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지도리에 서서
이정우 지음 / 산해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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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은 강단 밖의 철학자가 쓴 철학 에세이다. 그는 대학교수라는 안정이 보장된 직업을 박차고 나와 <철학 아카데미>를 설립했다. 이곳에서 그는 그와 뜻을 같이하는 몇몇 철학자들과 다양한 강의를 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철학아카데미>에서 그의 강의목록을 찾아볼 수가 없어 아쉽다-. 그가 강단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개인적이면서도 사회적인 문제들은 그의 다른 책『삶․죽음․운명』에서 읽어볼 수 있다. 그는 이 책에서도 직접적인 발언을 한다. “우리의 철학계를 주도하고 있는 50대 이상의 기성학자들에게서는 어떤 희망도 기대할 수 없다. 그들은 고루할 뿐만 아니라 교활하기까지 하다”고.

그가 ‘살아있는 사유’를 위해 선택한 길은 허름하고 거칠었다. 그러나 ‘권력’보다 ‘매력’을 선택한 그에게 나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그의 독자를 자청하고 나섰다. 그가 책을 냈다는 소식을 접하면 그것이 번역본이든 그의 저작이든 무조건 사는, 하지만 읽지는 않는 아니 읽지 못하는 사이비 독자를 즐거이 나는 사칭하고 있다. 이쯤에서 내가 갖고 있는 그의 책을 한번쯤 점검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삶․죽음․운명』, 『시간의 지도리에 서서』, 『인간의 얼굴』, 『시물라크르의 시대』, 『주체』, 『들뢰즈와 가타리』, 『사건의 철학』, 『의미의 논리』,『탐독』. 새삼스럽게 책꽂이를 훑다보니 나는 참 무식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식한 사람에게 ‘용감’이라는 단어는 필수적으로 따라붙지 않던가? 나는 거기다 나오는 대로 족족 사들이는 부지런함에다 무조건 산다는 소신까지 보태었다. 이건 ‘폐인’도 아니고 ‘매니아’도 아니다. 이런 맹목적인  집착 혹은 읽겠다는 의지만 앞서는 이 중증의 증세를 뭐라고 불러야하나? 혹시라도 이글을 읽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나에게 독창적인 이름 하나 지어주면 좋겠다.

어쨌거나 나의 이정우에 대한 이런 맹목적인 집착에는 나 나름대로의 이유는 있다. 우선 그의 언어들이 너무나 정밀하다는 것이다. 특히 철학적 개념어에 대한 엄밀함은 사전보다도 낫다. 그의 철학적 사유가 부유하는 사유가 아니라 현실에 확고하게 발을 딛고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내게는 신뢰와 안정감을 준다.  할 수만 있다면 그의 밑에  보따리 싸들고 들어가 빨래도 해주고 공부도 하고  어깨라도 주물러 주고 싶은 심정이다.

정밀한 언어를 통한 그의 메시지는 내게는 상당히 무겁다. 그런데도 그의 강의를 듣고 있거나 책을 읽고 있으면 내가 많이 넓어지고 깊어지는 것 같은 충만함으로 나는 뿌듯하다. 그러나 그런 충만함은 잠시일 뿐 희한하게도 책을 덮고 나면 그에 대한 막연한 존경과 동경만이 달무리처럼 책 주변을 감싸고 있다. 아마도 철학자인 그가 무반성적인 나의 의식에 놓은 침에 취한 탓일 게다.  침을 맞아본 사람은 알겠지만 침에 취해 침 몸살을 앓고 나면 몸이 거뜬하고 사물이 새롭게 보인다. 그는 나의 의식에 몇 개의 침을 놓아 주었다. 과학기술과 자본, 미디어가 만드는 욕망의 삼각관계에 대한 침, 억눌리고 배제당하는 타자를 위해 비판이 견지해야 하는 침. 특히 과학과 시에 대한 큰 침을. 과학/기술은 환원, 격자화, 예측, 석화 등으로, 시는 탈주, 가로지르기, 탈은폐, 액화 등으로 범주화시킨 그의 큰 침은 커다란 통증을 몰고 왔다. 이제 내게 남은 일은 크게 침 몸살을 앓는 일이다. 그리고 의식의 건강을 찾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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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2-03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에 이 책 상당히 재미있고 인상깊게 읽었습니다.^^

반딧불이 2009-02-03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부분의 '과학기술과 시' 부분은 혼란스러울 때마다 지금도 한번씩 들여다본답니다. 독서경험을 공유하게 되어 반갑습니다.

