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버트의 꿈 조선은 피어나리! - 고종의 밀사 헐버트의 한국 사랑 대서사시
김동진 지음 / 참좋은친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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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일제 시대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희생을 하시고, 자신의 모든 삶을 쏟아 부으셨단다. 그런데 그런 독립운동가들 중에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외국 사람이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노력하신 고마운 분들이 있어.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분이 호머 헐버트가 아닐까 싶구나. 헐버트는 아빠가 책을 통해 간간히 만났고, 역사 관련 유튜브를 통해서 알게 되고 나서, 정말 대단한 분이고 존경할 만한 분이라고 생각했단다. 우리나라 독립과 우리나라를 제대로 알리는 데 평생을 노력하신 분이고, 나중에는 우리나라에 다시 오셔서 우리나라에서 돌아가시고, 그의 소원대로 우리나라에 묻히신 분

그런 헐버트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고 싶어서 책을 검색해 보았고, 그렇게 알게 된 책, 김동진 님의 <헐버트의 꿈 조선은 피어라니!>라는 책을 읽었단다. 이 책을 읽고 깜짝 놀랐단다. 다른 역사서나 유튜브에서 단편적으로 접했던 것보다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하셨고, 이런 분들을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미안함을 느꼈단다. 비록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지만, 헐버트만큼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서 일했고, 우리나라를 알리는데 진심이었던 사람이 있었을까 싶구나.

지은이 김동진 님은 전문 작가가 아니시고, 제이피모건체이스은행 한국 회장을 역임했던 금융인이었다고 하는구나. 그런 그가 어떻게 헐버트에 관한 책을 쓸 수 있었을까. 김동진 님은 대학 시절에 헐버트의 <대한제국의 종말>이라는 책을 읽고 헐버트에 푹 빠지셨다고 하는구나. 그 이후 회사 생활을 하면서도 틈틈이 헐버트에 대한 연구를 하셨고, 헐버트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쓰신 책이 바로 <헐버트의 꿈 조선은 피어나리>라고 하는구나. 2010년에 헐버트의 첫 평전을 쓰고 2019년 그 이후 더 모은 헐버트의 자료를 추가하여 개정판을 쓰셨단다. 아빠가 읽은 것은 2019년 개정판이란다. 아빠가 이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신 할 건데, 그보다 너희들도 이 책을 꼭 한 번 읽어봤으면 좋겠구나. 헐버트의 삶을 통해서 여러 배울 점도 얻을 수 있고, 구한말부터 일제시대의 우리나라 역사 공부도 할 수 있을 것 같구나.

 

1.

헐버트는 1863 1 26, 미국 버몬트에서 태어났단다. 3 3년 중에 차남이었어. 독실한 기독교 집안으로, 아버지의 권유로 1884년 조선에 선교사로 오기로 했어. 그런데 그가 오려고 하던 1884년 갑신 정변이 일어나서 일정이 연기되었고, 2년 뒤 1886년 조선에 첫 발을 디뎠단다. 서양인의 눈에 당시 서울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그가 어머니에게 남긴 편지가 있는데 상쾌하고 맑은 공기의 도시라고 몇 번씩 이야기를 했단다. 오늘날 탁한 공기의 서울과는 무척 대조적이었구나. 그런데 그때보다 지금이 좋은 것은 그때 뱀이 많았다는 것. 아빠는 뱀이 너무 싫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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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2)

헐버트 눈에 비친 서울은 자연의 상쾌함이 넘쳐나는 도시였다. 그는 어머니에게 보낸 첫 편지(1886 7 10)에서 서울은 쾌적한 도시입니다. 제가 얼마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잘 지내고 있는지를 알면 어머니는 안도하실 것입니다.”라고 썼다. 그는 또 신문 기고문에서, “서울은 높이 치솟은 아름다운 산으로 둘러싸여 마치 원형극장 한 가운데에 놓여 있는 느낌이다. 산 정상을 따라 만들어진 서울의 성벽은 거리가 5~6마일 정도가 된다. 높이는 몇몇 곳에서는 2,000 피트도 더 된다. 도시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보이 이곳 사람들은 참으로 맑고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한다.”라며 서울의 공기를 반복적으로 칭찬하였다. 서울에는 매가 머리 위에서 시도 때도 없이 맴돌고, 밖에 나다니면서 정신을 못 차리다간 뱀이 목덜미에 떨어질 판이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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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버트는 언더우드의 집에서 머물면서 우리나라 최초 근대식 학교인 육영공원의 개교 준비를 했단다.

학교 문을 열고 나서 헐버트는 영어와 수학을 가르쳤어. 자신이 좀더 훌륭한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는 조선의 말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금방 한글에 능숙해졌단다. 우리말이 익숙해지면서 고종과 친해지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

1888년 결혼을 위해 잠시 귀국했다가 곧바로 다시 돌아왔단다. 신혼 여행도 조선에서 하고,

신혼집도 서울 정동에 차렸단다. 결혼한 이후에는 조선의 문화와 역사를 열심히 공부를 하고 그렇게 조선에 대해 공부하다 보니 조선의 문제점도 알게 되었어. 조선의 근대화에 가장 큰 걸림돌은 청나라라고 생각했어. 그 밖에 당시 국내외 정세를 정확히 파악하였고 이를 고종에게 조언해주시고 했어. 뿐만 아니라 이때부터 해외언론에 조선에 대한 내용을 기고하기 시작했단다. 그리고 한글로 된 제대로 된 교과서가 없었기 때문에 그것도 헐버트가 만들었단다. 아빠가 예전에 다른 책 이야기하면 이야기했던 <사민필지>라는 책이란다. 그러니라 우리나라 근현대 최초의 교과서는 헐버트가 만든 <사민필지>라는 책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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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헐버트는 조선에는 학생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제대로 볼 책이 없다는 점을 안타까워하면서 자신이 직접 서양에서 가르치는 근대 서적을 출판하겠다고 결심하였다. 그는 부모에게 보낸 편지(1890 1 27)에서 저는 조선인들에게 유익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조선인들이 저를 붙들도록 하겠습니다.(I am going to make myself so valuable to Koreans that they can afford to let me go.)”라면서 조선에 계속 남아 종교뿐만 아니라 역사, 지리, 정치경제, 국제법 등을 망라한 서양의 근대 서적을 조선 글자로 소개하고 싶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더 나아가 조선의 전설과 신화를 수집하고 있으며 앞으로 책을 낼 예정입니다. 조선어와 여타 언어 사이의 유사성도 연구하고 있습니다.”라며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영역에 도전하고 싶다는 욕심을 내비쳤다. 뒤이어 형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선교사들이 성서 번역에만 관심이 있다면서 자신은 수학책도 소개하고 학교용 교과서 출판을 시도하겠다고 밝혔다. 헐버트의 이러한 결기는 조선이 근대국가가 되기를 바라는 진정성에서 비롯되었으며, 이후 <사민필지>의 저술과 교과서 편찬 등의 결과물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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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민필지>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 있을까. 기본적으로 세계 지리에 관련된 내용인데, 그 외 각 나라의 사회상, 정치제도도 모두 담고 있어, 백과사전 사회 편이라고 해도 되지 않았을까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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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사민필지>는 단순한 세계지리 책이 아닌 각 나라의 사회제도를 폭넓게 담은 일반사회책이기도 하다. 헐버트는 서양에서 출판된 지리, 사회책을 바탕으로 자신의 사회과학 지식을 동원하여 <사민필지>를 저술하였다. <사민필지>는 머리말에 이어 태양계, 땅떵이(지구)를 설명하고, 이어서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순서로 각 대륙의 나라를 개별적으로 소개하였다. 각 나라 설명에서 조선인들의 상식이 미치지 못하는 종교, 군사력, 정치체계, 사회제도 등을 담았다. 헐버트는 각 나라의 정치체계를 설명하면서 정사를 임금이 마음대로 하는 나라와 백성의 주장을 존중하는 나라로 구분하였다. 미국은 대통령을 4년마다 선출하고, 국민 대표기관인 의회가 있고, 재판이 독립적으로 이루어진다고 기술하였다. 이 땅의 청년들에게 주권재민 사상을 심어주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여긴다. 헐버트는 또 각 나라를 4등급으로 분류하여  정치체계의 좋고 나쁨을 구분하였다. 1등급은 미국을 포함해 12개 나라이고, 러시아, 일본은 2등급에, 조선은 청나라와 함께 3등급에 분류되었다. 조선은 전제군주의 나라로 신분제가 있고, 한자를 힘써 공구부하고 유고만을 준행하며, 신앙의 자유가 없다고 기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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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버트가 한글을 금방 익힌 이후로는, 한글 예찬자가 되어서 여러 차례 한글의 우수함을 알렸단다. 우수할 뿐만 아니라 쉽게 배울 수 있어 자신의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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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그는 또 영국이나 미국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갈망했고, 식자들이 심혈을 기울였으나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 못했던 글자 하나당 발음 하나의 과제가 이곳 조선에서 수백 년 동안 존재했다. 감히 말하건대 아이가 한글을 다 떼고 언어생활을 시작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영어 ‘e’하나의 발음과 용법의 규칙과 예외를 배우는 시간보다 적게 든다.”라고 조선어가 영어보다 우월함을 설파했다. 그는 이어서 어떤 문장에 영국인들이 스무 단어를 써야 할 때 조선인들은 열세 단어만 쓰면 된다.”라고 조선어의 언어학적 우수성을 갈파하였다. 또한, 동사의 어형 변화 형태를 설명하면서 영어 ‘give’와 우리 말 주다를 비교하였다. 그는 “’준다의 어근이며, ‘주게는 미래시제의 어근이고, ‘주어는 과거시제의 어근이다. 직설법 형태의 어미는 모두 이지만 어간과 어미 사이의 음절 이 들어가 주난다가 되고, 이를 준다로 줄여서 말한다.”라고 풀이하여 언어학의 천재성을 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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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일본이 조선의 외교권을 강제로 빼앗아 갔단다. 이것은 고종 황제가 도장을 찍지 않았기 때문에 유효한 조약으로 볼 수 없었단다. 헐버트는 을사늑약의 무효성을 이야기하면서도, 자신의 모국이 조미수호통상조약의 정신을 위배했다고 주장했단다. 미국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비판했어. 고종의 친서를 가지고 미국으로 건너가 당시 미국대통령인 시어도어 루즈벨트에게 전달하려 했지만 미 정부는 무시하고 만나주지 않았단다. 미정부는 몰래 일본과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체결하고 미국은 필리핀, 일본은 조선의 지배권을 인정하기로 했거든.

