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

손으로 만드는 편이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거든요물론 백 퍼센트 다는 아니지만 가능한 부분은 수작업으로 만듭니다수작업으로 하면 기계로 만들 때에 비해 생각할 여유가 생기고 발상이 유연해져요예를 들어 구멍을 뚫다가 아무래도 조금 옆쪽이 낫겠다고 느끼거나조립하기 전에 설계의 미비점을 알아차리기도 하죠완성 후에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확률도 수작업이 오히려 낮고요결과적으로 시제품 공정의 효율이 오르는 셈이에요.”

 

(245)

쓰쿠다는 인정하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회사는 시시하지 않아자네가 말하는 확률은 결국 돈을 버느냐 마느냐의 확률이잖아하지만 돈만 벌면 될까더 큰 꿈을 가지고 재미있는 일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그런 확률을 따져봐도 되지 않겠어?”

 

(353)

난 말이야일이란 이층집과 같다고 생각해. 1층은 먹고 살기 위해 필요하지생활을 위해 일하고 돈을 벌어하지만 1층만으로는 비좁아그래서 일에는 꿈이 있어야 해그게 2층이야꿈만 쫓아서는 먹고 살 수 없고먹고 살아도 꿈이 없으면 인생이 갑갑해자네도 우리 회사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나 꿈이 있었을 거야그건 어디로 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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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1-11-04 21: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케이도 준 책도 재미있는 책이 많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bookholic님, 좋은 밤 되세요.^^

bookholic 2021-11-04 23:48   좋아요 1 | URL
저는 처음 읽어봤는데, 재미있었어요.^^
저 변두리 로켓이 시리즈로 계속 있던데요.. 계속 읽어보려구요~~
서니데이님도 평안한 밤 되시고 내일도 즐거운 금요일 되세요..^^
 















(40)

이런 동물에게 서열 경쟁에서 우위를 지키게 하는 특징은 두 가지입니다. 몸집과 송곳니입니다. 수컷에게는 이 두가지가 최대한 크고 강할수록 유리하겠죠. 유인원 가운데에서 이런 특성을 보이는 종이 있을까요? 바로 고릴라가 그렇습니다. 고릴라는 암수 사이에 몸집, 두개골, 송곳니 크기가 대단히 큰 차이를 보입니다. 암수 사이의 크기 차이는 수컷끼리의 경쟁을 알려 줍니다. 암컷에 비해 수컷의 몸집이 크면 클수록 수컷끼리의 경쟁이 매우 치열했음을 나타내지요. 실제로 고릴라는 짝짓기를 할 때는 수컷이 미리 힘 대결을 펼쳐 서열을 정해 두고, 가임기가 되면 높은 서열을 지난 수컷만 암컷에 접근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81)

노화 과정을 진화 생물학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다양한 학설 중에 다면 발현(pleiotropy, 多面發現) 가설이 있습니다. 다면 발현은 하나의 유전자가 여러 형질에 관여하는 현상입니다. 어떤 유전자가 아동기와 청년기에 유익한 기능을 담당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동시에 그 유전자가 아동기와 청년기에 유익한 기능을 담당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동시에 그 유전자는 노년기에는 해롭습니다. 그렇다면 해로움만 따져서 이 유전자가 사라져야 할까요? 다면 발현 가설에 따르면, 아동기와 청년기에 유익했던 유전자는 선택 우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아포 지방 단백질 E 엡실론 4도 마찬가지입니다. 혈중 지방 단백질을 치우는 유익한 기능이 있기 때문에 노년의 치매나 뇌졸중과 관련이 있어도 계속 우리의 유전자 속에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고기를 먹을 수 있는 능력은 공짜가 아니라 노년에 치러야 할 위험 부담을 감수하고 얻는 대단히 값비싼 적응 능력인 셈입니다.

한 가지 더, 그럼 만약 지금이라도 채식을 한다면 노년에 이런 병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정답은 아니다.’입니다. 이미 존재하는 유전자가 없어질 수는 없으므로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113-114)

후기 구석기 시대 이후 현대까지, 평균 수명과 노년층의 수는 계속 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 변하지 않은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과거 평균 수명이 50세이던 시대에도 할머니, 할아버지는 손주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 살아 있었습니다. 3대가 함께 살았습니다. 그 이후 수명이 대폭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이 추세를 고려하면 평균 수명이 75세가 된 지금 증손주가 클 때까지 증조부모가 살아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4대가 공존해야 하죠.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떤 사람들은 칠순이 되도록 증손주는커녕 손주를 보기도 힘듭니다. 예전에 비해 결혼과 출산 연령이 올라갔기 때문입니다.

