵전쟁이 벌어진 거야. 지구에 가족을 두고 온 이주민들은 모두 지구로 향하기로 했어. 지구를 살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이제 화성은 다시 텅텅 빈 상태가 되었단다. 소식을 접하지 못하고 미처 지구로 가지 못한 월터 그립이라는 사람은 화성에 아무도 없음을 알게 되었어. 혼자 이 넓은 화성에 있으려니 무척 외로웠어. 그는 화성의 전화번호부를 보고 하나씩 전화를 걸어본단다. 그러다가 제네비브라는 여자가 전화를 받았어…. 아담과 이브를 기대했을까?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제네비브를 만나러 간 월터. 그녀를 보는 순간 자신이 원하던 여자가 아니었단다. 그러나 제네비브는 월터를 마음에 들어 했고, 결혼하자고 했어. 월터는 도망가듯 다시 자신의 집으로 와서 혼자만의 생활을 했단다. 다시는 전화를 걸지도, 오는 전화도 받지 않고 말이야.. ㅎㅎ

4차 원정대 대장이었던 와일더 생각하니? 그거 태양계의 외행성들을 탐험하다가 다시 화성에 돌아왔어. 옛 동료인 해서웨이와 그의 가족들을 만났어. 반갑게 맞아 주어 그의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는데, 알고 보니 해서웨이의 가족들은 모두 로봇이었어. 해서웨이의 가족들은 병에 걸려 오래 전에 죽었는데, 해서웨이가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을 만든 것이었어. 그런데 이번에는 해서웨이가 심장마비로 그만 죽고 말았단다. 와일더는 그 로봇들의 전원을 꺼야 하나? 생각하다가 그만두고 길을 떠났단다.

….


3.

지구에서는 핵전쟁의 여파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 화성으로 올 수 있는 로켓들도 거의 다 사라졌단다. 하지만 한 일가가 몰래 빼돌린 로켓을 타고 다시 화성으로 도망을 왔단다. 그곳에서 다시 삶을 만들어가면서 소설은 끝이 났단다. 마지막으로 화성으로 이가 식구들에게 던진 한 마디가, 이시대 지구를 살고 있는 지구인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듯 하더구나. 지구의 인류가 이 소설에서처럼 핵전쟁으로 사라질 확률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지구인들의 욕심으로 지구가 망가지고 폐허가 되어 가고 있으니 언젠가는 라디오 소리가 나지 않는 지구가 될 것 같구나. 과학이 우리 모두를 너무 빨리 앞질러갔고, 인간들은 욕심도 너무 빨리 앞질러가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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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7)

나의 삶의 방식을 태우고 있는 거다. 바로 그 삶의 방식이 지금 지구를 깨끗이 태우고 있는 것처럼 말이야. 정치인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이해해다오. 어쨌든 나는 과거에 주지사였고, 정직하다는 이유로 저들의 증오를 샀던 사람이니까. 지구의 삶은 결국 최선의 결과를 내놓지 못했단다. 과학은 우리 모두를 너무 빨리 앞질러 달려갔고, 인간은 기계의 황무지에서 길을 잃고 아이들처럼 온갖 소도구며 헬리콥터며 로켓 따위 예쁘장한 물건들에 사로잡혀 버렸지. 잘못된 요소에 심취했어. 기계를 사용하는 방법이 아니라, 기계 자체를 본질로 여기게 된 거다. 전쟁은 갈수록 커지다가 마침내 지구를 죽여 버렸지. 아무 소리도 안 나는 라디오는 그런 의미란다. 우리는 그런 모든 것에서 도망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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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의 첫 문장 : 기원후 2세기의 풍자시인인 사모사타의 루키아노스는 <진실한 이야기>라는 작품을 남겼다.

책의 끝 문장 : 일렁이는 물결 속의 화성인들도 그들을 마주 바라봤다. 한참을, 아무 말도 없이


"천만에, 그럴 리가. 그저 하나의 세계일 뿐이고, 우리는 두 번째 기회를 얻은 것뿐이지. 이유를 일러 준 사람은 없다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우리가 지구에 존재했던 이유를 일러 준 사람도 없지 않나. 그러니까, 다른 지구 말이야. 자네들이 온 지구. 그런 이제 그 지구 이전에도 다른 지구가 있었는지 알 도리가 있겠나?" - P99

평범한 미국인은 어딘가 이상한 존재는 쓸모없는 것으로 여깁니다. 시카고식 하수도 갖춰져 있지 않으면 사람 살 곳이 못 된다고 여기는 겁니다. 이해가 되나요! 아, 신이시여,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요! 그뿐 아니라 전쟁도 있지요. 우리가 떠나기 전에 한 의회 연설은 들으셨겠지요. 저들은 일이 잘 풀리면 화성에 원자력 연구 시설 겸 핵무기 보관소를 세 곳이나 건설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이 지어지면 화성은 끝장입니다. 이 모든 눈부신 것들이 사라질 겁니다. 화성인이 찾아와서 백악관 바닥에 술 냄새 풍기는 토사물을 쏟아 낸다면 기분이 어떨 것 같습니까? - P141

우리는 신앙을 잃고 삶의 의미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술이란 것이 좌절 속에서 욕망을 분출하는 행위일 뿐이라면, 종교가 자기기만일 뿐이라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신앙은 언제나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을 제공했지요. 그러나 프로이트와 다윈 덕분에 이제는 전부 배수구로 쓸려 내려갔습니다. 우리는 과거에도 지금도 길 잃은 종족일 뿐입니다. - P144

제 생각에는 모든 행성마다 저마다의 진실이 존재할 듯합니다. 언젠가 특별한 날이 찾아오면 그 모든 진실이 퍼즐의 조각처럼 짜맞춰질지도 모르지요. 참으로 영혼을 뒤흔드는 경험이었습니다. 이제 다시는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페러그린 신부님. 이곳의 진리도 지구의 진리만큼이나 진실되며, 서로가 대등한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계속 다른 행성으로 걸음을 옮기며 진실의 조각을 그 총합에 더해 나가야 합니다. 언젠가 새로운 날의 광명 앞에 온전한 진실이 모습을 드러낼 수 있도록 말입니다. - P216

근원을 살펴보면 과학이란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기적에 대한 탐구에 지나지 않으며, 예술이란 그 기적의 해석이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과학이 미학을, 그리고 아름다운 존재를 파괴하도록 방치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은 단순히 정도의 문제입니다. 지구인이라면 이런 식으로 생각합니다. ‘저 그림에는 사실 색채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거야. 색채는 특정 물질의 입자가 특정 방식으로 배열되어 빛을 반사하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것이고, 그 사실은 과학으로 증명할 수 있으니까. 따라서 색채란 내가 목격하는 실체의 일부분이라고는 할 수 없는 거지.’ 하지만 훨씬 똑똑한 화성인은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훌륭한 그림이군. 영감을 받은 인간의 손과 정신에서 창조된 거야. 저 착상과 색채는 생명 그 자체에서 온 거지. 이건 훌륭한 작품이야.’ -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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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6-01 22: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북홀릭님의 독서 범위가 정말 광범위하신거 같아요. 전 SF는 잘 안읽어봐서 너무 어럽던데 ㅎㅎ 언제나 부러운 딸과 아들 입니다~!

bookholic 2021-06-02 18:42   좋아요 2 | URL
제가 읽는 대부분의 책들은 북플러님들께서 재미있다고 하는 책들 중에서 제가 읽을 수준들의 책이랍니다~~^^ 북플러님들의 독서 범위가 광범위하신 거예요 ㅎ

scott 2021-06-02 11: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레이브레드버리는 sf장르 문학계에 보석 같은 단편을 많이 남겼죠.
화성연대기 마지막 문장
[일렁이는 물결 속의 화성인들도 그들을 마주 바라봤다. 한참을, 아무 말도 없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여운이 담겨 있습니다.