헐버트는 <한국평론>이라는 월간지를 만들어 일본의 만행을 규탄하는 글들을 매달 실었어. 그리고 미국 <타임스>의 특파원으로서 조선 독립을 주장했다. , 언론을 통해서 일본의 부당함을 알라고 조선의 독립을 주장했단다. 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한글의 우수성을 세상에 알리는 것뿐만 아니라 설화, 한국 시, 한국 소설, 판소리 등 한국 문학들도 외국에 소개를 하였단다. 또 하나 놀라온 것은 한국의 음악을 외국에 알리면서, 아리랑을 최초로 음계에 작성한 것도 바로 헐버트라고 하는구나. 정말 대단하신 분이네아리랑을 음계로 옮긴 것뿐만 아니라 아리랑을 소개하면서 우리나라의 음악성에 대해 칭찬을 했는데, 오늘날 K-pop의 유행을 예견한 것이라고 지은이는 이야기했단다. 아빠도 대략 공감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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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190)

헐버트는 대중음악의 대표 노래로 아리랑을 선택하였다. 그는 아리랑을 현저히 빼어나고 듣기에도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노래라면서, “조선인들에게 아리랑은 음식에서 쌀과 같은 존재이다.”라고 아리랑의 위치를 설정하였다. 그는 아리랑을 조선 음악의 최고봉으로 평가하면서 동시에 우리의 주식인 쌀에 비유함으로써 조선인들의 아리랑에 대한 정서까지도 읽어냈다. 헐버트는 아리랑은 1883년부터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아리랑의 진짜 마지막 공연은 까마득한 미래의 일로서 아마도 아리랑은 한민족의 영원한 노래가 될 것이다.”라고 아리랑의 미래를 예견하였다. 그는 아리랑 후렴구 노랫말은 서정시요, 교훈시요, 서사시라면서, “조선인들은 즉흥곡의 명수이다. 부르는 이들마다 노래가 다르다. 조선인들이 아리랑을 노래하면 바이런이나 워즈워스 같은 시인이 된다.”라고 조선인들의 예술적 끼를 칭송하였다. 조선 음악이 나라 밖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을 때 헐버트는 한민족의 음악적 재능을 세계에 설파하였던 것이다. 이는 우리 젊은이들이 오늘날 케이팝K-pop으로 세계인들을 깜짝 놀라게 할 것을 한 세기도 전에 예견한 혜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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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다섯 가지 위대한 발명품이라면서 외국 언론에 소개했는데, 그 다섯 가지는 거북선, 금속활자, 현수교, 폭발탄, 그리고 한글이었어. 특히, 거북선은 모형 제작까지 하여 소개를 했다는구나. 한국의 역사도 정리하여 <한국사>라는 책을 출간했는데, 이 책은 우리나라의 온전한 통사를 저술한 첫 번째 책이라고 하는구나. <한국사>는 단군부터 고종까지의 역사를 저술했대. 그런가 보다 했는데, 그 책이 무려 800쪽이 넘는다는구나. 정말 정성을 들여 썼다는 것이 느껴지는구나.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을 해보니 이 책의 영문판, 한글판 모두 구입할 수 있더구나. 그 책의 내용이 어떨지 무척 궁금하구나. 기회 되면 꼭 한번 읽어봐야겠구나.

헐버트는 우리나라를 제대로 알리는 데도 힘썼단다. 그리피스라는 사람이 <은둔의 나라, 조선>이라는 책을 썼는데, 이 책에 나온 여러 오류를 지적하였대. 특히 일본인이 쓴 글로 바탕으로 안 좋게 쓴 부분들이 많아서 그리피스에게 강력하게 항의를 했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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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220)

헐버트는 미국인 그리피스가 1882년에 쓴 책 <은둔의 나나(Hermit Nation)>에 대해서도 강한 이의를 제기했다. 이 책은 서양에서 조선에 대해 가장 널리 알려진 책으로 헐버트도 조선에 오기 전에 이 책으로 조선을 공부하였다. 그런데 헐버트가 조선에 와 보니 이 책에 오류가 너무 많았다. 헐버트는 회고록에서 그리피스가 조선에 와 보지도 않고 일본인이 쓴 글만 읽고 책을 썼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또 은둔을 뜻하는 ‘hermit’이라는 단어도 오늘날의 한국인을 표현하기에 부적합하다면서 한국인들은 그저 편안하게 은둔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고 새로운 문물을 도입하고자 동분서주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리피스가 미국의 한 잡지에 한국에 대해 글을 기고하며 <한국, 난쟁이 제국(Korea, the Pigmy Empire)>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기고문 내용도 백제를 히악시(hiaksi)’라고 하는 등 오류가 넘쳐났다. 헐버트는 분노를 제어할 수 없었다. 그는 <한국평곤> 1902 7월호에 그리피스 기고문에 대한 반박의 글을 실어 “’pigmy’라는 단어는 아프리카의 왜소한 흑인종을 가리킨다. 미국인들이 이 기고문을 읽으면 한국인을 미개한 열등 민족으로 인식할 것이 뻔하다.”라며 그리피스에게 한국에 관한 글을 쓰려면 제발 한국에 직접 와서 보고 쓰라고 호소하였다. 1904년 런던의 한 수도원 행사에서 헐버트는 그리피스와 직접 맞닥트리기도 했다. 그리피스가 일본과 영일동맹을 맺은 영국은 행복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라고 친일 연설을 하자 헐버트는 그리피스에게 다가가 어디 두고 보자라며 대판 설전을 벌였다고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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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듯이 헐버트는 을사늑약의 부당성에 대해 주장했는데 그것을 <대한제국의 종말>이라는 책을 통해서 지적했단다. 이 책은 일본의 부당성뿐만 아니라 자신의 모국 미국의 친일정책도 강하게 비판했어. 이 책은 외국에서 큰 인기를 얻게 되었고, 일본은 이 책을 사들여 불태워버리기도 했다는구나. 구린 것이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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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

헐버트는 <대한제국의 종말>에서 1905년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일본의 침략주의를 고발하였다. 중요한 사실은 자신의 모국 미국의 친일정책을 비난하는 용기를 보여 주었다. 그는 을사늑약 당시 미국의 처신에 대해 한국에 어려움이 닥치니 미국이 제일 먼저 한국을 저버렸다. 그것도 가장 모욕적인 방법으로, 인사말도 없이(When the pinch came we were the first to desert her, and that in the most contemptuous way, without even say good-bye.)”라고 공사관을 맨 먼저 철수한 미국을 맹비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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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간 사람들은 이상설, 이준, 이위종이렇게 학교에서 배웠던 기억이 있단다. 사실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아서 인터넷에서 좀 찾아봤단다. 암튼 우리나라 세 사람만 학교에서 배웠던 것 같은데, 당시 헐버트도 고종의 특사 자격으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참석을 했단다. 그는 거기서 세계 각국 언론사를 통해 우리나라의 독립을 주장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이 약탈해간 문화재에 대해서 맹비난했단다. 일본이 경천사 십층 석탑을 약탈해갔는데 그것을 알게 된 헐버트가 그것을 국제 여론전을 펼친 것이란다. 이것은 헐버트뿐만 아니라 베델이라는 사람도 함께 동참하여 여론전을 펼쳤어. 결국 일본은 그것을 돌려주겠다고 했고, 1918년에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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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

<재팬크로니클>이 석탑 약탈을 공식화했음에도 다나까는 계속 버티며 석탑을 돌려주지 않았다. 헐버트는 국제 여론에 호소하기로 마음먹었다. 헐버트는 만국평화회의가 열린 헤이그에서도 석탁 약탈 사실을 폭로하였다. 1907 7 10일 헤이그 평화클럽에서 일본의 부당성을 폭로하는 연설을 하며 경천사 십층석탑 약탈 사건을 예로 들었다. <만국평화회의보>가 헐버트의 주장을 보도하자 <뉴욕포스트>등 국제적인 신문들이 이를 받아 대서특필하였다. <뉴욕타임스>도 헐버트 회견 시가에서 이 사건을 다뤘다. 베델도 <대한매일신보> 등을 통해 계속적으로 일본에 석탑 반환을 촉구하였다. 석탑 약탈에 대한 비난 여론이 국제적으로 들끓자 당황한 일본 외교관들이 석탑을 한국에 돌려줄 것을 본국에 건의하기까지 했다. 일본은 1918년에 가서야 석탑을 돌려주었다. 두 외국인 헐버트와 베델이 이 문제를 국제여론전으로 몰고 감으로써 결국 석탑이 한국에 돌아온 것이다. 돌아온 석탑은 조선총독부 창고에서 뒹굴다가 우여곡절 끝에 2005년 용산 국립중앙박물과 개관과 함께 지금의 자리에 세워졌다. 헐버트가 현장에 가서 사진으로 증거를 남기지 않았다면 경천사 십층석탑은 아마도 우리 역사 속에서 영원히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현장 사진 증거가 없었다면 일본이 과연 약탈을 인정했겠는가? 헐버트가 희망한대로 언젠가 석탑이 원래 자리인 경천사에 원형대로 복원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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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그 만국평화회의의 특사 사건은 후폭풍이 거셌단다. 일제는 고종을 강제로 폐위시키고 순종을 황제 자리에 앉혔단다. 그리고 궐석재판을 열어 이상설에게 사형을, 이미 순국한 이준과 이위종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어. 그리고 헐버트에게는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단다.

 

3.

헤이그 특사 사건 이후 국내로 들어오지 못한 헐버트는 미국으로 돌아가서 언론을 통해 조선의 독립과 일본의 만행을 계속 고발했단다. 친일 미국인들이 있는데 그들과 논쟁을 벌이기도 했어. 그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스티븐슨이라는 사람인데, 이 사람은 아빠가 몇 번 이야기를 해 준 사람이란다. 우리나라 장명환 의사와 전명운 의사가 동시에 저격하여 사망했던 그 사람스티븐슨이 헐버트와 논쟁을 벌인 이력이 있어서 스티븐슨이 죽고 나서 헐버트는 신변 위협을 당하기도 했대.

한국을 떠난 지 2년인 1909년 가을. 헐버트는 유럽과 시베리아를 거쳐 압록강을 건너 서울에 다시 돌아왔단다. 일본의 철저한 감시 속에 두 달 가량 서울에 머물고 있었는데, 그가 머물고 있는 동안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일이 있었어. 그래서 헐버트가 그 일의 배후라는 소문도 돌았다는구나. 감시가 심해서 국내에서 특별한 활동을 못했던 헐버트는 두 달 뒤에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단다. 미국에 가서도 여전히 계속 미국 정부 특히 루즈벨트 대통령을 비판했단다. 을사늑약에 대해 미국의 책임이 크다고 말이야.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은 결국 죽기 전에 을사늑약에 대한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는구나.

헐버트는 미국에 머물면서 1919 3.1운동의 소식을 들었어. 3.1운동을 3.1혁명이라고 하면서 비폭력 시위를 한 한민족의 숭고한 정신을 높이 평가했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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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2-343)

헐버트는 3.1혁명을 어떻게 정의하였을까. 그는 필라델피아에서 발행되던 <미주 한국평론> 1919 10월호에 <1차 세계 대전과 한국(Korea’s Part in the War)>를 기고하였다. 헐버트는 이 글에서 인류애가 고상함이나 영웅주의에 묻힌다면 이는 인류에 대한 모반이다. 3.1혁명은 신의 손(hand of God)’이 작용한 것이며 한국의 독립은 천부적 권리이다.”라고 천명했다. 그는 또 이듬해 1 <국제관계>지에 기고한 <일본과 한국(Japan in Korea)>에서, 일본과 한국의 반목은 일본이 역사적으로 한국의 군사력을 얕보는 데서 기인한다고 진단하였다. 이어서 한민족은 3.1만세항쟁에서 원한과 증오를 표출하는 대신, ‘자유를 달라(We must and shall be free)’고만 외쳤다면서 3.1혁명의 비폭력 정신을 평가하였다. 이는 한민족의 문명 수준을 말해 준다고 덧붙였다. 헐버트는 1949 7월 죽음을 앞두고 가진 언론 회견에서는 3.1혁명을 한민족 역사에서 가장 숭고한 정신문화적 가치라고 정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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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운동 이후 1919년 파리강화회의가 있었는데, 헐버트는 여운형과 함께 독립청원서를 작성하는 등 여전히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노력을 하셨어. 그 이후에도 계속 여러 언론을 통해 한국에 대한 글들을 기고했다는구나. 세월이 흘러 1940년대가 되었고, 헐버트의 나이도 80대가 되었어. 80대 나이에도 한국에 관한 글은 계속 기고했대. 헐버트가 자신의 모교에 남긴 신상기록부를 보면 그가 한 평생 우리나라와 우리나라 사람들을 위해 노력했음을 할 수 있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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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4)

2004년 다트머스대학을 방문하여 헐버트 기록을 추적하던 중 헐버트가 졸업 45주년을 앞두고 모교에 제출한 졸업 후 신상기록부가 눈에 들어왔다. 헐버트가 70을 바라보며 친필로 작성한 자신의 삶의 흔적이었다. 필기체로 휘갈겨 쓴 기록부를 세세히 읽다가 소리 없이 눈물이 흘렀다. 헐버트는 신상기록부 나의 일생(My Life Story)>란에 자신과 한민족의 관계를 정의하는 글을 남겼다:

나는 천팔백만 한국인들의 권리와 자유를 위해 싸워왔으며, 한국인들에 대한 사랑은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가치이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나의 한민족에 대한 충심은 값어치 있는 일이라고 여긴다.”