(182)

두뇌가 커진 것도 역시 걷기 덕분입니다. 도구를 만들고 사용하려면 뛰어난 지능이 필요합니다. 언어를 사용할 만큼 복잡한 사회생활을 하려고 해도 지능이 필요하고, 이는 곧 큰 두뇌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두뇌는 그냥 커질 수 없습니다. 두뇌는 지방으로 이뤄진 기관입니다. 고지방, 고단백의 식생활이 필수입니다. 이런 식생활은 도구를 이용해 고기를 정기적으로 확보하고 섭취한 이후에야 가능했습니다. 모든 게 두 발로 걸은 이후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이뤄진 일입니다.

(202)

직립 보행을 하게 된 인간은 그 손에 주먹도끼를 쥐어 봤자 광활한 아프리카의 초원에서는 가소롭기 짝이 없는 존재입니다. 가련한 인간의 혼자 힘으로는 짐승을 잡기에 역부족이었기 때문에 집단 수렵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집단 수렵 활동을 위해서는 탄탄한 사회 구조가 필요했습니다. 게다가 사계절마다 변하고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빙하기의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집단적인 정보 취합체가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인간에서 사회생활은 여가를 활용하기 위한 취미 생활이 아닌, 처절한 생존 전략이었습니다. 그리고 원활한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개개인에 대한 정보와 이해가 필수입니다. 그러한 정보를 수집, 교환하고 이해하기 위해서, 소통의 수단으로 언어가 발생하고 발달하였으며 그 주된 기능이 바로 수다인 셈입니다.

(262-263)

현생 인류가 한곳이 아니라 다양한 지역에서, 홀로 세계로 진출한 게 아니라 각 지역에서 존재하던 여러 인류와 만나 교류하면서 동시 다발적으로 진화했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날 볼 수 있는 광범위한 지역적 다양성의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이 모두 현생 인류의 한 식구인 것은 물론이고요. 이런 생각은 현생 인류가 어느 한 시점에 홀로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게 아니라 여러 지점, 여러 시점에서 다발적으로 태어났다는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바로 아프리카 기원론의 맞수인 다지역 연계론(다지역 진화론)’입니다. 네안데르탈인과 현생 인류가 서로 교류하며 유전자 이동을 통해 계속 하나의 종으로 진화해 왔다는 다지역 진화론은 최근의 유전학 연구 결과와도 부합합니다.

(273)

마지막으로 인류 다양성의 숨 막히는 증가는 다시, 전에 없던 또 다른 형태의 다양성을 낳았습니다. 바로 지역성입니다. 최근 티베트 지역에 사는 사람에게서 고산 지역에 적응할 수 있는 유전자(EPASI) 돌연변이를 발견한 것이 그 예입니다. 이 돌연변이는 불과 1000년 전에 생긴 뒤 퍼져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진화한 유전자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습니다. 이전에는 선택에 유리한 돌연변이가 나타나면 금세 인류 전체에 퍼졌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새로운 다양성과 지역적 환경이 어우러져 지역적인 특징으로 남게 됐습니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으로 문화와 문명이 생기면, 다시 그 대응으로 각기 크고 작은 다양한 환경이 생겨났습니다. 이런 다양한 환경에, 각각 인구 증가로 생겨난 다양한 특징의 인류가 적응하고 진화하면서, 인류의 형질은 한층 더 복잡하고 다채로워졌습니다.

(298-299)

우리가 원숭이에게서 진화했다면 지금도 끊임없이 인간으로 진화하고 있는 원숭이들이 있어야 되는데 없지 않느냐?”