bookholic 2021-06-02 18:48   좋아요 1 | URL
네, 어떤 SF는 너무 우울하고, 어떤 SF는 좀 유치하고 그랬는데...
이번에 읽은 <화성연대기>는 유머도 있고, 생각거리도 있고... 좋았습니다.
레이 브래드버리의 다른 책들도 기웃거려 보겠습니다.^^

바람돌이 2021-06-02 11: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관심있었는데 북홀릭님 글 읽으니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더 드네요. ^^

bookholic 2021-06-02 18:50   좋아요 0 | URL
바람돌이님도 마음에 드시길 바랍니다~~^^
늘 즐독하시고요~~
 
일곱 해의 마지막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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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책 읽는 것에 대해 계획을 잘 안 잡고 그때그때 눈에 걸리는 책을 읽곤 하는데, 이번에 연속해서 읽은 <백석 평전>,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일곱 해의 마지막>은 약간 계획해서 읽은 것이란다. 백석에 관련된 책 몰아읽기. 백석 특집이라고나 할까?^^ 그 백석 특집의 마지막, 김연수 님의 <일곱 해의 마지막>을 읽었단다.

아빠가 김연수의 책은 <꾿빠이 이상>이라는 책, 한 권만 읽었단다. 소설가 이상과 그의 시집에 관한 이야기를 김연수 님의 상상력이 더해진 소설인데 재미있게 읽은 기억 있구나. 이번에 읽은 <일곱 해의 마지막>이 아빠가 읽은 김연수 님의 두 번째 소설이란다. 처음에는 이 책이 백석에 관한 책인 줄 몰랐어. 그런데 우연히 다른 분의 북플을 통해서 이 책이 백석에 관한 소설이라는 것을 알고, 구해서 읽게 된 것이란다.

일곱 해의 마지막. 지난 번에 이야기한 것처럼 그는 1962년을 끝으로 더 이상 시나 글을 쓰지 않았고 북한의 삼수군이라는 시골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1996년에 돌아가셨다고 했잖아. 그러면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일곱 해의 마지막은 언제일까. 예상했듯이 1962년 이전 일곱 해에 관한 이야기란다. 북한에서 비주류 인사로 분류되어, 그와 친했던 이들, 특히 남쪽에서 온 이들은 숙청되어 죽던 시절이었지. 백석은 삶의 목적으로 체제에 순응하면 살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글을 못쓰게 되는 지경까지그 시절의 이야기를 소설가 김연수 님에 의해 복원된 것이 이번에 읽은 <일곱 해의 마지막>이란다.

 

1.

백석의 어릴 적 이름은 백기행인데, 이 책에서는 백석이 아닌 백기행으로 부르고 있단다. 그의 청춘을 함께 했고 삶의 전성기 때 부르던 백석이 시절 암울하게 살 수 밖에 없고, 우울하게 살 수밖에 없던 시절이라서 지은이 김연수 님은 그래서 백석의 이름이 아닌 백기행이라는 이름으로 하셨나 싶구나. 이 소설은 백석의 화려했던 시절은 나오지 않는단다. 자신의 글을 숨기고, 자신의 생각을 숨기고, 당이 원하는 글을 쓰고, 당이 원하는 생각을 하는 그 시절에 관한 이야기란다.

백석 시인에게 감정 이입을 해 보았단다. 모던 보이로 살았던 젊은 시절을 뒤로 하고, 사랑에 관한 서정시와 향토색 풍기는 시를 마음 놓고 쓰던 이가 그런 것을 억제 당하면서 당이 원하는 시와 글을 써야 할 때의 좌절감어떻게 견뎌냈을까. 집에 와서 몰래 원하던 글을 마음 놓고 썼을까. 그것도 쉽지 않을 거야. 조금만 당의 노선과 어긋나면 자아비판을 해야 하니, 잘못하면 집 수색을 당할 수도 있으니 말이야. 백시행은 동시 <기린>을 쓴 적이 있는데, 조선의 동물이 아닌 기린으로 시를 썼냐고 비판을 받았다고 하는구나. 아프리카의 동물에 붉은 깃발을 단 시를 썼다는 것은 주체성이 떨어진다면서 사상 비판을 받았으니 말이야.

 

2.

순수 북한의 혈통들만 중시를 했던 시기였어. 무서운 시절이구나. 남한에서 온 인사들이 모두 숙청 당하고, 소련에서 온 인사들도 숙청 당했어. 특히 소련에서 온 인사들은 국빈급으로 모셔왔던 이들인데 말이야. 백기행과 번역 일을 함께 하던 옥심이라는 이의 아버지도 소련에서 온 사람이었던데 좌천 당했단다. 북한은 편협한 생각을 가진 이들이 권력을 잡으면서 스스로 무너진 것이 아닌가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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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91)

수령이 문학에서 낡은 사상 잔재를 반대하는 투쟁에 나서라고 교시를 내린 뒤, 전국의 도서관과 도서실은 물론이거니와 개인이 소장중인 책들 가운데 반당 반혁명 작가의 책들을 회수해 공개적으로 불태우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거기서 불타는 한 권 한 권은 저마다 하나의 세계였다. 당연히 서로의 주장은 엇갈리고, 지향점은 다르고, 문체는 제각각이다. 그렇게 세계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이고, 현실은 그 무수한 세계가 결합된 곳이다. 거기에는 아름다운 세계가 있고, 또 추악한 세계가 있다. 협잡이 판치는 세계가 있고, 단아하고 성실한 세계가 있다. 어떤 세계는 지옥에, 또 어떤 세계는 천국에 가깝다. 이 모든 세계가 모여 다채롭고도 영롱하게 반짝이는 빛을 발하면 그것이 바로 완전한 현실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책 한 권이 불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시인 한 명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현실 전체가 몰락하는 것이다. 당과 수령, 그리고 그들의 충실한 대리인인 병도는 자신들이 조립한 언어의 세계만이 리얼하다고 말하지만, 수많은 세계를 불태우고 남은 단 하나의 세계라는 점에서 그들의 현실은 한없이 쪼그라들다가 스스로 멸망하리라. 언어와 문자는 언어와 문자 자신의 것이다. 그것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다. 리얼리즘이란, 그런 언어와 문자가 스스로 실현되는 현실을 말한다. 거기에는 당과 수령은 물론이거니와 기행의 자리마저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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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에서 온 벨라라는 작가가 조선작가동맹이라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평양에 온 적이 있었어. 그리고 이 때 그를 통역해준 사람이 백기행이었어. 백기행은 그 전에 벨라의 시를 번역해서 북한에 소개하고 했었어. 행사를 마치고 백기행은 자신의 시집을 벨라에게 선물해 주었단다. 북한에서 출간할 수 없는 그의 시집그리고 조선의 단어들이 죽어간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북한의 체계에서 더 이상 시를 쓸 수 없는 시인은 말이 죽었다고 할 수밖에 없던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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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165)

전쟁은 인류가 행할 수 있는 가장 멍청한 일이지만, 그 대가는 절대로 멍청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삶에 대해 말할 수 있나요? 전쟁을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평화를, 상처를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회복을 노래할 수 있나요? 전 죽음에, 전쟁에, 상처에 책임감을 느껴요. 당신 안에서 조선어 단어들이 죽어가고 있다면, 그 죽음에 대해 당신도 책임감을 느껴야만 해요. 날마다 죽음을 생각해야만 해요. 아침저녁으로 죽음을 생각해야만 해요. 그러지 않으면 제대로 사는 게 아니에요. 매일매일 죽어가는 단어들을 생각해야만 해요. 그게 시인의 일이에요. 매일매일 세수를 하듯이. 꼬박꼬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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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백기행은 당이 원하는 것, 수령이 원하는 글만 쓰게 된단다. 삶을 위한 선택이지.. 그리고 언젠가는 다시 봄이 올 것을 기다렸는지 몰라그렇게 모진 겨울을 지내고 나면 다시 자신의 시를 쓸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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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229)