원문 : I have been fighting for the rights and liberties of 18,000,000 people whose love I hold as my most precious possession and whatever the outcome I dream that loyalty to such a cause is worthwh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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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드디어 광복멀리서나마 헐버트는 얼마나 기뻐했을까. 헐버트는 1949 7 29 40년 만에 다시 우리나라에 왔단다. 얼마나 감회가 새로웠을까. 다시 온 한국에서 더 많은 시간을 가졌더라면 좋았겠지만, 우리나라에 온지 일주일 만에 그만 노환으로 돌아가시고 말았단다. 그리고 그의 생전 소원대로 우리나라에 묻히셨다고 하는구나. 양화진 선교사 묘원에 가면 그의 묘지를 만날 수 있다고 하는구나.

누가 다른 나라를 위해서 이렇게 헌신적인 노력을 할 수 있을까. 정말 고귀한 영혼의 소유자라고 생각한단다. 지은이 김동진 님이 이 책을 마무리하면서 헐버트를 평가하는 글이 있는데, 그 글로 오늘 독서 편지를 마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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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1)

헐버트는 인종과 국경을 초월한 진정한 세계주의자이자 영원한 한민족주의자였다. 그는 한민족은 두뇌가 우수하고, 독창성이 뛰어나다. 교육유전자가 남달라 성공 잠재력이 무한하다. 위기가 닥치면 단결하여 나라를 지켜 내는 끈기와 생존력을 지녔다.”라며 한민족의 우월성을 논리적으로 풀이하였다. 헐버트는 또 생을 마감하면서, 한민족이 세계에서 가장 빼어난 민족이라고 증언하며 한글 등 다섯 가지 예를 들었다. 헐버트야말로 그 누구보다도 한민족의 미래 가치를 확신한 참 한민족주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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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의 첫 문장: 러일전쟁 발발 직후인 1904 2월 한국과 일본은 한일의정서에 서명하였다.

책의 끝 문장: 그리하여 한민족이 세계 속에 우뚝 서리라는 헐버트의 꿈을 꽃피워야 하지 않겠는가.



헐버트는 영어에서 학생들이 ‘f’와 ‘r’, ‘v’, ‘th’ 등의 발음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발견했다. ‘will not’을 ‘willot’으로 발음하는 등 연어 발음에서도 어려움이 나타났다. 헐버트는 학생들이 장치 국제무대에서 영어를 원활하게 구사해야한다면서 발음 교정에 최선을 다했다. 그는 문장 암송이 영어 공부의 첩경이라며, 학생들이 문장을 완전히 암송해야만 집에 갈 수 있게 했다. 학생들은 한문 서예를 공부해서인지 펜으로 영어 쓰기는 아주 잘했다. 일부 학생은 심지어 자신보다 더 잘 썼다고 회고했다. - P47

헐버트는 대한제국이 을사늑약으로 사실상 주권을 잃지 을사늑약 다음 해인 1906년 <대한제국의 종말(The passing of Korea)>에서 ‘한국의 살길은 교육뿐’이라면서 한국인들에게 교육에 전념하여 힘을 기르기를 호소하였다. 그는 "한국인들은 미개해서 자치 능력이 없다고 국제적으로 떠들고 다니는 일본인들의 멸시를 상쇄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라며 한국인들에게 교육을 통해 일본을 따라잡고, 빼앗긴 주권을 되찾기를 바랐다. 그는 또 미국에게 조미수호통상조약 정신을 위배했다며 지금이라도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한국에 교육 투자를 강화하라고 요구하였다. 그러면서 "교육에 대한 투자에서 가장 크게 효과를 낼 수 있는 나라는 한국이다. 이 말은 한국인들의 깊숙이 아는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말이다."라며 한민족의 성공 잠재력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 P127

"만약 조선이 한글 창제 직후부터, 과도한 지적 부담을 주고, 시간을 낭비하고, 반상제도를 고착시키고, 편견을 추구기고, 게으름을 조장하는 한자를 내던져 버리고 자신들이 모든 소리글자 체계인 한글을 받아들였더라면 조선에게는 ‘무한한 축복’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허물을 고치는데 너무 늦다는 법은 없다. 이제라도 한글을 써야 한다."
헐버트는 또 1896년 10월 <조선소식>에 "나는 영국인들이 라틴어를 버린 것처럼 조선인들도 결국 한자를 버리리라 믿는다."라고 하여 이미 백 년도 훨씬 전에 한글 전용 시대가 올 것을 예언하였다. 오늘날 우리가 한글을 전용하고 한자가 보완적 기능을 하는 현실을 보면서 헐버트의 예지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 P150

헐버트는 책을 마치며 한민족에세는 참으로 감동의 글을 남겼다. 그는 "예언자 흉내를 내는 것은 역사가의 본분이 아니며, 역사가는 미래에 어떤 일이 생길 것인지 예단하려 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한민족이 장차 경이적인 역사를 만들어 갈 것이라고 희망하는 예단은 허용돼야 한다."라고 하여 한민족이 세계 속에 우뚝 서리라고 예언하였다. 헐버트가 한민족 역사를 15년 동안 천작하며 내린 한민족의 잠재력에 대한 확신이자 결론이지 않은가.215 - P215

헤이그 특사 파견 사건은 나라의 운명은 물론이고 고종 황제와 특사들 개인의 운명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일제는 헤이그 특사 파견의 책임을 묻는다면서 7월 20일 고종을 황제 자리에서 퇴위시키고 순종을 황제 자리에 앉혔다. 7월 24일에는 소위 정미7조약을 체결하여 한국의 내정까지 공식적으로 접수하고, 대한제국 군대도 해산시켰다. 헐버트는 특사증을 발급한 고종 황제가 퇴위 되어 더 이상 특사 자격을 유지할 수 없었다. 그는 1919년 미국 의회에 제출한 ‘한국 독립 호소문’에서, 일본이 고종 황제를 재빨리 퇴위시킨 것은 자신이 고종 황제의 특사로 조약상대국을 방문한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친서를 무효화시키기 위한 것이 하나의 이유였다고 밝혔다. 일제는 궐석재판을 열어 정사인 이상설에게는 사형을, 이미 서거한 이준과 이위종에게는 무기징역을 선고하였다. 헐버트도 일제의 위협에 한국에 더 이상 살 수 없었다. - P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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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2024-07-19 1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bookholic님 북플 글을 읽으며 감동의 눈물을 흘릴줄 몰랐습니다. 좋은 책 소개해 주셔서 감사 합니다.

bookholic 2024-07-20 00:06   좋아요 1 | URL
좋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헐버트에 삶에 대해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비 피해 없이 즐거운 주말 되시기 바랍니다~~^^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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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는 전에도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유시만 작가님을 좋아한단다. 그의 글을 읽고 그의 말을 들어보면 아빠가 생각하는 바와 같은 방향을 갖고 계시거든. 그리고 무엇보다 아빠는 탑재되지 않은 뛰어난 통찰력과 분석력이 정말 뛰어나신 분이란다. 자신이 이해한 바를 쉽게 설명해주는데 탁월한 능력을 갖고 계셔. 유시민 작가님을 알게 된 것이 벌써 20년이 훌쩍 넘었는데 처음 그 모습과 자세를 일관되게 보여주고 계신단다. 누군가는 정치할 때보다 얼굴이 많이 편안해지고 여유로워 보인다고 하지만 아빠는 예전에 날카로운 눈매의 모습도 무척 마음에 들었단다. 그리고 유시민 작가님은 스스로 지식 소매상이라고 하실 만큼 그의 책을 읽다 보면 다방면의 상식을 쌓게 된단다.

유시민 작가님이 경제 전공이라서 예전에 경제 관련 책들도 쓰셨는데 경제에 문외한이었던 아빠에게 도움이 되었고, 작년에는 과학 관련 책까지 쓰셔서 영역을 넓히셨단다. 가끔씩 정치 평론에 대한 책도 써서 정치 흐름에 대해 이해를 하는 경우도 있지. 유시민 작가님의 신간이 나오면 바로 읽곤 하는데 이번에 나온 신간도 신간 알림이 나오자마자 사서 읽었단다. 읽은 지 좀 되는데 너희들에게는 이제서야 이야기해주는구나.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 책을 읽다 보면 그가 누구인지 금방 알게 된단다. 그의 이름을 적지 않아도 그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 수 있기 때문에 유시민 작가님이 책에서 단 한번도 그의 이름을 언급하지 안 할 줄 알았어. 이 책을 읽다 보니 조금 걱정이 되더구나. 그를 너무 비판을 해서, 혹시 또 검찰조사를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 너무나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검찰의 이성은 어디로 갔는가. 그들은 세금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흠이 없는 사람은 없단다. 그런데 그 흠을 침소봉대하는 것이 오늘날 검출의 중요 임무인 것 같구나. 진보 정치인은 왜 무결해야 하는가? 아빠는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누구나 흠도 있고 약점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 그게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처벌을 받으면 된다고 생각해. 그에 반해 보수 수구 세력은 더 큰 약점과 불법도 기소 없음으로 처리되는 세상. 그것에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인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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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완벽하게 훌륭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난받고 조롱당해야 한다면, 조금의 약점만 드러나도 기소되고 유죄판결을 받아야 한다면, 의도하지 않은 오류를 죽음으로 책임져야 한다면, 누가 감히 진보의 삶을 선택할 수 있겠는가. 정치검찰과 보수언론은 말했다. “완벽하게 선할 수 없다면, 아무리 털어도 먼지 한 톨 나지 않을 자신이 없다면, 수치와 불명예의 구렁텅이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고 싶지 않다면, 정의니 공정이니 평등이니 하는 말을 입에 올리지 말라. 노무현과 노회찬과 조국의 최후를 보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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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의 대통령 당선은 민주주의 단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단다. 유능한 사람이 당선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 세탁이든 언론이 밀어주었든 무능한 자도 표만 많이 얻으면 권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란다. 그를 찍은 이들이 일년도 채 안돼 후회를 하지만 결정은 번복되지 않는단다. 아무 일 없길 바라며 5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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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포퍼의 말처럼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을 만큼 완벽하게 선하고 유능한 권력자는 없다. 민중은 선하고 유능한 사람을 뽑기도 하지만 사악하고 무능한 인물을 선택하기도 한다. 250년 전만 해도 국민이 권력자를 선출하는 국가는 미합중국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지구촌의 문명국가는 대부분 민중이 보통선거로 권력자를 선출한다. 선하고 유능한 권력자만 뽑은 나라는 없다. 사악하거나, 무능하거나, 사악하면 무능한 인물도 뽑았다. 민주주의 선거제도의 피할 수 없는 약점이다. 똑같이 민주주의를 하는데도 정부 수준이 나라마다 다른 것은 그 때문이다. 권력자가 멋대로 권력을 휘두르면서 서슴없이 악을 저지른 나라도 있지만 어떤 권력자도 그런 짓을 하지 못하게 막는 나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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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민주주의 단점을 어떻게 보완할 수 있을까. 결국은 시스템으로 방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 예전에 아빠는 대통령 한 명 바뀌었다고, 나라가 확 바뀐다고 생각하지 않았어. 왜냐하면 어느 정도 민주주의 시스템이 대통령의 권력 남용을 막아줄 것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MB 정권과 박근혜 정권을 보면서 우리나라 민주주의 시스템이 그리 잘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 그래서 2년 전에 그가 당선되고 나서 좀 무서웠단다. 또다시 나라가 나락으로 가면 어쩌나, 하고그런데 그 무서움이 현실이 되는 것은 얼마 가질 못했단다. 무능해도 이리 무능할 수가 있을까. MB때나 박근혜 정권 때도 내가 해도 그것보다는 잘하겠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 요즘에는 아빠도 모르게 내가 해도 그보다 잘할 것 같다는 말이 절로 나오더구나. 유시민 님은 그를 도자기 박물관에 들어온 코끼리 같다는 비유를 했는데 너무 적절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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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윤석열의 대통령 당선은 정치적 사고였다. 표를 준 유권자들도 그가 이토록 무지하고 무능하고 포악한 사람인 줄은 몰랐다. 윤석열은 도자기 박물관에 들어온 코끼리와 같다. ‘의도가 아니라 본성때문에 문제를 일으킨다. 도자기가 깨지는 것은 그의 의도와 무관한 부수적 피해일 뿐이다. 그를 정치에 뛰어들게 한 동력은 사회적 위계(位階)의 가장 높은 곳을 바라보는 생물학적 본능이었다. 그는 대통령의 권한으로 사회적 선과 미덕을 이루고 싶어서가 아니라 대통령의 권한으로 사회적 선과 미덕을 이루고 싶어서가 아니라 대통령이 되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았다. 국민을 속이지 않았다. 검찰총장으로서 대통령 후보로서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런데도 그를 정확히 보려 하지 않았던 유권자가 적지 않았다. 화장과 조명으로 윤석열의 결함을 감춰준 언론에 속은 시민도 많았다. 그래서 대통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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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대통령이 되는데 큰 공을 세운 역적 중에 하나는 언론이란다. 예전에 기자라고 하면 비판의식을 갖춘 지식인이라는 이미지가 떠올랐는데 오늘날 기자라고 하면 기레기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른단다. 유시민 작가님도 오늘날 기자는 그저 회사원에 불과하다고 이야기를 했어. 그의 말에 동감했단다. 그러니 기자 너희들도 되도 않는 괜한 자부심을 갖지 말길 바란다. 지금 이 사태를 만든 가장 큰 공범은 너희들이니.. 나라가 골로 가고 있는데, 책임이라도 질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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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97)

