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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1년 5월
평점 :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창비 부산의 작가님 초대 행사를 응모하면서 부랴 부랴 준비한 책...
나... 정말 가고 싶었는데... ‘이희영 님’ 이후.. 나의 복은 다 썼는지.. 이제 소식이 없네.. 탈락의 아픔으로 책을 묵히다 이제야 읽게 되었다.
그동안 네이버 라이브는 보았다.(참 좋은 세상이다.)
펼치기가 쉽지 않았는데... 펼치고 보니... 너무 좋았다.
정말 이 작가님 믿고 볼 만큼 성장하셨구나.
책 표지에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던 시절을 지나
좌절을 더 이상 부인하지 않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는 성장이었다.’
정말 쉽지 않았고 여의치 않았던 삶을 살아냈던 사람들의 고군분투를... 절망스럽고 찌질하고 비루했지만 그래도 지나온 시절에 대한 담담한 이야기... 무작정 우울과 비관과 절망과 후회만이 있는 것은 아니어서... 정말 작가 님의 한 단계 성장이 절절히 느껴진다.
글 읽는게... 공감도 되고 아프기도 했고 아련함도 있었다. 그럼에도 기분이 묘하게 나쁘지 않고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느낌이랄까...
나는 페퍼로니.... 가 참 궁금했다. 어디인지... 어느 곳인지....
그런데.....(말을 아껴야지...)
아껴 읽기 잘 했다.
모든 작품들이 나름 다 좋았다.
우리가 가능했던 여름 ....자존감 낮을대로 낮아져 삼수하던 시절 의대에 진학한 동창 장의사를 만나게 된 그녀... 남들이 부러워하는 의대에 갔지만 적응할 수 없었던 장의사와 조용한 교류를 하게 되고 그를 통해 만나게 된 ‘김조교 형’(아주 나쁜 놈이다. 힘든 애들 더욱 힘들게 만든...) 그리고 겪었던 고통과 이별....안녕이라고, 안녕하라고, 잘 보내라고, 그러다 자꾸 붙들려들어가 생각하게 되었던 원미우동을 떠올렸고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내게는 어떤 기회가 있었던 걸까. 그러니까 그건 내가 어떻게 다르게 흘러가게 할 수 있는 여름이었던 걸까. 죄의식이 밀려올 때마다 강하게 부정해왔지만 아이의 부탁으로 그 말을 적어보던 그 순간, 나는 아이가 옳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안녕,이라는 말이야말로 누군가에게 반복해서 물을 수 있고 그렇게 물어야 하는 일이라는 것, 비록 이제는 맞은편에 앉아 있지 않은 사람에게라도 물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것, 그것이 일산의 여름을 지켜내는 일이라는 걸.--- p.48, 「우리가 가능했던 여름」.....어떤 기회가 있으면 그 때의 여름을 지켜낼 수 있을까?... 글을 읽다보니 내게도 어떤 장소의 어떤 사람이 기억이 떠올랐다... 왜 항상 우리는 후회할까... 사람이라서겠지..
크리스마스에는 .... 어떤 능력자를 모아 방송하는 곳의 PD인 내게 떨어진 새로운 능력자 발굴.. ‘맛집알파고’를 찾아야하는 그녀는 사실 그를 알고 있다. 대학시절 자신에게 상처 주고 헤어졌던 전 남자친구... 그를 찾아 부산으로 그리고 영도로 찾아왔다. 다시 생각해봤던 대학시절의 기억, 크리스마스에 부산에서의 기억, 뭔가 개운치 않은 능력 검증, 영도의 한 카페에서의 12월 마지막 날 뱃고동소리가 코끼리가 내는 합창처럼 들린다는 것을 알고 돌아와서 다시 보니... 그(맛집알파고라는 예전 남친)는 다시 잠적해버린다. 참... 뭐야? ‘맛집알파고’ 능력이 재미있었고... 대학시절 헤어진 남친이 그렇게 오래 생각이 나나... 싶기도 했던.... 여러 가지 요소요소가 이상하게 재미있던 이야기였다.
마지막 이기성.....뭐야 뭐야 이 아련함.... 일본에서 유학하던 시절 거기서 만났던 교포 유키코...그들의 차별에 맞선 다른 방식.. 그리고 색다른 투쟁, 그들의 배추밭, 사라질 곳의 타임캡슐....달라서 좋았고 그래서 헤어지고... 뭔가 참 아련하게 좋았다.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알바로 들어갔던 고택 거기네 집안에서 일하다 만났던 또 다른 알바생 기오성, 그 가족들....이 편도 참 좋았다. 왜 표제작인지 알 것 같았다. 열심히 산다고 해도 안 되는게 그렇게 많던.... 과연 정말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야하는 걸까.... 괜히 상을 받은게 아닌가보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던 좋은 글이다.
기괴의 탄생 .... 존경하는 선생님이 무용과 대학원생과 사랑에 빠져 모든 것을 잃었다. 나는 그녀를 이해하지 못 했고... 미국에서 온 리애 씨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선생님께 다가가려 하지만 .....오히려 리애 씨도.... 선생님도... 뭔가 이상하다. 이런 기괴함은 ‘약자를 알아보는 귀신같은 눈’인 걸까... 묘하게 알 것 같은 이야기....
깊이와 기울기....‘공가’에 모인 예술가들... 예술을 하려고 모인게 분명한데 그들의 열정은 방치된 르망 고치기에 몰려버리고...예술과 삶이라...
초아....나의 사촌...정당함의 감각이 있던 그 아이, 명문대 학력이 있던 그 아이에 대한 화자의 단상...
읽을 때도 좋았지만 뒤의 황정아 님의 해설을 읽으니 더 좋았다. 어쩔 수 없는 고군분투, 이기기 힘들지만 그만들 수 없는 싸움... 내가 나로 살아가는 일이 걸려 있기에 그러하다는.... 그런 이야기들이 김금희 소설에는 있다고... 참 역시 글을 업으로 하시는 분은 달랐다. 작가 님도 그랬다. 이 책을 엮다보니 이별한 누군가와 재회하는 내용이 많다고 생각하셨다고... 상실은 내가 처음 글을 쓰려고 했을 때부터 나를 붙들고 있던 문제이지만 다시 만나는 것이라니, 그것은 얼핏 상처의 치유나 관계의 회복처럼 읽을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결손의 확인에 가까워 보였다.뚜벅뚜벅 걸어가 장막을 확 젖혀 어느 무대를 매섭게 쏘아보는 듯한, 하지만 거기에서도 어떤 환하고 무른 기억들이 쏟아져나와 그것이 지닌 에너지에 문득 손을 떨구고 마는. 그 모든 것들을 무사이 소설로 쓸 수 있어서 기쁘다. 이렇게 한 고비를 넘는다.(작가의 말 중)
작가 님은 어쩜... 작가의 말도 소설의 한 구절 같을까? 어쩜 이렇게 글이 좋을까?
암튼... 행복한 글읽기였다.
읽을 때도 좋았지만 읽고 나서 다시금 생각이 나는 것이 .... 이 글은 참 좋은 글인 듯 하다.
에세이도 잘 쓰시지만 뭔가 특유의 주줄이 쓰는 작가님의 서술법이 매력있는... 작가 님은 소설을 매력적으로 쓰시는 분 같다.
상복이 많다는 건.. 그만한 능력이 있으신 것 같다.
비슷한 듯 뭔가 다른 이야기들... 앞으로도 더욱 성장하시고 좋은 글 많이 남겨주시길.. 간절히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