이 세상 모든 생물체들이 인간이라는 최정상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진화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나온 질문입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얼마나 최정상의 자리에 가까운지를 척도로 고등 동물하등 동물을 일렬로 배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하등 동물은 고등 동물이 되려 하고, 고등 동물 중에서도 최고인 인간이 되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인간이 되고 있는 원숭이들이 어딘가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지요. 그러나 원숭이들 역시 독자적인 진화 역사를 거친 끝에 지금 이 자리에 이 모습으로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뭐가 아쉬워서 계속 인간이 되려고 애를 쓰겠습니까? 그건 농담이고요. 이 세상 모든 생물체들을 일직선에 올려놓고 가장 끝, 가장 발달한 정점을 인간으로 놓은 다음, 나머지 생물체들을 인간과 얼마나 다르게 생겼는지를 바탕으로 순서대로 놓는 것은 현대 생물학에서 더 이상 인정하지 않는 생각입니다. ‘하등 동물인 기생충이라도 나름의 적응과 진화 역사를 거친 후 지금의 모습으로 당당하고도 치열하게 있습니다.

(299-300)

유인원과 원숭이를 볼 때 가장 눈에 띄고 분명한 차이는 꼬리의 유무입니다. 꼬리가 있으면 원숭이이고, 꼬리가 없으면 유인원입니다. 절대 혼동할 수 없는 차이입니다. 그런데 유인원 중 마지막으로 게놈이 밝혀진 기번(gibbon)의 한국어 명칭이 바로 긴팔원숭이입니다. 유인원의 이름이 긴팔원숭이인 이상, 혼돈스러운 명칭을 바로 잡는 일은 애무 어려울 것만 같습니다. 참으로 유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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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사막은 스스로 분열하듯이 수많은 색들을 만들어 냈다. 사막에도 채도와 명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사막을 말할 때에 수만 가지 색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모래의 색에 따라 사막의 색도 달라지면서 이름이 달라졌다. 흰모래사막이 있는가 하면 붉은모래사막이 있었다. 같은 이름의 사막도 그 위에 구름이 얼마나 덮고 있느냐, 구름 위로 햇살이 내리쬐느냐 아니냐에 따라 색이 달라졌다.

 

(61)

재난 여행을 떠남으로써 사람들이 느끼는 반응은 크게 충격 à 동정과 연민 혹은 불편함 à 내 삶에 대한 감사 à 책임감과 교훈 혹은 이 상황에서도 나는 살아남았다는 우월감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어느 단계까지 마음이 움직이느냐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결국 이 모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재난에 대한 두려움과 동시에 나는 지금 살아 있다는 확신이었다. 그러니까 재난 가까이 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안전했다,는 이기적인 위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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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나무뿌리에는 살아있는 세포들이 밀집되어 있다. 그런 만큼 신선한 산소도 많이 필요하다. 그래서 토양 속 틈은 뿌리들에게 생명의 공간이다. 제주도나 울릉도에 가서 숲길을 걸으면서도 마음이 편한 것은 화산석이라 뿌리들이 숨 쉬는 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제주 산천단의 천연기념물인 곰솔을 보면 탐방객 때문에 길옆은 답압이 심할 텐데오 싱싱하게 잘 자란다. 화산석에 숭숭 뚫린 공기구멍 덕분이다. 나무의 뿌리 분포는 대부분 지표면 15센티미터 안에 물려 있다. 뿌리들이 얼마나 절박하게 숨 쉬기를 원하는지 알 수 있는 증거다. 가로수는 늘 어두운 땅속에서 물과 양분, 신선한 산소를 찾아 길을 떠난다. 부족함을 벗 삼아 느린 숨을 쉬며 길 위에서 수행한다.


(21)

도시 빌딩숲은 광합성을 방해한다. 바람이 불어도 움직이지 않는 숲, 나무는 흔들리지 않는 빌딩을 처음 만난 날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바람에 흔들리는 가지와 흔들린 만큼 빛이 뿌려지는 공평한 숲이 아니다. 그나마 햇빛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움직이는 건 다행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당시 최고 권력자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우쭐대며 무엇이 필요한지를 물었을 때, 햇빛을 가리지 말아 달라고 했다. 나무는 디오게네스와 달리 우쭐대는 빌딩 숲 사이에서 나무 큰 나무들 사이로 이사 온 것 같구나. 나도 얼른 커야겠다며 긍정적인 마음으로 빛을 향해 달린다.


(34)

나무는 사람을 닮고 사람은 나무를 닮는다. 오랜 세월 동안 같이 겪었을 홍수와 가뭄, 추위와 더위, 전쟁의 포화 속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옹이 박힌 나이테를 가슴에 새기고 살아왔다. 사람은 갔지만 나무는 살아남아 사람의 삶을 증언하기도 하고, 질긴 생명력으로 이 땅에 살다간 조상들과 닮아서 그들의 숨결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신선했던 민초들의 삶을 보듬어 주고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해 주며 스스로 신이 된 신목들을 만나 본다.