기자는 사회에 책임을 느끼는 지식인이 아니다. 민중을 위해 싸우는 투사도 아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많아서 기자는 사는 게 괴롭다. 월급을 받고 상사의 지시에 따라 일하는 회사원일 뿐인데 비리를 폭로하고 불의에 항거하며 인권에 정의를 위해 싸우라고 하니 난처하기 이를 데 없다. 기자가 자본과 정치권력의 간섭과 횡포에 맞서 언론 자유와 편집된 독립을 위해 싸우던 시대는 지나갔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사실 그런 시대는 있지도 않았다. 그런 것처럼 보인 때가 잠깐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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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한국 언론은 저널리즘 규범을 무시한다. 무엇보다 사실을 존중하지 않는다. 정치권력과 유착해 이권을 따고 광고주를 위해서 기사를 쓴다. 대주주의 대리인이 보도의 방향과 내용을 결정한다. 기자의 독립성이나 편집의 자율성 같은 것은 안중에 없다. 이념적 균형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기계적 중립도 지키지 않는다. 윤석열과 국힘당에 불리한 사실은 아예 보도하지 않거나 최소한으로 보도한다. 유튜브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탐사보도 전문 기자가 윤석열 정부와 정치검사의 비리를 보도하면 그 비리를 심층 취재하는 게 아니라 보도한 기자의 신상을 털고 보도 내용을 공격해 신뢰성을 훼손하는 데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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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는 어떤 사람인가? 그가 손바닥에 ()’자를 쓰고 TV 토론에 나올 줄이랴 상상이나 했겠니. 손바닥에 ()’자를 쓰고 TV토론에 나온 사람을 설마 백성들이 찍어주겠나, 했어. 아빠는 당연히 그가 당선될 리 없다고 생각했어. 선거 전날 그가 당선되면 어쩌지? 걱정하는 친구에게 절대로 그럴 리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큰소리쳤던 기억이 아직도 나는구나.

유시민 작가님이 이야기하기를 그는 어리석기 때문에 위험한 스타일의 권력자라고 이야기한단다. 절대공감. 무슨 정책을 함에 있어 정말 모르고 추진하는 것 같고, 기자회견을 잘 하진 않지만, 해도 동문서답하기 일쑤란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다른 나라 정상들과 회담을 할지 걱정이구나. 영악한 정상들이라면 속여먹기 참 좋은 사람이 아닐까 싶구나. 아빠 친구들도 만나서 이야기하면 그가 대통령이라는 사실이 정말 창피하다고 하더구나.

유시민 작가님이 그를 전두환과 비교를 했는데, 일리가 있는 설명이더구나. 우리는 지금 5공에 살고 있는 것 같구나. 5공도 결국은 지나갔으니, 지금의 이 시절도 결국은 지나간다고 좋게 생각해야 하는가. 그런데 남아 있는 기간이 너무 길어 괴롭구나. 긴 터널을 지나는데 아직 반도 통과하지 않았으니 얼마나 괴롭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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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4-155)

윤석열은 전두환과 비슷한 데가 많아서 평행이론이 나올 만하다. 전두환은 군부 쿠데타로, 윤석열은 검찰 쿠데타로 직속상관을 공격해 권력을 차지했다. 전두환이 극소수 정치군인을 권력의 핵심으로 기용해 권력을 운용한다. 둘 모두 야당을 불순세력이라 여기며 자신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확신한다.

두 사람 모두 좌파가 장악한 언론을 정상화해 여론을 바로잡겠다면서 표현의 자유를 탄압한다. 부부와 함께 민중의 조롱을 받는다는 것과 닮았다. 그러나 한 가지는 크게 다르다. 전두환은 물리적 폭력으로 반대세력을 고문하고 죽였지만 윤석열은 기껏해야 검찰 수사권과 기소권으로 괴롭힐 뿐이다. 그런 것만 가지고는 국민의 저항을 억누르지 못한다. 윤석열은 전두환만큼 기괴하지만, 힘과 능력은 전두환에 닿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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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행보를 보면 우리나라 사람이 맞나 싶을 때도 있어.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오염수의 방류를 옹호하는 것이나,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제거하는 것을 보면 이 사람이 대한민국 대통령이 맞나? 싶은 생각이 절로 나는구나. 대통령이 잘못을 하면 주위에서 만류하는 사람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 나물에 그 밥인지 아니면 주종관계에 철저한 조직인지 모르겠구나. 그 이유를 유시민 작가가 논리적으로 설명을 해주었는데, 앞으로는 그와 그 주변인들에게 기대를 접게 만드는 그런 설명이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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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사람은 능력이 저마다 다르다. 능력은 일반지능, 전문 지식, 업무 자세, 타인을 대하는 태도, 전략적 사고 능력, 경험의 능력을 가진 사람을 A급이라고 하자. A급은 A급을 알아보고 좋아한다.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을 더 좋아하는 경우도 흔하다. A급 책임자가 전권을 쥐면 주로 A급 인재를 기용한다. 그러면 그 A급들이 또 다른 A급을 불러들인다. 그러나 B급을 조직 책임자로 임명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B급은 A급을 반기지 않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B급임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B급 책임자는 기껏해야 B급을 기용한다. 아부를 잘하면 C, D급도 마다하지 않는다. A급은 기용하려고 해도 어렵다. A급 능력자는 B급 밑에서 일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조직은 C급 이하 등외까지,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으로 채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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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그를 탄핵하라는 국민 청원이 국회 게시판에 올라왔고 서버가 다운될 정도로 인기(?)리에 찬성표가 올라가고 있단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변함이 없다. 선거를 져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건이 터져도 아랑곳하지 않고, 국민들이 목소리를 높여도 아랑곳하지 않는구나. 왜냐? 그는 그것도 모른다. 자신이 무능한 것조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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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

모든 불행의 원인은 잘못된 만남이다. 대한민국 대통령 자리와 인간 윤석열은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그는 대통령직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자기 객관화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본인이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윤석열은 더닝-크루거의 존재를 입증하는 사람이다. 너무 어리석어서 자신이 어리석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자신이 무능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할 정도로 무능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만들지 못한다. 운명이 그를 덮친다. 자신에게 왜 그런 운명이 닥쳤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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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혁신당의 구호처럼 삼 년은 너무 길다. 아니, 세 달도 너무 길고 삼 일도 너무 길다. 세월이 너무 빨리 흘러간다고 한탄하는 경우가 있는데 세월을 천천히 가게 해주어 고맙다고 해야 하나, 농담을 하곤 한단다. 세월이 빨리 가도 좋으니 어떤 식으로든 그의 권력이 끝났으면 좋겠구나. 그리고 우리나라 국민들이 다시는 이런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오늘 독서 편지를 쓰는데 다시 분노게이지가 올라갔더니 오타가 많은 것 같구나. 이해 바람.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총선이 끝난 후 시민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국가정책과 국정에 임하는 태도를 바꿀지, 바꾼다면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바꿀지 지켜보았다.

책의 끝 문장: 그러니 함께, 힘과 지혜를 모아, ‘윤석열이라는 병을 이겨내자고.