아무리 준비해도 모자란 겨울나기에 비하자면, 봄 준비는 마냥 기다리는 게 일이었다. 봄은 아기 걸음이고, 먼빛이고, 올동말동이니까. 4월 초,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 사흘이 지나면 강에서는 쩍쩍 소리 내며 버그러지는 얼음장 위로 흙탕물이 넘실거렸다. 새벽이면 골짜기 안으로 안개가 부잇하게 감돌아 돈사(豚舍) 네모 등의 가스불빛이 까물거렸고 아침햇살이 빗살처럼 번져나면 새들의 노랫소리가 흥겨웠다. 겨우내 얼어 있던 흙으로 틈이 생겨 봄볕이 스며들면 오랑캐꽃과 살구꽃과 진달래가 피어나 단조롭던 흑백의 구릉을 환한 빛으로 물들였다. 마을에 물레방아가 내걸리고 소달구지가 지나갈 즈음이면 개울가로는 처녀들이 바구니를 들고 둥글레며 쑥 따위를 캐러 다녔다. 그렇게 삶은 다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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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그런 시절은 오지 않았단다. 지난 <백석 평전>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독서 편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는 1962년을 끝으로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았어. 그가 죽은 것으로 알려진 1996년까지 말이야. 시인이 시를 쓰지 못하고 글을 쓰지 못한 시절이 30년이 넘는구나. 그렇게 평생 오지 않은 봄을 기다리는 심정이 어땠을까. 감정이입을 할수록 울컥하게 되는구나. 환생이 있어 그가 다시 태어났다면, 자유로운 나라에 다시 태어나서 원 없이 시를 쓰는 이가 되었으면 좋겠구나.

 

PS:

책의 첫 문장 : 벨라와 빅토르는 시인이다.

책의 끝 문장 : 그때까지도 기행은 어디에서도 오지 않고, 어디로도 가지 않는다는 천불에 휩싸여 선 채로 타오르는 숲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깝다면 가까운 곳에 운석이 떨어졌는데 십 년이 지나서도 기행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연해주의 시골 마을에 불덩어리 같은 운석이 떨어질 무렵, 그는 평양에서 조선민주당을 이끌던 고당 선생을 모시고 있었다. 고당 선생과는 인연이 깊었다. 선생은 오산학교에 재직하던 시절 기행의 집에서 하숙을 했고, 몇 년 뒤 그가 오산고보에 입학했을 때는 교장을 맡고 있었다. 해방이 되어 소련인들을 상대할 일이 많아지자 고당 선생은 고향 정주에 머물던 기행을 평양으로 불러들여 통역 겸 비서로 삼았다. 그때만 해도 기행은 고당 선생이 곧 남쪽의 인사들과 함께 민주공화국을 만들면 소련군과 미군이 철수하리라고 생각했다. 이제 돌이켜보면 순진한 생각이었지만, 그땐 다들 그랬다. 모두가 모두의 선의를 믿었다. - P40

시대의 눈보라 앞에 시는 그저 나약한 촛불에 지나지 않는다. 눈보라는 산문이며, 산문은 교시하는 것이다. 당과 수령의 말은 눈보라처럼 휘몰아치는 산문이다. 준엄하고 매섭고 치밀하다. 하지만 시는 말하지 않는다. 시의 할일은 눈보라 속에서도 그 불꽃을 피워 올리는 데까지다. 잠시나마 타오르는 불꽃을 통해 시의 언어는 먼 미래의 독자에게 옮겨붙는다. - P81

그 때에도 보름이면 이 세상은 달빛으로 가득차지 않겠나? 달이야 거기 사람이 있든 없든 찼다가 이지러지는 그 자연의 법칙을 반복하겠지. 그런 무심한 것이 자연이라는 것도 모르고 인간들은 거기게 정을 둔단 말이지. 마치 해와 달이 자기 인생을 구원해주기라도 하듯이 말이야. 오로, 우리의 태양이시여, 영원한 달님이시여, 라고 찬양하면서. 하지만 해와 달은 그 누구의 인생도 구원하지 않아. 우리도 그런 자연을 닮아 노래는 들리는 대로 들으면 되고, 춤은 보이는 대로 보면 되는 거지, 좋으니 나쁘니 마음을 쏟았다 뺏었다 할 필요는 없었던 거야. - P85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있는 것, 어떤 시를 쓰지 않을 수 있는 것, 무엇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을 수 있는 것, 사람이 누를 수 있는 가장 고차원적인 능력은 무엇도 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었다. - P85

사전에서 ‘세상’의 뜻풀이는 이렇게 고쳐야 해요. 영원한 것은 없는 곳이라고.

숲이 비어 있는 것을 보는 사람도 시인이고, 폐허가 꽉 차 있는 것을 보는 사람도 시인이지요. 저는 모든 폐허에서 한때의 사랑을 발견하기 위해 시를 씁니다. 괴링이 이끄는 독일 폭격기가 육백 대나 날아와 포탄을 쏟아부었을 때, 스탈린그라드는 영원히 불타는 줄 알았어요. 모든 게 엉망진창이었죠. 밤은 낮처럼, 낮은 밤처럼. 물은 불처럼, 불은 물처럼. 악은 선이 되고, 선은 악이 됐죠. 그게 바로 전쟁, 지옥의 풍경이에요. 그렇게 몇 달 뒤 꺼지지 않을 것 같았던 불이 꺼졌을 때, 도시는 완전한 폐허가 됐죠. 그 폐허를 응시하는 일이 시인의 일이잖아요? 그렇지 않나요? -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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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05-29 12:2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백석 시 좋아해서
길상사에도 가봤죠^^
김연수의 소설이 백석과 관련된 것이었군요
감사합니다~

bookholic 2021-05-29 15:17   좋아요 4 | URL
저는 법정스님을 좋아해서, 오래 전에 길상사를 가 본 적이 있는데, 백석 시인과도 이렇게 인연이 이어져 있었군요~~^^

미미 2021-05-29 11:25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저는 백석 시집과 함께 읽어야겠어요! *^^* 몇몇 인용문도 담아갑니다.

bookholic 2021-05-29 17:58   좋아요 3 | URL
백석 관련된 책들을 함께 읽었더니,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즐독하시길...^^

mini74 2021-05-29 16:4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다시 읽고 싶어지는 리뷰입니다. *^^*

bookholic 2021-05-29 18:00   좋아요 4 | URL
^^ 고맙습니다~~
읽어야할 책들은 많지만, 두번씩 봐도 좋은 책들은 분명 있는 것 같습니다~~^^

나탈리 2021-05-29 21:2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백석에 관한 작품인지 모르고 읽었다가, 알고나서 더 흥미롭게 읽은 작품이에요! ㅎㅎ
김연수 작가님은 문장과 구절을 참 아릅답게 쓰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백석시인과 묘하게 더 잘어울리는거 같다는 기억이 남았던 책이네요!

bookholic 2021-05-30 07:00   좋아요 1 | URL
저는 김연수 님의 작품은 <꾿빠이 이상>과 <일곱 해의 마지막>만 읽어보아서 잘 모르겠지만, 두 작품 모두 말씀하신 것 것처럼 한 문장 한 문장 정성이 담긴 듯했습니다.
김연수 님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봐야겠어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지음, 백시나 엮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지난번 안도현 님의 <백석 평전>을 이야기해 주면서, 백석의 시집도 같이 읽었다고 했잖아. 오늘은 그 시집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게. 책 표지는 백석 인생의 전성기 시절일 것 같은 시기의 사진으로 꾸몄단다. 잘 차려 입은 양복에, 개성 넘치는 헤어 스타일, 뒤에는 칠판에 직접 쓴 것 같은 필기체 영어함흥 영생고보에서 선생님 시절의 사진이란다. 신문 기사에도 실린 사진으로 알고 있는데, 흑백 사진임에도 싱싱한 젊음이 느껴지는구나. 백석 시인에 대한 이야기는 지난번 <백석 평전>에서 이야기했으니, 오늘은 생략하고 바로 그의 시 이야기를 해 보자꾸나.


