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insmile (bookholic 서재) &gt; 책에서</title><link>http://blog.aladin.co.kr/735181196/category/19581285</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읽고 쓰고 잊는다</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Mon, 09 Mar 2026 18:12:15 +0900</lastBuildDate><image><title>bookholic</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351811961105195.jpg</url><link>http://blog.aladin.co.kr/735181196/category/19581285</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bookholic</description></image><item><author>bookholic</author><category>책에서</category><title>태평천하 - [태평천하 - 채만식 장편소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5181196/17136700</link><pubDate>Sat, 07 Mar 2026 23: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5181196/1713670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15716&TPaperId=1713670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53/97/coveroff/893201571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15716&TPaperId=1713670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태평천하 - 채만식 장편소설</a><br/>채만식 지음, 이주형 편집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01월<br/></td></tr></table><br/><br>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nbsp;0. 오늘은 채만식의 &lt;태평천하&gt;라는 소설이란다. 얼마 전에 jiny가 학원 숙제로 채만식의 단편 소설 &lt;치숙&gt;을 읽었잖니. 아빠도
그 때 함께 &lt;치숙&gt;을 읽었는데, 단편이지만 재미있게 읽었단다. 채만식이라는 작가는 너무나 유명한
작가이니까 이름은 익히 알았지만, 그의 작품을 제대로 읽은 것은 처음인 것 같았어. 어렸을 때 &lt;레디메이드 인생&gt;을
읽었던 것 같지만, 잘 기억도 나질 않는구나. &lt;치숙&gt;을 재미있게 읽어서 오래 전에 사두고 책장 속에서 발효되고 있던 채만식의 장편소설 &lt;태평천하&gt;를 찾아서 읽어 보았단다. 사회 비판적이면서도 재미를 놓치지 않은 수작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구나. &lt;태평천하&gt;는 채만식이 잡지 ˝조광˝에 1938년 1월부터 9월까지
연재한 장편소설이라고 하는구나. 그러면 바로 책 이야기부터 해보자.&nbsp;1.계동의 이름난 부자 윤두섭. 그는 향교의 맨 우두머리 가는 어른이라는 뜻의 직원이라는 직함을 갖고 있어서 사람들은 그를 윤직원 영감이라고
불렀어. 72살이지만 몸에 좋은 것을 많이 먹어서 인지 아직 젊은 혈기가 왕성하였다. 하지만 부자이긴 하지만 자린고비가 따로 없었단다. 인력거 품삯도
깍으려고 실랑이를 벌일 정도로 자린고비다. 윤직원의 아버지 윤용규 때부터 운대가 좋아서 부자가 되었어. 그런데 화적떼가 침입해서 우발적 사고로 아버지 윤용규가 죽고 윤두섭은 도망갔다가 돌아왔단다. 아버지가 남긴 재산을 악착같은 구두쇠 정신으로 재산을 불려 삼천석 재산으로 불어났고, 서울로 이사 오게 되었지. 아내는 죽고 아들 부부랑 함께 살고 있었는데
아들부부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단다. 며느리한테 매일 쌍욕을 퍼붓는 시아버지였어. 이 정도면 윤직원 영감의 캐릭터를 대충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구나.윤직원은 아이들을 양반가문들과
결혼을 시켰고, 자신도 돈을 써서 향교에 들어가 직원이라는 직함을 얻은 것이다. 첫째 아들 윤창식은 결혼 후 일본 유학을 갔는데, 그 때부터 딴살림을
차리고 첩이 여러 명이고, 국내에 와서도 집에 붙어 있는 적이 별로 없었단다. 윤창식의 아내이자 윤직원의 맏며느리는 고씨였고 창식과 고씨 사이는 아들 종수와 종학이 있었어. 종수 또한 아버지 창식을 닮아서 난봉꾼이었어. 윤직원 영감이 모아서
불려놓은 재산을 아들 창식과 손자 종수가 축내고 다녔어. 종수는 박씨와 결혼을 해서 열다섯 살 경손이
있었어. 그렇다고 윤직원 영감도 행실이 바른 것은 아니야. 첩한테
낳은 아들 윤태식이 있는데 증손자 경손과 동갑인 열다섯 살이었어. 그야말로 콩가루 집안이었어......&nbsp;2. 윤직원의 사채업을 맡아 하는
석서방이라는 사람이 있었어. 석서방을 통해 사채업을 하지만 윤직원은 원하는 이율을 얻지 못하면 짤 없었지. 석서방과 나라 밖 소식도 듣곤 했는데 당시는 중국과 일본이 전쟁을 하고 있던 시기였어. 너희들도 역사 시간에 1930년대 일어난 중일전쟁을 배웠을 거야. 석서방이 이야기하기를 러시아가 중국에 사회주의를 전파하려고 중국을 도와준다고 했어. 설마 일본이 질까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윤직원이 생각하기에 일본은
부국강병에 있어서는 최강국이라고 생각했지. 당연히 일본에서 이길 거라고 생각했어....윤직원 영감의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는 전대복이란 사람이 있어. 전대복은 윤직원 영감의 진정한 심복으로 돈욕심도 없는 사람이었어. 윤직원 영감도 전대복은 철저히 신뢰하고 있었지. 돈도 알아서 챙기라고
했는데 전대복은 딱 필요한 것만 썼단다. 하지만 과부가 되어 윤직원 집에 기거하고 있는 윤직원의 딸
서울 아씨를 마음에 품고 있었어. 서울 아씨도 전대복에게 마음을 주고 있는 것 같지만,전대복 자신도 윤직원 영감이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윤직원 영감은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태평천하라고 생각했어. 돈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으니 말이야. 그리고 그 돈을 보호해주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야.================(274-275)“화적패가 있너냐아? 부랑당 같은 수령(守令)들이
있더냐?...... 재산이 있대야 도적놈의 것이요. 목숨은
파리 목숨 같던 말세넌 다 지나고오…… 자 부아라, 거리거리
순사요, 골골마다 공명헌 정사(政事), 오죽이나 좋은 세상이여…… 남은 수십만 명 동병(動兵)을 하여서, 우리
조선놈 보호하여주니, 오죽이나 고마운 세상이여? 으응?...... 제것 지니고 앉어서 편안허게 살 태평세상, 이걸 태평천하라구
허는 것이여, 태평천하!...... 그런디 이런 태평천하에
태어난 부잣놈의 자식이, 더군다나 왜지가 떵떵거리구 편안허게 살 것이지, 어찌서 지가 세상 망쳐놀 부랑당패에 참섭을 헌담 말이여, 으응?”================윤직원의 유일한 걱정은 죽음이었어. 어떻게 하면 영생불사 할 수 있을까. 윤직원 영감은 아이들의 오줌도
먹고, 각종 보약을 먹고, 체조도 하는 등 몸에 좋다는 것은
무엇이든 했단다.....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윤직원
영감은 칠십대 노인이지만 아직 혈기가 왕성하여 증손자 뻘 되는 기생들에게 수작부리다가 퇴짜를 여러 번 맞았단다.
최근에도 돈 주고 말상대를 해주고 있는 춘심이에게 수작을 부리려고 했어. 춘심이는 기존
아이들과 달리 사근사근 말도 잘 받아 주어서 조심스럽게 잠자리를 함께 하려고 수작부렸어. 춘심이도 바로
퇴짜를 놓았어. 그런데 마음이 돌아섰는지 반지를 사주면 원하는 것을 해주겠다고 했어.그렇게 윤직원 영감은 춘심이와
반지를 사러 갔는데 거기서도 구두쇠 정신이 발휘되어 반지값을 계속 깎고 있었단다. 어차피 아들과 손자가
흥청망청 쓰고 있을 텐데... 아들 윤창식이 도박에 빠져 돈을 계속 잃고 손자 종수도 툭하면 윤직원
영감을 찾아와 돈을 달라고 했어. 윤창식은 도박에 빠져서 일본에서 둘째 아들로부터 온 급한 전보가 왔는데도
뒷전이었어. 그 전보 내용은 윤창식의 둘째 아들 종학이 사회주의에 빠졌다가 경시청에 붙잡혔다는 내용이었어. 사실 윤창식은 윤직원 영감의 마지막 희망이었어.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경찰서장이 되길 바라고 있었어. 그런데 윤직원 영감이 가장 극혐하는 사회주의에 빠져 경시청에
붙잡혔다니... 이 소식을 들은 윤직원 영감이 격분하는 장면으로 소설은 끝이 났단다.....이 소설의 제목 &lt;태평천하&gt;는 반어적인 표현으로 지은 제목 중 손가락에
들지 않을까 싶구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암울한 시기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제목이 태평천하라니... 소설의 주인공 윤직원 영감의 입장에서 태평천하일
수도 있지만 콩가루 집안이 아무리 태평천하라고 해봐야 실제를 들여다 보면 짐승만 못한 세상 아니더냐. 유일한
희망이었던 둘째 손자가 윤직원이 가장 혐오하는 사회주의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얼마나 고소하던지...그런데 지은이 채만식은 이 소설을
쓸 당시 윤직원 영감을 어떤 사람을 모델로 하지 않았을까. 실제로 친일을 하면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많았으니 말이야. 그들이 이 소설을 읽었을 때 찔릴 양심이 있었는지 모르겠구나. 안타까운 것은 채만식도 일제시대 말기 친일 행위를 했단다. 그래도
채만식은 양심이 있었던 것 같구나. 해방 후에 &lt;민족의
죄인&gt;이라는 소설을 통해 자신의 친일 행적을 깊이 반성하였단다.
반성도 없이 당당한 다른 친일파들과는 다른 행보가 그를 다른 친일파들과 구분 짓게 평가하는 것 같구나. 그렇게 반성을 하고 나서 작품활동을 좀더 하다가 병에 걸려 1950년 6월 11일 향년 47세로
세상을 등졌다고 하는구나. 47세의 적은 나이임에도 그는 200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고 하는데, 시대를 제대로 타고 났다면 더 훌륭한 작품들을 남기기 않았을까 싶구나. 오늘은 여기까지.&nbsp;&nbsp;PS,책의 첫 문장: 추석을 지나 이윽고,
짙어가는 가을 해가 저물기 쉬운 어느 날 석양..





































































책의 끝 문장: 마치 장수의 죽음을 만난 군졸들처럼…<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53/97/cover150/893201571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39704</link></image></item><item><author>bookholic</author><category>책에서</category><title>손자 [손자병법] 중에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5181196/17136660</link><pubDate>Sat, 07 Mar 2026 23: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5181196/17136660</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92031545&TPaperId=1713666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298/6/coveroff/k292031545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br>(25-26)

도란 백성들로 하여금 윗사람과 한마음 한뜻이 되어 공생공사하고 두려워하거나 의심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천은 천시(天時),
즉 기후 조건으로 밤과 낮, 맑고 흐린 날, 사계절의
변화 등을 말한다. 지는 지리(地利) 조건으로 도로의 멀고 가까움, 지세의 험준함과 평탄함, 지역의 넓고 좁음 그리고 사지(死地)와 생지(生地) 등을 말한다. 장은 장수(將帥)의 덕목으로
지모(智謀)가 뛰어난가, 충신(忠信)을 지녔는가, 부하를
인애(仁愛)하는가, 용맹하고
과단성이 있는가? 군령을 엄격히 다스리는가를 살펴야 한다. 마지막으로
법은 군대의 조직 편제, 직책과 관리 제도 그리고 군수물자 제도를 가리킨다. 장수는 이 다섯 가지 요소를 모두 깊이 파악해야 한다. 오직 이를
파악한 자만이 전쟁에서 승리를 획득할 수 있다. <br>



(35)

맹자는 왕도(王道)와
패도(覇道)를 구별한다. 패도는
인의를 저버리고 힘으로 다스리는 방식이며, 왕도는 덕으로 다스리는 방식이다. 패도를 유지하려면 강력한 무력과 그 바탕이 되는 넓은 영토가 필요하지만, 왕도는
소국에서도 충분히 펼칠 수 있다. 성탕의 영토는 70리 남짓에
불과했으나 능히 왕도를 구현해냈다. 이처럼 왕도는 왕자라는 지위에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왕자가 되기 위해 반드시 애써 갖춰야 할 자격이었다.<br>



(37)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치밀한 묘산(廟算)으로 유리한 조건과 불리한 조건을 충분히 평가하면 전쟁에서 승리하고, 반대로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묘산을 충분히 진행하지 않으면 실패한다. 계획(계산)이 치밀하면 승리할 수 있고, 계획이 치밀하지 못하면 실패할 것이다. 그럴진대 계획이 전혀 없다면 어떠하겠는가? 이러한 관찰에 근거하여
누가 승리하고 누가 패할 것인가를 명백히 할 수 있다.<br>



(56-57)

이처럼 대군을 동원하는 전쟁은 반드시 단기간에 속승(速勝)을 거두어야 한다. 전쟁을 오래 끌면 병사는 피로해지고, 날카로운 기세는 꺾이기 마련이다. 성을 공격하는 공성에는 군사력의
손실이 따르며, 장기간의 출정은 국가 재정에 막대한 부담을 준다. 만약
병사들이 오랜 전쟁으로 피로해지고 예기가 꺾이며, 군사력이 소모되고 재정까지 고갈되면 주변 국가들이
기회를 노려 군사를 일으킨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지모가
출중한 자라도 이 위난을 해결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용병 전쟁은 마땅히 신속한 승리를 추구해야 하며, 계책이 교묘한가 졸렬한가를 따지지 않는다. 오래 지속되는 전쟁이
국가에 이로웠던 적은 일찍이 없었다. 그러므로 용병의 폐해를 모두 알지 못하는 자는 그 이로움 또한
온전히 알 수 없다.<br>



(82)

따라서 용병의 최고 책략은 전쟁을 하지 않고 모략으로써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다. 그다음은 적의 외교 동맹을 와해시켜 고립시키는 것이고, 다음은 무력으로써
승리를 거머쥐는 것이다. 적의 성을 격파하는 공성은 최악의 책략으로,
다른 선택이 없을 때 부득이하게 취하는 방식이다.<br>



(111)

적이 승리할 수 없게 만드는 관건은 정확한 방비에 있고, 내가
승리할 수 있게 만드는 관건은 적절한 공격에 있다. 방비하는 까닭은 아직 힘이 부족해 승리할 조건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고, 공격하는 까닭은 힘에 여유가 있어 승리할 조건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방비에 능한 자는 아홉 겹 땅속에 숨어 있는 듯하여 적이 찾아낼 수 없고, 공격에
능한 자는 아홉 겹 하늘(구천, 九天)에 떠 있는 듯하여 적이 막을 수 없다. 이처럼 방비와 공격에 모두
능한 군대는 능히 스스로를 보전하며 적에게 완전히 승리할 수 있다.<br>



(128)

‘형’과
‘세’를 비교해보면 개념이 한층 선명해진다. 철학적 관점으로 보면 ‘형’은
사물의 외적 현상이자 구체적 상황으로 실재하는 반면, ‘세’는
사물의 성향으로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요소다. 군사적으로는 ‘형’이 작전 형량의 본체(本體), ‘세’는 그 작용에 해당한다. ‘형’은 군대의 병력과 장비 같은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역량으로, 비교적
고정되어 단기간에 변하지 않으며 수치로 측정할 수 있다. 반면 ‘세’는 ‘형’을 토대로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서 발휘되며, 지형, 기후, 보급 상황, 군의 사기, 작전
방식 등에 따라 달라지는 가변적이고 비가시적인 역량이다. 따라서 수시로 변하며 수치화하기 어렵다. <br>



(159)

즉, 두 사람 모두 “적을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이게 만들고, 자신은 적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라는 내용이 병법의 핵심이라 본 것이다. 전쟁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상황은 적의 의도에 말려들어 피동적으로 끌려다니는 것이다. 주도권을 쥐고 상대를 의도한
대로 움직여 내가 미리 구상한 시간, 장소, 조건에서 적을
상대하면 능히 승리할 수 있다.<br>



(167)

그러므로 분석을 통해 적의 계획이 가진 득실과 강약을 가늠하고, 자극을 주어 행동 방식을 살필 수 있다. 또 아군의 거짓된 모습을
일부러 드러내어 적의 강점과 약점을 드러나게 하고, 시험적인 공격으로 병력 배치까지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기만책을 극도로 능숙하게 구사하면 아군의 실체는 흔적조차 감출 수 있다. 이 단계에 이르면, 아무리 깊숙이 숨어든 간자(間者)일지라도 나의 허실을 알아낼 수 없고, 아무리 지모가 출중한 적장일지라도 나의 계책에 대응할 수 없다.<br>



(207)

&lt;손자병법&gt;은
말한다. “때로는 군주의 불합리한 명령을 받아들이지 않을 줄도 알아야 한다. 이는 지휘관의 뜻을 무조건 꺾으라는 것이 아니다. 전쟁터에서 지휘관에게
항명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일이다. 반드시 형세에 대한 통찰과 대의를 위한 희생정신이 전제되어야 한다.<br>



(317)

군주는 일시적 분노로 전쟁을 일으켜서는 안 되고, 장수는
일시적 원한으로 전쟁에 나가서는 안 된다. 국가의 장기적 이익에 부합하면 비로소 군대를 움직이고, 국가의 장기적 이익에 부합하지 않으면 군대를 움직이고, 국가의 장기적
이익에 부합하지 않으면 군대를 움직여서는 안 된다. 분노는 희열로 전화할 수 있고, 원한도 기쁨으로 전화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는 멸망하면 되돌릴
수 없고, 사람의 목숨은 더더욱 되살릴 수 없다.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298/6/cover150/k29203154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2980631</link></image></item><item><author>bookholic</author><category>책에서</category><title>폴 오스터 [바움가트너] 중에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5181196/17125316</link><pubDate>Mon, 02 Mar 2026 02: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5181196/17125316</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25046&TPaperId=1712531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236/28/coveroff/8932925046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37-38)

첫 여섯 달은 깊은 혼란에 빠진 상태에서 살았기 때문에 아침에 잠이 깼을 때 애나가 죽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기도 했다. 그녀는 늘 그보다 일찍 일어나, 그가
간신히 눈을 뜨기 적어도 40분이나 한 시간 전부터 돌아다녔고, 그래서
그는 빈 침대에서 기어 나와 잠이 덜 깬 상태로 빈 부엌에 들어가 자신이 마실 커피를 준비하는 데 익숙했다. 그럴
때마다 1층 반대편 끝 작은 방에서 그녀가 타자를 치는 딸깍거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거나, 위층 어떤 방에서 그녀가 움직이는 발소리가 들리곤 했다. 때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이것은 그저 그녀가 책을 읽거나 창밖을 내다보거나 아니면 집 안 다른 곳에서 소리가 나지 않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다는 뜻일 뿐이었다. 그래서 아침 일찍, 의식이 완전히
깨어나기 전, 애나와 공유했던 평생의 삶 동안 형성된 오랜 습관의 영향하에서 몽롱한 채로 어떤 일을
할 때 그 모든 괴상한 기억의 실수가 벌어졌을 것이다. 장례가 끝나고 겨우 열흘이 지나고 난 아침에
김이 피어오르는 커피를 들고 부엌 의자에 앉아 있다가 테이블에 아무렇게나 쌓인 펼쳐진 잡지들 쪽으로 우연히 눈길이 내려갔을 때 그랬다. 



(68-69)

두 달 뒤 그는 환지통 에세이를 쓰는 일에 파묻혀 있다. 은유적
적합성이 점점 분명해졌기 때문에 그는 그것을 환지통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게 어디로 튈지 지금 시점에서는
알 수 없고 이걸 끝낼 수 있을지조차 의심스럽지만 당장은 이것이 어떤 욕구를 충족시켜 주고 있으며, 이것만으로도
그에게는 뇌 지도, 감각 수용체, 신경 회로 연구를 계속해
나갈 동기가 된다. 이것은 정신적, 영적 통증을 몸의 언어로
번역하려는 노력의 한 부분이다. 그는 죽은 자식을 애도하는 어머니와 아버지, 죽은 부모를 애도하는 자식, 죽은 남편을 애도하는 여자, 죽은 아내를 애도하는 남자를 떠올리며, 이들의 고통이 신체 절단의
후유증과 얼마나 닮았는지 생각해 본다. 사라진 다리나 팔은 한때 살아 있는 사람에게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계속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절단된 일부, 자신의 환상에 속하는
부분이 여전히 깊고 지독한 통증의 원천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어떤 치료가 가끔 이 증상을
완화해 줄 수는 있지만 궁극적 치료법은 없다.



(77)

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먼저 죽으면 산 자가 죽은 자를 삶과 삶이 아닌 것 사이의 일시적
림보 같은 곳으로 계속 들어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 자마저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죽은 자의 의식은 영원히 소멸한다. 애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들이쉬었다가 다시 내쉬더니 그가 전화기를 든 이후 처음으로 질문을 한다. 지금 내가 한 말들 알아듣겠어? 바움가트너가 뭐라고 대답을 하기도 전에 애나의 숨이 멈추고, 말이
멈추고, 전화선이 죽어 버린다.



(123)

외로움은 사람을 죽여요, 주디스. 그건 사람의 모든 부분을 한 덩어리씩 먹어 치우다 마침내 온몸을 삼켜 버려요.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삶이 없는 것과 같죠. 운이 좋아 다른 사람과 깊이
연결되면, 그 다른 사람이 자신만큼 중요해질 정도로 가까워지면, 삶은
단지 가능해질 뿐 아니라 좋은 것이 돼요. 우리가 가진 것은 좋은 거지만 이제는 이 정도 좋은 걸로는
충분하지가 않아요. 어쨌든 나에게는 충분하지 않아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건 어째서 나와 결혼한다는 생각이 당신에게 두려움을 주느냐는 거예요.



(130)

50여 년이 며칠처럼 빠르게 지나가고 나니 내 인생이
흐릿하게 한 덩어리로 쏜살같이 흘러가 버린 듯한 느낌이다. 나는 늙었지만, 날들이 아주 빠르게 지나가는 바람에 나의 많은 부분이 아직 젊게 느껴진다. 따라서
손에 연필을 쥘 수 있고 눈앞의 문장을 볼 수만 있으면 여기 도착한 아침 이후 해온 일과를 똑같이 할 생각이다.
마침내 더 할 수 없는 순간이 오면 일어나 떠나면 그뿐이다. 그때 너무 늙어 걸을 수 없다면
교도관에게 도와달라고 할 것이다. 그는 기쁜 마음으로 나를 배웅해 줄 게 분명하다.



(133)

얼마 전, 40대와 50대 초반 시절 자기보다 나이 많은 친구나 동료가 화장실을 다녀온 뒤 지퍼를 올리는 걸 잊고 나오는 게 눈에
띄기 시작했다. 허리띠 바로 아래 헛간 문이 입을 떡 벌리고 있는 것도 모르고 레스토랑의 자기 자리로
느릿느릿 돌아오곤 하던 70대 중반과 80대 초의 머리카락이
하얗게 센 친구들. 처음에 바움가트너는 이 해로울 것 없는 실수가 재미있었다. 그러다가 재미는 없어졌다. 그때쯤에는 볼 만큼 봐서 열린 바지 앞자락이
종말의 시작임을, 세상의 바닥으로 내려가는 긴 비탈로 가는 첫걸음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 일이 자신에게도 벌어지기 시작하자-지난 두 주 동안 네
번-그 클럽의 정회원이 되는 데 몇 달 또는 몇 년이 걸릴지 궁금해진다.



(151)

마흔두 살 된 남자가 막 처음으로 아버지가 되었다. 젊은
아내가 갓난아기를 병원에 두고 라이언스 애비뉴 양장점 위의 텅 빈 아파트로 돌아왔다. 그는 부엌 카운터에
있는 호밀빵 덩어리에서 한 조각을 잘라 내고 청어를 조금 준비하고, 작은 유리잔과 슬리보비츠 한 병이
이미 기다리고 있는 식탁에 앉는다. 그는 먹고 마시고, 먹을
게 사라진 뒤에도 두세 잔 더 마신다. 그에게는 엄숙하지만 의기양양한 순간, 평생 다른 어떤 때와도 다른 시간이다. 감정의 큰 파도가 일어 정신이
강인하고 때로는 마음마저 차갑고 단단한 이 남자를 삼킨다. 그의 내장에서 대양이 일렁이다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며 그 자신으로부터 그를 끌어내고,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얼마나 작은지 깨닫는다. 우주를 구성하는 다른 수많은 작은 것들과 연결된 작은 것, 잠시
자기 자신을 떠나 삶이라는 둥둥 떠다니는 거대한 수수께끼의 일부가 된 느낌이 얼마나 좋은지. 마흔두
살에 마침내 아버지라, 그는 생각한다.



(184)

어떤 사건이 진실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실제로 진실이어야 할까, 아니면 설사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해도, 어떤 사건의 진실성에
대한 믿음이 그것은 진실로 만드는 것일까? 그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느냐 아니냐를 알아내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확실성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면 어떻게 될까?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236/28/cover150/8932925046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2362895</link></image></item><item><author>bookholic</author><category>책에서</category><title>캐롤라인 냅 [드링킹, 그 치명적인 유혹] 중에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5181196/17110232</link><pubDate>Tue, 24 Feb 2026 00:3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5181196/1711023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2877447&TPaperId=1711023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1987/34/coveroff/8992877447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br>(19)

나는 술 마시는 느낌을 사랑했고, 세상을 일그러뜨리는
그 특별한 힘을 사랑했고, 정신의 초점을 나 자신의 감정에 대한 고통스러운 자의식에서 덜 고통스러운
어떤 것들로 옮겨놓는 그 능력을 사랑했다. 나는 술이 내는 소리도 사랑했다. 와인 병에서 코르크가 뽑히는 소리, 술을 따를 때 찰랑거리는 소리, 유리잔 속에서 얼음이 부딪히는 소리, 술 마시는 분위기도 좋아했다. 술잔을 부딪치며 나누는 우정과 온기, 편안하게 한데 녹아드는 기분, 마음에 솟아나는 용기.