플라톤의 잘못은 의미 없는 질문을 한 것이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미덕인지 아는 철학자가 과연 존재하는지는 따지지 말자. 문제는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해도 권력을 쥐어줄 방법이 없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이다. 권력을 상속하는 왕정국가에서는 생물학적 우연의 축복을 받아야 통치자가 될 수 있다. 귀족정 국가에서도 높은 신분을 타고나지 않으면 권좌가 접근할 수 없다. 민중이 권력자를 선출하는 공화정도 다르지 않다. 철학자가 선거에서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 지혜롭든 어리석든, 표를 많이 받는 자가 권력을 차지한다. - P21

아이히만 재판 보고서 격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아렌트는 ‘악의 비속함(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을 썼다. 보통 ‘악의 평범성’으로 번역하지만 나는 ‘비속함’이 아렌트의 생각을 더 잘 표현한다고 본다. 아이히만은 나치 핵심 권력자들의 홀로코스크 기획 회의에 참석했고 유대인 학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법정의 아이히만은 사악한 살인자라기보다는 지극히 비속한 공무원이었다. 아렌트는 그의 잘못이 ‘자기 머리로 사유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아이히만은 자신이 악을 행하는지 여부를 생각하지 않았다. ‘자기 객관화’와 ‘자기 성찰’을 하지 않았다.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는 능력이 전혀 없었다. 아렌트는 이것을 ‘전적인 무능’이라고 했다. - P30

나는 완벽하지 않다. 어떤 면에서도 완전무결한 존재는 될 수 없다. 완벽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비난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 때문에 움츠리지는 않는다. 불완전한 모습으로, 두려움을 애써 억누르면서, 때로 길을 잃고 방황하면서 자연이 준 본성에 따라 사회적 미덕과 선을 향해 나아가려 한다. 마찬가지로 불완전한 사람들과 손잡고,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내일의 세상을 오늘보다 무엇 하나라도 낫게 만드는 데 힘을 보태려 한다. 윤석열을 보면서 마음에 새긴다. 서로에 대한 불신과 불관용이 악의 지배를 연장한다는 것을. 부족한 그대로, 서로 다른 그대로 친구가 되어 불완전한 벗을 관대하게 대하면서 나아가야 악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 P44

국민은 이념적 균질 집단이 아니다. 국민을 균질 집단으로 만들면 사회는 히틀러의 독일, 스탈린의 소련, 마오쩌둥의 중국, 김일성 일가의 북한처럼 된다. 국민은 복잡한 이질 집단이다. 사람마다 정치적 이상과 경제적 이해관계가 다르다. 어떤 정책도 모든 국민의 동의를 얻지는 못한다. 민주주의는 이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헌법과 법률에 정당 설립의 자유와 복수정당제를 보장하도록 명시했다. - P77

그는 위험한 스타일의 권력자다. 사악한 권력자보다 어리석은 권력자가 더 위험하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스스로는 현자라고 확신한다. 국민의 압도적 다수가 원하는 것을 무시하고 정반대 선택을 주저 없이 한다. 비판하는 사람을 표적으로 삼아 가족과 주변까지 괴롭힌다.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이 해서는 안 될 짓을 하면서 자신의 권력을 확인하고 만족감을 느낀다. - P147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오염수 방류에 대한 태도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친일파라 그런다고 하지만 나는 무지성 때문이라고 본다. 그는 후쿠시마의 사고 원전에서 나온 핵 오염수에 어떤 방사성 물질이 들어있는지 모른다. 오염수의 유해성 여부를 판정하는 기준과 해양 방류의 윤리적 쟁점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다. 그러면서도 핵 오염수 해양 방류에 반대하는 사람을 가리켜 ‘1 더하기 1을 백이라고 한다’라고 비난했다. 그는 심각한 다툼이 있는 과학적 쟁점을 그런 방식으로 처리한다. 정보를 공유하고 논리의 규칙에 따라 토론하는 게 아니라 의견이 다른 사람을 머저리라고 비난한다. 자신이 머저리면서. - P165

자유로운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조국 자신도 모른다. 길든 짧든, 그는 그 시간에 자신을 남김없이 불태울 것이다. 어떤 운명이 그를 기다리는지, 그가 불탄 자리에 무엇이 남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이 하나는 있다. 조국과 윤석열의 운명이 완전하게 엇갈린다는 것이다. 둘의 싸움을 둘 모두 명예롭게 끝낼 방법은 없다. 윤석열에게 조국은 이재명과 다른 존재다. 윤석열의 시선으로 보면 이재명은 ‘아직 죽이지 못한 자’다. 싸움을 멈추고, 공존을 시도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조국은 ‘이미 죽였던 자’다. ‘이미 죽였던 자’와는 공존할 수 없다. 조국도 마찬가지다. ‘다시 살아난 자’는 자신을 죽였던 자를 죽여야 살아났음을 확인할 수 있다. 윤석열의 가장 위험한 적은 이재명이 아니라 조국이다. -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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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 2024년 여름호 - 통권 186호
녹색평론 편집부 지음 / 녹색평론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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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날 우리는 총체적 난국에 살고 있단다. 현정권 들어서 하는 일들에 합리적으로 이해 가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구나. 그야말로 사고뭉치 정권이 아닌가 싶구나. 심지어 아빠가 해도 그것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니, 이런 정권이 우리나라 정권이라는 것이 창피할 따름이란다.

오늘 너희들에게 소개한 <녹색평론 2024년 여름호(186)>에서도 현 정권에 대해 이것저것 비판을 많이 하고, 방향도 제시해주려고 노력한단다. 하지만 쇠귀에 경읽기 일뿐이다. 무식한데 고집까지 센 경우가 가장 안 좋은 경우인데 우리는 그런 사람을 매일 뉴스에서 보고 있단다. 젠장. 이번에 읽은 <녹색평론 2024년 여름호(186)>의 부제는 공공성 확보가 관건이다이란다. 최근 몇 달 동안 계속 이슈가 되고 있는 의대생 증가와 함께 의료공공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다루고 있단다. 우리나라의 의사 수, 특히 공공의료의 의사수가 부족한 실정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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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굳이 의료제도가 상이한 다른 나라와 비교하지 않더라도, 한국 의사수가 비정상적으로 적다는 점은 한국 보건의료의 성장과정을 살펴보면 상식선에서 납득할 수 있다. 한국의 의대 정원은 1990년대 중반 의대가 9개가 마지막으로 신설되며 3,300여 명으로 늘었다가 의약분업의 여파로 2006 3,058명까지 줄어든 뒤 2024년까지 18년째 동결돼 있다. 그사이 보건의료분야의 규모는 엄청나게 확대되었다. 2000년 한국의 경상의료비(총 의료비) 25 1,230억 원이고 GDP 대비 3.9%를 차지했다. 2022년 기준 경상의료비는 209 460억 원(잠정치), GDP 대비 9.7%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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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발췌한 글에서 볼 수 있듯이 최근 20여년 간 의사의 수입은 급속도로 늘었단다. 20여년 전에도 의사의 수입은 최상위에 위치하고 있었을 텐데 오늘날은 그보다 더 높은 위치에 놓여 있단다. 그렇다 보니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적성이고 뭐고 뒷전이고 돈 많이 벌 수 있는 의대를 목표로 하는 이들이 많단다. 들어보지 못한 이름의 의대를 떨어진 사람이 서울대 경영학과에 합격하는 상황이니, 자본주의 사회에서 다들 돈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것 같구나.

의대 정원을 늘린다는 것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많은 국민들이 공감하고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해. 그것은 국가 정책을 해나가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단다. 그렇다면 방법만 잘 잡는다면,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단다. 의사들이 그렇게까지 꽉 막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단다. 하지만 정부가 하는 방법을 보면, 무대뽀 정신인 것 같아. 의사들과 많은 대화를 하고, 양보할 것은 서로 조금씩 양보를 하고, 의대 증원을 하더라도 점진적으로 숫자를 늘리는 방안을 채택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해. 그러나 정부는 무조건 내년부터 2000명 증원을 늘린다는 입장에서 한 발도 물러나지 않으니 협상이 제대로 되겠냐고.. 의사협회도 힘 대 힘으로 싸워보자면서 파업을 강행하고 있으니 죽어나는 것은 국민들뿐이잖니.

이런 답답한 상황을 몇 달째 끌고 있고 계속 힘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모습을 보니 답답하구나. 그리고 의사수만 늘리는 것이 아니고, 우리나라 현재 의료시스템의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판단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란다. 그들의 정책을 보면 의사수 늘리는 것만 혈안이 되어있지. 취약한 공공의료 분야에 대한 대책은 잘 보이지 않거든의사 수 늘려놓았더니 피부, 미용 분야의 의사수만 늘어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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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

공공의료가 취약하다는 것은 전체 의료시스템의 취약성을 의미한다. 민간 의료기관은 공적 자원을 기대할 수 없어 생존을 위해서도 수익성에 기반한 경영전략을 펼 수밖에 없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진료분야는 기피하거나 소극적이게 된다. 아무리 필수분야 진료기능이어도 기대수익이 약하면 투자하지 않는다. 중소 병원이나 사립대학 병원도 마찬가지이다. 수익성이 높은 분야에 우선적으로 투자해서 가능한 많은 이익을 내고자 한다. 진료기능이 편중될 수밖에 없거니와 의료내용이 적정선을 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비보험 분야의 확대 그리고 피부, 미용 분야로의 의사 쏠림 등은 더 높은 수익을 기대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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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기후 위기는 현실이 되었다는 것을 절로 느끼고 있단다. 그런데 이런 기후 변화는 더 많은 질병을 만들게 되고, 이로 인해 의료서비스에 있어서도 불평등을 만들어낼 거야. 같은 병에 걸려도 부자들은 살 수 있고, 가난한 사람들은 죽을 수 있어. 국가의 의무로 공공의료 서비스의 확보는 절실하단다. 우리나라는 공공의료기관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하는구나. 의사들도 돈 벌려고 사립종합병원으로 쏠리는 현상이 있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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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기후위기는 건강위기이고 심각한 건강 불평등을 초래할 것이다. 홍수, 가뭄, 이상기온 등 극심한 기후변화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환경재난을 초래한다. 이로 인해 대응력이 부족한 취약 계층이 더 큰 피해를 입게 마련이다. 기후위기의 심화로 코로나 같은 전염병 재난은 반드시 반복될 것이라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의 의견이다. 복합적인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에서 의료의 준비는 중요한 분야의 하나이다. 이는 수익으로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인류의 안전을 위해 아주 시급한 과제이다. 의료분야 탄소 발생 감소를 위한 투자도 필요하다 지금의 조건에서는 진척이 어렵다. 의료공공성의 토대가 미약하여 이를 추진할 동력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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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료수가 턱없이 부족한 것이 문제인데, 정부는 이러한 현실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고, 무작정 의사수만 늘리려고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구나. 대화 좀 해라, 대화 좀

 

1.

부자 세금을 줄이는 정책을 시행해서 그런지 물가도 오르고 교통비도 계속 오르기만 한단다. 나라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유의해야 할 것 중에 하나가 교통 요금의 인상이란다. 기후위기를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대중 교통을 좀더 이용을 해야 하는데, 대중 교통 요금을 계속 올리다 보면 대중 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자차를 이용하는 사람이 늘어나게 된다는 거지. 대중 교통은 어떻게 하면 수요를 늘릴 수 있다는 하는 정책을 고심해야 한다는 거야. 문제가 되면 그냥 무작정 교통 요금을 올리면 되는 것이라 아니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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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수요가 줄어드는 것은 둘째 치고, 서울시의 장래 교통정책은 대중교통의 수요를 늘리는 쪽으로 가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느냐는 사실이다. 요금을 올려 놓고 이용자가 줄지 않았어!”라고 환호성을 올릴 때 득은 버스를 운영하는 민간사업자와 보조금을 지급하는 서울시로 흘러가는 반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부담은 더 커지고 기후위기 대응의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까 교통요금 인상이라는 것은 전형적으로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현재의 부담을 차별적으로 분배하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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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과일 물가가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단다. 사과값이 전세계에서 가장 비싸다는 이야기도 있단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단다. 하기야 괜히 뭔가 했다가 더 비싸지거나 다른 것마저 같이 비싸질 수 있으니 가만히 있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도 드는구나. 그런데 이 사과값 상승이 단지 일이년 흉작 때문이 아니고, 기후 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소리에 그렇겠구나, 생각이 들었어. 기후 변화가 그냥 온도 상승으로 우리사 살고 있는 곳이 더워진다고만 생각하면 큰 오산이란다.

