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귀향 외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7
안드레이 플라토노프 지음, 최병근 옮김 / 책세상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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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드레이 플라토노프는 20세기 후반에서야 발견되어 20세기의 도스토예프스키라는 평을 듣기도 했다고 한다. 안드레이 플라토노프의 글은 도스토예프스키나 고골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 느낌이 정확하게 명명이 안되지만 그 원인의 상당부분이 그의 이력과 관련있는 것 같아 책날개에 있는 작가의 소개글을 옮겨 놓는다.

 

안드레이 플라토노프는 러시아의 남부 도시 보로네쥐에서 철도 기술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10남매중 장남이었던 그는 보험회사 사환, 열차 기관사 보조원 등 이런저런 직업을 전전하며 집안의 생계를 도와야하는 힘겨운 유년시절을 보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이듬해 보로네쥐 공과대학에 입학한 플라토노프는 전기, 기계 등 다양한 공학이론을 공부하며 지역 신문사 기자로도 활동한다. 이 시기에 그는 철학 에세이 『전화』, 시집 『푸른 심연』, 단편소설 『태양의 후예들』등을 발표하며 문필가로서 첫발을 내딛는다.

 이어 첫 작품집 『예피판의 수문들』을 비롯해 이듬해에는 『비밀스러운 사람들』등을 포함한 세 권의 작품집을 출간하며 왕성한 창작활동을 이어간다. 길게는 1930년대 초반까지 이어지는 이러한 전기작품들을 통해 이미 플라토노프는 혁명의 시기에 성장한 '노동하는 인간'을 주인공으로 하는 그의 독특한 문학세계를 정립한다. 또한 『붉은 처녀지』,『신세계』,『10월』등 중앙문예지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작가로서 입지도 공고히 한다. 그러다 1931년 그해에 발표한, 농촌집단화의 실상을 풍자한 중편 『저장용으로 : 빈농의 기록』에 대해 스탈린이 부농의 시각을 반영한 작품이라고 평가함으로써 플라토노프는 작품 활동에 치명적이 타격을 입게 된다.

전쟁이 끝나 모스크바로 돌아온 플라노토프는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풀려난 아들을 간호하던 중 폐렴이 전염돼 1951년 사망한다. 플라토노프의 주요 작품들은 대부분 사후에 출간되었다. 주요 작품으로는 『예피판의 수문들』, 『그라도프 시』, 『포투탄 강』,『잔』, 『공사 기초용 구덩이』, 『행복한 모스크바』, 『체벤구르』등이 있다.

 

『귀향』에 실려있는 5편의 단편은 모두 '기차'라는 공통분모를 가진다. 기차로 시작해 기차로 끝나는 『귀향』은 잘 짜여진 구도를 갖추고 있고 『기관사 말제프 』역시 실명한 기관사의 이야기를 다루며 어떤 형식으로든 모든 작품에 기차가 등장하고 있다. 이것은 작가의 이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것 같다. 아버지가 철도 기술자였고 자신 역시 열차 기관사 보조원을 지낸 경력이 작품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던 1917년 플라토노프는 18살이었고, 이때 그는 공과대학에서 공학이론을 공부했다. 1924년 레닌이 사망하고 스탈린이 집권했다. 스탈린의 시기는 러시아에 문학이 없던 시기였다. 플라토노프의 작품들은 대부분 이 시기에 쓰여졌다. 그에게는 "서민들의 삶과 애환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는 작품평이 붙어있는데 어느 시대를 불구하고 '서민'이란 항상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이름아닌가. 같은 '서민'을 다루더라도 고골이 환상성을 가미하여 관료체제를 비판하고, 도스토예프스키가 인간의 실제적 삶보다는 영혼의 문제에 더 관심을 두었다면, 플라토노프는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자 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그의 문장에는 화려한 수식이나 미문이 없다. 그의 주인공들은 아름다운 외모를 지니지도 않았다. 러시아의 작은 마을에서 정치적 변혁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들의 언어로 펼쳐지고 있다.