(34-35)

다른 사람이 진정한 버전의 나를 눈치채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파티장이나 술집에서 다섯 잔째 와인을 기울이는 나를 본 사람들도 그지 조심스러운 사람이 어쩌다 긴장을 풀고 조금 흐트러지는 정도로
여겼을 뿐이다. 친한 친구들은 내 눈을 보면 술에 취했는지 아닌지 알 수 있다고 했다. 내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눈빛이 흐릿해지는 것이 보이면, 내가 내
속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걸었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약간 비틀거리거나 평소마다 목소리가
조금 커져도 사람들에게 취했다는 말을 듣는 적은 거의 없었다. 나는 조용하고 얌전하게 술에 취했다. 어수선해지는 건 내 머릿속일 뿐이었다. 



(85-86)

충분하다니? 알코올 중독자에게 그것은 생경한 미지의
언어다. 충분히 마시는 일이란 없다. 우리는 언제나 술이라는
보험을 찾고 또 찾는다. 첫 잔을 마시고 따뜻한 취기가 오르기 시작하면 그다음에는 그 느낌을 지속시키는
것, 그걸 강화하고 증대하는 것, 그걸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아는 리즈라는 여자는 알코올 중독을 ‘탐욕의 병’이라고 불렀다. 알코올 중독자들이 술에 느끼는 허기, 집착, 불안, 끝없는
결핍감을 일컬은 말이었다. 알코올 중독자에게 술이란 많을수록 좋고 많아야 한다. 석 잔을 마실 수 있다면 왜 두 잔만 마시는가? 네 잔을 마실 수
있는데 왜 석 잔만 마시는가? 도대체 왜 멈추는가? 그리고
어떻게 멈추는가?



(101)

“술을 마시면 내 마음 가득한 더러운 기분이 사라졌어요.”



(107)

술을 마시면 내가 원하는 성숙한 모습의 내가 되어 메를로의 섬세한 맛을 논하고, 그것이 구이 요리와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를 떠들 수 있었다. 나는
자리에 잘 어울렸고, 삼촌들, 숙모들, 부모님과 함께 식탁에 앉아 있는 것도, 술잔을 입에 댄 채 다른
사람들이 술 따르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다 편안했다. 나는 술을 통해서 상태를 변화시킨 것 같았고, 그런 느낌은 내게 안도감을 주었다. 여기에서 ‘두려움+술=용기’라는 또 하나의 방정식이 생겨난다.



(114)

비극은 그 보호막이 작용을 멈추면서 시작한다. 변신의
수학은 바뀐다. 이것은 불가피한 결말이다. 장기간에 걸친
과음은 우리 인생을 망가뜨린다. 다른 사람들, 그리고 자신과
맺은 관계가 뒤틀리기 시작한다. 업무에 장애가 발생한다. 재정
문제, 법적 문제에 부딪히거나 경찰과 부딪힐 수도 있다. 고통이
커지면 어느 순간 옛 수학(불편+술=불편 없음)은 전처럼 들어맞지 않게 된다. 편안함을 느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소심함이나 두려움, 분노에서 벗어나는 것보다 좀 더 깊고 근원적인 것을 찾게 된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방정식은 더욱 강력하고 완전한 내용으로 바뀐다. ‘고통+술=자기 망각’이라는.



(138)

알코올은 우리를 그런 어처구니없는 불능의 방정식으로 몰아간다.
자신의 힘을 느끼고자 상대를 성적으로 유혹하고, 성적 매력을 발휘하려고 술을 마시지만, 마음 한구석으로는 그 모든 것이 거짓임을 알고 있다. 그렇게 느끼는
힘은 작위적이고, 자기 내면의 것이 아님을 안다. 그러므로
나는 차 안에서 그렇게 로저의 입김과 손길에 몸을 맡긴 채 멍청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움쭉달싹할
수 없었다. 반발의 거품이(그에 대해, 그리고 나에 대해) 끓어올랐지만,
그것은 아주 미미했다.

술은 거짓된 미혹이다. 알코올은 힘을 주지만, 준 만큼 그대로 앗아간다.



(139-140)

알코올 중독자들은 책임 회피의 귀재들이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늘 타인이나 사물 탓으로 돌리는 것, 이것은 알코올 중독자를 가려내는 징후기도 하다. 이들은 관계가 꼬이는 엉켰을 때 자신이 잘못한 부분을 좀처럼 인정하지 못한다.
그해 여름 나는 데이비드와 함께 식사를 하면서 언제나 그에게 의문에 찬 눈길을 던졌다. 그에게는
뭔가 부족했다. 뭔가 마땅치 않았다. 나한테 문제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들지 않았다. 내가 다른 사람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도, 내가 가진 거대한 결핍감의 크기도, 또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내 소망의 부조리함도 감지하지 못했다.



(164)

술이 없으면 나는 우리에 갇힌 동물 같았다. 그러니
늘 술을 끼고 살 수밖에 없었다. 술이 없으면 나 자신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내 생각과 팔다리가 내 것이 아닌 듯했고, 그것들을 사용할 방법도
나를 멀리 비켜가 있는 것 같았다. 특히 일요일 아침이면 늘 그런 느낌을 받았다. 홀로 부스스 잠에서 깨어나면 텅 빈 하루의 시간밖에는 아무것도 나를 기다리는 것이 없었다.



(166-167)

혼술이 역설은(그러면서 정말로 위험한 것은) 우리가 정서적으로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만난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혼자
술 마시던 시절, 술이야말로 내 진정한 감정의 문을 열어주는 유일한 도구라고 느꼈다. 술을 마시고 녹아내린다. 술을 마시고 녹아내린다. 술을 마시고 흐느낀다. 술을 마시고 다른 사람에게 전화 걸어 고통을
호소한다.



(185-186)

몇 가지 규칙도 세운다. 혼자서는 마시지 않는다. 아침에는 마시지 않는다. 직장에서는 마시지 않는다. 주말에만 마신다. 오후 5시
이후에만 마신다. 술 마시러 가기 전에 우유나 올리브유를 한잔 마셔서 위벽을 보호하고 지나치게 취하는
일을 막는다. 술 한잔 마실 때마다 물 한 잔을 같이 마신다. 이렇게
자신에게 음주를 조절할 능력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자 어떤 일이든, 그야말로 어떤 일이든 시도한다.



(226)

술 깬 아침의 막막한 걱정. 내가 아는 알코올 중독자들은
모두 그런 경험이 있고, 그냥 있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많다. 파티
다음날 잠에서 깨어 전날 과연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무슨 짓을 했는지, 오전 내내 걱정에 잠겨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참다 못하면 파티
주최자에게 전화를 걸어 그 반응을 살핌으로써 우리 행동의 단서를 찾아내려 하기도 한다.



(235)

술은 망상을 낳는다. 술과 함께 하는 인생은 모험
가득한 낭만의 행로로 여겨지고, 밝은 햇살 아래 출렁이는 눈부시고 역동적인 바다처럼 느껴진다. 단 한 잔의 술로도 우리 가슴은 에너지와 열정에 부풀어 오르고, 조금
전까지 가슴을 짓누르던 문제를 몽땅 해결할 수 있을 듯 자신만만해진다. 하지만 진실은 그 반대다. 술은 우리 인생을 정체시키고, 바위처럼 그 자리에 붙박아둔다.



(260)

술을 끊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런 느낌을 말한다. 인생이
움직임을 잃고 색깔을 잃고 마침내 덜컥 멈춰서는 듯한 느낌. 우리가 도달한 곳은 전혀 원하지 않던 곳(마음에 안 드는 직장, 건강하지 않은 관계_이고, 탈출구는 짐작되지 않으며, 상황을
변화시킬 방법도 보이지 않는다.



(270-271)

알코올 중독에 오래도록 빠져 있다 보면 비디오 속에 사는 듯,
남이 써준 대본을 읽는 듯, 인생의 사건에 무력한 느낌을 받는다. 인생은 수많은 장면이 뒤엉킨 꼴사나운 연극이 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맡은 역할을 소화하는 것이다. 왼쪽으로 입장, 오른쪽으로
퇴장, 대사를 읊고, 평론가들이 이 공연에서 오지 않았기만을
기도한다. 알코올 중독자들의 인생 대본에 핵심을 이루는 요소는 바로 기만이다.



(330)

그 순간 나에 대한 오기가 솟았다. 처참한 내 인생이
한눈에 들어왔다. 술 마시고 싸우고 이 남자 저 남아에게 뛰어다니는 것이 전부였다. 민망한 인생, 지루한 인생, 게다가
극도로 피곤한 인생이었다. 결국 남는 게 무엇인가? 이 모든
소동이 도대체 어디로 간다는 말인가? 우리는 고통스러운 선택을 피하고자 술을 마시지만, 다음날 아침 깨어나면 그 선택은 그대로 남아 있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은 개의 목에 걸린 줄처럼 우리를 끌어 내리고 우리의 전진을 방해한다. 모멸감, 이 모든 일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아찔함. 마이클, 줄리안, 우울증, 불안, 거짓말, 술, 술, 술…… 내 인생은 그렇게 흘러가고 또 흘러갈 것이다. 아버지의 인생이 그랬듯이.



(334-335)

내가 마지막 술을 마신 장소는 마이클의 집 거실이었고, 시간은
자정 직전이었다. 재활센터 입원 사실을 아는 몇몇 사람 중 필라델피아의 친구 샌디가 보스턴까지 와서, 입원 전 마지막 저녁을 함께 했다. 식전에 맥주와 와인을 마셨고, 식사 중에는 와인을 마셨으며, 식후에는 바에 가서 코냑을 마셨다. 샌디가 화장실에 간 사이에 그녀의 잔에 담긴 술도 훔쳐 마셨다. 마이클의
집에 돌아오자 적포도주 한 병을 땄다. 마이클의 말에 따르면, 나는
거실에 우뚝 서서 “이제 자러 간다”고 말하고는, 적포도주 한 잔을 쭉 들이켜고서 비틀비틀 거실을 나갔다.



(355)

개선이라는 말은 허약한 느낌이 들며, 심지어 기만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술을 끊는 것은 단선적 의미의 개선에서 한 발짝 나아가,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는 일에 관련이 있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인생의 파도와 두려움, 감정, 성공과 실패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를 통해 성장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 삶은
개선된다(적어도 개선될 가능성은 생긴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 인생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면, 깨어 있는 정신으로 우리가 만든 유대관계를 존중하며 행동한다면 삶의
개선이란 거의 저절로 이루어진다.



(362)

술을 끊고 나서의 첫날 아침 느낌을 이야기하고 싶다. 마치
나의 옛 인생에서 쑥 뽑혀 나와 맑고 깨끗하고 독립적인, 꽃과 빛이 가득한 새 들판에 내려진 느낌이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런 느낌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처음 몇 주가
지나는 동안 내게는 자신감과 안도감, 드디어 내 인생의 개선에 나섰다는 인식에서 나온 희망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366-367)

‘나는 알코올 중독자다. 그러니까 술을 마실 수 없다’는 자시 인정은 밀물과 썰물처럼 한순간
차올랐다가 다음 순간 빠져버린다. 술 마시던 시절의 일을 돌이켜보면,
내가 올코올 중독자라는 증거는 많고도 많았다. 알코올을 들이켜면 내게는 강박 충동과 자제력
상실이라는, 다른 사람들은 겪지 않는 일련의 생리적 반응이 일어났다.
그래도 나는 아직 알코올 중독이 영구적인 진해성 질병이라는 개념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내가
술을 마시고 자제력을 잃지 않았던 적도 있지 않은가? 어쨌든 알코올에는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하는 순기능도
있지 않은가? 그냥 꼭 한 잔만 하면 안 될까? 이런 질문은
수많은 알코올 중독자에게 같은 두려움과 걱정을 불러일으킨다.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1987/34/cover150/899287744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19873417</link></image></item><item><author>bookholic</author><category>책에서</category><title>우일연 [주인 노예 남편 아내] 중에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5181196/17104831</link><pubDate>Sat, 21 Feb 2026 12: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5181196/17104831</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52032021&TPaperId=1710483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536/18/coveroff/k052032021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br>(54-55)엘렌은 기차가 메이컨을 떠나기를 기다리면서 이번 기차 여행 이후로는 믿을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알았다. 이곳에 돌아오면 아마 족쇄를 차게 될 것이다. 성공하면, 사랑하는 사람들을 영영 보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하늘이 기도를
들어준다면 윌리엄만은 볼 수 있겠지만, 살아남는다면, 엘렌은
어머니를 해방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먼저 그녀와 윌리엄이 자유로워져야
했다.&nbsp;(70-71)노스캐롤라이나주 포시스 카운티의 어느 도표를 보면 이 사업의 과정을 추론할 수 있다. 예속 피해자의 몸값은 출생 이후로 20세까지 점점 높아진다. 한 살짜리 아이의 가격은 100달러였다. 두 살짜리는 125달러였다. 가격은 7세가 될 때까지 25달러씩 증가한 뒤, 그 이후로는 50달러씩 증가했다.
그러나 20세에 900달러로 정점을 찍은 뒤에는
가격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55세인 예속 피해자의 가격은 100달러였다. 60세는 50달러였다. 그
이후로는 숫자가 기록되지 않았다.&nbsp;(101)힐리 가족은 서로를 남편과 아내로 불렀을지 몰라도 법은 그들에게 주인과 노예가 아닌 어떤 관계도
맺지 못하게 했다. 조지아주에서 개인에 의한 해방은 금지돼 있었다. 초기에는
조지아주 사람들도 자기 의지에 따라 노예를 해방할 수 있었다. 버지니아주의 조지 워싱턴이 (조건을 붙이긴 했어도) 노예를 해방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 시대에 힐리에게는 메리 일라이자나 그들의 자녀를 해방할 힘이 없었다. 아이들의 아버지가 백인이라는 점, 그들의 모습도 백인 같다는 점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 시기에는 소위 “한방울 법칙”이라는, 흑인의 피가 한 방울이라도 들어가면 그 사람의 몸 전체가
유색인종으로 변한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었다. 게다가 노예제도는 언제나 어머니의 혈통을 따랐다. 흑인이라는 혈통과 예속은 건드려서도 취소해서도 안 되는 영구적인 조건으로 간주되었다. 힐리 가족이, 그리고 이제는 엘렌도 바로 이런 가정에 반기를 들었다.&nbsp;(256)크래프트 부부의 특별한 탈출이 신문 1면에 실렸을
때는 미국 정제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멕시코와의 전쟁이 끝나고,
미국은 기존 영토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영토를
더 얻었다. 정착민들이 서쪽으로, 특히 캘리포니아로 몰려가고
있었다. 캘리포니아는 모든 신문에서 요란하게 광고되었다. 이런
광고의 헤드라인은 “골드러시!”라고 소리쳤다. 신문을 배달하는 소년들은 “새 배가 떠납니다!”라고 외쳤다. 이 모든 흥분의 한가운데에는 불안한 질문이 있었고, 크래프트 부부의 도망은 바로 그 질문을 강조했다. 이 땅에서 노예제도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미국 전체에서는?&nbsp;(282)지금 그 기적이 엘렌을 통해 실현된 것처럼 보였다. 활동가로
전직한 목사 새뮤얼 메이 주니어는 이렇게 감탄했다. “엘렌 크래프트는
(중략) 아름답다고 할 만한 여자였다. 그녀의
얼굴에는, 그녀의 눈과 두 뺨, 코 머리카락에는 아프리카계
혈통의 흔적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그녀의 모습 전체가 남부 태생의 백인 여성으로 보였다. 그런 여성이 하나의 재산으로 취급되고 가장 높은 가격을 부르는 사람에게 팔려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실제로는 피부가 가장 검은 여성이 그런 일을 당하는 것과 비교해 더 나쁘거나 사악한 일일 리 없지만, 유색인에 대한 편견 속에 자라난 공동체에 천 배는 큰 소요를 일으켰다.”&nbsp;(307)많은 사람이 엘렌을 백인으로 보았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한 사람들은 겉보기에는 백인인 이 여성이 흑인 남성을 사랑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인종
간 결혼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금지되었던 주에서는 작은 문제가 아니었다. 엘렌은 청중에게 사회적 질서를
고정해 두는 그 모든 범주의 의미에 질문을 던지라고 요구했다. 그 범주가 북부든, 남부든, 흑인이든, 백인이든, 주인이든, 노예든, 남편이든, 아내든 간에 말이다. 엘렌과 윌리엄은 힘을 합쳐 널리 퍼져 있던
인종차별주의적 주장을 뒤집었다. 흑인은 사회악이거나 최선의 경우에도 자선의 대상이며 구원이 필요하다는
주장, 흑인이 백인이 되고 싶어 한다는 주장을 말이다.&nbsp;(429)마치 노예 사냥꾼이 되고자 하는 이들의 등에 “우리를
체포하세요.”라는 플래카드라도 달려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담배를 피우며 마음을 달래기가 무섭게 거리에서 흡연했다는 혐의를 뒤집어썼다(이들의 고향에서 공공장소에서의
흡연은 흑인이 저질렀을 경우에만 처벌 가능한 위법 행위였다). 괴로워 소리를 지르면 “신성모독적 욕설” 혐의가 따라왔다.
월요일에 케임브리지까지 쫓겨 갔던 트라우마적 사건은 요금을 내지 않고 과속했다는 더 많은 혐의로 이어졌다. 조지아인들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눈에 그들은 겁에 질린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무기를 숨기고 다닌다는 혐의를 주가로 썼다. 흑인인 그들의 적은, 신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빨까지 무장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최악은 지역 주민들이 이들의 괴로움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어느
신문에서는 놀리듯이 이렇게 표현했다. “정말이지 보스턴 시민의 준법 의식은 대단하다!”&nbsp;(482)그들은 너무도 긴 거리를 달려왔다. 남부에서 북부로 1,600킬로미터, 뉴잉글랜드 전역을 다니며 다시 1,600킬로미터,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거친 파도를 건너 4,800킬로미터, 그들은 서로를 위해, 서로와 함께 달렸고 이제는 바로 이곳, 이 시간에 서로를 소유하고
있었다. 이곳은 두 사람이 함께, 충분히 강하게, 각자의 정체성을 따로 탐색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누구를, 또 무엇을 잃었든 그들은 아무도 깨뜨릴 수 없는 가정을 만들겠다는 꿈을 이룰 수 있었다.&nbsp;(552-553)아메리카의 천연자원은 다양하게 전시되었다. 브라운의
말에 따르면, 산처럼 쌓인 햄 더미, 소금과 소고기와 돼지고기가
담긴 통, 때깔 고운 흰색 라드가 있었다. 옥수숫가루와 완두콩, 쌀과 담배, 묵직한 목화 자루도 있었다. 그러나 그 농산물을 기르고 수확하고 도살한 사람들은 언급되지 않았다. 잉글랜드의
눈부신 방직기에서 나오는 알록달록한 사라사 천을 뽑은 이들이 세계 반대편에서 상품이 되어 구매와 판매의 대상이 되는 남자, 여자, 아이들임을 나타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사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어떤 사람은 “건방진 근육질 니거 대여섯
명”을 전시회에 데려올까 하다가, 도망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만두었다고 한다. 공식 카탈로그에서 노예노동에 대한 유일한 언급한 미국이 아닌 아프리카에서 재배되는
목화에 대한 것뿐이었다.&nbsp;(560)주인과 노예로서 나란히 선 것도 아니고, 남편과
아내로서 팔짱을 끼지도 않은 채, 친구들 사이에 함께 선 지금의 크래프트 부부는 미국에서만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그들을 규정했던 역할을 완전히 벗어버리고 세계를 거닐었다. 그들이 순회강연에서 반복적으로
끌어다 쓴 역할, 충격과 눈물, 경이감을 끌어내기 위해 뒤섞어
짜맞춘 역할은 이 마지막 시위에 빠져 있었다. 수정궁은 미국에서든, 그
너머에서든 가능한 삶의 모습이자 하나의 가능성으로, 언젠가는 이루어질 희망으로 나타내는 투명한 국제적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윌리엄과 엘렌, 엘렌과 윌리엄은
모든 방해에서 해방되어 세계 시민으로서 걸었다. 그들은 더 이상 주인과 노예, 남편과 아내가 아니었다.&nbsp;(572-573)“나는 노예 상태로 돌아가겠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자유보다 노예제도를 선호할 만큼 자유를 부정하는 건 신계서도 금하시는 일입니다. 사실 나는 노예제도로부터 탈출한 이래로 모든 면에서 내가 예상조차 못했을 만큼 나아졌습니다. 만약, 그 반대였다고 해도 이 문제에 관한 내 감정만큼은 똑같았을
것입니다. 나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훌륭한 인간의 노예가 되기보다 잉글랜드에서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편이 훨씬 좋습니다.”&nbsp;(597)크래프트 부부의 가장 확실한 유산은 그들의 자녀와-부부는
바로 이 아이들을 상상하며 모든 것을 걸었었다-그들이 이루어낸 시적 정의 안에서 계속 살아남았다. 아이들이 나름의 이동성을 발휘하며, 엘렌과 윌리엄이 꾼 꿈을 다양한
형태로 실현했기 때문이다. 두 아들은 철도와 우편 분야에 종사하게 되었다. 부부가 낳은 ‘첫 자유인 아이’인
찰스 에슬린 필립스 크래프트는 철도 회사의 우편 담당 직원이 되었고, 브로검은 미국 우체국에서 일했다. 셋째 아들 윌리엄은 영국에 정착했다. 딸인 엘렌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 전국 연합의 창립 부회장이 되었고(이 단체는 전국 유색인 여성 연합에 통합된다), 아이다 B. 웰스 같은 활동가와 협력했다. 또한 그녀는 미국의 라이베리아 공사인 윌리엄 데모스테네스 크럼의 아내로서 미국인 ‘퍼스트레이디’가 되기도 했다. 그녀의
남편은 찰스턴의 세관 징수관이기도 했다. 



































































&nbsp;<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536/18/cover150/k05203202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5361817</link></image></item><item><author>bookholic</author><category>책에서</category><title>제인 오스틴 [설득] 중에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5181196/17093858</link><pubDate>Sun, 15 Feb 2026 15:1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5181196/17093858</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1931&TPaperId=1709385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64/60/coveroff/8954611931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br>(157-158)

앤은 지금 그가 심지 굳은 성품이 우월하고 행복해진다는 이론을 펼쳤던 자신이 옳았는가를 자문해보고
있을지, 그리고 다른 성격들과 마찬가지로 그 또한 나름의 균형과 한계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유연한 성품도 때로는 결단력 있는 성품만큼이나 행복에 필요한 것이라고 그 또한 느끼지 않을까
싶었다. <br>



(308-309)

“아니, 아니에요. 그건 남성의 본성이 아니지요. 지조 없이 사랑하는, 혹은 사랑했던 사람을 잊는 것이 여자의 본성이 아니라 남자의 본성이라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 반대라고 믿어요. 우리의 신체적 구조와 정신적 구조엔 진정한
유사성이 있다고 믿으니까요. 남자의 신체가 더 강하듯이 감정도 더 강하니, 그만큼 고된 일도 견딜 수 있고 거친 풍파도 헤쳐나갈 수 있는 것이죠.”<br>



(311-312)

“아!” 앤이
열렬한 목소리로 탄성이 내지르며 말했다. “당신이, 그리고
당신 같은 남자들이 느끼는 모든 것을 온당하게 대접할 수 있길 바랍니다. 다른 사람의 따뜻하고 신실한
감정을 하찮게 본다면 벌받을 일이겠지요. 제가 감히 진실한 애정과 절개는 오로지 여자들만의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경멸받아 마땅할 겁니다. 아니, 저는 남자들이
결혼해 살면서 온갖 위대하고 선한 일을 할 수 있다고 믿어요. 꼭 필요한 일을 위해 애쓰고, 가정에서 참을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는답니다. 다만, 이런 표현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대상이 있는 한 그렇다는 얘기지요. 제 말은 당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살아 있고, 그 여자가 당신을 위해
사는 동안에 한해서라는 거예요. 제가 여자들을 위해 주장하는 특권이란-별로
시기할 만한 게 아니니 탐내실 필요는 없어요-더 이상 대상이 존재하지 않아도, 희망이 사라져버린 뒤에도, 여자는 남자보다 더 오래 사랑한다는 것입니다.”<br>



(327-328)

“세상에!” 그가
소리쳤다. “그리하셨겠군요! 제가 이룬 모든 성공의 정점으로
그것을 생각해보지 않았거나 소망하지 않았던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제 자존심, 지나친 자존심 때문에 다시 청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당신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눈을 질끈 감은 채 당신을 이해하려고도, 제대로
보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생각을 해보면, 모든 사람을
다 용서해도 저 자신만의 용서할 수 없게 된답니다. 육 년의 세월을 그렇게 떨어져 힘들게 보내지 않아도
되었겠지요. 그런 고통스러운 감정은 전에 느껴보지 못한 것이었어요. 제가
누렸던 축복은 모두 스스로 노력해서 얻은 것이라는 만족감에 익숙해져 있었으니까요. 명예로운 노고와 정당한
보상에 자부심을 느끼며 살아왔지요. 인생의 패배를 겪은 다른 위대한 인물들처럼.” 그는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저도 제 의지를 누르고 운명을
따르도록 해야겠습니다. 마땅히 받아야 할 몫 이상의 행복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하겠지요.”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764/60/cover150/895461193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7646003</link></image></item><item><author>bookholic</author><category>책에서</category><title>정약용 [큰 뜻을 품은 자여, 왜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가] 중에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5181196/17088697</link><pubDate>Thu, 12 Feb 2026 23: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5181196/1708869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12030881&TPaperId=1708869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636/87/coveroff/k212030881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br>(21-22)

그래서 정약용은 이렇게 말했다. “좋은 품성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갈고닦아야 하고, 의로운
기상은 언제나 얼굴에 드러난다.” 그렇다. 손톱을 보면 그
사람의 청결함이 드러나고, 체형을 보면 그 사람의 생활 패턴이 드러나고, 성격은 얼굴에서 드러나게 되어 있다. 이처럼 작은 습관과 태도 속에서
사람의 깊이가 드러나는 법이다. <br>



(24)

