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벤야민과 한나 아렌트의 관계는 사돈지간이었다. 발터 벤야민의 사촌이 한나 아렌트의 첫 배우자였기에 그 때 처음 만나게 되고 이혼 후에도 우정을 지속했다. 발터 벤야민이 마지막 도피 직전 <역사철학테제>의 원고를 한나 아렌트에게 맡겼다는 것은 그만큼 서로에 대한 신뢰가 두터웠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한나 아렌트의 시각으로 본 발터 벤야민에 대한 시각이다보니 호의적인 우정의 시선이 느껴진다. 한나 아렌트의 시각에서 발터 벤야민은 시인처럼 은유를 사용하는 이단적 마르크스주의자였으며, 시온주의와 마르크스주의 사이에서 휘몰아치는 폭풍을 “이미 허물어지고 있는 돛대 꼭대기”라는 위치에서 조망하는 소요객이자 주시자였고, 과거와 사라진 시대의 결정화된 새로운 사유 조각들을 심연에서 길어올리는 진주 잠수부였다.

인문매거진 <바닥> 가을호에 실린 ‘인문 인터뷰 (김성민 작가)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에서 한나 아렌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어두운 시대에도 밝은 빛을 기대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한 밝은 빛은 오히려 불확실하게 깜박이는 약한 불빛에서 나올 수 있어요.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삶을 통해서 빛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한나 아렌트는 발터 벤야민을 출구가 없는 시대 상황에도 '불확실하게 깜박이는 약한 불빛'을 보여주는 친구로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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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23-05-25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나 아렌트가 쓴 발터 벤야민이라니 흥미가 돋네요ㅎ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DYDADDY 2023-05-25 13:21   좋아요 1 | URL
음.. 사실 벤야민은 그당시의 관점으로는 무능력자였고 체구도 비대했다고 알고 있어요. 스스로 커피를 내릴 줄 모른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ㅋㅋㅋㅋ 하지만 그가 남긴 저작들은 비정통적인 마르크수주의로 자본주의를 비판하기에 주목을 받고 있어요. 아렌트의 관점에서 본 벤야민의 짧은 평전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을 바로 읽으시기보다는 <일방통행로>를 읽으시고 읽으시는 것이 나을 것 같아요. <일방통행로>는 약170페이지 정도이니 읽으시는데 그리 부담되지 않으실 거에요. ^^

고양이라디오 2023-05-25 16:09   좋아요 1 | URL
<한나 아렌트 세번의 탈출>이란 그래픽 노블을 봤는데 벤야민이 참 매력적으로 그려지더라고요. 특이한 사람이지만 주위에서 굉장히 인정받는 느낌이더라고요ㅎ

<일방통행로> 한 번 찾아보겠습니다ㅎ 감사합니다.
 

어떤 사진도 지속성을 나타내진 않는다. 사진은 대상을 순간에 가두어 버린다. 과거 속에서 노래는 확장되어 나가고, 사진은 멈춘다. 노래는 시간의 행복한 감정이며, 사진은 시간의 비극이다. 나는 종종 우리가 한평생을 노래와 사진으로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감정의 언어를 ‘믿으면서’ 사용할 줄을 모른다. 시도를 해봤지만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내가 아는 것은 사물의 언어, 물질적인 흔적의 언어, 가시적인 언어다. (그 언어들을 단어로, 추상적인 것으로 바꾸는 것을 멈추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사진을 바라보고 묘사하는 것이 그의 사랑의 존재를 확인하는 방법이 아니라, 명백한 것들 앞에서, 사진을 구성하는 물질적인 증거 앞에서, 내가 절대 답을 찾을 수 없는 ‘그는 나를 사랑할까?’라는 질문을 피하는 방법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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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하기는 인간의 구원을 보완할 사물의 구원이다. 심지어 책을 읽는 것조차 진정한 애서가에게는 미심쩍은 무언가다. "아니톨 프랑스는 어느 날 그의 서재를 보고 감탄하고는... 너 이 책들 다 읽었어?‘라고 묻는 어느 속물의 물음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아니. 십분의 일도 읽지 않았어. 혹시 너는 매일같이 세브르 도자기로 식사를 해?"(나의 서재 공개)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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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즉, 조우한다는 것은 삶의 궤적을 바꾸어놓는다. 그저 곧게 내리는 비가 아니라 다른 외부 요인과의 관계로 마주침이 발생하면 그 마주침은 연속으로 일어나는 것처럼. 때로는 그 마주침이 유쾌할 수도 혹은 불쾌할 수도 있지만 방향이 극도로 미세하게라도 바뀌게 된다. 그 바뀜을 관계라고 부르기에 세상의 모든 유무형의 총합은 관계이다.