플라타노프의 이야기들은 조금은 교양있고 타인의 고통을 공감할 정도의 교양을 지닌 옆집 살던 아줌마를 우연히 만나 동네사람들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은 잔잔함이 전편에 녹아있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책을 놓지 않게 만드는 묘한 힘을 지녔다. 이것은 문체의 유려함이나 극적 사건보다는 삶에 대한 진솔함이 그대로 묻어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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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피부, 하얀 가면 - 포스트콜로니얼리즘 시대의 책읽기
프란츠 파농 지음, 이석호 옮김 / 인간사랑 / 199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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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피부, 하얀 가면』을 읽다보면 파농의 다양한 관심사를 공유할 수 있다. 그는 싸르트르, 마르크스, 키에르케고르, 프로이드, 융 등 많은 학자들의 영향을 받은 듯싶다. 때문에 흑인의 백인에 대한 심리적 열등의식을 정신분석적으로 해석하고 있지만, 다분히 정치적으로 읽히기도 한다.

1장 <흑인과 언어>에서 파농은 언어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앙틸레스에 사는 흑인들은 불어를 얼마나 완벽하게 구사하느냐에 따라 백인화의 정도를 인정받는다. 각 언어는 하나의 세계와 문화를 반영한다. 백인이 되고자 하는 앙띨레스 흑인들은 언어라는 문화적 도구를 보다 완벽하게 지배함으로써만 보다 백인에 가까워질 수 있다.(피진, 크레올)

2장 <유색인 여성과 백인 남성>, 3장 <유색인 남성과 백인 여성>에서 파농은 사랑의 문제를 다룬다. 마요테 카페시아라는 흑인 여성이 체험적인 자서전 『나는 마르티니크 여자입니다』를 썼다. 파농은 이 책을 “부패에 대한 찬미를 담고 있는 싸구려 상품에 불과하다”고 일축하면서 이 책의 내용을 텍스트로 삼아 백인 남성에 대한 유색인 여성(흑인여성)의 심리 상태를 분석한다. 유색인 여성은 자신과 자신의 자손이 좀 더 표백화 되기 위해 파란 눈과 금발과 하얀 피부를 가진 백인 남성을 사랑한다. 대부분의 흑인 여성들에게 만연해 있는 이 백인 선호는 흑인 여성이 백인 세계로의 입성을 꿈꾸는 이유가 오직 열등감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환자는 열등감의 노예가 된 흑인뿐만 아니라 우월감의 노예가 된 백인도 포함한다고 파농은 진단한다. 유색인 남성과 백인 여성에 관한 분석 또한 이성간의 사랑의 감정보다는 자신의 흑인성을 벗어 버리려는 몸부림으로 분석해낸다. 

4장 <식민지 민중의 의존 콤플렉스>는 마노니의 책 『프로스페로와 칼리반 : 식민주의 심리학>이라는 책에 대한 비판적 읽기이다. 흑인들의 열등 콤플렉스는 식민주의보다 선행한다거나 인종차별이 경제적 상황과는 무관하다는 것이 마노니의 견해이다. 이에 대해 파농은 싸르트르를 인용한다. “유태인들이라는 이름은 유태인들 스스로가 지칭한 이름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지정해 준 이름이다. 이것이 우리가 출발점으로 삼아야할 진실이다. …유태인들을 창조한 사람은 바로 반유대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열등한 대상을 조작해낸 장본인은 바로 인종차별주의자들이라는 것이 파농의 견해다. 또 “경제적 배타성은 그 무엇보다도 경쟁에 대한 공포와 유럽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백인 프롤레타리아들의 보호, 그리고 그들이 현재의 생활수준 이하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한 방어욕망으로부터 추동한 것(113쪽)”이라고 밝힌다.