1.

젊은 시절은 모던 보이로 살았던 백석하지만 그의 시는 우리 고유의 언어들과 고유의 감정들이 가득 담겨 있었단다. 현대적인 감성은 옷과 외모에만 있었고, 그의 영혼은 한적하고 평화로운 우리나라 시골에 있었단다. 일제 시대 핍박 받고 힘든 시간을 잠시 잊을 정도의 아름다운 서정시들이었단다. 일제에 저항하기 위한 저항시로 자신의 뜻을 이야기하는 시인도 있지만, 백석처럼 엉망인 세상을 외면하고 순수했던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시를 통해 아픈 세상을 달래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그가 사용하는 말들이 아빠가 몰랐던 순수한 우리말인지 그의 고향 사투리인지 모르겠지만, 읽어도 무슨 뜻인지 잘 모르는 말들도 많았단다. 책 밑에 어려운 단어의 뜻들을 적어 주었어. 그런데 뜻도 잘 모르는 우리말들을 소리 내어 읽어보면 감칠맛이 난다고 할까, 만들어지는 소리들이 재미있단다. 다음의 시를 한번 보자꾸나.

 넘언집 범 같은 노큰마니라는 시의 일부야. 제목부터 무슨 말인가 싶지? 넘언집은 산 너머, 고개 너무의 집이라는 뜻이고, 노큰머니는 노() 할머니라는 뜻으로 늙은 할머니라는 뜻이란다. 그러니까 산 고개 너머에 계신 범 같은 늙은 할머니가 시의 제목이 되는 거야. 노큰마니라는 말도 아빠도 처음 보는 말인 것 같구나. 이 시의 첫 부분은 아래와 같이 시작한단다. 한번 소리 내어 읽어보렴. 얼럭궁, 덜럭궁, 뜯개조박, 뵈짜배기, 끼애리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왠지 정겨운 말들의 연속이고, 입에서 나오는 소리도 재미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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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황토 마루 수무나무에 얼럭궁 덜럭궁 색동헝겊 뜯개조박 뵈짜배기 걸리고 오쟁이 끼애리 달리고 소삼은 엄신 같은 딥세기도 열린 국수당고개를 몇 번이고 튀튀 춤을 뱉고 넘어가면 골안에 아늑히 묵은 영동이 무겁기도 할 집이 한 채 안기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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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무나무는 누릅 나무과의 속하는 활엽수이고, 뜯개조박은 뜯어진 헝겊조각이란 뜻이고, 뵈짜배기는 베쪼가리, 즉 천조각이란 뜻이고, 오쟁이는 짚으로 작게 엮어 만든 섬, 끼애리는 짚으로 길게 묶어 동인 것, 꾸러미라는 뜻이고, ‘소삼은성글게 엮거나 짠이라는 뜻이고, 엄신은 엎집신이라고 하는데 상제가 초상 때부터 졸곡(卒哭) 때까지 신는 짚신을 말하여, 딥세기는 짚신이고, 국수당은 마을의 본향 당신을 모신 집, 그러니까 서낭당이라고 생각하면 되고, 영동(楹棟)은 기둥과 서까래라는 뜻이란다. 얼럭궁 덜럭궁의 뜻한 책에 적혀있지 않았지만, 얼룩덜룩이라는 뜻을 것 같구나.

아빠가 이 책에서 읽은 시들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를 고르라면 수라(修羅)’라는 시란다. 수라(修羅)는 아수라(阿修羅)의 준말로 불교에서 나오는 악귀 중에 하나란다. 여기서 수라는 누구일까. 읽어보면 누가 수라인지 바로 알 수 있단다. 이 시는 한 편의 짧은 이야기를 보는 것 같은데, 그 상황이 재미있으면서도 안타깝더구나. 그 때 백석이 쓸어 보낸 거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거미 가족들이 다시 만났을까? 이런 생각이 한 동안 머릿속에 맴돌았단다. 이 시가 너무 재미있어서 너희들에게도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다시 한번 같이 읽어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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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라(修羅)

거미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언제인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작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 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아나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이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가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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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힘든 시절을 살았지만, 용기만은 잃지 않은 생활을 이야기한 것 같은 아래 시도 좋았단다. 오늘날 그의 시를 읽는 이들도 용기와 힘을 얻을 수 있는 시 같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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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가난해도 서럽지 않다

우리들은 외로워할 까닭은 없다

그리고 누구 하나 부럽지도 않다

 -- <선우사(膳友辭)>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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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시 쓰기 좋아하는 이가 인생의 절반 가까이를 시를 못 쓰고 지냈으니 얼마나 가슴이 아팠겠니. 아빠가 <백석 평전> 이야기할 때 한 것처럼, 그의 미발표 시들이 어딘가 잔뜩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오늘은 짧게 마칠게.


PS:

책의 첫 문장 :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책의 끝 문장 : 짐짓 그의 등뒤에 심지를 불끈 도두고 화미한 여심을 산 너머로 훔처보는 태양의 연정을 나는 동정해도 좋다


내가 언제나 무서운 외갓집은
초저녁이면 안팎마당이 그득하니 하이얀 나비수염을 물은 보득지근한 북쪽재비들이 씨굴씨굴 모여서는 쨩쨩쨩쨩 쇳스럽게 울어대고
밤이면 무엇이 기화골에 무리돌을 던지고 뒤우란 배나무에 쩨듯하니 줄등을 헤여달고 부뚜막의 큰솥 적은솥을 모조리 뽑아놓고 재통에 간 사람의 목덜미를 그냥그냥 나려 눌러선 잿다리 아래로 처박고
그리고 새벽녘이면 고방 시렁에 채국채국 얹어둔 모랭이 목판 시루며 함지가 땅바닥에 넘너른히 널리는 집이다. --<외갓집>
- P33

황토 마루 수무나무에 얼럭웅 덜럭궁 색동헝겊 뜯개조박 뵈짜배기 걸리고 오쟁이 끼애리 달리고 소삼은 엄신 같은 딥세기도 열린 국수당고개를 몇 번이고 튀튀 춤을 뱉고 넘어가면 골안에 아늑히 묵은 영동이 무겁기도 할 집이 한 채 안기었는데
--<넘언집 범 같은 노큰머니> 中에서…
- P38

이미 해는 늙고 달은 파리하고 바람은 미치고 보래구름만 혼자 넋없이 떠도는데

아, 나의 조상은 현재는 일가친척은 정다운 이웃은 그리운 것은 사랑하는 것은 우러르는 것은 나의 자랑은 나의 힘은 없다 바람과 물과 세월과 같이 지나가고 없다
-- <북방(北方)에서> 中에서…
- P59