(63)

토머스 파켄엄의 말을 들어보자.

오래된 나무들의 크기는 수령과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대신 나무의 장수는 스트레스와 관련된 같았다. 가장 오래된 브리슬콘소나무는 더할 수 없이 고통스럽고 열악한 환경을 선택했다. 겨울에는 눈보라에 시달리거나 폭설에 파묻혔고 봄여름에는 뙤약볕에 바짝 말라 버렸다. 눈 녹은 물 이외에는 마실 것도 없었고 생장이 가능한 시기는 1년에 고작 몇 주에 불과했다. 스트레스로 인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최저 수준으로 생장이 느려졌다.”


(80)

흙이 발효되는 냄새와 얼굴에서 온몸으로 전해지는 따뜻한 습기, 들뜬 꽃들의 분 냄새, 나는 그것들을 내 몸 안에 가두어 두려고 큰 숨을 들이쉬고는 내뱉질 못했다. 며칠 전만 해도 인쇄소에서 잉크 냄새에도 숨도 못 쉴 지경이었다. 밤에는 기계 위에 걸쳐 놓은 마루에서 잠을 자야 했다. 무엇인가가 내 몸을 꽃향기와 흙 내음 속으로 격렬하게 내몰았다.


(130)

바람은 빛에너지가 운동에너지로 바뀐 것이다. 만약 바람이 없다면 잎의 온도는 엽록소가 파괴될 만큼 올라갈 것이며, 증산작용을 하지 못해 대사활동이 떨어진다. 맛있는 과일과 곡식과 맺지 못한다. 바람은 나무에게 매우 중요한 존재다. 꽃가루를 옮겨 주기도 하고, 씨앗을 멀리 보내 주며, 뿌리의 발달을 돕는다. 나무를 옮겨 심고 지주목을 받쳐 주어야 하는 것도 바람에 흔들려 새롭게 태어나는 뿌리가 끊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 지주목이 오래도록 나무가 흔들리지 못하게 한다면 뿌리는 깊고 멀리 뻗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바람이 불 때 흔들리지 않으므로 자기 뿌리가 그만큼 든든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반면에 너무 강한 바람은 나무를 넘어트리거나 가지를 부러트리기도 하고, 깃발이 흔들리는 것처럼 한쪽 가지를 몽땅 빼앗아 가기도 한다. 특히 외따로 자라는 나무에게 바람은 가혹하다.


(150)

아름다운 감정은 외롭지 않음이다. 아름다움은 그냥 오지 않는다. 아름다움의 아름알음이자 앓음이고, 앓음은 아픔이다. 혜곡 최순우는 앓지 않은 아름다움은 없다고 했다. 백양사의 고불매가 아름다운 것은 오랜 세월의 상처를 감추고 꽃을 피우는 데 있다. 솜씨 있는 장인은 흔적을 남기지 않듯, 나무는 상흔을 교묘히 감춘다. 사람들은 그것을 아름답다고 한다. 세월에 삭박된, 더 이상 생명이 자라나지 못할 것 같은 삭은 줄기에서 새순을 내고 꽃을 피운다. 하나 됨으로 아픔을 알게 되는 아름다움이다.


(182)

멈춤이 자람보다 중요한 것은 대형 사고를 막을 수 있어서다. 나무의 생장을 멈추게 하는 상태를 스트레스 상태라고 하며, 생장하기에 적절치 못한 상태에 접어들었을 때를 뜻한다. 나무는 고온과 저온, 동해와 냉해, 바람, 대기오염, 수분 등이 많고 적음에 따라 각종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이때 생장을 멈추기 못한다면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모든 나무가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각 나무는 반응하는 정도가 다르므로 상대적인 개념으로 생각해야 한다. 혹독한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온 나무는 상대적으로 좋다고 여겨지는 환경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190)