5장, 6장에서 파농은 "흑인은 백인과의 관계에서만 흑인"이라는 존재론적인 문제를 다룬다. 또 프로이드나 아들러, 융조차도 자신들의 연구에 흑인을 포함시키지 않았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것이 흑인들에겐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힌다. 인종차별에 대해 파농은 유태인과 흑인을 비교한다. 유태인이 공포의 대상이 되고 박해 받는 이유는 그가 부를 축적하고 싶어 하고 권력의 요직을 독점하고 싶어 하기 때문인데 반해 흑인에 대한 공포증의 모든 것은 생식기 층위에서 발생한다고 한다. 유태인이 지적인 위험을 상징하듯이 흑인은 생물학적 위험을 상징한다.

파농은 그의 논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다양한 이론과 텍스트를 인용한다. 어떤 부분에서 그는 자신이 객관적 진술을 할 수 없음을 밝히고 다분히 의도적으로 감정적인 언어들을 사용하기도 한다. 흑인들이 자신의 검은 피부를 부정하고 하얀 가면, 즉 백인에 대한 선망 혹은 백인에 대한 동일시의 표상으로서의 하얀 가면을 쓰더라도 자신의 검은 피부를 부정할 수 없음으로서 생기는 정신병리에 대한 의견들은 충분히 설득력을 지닌다. 

얼마 전 아프리카로 장기 여행을 떠나는 친구와 저녁을 먹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주고받고 있었다. 아프리카에 대한 나름대로의 지식들과 농담들이 오가던 자리였다. 나는 그가 돌아올 때 ‘쿤타킨테 같은 아프리카 남자’를 선물로 데려오기를 주문했고, 함께 있던 친구들은 모두 웃음을 터트렸었다. 물론 농담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농담이 친구들에게 완벽하게 전달되었다. 파농의 책을 읽는 내내 이 농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대체 나는 저 농담 속에 어떤 뜻을 담고 있었던 것일까? 그것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성적 이미지가 전부가 아니었던가 싶다. 그렇다면 나에게는 어떻게 해서 흑인에 대한 성적 환상이 심어졌을까? 또 어떻게 이런 개인의 성적 환상이 함께 자리했던 친구들에게 완전히 공유될 수 있었을까? 나 역시 백인 아니 아메리칸에 대한 열등의식 혹은 의존적 심리에 감염되어 있었던 것일까? 잠복하고 있던 그 바이러스들이 아프리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세력확장을 시도했던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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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 -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1
우석훈.박권일 지음 / 레디앙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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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세대, X세대, 386세대, 88만원 세대 등의 용어는 그것이 규정하고 있는 정치 경제적 의미 외에도 다양한 특성들을 함의하고 있다. 지금의 40대 후반에서 50대 중반으로 지칭되는 유신세대가 냉전체제의 시대를 살아온 정치엘리트들에 대한 규정이라면 386세대는 30대에 80학번을 지닌 60년대 생인 사람들을 통칭한다. 유신세대는 냉전시대를 산 반공세대이며 ,성장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고, 지역으로 묶이는 것을 선호하며 동시에 지역감정의 희생자이기도 하다.  사교육에 의한 지적 소화력 상실의 경험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교육을 매개로한 무한경쟁 시대에 빠져든 386 세대는 대단히 높은 정치적 단결성을 또 다른 특징으로 지닌다. 88만원 세대는 거의가 이태백 (이십대의 태반이 백수)이고, 그나마 직업을 가진 사람도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훨씬 많다고 한다. 88만원은 이런 이 시대 20대의 평균임금을 말한다.

우리 집에는 공교롭게도 유신세대와 88만원 세대가 동거하고 있다. 저자의 말처럼 아이들은 몇 년 동안 학원에 인질로 잡혀있었고, 우리는 볼모로 잡힌 자식들을 위해 다달이 꼬박꼬박 적지 않은 몸값을 지불해야했다. 그런 아이들이 한동안 식당의 아르바이트로 헐값에 청춘의 시간을 낭비하더니 이제는 또 2년여 동안  나라의 부름에 응해야한다. 저자에 의하면 유신세대는 사회적으로는 20대가 누려야할 경제적 몫을 가장 많이 노리는 약탈자이면서도 집에 돌아가면 그들과 부모 관계로 협력게임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적과의 동침이 아닌가.

