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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과학을 해석하려면 과학의 과거를 알아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발견했는가뿐만 아니라 우리는 왜 그것을 알아내려 했는가를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째서 오늘날과 같은 방식으로 과학 지식이 인정되거나 거부되는지 알 수 없으며 어떤 것이 과학이 충족시킬 수 있는 약속이고 어떤 것이 의심해봐야 할 주장인지도 구별할 수 없다.

그런 것들을 질문해야만, 우리는 과학을 이해하기 시작할 수 있다.


(18)

히포크라테스는 눈에 보이는 세계, 질서 잡힌 우주에 의지해 질병을 설명하려 했다. 그가 보기에 질병은 신의 분노로 생기는 것이 아니었고, 따라서 자애로운 신의 은혜로 치료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악마에 씐 상태이거나 신성에 씐 상태라고 오래도록 여겨져온 간질도 그가 보기에는 다른 질병보다 더 영적이거나 신성하지 않으며, 그것 또한 자연적인 원인으로 생기는 것일 뿐이었다. 히포크라테스는 사람들이 무지해서 질병을 신의 의지 때문으로 여긴다고 생각했다. ‘질병이 신성 때문에 생긴다는 개념은 질병을 이해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나 갖는 믿음이라는 것이었다.


(29-30)

여기에 더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진화라는 개념을 가능하게 했다. 플라톤의 세계에서는 변화가 부패이고 이데아에서 멀어지는 것이었으며 덜 효과적이고 덜 발달된 상태로 가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에서는 자연이 더 완전하게 실현된 종착지를 향해 발달하고 있었다. 오늘날의 진화 개념과 꼭 같지는 않다. 오늘날 알려진 생물학적 진화는 정해진 목적도, 전체적인 설계도 없는 과정인 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은 목적론이다. 즉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이 의도적으로 완벽을 향해 나아간다고 믿었다.


(42)

아르키메데스는 당시에 널리 받아들여지던 우주 모델 대신 다른 모델을 사용하기로 했다. 태양이 중심에 있는 모델이었다. 고대에는 우주를 상호 연관된 구체들이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비교적 작은 체계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아르키메데스는 이 자그마한 우주가 그에게로 별로 도전할 거리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62)

나는 더 합리적인 궤도의 배열이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되었습니다.

-       코페르니쿠스 <주해>


(86)

우리 시대에는 새로운 사건들과 새로운 관찰들이 있어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오늘날 살았더라면 이 새로운 사건들과 관찰들을 보고 자신의 견해를 바꾸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       갈릴레오 갈릴레이 <대화:천동설과 지동설, 두 체계에 대하여>


(107)

이에 더해, 실험은 반복해서 행해져야 했다. 보일은 나중에 이렇게 언급했다. ‘그 실험들을 매우 조심스럽게 한 번 이상 해보아야 한다. 그렇게 한 다음에야 이론적으로든 실용적으로든 상위 구조를 지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한 번의 실험에 너무 많이 의존하는 것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라.’ 조건이나 물질이 달라지면 결과에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여러 번 반복해서 얻은 결과만을 이론의 기반으로 삼아야 했다.


(113)

“(진정한 자연 철학은) 손과 눈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기억을 통해 진전되고 이성에 의해 계속 나아간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다시 손과 눈으로 돌아온다. 이렇게 자연 철학은 하나의 역량과 기관에서 다음의 역량과 기관으로 계속 돌면서 생명과 힘을 얻는다. 혈액이 손, , , 심장, 머리를 돌면서 인체가 힘을 얻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러한 방법을 부지런히 집중해서 따르고 나면 인간의 분별력 안에서 이해되지 못할 것은 없다. … 대화, 주장, 논쟁은 곧 노동으로 바뀔 것이다. 모든 현란한 견해들의 꿈, 보편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속성, 명석한 뇌가 고안한 이런 사치품들은 빠르게 사라지고, 견고한 역사와 실험과 노동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처음에 인류가 금지된 지식의 열매(선악과)’를 맛보고 타락했듯이, 그들(아담과 이브)의 후예인 우리는 동일한 방법에 의해, 즉 그저 보고 사유하는 것만을 통해서가 아니라 아직 금지된 적이 없는 자연 지식의 열매를 맛봄으로써 구원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도구는 더 이상 감각의 확장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다. 훅이 보기에, 이제 도구는 지식의 열매이자 완벽으로 가는 길이었다.