오래된 나무는 대부분 속이 비어 있다. 나무는 하늘과 땅이라는 두 개의 젖꼭지를 물고 양쪽에서 자양분을 취하는 유일한 생명체다. 가지는 하늘에 근본을 두고 뿌리는 땅에 근본을 둔다. 두 개의 근본을 가지며 나이를 먹을수록 중심을 비우므로 하늘과 땅의 소통을 이룬다. 속이 비어 있음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텅 빈 공간이다. 노자는 비어 있음으로써 유용하다고 했다. 마차 바퀴통은 중심이 비어야 살을 끼워 저항을 줄이며 구를 수 있고, 그릇은 비어 있어야 쓸모가 있다. 사람도 어딘가 비어 있어야 다른 사람이 비집고 들어갈 공간이 있듯이, 나무는 속을 비워 냄으로써 많은 생명체를 품는다. 나무의 텅 빈 속은 아늑하며 따뜻하고 숨기 좋으므로 하룻밤 쉬어 가는 동물이 번갈아 드나드는 공간이 된다. 살아서 몸을 보시하는 보살의 화신이다.


(204)

나무에게 바람은 어떤 존재일까? 만약 나무가 태어나자마자 학교에 들어갔다면 바람은 무서운 훈육주임이고, 사춘기에는 친구, 청년기에는 연인, 사회에 진출하면 질서와 규율, 노년기에는 스킨십을 잊지 못하게 하는 추억이다. 숲속에서 태어난 어린 나무에게 바람이란 큰 나무나 겪는 일이지만, 가끔씩 큰 나무도 감당 못하는 바람이 불어올 때면 어린 나무에게도 무서운 존재로 다가온다. 그럴 때마다 뿌리를 사방으로 뻗어 나갈 것이다. 좀 더 커서는 바람을 맞아놀 준비가 되어 있으므로 친구처럼 대하고, 이제 어엿한 나무가 되면 바람을 그리워하게 된다. 장성해 숲의 주인이 되어 갈 즈음이면 바람은 누구랄 것도 없이 더 크고자 하는 욕망을 통제한다. 노년이 되면 무성했던 가지와 잎도 사라지고 엉성한 가지 사이로 바람마저 피해 간다.


(255)

나무들은 그리움의 간격으로 서 있다. 오래된 숲일수록 소소해지며, 적당한 간격으로 서 있음을 볼 수 있다. 생물학 용어에서 개체거리란 어떤 생물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다른 개체와 유지해야 할 거리를 말한다. 너무 가까이 있으면 경쟁관계가 되며, 너무 떨어져 있으면 관계를 맺을 수 없으므로 개체거리가 중요하다. 풍매화의 꽃가루나 곤충을 이용해 수분하는 나무도 개체 간 거리가 필요하다. 나무는 움직이지 못하므로 근친관계가 이루어지기 쉽다. 따라서 무리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을 경우 서로 유전자 교환이 이루어질 수 없기에 집단적으로 분화가 일어나기도 한다. 꽃에 신경 쓰지 않는 풍매화는 바람이 부는 봄날 일시에 꽃가루를 날려 보내야 한다. 나무에게는 부부라는 개념이 없고, 정자에 해당하는 꽃가루를 무작위로 방출해 암술의 주두에 닿으면 수정되는 방식, 즉 물고기처럼 체외사정으로 성교하는 셈이다. 그런 일은 분류 기준에 따라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291)

걷기는 끊임없이 몸과 타협해야 한다. 기계를 돌보는 엔지니어처럼 몸 구석구석을 점검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동안 쓰지 않아서 퇴화한 근육들이 아우성을 치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마음은 낮은 곳으로 내려간다. 가슴에 있어야 할 영혼은 발바닥에 머무르며 온몸은 발바닥의 지시를 받는다. 걷기는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일이다. 잔잔한 고통을 통해 몸과 마음이 화해하는 행위다. 그동안에 잊었던 몸 구석구석을 돌아보게 하며 서로가 고마움을 느낀다.


(292)

걷기란 이동 수단이 아니라 내면과의 대화를 시도하는 수단이다. 걷기란 수많은 질문과 답이 오가는 과정이다. 자연스럽게 그동안 잊고 지냈던 의문점들이 떠오른다. 어느 쪽이 먼저랄 것도 없이 말하고 있는 자신을 만나게 된다. ‘그동안 잘 있었니, 미안해, 주로 마음이 몸에게 일방적으로 화해를 청하는 모습이다. 몸 철학자 메를로-퐁티는 몸과 마음이 둘이 아니고 하나라고 강조하지만, 그런 경지는 걷기를 통해 잠시 맛볼 수 있다. “나는 나의 몸이다라고 한 그의 말처럼 걷기에서 내 몸과 나는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하나 됨을 느낀다.