정약용은 이렇게 말했다. “요즘 화가들이 그리는
용은 마치 귀신 그림 같아서, 머리는 무섭고 꼬리는 뱀처럼 묘사된다.
그런데도 용을 실제로 본 사람이 드물다 보니 사람들은 그럴 듯 하다고 믿어버린다. 그렇게
사람들은 진실을 보지 못하고, 허망한 이미지에 쉽게 현혹된다. 하지만
청나라 화가 정공이라는 사람은 그런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진짜 용의 모습을 그리고자 애썼다. 비늘 하나, 눈동자 하나까지도 생생하게 묘사한 그의 그림은 마치
금방이라도 하늘로 솟구칠 것처럼 느껴졌고, 사람들에게 보여주기보다 밀실에서 조용히 그려야 할 정도로
귀했다. 그림이란 작은 기예일 뿐이지만, 그 곳에 진실과
정신이 담겨 있다면 세상을 바르게 표현할 수 있지 않겠는가.”<br>



(30-31)

정약용은 말했다. “아,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안타깝도다. 주머니 속처럼 좁고 막힌 곳에
살아 삼면은 바다, 북쪽엔 높은 산택이 가로막혀 몸도 마음도 늘 펼 수 없다. 개인이 가진 뜻이나 이상도 펼치기 어렵고, 공자 맹자 같은 성현들의
가르침도 현실과는 너무 멀게 느껴진다. 이 어두운 세상을 밝혀줄 이는 누구인가.” 정약용은 조선 시대의 현실에 대한 탄식과 함께, 그 안에서 도덕과
이상을 펼치기 어려운 환경을 안타까워했다. 글을 읽으며 안타까웠던 것은 옛날에는 정말 몰라서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다면, 오늘날은 새로운 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음에도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옛날이나
현대나 미래나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든, 어떤 말을 하든, 누군가는
비난하고 또 누군가는 좋아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그런 이들에게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 되려면 나만의
‘기준’과 그만한 ‘그릇’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 정약용은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는 마땅히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이 있고, 물러나야 할
자리가 있다. 벼슬이 아무리 높아도 그릇에 맞지 않으면 오히려 해가 된다.”<br>



(35)

정약용은 이렇게 말했다. “자연은 모든 것이 제때를
만나 기쁨을 누리는데, 나만은 어쩐지 앞이 막막하게 느껴진다. 나는
대체 무엇을 기다리며 이렇게 멈춰 있는가? 물질적 욕심이나 세상의 기준을 벗지 못한다면, 어찌 뜻을 크게 품고 분발할 수 있겠는가. 백 년 인생 안에서 뜻을
펼치지 못하고, 이 몸 하나도 내 뜻대로 할 수 없는데, 결국
자신을 잘 다스리는 것이 곧 세상을 다스리는 일이다. 그러니 함부로 남을 탓하기만 할 수 있겠는가.” 정말 그렇다. 성장하는 사람은 탓하는 대신, 자신의 태도와 삶을 먼저 다스린다.<br>



(43)

정약용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다산에서 연못을
파고 대를 쌓으며 밭농사에 마음을 다한 것은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본디 내가 그 일을
좋아해서였다. 진정으로 좋아한다면 ‘내 것’, ‘네 것’의 구분은 없다.” 자신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그 일을 남에게 미루지 않는다.<br>



(47)

정약용은 말했다. “큰 그릇이 되려면 반드시 용광로의
불에 들어가고, 망치질을 여러 번 견뎌야 하는 법이다.” 쉽게
만들어진 그릇은 쉽게 깨지는 법이다. 반면에 불과 망치를 견뎌낸 그릇은 단단하고 오래 가게 되어 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다. 처음에는 순조롭게 흘러가던 일이 어느 순간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부딪히고, 그 고비가 길어지면 마음은 쉽게 지치게 된다. 하지만 그 시련이 곧 나를 단련하게 시간일 수 있다. 단지 결과가
늦게 오는 것일 뿐, 결코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니다.<br>



(55-56)

정약용은 말했다. “마음속 뜻이 천박하고 저속하면, 아무리 억지로 그럴듯하고 고상한 말로 꾸미려 해도, 그 안에서 제대로
된 조리가 생겨나지 않는다. 또한 생각이 편협하고 비루하면, 아무리
화려한 말로 치장한다 해도 사물의 진실한 정황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게 된다. 그렇기에 시를 배우는
사람이 그 안에 담긴 ‘뜻’을 헤아리지 않는 것은, 썩은 땅에서 맑은 샘물을 길어 올리려는 것이며, 악취 나는 가죽나무에서
향기로운 냄새를 얻으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런 자세로 평생을 시에 힘쓴다 해도, 얻을 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늘이 인간 사이의 이치, 그리고 사람의 타고난 본성과 목숨, 운명의 원리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런 다음, 인간 안에 있는 바르고 순수한 마음과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흔들리는 마음을 잘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삶 속에서 생긴 혼탁하고 거친 감정이나 욕심들을 깨끗이 비워내, 본래
맑고 참된 마음이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br>



(66-67)

정약용은 &lt;다산시문집&gt;에서 이렇게 말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더욱 신중해야
한다. 사람들은 자주 자신을 과소평가라고, 스스로를 업신여긴다. 그래서 말이 막 나가거나, 아무렇게나 사람을 칭찬하거나 헐뜯고, 생각 없이 억누르거나 부추기면서, 결국 그로 인해 사람의 명예와
이익이 크게 엇갈리게 되는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지위를 허락하면 그 책임은
나 혼자만 질 수 있지만, 오히려 자격 있는 사람을 배척하면 그 해악은 결국 다른 이들에게까지 번지게
된다. 더구나 은혜와 원한은 한마디 말에서 생기기도 하고, 재앙과
복도 때로는 단 한 글자의 문장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그러니 사리에 밝은 선비라면 이 점을 깊이 새기고
늘 경계해야 한다.”<br>



(77)

정약용은 또 이렇게 말했다. “예전 친구들 가운데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이 있으면, 어떤 사람들은 그 친구를 부귀해진 사람으로 여기고 괜히 주눅이 들어
그 집을 찾아가는 것조차 부끄러워한다. 하지만 이는 내가 부끄럽거나 그 사람을 나쁘게 여겨서가 아니라, 실제로는 간사한 자들의 이간질 때문인 경우가 많다. 우리는 비록
가난하고 평범하며 세상 돌아가는 일에 둔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혹은 설사 지위가 높다 해도 결국은
조용히 살아가는 늙은 선비일 뿐이다. 그런 우리라도, 어떤
이의 글과 말이 본받을 만하다면 어찌 그를 찾아가 교류하지 않겠는가? 결국 중요한 건 지위가 아니라
그 사람의 됨됨이다.”<br>



(89)

정약용은 이렇게 말했다. “세상의 모든 비방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법이다. 경솔하고 무지한 무리들이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리면 잠시 떠들다가도
금세 잊어버리는 일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내가 그 비방을 듣고 일일이 사람들에게 해명한다면, 한 사람이 두 사람에게, 두 사람이 수백, 수천 명에게 전해질 것이니, 어찌 어리석은 짓이 아니겠는가? 또한 한 숟갈 밥으로 사람이 살이 찌거나 마르리라 믿는 이는 없다. 그런데
선비들이 모여 학문을 강론하는 자리에서, 단지 미친 자가 퍼뜨린 한마디 험담에 마음이 무너지고 낙심한다면, 어떻게 기틀을 바로 세우고 큰 뜻을 펼 수 있겠는가?<br>



(98-99)

정약용도 이렇게 말했다. “혀 때문에 죽고, 혀 때문에 살며, 혀끝에서 싸움이 일어나 소리도, 자취도 사라진다. 이 모든 것은 ‘말이
절제되지 않음’에서 비롯된 것이니, 아주 먼 옛날부터 지금까지
지워지지 않고 되풀이되어 온 잘못이다. 입은 재앙의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 말은 칼보다 날카롭다고도 한다. 칼은
상처를 내도 시간이 지나면 흉터로 아물 수 있지만, 말로 인한 상처는 보이지 않아 더 오래 간다. 그래서 말은 마음을 전하는 도구이기 이전에, 누군가의 마음을 다치게
할 수 있는 무기임을 명심해야 한다. 특히 진심을 담았다는 이유만으로,
또는 내가 옳다는 확신만으로 말의 칼날을 휘두를 때가 많다. 그러나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날카롭게 내뱉는 순간 진실은 전달되지 않고, 상처만 남는다.<br>



(99-100)

정약용은 말했다. “사람에게 말할 때는 반드시 공손하고
부드럽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비록 옳은 말이라도 남이 기분 나빠하고 듣지 않게 된다.” 정약용의 말처럼 말의 방식은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기 때문이다. 부드럽고 따뜻한 말은 상태의 마음을 열게 하지만, 날 선 말은 마음을
닫게 한다. 늘 이쁨을 받는 사람들은 이 점을 안다. 그래서
말에 날을 세우기보다 다정함을 품는다.<br>



(110)

그래서 정약용은 “허물을 고치는 자는 허물이 없는
사람과 같다”고 말한 것이다. 누구나 허물을 고칠 수는 있지만,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실제로 행하는 용기를 가진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
그러니 중요한 건 넘어졌는지가 아니라, 다시 일어났는가 이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고쳐나가는 태도, 그것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 그러니 두려워 말고, 부끄러워하지 말고, 담담히 고쳐나가자.<br>



(115-116)

정약용은 타인을 함부로 판단하는 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물
안 개구리가 좁은 세상만을 본다면, 항아리 속 쉬파리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짐승이 사람을 볼 때 모두 비슷하게 보이듯이, 대체 누가 어리석고
누가 현명하다고 할 수 있을까. 저기 나는 두 마리 백로를 보게나, 그들
사이에 누가 더 낫고 못한지 어찌 알겠는가. 한마디 말로 사람을 정하고, 한 번의 실수로 사람을 버리는 일, 어리석도다.”<br>



(134)

정약용은 말했다. “다른 사람을 끌어와 자신과 비교하지
마라. 모기나 풀과 나무도 모두 한 생애를 산다. 인생이
굽이치고 돌아간다 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복잡한 산세도 깊은 골짜기를 품기에 적당하듯, 모든 일에는 제자리가 있다. 본질 없는 자랑은 허망하다.” 인생은 그리 길지 않다. 그러니 비교하고 칭찬을 받으려 애쓰기보다, 자신의 삶을 선택하자. 본질이 없는 자랑의 끝에는 허망함만 남을
테니 말이다.<br>



(153)

정약용은 이런 말을 했다. “나아가는 것이 옳다면
나아가는 것을 공손함으로 삼고, 나아가지 않는 것이 옳다면 나아가지 않는 것도 공순함으로 삼아라.” 그러면 그 옳은 곳이 곧 공손함이 맞는 곳이다. 공손함이란 단지
겸양하거나 비굴한 태도가 아니라, 바른 판단을 기준 삼아 신중하게 행동하거나 멈추는 태도라는 말이다.<br>



(188-189)

정약용은 비밀을 지키는 방법과 근신의 자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남이 알지 못하도록 하고 싶으면 행위를 하지 않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고, 남이 듣지 못하도록 하고 싶으면 말하지 않는 것만한 것이 없다. 이
두 구절의 말을 평생 동안 몸에 지니고 있으면, 위로는 하늘을 섬길 수 있고 아래로는 집안을 보존할
수 있다. 세상의 재물과 근심거리, 또는 천지를 뒤흔들 만큼
크고 무거운 죄악은 사람의 몸을 해치고, 가문을 망하게 할 일들은 대부분 ‘몰래 감추고 하는 일’에서 비롯된다.
그러니 무슨 일을 하거나, 무슨 말을 하든 반드시 깊이 생각하고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 만약 ‘이 글이 사거리의 번화가에 떨어져 있어 원수진 사람이 열어보더라도
나에게 죄가 없을 것인가’라고 생각하고, 또 ‘이 편지가 수백 년 뒤까지 유전되어 허다한 식별력 있는 사람들에게 보여져도 나에게 비난이 없을 것인가?라고 생각한 뒤에 쓰고 밀봉해야 하니, 이것이 군자가 근신하는 태도이다. 나는 젊은 시절에 글씨를 빨리 썼으므로 이런 실수를 많이 했다. 중년에는
뒷일이 두려워 점차 이 법도를 지켰더니, 매우 유익하였다. 이
점을 명심하라.”<br>



(201)

삶의 깊이는 겪은 만큼 깊어지고, 앎의 밀도는 직접
부딪힌 만큼 단단해진다. 큰 뜻을 품었다면 남의 말로는 세상을 배우려 하지 말고, 자신만의 걸음으로 그 길을 걸어야 한다. 그러다 넘어질 수도 있고, 진흙탕에 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시간이 당신을 진짜로
만들어준다. 두려움은 해보지 않아서 생기고, 용기는 해본
사람에게만 생긴다. 삶은 결국, 맛본 자만이 제대로 누릴
수 있다. <br>



(222)

정약용은 말했다. “잡념이 생기면 휘저어 보내라. 다시 떠오르면 또 휘저어 보내라. 그래도 떠나지 않으면 억지로 쫓지
말고, 그냥 두어라. 그것이 곧 다스림이다.”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은 잡념이 전혀 없는 상태가 아니라, 떠오르는
생각을 억누르지 않고 흘려 보내거나 그대로 둘 수 있는 여유를 가지는 것이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636/87/cover150/k21203088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6368775</link></image></item><item><author>bookholic</author><category>책에서</category><title>디디에 에리봉 [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 중에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5181196/17079987</link><pubDate>Sun, 08 Feb 2026 22:1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5181196/1707998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4961&TPaperId=1707998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160/44/coveroff/8932044961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43-44)

어머니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어떤 안도감을 느꼈다. 수년
전 아버지에게 알츠하이머가 닥친 것, 그 때문에 아버지가 기약 없이 입원한 전문 클리닉에 매일 찾아가야
했던 것이 그를 사랑하지 않았던 그녀에게는 끝나지 않는 기나긴 시련이었기 때문이고, 동시에 그녀가 스무
살에 결혼한 이래 무언가 하는 것, 말하는 것, 생각하는
것, 바라보는 것에 처음으로 부담을 느낄 필요 없이 홀로 자유로워졌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나이 들어 신체가 쇠약해짐에 따라 거동의 자유를 새로 방해받기 전까지 얼마 동안 되찾은 자율성을 여유롭게
누렸다. 둘의 대화를 들으면서 난 그 손님이 자기 남편의 요양원 입소를 유사한 감상으로 환영했다는 강한
인상을 받았다. ‘마침내 자유다!’라는 감상 말이다.<br>



(58-59)

어머니 자신도 틀림없이 이런 쇠락은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내심 확신하고 인정했다. 해결되지고, 개선되지도 않을 문제였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내가 나아지면…”
또는 “내가 회복되면…”이라고 반복해서 말했다. 마치 생물학적인 사태의 추이를 변화시킬 수 없는 자신의 무력감을 쫓아버리려는 듯 말이다. 어머니는 무력감에 굴복하기 힘들어했지만 건강 상태가 좀처럼 저항할 여지를 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뻔히 거짓말인 줄 알면서 “네, 어머니가 괜찮아지시면…” 또는 “그래요, 어머니가 다 나으시면…”하고 대답했다. 사실 어떻게 자기 어머니에게 “아뇨. 어머니는 회복 못 하실 거예요. 낫지 못하실 거예요…”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br>



(60)

우리는 집으로 되돌아가길, 혹은 진짜 자기 집을
되찾길 기다리며 다소 긴 기간 동안 임시 체류하러 요양원에 들어가지 않는다. 아니! 영구히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거기서 죽을 것이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어디서인지는 안다. 블라디미르 장켈베비치는 이 라틴어 격언을 즐겨 인용했다. ‘죽음은
확실하나, 시간은 불확실하다. 적어도 우리는 이렇게 적시할
수 있다. 일단 그런 시설에 들어가면 ‘장소는 확실하다’고, 설령 시간이 아주 머지않은 듯 보인다 해도, 시간보다 훨씬 확실하다고.<br>



(74)

엘리아스는 계속해서 말한다. “해로하는 노부부를
제외하면, 요양원에 들어가는 것은 오랜 감정적 유대가 최종적으로 끊어지는 것뿐만 아니라 그 개인이 어떤
긍정적 정서적 관계도 맺은 적 없는 사람들과 같이 살아야 한다는 것 또한 의미한다. 건강을 돌봐주는
의사와 간호사가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노인들은 정상적인 삶으로부터 격리되고 낯선 사람들과
같이 살아야 한다. 그것은 개인에게는 외로운 일이다. 내가
여기서 걱정하는 점은, 아주 고령이 될 때까지도 매우 활발하게 지속되는 성적 욕구의 문제뿐 아니라 함께
있는 것을 즐기고 같이 있으면서 정서적 만족을 느끼는 인지상정의 문제다. 요양원에 들어가게 되면서 이런
종류의 인간관계 역시 줄어들고 거기에서는 대체물을 찾기 어렵다.”<br>



(100-101)<br>
우리는 공공서비스 관할의 모든 부문에서 그랬듯, 돌봄 인력이 신자유주의 정책들에 의해 프랑스의
병원에서 얼마나 많이 감축되었는지 안다. 그 정책들은 언제나 강력한 비용 절감 계획을 작동시켜왔고, 지금도 그렇다. 병원 근무자들이라면 직종에 관계없이 프랑스의 보건
공공서비스가 파산 상태(다른 나라들이라고 썩 사정이 낫진 않다)에
다다랐다고 자주 강력하게 규탄해왔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변화하지 않았고-반대로 사정은 계속 악화해, 프랑스 정부는 심지어 코로나19 위기 동안 병상 폐쇄라는 살인적인 정책을 추진했다-우리는 그런
상태를 거의 정상으로 받아들이며 더 이상 분노하지 않는 지경에 이른 듯 보인다. 기필코 이런 유혹에
넘어가선 안 된다. 지치지 말고 계속 분노해야 하며, 이
분노를 소리 높여 강하게 외쳐야만 한다.<br>



(117)

이 ‘전체주의적’
성격은 매일매일 두드러져만 갔다. 어머니의 삶 전체가 구획되고 통제되었으며, 그녀를 대신해 모든 것이 결정되었다. 어머니는 자율성을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자유, 사람으로서의 지위까지 상실했다. 그렇다. 탈인간화로 인해 노인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닌 지경까지 다다른다.<br>



(119-120)

산다는 것은 시간, 시간성 그리고 당연히 공간성과
관계 맺는 것, 즉 시간 속에 스스로를 투사하고 공간 안에서 움직일 능력을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이는, 말하자면 고령, 노년은
공간과 시간에 대한 이 존재론적 관계를 수정하고 무화하며 파괴한다. 공간성의 상실, 시간성의 소멸은 인간 실존의 조건 그 자체를 규정하는 것을 점차 사라지게 한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수많은 인잔 존재의 실존과 관련된다. 어떤 면에서는 거의 모든 인간 존재의 실존과 관련된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늙는
것이 죽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한 말이다. 정치 담론과 행정보고서에서 이야기되는 기대 수명의
상승과 이른바 ‘인구 고령화’는 나이가 아주 많고 의존적인
사람들의 수가 계속 엄청나게 증가할 것임을 함축한다. 삶은 건강한 삶뿐만 아니라 건강하지 않은 삶, 쇠약해진 삶이기도 하다.<br>



(131-132)

이 짧고 아름다운 이야기 속에서 난 어머니의 이미지를 본다.
그녀는 버림받은 아이였고, 열네 살에 ‘무슨
일이든 하는 하녀’로, 가정부로, 공장노동자로 위치지어졌다… 그녀는 스무 살에 결혼해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55년 동안 함께 살았다… 그리고 이제 여든 살이
넘어서 자유를 발견했고, 모든 순간을 즐기겠다고 결심했다. 그런
그녀를 어떻게 비난할 수 있겠는가? 누가 그녀를 책망할 권리를 가로챌 수 있겠는가?<br>



(149)

난 죽음-지워짐에 관한 푸코의 말을 좋아한다. 그는 아리에스의 탄식과 힘 있게 결별하는 발언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죽음은 사건 아닌 것이 되었다. 대개 사람들은 사고사가 아니라면 약품들의 덮게 아래 죽는다. 그리하여
그들은 몇 시간, 며칠 또는 몇 주간 의식을 완전히 잃는다. 그들은
지워진다. 우리는 의료와 제약이 죽음과 동반하면서 죽음으로부터 고통과 극적 성격을 앗아가는 세상에 살고
있다.

난 무언가 통합적이고 극적인 거대 의례로 되돌려지는 죽음의 ‘정화’에 관한 온갖 이야기를 별로 지지하지 않는다. 관 주변의 소란스러운
눈물들이 언제나 모종의 냉소주의에서 면제하는 것은 아니다. 거기엔 상속의 기쁨이 뒤섞일 수도 있다. 난 이런 종류의 예식보다는 사라짐의 부드러운 슬픔을 더 좋아한다.

지금 우리가 죽음을 맞는 방식은 내계는 오늘날 통용되는 어떤 가치 체계, 어떤 감수성을 명확히 나타내는 듯 보인다. 향수 어린 충동 속에서
더 이상 아무 의미 없는 관행들을 되살리고자 하는 데는 몽상가적인 무언가가 있다. 

그보다는 차라리 죽음-지워짐에 의미가 아름다움을
부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br>



(181-182)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암묵적이든 잠재적이든 어머니를 통해 유지되어온 내 과거와의 연속성이
이제 끊어져버렸다. 혹은 몹시 느슨해져버렸다. 내가 어떤
아이였는지, 어떤 청소년으로 자라났는지에 얽힌 일화들을 앞으로 누가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 가족의 지형도, 조상의 계보도를 누가 내게 그려줄 수 있을까? (중략) 내 젊은 시절의 기록 보관자이자 역사가는 더 이상 이야기할
수 없다.<br>



(195-196)

자기 어머니를 애도하는 것은 “자신의 어린 시절”과 “잃어버린 젊음을 애도하는 것”이라고
알베르 코엔은 쓴다. 내게 이보다 더 적절한 문장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건 망각되거나 부인된 모종의 면모들, 구체적으로 우리가 수치스러워했던 것들을 되찾는 일이기도 하다. “이제 모든 사람에게 당신을 소개한다.” 코엔은 돌아가신 어머니에
관해 이렇게 선언한다. “당신을 자랑스러워하며, 당신을 소개한다.” 코엔은 돌아가신 어머니에 관해 이렇게 선언한다. “당신을 자랑스러워하며, 당신은 동양식 억양을 자랑스러워하며, 당신은 프랑스어 오류를 자랑스러워하며, 고상한 예법에 대한 당신의 무지를 미치도록 자랑스러워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덧붙인다. “약간 뒤늦은, 이 자부심.” 그는 모두에게 이렇게 훈계한다. “아직 어머니가 살아 계신 아들들이여, 당신의 어머니가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라. 만일 당신들
가운데 한 명이라도 내 죽음의 노래를 읽고 어느 날 저녁 어머니에게 더 부드럽게 대한다면, 나와 내
어머니 때문에 그렇게 한다면, 내 글쓰기는 헛되지 않을 것이다. […]
내가 당신에게 건네는 이 말들은, 아직 어머니가 살아 계신 아들들이여, 내가 나 자신에게 표할 수 있는 유일한 조의다. 아들들이여, 시간이 있는 동안, 어머니가 아직 살아 계시는 동안이다, 서두르시라. […] 하지만 난 당신들을 안다. 그 어떤 것도 어머니가 살아 계시는 한 오래도록 당신들의 그 끔찍한 무관심을 없애지 못할 것이다. 어떤 아들도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시리라는 것을 진정으로 알지 못한다. 아들들은
모두 어머니에게 화를 내고 짜증을 부리며, 이 바보들은 곧 벌을 받는다.<br>



(237)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공장을 다시 보러 갔다. 외벽은
국민전선의 포스터와 그라피티로 뒤덮여 있었다. 내부는 모든 것이 황폐한 인상을 주었다. 유리창은 깨져 있었고, 바닥엔 짙은 녹색의 깨진 병 조각들, 유리 파편들이 널려 있었다… 병뚜껑을 고정하기 위해 여성 노동자들이
금속 링을 거는 빨간 고무 패킹들 또한 오렌지색으로 바랜 채 흩어져 있었다. 이 황량한 무대를 두고
나는 어머니의 것이었던 세계에서 어머니의 실존이 어떠했을지 생각했다. 오늘날 바람이 쓸고 간 텅 빈
공간을 한때 가득 채웠던 유기체들에게는 숨 막힐 정도로 격렬했을, 물론 [유리 제품] 제조용 가마들에서 내뿜던 열기에 대해. 지옥같이 참기 어려운 소음에 대해, 온갖 직무의 극단적인 난도에
대해, 자재들에서 나오는 분진의 위험성에 대해, 떄로는 심각했을
숱한 노동 재해에 대해… 지나간 과거에 대해 생각했다. 어머니를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자, 난 생각했다. 자, 이것이 어느 서민 여성의 삶이었고, 자, 이것이 그녀의 노년이다. 난
그렇게나 빨리 세번째 단어를 덧붙여야만 하게 될 줄은 알지 못했다.<br>



(263)

엘리아스가 쓴 이 말을 틀렸다고 하기란 불가능하다. “아직도
활기차고 가끔은 기분 좋은 느낌으로 가득한 자신의 몸이 느릿해지고 쉬 피로하며 어둔해질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 다시 말해 노인들, 죽어가는 사람들과의 동일시는 다른 연령층의
사람들에게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사람들은 자신이 늙고 죽을 것이라는 관념을
극구 부정하려 하며 그에 저항한다.”<br>



(299)