(145)

이렇게 복잡하고 단절된 지층의 과거를 시간 순서대로 정연하게 읽어낸 것은 자연 철학계에서 약간의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유럽과 영국 모두에서 광물학자들과 지질학자’(여전히 새로운 용어였다.)들이 저마다 자기 지역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지층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튀비에 자신은 이론을 더 넓게 확장했다. 그는 파리 분지의 여섯 지층이 지구의 소우주라고 결론 내리고 파리 분지에서 발견한 것을 지구 전체의 이론으로 확장했다.


(177)

그리고 과학은 재미난 이야기에 약하다. 라이엘이 말한 길고 점진적인 역사는 딱히 마음을 사로잡을 만큼 흥미롭지는 않았다. 재앙적 사건을 다시 도입한 것은 이 분야에 약간의 이야기(와 멜로드라마)를 불러왔다. 1997년에 앨버레즈는 이 가설을 <티나로사우루스 렉스와 멸망의 운석 구덩이>라는 책으로 펴냈다. 책의 대부분은 앨버레즈와 그의 연구팀을 결론으로 이끌어준 과학적 증거들을 꼼꼼하게 제시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지만, 1장에는 아마겟돈이라는 제목이 달렸고, 톨킨의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구절이 인용됐으며, 재앙의 모습이 어떤 것이었을지에 대한 묘사가 실렸다(전체 숲에 불이 붙고, 대륙 크기만 한 거대한 산불이 땅 전체를 휩쓸었다. … 숲이 불타는 동안 또 다른 공포가 해안에서 몰려오고 있었다.’). 과학 저술가 킴 짐머가 말했듯이, ‘갑자기 생명의 역사가 어떤 공상 과학 영화보도도 더 영화 같아졌다.’


(196-197)

월리스는 이러한 생각을 원래의 유형에서 무한히 멀어지려는 변종들의 경향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짧은 글로 작성해서 편지와 함께 다윈에게 보내면서 이 글을 찰스 라이엘이나 그 밖에 관심 가질 만한 자연사학자들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다윈은 깜짝 놀랐다. ‘이 글은 내 이론과 정확히 같은 이론을 담고 있다.’ 편지에 적힌 부탁대로 다윈은 이 글을 라이엘로 보냈다. (‘나는 이보다 더 놀라온 우연의 일치를 보지 못했습니다. … 그게 무엇이건 나의 독창성은 깨질 것입니다.’) 그리고 다윈 자신의 연구에 대한 간단한 초록도 보냈다. 라이엘과 동료인 조지프 후커(왕립 식물원장이자 다윈의 친구)는 두 글 모두를 린네 학회에서 발표했다(린네 학회는 100년 역사를 가진 자연사 학회다). 1858 8월 월리스와 다윈의 이론이 린네 학회 모음집에 나란히 게재됐다.


(245-246)

하지만 뉴턴의 물리학이 승리했다. 너무나 잘 작동했기 때문이다. 사실 뉴턴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도 잘 작동했다. 뉴턴의 중력 법칙과 운동 법칙들은 천체의 움직임을 놀랄 만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었다. 하지만 뉴턴은 태양계에서 작용하는 온갖 중력의 힘들이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각 천체들이 서로 영향을 미치는데, 각자가 움직이므로 그 영향이 계속해서 달라진다) 그대로 두면 무한히 갈 수 없고 가끔 한 번씩 신이 개입해서 천체들을 섬세한 균형 상태로 되돌리는 초기화가 필요할 것이라고 보았다. 또한 그는 이렇게 복잡하기 짝이 없는 체계라면 적어도 최초에 출발시킬 때라도 신의 힘이 반드시 필요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뉴턴은 1690년대 초에 이렇게 언급했다. ‘행성들이 태양 쪽으로 가게 하는 하강 운동은 중력이 일으킬 수 있지만, 각자의 궤도에서 공전을 하게 하는 수평 운동을 일으키는 데는 신의 팔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또 다른 서신에서도 이렇게 언급했다. ‘중력이 행성들의 운동을 일으켰을 수는 있겠으나 신의 힘이 없었다면 그 운동을 태양 주위를 운동으로 만들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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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