빨간 물 짙게 얼굴이 아름답지 않으뇨
빨간 정(情) 무르녹은 마음이 아름답지 않으뇨
단풍든 시절은 새빨간 웃음을 웃고 새빨간 말을 지줄댄다. 어데 청춘을 보낸 서러움이 있느뇨
어데 노사(老死)를 앞둘 두려움이 있느뇨
재화가 한끝 풍성하야 시월(十月) 햇살이 무색하다
사랑에 한창 익어서 실찐 띠몸이 불탄다
영화의 자랑이 한창 현란해서 청청한울이 눈부셔 한다
시월(十月) 시절은 단풍이 얼굴이요, 또 마음인데 시월단풍도 높다란 낭떨어지에 두서너 나무 깨웃듬이 외로히 서서 한들거리는 것이 기로다
시월 단풍은 아름다우나 사랑하기를 삼갈 것이니 울어서도 다하지 못한 독한 원한이 빨간 자주로 지지우리지 않느뇨
-- <단풍>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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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5-29 11: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백석의 시는 언제 읽어도 좋습니다.
[북쪽재비들이 씨굴씨굴 모여서는 쨩쨩쨩쨩 쇳스럽게 울어대고]
한국어의 이렇게 토속적인 의성어가 있다니
우리는 얼마나 많은 한국어를 잊고 살고 있을까요
북홀릭님 주말 가족 모두 멋지게 보내세요 ^ㅅ^

bookholic 2021-05-29 18:02   좋아요 1 | URL
불과 백년도 안 된 시절의 시들인데, 모르는 말들이 너무 많아요..
그만큼 한글의 아름다운 말들이 많이 사라진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백 년 후에는 또 어떤 말들이 사라져 있을까요?
좋은 우리말들 많이 써야겠어요..
고맙습니다~~ scott님도 즐거운 주말 되시고요~~^^
 
백석 평전
안도현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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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예전에 안도현 시인이 <백석 평전>을 썼단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오래 전에 알라딘 인터넷 서점 이벤트로 이 <백석 평전>을 전자책을 무료로 받은 기억이 있단다. 그래서 가끔 스마트폰으로 읽어보려고 했는데, 아빠는 스마트폰으로 책 보는 것이 익숙지 않더구나. 그래서 앞에 몇 페이지 읽다가 그만 두었단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읽은 박균호 님의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에서 백석 시인을 소개한 준 것을 보고, 안도현 시인의 <백석 평전>이 생각나서 다시 읽어보고 싶었단다. 예전에 받은 <백석 평전>의 전자책을 아직도 읽을 수 있더구나. 그런데 전자책은 잘 안 읽어질 것 같아서, 검색해보니, 괜찮은 품질의 중고로 나와 있는 게 있어서 그걸 사서 읽었단다.

이왕 백석 시인에 관한 것을 읽는 김에, 관련된 책을 같이 읽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연달아 읽었단다. 안도현 님의 <백석 평전> 백석의 시를 모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김연수 님의 <일곱 해의 마지막>. 오늘은 먼저 안도현 님의 <백석 평전>을 이야기해 줄게.


1.

1912 7 1일 평안북도 정주라는 곳에서 태어났단다. 어린 시절의 이름은 백기행이었어. 명문인 오산고보를 졸업했는데, 학창 시절 김소월 시인을 존경하여 시인에 대한 꿈도 있었지만, 그보다도 학교 선생님이 그의 첫 번째 꿈이었단다. 영어에 재능이 뛰어났다고 하는구나. 나중에는 러시아도 잘 하셨다고 하니, 언어에 감각이 있으신가 보구나. 부럽네.

오산고보를 졸업했지만, 일본이 지배하고 있던 시절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어. 더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집안이 넉넉하지는 못했고 말이야. 이때 사업가 방응모의 후원으로 일본 유학을 갈 수 있었단다. 친일 신문인 조선일보의 사장 방응모 맞단다. 골수 친일이 되기 전에는 학생들의 학비를 대주던 리즈 시절도 있었던 것 같구나. 방응모의 후원으로 일본 아오야마 학원에서 4년 동안을 공부를 했어. 유학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백석. 방응모의 부탁으로 조선일보에 입사하게 된단다. 당시 그의 나이 스물 셋. 젊음이 절정을 이루던 시기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그는 멋 내기 좋아하는 젊은이였단다. 모던 보이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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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당시 <조선일보> 사옥은 태평로 1가에 있던 2층짜리 조그마한 건물이었다. 백석은 광화문을 지나 세종로를 걸어 신문사로 출근했다. 멀리서 봐도 그는 남들의 눈에 금방 들어올 만큼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숱이 많은 새까만 곱슬머리에 선명한 눈썹에다 얼굴 한가운데에는 서양 사람처럼 콧날이 깎아놓은 듯 우뚝 자리 잡고 있었다. 균형 잡힌 어깨와 다리를 가진 훤칠한 키의 백석이 세종로를 겅중겅중 걸어가면 누구나 다시 한 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목이 유난히 긴 이 청년은 늘 넥타이를 맨 정장 차림이었다. 길 가던 여성들이 이런 모던보이를 마주치기라도 하면 화들짝 놀라며 곁눈질을 하기 일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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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에서 기자로 일하면서 번역으로 외국의 문학작품을 소개해 주기고 했어. 이때 허준, 신현중과 어울리면서 광화문 3인방이라는 별명도 생겼어. 허준이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운명적인 사랑을 만나게 되었단다. 통영에서 온 박경련이라는 이에게 첫눈에 반했단다. 박경련은 이화여고를 나온 신여성이었어. 박경련은 광화문 3인방인 신현중의 고향 후배였어. 그래서 백석은 신현중에게 부탁해서 같이 통영으로 박경련을 만나러 가기도 했단다. 하지만, 길이 어긋나서 만나지 못했어.

백석은 이렇게 사랑만 한 것은 아니야. 틈틈이 쓴 시들을 모아 시집 <사슴>을 출간했단다. 100부 한정판이고, 가격도 다른 시집의 두 배 가격이 될 정도로 고급으로 만들었다고 하는구나. 정말 멋쟁이로구나. 이 시에 대한 평단의 평가는 호불호가 갈리기도 했지만,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시집이 되었단다. 그의 시가 유명하고 사랑 받는 토속적이고 향토색이 짙기 때문이란다. 모던 보이였던 그에게서 그런 시가 나오다니, 내면의 순수한 시인의 마음이 가득 들어 있었나 보구나.


2.

2년 기자 생활을 마치고 백석은 어렸을 때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함흥의 영생고보에 갔단다. 이곳에서 영어 선생님을 하게 되었단다. 이 때 칠판 앞에서 찍은 백석의 사진이 그의 사진 중에 가장 유명한 한 컷이 되었는데, 밝게 웃는 모습에 많은 학생들에게도 인기가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이때 제자들 중에 동화 작가로 유명한 강소천도 있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서울에서 더 위로 올라왔으니 사랑하는 박경련이 있는 통영과는 더 멀어졌구나. 하지만, 그의 사랑하는 마음은 더 커져만 갔어.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용기 있는 자만이 미인을 얻을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한 것인지, 백석은 청혼하기 위해 다시 통영으로 갔단다. 하지만, 박경련의 부모님들이 반대했단다. 그 반대에 한 몫을 한 것이 백석 엄마가 기생이라는 근거 없는 소문이었는데, 그 소문을 낸 이가 바로 백석의 친구였던 신현중이었단다. 신형중도 뒤늦게 박경련을 사랑해서, 연적인 백석의 험담을 했던 거란다. 깊은 좌절을 안고 함흥으로 돌아온 백석. 얼마 뒤 접한 신현중과 박경련의 결혼 소식은 얼마나 슬펐겠니. 그것도 친구의 배신백석은 이후 신현중과 연락을 끊었다고 하는구나.

….