비로그인 2009-02-04 03:26   좋아요 0 | URL
저도 반갑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이정우 저자에 대한 무조건적 믿음이 생겨, 민음사에서 출간된 미셀푸코의 '지식의 고고학'을 단번에 구입한 적도 있습니다(번역자가 이정우 씨라는 것 하나만으로!).그런데 미셀 푸코는 아직 저한텐 히말라야 산맥 처럼 오르기 힘든 산과도 같은 존재라는걸 통렬히 깨닫고는, 도중에 읽기를 포기하고 책장에 고이 모셔져 있는 상태이지요;;

반딧불이 2009-02-04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장에 고이 모셔져 있는 상태"도 공유하게 되는군요. 더욱 반갑습니다^.~
 
세계지도(한글판) 1000피스+액자+전용유액
블루캐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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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조카에게 줄 선물을 고르다가 두개를 구입했다.  취약한 세계지리 공부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책상위의 스텔라노바 지구본이 영문으로 된 것이어서 이것은 한글판으로 선택을 했다. 퍼즐로 맞추는 세계지도가 의외로 많은 것을 알았다. 제품을 만들어내는곳도 여러곳이고 색깔도 참 다양하고 고지도부터 현대판 지도까지 종류도 여러가지였다.

수입품도 있었지만 퍼즐조각을 잃어버렸을 경우 AS를 받을 수 없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가격면에서도 차이가 많이나서 블루캐슬 제품을 최종선택하게 되었다. 제품을 받고 처음 펼쳐놓았을 때 퍼즐조각을 맞춰놓는 받침판이 왜 없냐고 툴툴거렸더니 그런건 유아용에나 있는 거라고, 왜 자꾸 일을 저지르는거냐는 가족들의 야유를 들어야했다. 세계여행은 못가도 세계지도는 한번 그려봐야할거 아니냐고 맞짱을 떠가면서 눈치밥 먹어가면서 맞췄다. 세계지도의 윤곽이 잡혀갈즈음엔 다들 하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잔꾀를 부리느라고 액자의 뒷판넬을 빼어서 그 위에다 맞춰 나가기 시작했는데 가로 40피스, 세로 25피스로 놓여진다. 판넬의 크기와 딱맞아서 테두리를 먼저 맞추고나서 첨부된 접착액으로 틀을 먼저 잡아놓으면 훨씬 간단하고 편하다. 접착액은 팩으로 되어있는데 마침 다 쓴 과산화수소 프라스틱 용기가 있어 거기에다 담아서 썼더니 깔끔했다.

다 맞출 때까지 3,4일정도 걸렸는데 마지막 피스를 놓을때는 가족들을 불러다 장엄한(?) 순간을 함께 하자고 했더니 인간 승리라고 비아냥거리며 마지못해 합석해주었다. 그런데 맞추는데만 정신이 팔려서 지리공부는 뒷전이 되어버린 것 같아 다시 한번 해야겠다고 했더니 모두들 나를 정신병자 취급을 한다.

흩어져 있던 조각들을 모아 대륙을 만들고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이 그려질 때는 뿌듯했다. 특히 바다는 온통 푸른색이어서 맞추기가 쉽지 않았지만 오히려 퍼즐맞추기의 묘미는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지금은 액자에 넣어두었지만 언제가 마음이 심난해질 때 다시 한번 해보기 위해 접착액을 살짝만 발라두었다. 참 희한하게도 오늘 밤엔 지름 13센티미터 정도되는 스텔라노바 지구본이 전원을 연결하지도 않았는데 한눈에 쏙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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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책
박민영 지음 / 지식의숲(넥서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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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일은 즐겁기도 하고 참담하기도 하다. 전자의 경우는 처음 읽었을 때는 몰랐던 새로운 지식을 얻게 되거나 또 다른 의미로 충만해질 때이다. 후자의 경우, 책은 온몸에 붉은 줄 푸른 줄을 긋고 내 책꽂이에 꽂혀있으면서 자신의 알리바이를 증명하고 있는데 정작 나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다. 처음엔 그럴 수도 있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전자의 경험보다 후자의 경험이 잦아지면서 나는 영화속 여주인공처럼 혹시 내 머릿속에 지우개가 들어있지 않나 의심하게 되었다. 정기검진을 받으러 오라는 치과의사의 호의를 무시하다 어금니를 뽑아야했던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올랐고 어떤 식으로든 내 독서 방법에 대한 점검이 필요한 때였다. 