정치가들은 경제를 살리겠다고 종주먹을 쥐지만 경제학자가 바라보는 우리의 현실은 암담하고 미래는 불투명하기 짝이 없다. 저자는 독일, 프랑스, 일본 등 각 나라가  세대간 경쟁과 세대내 경쟁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예시를 보여주며 그것을 통해 우리나라의 현재 상태를 비교한다. 또 저자는 국내의 세대간 상황을 점검하고 그들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이 가능한지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대안들이 어느 정도의 설득력을 지니는지는 나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저자가 읽어내고 있는 많은 교육의 문제나 현실의 상황들은 하나도 나를 비껴가지 않는다. 헌정부든 새정부든 모든 관계자들에게 필독도서로 읽히고 그 감상문과 함께 해결책을 한 가지씩 제시하라고 하고 싶을 정도다.  그것은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어진 현실을 인식하게 하기 위해서다.

저자가 부제로 달고 있는 "20대여, 토플책을 덮고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는 20대의 현재상황을 단적으로 말하고 있지만 다분히 선정적이다. 대화로 풀 수 없을만큼 시급한 상황이라는 뜻도 될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할 것은  '문제의 공유'일 것이다.  아직 무엇이라 규정되지 않은 10대, 88만원 세대의 주인공인 20대, 연공서열의 마지막 세대인 386세대, 두얼굴을 가진 유신세대 등 모두는 폭력으로 내모는 듯한 경향이 없지 않은 이 구호가 헛되지 않도록  상생하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강구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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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랑
수산나 타마로 지음, 이현경 옮김 / 자음과모음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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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나 타마로의 작품을 읽으면서 내가 접했던 이탈리아 작가들을 찾아보았다. 이탈리아 작가와는 친해질 기회가 별로 없었던 듯 싶다. 오래전 알베르토 모라비아의 작품을 읽었던 듯 싶은데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다. <장미의 이름>을 쓴 움베르토 에코도 이탈리아 작가였다. 이탈리아에 뛰어난 작가가 없는 탓인지 작품번역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은 탓인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마로의 소설은 여러권 번역이 되어 있는 듯 하다. 고려원에서 나왔던 『아니마 문디』가 인디북에서 『나는 깊은 바다속에 잠들어 있던 고래였다』라는 제목으로 재출간 되었나본데 여력이 되는대로 읽어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적어둔다.

 

사실 별 기대 없이 읽었다. 말이 생긴이래로 사람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렸을 '사랑'이라는 단어가 주는 진부함이 단단히 한몫했고, 그것이 어떤 사랑이든 사랑이라는 단어는 이미 내게 아무런 기대감을 불러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다. 표지의 글자체나 디자인, 색깔까지도 그렇게 호감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나의 이런 선입견은 타마로의 첫작품에서부터 뒷통수를 맞았다. 맞을수록 기분 좋아지는 뒷통수라니.... 

 