바뀐 환경 때문에 먹거리가 바뀌고 동식물이 바뀌고 또는 사라지는 거야. 사과도 기후위기로 인해 산지가 점점 북상하고 있다는구나. 예전에는 대구에서 대부분을 생산했지만, 지금은 충주나 포천이 주요 산지가 되었대. 이러다가는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사과가 자라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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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금년 봄, 사과값이 상승하면서 드디어 기후변화 문제가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왔다. 하지만 일반 국민들은 이 문제가 기후변화라기보다는 단순한 농산물 유통의 문제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나라에서 사과 산지로 유명한 곳은 대구이다. 1897년 미국인 선교사들이 대구 주변에 사과나무를 심고 주민들에게 보급한 것이 대구 사과가 유명해지기 시작한 배경이라고 알려져 있다. 1970년대 대구는 우리나라 사과 생산량의 80%를 담당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지후변화로 인해 대구지역 사과 생산량은 크게 줄었다. 최근에는 사과 산지가 북상하여 충주나 포천 지역이 주요 사과 산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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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밖에 <녹색평론 2024년 여름호>에서는홍세화 선생을 추모하며 적은 글이 실렸고, 무위당 장일순의 30주기 특집으로 그의 사상과 삶에 대한 글이 있고, 여섯 편의 서평이 실려 있단다. 녹색평론에서 소개해주는 처음 알게 된 책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번호에서는 아빠도 읽은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도 소개되었더구나. 그 밖에 시도 실려 있는데, 아빠가 무서워하는 뱀에 관한 시 두 편이 실려 있는데 읽기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지더구나. 시골 전원 생활을 꿈꾸지만 저 뱀 때문에 생각을 접게 되는구나. 뱀에 관한 시 한 편을 소개해주면서 오늘 독서편지를 마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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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장석주

 

시골집에서 혼자 살 때다.

 

어느 가을날 오후 현관문을 열었는데,

문 앞 데크에서

따스한 볕 아래 쉬던 뱀이 화들짝 놀라

긴 몸을 날려 달아났다.

 

느닷없는 이 사태에 내 심장 박동은 요동쳤다.

방심한 채 몸을 늘어뜨린 채 볕 쬐던

저 길다란 영혼도 또 얼마나 놀랐을까!

 

미안하구나, 뱀아

네 평화로운 오후를 내가 망쳤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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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의 첫 문장: 건강에 대한 관심이 이렇게까지 높았던 시절이 또 있었을까.

책의 끝 문장: 죽음의 폐허 위에 조금씩 퍼져가는 숲의 생기와 접속어들의 춤을 만물의 민주주의라 불러도 좋지 않을까.


고에너지, 고비용, 저효율의 의료산업 모델은 어떤 식으로든 폐기될 수밖에 없고, 자원을 덜 쓰면서 필요한 일들을 하기 위해서 의료공공성을 확보하는 일은 몹시 중요하다. 어디에서든 누구든 필수의료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는 일은 앞으로 날이 갈수록 절실하게 필요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미 여러 차원에서 실패하고 있는 상품들(의사, 약품, 기술)에 의존하는 시스템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환원주의적, 기계적인 세계관과 문화를 그대로 둔 채 공적인 개입과 비용을 늘리는 방식은 명백히 한계가 있다. 우리는 왜 질병의 결과와 비용을 국가가 감당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그 원인을 제거하라고 정치에 요구하지 않는 것일까. 더 많은 병원 병원과 의사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그런 것들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회환경과 생활조건을 위해서는 왜 노력하지 않는가. - P3

미세먼지들이 자욱한 공기를 마시고, 미세플라스틱이 부유하는 물을 마시고, 항생제 투여된 고기를 먹고, 농약 묻은 야채를 먹고, 화약약품으로 숙성시킨 과일을 먹으면서도 우리는 내부로 집착된 시선을 지속한다. 살벌한 경쟁의 기업문화 속 스트레스가 만연한 직장을 다니고, 휴식하고 운동할 시간을 확보할 수 없는 365일 자영업장을 운영하면서, 사회적 불평등이 건강 불평등으로 가시화되는 상황에서도 몸 내부로 향하는 강력한 시선의 방향성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내부에서 다시 나누어진 부분의 내부를 바라보는 시선의 관성을 멈추지 못한다. 발암물질, 미세플라스틱이 이미 하이브리드된 몸인데, 의료는 자꾸 이 몸의 순수성을 말한다. 지금의 의료에서 몸과 몸 밖의 관계성은 무시된다. ‘관계’ 없는 의료가 지금의 의료를 특징짓는다. 그리고 어느 날 찾아간 병원에서 질책의 말을 듣는다. "이렇게 될 때까지 뭐 하셨어요." - P71

자연환경이 훼손된 곳에는 독성을 가진 식물이 곧잘 번식해서 풀을 먹이로 하는 가축들에 해를 끼치기도 하고, 농업에 방해가 되기도 합니다. 사람에 위협이 되는 경우도 있지요. 그런데 사실 이 식물들의 목적은 하나입니다. 환경을 파괴하고 있는 근원을 제압해서 생태계가 스스로 재생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죠. 독(毒)이라는 개념은 생태적인 게 아닙니다. 문화적인 것이지요. 지구의 관점에서는 독(毒) 같은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 P104

그리고 현재는 있는 줄도 몰랐던 정치행태를 이런 종류의 독재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도 해보지 못했다. ‘민주주의’라는 현재 인류 최고의 시스템도 악착스런 인간의 탐욕에 대한 제대로의 제어장치는 제어장치는 되지 못하는 것이다. 세상은 무척 변한 것 같아도 그 근본에서는 70년대와 그다지 많이 다르지 않아 보인다. 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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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물처럼
셸리 리드 지음, 김보람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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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인터넷 서점 신간 코너에서 알게 된 셸리 리드의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책을 읽었단다. 유명한 평론가의 추천작, 출판사들의 러브콜을 받은 작품, 영화 제작사와 거액 계약 등 이 소설을 홍보하는 수식어들이 많았단다. 약간은 과도해 보이는 홍보가 붙은 소설들은 간혹 큰 실망을 주는 경우가 많아서 아빠는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책을 펼쳤단다.

지은이는 셸리 리드라고 하는 사람인데 대학교에서 30년동안 학생들을 가르쳤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뒤늦게 처음 쓴 소설이 바로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책이라고 해.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제목은 아빠와 비슷한 세대들에게는 브레드 피드의 리즈 시절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영화를 떠올리지 않을까 싶구나. 이 소설은 그 영화와는 전혀 상관없는 소설이란다. 그런데 왜 소설의 제목을 <흐르는 강물처럼>이라고 지었을까? 소설 속 주인공의 대사에서 따온 듯싶구나. 장애물이 나타난다고 해서 멈추거나 피하지 않는 강물처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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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윌이 이곳을 떠나 어디로 간다 한들 세스 같은 사람이 없겠는가? 어디로 간들 세스처럼 분노로 가득한 사람, 피부색이 어둡다는 이유만으로 괴롭히려는 사람이 없겠는가? 윌은 도망칠 생각이 전혀 없었다.

흐르는 강물처럼 살 거야. 우리 할아버지가 늘 그러셨거든. 방법은 그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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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을 다 읽은 날 우리 가족이 함께 외식을 했어. 그 식사자리에서 아빠가 이 책의 줄거리를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너희들과 엄마 모두 무척 재미있다고 했었잖니. 그때 바로 너희들에게 독서편지를 썼어야 했는데, 밀린 독서편지를 차례대로 쓰다 보니 읽은 지 꽤 지났구나. 그 때 이야기해준 것을 잊지 말고 다시 이야기할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메모를 해 둔 것과 아직 남아 있는 기억을 잘 떠올리면서 다시 한번 이야기를 시작해볼게.

 

1.

소설은 1948년 콜로라도 거니스 강 주변 아이올라라는 시골 마을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단다. 주인공은 열일곱 살 빅토리아. 빅토리아가 열두 살 때, 어머니와 큰 오빠와 이모가 외출했다가 그만 교통사고로 모두 돌아가셨단다. 그 이후 집안일은 빅토리아가 다 해야 했어. 집에는 아버지와 망나니 동생 세스, 그리고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불구자가 되어 하루 종일 휠체어에서 지내는 이모부가 있었어. 빅토리아는 이런 남자 셋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지냈어. 그런 빅토리아를 공감해주는 어머니도 없었고, 자신에게 잘 대해주던 큰 오빠 캘러머스도 이 세상에 없었어. 식구들이 있었지만 빅토리아는 늘 외로웠지. 아버지는 복숭아 과수원을 하셨어. 빅토리아는 집안일뿐만 아니라 복숭아 과수원에서 농장일도 도왔단다. 그야말로 착한 딸이었단다.

그 날도 술에 취한 동생 세스를 찾으러 가던 길이었어. 길을 묻는 낯선 이방인 윌슨 문이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어. 빅토리아는 윌슨과 첫눈에 사랑에 빠지게 되었단다. 술 취한 세스를 부축해서 데리고 가던 빅토리아가 넘어져 발목을 다치게 되었어. 그때 윌슨이 갑자기 나타나서 빅토리아를 안아서 집까지 데려다 주었단다. 빅토리아는 더욱 가슴이 뛰었겠지. 하지만 이런 윌슨의 행동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던 세스는 윌슨을 공격했고, 한바탕 싸움이 일어나기 직전 아버지가 농장에서 돌아오셔서 윌슨은 무사히 돌아갔단다. 사실 윌슨은 아메리칸 원주민, 인디언이었단다. 세스는 윌슨을 인디언이라면서 업신여기고 욕을 했어. 심지어 윌슨이 현상수배자라면서 그를 잡겠다고 큰 소리를 쳤단다. 하지만 빅토리아는 그날 아침과 저녁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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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그날 아침 우리 농가를 나설 때만 해도 나는 그저 평범한 소녀였다. 내 안에 어떤 새로운 지도가 펼쳐졌는지 그때는 몰랐지만 집으로 돌아가던 나는 이제 비범한 소녀가 되었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언젠가 학교에서 배웠던 것처럼 탐험가들이 끝없이 펼쳐진 바다에서 저 멀리 신비로운 해변의 존재를 보았을 때 이런 기분을 느꼈을까. 내 안에 갑작스럽게 마젤란이 등장했지만, 나는 아직 내가 무엇을 발견했는지 모르고 있었다. 나는 윌의 넓은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윌이 어디서, 누구에게서 왔을지, 떠돌이라면 한곳에 오래 머무르는 것일지 궁금해하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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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빅토리아는 아픈 다리를 절룩거리면서 윌슨이 머물고 있는 여관을 찾아갔단다. 그런데 여관에 가보니 윌슨이 인디언이라고 내쫓았다고 하더구나. 빅토리아에게는 그렇게 친절하게 대해주던 여관 주인이었는데 말이야. 우여곡절 끝에 빅토리아는 윌슨을 다시 만나게 되었고, 그날 이후 그들은 비밀 사랑을 하기 시작했단다. 어느날 세스가 빅토리아의 비밀 사랑을 눈치챈 것 같았어.

그리고 얼마 후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은 윌슨밤마다 빅토리아는 윌슨을 찾아 이곳 저곳 찾아 다녔어. 그런데 며칠 뒤 마을 외곽에서 윌슨은 피부가 벗겨진 채 시신으로 발견되었단다. 빅토리아는 울분을 토했어. 세스가 윌슨을 잡아 죽이겠다고 큰소리 친 것도 기억이 났어. 세스가 윌슨을 죽였을 것이라 생각했단다. 빅토리아는 슬퍼할 시간도 없었어. 빅토리아는 임신을 했어.

 

2.

집에서 점점 불어나는 배를 숨기면서 집안일을 했단다. 하지만 점점 불어나는 배를 숨길 수 없을 때가 되었을 때 빅토리아는 아버지한테 편지를 남기고 가출했단다. 윌슨과 함께 지냈던 깊은 산속의 산막에 가서 지냈어. 그런 산속에서 혼자 지내는 것은 무척 무서웠단다. 특히 밤에 산짐승이 들어올까, 아니면 낯선 이라도 나타나면 어찌할까…. 비상식량과 텃밭에서 나는 작물로 간신히 끼니만 때웠어. 그리고 몇 달이 지나고 혼자서 아기를 낳았단다.