결국 근본에 있는 정치적 문제는 이것이다. 누가
말하는가? 누가 발언할 수 있는가? 이 기본이 되는 정치적
행위가 가장 극심하게 지배받고 박탈당하고 취약한 사람 가운데 그렇게 많은 이에게 여전히 접근 불가능하다면 그들에 관해서, 그들을 위해서 말하고 그들을 보이게 하는 것이 작가에게, 예술가에게, 지식인에게 돌아오는 과제가 아닐까? 보부아르의 표현을 빌려오자면, “그들의 목소리를 들리게 하는 것,” 또는 어쩌면 그들에게 “목소리를 주는” 것. 그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또는 그들에게 이제는 없는, 아니면 의존적인
고령자들의 경우처럼, 그들이 더 이상 가질 수 없는 그 목소리를 말이다.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160/44/cover150/893204496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1604461</link></image></item><item><author>bookholic</author><category>책에서</category><title>이혁진 [단단하고 녹슬지 않는] 중에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5181196/17074112</link><pubDate>Thu, 05 Feb 2026 22: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5181196/1707411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92938849&TPaperId=1707411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464/8/coveroff/k592938849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19)

이걸로 슈마허에게 가르쳐줘. 전봇대를 받아 탑승자를
다치게 할 바에야 길고양이를 치는 게 훨씬 싸게 먹힌다는 걸. 애들한테 걷어차도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가르쳐주듯. 세희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 눈으로 볼 거 없어. 이미 다 있는 거, 우리 다 하고 있는 거야. 보험사에는 평가액, 은행에는 신용 점수가 있고, 결혼 정보 회사에도 입사 시험에도 학교
시험에도 다 있잖아. 등급, 석차, 점수, 우리 이마엔 이미 바코드가 찍혀 있어. 리더기만 들이대면 ‘삑’하고
얼마짜린지 다 나와. 모른 척하고 아닌 척할 뿐이지.<br>



(164)

사랑만이 고통에도 의미를 주니까요. 그 고통엔 의미가
있어 더욱 고통스러워니까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고통을 견디는 것도 의미가 있는 거예요. 무의미하기만 한 고통은 그걸 겪고 견디는 우리들끼리 무의미하게 만드니까요. 오로지
휘몰아치는 고통만이 있을 뿐이고 우리도, 다른 모든 것도 거기에 이리저리 휘날리기만 하는 티끌들인 거예요. 영인은 쓸쓸히 창밖을 봤다. 내 나이쯤 되는 사람들은 다들 그러죠. 자기 인생을 쓰면 책 한 권은 너끈히 될 거라고 하지만 그 책의 대부분은 지루하고 하찮기만 할 거예요.<br>



(198)

어떤 것이 자율이라는 건 필연히 다른 것들이 타율이라는 뜻입니다. 간단한 논리의 문제죠. 무버에 적혀 있는 말처럼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필연히 움직이지 않는 단 하나일 수밖에 없습니다. 전기밭솥을 생각해보면 쉽죠. 인공지능이 알아서 밥을 짓는다고 우리가 자율밥솥이라고 하나요? 자동밥솥일
뿐이고 자율주행도 결국엔 자동주행일 뿐이죠. 그 반대라면 우린 밥솥이 무슨 밥을 짓든 먹을 수밖에 없고
차들이 어떻게 주행하든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건 명백한 횡포고 억압이며 사실 별로 낯선 것도 아니죠. 늘 가장 강력하고 악독한 횡포와 억압은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져왔으니까요.
우리가 지금 얼마나 ‘자율적’으로 서로를 혐오하고
배척하는지 생각해보면 아실 겁니다.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3464/8/cover150/k59293884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4640897</link></image></item><item><author>bookholic</author><category>책에서</category><title>이언 매큐언 [레슨] 중에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5181196/17069791</link><pubDate>Tue, 03 Feb 2026 23:0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5181196/17069791</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82032841&TPaperId=1706979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617/23/coveroff/k282032841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br>(35)

스스로 만든 지옥은 흥미로운 구조물이다. 누구나
평생에 적어도 한 번은 만들게 되어 있다. 어떤 이들의 삶은 그런 지옥일 뿐이다. 성격이 불행을 자초한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롤런드는 그런 생각을
자주 했다. 자기 손으로 고문 기계를 만들고 그 안으로 기어들어간다.
특정한 작업 혹은 술이나 마약 중독 혹은 발각될 위험이 있는 범죄 등 각자에게 맞는 고통을 받는 것이다. 금욕적인 종교도 선택지에 들어갈 수 있다. 전체적인 정치체제가 고통을
자초하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그때 한때 동베를린에서 지낸 적이 있었다. 결혼은 이인용 고문 기계로 킹사이즈의 가능성, 공유 정신병의 모든
변종을 아우른다.<br>



(104-105)

유럽 전역에 자기기만의 구름이 드리웠다. 서독의
한 텔레비전 채널은 방사능의 독기가 복수라도 하듯 소비에트 제국만 오염시키고 서구는 안전할 거라고 확신했다. 동독의
한 정부 대변인은 인민의 발전소를 파괴하려는 미국의 음모에 대해 언급했다. 프랑스 정부는 방사능구름의
남서쪽 가장자리가 프랑스와 독일 사이 국경과 일치한다고, 그 구름은 국경을 넘을 권한이 없다고 믿는
듯했다. 영국 당국은 대중이 위험에 처할 가능성은 없다고 선언했지만,
사천 개의 농장을 폐쇄하고, 사백오십만 마리의 양을 판매 금지하고, 수천 톤의 치즈를 거둬들이고, 어마어마한 양의 우유를 배수로로 흘려보냈다. 모스크바에서는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아기들과 아이들이 방사능에 오염된 우유를 마시게 내버려뒀다. 하지만 곧 이기주의가 만연해졌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비상사태에 정면으로 맞서야 했고, 그런 일은 비밀리에 일어날 수
없었다.<br>



(150)

천재가 인생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아인슈타인은
바이올린 연주도 하고, 요트도 타고, 명성도 좋아하고, 자신의 일반상대성 이론에서 순수한 기쁨도 느끼며 충분히 행복하게 살았다. 하지만
지저분하게 이혼하고, 양육권 싸움을 하고, 여자 문제로 골치를
앓으며, 다비트 힐베트르가 자신의 업적을 가로챌 거라는 피해망상에 시달리고, 양자역학을 비판하고, 그에게 모든 것을 빚진 뛰어난 시달리고, 양자역학을 비판하고, 그에게 모든 것을 빚진 뛰어난 젊은이들과 갈등을
빚었다. 차라리 멍청하거나 평범한 게 나을까? 그렇게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멍청이도 불행에 이르는 자기만의 길이 있다. <br>



(227-228)

베를린과 저 유명한 앨리사 에버하르트는 어떻게 그의 인생에 들어오게 되었을까? 롤런드는 그의 일상에 정착한 과대망상적인 기분에 젖어, 자신의 존재를
형성하고 결정지은 크고 작은 개인적이고 세계적인 사건 사고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곤 했다. 그는 특별한
사례가 아니었다-모든 인간의 운명이 그런 식으로 정해지니까. 전쟁만큼
개인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공적인 사건은 없었다. 만일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해 이등병 베인스가
소속된 스코틀랜드 사단이 이집트 주둔 계획을 철회하고 북프랑스로 가서 됭케르크로 이동하고, 그곳에서
그가 다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고 전투 부적격 판정을 받아 올더숏에 배치되어 1945년에 로절란드를 만나는
일이 없었더라면, 롤런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젊은 제인 파머가 전후에 영국 식단을 개선하겠다는 시릴 코널리의 뜻에 따라 후딱 알프스를 넘어갔더라면, 앨리사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주 흔하면서도 경이로운 일이었다. <br>



(344-345)

잠시 후 그녀가 말했다. “어쩌면 내가 틀렸는지도
몰라. 난 완전히, 그리고 빨리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어. 잔인한 짓이었고, 미안하게 생각해.
정말 미안해…… 그게 늘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야. 당신이
매일 섹스를 요구하는 거. 하지만 아기는…… 아기의 요구는, 아기는 나를 소멸시켰지. 아기와 당신…… 난 아무것도 아니었어. 나에겐 아무것도 없었어. 생각도, 인격도, 바라는
것도, 바라는 건 잠뿐이었지. 난 침몰하고 있었어. 벗어나야만 했어. 집을 떠난 날 아침……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는데, 그게……
그 이야긴 안 할래. 당신은 좋은 아빠고 래리는 어리니까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어. 당신도 괜찮아질 거라고, 조만간.
난 괜찮지 않았지만 이미 선택을 했으니 내가 해야 하는 걸 했어. 이거.”

그녀는 다시 토트백에 손을 넣어 그가 카페에서 본 책을 꺼냈다.<br>



(393)

현대 가정의 중심은 더 이상 거실이나 응접실, 가장의
서재가 아니다. 이제 주방이 중심이며, 주방의 중심은 식탁이다. 아이들이 대화와 관련된 무언의 규칙, 타인과 어울리는 법 같은 기본적인
예의를 배우는 곳이니까. 아이들은 평생 습관이 될 규칙적인 식사의 중요한 리듬과 의식을 습득하고, 식사 후 정리를 도와주는 간단한 첫 의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식탁은
우편물을 뜯어보고, 주인이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손님으로 온 친구들이 둘러앉아 술을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곳이기도 하다. <br>



(467)

요란한 논쟁, 떠들썩한 분석, 두려운 예언, 축하, 분노
어린 한탄, 그의 삶이 그에게서 흘러나가고 있었다. 삼 주
전 일이 벌써 희미해지거나 안개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그걸 조금이라도 붙잡아야 했다. 안 그러면 살아갈 가치가 거의 없을 테니까. 그가, 그리고 최근에 만난 사람들이 생각하고, 느끼고, 읽고, 보고, 이야기한
것. 사적이거나 공적인 삶. 자신의 실패와 불만과 꿈은 담지
않기로 했다. 마침내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거나 하는 날씨 이야기도,
나이듦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쏜살 같은 시간이나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좋았던 기억과 나빴던 기억에 대해서도, 오직 그가 만난 사람들과 그들이 한 말만 담기로 했다. 적어도 하루에
반시간은 할애할 수 있을 것이다. 시대정신. 해마다 새 노트를
쓰는 것이다. 다 채우든 못 채우든. 일 년에 노트 세 권을
채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이십 년, 지극히 운이
좋으면 삼십 년. 그럼 아흔 권이 된다! 아주 장대하고 단순한
프로젝트였다. <br>



(472-473)

롤런드는 이십대 후반, 독학에 전념할 때 과학에는
미지근한 정도의 관심만 있었다. 공부는 계속하면서도 과학에는 인간미가 결여되어 있다고 믿었다. 화산, 떡갈나무 잎, 성운
같은 것의 숨겨진 작용-다 좋지만, 그를 매료시키지는 못했다. 과학은 인간이 혼자 또는 함께 번영하거나 실패하고, 사랑이나 미움을
느끼고 결정을 내리는 중요한 영역에 자리잡았을 때, 미약하거나 논쟁의 여지가 있는 제안만 내놓았다. 이미 알려진 것, 정신의 평행우주에서 오래전부터 이해되거나 뇌 안의
사건들에 대해 자명한 이치를 그럴듯하게 포장한 물리적 설명을 제공했다. 이를테면 개인적 갈등 같은 일에. 그건 오디세우스가 이십 년 동안 집을 떠났다가 절룩거리며 돌아왔을 때 그와 페넬로페 사이에 부부싸움이 벌어진
후로 문학에서 이천칠백 년 동안 알고 논쟁해온 문제였다. 이것도 이타카에 나오는 내용이다. 어쩌면 그들이 나중에 화해할 때 페넬로페의 동맥에 다른 많은 물질과 함께 옥시토신이 흐르고 있었음을 아는 건
흥미로울 수도 있겠으나, 그것이 우리에게 그들의 사랑에 대해 무엇을 더 말해주겠는가?<br>



(600)

소중한 내 사랑, 언제든 당신이 원할 때 나를 강에
뿌려줘. 이십 년이 걸린다 해도 상관없어. 당신 혼자 힘으로
다리까지 와서, 우리가 서 있었던 곳에 서서 우리에 대해, 그때
우리가 얼마나 행복했는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기만 하면 돼. 난 십대 때 불가리아인과 사랑에 빠졌지. 그는 언젠가 유명한 시인이 되겠다고 했어. 그 꿈을 이뤘는지 궁금하다. 인생은 예측할 수 없으니까. 나는 사십 년 넘게 지난 뒤 같은 장소로
돌아가서 당신과 사랑에 빠졌지. 아니, 오래전까지 당신을
사랑했음을 깨달았지. 차를 몰고 당신과 함께 산길을 달리면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 옆에 앉아서 지도도 봐주고, 펜션의 조율도 안 된 피아노로 내가
신청한 감상적인 곡을 연주해준 당신, 정말 고마워. 다 고마워. 이 여행이 당신에겐 고통이리라는 거 나도 알아. 당신에게 고마워해야
할 또하나의 이유지. 이 아름다운 강을 당신 혼자 찾아오게 해서 정말 미안해. 내 사랑,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잊지 마! 대프니.<br>



(674)

롤런드에게 죽음의 한 가지 심각한 문제점은, 이야기에서
제외된다는 점이었다. 이야기를 이렇게 멀리까지 따라왔으니,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될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에게 필요한 책은 한 해에 한 장씩 백 개의 장으로 구성된 21세기 역사였다. 상황을 보아하니,
그는 그 책의 4분의 1도 읽지 못할 것 같았다. 그저 목차를 훑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재앙적인 지구온난화는 막을
수 있을까? 중국과 미국 간의 전쟁이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하게 될까?
전 세계로 퍼진 인종차별적 민족주의가 더 관대하고 건설적인 무언가로 대체될 수 있을까? 우리는
현재 진행중인 대멸종을 되돌릴 수 있을까? 열린사회가 번영할 수 있는 새롭고 더 공정한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인공지능은 우리를 현명하게 만들어줄까, 아니면
미치거나 무의미한 존재로 만들까? 우리는 이 세기를 핵미사일 교환 없이 관리할 수 있을까? 그가 보기에는, 그저 무사히 21세기의
마지막날, 책의 마지막 장에 도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대한 승리가 될 것 같았다.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617/23/cover150/k28203284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6172361</link></image></item><item><author>bookholic</author><category>책에서</category><title>[클레어 키건] (남극) 중에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5181196/17063119</link><pubDate>Sat, 31 Jan 2026 23: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5181196/17063119</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52034089&TPaperId=1706311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079/65/coveroff/k752034089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br>(164-165)

너는 다른 남자들이 즐기는 것을 보면 늘 좋아했고, 너도
조금 즐겼다. 나 역시 지금 내가 아는 것을 알지 못했다면 재미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예전에 나는 앎에는 지나침이 없다고 생각했다. 대학 시절에는 아무리
배워도 성에 차지 않았다. 나는 침대 옆 장에 책을 잔뜩 쌓아놓고 밤늦도록 읽어치웠고, 책을 팔아서 다음 책을 사는 데 보탰다. 시간이 지나면 배움이 줄어들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지나치게 많이 안다. 나
자신에 대해 반박할 수 없는 이야기를 엿들은 사람이 된 기분이다. 그러므로 천천히 해야 한다. 마음의 준비가 될 때까지 혼자서만 알고 있어야 한다. 너무 가득
담긴 잔을 들고 있어서 쏟을까 봐 못 움직이는 느낌이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079/65/cover150/k75203408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0796507</link></image></item><item><author>bookholic</author><category>책에서</category><title>[최태성] (역사 멘토 최태성의 한국사 – 전근대편) 중에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5181196/17053737</link><pubDate>Wed, 28 Jan 2026 23: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5181196/1705373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42532941&TPaperId=1705373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4325/59/coveroff/k942532941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34)단군왕검은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 고조선을 건국합니다. 고조선의 건국 시기는 조선시대 역사서인 &lt;동국통감&gt;에 기록된 내용을 바탕으로 기원전 2333년으로 잡고 있는데요. 앞서 한반도의 청동기 문화가 기원전 2000년에서 1500년 사이에 시작되었다고 했습니다. 고조선이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건국되었다고 했으니 이러면 시기가 맞지 않지요. 이유를 볼게요. 예전에는
한반도에서 기원전 1000년경 청동기 문화가 시작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고고학적 성과에 의해 그 시기가 점점 앞당겨지고 있어요. 현재는 기원전 2000년까지 올라갔는데, 고고학적 성과에 의해 어쩌면 이 시기가
점점 앞당겨지고 있어요. 현재는 기원전 2000년까지 올라갔는데, 고고학적 성과에 의해 어떠면 이 시기가 더욱 앞당겨질지도 모릅니다. 기록과
고고학적 성과가 맞닿게 되는 시점도 곧 올 거라 생각됩니다.&nbsp;(65-66)백제는 신라나 고구려에 비해 존재감이 상당히 미약합니다. 김부식이 &lt;삼국사기&gt;를 쓸 때 백제에 대한 기사를 많이 빼버린 탓도
있고, 일제 강점기의 식민사관이 백제에 대한 내용들을 왜곡 또는 축소해버린 데에도 원인이 있지요. 하지만 이런 식의 문제적 기록 태도는 흔하게 목격됩니다. 아무리
객관성을 표방하는 역사 서술이라고 해도 서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기 때문인데요. 우리가 역사를 살필 때
해당 역사서가 쓰인 시대의 배경을 반드시 함께 둘러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백제는 결코 만만하고
왜소한 나라가 아니었어요. 한때 고구려 땅은 물론 요서와 일본까지 진출했던 강대국입니다.&nbsp;(72)도읍을 사비로 옮겼지만, 백제의 본거지는 어디까지나
한강 유역이에요. 백제가 명실상부하게 강국의 위치에 오르려면 자신의 근거지임과 동시에 한반도의 중심인
한강 유역을 확보해야 합니다. 성왕은 백제의 근거지인 한강을 되찾기 위해 신라의 진흥왕과 손을 잡아요. 아직까지는 혼자 힘으로 고구려를 상대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이
동맹을 통해 백제는 한강 하류를 되찾지만 진흥왕의 배신으로 한강을 도로 빼앗기게 됩니다. 이에 격분한
성왕이 진흥왕과 일전을 벌였다가 관산성 전투에서 전사하면서 백제는 다시 한 번 위기에 빠집니다.&nbsp;(165-166)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은 지배층에 보내는 위험신호였어요. ‘이대로는 안 되니 개혁하라’는 일종의 주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의종은 즉위 초 개혁 정치를 좀 하는가 싶더니 이내 정치를 멀리하고 사치와 향락에 빠집니다. 정치 기강은 더욱 문란해질 수밖에 없지요. 문벌귀족 역시 이겼다고
기고만장합니다. 자기들 배불리기에만 여념이 없습니다. 문벌귀족들은
또한 군인에게 지급되던 군인전조차 제대로 지급하지 않아요. 중앙군인
2군 6위는 직업군인입니다. 월급을 받아서 먹고사는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월급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으니 군인들이 생활고에 시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문벌귀족들은 자신의 특권을 강화하고 권력을 집중시키느라 무신을 차별합니다. 재상으로의 승진도 제한하고, 심지어 과거시험에 무과를 두지도 않았어요.&nbsp;(244-245)일제는 자신들의 국권 탈취를 정당화하기 위해 식민사관을 내세웁니다. 특히 조선시대 붕당정치를 두고 이른바 당파성론을 만들어냈는데요. 한국인은
정치적으로 서로 싸우기를 좋아하는 민족성을 가져 망국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 그들의 논점이에요. 하지만
이 붕당정치는 일본인은 해보지 못한 선진정치였습니다. 같은 시기의 일본은 꿈도 꾸지 못할 정당정치가
조선 중대에 이뤄지고 있었던 겁니다. 붕당정치는 일종의 정치 투쟁인데요. 주로 상소문을 통해 공개적으로 의견을 냈습니다. 한 세력이 독재하지
못하도록 소수파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든 것인데요. 이는 분명 정치 발전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 측면도 있습니다. 붕당정치는 공존이 바탕이 되는 정치 시스템이었어요. 이랬던 붕당정치가 왜곡으로 치달은 것은 일당전제화가 되면서부터입니다. 특히
조선 후기에 환국정쟁으로 변길되면서 폐해가 불거지는데요. 일제의 식민사학자들이 초점을 맞춘 것은 바로
이 시기의 모습입니다. 이걸 전체로 확대 해석하여 마치 붕당정치 자체가 모순인 것처럼 한국인의 국민성까지
들먹였던 거예요.&nbsp;(346)임진왜란 이후 조선은 일본과 국교를 단절하지만 17세기가
되자 일본과의 관계가 다시 풀리기 시작합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운 에도 막부가 다시 수교할 것을
요청해온 탓입니다. 1607년, 조선 정부에서는 승려 유정
등을 일본에 보내 조선인 포로들을 송환해오게 합니다. 임진왜란 때 금강산 지역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한
사명대사 유정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담판하여 조선인 포로 1500명을 데리고 돌아옵니다.&nbsp;(376)학문에서는 양명학과 실학이 나옵니다. 관념을 앞세우는
성리학과 달리 양명학은 실천을 중시해요. 예컨대 사과를 하나 가져와서 “이 사과의 맛을 평가하시오”리고 했다고 칩시다. 그러면 성리학은 이 사과의 ‘리’는
무엇일까. ‘기’는 무엇일까, 이 사과가 맛있다고 하면 그것은 ‘기’일까, ‘리’일까 하고
자꾸만 관념적으로 해석하려 들어요. 반면에 양명학은 사과를 덥석 깨뭅니다. 먹어봐야 맛이 있는지 없는지 평가할 수 있다는 거죠. 실학은 고증학의
영향을 받아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중시합니다. 이는 사실에 토대를 두어 진리를 탐구하자는 학문으로 일상생활과 밀접한 내용들을 연구합니다.&nbsp;(400)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였어요. 건국이념도 체제 유지
이념도 성리학이었습니다. 조선의 성리학은 16세기 들어 절정의
꽃을 피우다가 양 난 이후 삼정의 문란과 더불어 사회의 지평이 흔들림에 따라 존립마저 위태로워집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자리를 자주적이고 민족적이며 근대 지향적인 실학에 내어주지요. 하지만 조선 후기 실학자에겐 개혁을
이뤄낼 만한 힘이 없었습니다. 결국 비주류로 묻히고 말아요. 또한
조선 후기에는 사회적으로 신분제가 동요하고,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의 맹아가 싹트는 등 변화의 바람이
일었지만 지배층은 성리학만을 내세우며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했습니다.













































&nbsp;<br><br><br><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4325/59/cover150/k94253294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43255946</link></image></item><item><author>bookholic</author><category>책에서</category><title>[이기봉]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중에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5181196/17046057</link><pubDate>Sun, 25 Jan 2026 23:3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5181196/1704605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02030700&TPaperId=1704605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792/68/coveroff/k402030700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br>(189)

“그러니까 내 말의 포인트는 이거야. 인간은 자꾸 동물을 인간화시키려고 해. 그것도 자기와 친한 동물들만. 그러면서도 인간의 동물화는 참지 못하는 게 또 인간이야. 그러니까
개만도 못한 인간, 돼지 같은 인간, 이런 말에 심한 모욕을
느끼잖아. 나는 말이야. 그게 자본주의의 핵심이라고 생각해. 무언가를 두려워하게 만들고, 수치심과 모욕을 느끼게 하는 거. 내 말 이해했어?”<br>



(470)

물론 왕세자에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프랑스가, 나폴레옹이, 도무지 자신을 왕으로 인정해주지 않고 있었다. 스페인에 주둔하고 있던 프랑스 총사령관 뮈라 장군에게(그는 나폴레옹의
매제이기도 하다) 소식을 넣었으나, 그는 새 국왕을 예방하러
오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핀토 마을로 프랑스군을 보내 모든 도로의 출입을 막아버렸다(그게 어디 뮈라 개인의 뜻이었겠는가!) 아란후에스 별궁에 갇혀 있던
카를로스 4세 국왕은 양위 각서는 모두 무효라고 선언했고(아들의
강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서명했다고, 이래서 자식 교육이 중요한 것이라고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았다), 일주일 넘게 핀토 마을에 잘(?) 갇혀 있던 고도이의 호벅지 상처는
차츰차츰 아물고 있었다(고도이는 프랑스군의 호위를 받으며 핀토 마을에서 비야비시오사 마을로 옮겨졌다. 그곳은 고도이의 영지이기도 했다). 왕세자는 분노했으나,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나폴레옹의 뜻이 무엇인지,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추리에 골몰했지만 쉬이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당연히 그럴 수밖에.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는 할 줄 아는 게 부모에 대한 반항이 전부인, 그저 그런 애새끼에
불과했다).<br>



(511)

박유정은 루시를 집 앞마당 양지바른 텃밭에 묻었다. 루시를
묻고 있는 동안 루시의 자손들이 우르르 몰려와 그녀 옆에 서서 구경했다. 어린 강아지들은 까불거리며
서로 쫓고 쫓으면서 담벼락 근처에서 뛰어놀았지만, 이젠 나이가 들어버린 자두와 가을이, 보름이는 가만히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녀는 루시를 다
묻은 후, 그 옆에 작은 동백나무 하나를 심었다. 그 나무가
루시의 묘비가 되어주었다. 누군가의 묘비를 세워주는 일. 박유정은
그것이 사람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 누군가가 사람이든 동물이든, 기억하는
것이 사람의 책이라고. 그녀는 계속 그 일을 내나갔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792/68/cover150/k402030700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7926805</link></image></item><item><author>bookholic</author><category>책에서</category><title>[파리 리뷰] (작가란 무엇인가 1) 중에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5181196/17028887</link><pubDate>Sun, 18 Jan 2026 14: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5181196/1702888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22838884&TPaperId=1702888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9653/16/coveroff/k322838884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br>(153)

폴 오스터 : 항상 손으로 글을 씁니다. 대개 만년필을 쓰지만 종종 연필도 씁니다. 고쳐 쓸 생각이 있을
때는 연필로 쓰지요. 타자기나 컴퓨터에 직접 글을 쓸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자판은 제가 글을 쓰는 것을 늘 방해합니다. 자판 위에
손가락을 얹으면 명징하게 생각할 수 없어요. 그런 점에서 펜은 훨씬 더 원시적인 도구라고 할 수 있겠지요. 말이 몸에서 흘러나오고, 그 말들을 종이에 새겨넣는 과정을 느끼는
것이지요. 늘 글쓰기는 촉각적인 면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육체적인
경험이라고 해야겠지요.<br>



(156-157)