백석은 함흥에서 또 한 명의 여인을 사랑하게 되는데, 지덕체를 고루 갖춘 진향이라고 하는 기생이었딴다. 진향과 사랑에 빠진 백성은 진향에게 자야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었단다. 백석와 자야의 사랑은 이후에도 계속 된단다. 자야의 본명은 김영한인데, 나중에 서울로 와서 고급 요정을 운영하게 되는데, 말년이 그 술집을 그대로 법정 스님께 시주를 해서 길상사라는 절을 창건하게 된단다. 법정 스님의 길상사가 요정을 시주 받아 지었다는 이야기는 알고 있었는데, 그 분이 백석의 애인이었다는 것은 얼마 전에 읽은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에서 처음 알게 되었단다. 멋진 분들이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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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

백석의 연인이었던 자야 김영한은 서울 성북동에 대원각이라는 큰 요정을 경영했다. 1970년대 후반까지 거물 정치인과 기업인들이 이 요정을 드나들었다. 1996년 대원각이 들어선 7,000여 평의 땅을 법정 스님에게 시주했고, 1년 뒤에 사찰 길상사가 완공되었다. 1997년 김영한은 백석 연구자 이동순의 주선으로 창작과비평사에서 백석문학상을 제정하기도 했다. 1999년 자야 여사는 여든세 살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백석의 연인답게 이런 유언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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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흥 영생고보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시와 산문을 쓰던 이 시절이 그 인생의 전성기가 아닌가 싶구나. 백석은 영생고보의 축구부도 담당하고 있었는데, 서울에서 시합이 있어서 학생들을 데리고 서울 출장을 왔는데, 학생들 관리는 하지 않고 자야의 집에 찾아가서 지냈다고 하는구나. 그것이 들통이 나서, 징계를 받았는데 그 일로 학교는 그만 두었다고 했어.

그리고 조선일보에 재취업을 해서 <여성>이라는 잡지에서 일하게 되었단다. 이 잡지가 크게 히트를 쳤어. 이 시절이 1930년대였는데, 우리나라 1930년대는 일제 침략이 길어지면서, 우리나라의 광복을 하나 둘 꿈을 접을 때였어. 여러 분야의 유력 인사들이 친일로 돌아서던 시기였단다. 문학을 하던 이들도 친일로 돌아서기 시작했고, 조선일보도 이 때부터 일본 찬양을 하기 시작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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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하지만 그는 1933년 일제의 기관총 구입비용 1,600만원을 헌납한 것을 시작으로 중일전쟁을 전후해 친일의 길로 들어섰다. 1937 1 1일자 <조선일보> 1면에 일왕 부부 사진을 크게 실어 충성을 표시하는가 하면, 전쟁 발발 직후 8 2일자 사설에서는 출정 장병을 향하여 위로 고무 격려의 편지 한 장 보내는 것도 총후의 임무라고 썼다. 그 후에는 국방헌금을 모은다는 사고를 내고 전쟁자금 모금에 앞장섰다. <동아일보>의 김성수 사장도 군사헌금 1,000만원을 헌납하는 등 중일전쟁을 전후에 친일신문의 대열에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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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일본에서 유학까지 갔다 왔지만, 그는 한번도 일본말로 시를 지은 적이 없고, 창씨개명도 하지 않았다고 하는구나. 그가 적극적인 항일 투쟁이나 독립 운동을 한 것은 아니지만, 서정주나 이광수 등과 같이 친일로 돌아서지는 않았어. 국내 사정이 이렇게 돌아가게 되자, 이 시기에 만주 산징으로 이주하게 된단다. 그곳에서 화가 문학수의 동생인 문경옥과 결혼을 했지만, 1년 후에 이혼을 했단다. 이 문경옥이라는 분은 나중에 북한에서 최고의 여성 음악가가 된다고 하는구나. 그는 만주에 머물면서 일체 문학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가 해방을 맞이하게 된단다.


3.

해방이 되고 나서 백석은 신의주를 거쳐 고향 정주에 돌아왔단다. 그리고 예전 학창 시절 인연이 있던 조만식의 부탁으로 통역 비서 역할을 위해 평양에 왔단다. 그리고 리윤희와 결혼도 하였단다. 그리고 러시아 문학을 번역하는 일도 하고, 시도 다시 쓰기 시작했단다. 해방된 조국에서 의미 있는 일도 하고, 결혼도 하고 행복하게 삶을 그렸을 수도 있을 거야. 하지만 나라는 백성들의 행복한 삶을 그대로 두지 않았어. 남과 북으로 갈라진 한반도는 해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전쟁에 휩싸이게 된단다.

전쟁이 끝나고 다시 창작 활동을 하게 되는데, 아이들이 있어서 그래서인지 아이들을 위한 작품도 썼단다. 특히 동시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동화시집들을 써냈어. 우리 집에도 백석의 동화 시집이 한 권 있잖아. 너희들이 썩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말이야..^^

아무튼 전쟁 후 북한에서 그의 창작 활동은 순탄치 않았단다. 일부 작품들에 대해 비판을 받게 되었고, 자아 비판을 받는 자리도 여럿 있었어. 그런 자아 비판의 결말은 함경도 삼수군에 가서 현지 지도를 하라는 것이었어. 말이 현지 지도이지, 거의 유배나 다름 없었단다. 고향도 아닌 오지 삼수에 가라고 했으니 말이야. 삼수갑산이라는 말이 있단다. 함경도의 삼수군과 갑산군을 함께 부르는 말인데, 그 말의 숨겨진 뜻에는 엄청나게 힘든 오지를 뜻하고, 몹시 어려운 상황을 빗대어 이야기하는 뜻에 있단다. 그러니 삼수군이 얼마나 살기 어려운 곳이겠니. 그래도 숙청당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어야 했나. 남한 출신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작가들도 많이 숙청당했던 시절이니까. 아무런 연고 없는 삼수군에서 그는 국가에 순응하면 잘 지냈단다. 중앙 정부를 찬양하는 시와 글도 쓰고 그랬단다. 하지만 끝내 삼수군에서 돌아오지 못했다고 하는구나. 1962 <조국의 바다여>라는 작품을 마지막으로 창작 활동을 접었다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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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

<조국의 바다여>는 백석이 북한에서 발표한 마지막 시였다. 아니, 그가 이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겨놓은 시였다. 평양에서 삼수군으로 쫓겨날 즈음 백석에게 시는 생활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다. 시인으로 살아남느냐 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한 인간으로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백석에게는 더 시급했다. 해방 이후 백석의 북한에서의 작품 활동을 단순히 예술성을 망각하고 시를 정치도구화한 파렴치한 행위로 몰아붙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백석이 북한에서 아동문학논쟁을 통해 문학의 자율성과 미학주의를 주장한 마지막 시인 중 한 사람이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당의 지도 아래 놓인 북한의 문학을 조금이라도 더 보편적인 미학의 논리로 되돌려놓겠다는 그의 문학주의는 결국 꺾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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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창작활동을 그만두어서 1963년 즈음에 그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단다. 그래서 한 동안 백석이 그 때 죽었다고 알려졌었대. 하지만, 그는 삼수군에서 조용히 농부로 살아갔던 거야. 1996 85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고 하는구나. 이 책에 백석의 노년에 식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실려 있단다. 젊은 시절 모던 보이 백석의 모습은 간데 없고, 한 노인의 지나온 인생이 보였단다. 그의 식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니, 넉넉하지는 못했지만, 행복해 보이더구나.

글쟁이가 글을 쓸 수 없던 많은 시간들누가 백석을 그런 삶을 살게 만들었는가. 아픈 우리나라 역사로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단다. 비록 백석이 출간을 하지는 않았지만, 혹시 시골에서 써 놓은 글과 시가 있지 않을까. 자녀분들이 그 시와 글들을 잘 보관하고는 있지 않을까. 언젠가는 그의 미출시 작품들이 무더기로 공개되는 것은 아닐까. 그런 기대를 기대해 보며, 오늘 독서 편지는 마치련다.


PS:

책의 첫 문장 : 1945 8 25, 소련군 사령부는 경성에서 신의주를 운행하는 경의선 철도를 차단하였다.