힘들게 아기를 낳고 정신을 잃기도 했지만, 영혼이 된 윌슨이 보살펴주었는지 빅토리아는 몸도 회복하고 아이도 잘 자랐어. 아이의 이름은 블루라고 지었단다. 몇 주가 지나고 먹을 것이 다 떨어져서 그곳을 떠나기로 했단다. 다시 마을로 돌아오다가 우연히 소풍 나온 가족을 보았어. 젊은 부부와 블루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데리고 소풍을 온 거야. 순간적으로 빅토리아는 블루를 저 부부가 키우면 잘 키워 줄 거라는 생각을 했어. 그래서 그들이 주차해 놓은 자동차 뒷좌석에 블루를 내려놓고 도망쳤단다. 슬픔과 죄책감과 안도감을 가득 안은 채 달렸단다.

그리고 자신의 이웃집 루비앨리스 집에 노크를 했단다. 루비앨리스는 노파이신데, 예전에 마을 사람들 몰래 윌슨을 숨겨주기도 하셨어. 빅토리아는 루비앨리스의 보살핌 속에 며칠 동안 지내니 몸이 회복되었어. 그리고 집에 갔어. 아무도 없었어. 한 동안 비어 있는 집처럼 보였단다. 빅토리아 방만 변하지 않고 그대로였어. 저녁이 되자 아버지가 농장에서 돌아오셨어. 빅토리아를 보고도 아무 말 하지 않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셨단다. 마치 늘 빅토리아가 집에 있었던 것처럼 말이야. 그런데 집에 세스와 이모부가 안 계셨는데 그것을 물어볼 수도 없었단다. 그 후 며칠 동안 아버지와 몇 마디 나눈 것이 전부였단다.

아버지가 피를 토하는 등 깊은 기침을 계속 하셨어. 큰 병에 걸리신 듯했어. 1949년 가을 아버지는 결국 회복하지 못하고 돌아가셨단다. 장례식에 오신 보안관 아저씨를 통해서 빅토리아가 집을 가난 이후 일을 들을 수 있었어. 빅토리아가 사라지고 아버지는 거의 매일 빅토리아를 찾으러 돌아다니셨다고 했어. 아버지는 세스와 이모부 때문에 빅토리아가 집 나간 것이라고 생각하고 세스를 보안관 아저씨에게 신고해서 세스를 마을에서 쫓아내 버렸고, 이모부는 이모부의 엄마에게 보내버렸단다. 이런 아버지의 속마음을 이제서야 알게 된 빅토리아는 후회를 했지만 때는 이미 늦어버렸구나. 아버지가 병이 생긴 것도 다 자신 때문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어. 집에 혼자 있으면서 빅토리아는 복숭아 과수원을 혼자 운영했단다.

 

3.

1954년 인근에 댐 공사를 한다고 했어. 그렇게 되면 빅토리아가 살고 있는 마을과 과수원은 모두 물에 잠기게 돼.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반발을 했지만, 빅토리아는 사랑하는 이들이 모두 떠난 이 마을에 미련이 없어서 가장 먼저 정부에 집과 땅을 팔았단다. 이 일로 빅토리아는 마을 사람들에게 따돌림까지 당했단다. 루비앨리스만 그녀를 똑같이 대해주었어. 빅토리아는 마을에서 루비앨리스만이 유일한 친구였단다. 어느날 루비앨리스가 쓰러지셨는데, 다행히 빅토리아가 발견하여 구급차를 불러 병원에 갔단다.

빅토리아는 루비앨리스가 입원한 병원에 갔다가 인근에 있는 대학교에 무작정 들어갔단다. 자신의 복숭아 나무들을 이전하고 싶은데 방법을 물어보려고 했던 거야. 무작정 만난 교수님이 자신의 학교에 괴짜 식물학 교수가 있다면서 그가 도와줄 거라면서 소개해주었어. 그 교수의 이름은 그리니였어. 그리니 교수는 빅토리아의 이야기를 듣고 도와주겠다고 했어. 어찌 보면 그것도 식물학 교수의 입장에서 보면 커다란 프로젝트이자 연구일 수 있거든. 학생들까지 동원하여 빅토리아의 복숭아들은 새로운 땅으로 이전하게 되었단다. 이제 집도 이사를 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동생 세스가 찾아왔단다.

세스도 어느덧 스물두 살이었어. 빅토이라는 세스가 돈 때문에 왔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세스는 돈 때문에 온 것이 아니고, 진실을 이야기하러 왔다고 했어. 윌슨은 자신이 죽인 것이 아니고, 자신의 친구가 죽인 것이라고 했어. 하지만 빅토리아는 왜 말리지 않았냐고 했고, 세스는 그 당시 상황에서 말릴 수 없다고 했어. 빅토리아는 그 친구에게 자수를 해서 죗값을 받으라고 했더니 그 친구는 죽고 이 세상에 없다고 했단다. 빅토리아는 화를 내면서 세스를 다시 내쫓았단다. 하나 밖에 없는 식구이지만 세스를 용서할 수 없었어.

빅토리아는 아이올라의 집을 정리하고 파오니아로 이사를 갔단다. 파오니아 생활은 친절한 이웃과 그리니 교수의 도움으로 잘 적응해갔단다. 다행히 이전한 복숭아 나무들도 건강하게 열매를 맺기 시작했어. 그렇게 혼자 생활도 적응해서 살다 보니 가슴 속 한 켠에 늘 아픔을 주는 아들이 자주 생각났어. 아들의 생일에 헤어졌던 그곳을 가보았단다. 그곳에 눈에 띄는 큰 바위가 있었는데 그 바위에 돌멩이 하나를 올려 놓는 의식을 하면서 아들의 생일을 기념했단다. 그 이후 매년 아들의 생일에 그곳을 찾아서 돌멩이를 올려놓았단다. 1962년 아들의 13번째 생일날누군가 그곳을 다녀간 것 같은 흔적이 있었어. 작은 발자국들도 있었고빅토리아는 혹시 라는 생각을 하면 긴장을 했단다. 그리고 그 다음해도 기대를 가지고 그곳에 갔지만 아무런 흔적도 없었단다.

 

4.

또 시간이 흘러 1970아들의 생일날 그 바위에 갔다가 깜짝 놀랐단다. 비닐 봉지 안에 편지가 돌에 괴여 있었어. 빅토리아는 그 긴 편지를 조심스럽게 열어보았단다. 그 편지는 잉가 테이트라는 사람의 편지였어.

1949년 잉가는 빅토리아를 두고 간 블루를 또 다른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아들처럼 정성스럽게 키웠대. 이름은 루카스라고 짓고 자신의 친아들 맥스웰과 비슷한 달수인 것 같아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쌍둥이라고 했어. 잉가의 남편 폴은 그리 성격이 좋은 이가 아니었어. 맥스웰은 그런 아빠를 쏙 빼 닮았단다. 그에 반해 루카스는 차분하고 병든 동물들도 잘 보살펴주었어. 그런데 루카스는 커가면서 피부색 때문에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았어. 그래서 늘 우울해 보였단다. 잉가는 루카스를 데리고 드라이브를 갔다가 루카스를 처음 만난 곳을 가게 되었고, 큰 바위 위에 정돈된 돌멩이를 보게 되었단다. 그때가 빅토리아가 왔다가 작은 발자국을 봤던 그 때였단다. 그 돌멩이를 보고 잉가는 루카스의 친엄마가 이곳에 왔다고 직감했단다. 그리고는 루카스의 친엄마가 나타나서 루카스를 빼앗아 갈까 봐 걱정했단다. 그래서 그 이후에는 그곳에 오지 않았어.

1969년 미국은 베트남과 전쟁 중이었고, 젊은이들을 전쟁에 보내려고 추첨을 했단다. 그러니까 추첨에 당첨된 사람만 군인이 되어 전쟁에 참가해야 하는 거야. 그런데 그걸 생일로 결정했어. 맥스웰과 루카스는 쌍둥이라고 했으니 생일이 모두 8 31일로 되어 있었지. 그런데 그만 8 31일도 당첨되고 말았단다. 잉가는 슬픔에 빠져 루카스만이라도 전쟁에 나가지 않게 하려고 했어. 그러면서 루카스에 출생의 비밀을 알려주었어. 그리고 같이 병무청에 가서 루카스의 입영을 막으려고 했단다. 잉가가 두 아들 모두 군대에 간다는 소식에 이성을 조금 잃었던 것 같구나. 루카스에게 그렇게 출생의 비밀을 알려주면 루카스가 좋아할까. 당연히 루카스는 충격에 빠지겠지. 루카스는 그날 바로 집을 나갔단다. 그리고 얼마 후 루카스의 편지가 도착했는데 군에 자원입대를 했다고 했어.

맥스웰은 군대 가는 것을 좋아했는데 신체검사에서 어렸을 때 부러진 팔 때문에 부적합 판정을 받게 되었단다. 그래서 입대가 취소되었어. 이후 맥스웰은 입대취소라는 실망에 젊은 혈기까지 어우러져 술과 약물에 빠졌어. 그러던 어느날 맥스웰은 술에 취해 토악질을 하다가 토사물에 기도가 막혀 죽고 말았단다. , 잉가가 너무 불쌍하구나.

장례식장에 루카스도 왔어. 잉가는 루카스에게 돌아와 달라고 애원했지만 다시 떠났단다. 루카스도 젊어서 그런지 잉가의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하는구나. 그렇게 다시 루카스가 떠나고 나서 잉가는 루카스의 친엄마에게 편지를 쓰기로 했단다. 그 편지가 바로 빅토리아가 본 편지란다.

빅토리아는 가장 친한 이웃 젤다에게 자신의 숨겨진 과거에 대해 이야기를 했어.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조언을 구했단다. 빅토리아는 젤다의 응원에 힘입어 잉가에게 연락하고 만나기로 했단다. 잉가와 빅토리아는 오랜 시절 서로 모른 채 다른 삶을 살았지만 그들은 보이지 않는 운명의 줄로 연결되어 있었단다. 빅토리아와 잉가는 만나 한참을 이야기했단다.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어. 그리고 일 년 뒤. 안전하게 군복무를 끝내고 돌아온 루카스 빅토리아와 잉가는 함께 루카스를 맞이했단다.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단다.

이야기를 다시 하다 보니그래도 많이 까먹지 않고 이야기한 것 같구나. 그렇다고 아빠가 한 이야기에 오류가 없는 것은 아니고…^^ 지은이의 데뷔작이라고는 하기에는 너무 훌륭한 작품이었어. 아빠가 서두에서 기대를 하지 않고 읽기 시작했다고 했는데, 이 소설은 기대를 가득하고 읽어도 그 기대를 충분히 채워주었을 것 같구나. 아빠가 최근 몇 달 내에 읽은 소설 중에 가장 좋았단다. 바닥까지 내려갔던 주인공 빅토리아가 복숭아 나무처럼 다시 열매를 맺는 것 또한 좋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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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416)

그랬다. 젤다의 말이 옳았다. 내 과수원이 그랬듯 나 역시 새로운 토양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회복력을 가지고 있었고, 내 의지와 관계없이 뿌리째 뽑히고도 어떻게든 살아왔다. 그러나 셀 수 없을 만큼 흔들리고, 넘어지고, 무너지고, 두려움에 웅크린 것도 사실이다. 그러면서 나는 강인함은 이 어수선한 숲 바닥과 같다는 걸 배웠다. 강인함은 작은 승리와 무한한 실수로 만들어진 숲과 같고, 모든 걸 쓰러뜨린 폭풍이 지나가고 햇빛이 내리쬐는 숲과 같다. 우리는 넘어지고, 밀려나고, 다시 일어난다. 그리고 최선을 희망하며 예측할 수 없는 조각들을 모아가며 성장한다. 이토록 아름다운 방식으로 성장한다는 것 하나만으로 우리 모두는 함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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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셸리 리드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구나.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저수지 아래 시커먼 밑바닥에는 무엇이 있을까?