나는 북조선 편을 드는 조총련에도 가입하지 않았네. 사실은 무슨 주의, 무슨 주의 그런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거네. 미국과 소련이 없으면 자본주의도 없고 공산주의도 없는 거네. 우리에게는 무슨 주의가 중요한 게 아니고, 어떻게 하면 사람이 사람답게 잘 살아 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 아니겠는가. 미국의 자본주의는 죄가 얼마나 많으며, 소련의 공산주의 또한 죄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 통일이 돼도 나는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닌 그런 통일이 돼야 한다고 보네. 자네 생각은 어떤까?”


(225)

특히 조선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 이야기는 그들 모두 남조선 출신이지마는 남조선 당국에 대하여 심한 욕을 퍼부었다. 6만 명 가까운 조선 사람들을 이 사할린에 팽개쳐 둔 채 전쟁을 일으켜 북침을 하다니, 조국의 통일도 중요하지만 조국이 불행했던 시절에 외지에 끌려나와 온갖 수모를 당하고 있는 조선 사람들을 구해 갈 생각은 하지 않고 전쟁 놀음이나 벌이다니! 해방 전에는 왜놈들로부터 갖은 구박과 수모를 당했더니, 해방이 되자 로스케 놈들이 건너와, 들어온 놈이 동네 팔아먹는다고 오래전부터 살아온 조선 사람들을 얼마나 천대하고 멸시했는가. 왜놈들이 조선을 조센징이라고 멸시했듯이 이놈들도 조선 사람들에 대하여, 까레이 혹은 까레스키, 하면서 천대와 구박을 마음대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을 생각하면 최해술은 말할 것도 없고, 나이 젊은 허남보 같은 사람도 울분과 슬픔으로 절로 주먹이 불끈불끈 쥐어지면서 눈물까지 고였다.

특히 조선 사람들이 하나같이 남조선에 대하여 적의를 품게 된 이유는 북조선 사람들의 입김과, 그 입김을 그대로 전달하고 있는 소련 당국의 영향이 무엇보다도 컸다. 남쪽에서 불법 북침을 했다는 것도 북조선에게 전해진 소리였다.


(340)

일본에 있는 사할린 억류 귀환 한국인회에서는 혼신의 힘을 다쏟아 일본 정부에 재사할린 조선인의 귀환을 교섭했지만 일본 정부 당국자의 변명을 이러했다.

당신들의 고충이나 간절한 희망은 충분히 인정하지만 이 일은 정부가 수립되어 당당한 독립국이 된 당신네들의 나라 한국정부에서 맡아 할 일이거나 한국 국민 전체가 나설 일이 아니겠소. 당신들의 소망이 이처럼 절절한데 당신네들 국민을 대표하는 정부가 왜 말 한 마디 없겠소.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오. 일한 간에 관계가 좀 더 본궤도에 올라 정상 가동되면 당신들의 희망은 보가 전향적으로 고려될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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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부산의 일본 영사관 앞에 앉힌 위안부 소녀상 문제로 지금도 일본과는 껄끄러운 관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과 한 마디 없이, 10억 엔을 주었으니 이제 아무 소리 말고 소녀상도 철거하라는 일본 당국자를 텔레비전에서 볼 때마다 그 낯짝에 오물을 뒤집어씌우고 싶습니다. 2015년 말에 일본 당국자와 서툰 협상을 벌여 일본에 꼬투리를 잡힌 등신 같은 우리 정부 당국자가 한없이 원망스럽습니다. 우리 정부의 총체적 능력의 한계를 보는 듯한 비애를 느끼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무능하면 그것은 국가의 위상 추락은 물론, 국가 존망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대한제국 정부의 무능이 결국 나라를 망친 것은 역사의 교훈입니다. 위안부 문제 협상은 반드시 다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156)