 알라딘에서 한참 뜨고 있는 독서에 관한 책을 발견했다.(http://blog.aladin.co.kr/734872133/1994606) 이 책은 표지부터 나를 사로잡았다. 책장이 바람을 일으키며 후르륵 넘어가는 이미지였다. 이 책을 읽고나면 나도 모든 책들을 저렇게 넘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마도 굼뜨고 껄끄러운 내 독서방식에서 비롯된 프로이트적 욕망의 발로였으리라. 더구나 저자가 일본에서 ‘미시마 유키오의 재래’라는 평을 들을 만큼 유명한 소설가라고 한다. 나는 날름 주문을 했고 책이 배달되어 오기까지의 시간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그 자리에 모두 읽어버렸다.  저자가 소설가인 덕분에 이 책의 대부분은 소설읽기에 할애되고 있었다. 더구나 그가 선택한 일본 소설들이 유감스럽게도 내가 읽어보지 못한 소설이 더 많았다. 나는 읽지 못한 소설들을 독서목록에 추가하고, 이 소설들을 읽은 후에 다시 한번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그리곤『책을 읽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이 책을 ‘소설을 읽는 방법’이라고 내 맘대로 바꿔버렸다.      

  이미지에 현혹 당했던 눈을 씻고 다시 고른 것이 박민영의 책이다. 우선 그가 이 책의 대상으로 삼은 사람들이 마음에 든다. ‘책을 읽어도 좀처럼 자신의 지적 능력이 발전하는 느낌을 받지 못하는 사람’, ‘책을 읽어야겠다는 마음은 있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읽어야할지 모르는 사람’, ‘독서를 통해 단편적인 지식이 아니라 폭넓은 교양과 깊이 있는 지적 역량을 갖추고 싶은 사람’, ‘지성인으로서 사회에서 큰 역할을 담당하고 싶은 사람.’ 머리 속 지우개에 대한 언급은 보이지 않았지만, 지적 능력, 교양, 지성인 같은 어휘들이 적당히 내 허영을 부추겼다. 책을 읽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잠언 같은 말들에 나는 또 많은 밑줄을 그었다.

책은 인간의 생각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촉진시킨다는 점에서 어떠한 매체보다 우월하다-23
기억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색에 의해서 얻어진 것만이 참된 지식이다 -41
책을 읽는다는 것은 외우는 게 목적이 아니라 이해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한다. -42
열역학 제2법칙을 모르는 인문계와 셰익스피어를 모르는 이공계 사이에는 거대한 장벽이 가로막고 있다. -79
공부하는데 시간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시간이 있어도 공부하지 않는다. -88
인간에게는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함으로써 이해되는 과정이 분명히 존재한다. -96
책과 문화가 서로 대화하게 하라. 그러면 독서의 즐거움뿐만 아니라 더불어 다른 예술작품을 향유하는 능력도 성장할 것이다. -102
무딘 연필이 좋은 머리보다 낫다. -113
반대하거나 논쟁하기 위해 독서하지 말라. 그렇다고 해서 있는 그대로 수용하기 위해서도 독서하지 말라. 그저 자신이 생각하고 연구하기 위해서 독서하라. -125
생각하지 않고 책장을 넘기기 위해서만 책을 읽는 무리들이 많다. -153
언어가 정밀하다는 것은 곧 사유가 그만큼 정밀하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154
지식은 타오르는 불과 같다. 처음에는 불을 붙여 주는 사람의 힘에 의지하지만, 불이 붙고 나면 그 스스로 타오른다. -196 
진정한 독서가에게 모든 책은 참고문헌일 뿐이며, 책에 있는 텍스트를 발견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참고로 하여 자기 내부의 텍스트를 발견하는 것이 목적이 된다. -227
자신의 생각을 발견하는 것. 그것이 독서의 진정한 목적이다. -228
가장 불행한 독자는 인쇄된 문자 이외에는 다른 것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다. -228
독서가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키는 과정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각을 수용하는 것에만 머무른다면 독서의 즐거움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229
독서가 다른 사람의 텍스트를 읽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텍스트를 읽어나가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232
메모는 자신이 책에 심어 놓은 수많은 지적 이정표이다. -248
사물의 실체에 접근하는 것은 불연기연, 즉 아니다 그렇다, 그렇다 아니다를 반복함으로써만 가능하다. -268 