폴 오스터 : 저는 항상 스스로에게 되돌아가는 책에
이끌렸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저를 책의 세계로 이끌어간
책에 이끌렸습니다. 비록 그 책이 저를 세상으로 데려가긴 했지만요. 말하자면
원고 자체가 주인공인 셈이지요. &lt;폭풍의 언덕&gt;은
그런 종류의 소설입니다. &lt;주홍 글씨&gt;는 또 다른
예입니다. 물론 틀은 허구적이지만 그것은 이 이야기들에 근거와 신빙성을 줍니다. 전통적인 형식의 이야기들은 작품을 실제라고, 이 소설에 사용된 틀은
작품을 환상이라고 생각하게끔 만듭니다. 그리고 일단 소설 속에 일어난 사건이 ‘비현실적이라는 점’을 받아들이게 만들면, 그 비현실성이 역설적으로 이야기의 진실성을 높입니다. 말들은 보이지
않는 작가인 신에 의해 돌 위에 새겨지는 것이 아닙니다. 살과 피를 가진 사람들의 노력을 재현하는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매우 매혹적입니다. 독자는 이야기에서 거리를 두고 관찰하기보다는 이야기 전개에 함께 참여하는
사람이 됩니다.<br>



(177-178)

폴 오스터 : 잘 모르겠네요. 이제 저는 오십 대에 접어들었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많은 것이
변하더라고요. 신간이 훌쩍훌쩍 흘러가 버리기 시작하고, 살아온
삶이 남은 삶보다 훨씬 더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요. 몸이 조금씩 망가지기 시작하고, 전에 통증을 느끼지 않던 부위에 통증과 고통을 느끼게 되고, 사랑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죽기 시작했어요. 나이가 오십 쯤되면, 우리
모두는 귀신에 씌인 것처럼 살게 되지요. 귀신이 우리 안에 살면서, 산
사람들에게 하는 것만큼 죽은 사람들에게도 이야기를 하지요. 젊은 사람들은 이런 것을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스무 살 먹은 젊은이라고 해서 자신이 죽을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다른 사람의 죽음은 나이 든 사람들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치지요. 자신에게
이런 상실이 계속해서 쌓이는 것을 직접 겪기 전까지는 그런 일들이 나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인생은 너무나 짧고 너무도 연약하고 너무도 알 수 없지요. 결국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정말로 사랑하는 걸까요? 정말로 몇 사람뿐이겠지요. 몇 명 되지 않을 거예요. 이 사람들이 대부분 죽고 나면 당신의
내적 세계의 지도는 변할 겁니다. 제 친구 조지 오펜은 늙는 것에 대해 제게 “어린아이가 늙어간다는 것은 얼마나 기인한 일인가.”라고 말한 적이
있지요.<br>



(228)

이언 매튜언 : 저는 종종 모든 문장이 그 자체의
과정에 희미한 해설을 담고 있다고 느낍니다. 이 느낌이 항상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당신이 이 느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기껏해야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자기 지시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하며, 언어가 한 사람의 정신으로부터 다른 사람의 정신으로 생각과 느낌을 전달할 때 언어의 감각적이고 정신에 감응하는
능력에 충실하는 것입니다.<br>



(279)

필립 로스 : 일반 독자에게요? 소설은 독자들에게 읽을거리를 제공하지요. 기껏해야 작가는 독자들이
책을 읽는 방식을 바꿀 뿐입니다. 이것이 제가 현실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은 또한 충분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소설을 읽는 것은 깊고 독특한
기쁨이며, 성(性)과
마찬가지로 도덕적, 정치적 정당화를 요구하지 않고 흥미롭고 신비로운 인간 활동입니다.<br>



(348)

레이몬드 카버 : 좋은 소설은 부분적으로는 한 세상의
소식을 다른 세상으로 전달해주는 것입니다. 그 목적 자체로 훌륭해요.
하지만 소설을 통해서 세상을 바꾸거나 어떤 사람의 정치적인 입장을 바꾸거나 혹은 정치체제 자체를 바꾸거나 고래나 레드우드 나무를 구하거나
하는 것은 못합니다. 당신이 이런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말이에요.
그리고 소설은 이런 어떤 것과도 관계가 없다고 생각해요. 소설은 뭔가를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랍니다. 소설은 단지 그것에서 얻는 강렬한 즐거움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뭔가 지속적이고 오래하고 그 자체로 아름다운 어떤 것을 읽는 데서 오는 다른 종류의 즐거움이지요. 아무리 희미할지라도 계속해서 불타오르는 이런 불꽃을 쏘아 올리는 어떤 것이랍니다.<br>



(375)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 글쓰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조심스럽게 행해지는 일은 모두 다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글쓰기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란 저 자신을 만족시킬 수 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실수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저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과도하게 요구하는 편입니다. 완벽할 때까지 글을 써야 하는 것
역시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는 종종 과대망상증에 걸려 있어서 자기들이 세계의 중심이며 또한 사회적
양심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제가 가장
숭앙하는 것은 아주 잘 마무리한 글입니다. 여행을 할 때 조종사가 작가로서의 제 수준보다 나은 수준의
조종사라는 것을 알게 되면 무척 기쁩니다.<br>



(384-385)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 주요한 이유는 명성이
개인적인 삶을 침해아기 때문입니다. 명성은 친구들과 같이 있는 시간,
일할 수 있는 시간을 앗아가지요. 명성은 사람들을 진짜 세계로부터 소외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글을 계속 쓰기를 원하는 유명한 작가는 명성으로부터 끊임없이 자신을 지켜야만 합니다. 진심으로 들리지 않을 테니 정말로 말씀드리고 싶지 않지만, 명성이라거나
위대한 작가가 되는 것과 관련한 많은 일을 겪지 않도록, 제가 죽은 뒤에 제 책이 출판되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제 경우에 명성과 관련한 유일한 이점은 명성을 정치적인 목적으로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명성은 상당히 불편합니다.&nbsp; 문제는 하루 24시간 내내
유명하기 때문에, ‘자, 난 내일까지 유명하지 않을 테야.’라거나 단추를 누르면서 ‘난 지금 여기서 유명해지고 싶지 않아.’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br>



(422)

어니스트 헤밍웨이 : 맞습니다. 만일 작가가 관찰하는 것을 멈춘다면 그는 끝장난 것이지요. 그러나
의식적으로 관찰할 필요는 없으며 관찰한 것을 어떻게 쓸 것인지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마도 처음에는
그렇게 하는 것이 맞을 거예요. 그러나 나중에는 그가 관찰하는 것 모두가 그가 알고 있거나 본 것들로
이루어지는 거대한 자산이 됩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저는
항상 빙산의 원칙에 근거하여 글을 쓰려고 애썼습니다. 빙산은 전체의
8분의 7이 물속에 잠겨 있지요.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을 안 쓰고 빼버린다 해도, 그것은 빙산의 보이지 않는 잠겨 있는 부분이 되어 빙산을 더 강하게
만들 것입니다. 작가가 무엇인가를 알지 못하여 안 쓰는 것이라면 이야기에는 구멍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9653/16/cover150/k32283888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96531690</link></image></item><item><author>bookholic</author><category>책에서</category><title>(녹색평론 2025년 겨울호(192호)) 중에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5181196/17027909</link><pubDate>Sat, 17 Jan 2026 22:1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5181196/17027909</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42033656&TPaperId=1702790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954/65/coveroff/k342033656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10)

농어촌기본소득 시범사업이 기대도 받고 논란도 일으키고 있지만 이 사업으로 인해 드디어 우리나라
농어촌에도 숨통이 트이고 희망이 생겼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우리 농어촌은 역사 이래로, 특히 산업화 이래 소외와 착취와 배제의 대상이었다. 2000년 이후
본격적인 농어업, 농어촌 정책들이 추진되었지만 성과보다 부작용이 훨씬 컸던 제 사실이다. 정부의 국가균형발전 정책에도 불구하고 농어촌지역은 인구감소가 더욱 격화되어 감소를 넘어 인구 멸절의 상황에
접어들고 있다. 농어촌의 소멸은 단순히 인구의 소멸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류의 생명과 지속성의 소멸을 의미한다. 농어촌을 기반으로 하지 않고는 인류의 생존은
지속될 수 없다. &lt;녹색평론&gt; 발행인이자 기본소득론자였던
고 김종철 선생님이 평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그런 일을 하는 농부를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br>



(14)

부동산 세제에서 가장 중요한 세금은 무엇일까? 보유세다.왜냐하면 보유세가 지대(임대) 수입을
일정부분 환수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부동산 가격을 낮추고, 결과적으로 시세차익의 규모를 줄이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양도소득세를 높이는 경우에는 투기목적으로 보유한 부동산을 안 팔고 버틸 수 있고, 또 가격 상승기에는 가격을 떠넘길 수 있지만, 보유세를 강화하면
버티기도, 떠넘기기도 불가능하다. 보유세의 역할이 이렇게
중요한데, 그러나 2023년 현재 한국의 보유세 실효세율은
0.15%로 OECD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인 0.33%의 절반 이하이며,
30개중 중에서 20위에 머물러 있다. 상위권
국가들(이스라엘 1.24%, 그리스 0.94%, 미국 0.83%)과 비교하면 5~8배 현저한 격차를 보인다.<br>



(18)

국민주권정부인 이재명 정부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우리가
어떻게 만든 정부인가. 인류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항쟁, 길게
보면 3년, 짧게는 6개월
동안 더위와 추위, 비바람을 무릅쓰고 광장으로 나온 위대한 주권자 국민들의 항쟁으로 만든 정부다. 전 세계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회복력에 놀라워하고 부러워하고 있다. 그러나
갈 길이 멀다. 한국사회 구성원들에게 삶이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주어야 한다. 미래에 대한 긍정적 전망이 자연스럽게 생겨나야 한다. 그래서 부동산이다. 당장 큰 변화가 없더라도 국민들에게 이렇게 몇 년 지나면 “나도
주거문제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겠구나”하는 전망을 줘야 한다. 그래야
청년과 신혼부부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지방도 살아날 수 있다. 부동산
문제가 해결되면 한국사회의 수많은 개혁과 추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부동산 문제 해결에 나라의 존망이 걸려 있다고.<br>



(20)

초고령사회 문턱을 넘은 대한민국에서 ‘나이 듦’은 더 이상 소수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가 마주한 거대한 질문이
되었다. 그 질문의 한가운데에 “노인은 어디에서,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물음이 자리한다. 시가 8억이
넘는 아파트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한 노인의 비극은, 이 질문이 단순히 주거빈곤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집’은
가졌을지언정, 사회적 관계망이 단절된 채 고립된 삶은 존엄한 노후라 부를 수 없다. 도시와 농촌을 가리지 않고 고령 1인 가구는 급증하고 있으며, 이들의 일상은 외로움과 돌봄 공백의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br>



(48)

앞으로 수년 이내에 ‘기후변화’로 인한 위기(‘세계의 환경을 과열시킴으로써 불러온 위기’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한 것 같다)가 우리에게 닥쳐올 때, 인류는 다만 생존하기 위해서라도 지난 500년 동안 지구를 지배해온-그리고 기후위기를 초래한 장본인인-정치와 경제 시스템을 둘 다 포기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자본주의와,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성정해야 한다는 자본주의의 근본원리, 그리고 이것을 지지하고 보호하는 국가시스템은 물러나고, 규모가 작고 오염을 일으키지 않으며 공격성이 없는 ‘사회들’로 구성된 세계가 들어서야 할 것이다. 이 사회들은 자원을 많이 소비하지
않고, 인간적인 규모의 자치정부로 유지될 수 있다.<br>



(63-64)

이렇게 인류 대다수가 바라는 일을 어찌하여 각국을 대표하는 자들이 모인 국제회의는 의결하지
못하는 것일까. 기대와 결과의 간극은 충격적일 정도로 크다. 지구
주민들은 이미 ‘지구의 이익’이라는 원리를 수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발언할 수 있는 공적인 공간이 있는가? 가끔 실시되는
여론조사 외에 이들이 자신의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장소가 있는가? 아무 데도 없다! 그러니까 다자주의 외교가 기후에 관한 대화를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편파적인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재계나 산업계는 물론이고, 큰 시민사회단체들도 COP 협상가들과 만날 기회가 있지만 수십억 명의 보통사람들은 바로 자기자신의 미래가 달린 문제에 대해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다.<br>



(82)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트럼프의 이번 결정이 즉흥적으로 이뤄졌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APEC 회의가 열리기 전인 8월에 이재명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도 한미 정상회담 주의제는 관세협상이었으나, 어쩌면 그보다 더 중대했던, 관세협상에 종지부를 찍게 만든 것은 한국 핵잠수함 건조와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에 관한 합의였을 가능성이 있다. 관세협상이 타결됨으로써 핵잠수함 승인과 원자력협정 개정 문제가 타결됨으로써 관세협상도 마무리될 수 있었다는
얘기다. 물론 하나의 가설일 뿐이다.<br>



(93)

이스라엘은 2025년 9월 9일 사전 통보도 없이 하마스 지도부를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카타르
수도 도하 소재의 하마스 건물을 탄도미사일로 공격했으나 실패로 끝났다. 카타르의 반발에 놀란 미국은
서둘러 카타르 안보 보장을 약속하였고, 사우디아라비아를 ‘주요
비나토 동맹국’으로 받아들였다. 카타르 공습이라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한 이스라엘은 미국의 강권으로 어쩔 수 없이 10월 8일
하마스와 기자 휴전에 합의했다. 휴전은 3단계로 나뉘어 진행
중이지만, 휴전 이후에도 가자 주민이 무려 300명 이상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었다.<br>



(113-114)

2025년 11월 8일 오전 10시, 산황동 417번에 우리는 모였다.

청량한 산소를 내쉬는 나무들 사이에서

생명의 종을 울리기 위해.

경종이며, 다시 시작하자는 초대의 울림이다.



우리는 나무와 새, 흙과 비와 바람의 이름으로

이 땅의 민주주의를 다시 부른다.

민주주의는 사람만의 것이 아니다.

지상의 모든 존재에게 참여할 권리가 있음을 알린다.

생존 네트워크의 형제자매인 숲 생명들.

우리는 그들의 권리를 대신해

종을 들었다.

오늘의 종소리는

한 그루 나무, 한 마리 새, 한 송이 꽃, 한 조각 차돌의 소리다.



개발이라는 미명, 경제라는 사탕발림으로 생태민주주의의
목에

도끼를 대는 자들이여, 함께 살아가자.

‘벨 데모크라시’는

폭력이 아닌 울림으로,

침묵이 아닌 공명으로,

학살 방조가 아닌 생명 껴안기로,

파괴가 아닌 회복으로 세상을 움직일 것이다.



-&nbsp;&nbsp;&nbsp;&nbsp;&nbsp;&nbsp;
벨 데모크라시 선언문



<br>(154-155)

우리가 집단적으로 인간으로서의 목적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병든 사회가 맞습니다. 인류는 스스로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자기자신을 학대하고 공격하는
사람을 우리는 정신적 장애가 있다고 진단하잖아요. 우뇌가 가능하지 않는 사회는 기계적, 관료적으로 과부하가 걸리게 됩니다. 감정이나 영적 측면에 대한 이해는
극히 피상적인 것이 되고, 예술은 기괴한 모습을 띠게 됩니다. 물론
나는 지난 세기의 미술이나 음악, 시(詩)가 모두 끔찍하다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내가 아는 최고의 예술작품도
그 시기에 나왔으니까요. 그래서 나는 우리의 우뇌가 기능을 아예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보는
거예요. 비유하자면, 우리가 라디오 수신기를 하나 샀다고
해봅시다. 처음에는 신이 나서 여기저기 채널을 돌려보지만 결국 두어 개 방송밖에 안 듣게 될 거예요. 그러나 내가 수신을 하지 않는다고 다른 채널들에서 방송을 안내보내는 건 아니잖아요. 이것솨 똑같아요. 우리는 얼마든지 우뇌가 제공하는 가치를 회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br>



(157-158)

우뇌는 실재하는 것과 직접 접촉하지만, 좌뇌는 사물을
유형으로 나누어 분류하고 재현합니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가짜의 세계를 인식하는 거예요. 시인 워즈워스가 바로 그것을 지적했어요. 자신이 소년이었을 때에는
산들이 말을 걸었고, 폭포, 새, 나무와 대화할 수 있었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살아있는 존재들을 그 표상이 대신하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좌뇌가 지배하는 우리 문화는 우리의 인식 속에서 그런 살아있는 존재들을 모두 제거했고, 그래서 우리는 극히 빈약한 세계에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br>



(177-178)

며칠 전 서울에 가는 길에 지하철을 탔다. 퇴근시간이어서
사람들로 가득했다. 모두 스마트폰만 바라보고 있었다. 서로의
눈을 마주 보며 이야기하는 일이 점점 낯설어지고 있다. 문자만 오갈 뿐, 얼굴도 목소리도 사라지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미디어가 깊숙이
들어와버린 것이다. 전화기가 발명되었을 때만 해도 얼굴은 보지 못해도 목소리로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덕분에 관계의 폭이 오히려 넓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문자의
시대다. 과연 문자메시지가 눈빛과 온기를 대신 할 수 있을까. 관계는
약해지고 외로움은 더 깊어지고 있다. 협동은 제도나 계약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서로의 얼굴을 보며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
시간을 나누며 관심과 책임을 공유할 때 비로소 ‘우리’가
생긴다. 관계가 무너지면 협동도 설 자리가 없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복잡한 정책과 이론이 아니다. 미디어 대신 사람에게 시선을 돌릴 때, 새로운 협동의 씨앗이 싹튼다.<br>



(194)

우리는 아이들이 그들의 삶의 테두리를 넘을 수 있게 돕고자 했다. 농촌마을과 생명, 자연의 신비로움을 되새겨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자
했다. 가게가 없어서 간식을 사 먹기 어렵고, 문화적 혜택도
전무하며, 부모와 떨어져서 낯선 할머니 집에서 생활하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아이들이 이곳에서 지내는
것을 행복해하고 도시로 돌아가기 싫어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참새 소리에 아침을 맞고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잠드는 시골마을, 공동체의 진가를 오히려 도시 아이들이 농촌 주민들에게 알려주는 듯하다. 아이들은 안다. 온몸으로 느낀다.
인간의 삶에서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행복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렇게 아이들은 자유롭고 자존감 높고 행복한 어른으로 성장한다.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954/65/cover150/k34203365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9546554</link></image></item><item><author>bookholic</author><category>책에서</category><title>[허난설헌, 나태주 편역] (그대 만나려고 물 너머로 연밥을 던졌다가) 중에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5181196/17024505</link><pubDate>Fri, 16 Jan 2026 00: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5181196/17024505</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564572&TPaperId=1702450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6452/97/coveroff/8925564572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br>(8)

난설헌의 본명은 초희(楚姬)이고 자는 경번(景樊)이며
난설헌(蘭雪軒)은 당호입니다. 초희는 ‘미녀와 재원’을
뜻함이고 경번은 중국의 여성시인 번희를 사모해서 지은 이름입니다. 난설헌의 난은 ‘여성의 미덕을 찬미한다’는 뜻이며 설은 ‘지혜롭고 문학적 재능을 지닌 여성’ 또는 ‘고결하면서도 뛰어난 문재를 지닌 여성’이라는 뜻으로 지은 당호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소망을 마음껏 담은 이름들이라 하겠습니다.<br>



(27)

가을날 깨끗한 긴 호수는

푸른 옥이 흐르는 듯 흘러

연꽃 수북한 곳에

작은 배를 매두었지요.



<br>그대 만나려고

물 너머로 연밥을 던졌다가

멀리서 남에게 들켜

반나절이 부끄러웠답니다.



<br>(32)

사는 집이 장간리 마을에 있어

장간리 길을 오가며 살았었지요.

꽃가지 꺾어 님에게 묻기도 했었죠.

내가 더 예쁜가요, 꽃이 더 예쁜가요?



<br>(40-41)

1

이웃집 벗님네와 내기 그네 뛰었어요.

띠를 매고 수건 쓰고 신선놀음 같았지요.

바람 차고 오색 그넷줄 하늘로 높이 오르자

쟁그랑 노리개 소리 버들에 먼지가 일었지요.



<br>2

그네뛰기 마치고는 꽃신을 신었지요.

숨이 가빠 말도 못하고 층계에 섰어요.

매미 날개 배적삼에 땀이 촉촉이 스며

떨어진 비녀 주워달라는 말도 못 하고 말았지요.



<br>(47)

자줏빛 퉁소 소리 붉은 구름 흩어지니

주렴 밖 찬 서릿발 우지짖는 앵무새

깊은 밤 비단 휘장 비추는 그윽한 촛불

때때로 성긴 별이 은하수 건너는 것 바라보아요.



<br>또르륵 물시계 소리 서풍에 묻어오고

이슬 맺힌 오동나무 저녁 벌레 우는데

명주 수건으로 훔치는 깊은 밤의 눈물

내일이면 점점이 붉은 자국으로 남겠지요.



<br>(48-49)

고요해요, 뜨락은.
살구 꽃잎 위에 봄비 내리고

나는 꾀꼬리, 백목련 핀 언덕에서 울어요.

수실 늘어진 비단 휘장에 꽃샘추위 스며들고

박산 향로에서 한 줄기 연기가 올라요.



<br>어여쁜 사람 잠에서 깨어 화장을 고치니

향그런 비단옷 허리띠에 새겨진 원앙 무믜.

겹으로 드리워진 발을 거두고 비취 휘장 치고서

시름없이 은쟁을 잡고 한가락 봉황곡을 타지요.



<br>금 굴레 잡고 안장 위에 계시던 내 님은 어디 가셨나?

다정한 앵무새만 둘이서 창가에 속삭여요.

풀섶에서 노닐던 나비는 뜨락을 날아 사라지고

꽃그네 줄 엮어 난간 밖까지 날아올라요.



<br>어느 집 연못가에서 피리소리 들려오는가.

금 술잔 위로 요요한 달빛만 노니는데

시름 많은 아낙은 밤새 홀로 잠 못 이루어

날 밝으면 비단 수건에 눈물 자국만 가득하여요.



<br>(55)

난간에 기대어 멀리 계신 님 그리워하니

말 타고 창 꼬나잡고 청해 물가를 달리시겠지.

휘몰아치는 모래와 눈보라에 갖옷은 해어졌을 테고

향그런 안방 그리워하며 눈물로 수건 적시겠지요.



<br>(66)

공령 여울 어구에 내린 비 이내 개이고

무협의 어스름 안개 자욱해요.

한스러워라, 님의 마음도 저 물과 같이

아침에 나가더라도 저녁엔 돌아왔으면!



<br>(76)

창가에 놓아둔 난초 화분

난초꽃 벙글어 향기 그윽했는데

건듯 가을바람 불어와

서리 맞은 듯 그만 시들었어요.



<br>어여쁜 모습 비록 시들었지만

여전히 코끝에 맴도는 난초의 향기.

마치도 시든 난초가 나인 듯 싶어

흐르는 눈물 옷소매로 닦아요.



<br>(80-81)

이웃집 살림은 날로 좋아져

높은 다락에 풍악 소리 일어나는데

또 다른 이웃은 입을 옷도 없고요

쑥대밭 어우러진 집 배곯고 있다네요.



<br>그런데 어찌 짐작이나 했을까요.

하루아침에 높은 다락 기울어지고

오히려 가난한 집을 부러워해요.

하늘의 운명은 어떨 수 없는 일인가 봐요.



<br>(85)

지난해 귀여운 딸을 잃었고

올해는 또 사랑하는 아들이 떠났네.

슬프고도 슬프다. 광릉의 땅이여

두 무덤이 나란히 마주 보고 있구나.



<br>사시나무 가지에는 오슬오슬 바람이 일고

숲속에선 도깨비를 반짝이는데

지전 태우며 너의 넋을 부르며

너의 무덤 앞에 술잔을 붓는다.



<br>안다, 안다. 어미가
너희들 넋이나마

밤마다 만나 정답게 논다는 것.

비록 뱃속에 아기가 있다 하지만

어찌 제대로 자라기나 바랄 것이냐.



<br>하염없이 슬픈 노래 부르며

피눈물 슬픈 울음 혼자 삼키네.



<br>(98-99)

1

얼굴이며 맵시, 남들한테 빠지는 게 아니에요.

바느질에 길쌈 솜씨는 또 어떠하구요.

다만 어려서부터 가난한 집안에 자라난 탓에

중매쟁이들 모두 날 몰라라 해서 그래요.



<br>2

춥고 굶주려도 얼굴에 내색을 않고

하루 종일 창가에서 베만 짭니다.

부모님만은 가엾어라 여기시지만

이웃의 남들이야 어찌 이런 나 알겠나요?



<br>3

밤 깊도록 쉬지 않고 베를 짜노라니

베틀 소리만 삐걱삐걱 처량하게 울려요.

베틀에는 베가 한 필 짜여 있지만

이 베가 마침내 누구의 옷감 될까요!



<br>4

손에 가위 들고 옷감 자르면

밤도 차가워 열 손가락이 곱아와요.

남들 위해서 시집갈 옷 짓는다지만

해마다 나는 홀로 잠을 잔답니다.



<br>(106-107)

봄바람 화창하여 온갖 꽃 피어나고

철 따라 만물이 번성하니 감회가 새로워요.

깊은 방에 묻혀서 그리움 끊으려 해도

님 생각 가슴에 머물면 심장이 터질 듯해요.



<br>밤 이슥토록 잠을 이룰 수 없음이요!

새벽닭 우는 소리 꼬끼오 들리네요.

빈방에 비단 휘장이 둘러지고

옥돌계단에 푸른 이끼만 돋았어요.



<br>깜빡이던 등불도 꺼져 벽에 기대어 있으려니

비단 이불 어설퍼 추위가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요.

베틀 소리 내며 회문금을 짜 보지만

무늬도 시원치 않고 마음만 어지러워요.



<br>인생 운명을 타고남이여, 사람마다 치아가 많아

남들은 즐기며 살건만 이 내 몸은 쓸쓸하기만 하답니다.



<br>(132)

머나먼 갑산으로 귀양 가는 나그네여

함경도 길 가시는 걸음 바쁘시리다.