여기는 에스토루가 아니고, 우글레고르스크다. 이제부터 조선사람들은 조선말을 써도 좋고, 특히 소련 말을 빨리 배워라. 그리고 하던 일을 계속하여라. 한 사람도 놀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 누구도 조선에는 언제 보고 주마고 약속하지는 않았다. 다만 세상이 일본 사람들의 것에서 소련 사람들의 것으로 바뀌었을 뿐, 조선 사람들은 전혀 숨도 크게 못 쉬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일본 사람 대신 소련 사람들의 멸시와 천대를 받기 시작했다. 물론 종전 직후의 소련 사람들은 일본 사람들에게는 더 무섭게 을러대고 손찌검을 하고, 심지어 총을 쏘아 죽이기도 했지만  조선 사람에게는 그러진 않았다.


(263)

이것을 다시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최초의 각서(SCAPIN 822)에 이미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다.

구일본인 점령지의 일본인 귀환 및 일본으로부터의 비일본 귀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및 동국의 지배하에 있는 영토로부터의 일본인 포로 및 일반 일본인의 귀환과 더불어 북위 38도 이북의 북조선 재일 조선인의 귀환에 관하여 본 협정을 체결한다.”

이러한 협정을 보면 사할린에 있는 조선인의 귀환은 처음부터 귀환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게다가 소련 지배하의 사할인 여러 항구에서 일본 귀국선에 승선시키는 일체의 권한과 책임은 소련관헌에게 있었다. 일본의 강제연행에 의해 사할린까지 끌려온 수많은 조선인들은 당연히 일본 정부가 책임을 지고 조선에까지 귀국시켜야 함에도 일본은 이를 깨끗이 외면했다. 패전 전까지만 해도 조선인을 법적으로는 일본인과 같이 보았고, 국적은 말할 것도 없이 일본이었다. 그것뿐인가. 종전 직후 사할린의 조선인들은 연합군 총사령부로부터 일본 국적을 가진 비일본인으로 취급되어 전범자로 처벌된 사례까지 있었다. 그러니 당시의 조선인은 이리 걸면 벌받아야 할 일본인이었고, 저리 걸면 절대로 귀국 대열에 끼지도 못하는 특수 일본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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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왜 쓰는가왜 사는가는 같은 표현이다. 사실, 이 물음은-누구나 작가인 시대지만-작가에게만 해당하는 질문이 아니다. “왜 사는가를 고민하지 않는 인간은 없다. 특히 어려운 시대, 어려운 상황에 처음 이들일수록 그렇다. 삶은 행위의 연속이다. 모든 행위는 침묵이든 폭력이든 놀이든 노동이든 인간관계든, 그리고 죽음의 방식까지 자신을 표현하는 퍼포먼스다. 이러한 표현은 기호(signs), 즉 말과 글로 이루어진다. 오늘날 널리 쓰이는 프레젠테이션(presentation)’이 그것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모든 표현은 자기만의 사유(특정한 렌즈)를 거치므로 각자의 몸을 통과해 걸러진재현(re-presentation)이다. 표현이 아니라 재현이 맞는 말이다.


(16)

나쁜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쓰려면, 나부터 나쁜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글을 쓰는 과정은 나의 세계관, 인간관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나를 검열하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감당하지 못하면 글쓰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글쓰기의 정치학과 미학은 이 몸무림 과정의 자연스러운 산물이다. 사람마다 행로가 다르기 때문에, 이른바 독특한 글(콘텐츠)이 나올 수밖에 없다. 흔히, 결과보다 과정이라는 말의 의미는 결과에 연연하지 말라는 군자의 비현실적인 말이 아니라, 과정에서 결과가 나온다는 뜻이다. 괴로운 과정에서 최선의 올바름’, 아름다운 문장이 나온다.