(354)

죽음은 서서히 진행되며, 깊은 상처를 남기고, 상처는 계속 진행되어 아래로 내려온다. 바람이 없는 날에도 굵은 가지라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부러지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나무가 골다공증에 걸리기 때문이다. 건강한 나무는 좀에 부쩍 성장하고 여름부터는 단단한 목질부를 만든다. 이에 비해 노쇠한 나무는 봄에 짧게 생장한 뒤 생장을 멈추어 연약한 재질로만 이루어지게 된다. 속은 비어 가고 나머지는 연한 재질이어서 견디지 못하고 땅으로 내려온다. 원주민이 사라지고 홀로 남은 나무는 개발 논리 앞에 속수무책이다. 상수도와 하수도가 뿌리를 자르고 지나가는 것은 기본이고 주변에 건물이 들어서며 일조권을 침해당해 광합성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401-402)

나무 진단은 어느 순간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한다. 나무의 껍질은 나이와 환경을 대변한다. 세월에 따라 변하는 시간의 지문이다. 젊은 껍질과 늙은 껍질이 공존한다. 해쓱한, 까칠한, 촉촉한, 검은, 검버섯, 푸른, 이끼, 거칠고 부드러움, 질감과 색감이 조응아며 언어로 드러난다. 본질은 그 언어 속으로 숨는다. 마침내 나무의사는 언어를 뒤지며 원인을 찾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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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0-25 11: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도시 속 빌딩 숲에 갇혀 있는 나무의 생-노-병-사가
도시속 인간의 모습과 생노병사랑 흡사하네요 ,,,

bookholic 2021-10-25 23:30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나무든 사람이든 건강하려면 자연 속에서 좋은 공기 마시면서~~^^
 















(63-64)

니콜로 파가니니는 열세 살 어린 나이에 바이올린에서 배워야 할 모든 것을 배우고, 그 후 자작 연습곡을 통해 새로운 연주 기법과 특수한 주법을 고안해 낸 작곡가다. 당연한 결과로 그가 만든 곡은 일반적인 운궁법으로 도저히 소화할 수 없었다고 한다. 또한 파가니니는 쇼맨십 기질도 다분해서, 연주회에서 일부러 현을 하나씩 끊어 나가다 마지막에 G현 하나만 가지고 곡을 완벽히 연주했다는 일화도 있다. 요컨대 타고난 곡예사라고 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자신의 기교를 따라하지 못하도록 모든 악보를 혼자 관리했다. 반주를 담당할 오케스트라에는 연주 직전에야 악보를 나눠 주었고, 연주회가 끝나자마자 회수했다. 파가니니는 오케스트라와의 연습 때도 솔로 연주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단원들은 무대 위에서야 그의 솔로 파트를 들었다고 한다. 상황이 이러해 후세에 와서 음악가들이 온갖 고생을 거듭해 오선지에 악보를 옮겼지만, 과연 파가니니의 오리지널에 얼마나 근접할까. 아마 이를 아는 사람은 파가니니 본인밖에 없을 것이다.


(108-109)

피가 끓고 가슴이 뛴다는 표현이 있는데,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연주하고 있으면 정말 혈액 온도가 올라간 듯한 착각이 들었다. 양팔의 근육이 필요 이상으로 긴장하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실제로 소리를 내면 낼수록 이 악기가 생물처럼 느껴졌다. 자신의 목소리를 충실히 실체화해 주는 연주자를 내내 찾아다녔다고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거짓이라 생각되면 개방현으로 모든 현을 켜 보면 된다. 단 하나의 음인데도 다양한 뉘앙스와 색채로 변화해 갔다. 이것이 생물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142)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2번 다단조>. 협주곡 작가 라흐마니노프의 이름을 단숨에 휘날리게 한 손꼽는 명곡이며 러시아 낭만파를 대표하는 곡 중 하나다. 멜로디가 섬세하고 아름답기로 유명한 한편, 피아노 솔로 부분은 물론이거니와 오케스트라 파트에서도 고도의 연주 기교를 요구하는 난곡이기도 하다. 전편에 넘쳐흐르는 긴장감은 곡조 그 자체에서 오는 것과 함께 피아노 솔로를 포함한 연주자 전원의 긴장이 겹겹이 포개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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