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번아웃이었다
송슬기 지음 / 프로방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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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이 왔거든요.”

업무를 하며 알게 된 타사의 A가 있었다. 동갑내기라 친하게 지냈는데 곧 퇴사를 한다고 했다. 참 잘 맞았는데.. 아쉬웠다. 기업에 이런 사람들만 있다면 세금으로 운영하는 정부 사업들이 명분에 맞게 잘 돌아가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퇴사라니! 하루가 멀다하고 이거주세요, 저거 고쳐주세요 요청했던 내가 괜히 미안했다. 반면, ‘내가 더 힘든데 번아웃이라고?’ 반감도 들었다. 번아웃이라는 말이 참 얄궂게 느껴졌다. <나는 번아웃이었다>라는 책 제목을 보는 순간 A가 떠올랐다. 

책은 작가의 경험을 담은 에세이다. 총 50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책은 ‘뚜렷한 목표없이 살아가는 사람’이었던 저자가 어떻게 ‘글쓰는 사람’으로, ‘엄마’로, 더 나아가 ‘송슬기 그 사람 자체’로 거듭났는지를 알게 한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저자의 군 입대다. 저자는 스무살의 나이에 ‘군 입대를 결심’(p.28)한다. 목표하는 대학 없이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하고 싶은 것이 없었고, 무엇보다도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부모님의 경제적인 도움은 받고 싶지 않았단다. 경제적 독립을 꿈꾸며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직업으로 선택한 것이 군 입대! 경제적 부담과 직업적 안정성, 두 토끼를 모두 잡은 이런 훌륭한 선택이라니!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사람의 선택이라고 보기엔 너무 용감하고 대단했다. 

하지만 저자는 생각보다 금방(?) 군대를 박차고 나온다. 이후에는 책에서 '엄마'로서의 이야기를 많이 풀어놓는다. 책에서는 두 종류의 ‘엄마’가 등장한다. 첫 번째는 양육자 본인. 저자는 자신의 태도가 아이들의 정서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기분에 따라 소리를 지르기도, 화를 내기도 한단다. 무한히 사랑만 해야할 것 같은 엄마라는 본분과 인간으로서 느껴지는 감정 사이에서의 혼란스러움. 많은 엄마들이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리라. 그렇다면 나는 어떤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나는 막연히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공부하는 현명한 엄마가 되고 싶다 해보곤 한다. 아들과 손잡고 여행다니고, 딸과 쇼핑을 하는 그런 엄마가 되고 싶다고도. 엄마로서의 나를 자꾸 상상해보게 된다. 

두 번째 '엄마'는 저자 자신의 어머니다. 저자는 아버지의 불같은 성격에 늘 기죽어 지내시던 어머니를 묘사한다. ‘60세가 되어서도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신다고. 그러면서 과연 자신은 어머니처럼 '무엇을 뜨겁게 원해봤느냐’(p.129)고 되묻는다. 나에게도 죽비소리처럼 들린다. 늘 회사 핑계를 대며 나를 놓아두기 일쑤였다. 반면 우리 엄마는 반대다. 직장을 정년퇴직 하고 쉬실법도 한데 지금도 늘 무언가를 하신다. 학위는 벌써 7개, 자격증은 콜렉터 수준이다. 그런데도 자기개발에서 손을 놓지 않으시는 엄마를 보며 그 안에 있는 ‘뜨거운 열정’이 느껴진다. '굳이 열심히 살아야 하느냐' 물을 수도 있지만, 이러한 '열심'은 자신의 삶을 알차게, 후회없이 살아가는 한 방법이리라. 저자의 어머니를 보며, 우리 엄마가 떠올랐고, 나도 저자처럼 '무엇을 뜨겁게 원해봤는지' 생각하게 된다. 


다시 저자의 번아웃으로 돌아오자. 그녀는 글쓰기를 통해 번아웃을 극복한다. 블로그에 비밀 글을 쓰다가, 점차 자신을 드러내고, 더 나아가 쓰면서 스스로의 감정을 이해하기 까지의 복잡다단한 과정을 저자는 담담하게 서술한다. 특히 글쓸 때 늘 맞닥뜨리는 ‘자기 검열’을 어떻게 벗어났는지 설명하는데, 이 부분에서는 쉼없이 고개가 끄덕여졌다. 결국 글쓰기는 나를 드러낼 때 제대로 이행된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진짜 자신을 알게 된다는 것. 늘 머리로는 알지만 실천하기 어렵다고 느껴지는 부분이다.

행동에 집중하다 보면 하고 싶은 것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행동은 내 생각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어떤 일이든 성공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도 생깁니다. 이런 자기 효능감이 자기 긍정을 만든다고 확신합니다. (p.253)


번아웃을 극복한 저자는 결국 ‘행동하라’고 조언한다. 앞뒤 계산없이 심플하게 생각해 ‘행동에 집중’하면 하고 싶은 것을 알게되고, 생각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에게도, 하고 싶은 게 없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는 조언일테다. A가 생각나 읽기 시작한 책이었다. 가볍게 술술 넘겼는데, 예상외로 책의 여운이 짙다. 쉽게 말할 수 없는 자신의 단면을 진솔하게 드러낸 작가가 참 멋지다. 또, 어떤 상황에서라도 배움과 교훈을 찾아내 스스로에게 적용하는 모습은 본받고 싶다고 느꼈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 해를 준비하고 싶은, 지금 순간과 참 잘 어울리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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