(39)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책을 읽다가 노무현과 만났기 때문이다. 나는 정치적 약자(야권)자발적 무지’, 강자의 정체성 정치(지역주의)와 약자의 그것을 구분하지 못한 결과인 민주당 분당 사건을 절대로 잊을 수 없다. 그러나 노무현 같은 인물은 다시 나오기 힘들 것이다. 그의 캐릭터는 우리 사회의 가능성이었다. 노무현의 당선은 일본의 진보 세력에게도 충격이었다. 그들은 한국은 미래가 있는 나라라며 부러워했다. 연주 없는 고졸 대통령. 일본은 지방의원부터 국회의원, 총리까지 몇몇 가문이 독점하는 철저한 세습 사회다. 그들은 아버지로부터 자금, 지명도, 후원회를 고스란히 물려받는다.


(53-54)

환경운동 구호 중에 미래의 아이들을 위해 원전에 반대한다.”, “인간은 후대로부터 지구를 잠시 빌린 것이니 지구를 완전히 부숴버리지는 말자(‘지속 가능한 발전으로 오역됨).”는 논리는 틀렸다. 다음 세대를 위해서가 아니고 현재 나를 위해 원전에 반대해야 한다. 이 구호는 여전히 인간의 것이 아닌데 누가 누구에게 지구를 물려주고 말고한단 말인가.


(82-83)

노년 담론 중 흔히 회자되는 논리가 곱게 늙기. 나는 이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일단 나이듦은 곱지 않다는 전제가 있다. 또한 내면의 아름다움이 가능하다 할지라도 곱게 늙을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이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리고 왜 노인에게만 곱게 살라고 하는가!


(95)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인 동시에 두려울 것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 ‘희망찬 인생은 바라는 것이 없는 사람이다. 원하는 것이 있을 때 인간은 무엇인가의 볼모가 된다. 희망은 욕망의 포로를 부드럽고 아름답게 조종하는 벗어나기 어려운 권력이다.


(109)

명심하길. 아메리카 원주민 지도자의 연설 중 가장 널리 인용되는 1853년 스쿼미시족의 추장 시애틀은 이렇게 말한다. “죽음이란 없다. 단지 살아가는 세계가 바뀔 뿐이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 어떤 관계로 다시 만날지 모른다. 그러니 거짓말을 하더라도 빈 머리(익숙함)에 의존하지 말고 생각하고 발언하라.


(135)

우리는 모두 각자 다른 몸들이다. 같은 성별이라도, ‘장애인으로 분류되어도, 같은 몸은 없다. 몸의 다름이 정치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가장 오해하는 말, “사는 대로 생각하지 말고 생각하는 대로 살자.”는 최악의 구호다. 인간은 평생 자기 생각에 다다르지 못한다. 생각은 몸의 배신자. 늘 타인의 시선과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머리(희망 사항)앞서간다. 오히려, 사는 대로 생각해야 한다. 모든 망상, 이데올로기, 거대 관념이 무너질 것이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가 아니라 삶 자체를 사상으로 만들어야 한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몸이 안 움직이는 사람은 머리가 없는 사람이다.


(149)

이야기는 곧 읽기와 쓰기다. 반응하지 않는, 감정 이입 없는 글쓰기는 불가능하다. 그러지 않아야 더 잘 쓸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의 뇌는 진공 상태다. 글이란 자기 생각을 외부로 물질화하는 일인데, 생각이 없다면? 생각 없는 글쓰기가 가능하고 심지어 널리 읽히는 세상이다.


(193-194)

다만, 사회는 이들에게 “(힘이 없는데) 힘을 내라.”, “(보고 싶어 미칠 것 같은데) 잊어라.” “(이미 너무 참고 있는데) 참아라.”, 심지어 착취 구조에 갇힌 사회적 약자에게 왜 그렇게 분노가 많냐.”고 분노하지 않기를 바란다. 돕고 싶다면 그들의 분노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라. 가장 비윤리적인 분노, 그래서 참아야 할 분노는 딱 하나, 분노하는 이들에 대한 분노다.