쫓겨나는 신하야 가태부지만

상감이야 어찌 초나라 희왕이시겠는지요!



<br>가을 햇살 비낀 언덕엔 강물이 찰랑찰랑

변방의 구름은 저녁놀에 얼굴 붉혀요.

서릿바람 맞으며 기러기떼 날아가는데

걸음마저 더디어 차마 길 가지 못하시리.



<br>(155)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를 넘나들고

파란 난새가 채색 난새와 어울렸구나.

부용꽃 스물일곱 송이 붉게 떨어지니

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하여라.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6452/97/cover150/892556457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64529725</link></image></item><item><author>bookholic</author><category>책에서</category><title>[켄 폴릿] (영원의 끝 2) 중에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5181196/17013187</link><pubDate>Sun, 11 Jan 2026 01: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5181196/1701318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41431&TPaperId=1701318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8657/86/coveroff/8954641431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98)한창 냉소적인 딤카에게는 뭔가 경멸받아 마땅한 일로 보였다.
자본주의가 맹위를 떨치는 나라에서는 인민의 뜻에 따라 귀족적인 수상을 해고하고 사회민주주의자를 앉히는 마당에, 세계를 선도하는 공산주의국가에서는 같은 일이 비밀리에 소규모 지배 엘리트층의 음모로 진행되고 며칠이 지나서야
무력하고 다루기 쉬운 인민들에게 발표되는 것이다.&nbsp;(158)시베리아에 다녀온 뒤 그녀는 변했다. 이전에는 공산주의를
좋은 의도의 실험이지만 실패했으니 폐기해야 할 대상으로 보았다. 이제는 사악한 지도자들의 잔혹한 압제
행위로 보았다. 바실리를 떠올릴 때마다 그녀의 가슴은 그에게 그런 짓을 저지른 사람들을 향한 증오로
가득찼다. 심지어 쌍둥이 오빠에게도 말하기 어려웠다. 딤카는
아직도 공산주의의 폐지되기보다는 개선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녀는 딤카를 사랑했지만 그는
현실에 눈감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어디든 잔인한 억압이 있는 곳에는-이를 테면 미국의 최남동부, 영국의 북아일랜드, 그리고 동독-그녀의 가족처럼 소름끼치는 진실을 외면하는 착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타냐는 그 가운데 하나가 되지 않을 터였다. 끝까지 싸울 작정이었다.&nbsp;(420)“정치에서는 거짓말이 많잖아요.” 조지가 말했다.“사회의 다른 많은 분야에서도 그렇지. 하지만 닉슨처럼 뻔뻔스럽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 그는
사기꾼에다 간교한 자야. 지금까지는 안 걸리고 빠져나왔어. 사람들은
그렇게들 하지. 하지만 대통령이 되면 달라. 기자들은 그들이
베트남에 대해 속았다는 걸 알아. 그리고 정부의 말을 점점 더 면밀하게 살피고 있어. 딕은 덜미를 잡힐 거고 그래서 무너질 거야. 뭐가 더 있는 줄 알아? 그는 왜 그렇게 됐는지 절대 이해 못할걸. 언론이 내내 자신을 망치려
들었다고 말할 거다.”&nbsp;(472)딤카는 변했다. 체코슬로바키아에 대한 침공이 그를
변하게 했다. 그 순간까지 그는 공산주의를 개혁할 수 있다는 믿음에 고집스럽게 매달렸다. 하지만 1968년, 소수의
인사가 공산주의 정부의 성격을 바꾸는 일에 착수하면 상황을 그대로 유지하는 데 이해관계가 있는 자들에게 그 노력을 분쇄당하는 것을 목격했다. 브레즈네프와 안드로포프 같은 사람들은 권력과 신분과 특권을 즐겼다. 그들이
왜 그런 모든 위험을 감수하겠는가? 딤카는 이제 여동생과 의견을 같이 했다. 공산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당의 모든 것을 아우르는 권한이 늘 변화를 억누른다는 점이었다. 소련의 체제는 그의 할아버지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푸틸로프 기계공장에서 감독으로 일하던 육십 년 전 차르 정권과
다를 바 없이 무시무시한 보수주의에 속수무책으로 얼어붙어 있었다.&nbsp;(763)의제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헝가리 문제’였다. 딤카는 그 안건을 포함시킨 사람이 에리히 호네커라는 것을 알았다. 헝가리의 자유화는 개혁을 진행하지 않는 정권의 억압적인 태도에 주의를 환기시키면서 다른 모든 바르샤바조약기구
국가를 위협했는데, 그중 동독이 최악의 의기를 맞고 있었다. 헝가리에서
휴가를 보내던 수백 명의 동독인이 텐트를 벗어나 숲속으로 가서 낡은 울타리에 난 구멍을 통해 오스트리아로 넘어가 자유를 찾았다. 벌러촌 호수에서 국경으로 향하는 도로는 그들이 후회 없이 버린 싸구려 트라반트, 바르트부르크 자동차로 어지러웠다. 대부분은 여권이 없었지만 문제되지
않았다. 그들은 서독으로 이송되어 그곳에서 자동으로 시민권을 받고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도움을 받았다. 낡은 차는 곧 더 믿음직스럽고 편안한 폭스바겐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nbsp;































&nbsp;<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8657/86/cover150/895464143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86578650</link></image></item><item><author>bookholic</author><category>책에서</category><title>[켄 폴릿] (영원의 끝 1) 중에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5181196/17006797</link><pubDate>Wed, 07 Jan 2026 22: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5181196/1700679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41423&TPaperId=1700679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8657/84/coveroff/8954641423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320)파스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케네디 대통령은 미국이
공격당할 경우 핵무기를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흐루쇼프 서기는 소련이 공격당하면 핵무기를 사용할 겁니다. 프랑스의 드골이나, 누가 지도자인지 모르지만 영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그들 가운데
누구라도 달리 말한다면 몇 시간 안에 물러나게 될 겁니다.” 그는 시가 끝이 빨갛게 타오르도록 빨아들이더니
연기를 내뿜었다. “내가 미쳤다면 그들 모두 미친 거죠.”&nbsp;(530)







“자유를 향한 우리의 발걸음에 가장 큰 장애물은
백인 시민들이 뽑은 위원장도 아니고, KKK도 아니오. 정의보다는
질서에 더 매달리는 백인 중도층이야. 그들은 늘 보비 케네디처럼 말하지. ‘당신이 추구하는 목표에는 동의하지만 당신의 방식을 묵과할 수는 없소.’ 그는
온정주의적인 태도로 타인의 자유를 위한 일정을 자기가 정할 수 있다고 믿소.”<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8657/84/cover150/895464142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86578491</link></image></item><item><author>bookholic</author><category>책에서</category><title>[전경린] (자기만의 집) 중에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5181196/16998238</link><pubDate>Sun, 04 Jan 2026 00:3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5181196/16998238</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82037474&TPaperId=1699823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853/45/coveroff/k982037474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br>(14)

캥거루는 새끼를 배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닌다. 엄마의
배주머니 속에서 땅 위를 통통 튀어 오르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 어미가 무척 힘들 것 같지만, 새끼를 품 안에 넣고 뛰는 편이 탄성에너지를 받아 오히려 힘이 덜 든다고 한다. 캥거루 어미는 애기 집 청소를 할 때 앞주머니를 벌리고 얼굴을 밀어 넣어 혀로 핥는다. 캥거루가 뛸 수 있는 높이에 대해서는, 삼 미터부터 십삼 미터까지
의견이 분분했다.<br>



(46)

사람은 누구나, 아무리 못난 인간이라 해도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다. 새삼 놀라운 사실이다. 우리는 자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자기중심적인 꿈을 통해 그 사실을 학습한다.<br>



(95)

일상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존재적 고뇌를 가족과 나누는 것은 무리이다. 일상과 존재의 경계에서 가족 간의 절망이 생겨나는 것이다. 성장기
내내 가족과 소원하게 살아온 엄마는, 아마도 천성적으로 그랬듯이, 이모와
외할머니 앞에서 입을 굳게 다물어버렸다. 가족 공동체의 내부는 다정과 간섭이 넘치지만 사실, 한 치만 건너서 들으면 또 얼마나 이기적이고 흉한 공모인가. <br>



(103)

꿈은 상실되고 자신을 돈과 바꾸어 살아야 하니, 삶
자체가 하루하루 이렇게 소모적이기만 한 건가 싶죠. 참 다들 고독하고 가련해요.<br>



(115)

낮과 밤은 서로 잘려진 단면이 얼마나 아플까? 해
뜰 때나 달이 뜰 무렵이면 무한히 긴 절단면이 아파하는 경련을 나는 느낀다. 삶을 위해 나누어진, 누구의 아픔도 아닌 이 세상의 본질적인 아픔이 내 마음에도 사무쳐 해와 달 사이에서 눈이 아프다.<br>



(115-116)

봄이란 하나의 계절이라기보다 겨울과 여름 사이의 격렬한 신경전 같다. 비와 바람과 햇빛과 눈이 서로의 매력과 무기를 다 동원해 밀고 당기고 엎치락뒤치락거렸다. 한겨울같이 기온이 떨어졌다가 삼월 마지막 날엔 깃털 같은 바람이 목덜미를 간질이더니 사월 첫날에는 눈이 내렸고
다음 날엔 황사 때문에 모든 것이 바랜 사진처럼 누렇게 보였다. 그런 날은 의식조차 현실감각을 잃고
부유하는 느낌이었다. 그 사이로 개나리와 목련, 벚꽃이 귀신들처럼
피어났다. 꽃은 한 송이 한 송이마다 자기의 세계를 열며 피어난다고 한다. 그래서 꽃 하나가 필 때마다 세계가 하나씩 생긴다고. 사람도 그렇게
자기를 꽃피워야 한다고.<br>



(144)

실제로 사람이 만나는 건, 드라마와 달라. 말할 수 있는 게 아냐. 질서 있는 인과관계도 없고. 착각과 도취, 혹은 무지한 고집과 자기합리화와 이상한 자포자기 같은
것이 운명을 만들기도 하지.<br>



(155)

그래서 엄마의 사랑엔 죄의식과 슬픔과 희생과 희망이 뒤섞여 있지.<br>



(160)

“내 그림 때문에 너도, 아빠도 힘들었다는 거 알아. 하지만, 누구에게나 그림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해. 네 아빠에게도, 스무 살 시절에 한 친구가 그런 말을 했지.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네 아빤 즉각적으로 화를 냈어. 5.18도, 군사정권도, 국가보안법도, 다국적기업
노동자의 현실도, 이 살벌한 현실도 피할 수 없으니 즐기자고? 나도
아빠와 한편이었어. 인간인 이상, 피할 수도 없고 즐길 수도
없는 게 있어. 그래서 싸우는 거지. 난 모두에게 저마다의
잠과 저마다의 싸움이 있다고 생각해. 그 잠 속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을 즐기면, 영영 꿈에서 깨어날 수 없어.”<br>



(180)

사랑이 다시 온다 해도 난 뒷걸음질할 것만 같다. 사랑은
나를 격정적으로 만들고, 균형 잡힌 관계들을 훼손시키고, 내
일상의 페이스를 무너뜨린다. 내 사랑에 대해 내가 보는 눈과 다른 사람들이 보는 눈은 다를 것이다. 무엇보다 사랑은 반드시 끝이 난다. 대체 사람들이 사랑에 빠지는
것일까?<br>



(192-193)

“사랑은, 어쩌면
달나라에 가는 것과 비슷할 거야. 지구의 중력을 이탈해 별들이 보석처럼 빛나는 무한의 우주를 지나 꿈꾸어
온 달에 착륙하는 여행 말이야. 그 여행이 엄청난 것은 우주선도 없고 연료도 없이 오직 단둘이 끌어안고
스스로 발사체가 되어 날아간다는 점이지. 그리고 달나라에 갈 수는 있지만 그곳에서 살 수는 없는 것처럼, 사랑 속에 안주해서 살 수도 없단다. 실제로 달은 채석장처럼 끔찍하게
척박한 곳이고 인간의 발을 둥둥 뜨게 만드는 곳이지. 단지 지구와 달 사이, 원심분리기같이 굉장한 속도로 회전하는 허공만이 사랑의 현장인 거야. 사랑이
끝나고 지상으로 돌아올 때는 우주선을 버리고 각자의 낙하산을 펴야 하지. 이 지상에 따로따로 떨어져
착륙해야 하는 것, 사랑은 그런 거야.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그때 함께 있든, 혹은 헤어져 있든, 무사한지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으로 결국 끝이 나. 삶은 사랑의
열정이 아니라 인간의 도리로 사는 거거든.”<br>



(202-203)

“엄마와 아빤 너무 일찍 만났어. 세상을 모를 때 말이야. 그 시대의 대담한 청춘들이 그랬듯 엄마와
아빤 세속적인 모든 것을 경멸했어. 권위적인 것, 관습적이고
통념적인 것, 집단적인 것, 가족주의, 유교적인 위계질서와 의례들을 비롯한 모든 고착된 질서들, 유명 브랜드
제품들, 공교육, 돈…… 우린
그런 것들을 우습게만 여겼어. 그땐 정말 둘이 의기투합이 됐었단다. 우린
평생 가난하고 자유롭게 살자고 맹세했으니까. 가난하게, 간결하게, 자유롭게. 그게 네 아빠의 모토였지.”<br>



(216-217)

“부모가 내게 무슨 짓을 했건, 우린 그것을 원망하기보다 극복해야 한다.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부모의 운명을 가엾게 여기고 자신의 자아를 강화하는 것이다. 자기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을 긍정하며
스스로를 키워야 한다. 알고 보면, 모든 부모는 자기 인생의
많은 부분을 후회한다.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그들의 최선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게 아니라 그들의 불가능성과 실패와 희망과 좌절이 교차하는 시행착오 속에서 잉태되고 성장해 부모의 운명을&nbsp; 온몸에 덕지덕지 묻힌 채로 분가하는 것이다.”<br>



(262)

“호은아, 사랑이든
삶이든, 난 그게 내 몫의 강물을 헤엄쳐 건너는 일 같아. 그
물은 내 존재로부터 솟아 나와 큰 강을 이루어, 누구에게나 혼자 건너야 하는 강이 있는 거야. 언젠가 아저씨와 내가 헤엄쳐 건너야 할 물을 다 건너고 햇살 따스한 기슭에 닿아 옷을 말리면 좋겠다. 그게 결혼이라도 좋고 아니라도 좋아. 넌 사랑의 결실이 뭐라고 생각하니?”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흔히 말하듯 아이, 하나의 가정 같은 거 아닐까……

“사랑의 결실은 변태야. 변화를 겪고 달라지는 것. 계속 사랑하는 건 계속 달라져 가는 거야.”<br>



(266)

그러니, 내가 태어난 이유는 모른다 해도 그 의미는
앞으로 내가 만들어가야 할 과제인 것이다.<br>



(273)

“사랑은 바라지 않아도 늘 있어. 너를 바라보는 이 순간에, 햇빛 속을 걸을 때나 비 오는 날 우산을
펼칠 때, 한밤중에 창문 밖에 걸린 반달을 볼 때도,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할 때도, 차 한 잔을 마시거나, 홀로 밥을
끓일 때에도, 아침 일곱 시와 오후 두 시와 밤 열한 시에, 사랑은
늘 거기 있어. 많은 마음이 차오를 때까지 깊은 숨을 쉬어봐. 그러면
알게 될 거야.”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853/45/cover150/k98203747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8534512</link></image></item><item><author>bookholic</author><category>책에서</category><title>[비르지니 데팡트] (친애하는 개자식에게) 중에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5181196/16993178</link><pubDate>Thu, 01 Jan 2026 13: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5181196/16993178</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42037723&TPaperId=1699317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000/34/coveroff/k742037723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br>(71-72)&nbsp; 

나이의 역사에는 어떤 정의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떤
이는 오십 세에 쓰러집니다. 우리가 동경하던 성격적 특징은 왜곡되고,
오만함은 희한으로 변하며, 유머에는 요실금 환자의 지린내가 나고, 매력은 변절되어 버립니다. 청소년기의 변화와 비교할 수 있겠으나
더 비참하죠. 목소리가 변하지 않고 그대로이거나 사유의 융통성이 그대로인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오랜 친구들을 보석처럼 간직하세요. 여전히 함께 있을 때 편한 사람을요. 점점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더
지혜로워지거나 더 흥미로워지거나 더 관대해진 사람들이죠. 끔찍한 난파 사고의 생존자라도 되는 양 곁에
그들을 잡아두세요.<br>



(73)

빅토르 위고가 &lt;파리의 노트르담&gt;을 출간했을 때 당시 상류사회가 전적으로 그 작품을 추앙해주었다면, 그거야말로
믿을 수 없는 일이에요. 위고가 충분히 버텨온 일이라면 당신에게도 분명 괜찮을 겁니다. 그는 사람들의 혹평을 받았지만 한탄하는 데 시간을 보내지 않았어요. 조용히
살고 싶었다면 사륜마차 속에서 지방 촌구석의 후작 부인에게 무도회가 얼마나 좋았는지 알려주는 편지 따위나 썼겠죠.
사람들이 당신 면전에 침 뱉는 걸 원치 않는다면서 지금 당신은 개판 오 분 전인 작가 행세를 하고 있네요.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고 남자답게 대처하는 게 좋지 않겠어요?<br>



(77)

오늘날은 모두들 좋은 소리만 듣고 싶어하죠. 모두들
착실한 학생이 되기를 원합니다. 교실 구석 난방기 옆에 앉아, 헛소리를
지껄이며 주변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얼간이는 오늘날엔 인기가 없죠. 프레베르의 시에 나오는 열등생은 새로운
옷을 입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사람들은 기업에서 쓰는 언어밖에 모르니까요. 진지함, 책임감, 고위직의
관점, 최고 수치의 기록, 우리가 견뎌야 할 유일한 도전은
흥미롭지 않습니다. 난장판은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 손에서 시작해야 즐거운 일이 되는 겁니다.<br>



(89)

그런데 지금에 이르러 내게 무척이나 새로운 문제가 제기된 셈입니다. 열정은 더는 원할 때 진열장에서 꺼낼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나를 끌어당기는 게 없어요. 빛나는 것도 없고 나를 뒤흔드는 것도 없습니다. 나는 백만 번이라도 홀로 하는 사랑으로 고통받거나 죽는 편을 택할 거예요. 버림받거나
배신당하거나 창피를 당하거나 학대받는 편을 택할 거예요. 권태에 빠지는 것보다 그 어떤 상처라도 받는
편을 택할 겁니다.<br>



(131-132)

중독. 단어의 어원을 인터넷으로 검색해봤습니다. “중세 시대에 ‘addictus(‘바친, 헌신한’이라는 의미를 지닌 라틴어)’라는
단어는 맹세를 끝까지 지키지 못하고 약속을 어긴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 주인에게 속한 존재로 간주되었다.“ 주인에게 속한 존재는 여성 혹은 노예, 타인의 선한 의지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시민의 단계까지 지위가 강등되었다는 뜻으로, 자신의 이익은 고려하지 않고 타인의 이익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러므로 중독된다는 것은 언제나 자신의 전적인 권력을 포기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자신의 우선권을 망가뜨리기, 약속을
지키거나 빚을 갚을 수 없는 상태로 스스로를 몰아가기, 아기는 요람에서부터 부모에게 빚을 물려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아기가 자란 먼 훗날 DNA의 메시지를 이해하는
시기가 오면, 아버지가 자장가를 불러주는 사람이었는지, 아니면
어머니를 때리고 가정을 파괴하는 사람이었는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을 겁니다. 당신이
물려받은 이야기가 관건이죠. 나는 어떤 약속을 저버렸기에 중독자가 될 만했는가? 그 질문은 내가 어떤 배신을 물려받았는가에 가깝습니다. 부르주아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내가 살아온 삶을 초월합니다. 부자들은 자신들의 소박한 가족사에 열렬한 애착을
가지고 있죠. 우리가 중독에 빠져드는 과정은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맥락과 늘 맞닿아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빚이 있다는 걸 인정하는 방식인 동시에 빚을 제거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내가 사용하는 언어가 나의 호흡을 방해해서, 엄청난 양의
마약을 스스로 주입함으로써 그 언어를 뱉어내는 겁니다. 혹은 마약을 통해 인식을 끊어버림으로써 나를
둘러싼 어른들의 수치심을 쫓아버리려는 건지도요. 상황을 잠시 떠나고,
간신히 빠져나오는 겁니다.<br>



(221)

팬데믹이 끝나도 이성의 이대로 되돌아지 못하리라는 걸 모두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계 신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휴대전화 신, 인터넷 신, 핵폭탄 신, 비행기
신…… 이 모든 신은 우리를 무가치하다고 느끼게 합니다. 그들은
자신을 위해 죽는 것에만 가치를 둡니다. 우리는 기계를 통해 진보한 존재가 아닙니다. 기계에 잡아먹힌 존재입니다. 우리가 만든 피조물이 권능에 경악하고
말았습니다. 기계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성경 속 하나님은
믿음을 입증하기 위해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의 몸을 내려치라고 요구했죠. 절대 권력을 숭배함을 입증할
때 우리가 아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그것입니다. 권능을 위해 죽는 것,
바로 그 점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조잡한 바이러스로 죽는 걸 참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자동차 사고는 멋진 죽음이 되는 겁니다!<br>



(254-255)

사회적 명성은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아주 커다란
격차에서 발생한 산물이에요. 자기 마을이나 계층에서 이름을 얻는 그런 문제가 더는 아닙니다. 19세기 초 세공 장인의 명성이 어떤 것이었는지 잘 모르지만, 아마도
당시에는 가치가 있었을 겁니다. 어떤 영역에서 노력을 제공하고 그 분야에서 재능을 가지고 있었겠죠. 최선을 다해 윤리적 방식으로 작업하면, 주변 사람에게서 존경과 애정이
보상으로 따라왔을 테고요. 사실 그에 대해 잘 모릅니다. 내가
아는 범위는 20세기입니다. 미디어로 전파되는 명성이죠. 어떤 계층이 선택한 개인에게, 그를 바라보는 이들보다 훨씬 더 중요한
권리가 부여되었습니다. 대형 스크린 앞 관객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연기가 어떠하든 변화시킬 수 없고, 절대적으로 수동적인 위치에 머물러요. 영화는 전개될 것이라고 예고한
대로 전개됩니다. 텔레비전 방송이 방영될 때도 마찬가지요. 브라운관
앞에서 무슨 짓을 하든지 상관 없어요. 그 과정에서 어떤 충격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이 도입되면서 상황이 바뀌었어요. 사람들이 개입하게
된 거죠. 개입에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 모욕임을 다들 바로 이해했습니다.<br>



(285-286)

헛소리입니다. 감정은 오존층에 뚫린 구멍이고 기후변화이며
변함없는 화산 용암이자 바이러스의 폭격입니다. 공장이나 극장이 아니라 통제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이유로 감정을 기쁘게 맞이할 수 없습니다. 감정은 당신을 복종시키기도
합니다. 늘 미소를 따다가도, 겁을 집어먹을 수도 있어요. 감정은 당신을 뒤죽박죽으로 휘저어 놓습니다. 감정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다듬을 수 있는 수공예품이나 개인의 창작물이 아닙니다. 감정은 도자기 그릇이 아니니까요. 우리 세대에 급격히 퍼진 감정은 절망입니다. 집단적으로 퍼져 있어요. 지구 중심에 요란하게 상륙했습니다. 우리 모두를 봉기시킨 것은 바로
그 감정입니다. 각자 사소한 메시지, 자신만의 공식을 가지고
돌진할 수 있지만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당신이 세계의 지도자이든 대양의 중심을 떠다니는 표류물이든
상관없이 감정은 동일합니다. 우리는 감정에 구애받습니다. 그것은
다른 무엇도 대적할 수 없는 화음이며, 무슨 일이 발생하든 울려 퍼질 것입니다.<br>



(286)

당신의 절망을 파괴하는 유일한 기술은 희망입니다. 무척
간단한 문제죠. 희망은 절망을 지우는 단 하나의 해독제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압수당한 것 또한 희망입니다. 디스토피아가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지평선이 되어버린
겁니다. 미래가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되리라 믿는 건 머저리라는 방증입니다. 그것은 승리한 전체주의입니다. 획일화된 신념이 우리 상상의 세계를
빼앗은 셈이죠. 대안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희망은 멍청이들에게나
유익한 겁니다.<br>



(398-399)