타마로의 단편소설을 묶은 『어떤 사랑』에는 다섯편의 소설이 실려있다. 대부분 일기형식이나 편지형식을 취하고 있어서 작중인물과의 거리감 없이 쉽게 읽히고 무엇보다 재미있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나면 단지 재미있었다고 말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소설속 주인공들은 대부분 버림받은 어린이나 유태인 할머니, 미혼모 등이다. 타마로는 자신의 소설속 주인공들을 그들의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성적, 육체적, 인종적 폭력앞에 아무런 저항도하지 않고 그것이 고통인지도 모른채 살아가는 인물들로 그려낸다. 그러나 이런 폭력은 주인공들을 육체적, 정신적으로 야금야금 갉아먹어 그들을 10대의 미혼모로, 정신병자로, 살인자로 만들어간다. 이런 과정을 그리는 타마로의 문장은 너무나 간결해서 끔찍하다. 너무나 냉담해서 가슴이 얼어붙을것 같지만 오히려 더운피가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표제작 <어떤 사랑>의 주인공 베스나는 열살이고 언청이다. 언청이 입 때문에 시집도 보낼 수 없을 아이를 부모는 스노타이어 2개를 받고 팔아버렸다. 베스나는 인류가 만든 직업 중에서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큰 돈을 버는 직업이라는 소매치기 훈련을 받는다. 베스나는 아침이면 거리로 풀려나 일을 하고 저녁이면 수하물처럼 트럭에 실려 돌아오곤한다. 누구나 외면하는 베스나에게 흰 셔츠를 입은 한 남자가 나타나 햇볕같은 친절로 그녀를 데려다 먹이고, 씻기고, 침대에 눕히고 책을 읽어준다. 그리고 베스나는 꿈을 꾼다. 엄마 고양이의 따뜻한 혀가 아이의 몸을 앞뒤로 닦아주는 꿈을.

나흘을 흰 셔츠를 입은 남자의 집에서 보내고 나왔을 때, 늘 베스나를 태우러 오던 자동차는 더이상 오지 않았고 함께 일하던 아이들도 보이지 않았다. 소매치기를 하다 경찰에 잡힌 베스나는 자기의 뱃속에 아기가 자라고 있는것을 알게된다. 

 타마로의 소설에 등장하는 유괴범들은 허리우드의 유괴범들과는 상당부분 대조적이다. 허리우드 영화속에 등장하는 피납자는 납치범들보다 필요이상으로 똑똑하다. 납치에 대한 증오심은 커녕 자신의 납치 상황을 무서워하기보다 오히려 즐기는 쪽으로 만들어버린다. 때문에 영화자체가 오락영화로 변하고만다. 반면 타마로 소설 속 피납자는 아무런 저항능력이 없는 미성년자이거나 장애아이다. 이같은 주인공의 설정은 타마로가 납치나 유괴의 비인도성을 말하는 방법인 동시에 이런 비인도적인 범죄행위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는 사회에 대한 고발이다.


 이책을 펴낸 '자음과 모음'이라는 출판사에서는 이탈리아의 어느 출판대행사와 독점계약을 맺은 모양인데 불편함을 금할 수 없다. 오역의 문제라기보다는 교정을 제대로 보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오류들이 너무나 많다. 대충 파악한 문장의 오탈자가 12군데나 된다. 267쪽 분량의 소설 한권에 이정도라면 1차 교정도 보지 않았다는 얘기 아닌가. 이탈리아의 문학작품을 우리말로 옮기는 번역가가 겨우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모양인데 골라볼 수도 없는 상황때문에 다음작품 읽기가 더욱 곤혹스러워진다. 출판사 이름이 '자음과 모음'이 아니었으면 덜 흥분되었을까 혼자 운산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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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포도주
마르셀 에메 지음, 최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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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 파리이고, 싸르트르, 에펠탑, 포도주, 패션 등등이 그 뒤를 잇는다. 파리는 여행하고 싶은 도시 중의 하나로, 못생기고 성격까지 괴팍한 싸르트르는 때때로 방문해야하는 까탈스러운 지인으로, 패션은 여전히 동경의 대상으로 남아있다. 그나마 포도주가 나와는 좀 친한 편이긴 하다만 나는 이상하게 값이 싼 불가리아나 칠레산 포도주가 좀더 입맛에 맞는것 같아 생경하기는 마찬가지다.  『파리의 포도주』는 얼마전 읽었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는다』는 로맹가리의 소설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로맹가리가 좀 지적이고 고급스런 감각이라면 마르셀 에메는 그를 수식하는 '국민작가'라는 말이 어울리게 소박하고 대중적인 느낌을 준다.
 