책의 끝 문장 : 고형진의 <백석 시를 읽는다는 것>(문학동네, 2013)에 따르면 백석과 관련된 단행본, 학위논문, 평론, 에세이 등의 연구물이 800개가 넘는다고 한다.


음식에는 가족이라는 공동운명체의 기질과 취향과 풍습이 반영되어 있다. 음식을 먹는다는 건 어떻게 보면 매우 사소하고 일상적인 행위일 뿐이다. 하지만 함께 밥을 먹었던 기억은 가족을 단단히 결합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음식의 공유는 기억의 공유로 곧잘 이어진다. 사소한 것을 통해 ‘조선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묻는 게 백석의 시라면 백석에게 음식은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먹을거리에 그치지 않는다. 백석의 시를 지배하는 음식이 거의 모든 시에 등장한다는 것은 그가 음식을 감각의 총화로 파악하고 의도적으로 시에 배치했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음식은 놀라운 친화력을 발휘해 독자를 시의 자장 안으로 강하게 끌어들인다. - P16

백석은 혼란스러워 머리를 흔들었다. 백석은 일본에 유학을 할 때나 귀국한 뒤에 단 한 편도 일본어로 작품을 쓰지 않았다. 수업을 하거나 사적인 편지를 쓸 때에도 일본어를 섞는 일을 극도로 자제했다. 의사전달도 문학적인 표현도 조선어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고향 평안도의 방언은 그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백석만의 특허상표였다. 그의 몸은 함경도에 머물고 있었지만 백석은 시시때때로 머리에 떠오르는 고향의 방언 때문에 외로움을 누를 수 있었다. - P161

일제는 황국 신민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비국민’이라는 굴레를 씌워 분리하는 정책을 폈다. 식민지를 철저하게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통치하겠다는 발상이었다. 그것은 백석이 보기에 굴종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백석은 ‘내선일체’를 강요하고 빠르게 미쳐가는 조선에서 더 이상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조선과 일본은, 엄연히 민족과 언어가 다른데도 그 둘을 하나로 여기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경성에 계속 남아 있다가는 ‘내선일체’의 수렁으로 빠져들 게 뻔했다. - P218

백석은 ‘1956년도 <아동문학>에 발표된 시인 및 서클 작품들에 대하여’라는 총평 형식의 글에서 시와 동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매우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피력했다. 시의 요건은 생활에서 우러난 감정, 사색의 중요성, 언어를 부리를 법이라고 명쾌하게 정리했다. 하지만 이 자신감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북한문학의 주류가 항일혁명문학에 이은 김일성 유일사상을 바탕으로 한 주체문학으로 변화하면서 북한문학에서 자율성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게 되었다. - P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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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5-24 00:0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진짜 ‘아! 백석!‘이네요. 저도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에 나온 백석 스토리 넘 재미나게 읽었어요. 백석 평전도 담아놓은 책인데 이렇게 다시 떠오르니 읽어야겠어욤!ㅎㅎ

bookholic 2021-05-24 22:14   좋아요 3 | URL
농부가 된 시인...
하지만 그 영혼만은 영원히 시인이었을 거라 믿습니다.
노년의 사진 속에서도 여전히 시인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mini74 2021-05-24 12:1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백석 정말 좋아해요 *^^*

bookholic 2021-05-24 22:15   좋아요 4 | URL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매력을 가지신 분 같아요~~^^

조그만 메모수첩 2021-05-24 18:57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실연과 배신의 상처가, 시 <내가 생각하는 것은> 중 ‘내가 오래 그려오든 처녀가 시집을 간 것과 / 그렇게도 살틀하든 동무가 나를 버린 일을 생각한다’란 시구에 남았던 것이 기억이 나네요. 필자가 시인의 여성들과 그 아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백석이 저버렸던 여성들의 아픔 역시 언급해줬던 것이 인상에 남았어요. 리뷰 읽으면서 제가 잘못 기억하고 있던 사실 몇 개를 바로 잡을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bookholic 2021-05-24 22:18   좋아요 5 | URL
리뷰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셨다니, 고맙습니다.^^
그런데 제 기억의 한계로 리뷰에 몇몇 오류가 있지 않을까 걱정이네요....

scott 2021-06-04 20: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북홀릭님
시인 백석
이달의 당선작으로!!
추카~*추카~**

bookholic 2021-06-06 22:09   좋아요 1 | URL
ㅎㅎ 감사합니다... 변변치 않은 글에 이웃 북플러님들께서 ˝좋아요˝를 눌러 주신 덕분~~

그레이스 2021-06-04 21: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북홀릭님 당선 축하드려요~♡

bookholic 2021-06-06 22:0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늘 즐거운 시간 되시길...

새파랑 2021-06-04 21: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축하 드립니다. 북홀릭님~! 딸과 아들에게 꼭 말하시길^^

bookholic 2021-06-06 22:11   좋아요 2 | URL
ㅎㅎ 당선작으로 받은 적립금은 우리 식구들 아무도 모르는 제 비자금입니다~~^^

서니데이 2021-06-04 21: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bookholic님 축하드립니다^^

bookholic 2021-06-06 22:11   좋아요 1 | URL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늘 즐거운 날들 되시길~~

강나루 2021-06-04 21: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bookholic 2021-06-06 22:11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이하라 2021-06-05 11: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bookholic 2021-06-06 22:12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주말도 휘리릭 가버렸는데, 새로운 한 주, 새로운 한 주 되시길...^^

초딩 2021-06-05 18: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북한에서의 생활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ㅜㅜ

아무튼,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좋은 주말 되세요~

bookholic 2021-06-06 22:13   좋아요 1 | URL
백석의 고향이 남쪽이었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계속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너무 안타까운 삶입니다...
축하 해주신 것도 고맙고요~~^^
즐거운 한 주 되십시오~~
 
카이사르의 여자들 3 - 4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4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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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의 4 <카이사르의 여자들> 3권을 이야기해줄게. 3권은 1, 2권에 비해 페이지가 적으니, 편지도 좀 짧게 끝나지 않을까 싶구나. <카이사르의 여자들> 3권은 기원전 60 5월부터 기원전 58 3월까지의 이야기란다.

로마 원로원은 계속 대립하고 있단다. 오늘날 국회에서 좌우가 대립하는 것과 비슷해민주주의 제도라는 것이 늘 양 진영간의 대립과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 같구나. 협력이나 공생은 별로 찾아보기 힘들구나. 예나 지금이나, 외국이나 우리나라나로마 원로원도 자칭 보수라고 하는 보니파인 비불루스와 카토 진영과 신진 진보 세력이라고 하는 폼페이우스 진영 사이 갈등의 연속이었어. 카이사르는 먼 히스파니아 총독으로 가 있어서 그 갈등에서 잠시 발을 빼고 있었지.

먼 히스파니아 총독으로 가 있는 동안 카이사르는 그곳의 골칫거리를 하나하나 해결을 했단다. 야만족의 침입과 전쟁에서도 승리하고, 재정적인 문제들도 해결하고 그랬어. 그래서 금은도 많이 확보하여 로마의 창고를 두둑하게 했단다. 그러면서 카이사르에 대한 로마시민들의 지지도는 더욱 올라가고, 그를 미워하는 보니파들은 더욱 그를 미워하게 되었단다. 먼 히스파니아 총독 임기를 마치고 돌아와 집정관에 출마를 하려고 하는 카이사르. 보니파가 카이사르의 집정관 입후보를 막기 위한 꼼수 같은 법령을 재정했어. 카이사르의 먼 히스파니아에서 여러 공적을 세웠기 때문에 개선식을 열면서 로마에 입성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자신에게도 명예가 된단다. 그렇게 화려한 개선식을 하고 로마에 와서 집정관 입후보를 하면, 집정관도 거의 따놓은 당상이 아닐까 싶었지. 그런데 보니파가 법령을 바꾸어 집정관 입후보 날짜를 개선식보다 앞서게 바꾸었어. 그러니까 카이사르는 개선식을 하게 되면 집정관 후보를 출하하지 못하게 되는 거야. 로마 원로원이라면 명예를 안겨주는 개선식을 안 할 수가 없다고 보니파는 생각했어. 하지만, 카이사르는 개선식 같은 것 안 해도 된다고 생각했어. 나중에 하면 되지, 이런 생각을 했단다. 카이사르는 변경된 날짜에 맞춰 로마에 도착했단다. 먼 히스파니아에 있으면서 이런 로마의 사정을 잘 모를 만 한데, 폼페이우스가 편지로 계속 알려주고 있었단다. 폼페이우스는 이제 카이사르가 자신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구나.