클레망틴과 오 일간 휴가를 다녀왔어요. 부끄러운
아버지 증후군에 시달리는 것 같아요. 아이와 함께 있을 때 불편하고 지루하거든요. 봉쇄 기간에 아이와 마음을 털어놓고 지내겠다는 계획은 흐지부지되었어요. 함께
있는 시간이 싫은 건 아니지만 같이 나눌 이야기가 없더군요. 아이는 주말 내내 휴대전화에 붙어 지냈습니다. 그 나이대의 전형적인 모습이죠. 누군가 뭘 좋아한다고 하자마자, 최신 트랜드를 알기 위해 휴대전화를 손데 쥐어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쉬지 않고 셀카를 찍어대는데, 그때가 아이의 생기 있는 얼굴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에요. 한번은 세관원에게 가는 길에 아이가 한 장 찍어달라고 부탁했어요. 결국
사진을 잘 찍지 못했습니다. 예전에 제가 찍은 꼴불견 사진에 얽힌 우스꽝스러운 추억을 말해주려고 했는데, 정면 포즈를 피하라고 말하는 순간 아이가 움츠러들더군요. 늙다리
바보가 된 기분이었고, 아이와는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자 괜히 아이가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제가 아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겁니다. 노력하고
싶은 기분조차 들지 않아서 제가 얼마나 자책하고 있는지 상상도 못 할 겁니다.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000/34/cover150/k74203772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0003411</link></image></item><item><author>bookholic</author><category>책에서</category><title>[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중에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5181196/16986255</link><pubDate>Tue, 30 Dec 2025 23: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5181196/16986255</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62037144&TPaperId=1698625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069/68/coveroff/k562037144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br>(44-45)“결혼을 잘하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네 방법도 나쁘지
않아. 어떻게든 돈 많은 남편을 구하겠다든지, 시집을 꼭
가야겠다고 결심했다면 나라도 그런 방법을 택했을 거야. 하지만 언지의 감정은 그런 게 아니야. 언니는 계획적으로 행동하고 있는 게 아니거든. 언니는 지금 자기가
그 남자를 얼마나 좋아하고 있는 건지, 그런 감정이 바람직한 건지에 대해서도 확신이 없단 말이야. 언니가 그 남자를 안 지 고작 보름밖에 안 됐어. 메리턴에서 그분과
네 번 춤을 추었고, 그 사람 집에서 아침에 한 번 본 적이 있고, 그
후로 네 번인가 같이 식사를 했지. 그 정도로 언니가 그 남자를 파악할 수는 없는 거잖아.”&nbsp;(106)사실 제겐 배려심이 부족합니다. 세상을 편하게 살아가기엔
너무 고집이 세죠. 저는 다른 사람들의 어리석은 행동이나 부족한 점을 빨리 잊지 못합니다. 저에게 무례한 사람들의 행동 역시 마찬가지죠. 그런 감정을 없애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쉽사리 사라지지 않더군요. 저는 남을 잘 용서하지 못하는 성격인 것 같습니다. 한번 잘못 본 사람은 끝까지 좋아할 수가 없으니까요.”&nbsp;(238)아까 다른 일에 대해서도 언급했지?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나도 알아. 그렇지만 그 사람을 비난하거나 그 사람에게 실망했다는 말로 내 마음을
아프게 하지는 말아 줘. 그쪽에서 고의적으로 우리에게 상처를 준 거라고 생각하진 말자. 그건 너무 성급한 판단이야. 혈기왕성한 젊은 남자가 항상 신중하고
사려 깊은 행동만 할 거라고 기대할 수는 없는 거잖아. 자신의 허영심 때문에 스스로 속는 일도 많을
거야. 여자들이 남자들의 관심을 너무 부풀려서 받아들이는 게 문제야.”<br>
<br>
(271)숙모, 정말 너무 기뻐요! 숙모는 제게 새로운 활기와 생기를 선사해 주셨어요. 절망과 우울은
이제 그만 안녕을 고해야죠. 바위와 산 같은 자연에 비하면 남자 따위는 하잘것없는 존재예요. 정말 멋진 여행이 될 거예요. 우리는 자기가 무얼 봤는지 제대로
설명도 못하는 여행자는 되지 말아요. 우리가 갔던 곳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훤히 꿰고 있어야 해요. 호수와 산과 강이 머릿속에서 마구 뒤엉키게 해서는 안 돼요. 어느
곳의 경치를 묘사할 때도 서로 엇갈린 주장을 하면서 말씨름을 해서는 절대 안 되죠. 여행에서 돌아온
후 자기감정에 빠져서 지루한 여행담으로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는 그런 여행자가 되면 절대 안 돼요.”&nbsp;(599-600)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전 그런 확답을 드릴 수 없습니다. 저는 그런 협박에 겁먹어서 부당한 일에 응하지는 않습니다. 영부인께서는
다아시 씨가 따님과 결혼하기를 바라시지만, 제가 원하시는 확답을 드린다고 해서 두 사람의 결혼 가능성이
커지는 건 아니겠죠. 그분이 제게 마음이 있으시다면, 제가
그분의 청혼을 거절했다고 해서 따님에게 청혼을 할까요? 외람된 말씀이지만 영부인꼐서 제게 이런 부탁을
하시는 것부터 상식에 어긋난 일이고 더욱이 그런 부탁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도 전혀 설득력이 없군요. 제가
이런 논리에 넘어갈 거라고 생각하셨다면 저를 대단히 잘못 보신 겁니다. 조카분께서 영부인이 이 문제에
관여할 권리는 분명 없으시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니 부디 더 이상 이 문제로 절 괴롭히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nbsp;



























&nbsp;<br><br><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069/68/cover150/k56203714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0696856</link></image></item><item><author>bookholic</author><category>책에서</category><title>[마크 딩먼] (뇌의 흑역사) 중에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5181196/16975003</link><pubDate>Fri, 26 Dec 2025 15: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5181196/16975003</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32939705&TPaperId=1697500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605/66/coveroff/k132939705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br>(36)알렉스가 겪은 건 카그라스증후군으로, 1923년에
이 병증을 처음 기록한 프랑스의 정신과 의사 조셉 카그라스의 이름을 따 명명한 이상증이다. 환자는 배우자, 자녀, 부모, 형제 등
가까운 사람들이 저도 모르는 새 똑같이 생긴 사기꾼으로 바꿔치기 되었다고 믿는 독특한 일탈 행동을 보인다. 환자는
대개 외관이나 행동의 사소한 차이점, 혹은 환자 자신도 잘 설명하지 못하는 특정할 수 없는 특징을 들어
사기꾼과 ‘진짜’ 사이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nbsp;(40)우리는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며 또 일관적일 것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신경 구조가 제대로 기능해야 인간은 비로소 이해 가능한 세계관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리고 모든 기계 부품과 마찬가지로, 이 신경 구성요소도 고장 날
수 있다. 단 한 번의 사건, 즉 두부 외상이나 뇌졸중, 종양이 발생하는 것만으로도 이번 장에서 본 환자들처럼 될 수 있다. 더욱이, 의식적 인식 능력이 손상되면 단지 나의 가족이나 친구를 알아보는 인지적 기능만 망가지는 게 아니다. 다음 장에서는 인간의 정신이 어떻게 자시 신체의 형태와 구조, 그리고
그 신체의 주인이 속한 인간이라는 종에 관한 지각을 왜곡하는지 알아볼 것이다. &nbsp;(89)강박 사고와 강박 행동은 인간이 얼마나 쉽게 뇌에 관한 통제력을 잃을 수 있는지 다시금 일깨워
준다. 환자들은 자신의 생각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으며 짜증날 정도로 달갑지 않은 행동부터 트라우마가
될 정도로 고통스러운 행동까지 심각한 수준의 행동들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고 호소한다. 이러한
생각과 행동은 환자 스스로 원하는 것이 아니지만 자발적으로 발생한다. 마치 악덕한 선동가가 뇌 안에
들어앉아 우리 행동을 조종하는 것과 비슷하다. 신경과학 연구가 강박장애에 관한 사실들을 밝혀내 환자들의
생각과 삶의 주도권을 되찾을 수 있게 도와줄 날이 빠른 시일 내에 왔으면 한다.&nbsp;(129)성도착증의 신경과학적 논의도 쉽지 않다. 소아성애와
같은 문제 있는 성적 행동을 신경생물학적 이상의 탓으로 돌린다면 충동을 실행으로 옮긴 사람에게 범죄에 대한 면죄부를 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만일 소아성애자가 자신의 행동을 뇌종양의 탓으로 돌릴 수 있다면, 만일
소아성애자가 자신의 행동을 뇌종양의 탓으로 돌릴 수 있다면, 이들은 행위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걸까? 이 질문에는 더 깊은 철학적 논의가 필요하지만, 소아성애자의
뇌가 소아성애적 행동을 일으킬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음이 밝혀진다고 해서 범죄를 저지른 인해 죄가 없는 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비정상적 뇌 활동으로 인해 소아성애적 관심이 생긴다 하더라도, 그것을
실천으로 옮기기까지 무수한 결정을 내려야 하며 (오늘날 개인의 책임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바탕으로)그 모든 결정에는 도덕적 책임이 뒤따른다.&nbsp;(148)투쟁-도피 반응은 공포를 느끼거나 극도의 긴장을
느낄 때 심박수가 올라가고 혈압이 상승하며, 숨이 가빠지고 동공의 확장되는 등 우리가 이미 잘 아는
신체적 변화를 일으킨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즉시 행동할
수 있도록 산소가 풍부한 혈액을 근육으로 더 많이 보내고 주변 사물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동공을 확장하여 도망가든 싸우든 조치를 취하게끔 우리
몸을 대비시키기 위해서다. 동시에 현재 상황에서 에너지 쏟을 필요가 없는 과정을 억제하는 역할도 한다. 방광수 수축(싸우는 중에 오줌을 지린다고 무척 안타깝지 않겠나)이나 소화 같은 것 말이다.&nbsp;(168)19세기의 의사들이 환자를 속이거나 사기를 치려고
플라세보를 사용한 건 아니었다. 실제로 효과가 있었다. 진짜
약이 충분하지 않을 때 플라세보마저 없다면 의사가 환자에게 줄 수 있는 건 선의의 조언뿐이었다. 의사들은
아무것도 주지 않는 것보다 증상을 완화해 주리라 여겨지는 유형의 물질을 지급하는 편이 환자의 상태를 호전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알았다. 일부 추정하는 바에 따르면, 당시 내과의들은 다른 모든 약을 합할
것보다 플라세보를 더 자주 사용했는데, 이 관습은 환자를 속이는 행위라는 인식으로 인한 윤리적 불편감이
퍼지게 된 20세기 중반까지 이어졌다.&nbsp;(169)이와는 별개로, 비처의 발견은 임상 의학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이 발견은 플라세보 효과가 상상 이상으로 강력하다는 점은 물론, 약의 효능이 상당 부분 플라세보 효과에 기인한다는 점을 암시했다. 다시
말해 가짜 약을 먹고도 나아진다고 느끼는 이유가 나아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인 것처럼 진짜 약을 먹고 느끼는 효능의 일부 역시 약을 먹으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나머지 효능은 약의 실제 성분 덕분이다)&nbsp;(191)명칭실어증은 대뇌피질의 여러 구역에 생긴 손상에 의해 발생한다. 특히 환자가 겪는 장애에 따라 손상 구역이 조금씩 달라진다. 동사를
잘 떠올리지 못하는 환자들은 대뇌피질의 전면부 근처에 손상을 입었을 가능성이 높고 명사를 떠올리는 데 문제가 있는 환자들은 측두엽 근처에 손상을
입는 경향을 보인다. 더 세세하게 구분할 수도 있는데, 측두엽에서
어떤 영역에 손상이 생기면 사물의 이름을 떠올리지 못하고, 이와는 또 다른 영역에 손상이 발생하면 생물의
이름을 떠올리지 못하는 장애가 유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nbsp;(297)당신의 뇌가 정상적으로 기능한다면, 축하한다.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기를 바란다. 뇌와 나머지 신체 기관이 영원히
멀쩡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인간의 뇌는 경이로운 유기적 기계이지만,
모든 기계가 그러하듯 언젠가는 고장 나기 마련이다. 그러니 할 수 있을 때 뇌의 모든 기능을
활용하라.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고,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고, 즐거움을 탐닉하고(절제하는 연습도 하고), 깊이 생각하고, 몸을 움직이자.
뇌가 허락하는 모든 일을 해 보자. 그냥 하지 말고 즐겁게 하자. 우리의 뇌를, 그리고 뇌가 우리에게 빌려주는 능력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자.



















































&nbsp;<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3605/66/cover150/k13293970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6056641</link></image></item><item><author>bookholic</author><category>책에서</category><title>[채만식] (태평천하) 중에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5181196/16969337</link><pubDate>Wed, 24 Dec 2025 00: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5181196/1696933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15716&TPaperId=1696933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53/97/coveroff/8932015716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br>(82)

또 그런 빚을 물어주는 싸움은 아니라도, 윤직원
영감은 가끔 딸 서울아씨와도 싸움을 해야 합니다. 작은손자며느리와도 싸움을 해야 하고, 방학에 돌아오는 작은손자 종학과도 싸움을 해야합니다.

며느리 고씨하고는 말할 것도 없고, 사랑방에 있는
대복이나 삼남이와도 싸움을 해야 합니다.

맨 웃어른 되는 윤직원 영감이 그렇게 싸움을 줄창지듯 하든가 하면, 일변 경손이는 태식이와 싸움을 합니다.

서울아씨는 올케 고씨와 싸움을 하고, 친정 조카며느리들과
싸움을 하고, 경손이와 싸움을 하고, 태식이와 싸움을 하고, 친정아버지와 싸움을 합니다.

고씨는 시아버지와 싸움을 하고, 며느리들과 싸움을
하고, 시누이와 싸움을 하고, 다니러 오는 아들과 싸움을
하고 동대문 밖과 관철동의 시앗집엘 가끔 쫓아가서는 들부수고 싸움을 합니다.

그래서 싸움, 싸움, 싸움, 사뭇 이 여러 싸움을 근저당(根抵當)해놓고 씁니다. 그리고
그런 숱한 여러 싸움 가운데 오늘은 시아버지 윤직원 영감과 며느릴 고씨와의 싸움이 방금 벌어질 켯속입니다.<br>



(241)

만일 오늘이 우리한테 새것을 가져다주지 않고 어제와 꼬옥 같은 것만 되풀이를 한다면 참으로
우리는 숨이 막히고 모두 불행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어제와 같으면서도 (어제 치면서도
더 자라난) 한 다른 오늘 치를 우리한테 가져다주고, 그러하기
때문에 그리하는 동안 인간은 늙어 백발로, 백발은 마침내 무덤으로……
이렇게 하염없어도 인류는 하루하루 더 재미있어간답니다.<br>



(260-261)

사람은 누구 없이 뱀을 섬뻑 만나면 대개는 깜짝 놀라 몸이 오싹해지고, 반사적으로 적의와 경계의 자세를 취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오래오랜 조상, 즉 사전(史前)인류(人類)가 파충류의 전성기대에 그들의 위협 밑에서 수백만 년을, 항상 공포와
투쟁과 경계를 하고 살아오는 동안, 그것이 어언간 한 개의 본능이 되어졌고, 그러한 조상의 피가 시방도 우리 인류의 몸에 흐르고 있는 때문이라고 말하는 학자가 있습니다.<br>



(263)

지주가 소작인에게 토지를 소작으로 주는 것은 큰 선심이요, 따라서
그들을 구제하는 적선이라는 것이 윤직원 영감의 지론이던 것입니다. 윤직원 영감의 신경으로는 결코 무리가
아닙니다. 논이 나의 소유라는 결정적 주장도 크지만, 소작
경쟁이 언제고 심하여, 논 한 자리를 두고서 김서방 최서방 이서방 채서방 이렇게 여럿이, 제각기 서로 얻어 부치려고 청을 대다가는 필경 그중의 한 사람에게로 권리가 떨어지고 마는데, 김서방이나 혹은 이서방이나 또는 채서방이나에게로 줄 수 있는 논을 최서방 너를 준 것은 지주 된 내 뜻이니까. 더욱이나 내가 네게 적선을 한 것이 아니냐?...... 이것이 윤직원
영감이 소작권에 의한 자선사업의 방법론입니다.<br>



(274-275)

“화적패가 있너냐아? 부랑당 같은 수령(守令)들이
있더냐?...... 재산이 있대야 도적놈의 것이요. 목숨은
파리 목숨 같던 말세넌 다 지나고오…… 자 부아라, 거리거리
순사요, 골골마다 공명헌 정사(政事), 오죽이나 좋은 세상이여…… 남은 수십만 명 동병(動兵)을 하여서, 우리
조선놈 보호히여주니, 오죽이나 고마운 세상이여? 으응?...... 제것 지니고 앉어서 편안허게 살 태평세상, 이걸 태평천하라구
허는 것이여, 태평천하!...... 그런디 이런 태평천하에
태어난 부잣놈의 자식이, 더군다나 왜지가 떵떵거리구 편안허게 살 것이지, 어찌서 지가 세상 망쳐놀 부랑당패에 참섭을 헌담 말이여, 으응?”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53/97/cover150/893201571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39704</link></image></item><item><author>bookholic</author><category>책에서</category><title>[김시준, 김현우, 박재용] &amp;lt;경계&amp;gt; 중에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5181196/16960933</link><pubDate>Fri, 19 Dec 2025 23: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5181196/16960933</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72535601&TPaperId=1696093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9156/32/coveroff/k472535601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br>(22-23)

대엽을 무기로 고사리는 폐름기말의 대멸종을 버티며 중생대를 자신의 시대로 맞을 준비를 한다. 더불어 고사리류는 엄청난 진화방산을 해낸다. 커다란 잎으로 광합성의
생산량을 비약적으로 키운 덕분이다. 마치 영국이 산업혁명을 통한 대량생산으로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한 것처럼 고사리는 고생대 말과 중생대 초의 식물계의 패권을 차지한다.<br>



(30)

그런데 은행나무는 생물분류상 은행문 은행목 은행과 은행속 은행종일뿐 아니라 놀랍게도 은행문에
속하는 유일한 생명이다. 그의 가까운 형제들은 2억 7천만 년 전 페름기에 처음 발견되었는데 중생대를 거쳐 번성하다가 신생대가 되자 모두 멸종해버리고 은행나무 하나만
남게 된 것이다. 신생대 이후 은행나무의 형제들은 화석으로도, 살아
있는 개체로도 보이지 않는다.<br>



(43)

중생대 전반을 거쳐 확연한 지상 생태계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한 겉씨식물의 경우 가장 살기 좋은
곳을 자신의 터전으로 삼았을 것이고 그곳에서 안정된 삶을 살아가는데 굳이 꽃을 피울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과의 경쟁에서 밀려 점점 높은 산 위로 올라간 식물이다 건조한 지역으로 이동한 식물들은 살기 위한 시간과 진화의 싸움을 벌여야 했다. 이들은 좀 더 효율적으로 번식을 해야 했고 하나의 꽃가루도 하찮게 여기지 못하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짧은 우기에, 혹은 짧은 여름에 재빠르게 번식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애써 수정한 씨앗이 이런 건조하고 추운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특별한 장치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 투쟁의 결과가 꽃이고 배젖이다.<br>



(59-60)

딱정벌레부터 한 번 살펴보자. 곤충 중에서도 가장
많은 종수를 차지하는 딱정벌레목의 곤충은 현재 알려진 수만 35만여 종이다. 이는 곤충 전체로 봤을 때는 40%, 동물계 전체를 봤을 때 25% 가량을 차지하는 수치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종까지 염두에
두면 약 500~800만여 종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방아벌레, 잎벌레, 바구미, 풍뎅이, 곰보벌레, 물방개, 물진드기, 물맴이, 딱정벌레 등 다양한 곤충들이 딱정벌레목에 속한다. 두 번째로 종류가 많은 나비목에는 약 18만 종, 세 번째로 다양한 종수를 자랑하는 벌목에는 약 15만 종이 기록되어
있어 이들 셋이 종을 합치면 전체 곤충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게 된다.<br>



(96)

이로써 피부는 기체 교환이라는 자신에게 주어진 가장 큰 임무를 내려놓게 되었다. 단순한 세포막이었던 시절부터 가져왔던 임무가 사라지자 피부는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역할에 더욱
매진하게 된다. 단단한 각질이 생겨 피부를 감싸기 시작했으며, 털이나
깃털이 나면서 외부의 온도변화로부터 몸 내부를 보호하는 역할도 적극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어떤 피부에는
땀샘이 만들어지면서 보다 능동적으로 외부의 온도변화에 대응했다.<br>



(130)

바다에 살기 시작한 이후 고래의 조상은 점점 덩치가 커진다.
가장 큰 이유는 체온 때문이다. 바닷물은 공기보다 체온을 빨리 뺏어간다. 체온을 보존하는 것이 바다에서 살기로 결정하는 순간 가장 중요한 일이 된다.
특히 고래는 어떠한 조건에서도 항상 일정한 체온을 유지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포유동물, 즉
정온동물이었다. 몸 전체에 두꺼운 피하지방을 둘러 체온은 유지하는 것은 불가결한 선택이었고, 이로 인해 덩치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커진 덩치는 부피 대비 표면적을
줄여 체온이 손실을 방지해주었다. 추운 극지방에 사는 생물들이 덩치가 커진 것도 같은 이유다. 바닷속에서 사는 시간이 많은 펭귄이나 물개, 바다사자 같은 생물들도
육지의 친척들에 비해 덩치가 크고 피하지방층이 두렵다.<br>



(136)

처음에는 물속까지 들어갈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점점
건조해지는 환경에서 육식동물이건 초식동물이건 먹이를 구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한 선택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초식동물은
덩치가 더 크고 무리를 잘 지어 다니는 동물들이 얼마 남지 않은 식물들을 휩쓸고 가면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었을 것이고, 육식동물은 먹이로 삼을 초식동물이 줄어드니 경쟁이 더 치열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먹이를 찾아 헤매던 동물들이 바다에 다다랐고, 썰물 때 물이 빠진 갯벌이나 모래사장에서 물때를
못 맞춰 발이 묶인 물고기를 먹거나 조개를 깨먹었을 것이 거의 분명하다. 초식 동물은 바닷가에서 소금기가
많은 곳에서 자라는 염생식물을 처음 먹어 봤을지도 모른다. 육식동물이건 초식동물이건 그렇게 조금씩 물속의
먹이를 먹으며 물속 먹이 사냥에 익숙해졌을 것이다.<br>



(168)

날개를 만들기까지의 고된 과정을 생각하면 이들이 스스로 원해서 날개를 가졌을 가능성은 없다. 드넓은 대지 위에 자신의 몸 하나 편안하게 누일 곳이 없었던 생명, 가는
잠이 들다가도 풀숲을 뒤척이는 작은 기척에 화들짝 놀라 큰 눈을 굴리며 사방을 살피던 생명, 먹이를
구하러 다니다가 천적의 냄새에 쪼르르 도망가던 생명. 이런 생명들이 나무를 타고 나무 위에서 생활하기
시작한 것이 새의 비상을 위한 첫걸음이었다.<br>



(234)

뱀은 몸이 가늘고 길다. 이런 몸의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허파도 대단히 좁고 길게 진화해 왔다. 많은 종류의 뱀에서 왼쪽 폐는 퇴화되어버리기까지 했다. 땅속으로 들어가니 사지도 소용이 없었다. 뱀의 앞발과 뒷발은 조금씩
퇴화되어 줄어들다가 마침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네 다리가 사라지고 난 뒤 대신 긴 척추를 얻었다. 수백 개에서 많게는 천 개가 넘는 척추가 뱀들이 유연하게 움직이며, 기어
다니고, 땅속을 헤집고 다닐 수 있는 힘이다.<br>



(237-238)

뱀이건 도마뱀이건 땅속으로 들어가야 했던 이유는 아마도 지상의 생태계에서 자신이 누리던 역할과
지위를 빼앗겼기 때문일 것이다. 벌레를 잡아먹자니 포유류의 선조들이 훨씬 더 빠르게 사냥을 해서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다른 작은 동물을 잡아먹고 살지니 지배파충류에서 진화한 공룔 중 덩치가 비교적 작은
이들에게 밀려난다. 변온동물이라 밤에는 움직이기가 힘들고 낮에는 다른 동물과의 경쟁이 버겁다. 그래서 갈 수 밖에 없었던 곳이 바로 흙 속이었으리라 추측해 본다. 포식자를
피해 땅속으로 숨어, 흙 속을 헤매는 다른 벌레를 먹으며 살아가게 되었을 것이다.<br>



(252)

어디 비단 벌거숭이두더쥐뿐일까, 무족영원도, 뱀도, 두더지를 비롯한 포유류도 흙 속으로, 땅속으로 들어간 모든 생명은 하나도 빠짐없이 지독한 과정을 겼었다. 팔다리를
없애고, 눈이 멀고, 모습을 완전히 바꾸는 긴 세월에 걸친
진화를 버텨내고 이겨냈다. 그 결과로 땅속에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냈다.
기껏해야 선충이나 지렁이 정도가 최상위 포식자였던 지하세계에 새로운 생태계를 구성한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한계와 자연의 경계를 넘어간 생물들에 의해 지구는 좀 더 복잡하고 다양한 생태계를 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br>



(257)

익숙한 환경과 삶에서 내몰린 모든 생명이 그러하듯 인간의 선조 역시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미 나무를 타기에 적합하게 진화한 앞발로는 초원에서 사족보행을 할 수 없었다. 우리의 숲 친척인 고릴라와 침팬지 등은 손등은 땅에 대며 걷는 이른바 ‘손등걷기’를 한다. 손등걷기는 숲에서 잠시 걷는 것에는 괜찮을지 모르나 초원에서
천적들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을 때 걷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나무를 타기에 적합한 손으로 오랜 기간
초원을 걷기가 힘든 일이었다.<br>



(259)

이들은 강가로도 갔다. 강바닥에 묻혀 있는 조개를
파내어 먹었다. 손에 쥔 돌을 내리쳐 조개의 껍데기를 부수고 알멩이를 먹었다. 바닷가에서도 마찬가지로 조개를 먹었다. 무리를 짓기 시작한 후에는
다행히 웬만한 포식자들은 가까이 접근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렇게 인류의 선조들은 하루 종일 힘들게
먹이를 찾아 헤매야만 했다. 숲 속에선 손만 뻗으면 있던 먹을거리를 구하기 위해 헤매야만 했다. 숲 속에선 손만 뻗으면 있던 먹을거리를 구하기 위해 이젠 발품을 팔아 강가로 가야했고, 숲으로 잠깐 들어갔다가도 잽싸게 나무 열매를 따고는 숲 속 원숭이 떼를 피해 도망쳐야 했고, 사자 무리를 만나도 도망을 쳐야 했다. 숲에서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험한 날들이었다. 밤이 되어도 안식은 없었다. 숲에서는 밤마다
나무 위에 모여 포식자를 피할 수 있었지만 허허벌판에서는 밤이면 밤마다 야행성 포식자를 피해 선잠을 자야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될 때까지 먹이를 구해 사방을 돌아다니고, 포식자들을 피해 다니는 삶이 계속되었다.<br>



(267)

이런 인간의 탈출은 기존의 생태계를 배제하는 결과를 낳았다.
인간이 개척한 곳마다 기존의 생태계는 배제된다. 농경지를 일구면 그 곳에 살던 식물들이
사라지고, 식물과 함께 살던 동물과 균도 함께 사라진다. 도시를
세우면 숲이 사라지고 숲과 함께하던 동물들이 사라진다. 도로를 놓으면 도로 양쪽으로 자유롭게 오가던
동물들은 고립된다. 항구를 만들면 그 주변의 생태계가 파괴된다. 인간의
영역이 확장될수록 기존에 존재하던 지구 생태계는 줄어든다. 인간의 탈출은 이제 인간의 공습이 되었고, 한정된 지구에서 생태계는 지구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 이후 최초로 영역이 축소되기 시작한 것이다.<br>