(201)

우주에서 보면 인간은 하루를 사는 곤충이가 길가의 이름 모를 풀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인간은 우주가 아니라 자기가 만든 세상에서 산다. 이름을 얻으려고 발광하다가 타인까지 질식시키는 이들이 있는 하면, 드물지만 흔적을 지워 가며 사는 이들도 있다. 나 역시 미숙한 범죄자처럼 가는 곳마다 뭔가를 흘리고 다니지만, 나는 욕망한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는 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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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바로 이곳이다. 나는 아직 돌아갈 수 있다. 나는 아직 적법성을, 합법성을 저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 대단할 것 없는 강을 건너는 순간, 나는 조국의 종에서 조국의 침략자로 바뀐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지난 2년 내내 알고 있었다. 나는 모든 것을 고려하고 기획하고 계획하며 몹시도 애써왔다. 스스로 엄청난 양보를 결심하기도 했다. 심지어 일리리쿰과 1개 군단만으로 만족할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그러는 매 순간, 나는 그들이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들이 내게 침을 뱉고, 내 열굴을 진흙탕에 문대고,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만들 작정임을 알고 있었다. 절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아닌 나를. 절대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전락하는 데 동의하지 않을 나를. 이건 네가 바라던 상황이다, 카토. 이젠 넌 그걸 보게 될 것이다. 넌 내가 조국을 향해 진군하도록 만들었고, 내가 합법적인 대응을 포기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폼페이우스, 당신은 막강한 적과 맞서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곧 알게 될 것이다. 발부리의 발이 강물에 젖는 순간 나는 반역자가 된다. 반역자의 오명을 벗기 위해 나는 전쟁을 개시하고 내 동포들과 싸울 것이다. 그리고 이길 것이다.

(54)

나는 원로원 의원이요, 정무관이요, 집정관까지 지낸 몸이다. 하지만 스스로를 보니라고, ‘선량한 사람들이라고 일컫는 옹졸라고 편협하고 앙심만 많은 파벌의 일원이었던 적은 없다! 보니파는 정부에 대한 인민의 발언권을 없애고, 원로원을 로마의 유일한 통치기관으로 만들려는 작업에 나섰다. 그건 그들의 원로원이다. 제군들, 내 원로원이 아니라! 내 원로원은 너희들의 종이다. 그들의 원로원은 너희들의 주인이 되고자 한다. 그 원로원은 너희가 급여로 얼마를 받아야 할지, 나 같은 장군 밑에서의 복무를 언제 마쳐야 할지, 너희가 은퇴 후에 조그마한 땅을 받아야 할지 말지를 전부 정해주려고 한다. 너희가 받을 상여금 액수와 전리품 분배 비율과 개선행진에 참여할 병사의 숫자를 정해주려고 한다. 심지어 너희에게 시민권을 획득할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로마를 위해 싸우느라 굽어진 너희의 등을 채찍으로 후려쳐야 할지 말지까지 정해주려고 한다. 그 원로원은 로마의 병사인 너희로부터 주인 대접을 받으려 한다. 너희가 시리아 길거리의 가장 가난한 거지처럼 겁먹고 찡얼거리기를 바란다.

(55)

생각해봐라, 제군들! 우리고 고달프게 걸었던 먼길,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던 시간들, 칼에 베이고 화살에 맞고 창에 찔린 상처들, 너무도 고결하고 용감했던 최전선에서의 죽음! 모두 떠올려봐라! 우리가 어디로 갔는지, 무엇을 했는지, 그 고생, , 궁핍, 외로움까지! 우리가 로마에 가져다준 거대한 영광을 생각해봐라! 그런데 그 대가는 어떤가? 우리의 호민관들은 주먹질과 발길질을 당했고, 우리의 업적은 비웃음당하고 잊히고 파트리키 귀족을 꿈꾸는 그 대단하신 소규모 파벌이 오줌이나 갈기는 대상으로 전락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변변찮은 군인에다 덜떨어진 장군들이다! 카토가 장군이란 소리를 들어본 사람이 있나? 아레노바르부스가 정복자란 소리를 들어봤나?