1.

보니파들, 특히 카토가 카이사르에 대한 온갖 험담을 쏟아내며 선거에 방해 공작을 펼쳤지만, 카이사르는 가볍게 수석 집정관이 되었단다. 약간 불행한 것은 차석 집정관이 보니파 일원인 비불루스가 되었다는 점이란다. 비불루스는 카이사르가 하려는 정책마다 모두 딴지를 걸면서 방해를 했단다. 카이사르도 차석 집정관 때문에 골치가 아팠단다.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는 원로원에서 좀더 파워를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어. 예전부터 친하게 지냈던 크라수스, 최근에 친하게 지내게 된 폼페이우스.. 이들에게 삼두정치를 제안했어. 문제가 한가지 있었지. 크라수스와 폼페이우스의 사이가 무척 안 좋았다는 거야. 예전에 같이 집정관을 하면서 성과를 경쟁하듯 하다가 사이가 틀어졌는데, 그게 지금까지 이어졌어.

카이사르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어. 카이사르는 가운데서 잘 중재를 해서, 결국 동의를 했단다. 그래서 카이사르는 크라수스, 폼페이우스와 삼두정치를 시작했으며, 그들을 따르는 무리로는 카이사르와 전쟁터에서 친분을 쌓아온 발부스, 조카 사위인 옥타비우스, 원로원 동료 중에는 바티니우스, 가비니우스 등이 있었어.

이제 본격적인 카이사르 진영과 보니파 간 혈전이 시작되었어. 보니파는 차석 집정관 비불루스를 중심으로 온갖 공작을 펼쳤단다. 그러다 보니 원로원에서는 늘 몸싸움과 모욕적인 말이 오고 가고 했어. 키케로도 카이사르를 싫어했는데, 어느 날 카이사르에게 욕 한 사발 던지고 로마를 떠나 동방으로 가버렸어. 카이사르는 조용히 듣고만 있었는데, 속으로는 복수 리스트에 키케로의 이름을 새겨 놓았어.

….


2.

카이사르의 딸 율리아가 어느덧 열일곱 살이 되었어. 율리아는 일찌감치 세르빌리아의 아들 브루투스와 약혼한 사이였지. 이제 열일곱 살이나 되었으니 결혼할 때가 되어 브루투스는 결혼을 하겠다고 카이사르에게 이야기를 했는데, 카이사르는 거절을 했단다. 처음 약혼할 때 약속한 것처럼 열여덟 살 때 시키겠다고 했어. 하지만, 사실 이유는 따로 있었단다. 율리아의 행동을 보니, 브루투스를 사랑하는 것 같지 않았어. 어렸을 때 어른들이 정해준 약혼이니 의무감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 율리아는 당시 로마의 다른 소녀들처럼, 동방 정벌을 마치고 돌아온 영웅 폼페이우스를 짝사랑하고 있는 것 같았어. 폼페이우스는 비록 나이가 많았지만 당시 최고 인기남이었단다. 이런 마음을 알아챈 카이사르는 율리아를 폼페이우스와 결혼시키려고 했어. 그것이 자신에게도 더욱 득이 되기도 하고

율리아와 폼페이우스의 마음을 떠 보려고, 폼페이우스를 저녁 식사에 초대해서 동석하게 했단다. 둘은 첫눈에 반했지. 나이 차이가 거의 서른 살이 되지만, 로마 시대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어. 카이사르는 율리아와 브루투스의 약혼을 파기하고 율리아와 폼페이우스의 결혼을 성사시켰단다. 카이사르와 브루투스의 엄마 세르빌리아는 그렇고 그런 사이였잖아. 그런데 율리아와 브루투스의 약혼 파기 소식까지 전해주니 악녀 기질 다분한 세르빌리아는 분노가 폭발하였단다. 브루투스도 삼촌 카토가 있는 보니파의 일원이 되어 카이사르에 복수를 다짐했단다. 한편, 카이사르도 세 번째 결혼을 하게 되는데, 루키우스 칼 푸르니우스 피소라는 사람의 딸 칼 푸르니아와의 정략 결혼이었단다. 칼 푸르니아 역시 열 여덟 어린 나이였어. 이 소식 또한 세르빌리아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단다.

삼두정치의 소식을 들은 카토는 은밀하게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 사이를 이간질시키려고 했어. 하지만 눈치 빠른 카이사르가 다 알고 있어서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단다. 고대 로마의 시계도 만만치 빨리 갔나 보구나. 어느덧 카이사르의 집정관 1년의 시간이 끝났어. 카이사르는 갈리아와 일루리쿰 총독으로 가려고 있어. 이번에도 보니파는 카이사르의 계획에 방해를 했지만, 또 물거품로마의 정치에서 보면 가장 중요한 직책이 일년에 한번씩 뽑는 두 명의 집정관이란다. 그리고 평민들 중에서 뽑는 호민관들이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 같더구나. 그래서 원로원 의원들, 특히 집정관이 되려는 사람들은 호민관이 될 사람과 친분을 쌓게 된단다.

또 하나 집정관에게 있어 중요한 사람은 다음 집정관이 될 사람이란다. 되도록 자기 진영 사람이 최소 한 명은 집정관이 되어야 자신이 추구했던 정책이 잘 이어지고, 몸도 좀 편안해질 수 있단다. 카이사르, 폼페이우스, 크라수스의 삼두정치 양반들은, 카이사르 이후 집정관 두 명을 모두 자신들의 사람으로 선출시키는 데 성공했단다. 삼두정치의 파워를 볼 수 있는 사례라 할 수 있겠구나.

….

여기까지 <카이사르의 여자들>의 이야기란다. 이제 <마스터스 오브 로마>  5, 6, 7부 이렇게 세 개가 남았구나. 5부의 제목은 <카이사르>. 카이사르의 활약상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이 되는구나. 지난 번에 이야기한 것처럼 <마스터스 오브 로마>는 올해 끝나는 것을 목표로

, 그럼 <마스터스 오브 로마>는 나중에 5부에서 다시 만나자꾸나.


PS:

책의 첫 문장 : 먼 히스파니아의 집정관급 총독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에게, 개선장군 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가.

책의 끝 문장 : 카이사르의 여자들 가운데 최연장자로서, 내일 다같이 보나 데아의 정원을 파헤치러 가자고 제안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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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5-19 23: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저 로마인들의 사랑이 진짜 신기하더라구요. 아 물론 소설이니 진짜 율리아의 마음이 어땠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말이죠. ㅎㅎ bookholic님 리뷰 읽다보면 자꾸 집에 쌓아놓은 나머지 시리즈를 빨리 읽고싶다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올 여름에 읽으려고 미뤄뒀는데 말이죠. ^^

bookholic 2021-05-20 00:33   좋아요 0 | URL
저도 율리아의 마음이 진짜 그랬을까? 궁금했어요... 작가의 상상력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구요....
6, 7부 남으셨다고 하셨죠?^^ 화이팅하고 끝내 버리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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