(273)

생태계 내에 강력한 경쟁자가 생기면 경쟁에 진 생물종은 생태계의 경계까지 쫓기고 되고 그 곳에서
새로운 생태계로 자리를 옮기든가, 아니면 종 자체가 사라지는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러나 강력한 경쟁자인 인간의 등장은 생태계의 모든 종들을 경계로 몰아붙이는 것도 모자라, 모든 생태계를 파괴해 나가며 경계를 넘어갈 수 있는 기회까지 차단해 버리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생물들은 지금 엄청난 속도로 멸종해 나가고 있다. 지난
역사 속의 5대 멸종 중 가장 거대한 규모의 멸종이었던 폐름기 대멸종보다도 더 빠르게 생명종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번성하는 종은 인간이 선택한 몇몇 가죽과 식물, 그리고
인간의 도시에서 살도록 진화한 특정한 생물들뿐이다.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9156/32/cover150/k47253560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91563271</link></image></item><item><author>bookholic</author><category>책에서</category><title>[천선란] &amp;lt;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amp;gt; 중에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5181196/16944295</link><pubDate>Sat, 13 Dec 2025 21:4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5181196/16944295</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42032998&TPaperId=1694429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425/80/coveroff/k242032998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br>(49)

옥주, 너는 찾았니? 나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해 줄 줄 알았던, 바깥에서 얻어 온 상처를
감싸줄 줄 알았던, 언제든 돌아갈 둥지인 줄 알았던 하나뿐인 부모가 우리의 삶을 종말로 만들려 했던
이유.<br>



(98)

밑동이 휘어진 나무는 그대로 휘어진 채 자란다. 기둥에
파인 흉터는 회복되지 않고 덮어버리는 방식으로 흉터 위에 벽을 세운다. 그건 새살이 돋아 상처가 아물어
사라지는 회복과는 다르다. 그래서 상처 입은 나무를 자르면 나이테에 흉터 자국이 혹처럼 남아 있다. 어느 시절에 받은 상처인지 보인다. 상처를 평생 품고 산다. 아물지 않은 채로, 붕어빵 가게 뒤에 습해진 여름 날씨에 썩어 죽어버린
보호수에 있었다. 300년이 넘게 산 나무였는데, 밑동이
휘어져 반쯤 기울어진 채 자란 이상한 나무였다. 소문에 의하면 도시 개발 때 나무를 뽑기 위해 밑동을
자르던 중 인부들이 연달아 죽는 일이 일어나자 저주받은 나무라며 자르기를 멈췄는데 그 상태로 다시 자랐단다.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저주라는 단어와 잘 어울리는 나무였다. 그렇게 보호수는 이 마을의 터주신처럼, 액막이처럼 자리 잡고 있다가 어느 날 돌연 하루아침에 썩어버렸다. 묵호의
필리핀 출국 이틀 전의 일이었다.<br>



(130)

꼭 날아야만 새인가? 우리를 정확히 분류하려면 공룡까지
거슬러 올라 가야 해. 고작 인간 따위 따위 뿌리의 깊이가 달라. 우리에겐
날개와 부리가 있어. 알을 낳지. 그런 여러 특징이 있어. 하지만 날개가 꼭 날기 위해 있다고는 할 수 없지. 모든 인간이
자기 신체를 전부 활용하며 사는가? 사용하지 못하면, 인간이
아닌가? ‘비행’은 날개의 활용일 뿐, 새의 정의가 될 수는 없지. 마찬가지로 ‘보행’도 ‘언어’도, 다리와 입의 활용일 뿐 인간 본질이 될 수 없지.<br>



(145)

엄마의 상태를 모르는 사람들은 너무도 당연하게, 결혼했다고
하면 배우자와 아이가 당연히 존재한다는 법칙이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들이 정상 범주에서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을 거라는 확고한 믿음 안에서, 그러니까 그것이 낮과 밤이 존재하는 것처럼 당연하다는 듯이 물어봐. 아빠는 그런 경우가 더 어렵고 힘들었단다.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설명을 하는 게 맞는 건지, 굳이 꼭 모든 걸 말해줘야 하는지, 어차피 한 번 이야기 섞고 말 사람이라면, 상대방이 나를 위로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거나, 나 역시 위로에 고마워하는 시늉을 하지 않는 편이 더 좋지 않을지… 그래서 자주 거짓말을 했어. 아빠도, 지난 설에는 여행을 간 척, 보편적으로 떠올리는 평범한 가정과 다를
게 없는 하루인 척, 부동산과 주식이 삶의 가장 큰 고민인 척, 뱃살을
빼야 하는데 술 줄이는 게 제일 버거운 일인 척…<br>



(146)

이런, 아빠가 너무 나약한 소리를 하는구나. 아빠가 이럴 때마다 이해해 줄 수 있니? 사실 나약한 소리처럼 들렸겠지만, 이건 정말로 약해서 하는 소리가 아니야. 더 단단해지기 위해 마음에
낀 거품을 빼는 거란다. 거품을 뺄 줄 알아야 해. 그래야
밀도가 높아져. 단단해지기 위해서는 거품을 빼는 과정은 필수야. 그러니
아빠가 하는 나약한 말들을 깊이 새기지 말고, 여러 번 곱씹지 마. 온도가
높아지면 지워지던 펜 기억나? 그 펜으로 쓴 문장이라 생각해. 제비의
따뜻한 온기가 닿으면 거품이 다 터져버려 사라지는 문장들이야.<br>



(149-150)

아빠가 꼭 해주고 싶은 말은, 행동하지 않았다면
마음을 먹은 것만으로는 죄가 될 수 없다는 거다. 마음마저 순결한 사람을 적어도 아빠는 살아오면서 본
적이 없다. 단지 순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과 노력하지 않는 사람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열매 같은 거란다. 씨앗은 같지만 어떤 과육은 싱그럽고 어떤 과육은
썩어 있지. 또 어떤 건 달기도 하고 어떤 것은 쓰기도 하지. 떫기도
하고, 혀를 아리게 만들기도 해. 같은 씨앗이 모두 같은
맛을 내지 않는다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러니 중요한 건 씨앗보다 과육이야. 마음보다 보이는 모습이 어떤지가 더 중요한 법이야. 아빠가 늘 말했잖니. 사람들의 친절은, 그냥 친절로 받아들이면 된다고. 그 속에서 어떤 안타까움이나, 어떤 우월함이나, 어떤 기만이 들어 있다고 한들 우리가 그것까지 들여다볼 필요는 없다고. 엄마도
마찬가지야. 엄마가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지. 엄마는 그저 종일 누워 하늘만 바라볼 뿐이니까. 그러니 엄마가 심심해할
거라고, 외로워할 거라고, 슬퍼할 거라고 생각해서 너 스스로를
죄인으로 만들지 말기로 아빠랑 약속했잖니.<br>



(156)

엄마는 이제 숨으로 우리랑 대화할 거야. 그러니
잘 듣고, 온몸으로 기억해 둬. 아가가 가장 가까이서 들었던, 한때 너의 숨이기도 했던 숨의 말을 잘 들어야 해. 말로 하지 않아도
그 숨에 모든 말이 새겨져 있으니까. 어렵지 않아. 집중의
문제지. 긴장할 때 숨은 빨라지고, 편안할 때 숨은 느려지고, 두려울 때 숨은 딱딱해지고, 슬플 때 숨은 축축해진단다. 화가 날 때 숨은 잘게 쪼개지고, 답답할 때 숨은 미지근해진다. 욕망할 때 숨은 뜨거워지고 낙담할 때 숨은 미지근해진다. 사랑을
느낄 때 숨은 찬란해지고 그리움을 느낄 때 숨은 잠시 멈춘단다. 그리고 이런 숨은 코나 입으로만 느낄
수 있는 게 아니야. 아빠는 엄마의 손바닥과 발바닥에서, 어깨와
등에서도 숨을 느낀단다. 특히 엄마처럼 숨으로 소통하는 인간들은 더 잘 느낄 수 있어. 엄마 품에 안겨봐. 아가를 가장 온전하게 안고 있던 품. 한때 아가의 전부였던 품. 오르락내리락하는 숨의 리듬을, 아가가 영원히 기억했으면 좋겠어. 아빠는 그럴 거거든. 그럴 수 있거든.<br>



(195)

“태어난 게 벌이 될 수는 없어. 살아 있는 게 죄인 사람은 없어. 오해하지 마. 가끔 벌처럼 느껴질 땐, 등을 봐.
그 사람의. 노윤이의. 한참 동안 바라보면 햇살에
반짝이는 털들이 보여. 특히 뒷덜미에. 숨을 쉴 때마다 그것들이
움직여. 광대에도 털이 나 있어. 반짝여. 어깨가 미세하게 위로, 아래로, 또
위로, 다시 아래로… 숨을 쉴 때마다 바뀌어. 표정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어서 더 편하고 때로는 슬퍼. 얇은 옷에 앙상하게 튀어나온 척추가 보여. 오돌토돌. 가녀리지만 단단함이 느껴져. 뼈로 당장 무너질 것 같은 몸에도 이토록
단단한 뼈가 있구나. 무너지지 않겠구나. 나약하지 않구나. 살아 있구나. 살아 있는 걸 마음에서 죽이지 말아야지. 살아 있는데 미리 죽이지 말아야지. 살아 있다는 것만 생각해야지.”<br>



(206)

‘우주를 정의 내린 건 인간이잖아요. 저 밖에 있는 공간을 우주라고 부르자고. 저기에 우주가 있다고. 더 큰 것에 작은 것이 담기는 게 진리니까. 우주는 제 안에 인간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팽창하지만, 인간은 우주를 알고, 우주를
명명하고, 우주를 헤아리려 하잖아요. 사람들은 우주에 우리가
속해 있다고 생각하지만 반대예요. 우주가 우리 뇌에 담긴 거예요. 더
큰 쪽이 늘 작은 걸 이해해요. 더 큰 게 언제나 더 고요하고, 잠잠하고, 잘 견뎌요. 노윤이요, 엄마의
마음을 알고 있어요.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보는지도 알고 있어요. 그런데
참고, 견디고 있어요. 세상이 노윤이를 이해하는 속도보다
노윤이가 세상을 훨씬 빨리 이해했으니까.’<br>



(267)

하늘은 시시각각 변하지만 바다는 변하지 않거든. 변덕이
심해. 종잡을 수 없어. 하지만 파도가 닿지 않는 바다 깊은
곳은 묵묵해. 아름다워. 휩쓸리지 않아. 지구의 대부분은 바다였어. 지구는 원래 묵묵해. 담담하고. 하지만 변했어. 인간이, 그렇게 했어.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425/80/cover150/k242032998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4258051</link></image></item><item><author>bookholic</author><category>책에서</category><title>[아민 말루프] &amp;lt;타니오스의 바위&amp;gt; 중에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5181196/16937908</link><pubDate>Wed, 10 Dec 2025 22: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5181196/16937908</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82938515&TPaperId=1693790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399/42/coveroff/k182938515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br>(182)

&lt;보부상 나데르의 잠언집&gt; 중에서 다음 글은 그날의 장면을 암시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 바위에 함께 앉았을 때 나는 타니오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네 앞에서 또다시 문들이 닫히거든 네 인생은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그리고 또 다른 인생이 이미 시작되고 있다고 생각하라. 그리고 배에
올라서 너를 기다리는 도시를 향해 떠나거라.”<br>



(196)

“그 사람들이 진정으로 특권 폐지를 바란다면 외국인들을
그 지역 주민들이 부러워하지 않는 신세로 살도록 강요할 것이 아니라, 외국인들을 대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모든 사람을 대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다. 왜냐하면 외국인들은 모든 인간이 마땅히 받아야 하는 대우를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말을 맺었다.” <br>



(359)

“살인자의 머리를 갖고자 그들은 무고한 사람을 네
명이나 살해했다. 카흐탄 베이크는 자신은 원치 않은 일이었지만, 그렇게
하게 내버려 두었다고 내게 말했다. 이제 내일이면 크파리야브다 사람들이 또 다른 무고한 사람들의 목을
베러 몰려갈 것이다. 늘 그렇듯 그럴싸한 이유를 내세우면서 그들의 복수전은 대대로 이어지고, 오랜 세월 그렇게 계속될 것이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지 말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하느님은 그저 ‘절대로 사람을 죽이지 말라’고 말씀하셨다.<br>



(359-360)

“이렇게 된 것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 산악지대 사람들을 서로 대립하게 만든 사람은 이집트의 파샤가 틀림없다. 하지만 이곳에 와서 나폴레옹의 전쟁을 연장하고 있는 우리 영국인들과 프랑스인들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리고 태만과 자만을 일삼은 오스만 튀르크인들의 책임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이 산악 지대를 제2의 고향으로 사랑하게 된 내가 보기에
누구보다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은, 기독교도들이든 드루즈파든… 이
고장 사람들이다.”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3399/42/cover150/k18293851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3994233</link></image></item><item><author>bookholic</author><category>책에서</category><title>[손턴 와일더] &amp;lt;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amp;gt; 중에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5181196/16928198</link><pubDate>Sat, 06 Dec 2025 17:5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5181196/16928198</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12038246&TPaperId=1692819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298/56/coveroff/k512038246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br>(14-15)

다른 사람이었다면 내심 안도하며 “십 분만 늦었다면
나도…”라고 혼잣말을 했겠지만, 주니퍼 수사에게는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왜 하필 저 다섯 사람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우주에
어떤 계획이 있다면, 인간의 삶에 어떤 패턴이 있다면, 갑자기
중단된 저들의 삶 속에 숨겨진 불가사의한 무언가를 밝혀낼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우리는 우연히 살고
우연히 죽는 것일까. 주니퍼 수사는 그 순간 대기를 가르고 떨어진 그 다섯 명의 숨겨진 삶을 조사하겠다고, 그래서 그들이 그렇게 떠난 이유를 밝혀내겠다고 마음먹었다.<br>



(30)

백작은 그녀의 편지를 읽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그러나
그가 즐긴 것은 문체였고, 그것만으로 편지의 모든 풍부함과 의도를 파악했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대부분의 독자와 마찬가지로) ‘마음의 기록’이라는 문학의 목적 자체를 놓치고 말았다. 문체는 쓰디쓴 액체를 담아 세상에 권하는 하찮은 그릇에 불과하다. 후작
부인이 자신의 편지가 아주 훌륭하다는 것을 알았다면 매우 놀랐을 것이다. 훌륭한 작품을 쓰는 작가들은
항상 고결한 마음 상태로 살아가고, 우리에게 특별해 보이는 작품이 그들에겐 그저 평범한 일상과 다름없을
테니 말이다.<br>



(185)

옛날 다리 대신 새로운 다리가 세워졌지만, 그 사건은
잊히지 않았다. 리마 사람들에게 그것은 일종의 속담 같은 표현으로 전해져 내려왔다. 어떤 사람은 “화요일에 보세. 다리만
무너지지 않는다면 말이야”라고 말한다. 또 누군가가 “내 사촌은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근처에 산답니다”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싱긋 웃는다. 그 말은 머리 위해 매달린 칼이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상황에 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 사고에 대한 시도 있고 페루의 문집마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고전들도 있지만, 진정한 문학적 기념비는 주니퍼 수사의 책이었다.<br>



(207)

지금 이 순간에도나 말고 에스테반과 페피타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오직 카밀라만이 그녀의 아들과 피오 아저씨를 기억하고, 오직 이
여인만이 자신의 어머니를 기억한다. 그러나 우리는 곧 죽을 것이고, 그
다섯 명에 대한 모든 기억도 지상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우리 자신도 한동안 사랑받다가 잊힐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 사랑이면 충분하다. 모든 사랑의 충동은 그것을 만들어
낸 사랑으로 돌아간다. 사랑을 위해서는 기억조차 필요하지 않다. 산
자들의 땅과 죽은 자들의 땅이 있고, 그 둘을 잇는 다리가 바로 사랑이다. 오직 사랑만이 남는다. 오직 사랑만이 의미를 지닌다.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298/56/cover150/k512038246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2985600</link></image></item><item><author>bookholic</author><category>책에서</category><title>[켄 폴릿] &amp;lt;세계의 겨울 2&amp;gt; 중에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5181196/16924665</link><pubDate>Thu, 04 Dec 2025 22: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5181196/16924665</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3950X&TPaperId=1692466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755/22/coveroff/895463950x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271)

“나는 결혼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해.” 에설이 생각에 잠겨 말했다. “하나는 편안한 동반자 관계야. 두 사람은 같은 희망과 두려움을 나누고, 팀이 되어 아이들을 키우고
서로에게 편안함과 도움을 주지.” 그것이 그녀와 버니 이야기임을 데이지는 알아차렸다. “다른 하나는 주체할 수 없는 열정과 광기, 환희와 섹스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 자기가 사랑하지 않거나 심지어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도 그렇게 될 수 있어.” 그녀가 피츠와의 관계를 생각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데이지는 느꼈다. 데이지는 숨을 죽였다. 에설은 지금 원초적인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나는 운이 좋았어. 두 가지 모두를 경험했지.” 에설이 말했다. “그리고 이제 내 조언을 들려줄게. 만일 미친 사랑을 할 기회가 생기면 양손으로 꽉 붙잡아. 결과가
어찌되든 신경쓰지 말고.”<br>



(451)

불행하게도 모두가 보수당이 선거에서 승리할 거라고 생각했다.

선거 유세에서 노동당에 유리하게 흘러간 상황도 일부 있었다.
처칠의 “게슈타포” 발언은 역풍을 맞았다. 보수당조차 경악했다. 다음날 저녁 노동당을 대표해 방송연설을 한
클레멘트 애틀리는 쌀쌀맞게 비꼬았다. “어젯밤 노동당의 정책을 졸렬하게 희화화한 수상의 연설을 듣자마자
저는 그의 목표가 뭔지 깨달았습니다. 그는 전쟁 앞에서 단결된 국가의 위대한 지도자인 윈스턴 처칠과
보수당 지도자 처칠 씨 사이에 얼마나 큰 차이가 존재하는지 유권자들이 이해하기를 바랐던 겁니다. 전쟁중
그의 리더십을 받아들였던 사람들이 고마운 마음에 그를 더 따라가려는 유혹을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두려웠던 겁니다. 사람들의 환상을 완전히 깨뜨려준 그에게 감사합니다.”” 애틀리의
위엄 넘치는 경멸은 처칠이 대중을 선동하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사람들은 핏빛 격정에 질렸다고 데이지는
생각했다. 그들은 틀림없이 평화로운 시대의 차분한 상식을 더 좋아할 것이다.<br>



(525)

하지만 그때 그는 공산주의가 무슨 의미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원칙 없는 숙청과 비밀경찰의 지하철 고문이 존재하고, 점령군 병사들에게 과도한 야만 행위를
강요하거나 거대한 나라 전체가 차르보다 더 강력한 독재자의 고집불통 결정을 따라야 하는 것이 공산주의였다. 나는
진정으로 이런 잔혹한 체제가 대륙의 나머지 지역으로 뻗어나가기를 원하는 걸까?

그는 누구에게 허락을 받거나 신분증을 제시하지도 않고 뉴욕의 펜 역으로 걸어들어가 앨버커키로
가는 표를 샀던 일을 기억했다. 그리고 카탈로그는 이미 오래전에 불태웠지만, 그 책자는 누구나 살 수 있는 좋은 물건이 가득한 수백 페이지로 그의 머릿속에 살아 있었다. 러시아 사람들은 서방의 자유와 번영은 그저 선전에 지나지 않는다고 믿었지만 볼로댜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의 마음 일부는 공산주의가 패배하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7755/22/cover150/895463950x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77552275</link></image></item><item><author>bookholic</author><category>책에서</category><title>[켄 폴릿] &amp;lt;세계의 겨울 1&amp;gt; 중에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5181196/16908381</link><pubDate>Fri, 28 Nov 2025 22: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5181196/16908381</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39496&TPaperId=1690838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755/21/coveroff/8954639496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223)

“왜 파시스트는 폭력을 원할까요?” 에설은 수사적 질문을 했다. “바깥 힐스 로드에 있는 저들은 그저
소동꾼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저들을 조종하는 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저들의 전략에는 목표가 있습니다. 길거리에서 싸움이 일어날 경우 그들은 공공질서가 무너졌다고 주장할
수 있으며, 법률에 의한 지배를 회복하기 위해 극단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할 겁니다. 그들이 말하는 비상조치에는 노동당 같은 민주적인 정당을 금하고, 노조활동을
금지하고, 재판 없이 사람을 구금하는 내용이 포함합니다. 바로
우리처럼 죄라고는 정부와 뜻을 달리하는 것 말고는 없는 평화적인 남녀를 말입니다. 제 말이 터무니없이, 절대로 벌어질 수 없는 것으로 들리십니까? 자, 독일에서 저들이 사용한 전략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성공했어요.”<br>



(285)

“어머니는 같은 경로를 통해 여자도 남자와 동등한
임금을 받을 수 있게 하려고 애썼잖아요.” 로이드가 말했다. “그리고
실패했죠.” 바로 지난 4월 노동당 여성 의원들은 남성 동료와
동일한 업무를 하는 여성 공무원들에게 동등한 임금을 보장하는 의회 법안을 통과시키고자 했다. 법안은
남성 의원이 압도적으로 많은 하원에서 부결되었다.

“투표에서 질 때마다 민주주의를 포기해선 한 돼.” 에설은 단호하게 말했다.<br>



(289)

그들은 영국 국기를 들고 있었다. 로이드는 궁금했다. 조국의 좋은 것을 모조리 파괴하고 싶어하는 자들은 왜 가장 먼저 국기부터 흔들어 대는가.<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7755/21/cover150/8954639496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77552192</link></image></item><item><author>bookholic</author><category>책에서</category><title>[황광수] &amp;lt;셰익스피어&amp;gt; 중에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5181196/16903856</link><pubDate>Wed, 26 Nov 2025 23:1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5181196/16903856</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097410X&TPaperId=1690385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4113/11/coveroff/895097410x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br>(83)

안내판 뒤쪽으로 “내 뼈를 옮기는 자는 저주받을
것이다”라는 문구가 보인다. &lt;폭풍&gt;을 마지막 작품으로 완성하고 셰익스피어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1616년 몸져누웠다. 그의 생애와 함께 흘러왔던 모든 것, 그가 이룩했던 모든 것이 절대적 단절을 마주 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재산이 먼 미래까지 이어질 수 있는 방법을 궁리했다. 한번 쓰고 고치는 법이 없었던 창작과 달리, 고칠 때마다 새로 작성한 유서가 무려 134통이나 되었다.<br>



(107)

로마인들이 배스를 건설한 것은 기원후 60년이었으니, 그들의 열정은 거의 2천 년의 세월을 건너와 나를 불가항력적인 감탄
속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로마제국은 대략 기원전 50년부터 5세기 동안 브리튼을 지배했다. 그들이 로마의 군대보다 훨씬 더 잔혹했다. 마을을 불태우고, 산과 들과 강을 피로 물들였다. 브리튼인들은 로마에 구원을 요청했지만, 로마제국은 제 앞가림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다. 샘의 족장들은 제각기 왕국을 건설하여, 브리튼에 일곱 개의 왕국이 생겨났다. 이른바 ‘앵글로 색슨 7왕국’이다. 브리튼 사람들이 로마에 구원을 요청한 것을 보면, 그들은 로마제국에
대해 공포와 존경이 뒤섞인 양가적 감정을 지녔던 것으로 보인다.<br>



(169)

괴테는 셰익스피어의 언어적 특성, 즉 외적 감각에
호소하기보다는 내적 감각에 호소하는 상상력을 높이 평가했다. “셰익스피어는 언제나 우리의 내적 감각을
향해 말한다. 이것을 통해, 상상의 그림 세계가 활성화되며, 완벽한 효과가 나타나게 되는데, 우리는 이것에 대해 어떠한 생각도
덧붙일 수 없다. 정확하게 여기에 모든 것이 우리 눈앞에 일어나는 환상의 바탕이 놓인다.”<br>



(200)

로미오는 자신을 순례자로, 줄리엣을 성자로 비유하며
손을 잡고 입을 맞춘다. 그렇지만 그가 사용하는 종교적 이미지들은 말 그대로 베일일 뿐이고, 이들의 행동과 말에는 자연적 세계관이 더 깊이 침투해 있다. 이
세계관으로 보면,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고 그들의 욕망은 자연의 의지 또는 본성일 뿐이다. ‘르네상스’라는 이름으로 시대의 경계를 넘어서고 있던 이 세계관은
심리적 층위와 제도 및 관습적 층위 사이의 충돌을 조장하며 등장인물들의 말투에 역설과 모순을 주입한다.<br>





(238)

전쟁 속의 사랑을 이만큼 사실적으로 다룬 작품이 또 있을까?
셰익스피어는 두 남녀의 사랑을 참담한 역사적 현실 속에 던져두고 냉정하게 관찰했다. 이러한
태도는 ‘비극’이라는 미학적 전형까지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셰익스피어의 투철한 현실주의와 빛나는 실험 정신이 런던의
극장가에서 환영받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대중은 냉혹한 현실 속에서 난파될 수밖에 없는 사랑 따위는
보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br>



(327)

테리 이글턴의 말을 들어보자.

“셰익스피어의 대담한 말장난, 비유와 생략은 의문을 불러일으킬 만큼 위협적이다. 사회적 안정에
대한 그의 신념은 발화되는 바로 그 언어에 의해 위협받는다. 그래서,
셰익스피어에게는 글쓰기의 행위 자체가 자신의 정치적 이념과 불화하는 인식론(또는 지식이론)을 함축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몹시 당혹스러운 딜레마이며, 셰익스피어의 연극 대다수가 그것을 해소하기 위한 전략들을 이해하는 데 바쳐졌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4113/11/cover150/895097410x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41131119</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