책의 끝 문장: 자갈이 깔린 물가를 따라 내딛는 우리의 발걸음을 이 땅이 단단히 붙잡아 줄 거라고, 아들도 나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


내가 어머니를 그리워한 건 꽃피는 사랑에 관해 조언을 듣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그날 밤 잠에 빠져드는 순간까지 내가 그토록 간절히 소원했던 건, 여자도 자기가 선택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해줄 사람이었다. 물론 어머니가 살아 계셨더라도 내 편을 들어줬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어머니를 잃은 딸이 누릴 수 있는 이점을 하나만 꼽으라면, 실제로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머릿속에서만큼은 어머니를 확고한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 P66

나는 일평생 착한 딸로 살아왔다. 부모님 말씀을 잘 들었고, 예의 바르게 행동했으며, 어른들을 공경했다. 성경책을 읽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복숭아를 수확할 때면 얇디얇은 유리 공을 만지듯 조심스럽게 비틀어 따서 부셸 바구니 안에 살포시 담았다. 항상 집 안을 쓸고 닦았고, 남자들이 배고프지 않도록 끼니를 챙겼고, 빨래를 깔끔하게 정돈했고, 빈틈없이 농장을 관리했다. 불필요한 질문을 하지 않았고, 내 울음소리가 침실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늘 조심했다. 어머니 없이 살아가는 방법도 오롯이 혼자 힘으로 깨우쳤다. 그렇게 착한 딸로 살던 내가 노스 로라와 메인 스트리트 모퉁이에서 우연히 마주친 꾀죄죄한 남자와 사랑에 빠진 것이다. 단 한 번의 폭풍우가 강둑을 무너뜨리고 강물의 흐름을 바꾸어버리듯 한 소녀의 인생에 닥친 단 하나의 사건은 이전의 삶을 모조리 지워버렸다. - P164

거대하고 신비로운 태피스트리로 장식된 숲속의 집에서 잠을 청할 때문 숲의 심장이 뛰는 소리, 주변의 무수한 생명이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나와 함께 호흡하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밤이 두렵지 않은 건 살면서 처음이었다. - P188

세스는 나를 쳐다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칠 대로 지친 데다 괴로워하는 얼굴이 그를 스물두 살이 아니라 여든 살의 노인으로 보이게 했다. 세스의 얼굴이 너무 슬퍼 보여서 순간 나는 한때 동생을 아꼈던 어린 누나의 애틋한 마음으로 돌아갔다. 두려움과 혼란을 풀어내고 애틋함만 남기고 싶었다. 동생을 구해주고 싶었다. 동생의 악함과 세상의 악함을 내 선한 행동으로 상쇄하고 싶었다. 나도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내 모습이 내 안에 있었다고, 그러니 네 안에도 생각지 못한 면이 존재할 거라고 세스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 P277

긴 진입로를 벗어나는 내내 뒤돌아보지 않으려고 무척 애썼다. 그러나 도무지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트럭을 세우고 밖으로 나와 나를 만들어준 이 공간을 마지막으로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그러고 나서야 트럭으로 돌아와 차를 몰았다. 나는 과거를 뒤로하고 새롭게 출발할 것이었다. 나는 기적을 바라지 않았다. 그저 새로운 토양이 충분히 강인하기만을 바랐다. 뿌리채 뽑힌 내 나무들이 새로운 곳에서 온갖 역경을 견디고 살아남는다면, 빌어먹을 온갖 불행이 닥치더라도 나 역시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 P284

초여름 빗물로 불어난 하얀 강물이 힘차게 흐르고 있었다. 강물은 자신의 운명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듯 매우 아름다웠다. 곧 저수지가 될 거니슨강을 내려다보면서, 나는 댐이 건설되고 거니슨강 하류에 수문이 개방되어도, 지금 흐르는 강물의 일부는 변함없이 아래로 흘러갈 거라고 확신했다. 아무리 느리더라도, 아무리 험난하더라도, 아무리 적은 양이더라도 강물은 어떻게든 물길을 찾아내 꾸준히 흐를 것이다. 그러면, 노스포크강을 따라 새로운 삶을 꾸린 나는 그 반대편에서 흐르는 강물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 P322

서늘한 소나무 그늘에 앉았다. 바닥에 손을 뻗어 잡히는 대로 흙 두 줌을 퍼 올렸다. 퍼 올린 흙에는 시커먼 흙, 솔잎, 조약돌, 잔가지, 나뭇잎, 자그마한 달팽이 껍데기, 솜처럼 하얀 깃털이 들어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탄생, 성장, 그리고 죽음이 겹겹이 쌓여 있는 모습, 쓰러진 나무 사이로 새싹이 돋아나는 모습, 모든 굴곡을 이겨내고 틈을 뚫고 빛을 향해 쭉쭉 뻗어 나간 생명들을 둘러보았다. 숲에 깃든 태곳적 혜안은 너무 깊고 복잡해 오롯이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내게 꼭 필요했던 지혜를 다시금 떠올릴 만큼은 헤아릴 수 있었다. 숲은 내게 말했다. 모든 존재를 그 자체로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건, 바로 겹겹이 쌓인 시간의 층이라고. - P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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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성교육 하자 - 건강한 성 관점을 가진 아들로 키우는 55가지 성교육법 성교육 하자
이석원 지음 / 라온북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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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Shawn이 언제 이렇게 컸니? 너가 점점 커가면서, 아빠가 성교육을 좀 해주어야 한다고 늘 생각을 했어. 요즘에는 학교에서도 해준다고 하지만, 그래도 아들의 성교육의 아빠의 의무 중에 하나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단다. 그렇다고 아빠가 성교육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야. 아빠가 어렸을 때 성교육을 제대로 받아본 적도 사실 없단다. 그래서 좀 막막했어.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하나. 성교육이라는 것이 어떻게 생각하면 조금 민감한 수도 있는데 말이야. 인터넷 서점에서 책들을 좀 검색해 보았단다.

많은 이들이 보고, 평점도 괜찮은 책들 중에 이석원 님의 <아들아 성교육 하자>라는 책이 눈이 들어왔단다. 그래서 책을 샀지. 그런데 한참 동안 책탑 속에서 먼지만 쌓여가고 있었지. 시간이 좀더 흐르고 Shawn 2차 성징이 나타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어. 더 이상 미루면 안되겠다 싶어서 책탑 속에서 이 책을 찾아 이번에 읽게 되었단다. 아빠는 2차 성징이 오기 전에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아빠가 잘못 알고 있었더구나.

이 책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하면 좋다고 하면서 다섯 살 무렵부터 틈틈이 일상 대화 속에서 알려주는 것이 좋다는구나. 그러니까 일부러 시간을 내지 말고 일상 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라는 거야. 물론 지은이도 말씀하신 것처럼 내 아이의 최고의 성교육 전문가는 바로 양육자라고 했어. 부모가 아닌 이들이 아이들을 돌보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부모라고 안 하고 양육자라고 한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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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세상에서 내 아이에게 가장 좋은 성교육 전문가가 누굴까? 바로 양육자. 이 책을 읽고 있는 당신도 내 아이에게만큼은 꼭 제대로 된 성교육을 해주고 싶을 것이다. 양육자는 자녀에게 올바른 성 개념과 가치관을 심어줄 의무가 있다. 가치관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이 삶이나 어떤 대상에 대해 무엇이 좋고, 옳고, 바람직한지를 판단하는 관점이다. 양육자는 자녀가 성을 바라보는 판단의 기준을 잘 세우도록 가르쳐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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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교육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과 관계라고 하는구나. 가족끼리 친근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좋지만, 규칙이 필요하고 서로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거야. 그리고 성평등에 대한 관점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아들에게 사용하지 말아야 말들도 알려주었단다. 그런데 아빠가 아래 말들 중에 일부 했던 말이 있어서 가슴 뜨끔했단다. 아빠도 알게 모르게 성차별을 하고 있었나 보구나. 깊이 반성하고 앞으로 아래 말들은 입에 담지 말아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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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양육자는 다음과 같은 말을 아들에게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울지 마. 남자는 씩씩해야 해.”

착하기만 한 남자는 매력 없어.”

너는 꼭 여자처럼 행동하는구나.”

남자인 네가 참아야지.”

남자가 그렇게 힘이 약해서 어떡하니.”

남자는 돈을 벌어 가정을 책임져야 해.”

남자가 비겁하게.”

남자애는 인형을 가지고 노는 게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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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교육을 하게 되면 몸의 명칭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성기의 명칭을 뭐라고 해야 하나? 아빠도 사실 이것을 좀 고민한 적이 있단다. 지은이는 정확한 명칭으로 알려주어야 한다면서 성기의 정확한 명칭은 음경이라고 알려주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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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자기 몸의 이름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자신을 바로 알고 사랑할 수 있을까? 성교육은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가장 올바르게 사랑하는 방법이다. 성교육에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바로 그 출발점이 내 몸과 소중한 곳에 대해 올바르게 아는 것이다. 따라서 양육자가 아이에게 소중한 곳의 이름을 정확하게 알려주어야 한다. 이제부터 양육자가 아이에게 음경이라는 성기의 정확한 이름을 알려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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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 책의 지은이 이석원 님은 성교육 전문가로써, 수천 회에 걸쳐 교육과 상담을 진행했다는구나. 그런 경험을 통해서 양육자들의 질문과 고민을 받고 같이 답을 찾았던 것들을 바탕으로 이 책을 엮은 것이란다. 그래서 아이들이 하는 성적 행동에 대해서 대처하는 방법도 같이 제시해 주었단다. 아이들이 점점 커가면서 나타나는 행동과 신체의 변화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해주는지 잘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예를 들어 아이가 음란물을 보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무작정 혼을 내는 것이 아니고 걱정되어 이야기한다는 식으로 대화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했어. 그러면서 음란물에 나온 내용을 따라 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 불법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한다고 했단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아빠도 이런 상황에 닥쳤을 때, 다짜고짜 화부터 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

이렇게 사례들을 통해서 대처 방법을 알려주고 있는데 아빠가 이 책을 한번만 읽고는 다 기억하지 못할 테니, 책상 옆 가까운 책꽂이에 꽂아두고 가끔씩 꺼내보면서 상황에 맞는 대처법을 잘 알아두어야겠구나. 그리고 오늘날같은 디지털 시대에서 성관련 콘텐츠는 너무나 쉽게 접할 수 있고, 그만큼 디지털 성폭력과 디지털 성범죄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란다. 그래서 그런 디지털 성폭력과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예방법과 대처 방법도 가이드해주고 있단다.

이 책은 아빠가 Shawn에게 성교육을 하는데 도움을 받고자 읽은 책인데 아빠도 몰랐던 내용들을 더 많이 알게 된 것 같구나. 하기야 아빠도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으니 말이야…. 아무튼 일상 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 책에서 알게 된 내용들을 이야기해봐야겠구나.

 

PS,

책의 첫 문장: 성교육은 부모와 자녀 중 누구에게 먼저 필요할까?

책의 끝 문장: 아이에게 건강한 성교육이라는 가장 위대한 유산을 물려줄 여러분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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