『파리의 포도주』에 실려있는 8편의 단편중 <좋은 그림>, <가짜 형사>, <당통>, <파리의 포도주>등을 재미있게 읽었다. <좋은 그림>은 보기만 해도 배가 불러지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에 얽힌 이야기다. 그의 그림은 화상으로부터 "창조의 본질이 무르녹아 있는 신비의 결정체" "物과 生의 진정한 다리"라는 극찬을 받는다. 찬사와 비난은 늘 양립하는 법이어서 화가의 친구이자 경쟁자인 또다른 화가는 그의 그림을 두고 "평생 그림을 손가락 운동으로 아는 머저리"라고 개탄하면서 그의 그림을 이발소 그림으로 치부해버린다.  반전을 거듭하는 <좋은 그림>은 주인공 이름을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중에 의미보다 어감을 중시한 작자의 의도를 고려해 익살스러운 우리말로 옮겨준 번역자의 수고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가짜 형사>는 질기고 튼튼한 양심을 가졌으나 세아이를 먹여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가짜 형사>노릇을 해야했던 마르탱에 관한 얘기. 그는 사람을 죽이는 일도 밥먹듯 한다. 이런 마르탱이 등쳐먹기 위해 찾아갔던 한 '지조 없는 여자'를 보는 순간 눈에 콩깍지가 씌였다. 그는 자신이 여자를 찾아간 목적도 잊고 미심쩍어 하는 여자에게 자신은 <가짜 형사>라는 영화를 찍는 배우라고 소개한다. 전쟁 직후의 피팍한 삶이, 사랑이 마르탱을 어떻게 갖고 노는지 궁금하신분,  읽어보시라.
 
오르골 소리를 듣기 위해 세 노인을 살해하고 감옥에 갇힌 <당통>, 항소는 기각되고 크리스마스 이브인 12월 24일 당통의 교수형이 예정되어있다. 감옥으로 죄인을 찾아온 신부는 영혼이 있기나 한지 의심스러울 만큼 착한 당통의 심성을 발견한다.  신부는 신의 아들이 어떻게 마굿간에서 태어날 수 있었는지 얘기해주고는 "알겠나? 당통군 그것은 가난한 자들의 편에서, 그들을 위해 오셨음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일세. 말하자면 감옥 안에서, 즉 가장 불행한 사람들 가운데서 태어나셨을 수도 있었던 거야." 라고 덧붙인다. 신부의 말은 교수대에서 증명된다.
 
포도주에 혐오감을 가진 남자와 포도주에 환장한 남자. 프랑스에서 이 두 부류의 남자는 모두 죄인이다. 포도주를 혐오하는 남자는 마치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다거나 공기를 싫다고 하는 것보다 더 천벌이고 자연의 기현상이다. 반면 포도주에 환장한 남자는 포도주가 나오는 분수를 꿈꾸고 서랍장의 모서리에 부딪힌 장인의 대머리에서 나오는 피까지 포도주로 본다. 장인의 대머리를 포도주병으로 보기 시작한 포도주에 환장한 남자는 병따개를 들고 장인의 주위를 맴돈다. 병따개가 병을 따기에 턱없이 작다는걸 알게된 그가 어떻게 인간 포도주병을 따는지.......
 
마르셀 에메의 단편들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마르셀 에메는 전쟁의 후유증으로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들을, 범죄를 일상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을, 사람을 죽이는 일에까지도 아무런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지 않고 유머러스하게 그려간다. 참혹한 현실 앞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는 예술을 보기만해도 배가 불러지는 '좋은 그림'으로 명명한 마르셀 에메의 상상력앞에서 사람들은  암담한 현실을 위로받거나 잠시 잊었을 수도 있었을 것같다. 마르셀 에메의 작품을 읽는 동안 작가의 상상력이라는 것이 대체 어디까지 다다를 수 있는지,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이 어디까지인지 생각하면서 내 딱딱한 해골이 잠시 녹녹해지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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