내가 만났던 모든 남자들은 매번 다른 깨달음을 위한 수단이 었던 것 같다. 내가 남자 없이 지내기 힘든 것은 단지 성적인 필요성보다는 지식을 향한 욕망에 있다. 무엇을 알기 위해서인가. 그것은 말할 수 없다. 나는 아직, 어떤 깨달음을 위해 M을 만난 것인지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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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05-22 01: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니 에르노의 책이네요.
이 책 저도 연말에 선물로 보내주셔서 읽었던 것 같습니다.
노벨상 수상작가가 되기 전에도 이미 책이 많이 출간된 작가라서 그런지 번역출간된 책이 많이 나와있는 것 같았어요.
주말 잘 보내셨나요.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DYDADDY 2023-05-22 10:44   좋아요 2 | URL
전에도 피곤한 주말에 <단순한 열정>을 읽었는데 이번에도 비슷한 상황에 비슷한 감정이 들면서 읽기 시작했어요. 그 책들에 담겨있는 것이 저도 모르게 필요해서 읽는 것이겠지요.
바쁜 주말이라 피곤하지는 않으셨는지요. 월요일이 꼭 힘차야 할 이유는 없으니 조금은 쉬엄쉬엄 하시길 바라요. ^^

2023-05-22 0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22 1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22 1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저가 제시한 자본주의의 정의는 경제에 국한된 기존 관념의 경계를 과감히 뛰어넘는다. 자본주의는 단순한 경제적 관념이 아닌 사회, 정치를 포괄하는 하나의 제도화된 사회질서이며, 기존의 개념인 ‘착취’뿐만 아니라 환경, 사회적 재생산, 공적 권력의 수탈을 통해 유지된다. 그 경계의 분할을 통해 그 관계를 고착하면서 성장하지만 4D 모순(분할, 의존, 책임회피, 불안정성)으로 자신의 꼬리를 먹어가는 우로보로스처럼 결국 파멸할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도 함께 파멸할 것이기에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헤게모니 즉, 생태사회주의가 필요하며 이는 각각의 분할된 운동이 하나의 연대로 나아갈 때에만 가능할 것이다.

프레이저의 이론은 기존의 사회주의 이론을 현대에 맞게 업그레이드한 이론이며 현실의 문제 분석과 미래 예측에 공감할 수밖에 없지만 책에서 제기되지 않은 세가지 문제가 있다. 첫번째는 앞으로 세상을 이끌어가는 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사회주의라는 타자를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로 자본주의가 제시하는 삶 안에서 살아왔기에 그 이상을 꿈꾸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물 안의 개구리가 아닌 세상이 우물인 것이다. 그러한 세대에게 눈 앞의 현실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할 때 가능할 것인가. 두번째는 인간의 이기심은 절대 시야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인간의 이기심이 차별과 혐오를 만들고,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며, 지구를 끓게 만든다. 과연 인간은 그런 이기심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마지막으로 세번째는 프레이저가 제시한 사회 운동의 유기적 결합이다. 그 결합을 누가 주도할 것인가. 인간은 둘만 있어도 권력 관계가 형성되는데 그 많은 사회 운동의 평등한 결합이 가능할까. 프레이저의 그 이론은 훌륭하지만 그 이론을 실천으로 끌고 가는 것은 인간이기에 실현 가능성에 대해 비관적이다.

프레이저가 분석한 현재의 문제점은 더 가중될 것이다. 좌파가 세대와 이기심의 문제로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우파 포퓰리즘이 득세하고 정치와 자본주의는 한 몸이 되어 고대 종교와 같은 힘을 지니게 될 것이다. 그런 힘을 가진 세력을 과연 민중이 제어할 수 있을까. 우리는 트럼프와 윤석열의 당선을 보았고, 자신의 세력을 위협하는 장관을 파멸로 몰고간 검찰을 보았고, 생활고에 절도를 한 사람이 경제인보다 더 높은 형량을 받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탄소 배출권이나 탄소 거래라는 허울좋은 명분으로 감추어진 자본의 확대를 보고 있다. 과연 인류는 스스로를 구원할 힘이 남아있을지 의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레이저가 제시한 방향이 옳다고 믿기에 인류가 그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사회주의 국가라고 불렸던 소비에트 연방은 평의회 기반이 아닌 스탈린과 공산'당'의 독재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진정한 사회주의 공동체(국가가 아닌)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어쩌면 도래하지 않을 유토피아일 수도 있지만 그 이상향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방향으로 노를 저어 나가는 것이 자칭 '빨갱이'의 의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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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3-05-18 22: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사기로 했는데,,, 언제 읽나 싶네요. 읽고 싶었던 책이예요.

DYDADDY 2023-05-19 00:41   좋아요 3 | URL
어느정도 시의성이 있는 책이지만 내포하는 사상이 시대를 뛰어넘는 부분이 있어 당장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제든지 읽으면 시야가 넓어지는 느낌의 책이에요. 한번쯤 읽어보시길 권해드리고 싶어요. ^^

2023-05-19 15: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19 15:2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