(56)

내 존엄은 내 삶의 중심이요, 내가 했던 모든 일들을 의미한다! 나는 가만히 앉아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또한 너희의 존엄이 짓밟히는 꼴을 보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나에게 적용되는 건 뭐든 너희에게도 적용된다! 우리는 함께 진군하며 케르베로스의 머리 세 개를 모두 베었다. 눈과 얼음, 우박과 폭우를 함께 견뎠다! 대양을 건너고 산을 오르고 거대한 강을 헤엄쳤다!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민족들을 무릎 꿇게 했다! 그들이 로마에 항복하도록 만들었다! 그에 대한 늙고 한물간 나이우스 폼페이우스는 뭐라고 말했지? 아무 말도 안 했다. 제군들, 아무 말도! 그러면 그는 어떤 선택을 했나? 우리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으려고 했다, 제군들. 명예, 명성, 영광, 우리가 한데 아울러 존엄이라고 침하는 그 모든 것을!

(59-60)

그런데 말입니다.” 폴리오는 웃으면서 물었다. “ 그 신들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누구죠? 폼페이우스? 카토? 말도 안 되는 소리! 잊지 마세요. 카일리우스. 위대한 사람은 자신의 행운을 스스로 만들어낸답니다. 행운은 모든 사람의 손이 닿는 곳에 있어요. 하지만 우린 대부분 기회를 놓쳐버리죠. 우리의 행운을 알아보지 못하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는 항상 그 순간의 기회를 알아보기 때문에 절대로 기회를 놓치지 않아요. 그게 바로 그가 신들로부터 사랑받는 이유입니다. 신들은 똑똑한 인간들을 좋아하니까요.”

(106)

그러나 폼페이우스를 가장 낙담하게 한 소식은 카이사르가 코르피니움에서 충격적일 정도로 관대함을 보여주었다는 사실이었다. 카이사르는 집단 처형이 아닌 집단 사면을 실시했다. 아헤노바르부스, 아티우스 바루스, 루킬리우스 히루스, 렌툴루스 스핀테르, 비불리우스 루푸스와 원로원 의원 50명은 이탈리아를 지켜낸 용기에 대해 정중한 찬사를 들은 뒤 무탈하게 풀려났다. 카이사르가 요구한 것은 단 하나, 다시는 그에 대항하여 싸우지 않겠다는 약속뿐이었다. 카이사르는 경고했다. 또다시 무기를 든다면 자비는 없을 거라고.

(156-157)

맞아, 데키무스. 나는 술라처럼 괴물이라고 불리지 않을 걸세. 우리 쪽에도 그쪽에도 반역자는 없어. 그저 서로 로마의 미래를 다르게 보고 있을 뿐이야. 난 내가 사면한 사람들이 사람들이 로마에서 직책을 유지하면서 어느 정도는 내게 도전하길 바라. 술라는 틀렸어. 반대 없이 최고의 일이 해내는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네. 난 정말이지 아첨꾼들한테 둘러싸이고 싶지 않거든! 난 제대로, 즉 끊임없이 분투하면서 로마의 일인자가 될 거라네.”

(393)

루비콘 강을 건널 때 카이사르가 실제로 한 말에 대해서는 수에토니우스보다 플루타르코스 쪽이 증거 면에서 더 우세하다.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폴리오는 카이사르가 시인이자 신() 희극 작가인 메난드로스의 2행 연구(聯句)를 인용해, 라틴어가 아닌 그리스로 주사위를 높이 던져라!”고 말했다고 한다. “주사위는 던져졌다가 아니다. 나는 폴리오의 말에 신뢰가 간다.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우울하고 숙명론적이다. 반면 주사위를 높이 던져라!”는 어깨를 으쓱하는 것과 같은, 어떤 일이든 벌어질 수 있음을 인정하는 태도다. 카이사르는 숙명론자가 아니었다. 그는 모험가였다.  - <작가의 말>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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