  밑줄 그어 놓은 말들을  같은 내용끼리만 묶어보았다.  추려낸 내용들을 살펴보니 그간의 나의 독서행위는 무엇이든 그저 알고싶다는 욕심이 앞서서 눈도장 찍기에만 급급했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그저 줄거리 파악하기에 바빴고 애꿎은 형광펜과 칼라펜으로 책을 학대하는데 그쳤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가슴에 와닿는 말은 진정한 독서가는 텍스트를 읽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자신의 내부를 발견한다는 것이었다. 늘 바깥을 향해 흔들리던 눈길을 내 안을 향하도록 거두어들여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밑줄 그어놓은 많은 말들은 곧 내 기억 속 지우개의 밥이 될 것이다. 그러나 왠지 이제는 지우개가 두렵지 않다. 지우개가 지울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우개는 단지 나의 기억만을 지울 뿐 생각을 지우지는 못한다.  지우개가 지운 내 기억의 찌꺼기만큼 내 생각이 자랄 것을 믿기로 한다. 이제부터 다시 읽는 모든 책들은 내게 읽을 때마다 새로운 의미로 충만해지는 즐거움만을 가져다 줄 것이다. 


★ 이 책을 읽으면서 독서목록에 추가한 책
이삼성, 『20세기의 문명과 야만』
롤랑 바르트, 『현대의 신화』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히라노 게이치로, 『책을 읽는 방법』
헤르만 헤세, 『헤르만 헤세의 독서의 기술』
모디머J. 애들러, 『독서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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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하는 공부 - 강유원 잡문집
강유원 지음 / 여름언덕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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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듣기도 싫고 하기도 싫은 말 중의 하나가 공부라는 말이다. 내가 어릴때 우리집은 가난하고 아이들은 많았다. 그 당시로서는 오남매가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아버지의 경제력에 비해 공부해야할 아이들이 많았다는 거다. 때문에 아들들이 당연히 우선시 되었고 딸인 나는 은근히 책 좀 안봤으면,  공부좀 덜했으면 하는 암묵적인 분위기에 젖어 있어야했다.  그러니 공부하라는 말 한번 들어보지 못하고 학창시절이 끝난 셈이다.  그런데도 공부하라는 말은 듣기 싫다. 지금 생각해보면 공부하라고 할때의 그 공부가 듣는 사람이 하고싶은 공부가 아니었기 때문인 것도 같다. 또 오빠나 남동생을 겨냥하고 있는 그 말에는 공부를 잘해서 권력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한 기대를 담고 있는듯해서 옆에서 듣는 나까지 부담스러웠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가능하면 공부하라는 말은 삼키고 살았다. 참다 참다 하는 말이 고작 '책 좀 봐라' 였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초등학생이었던 아들은 만화로 된 '조선왕조실록'을 펴들었었다. 수십번을 봐서 책은 너덜너덜 한데도 그것만 본다. 한참 보다가 깔깔거리고 웃는 대목도 언제나  똑같다.  거의 외우다시피 봐도 여전히 웃긴다는 것이다. 참 질긴놈이다 싶으면서도 다른 재미있는 책들이 많은데도 왜 한가지만 파고드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아이들의 독서습관을 위해서는 부모가 솔선수범을 보여야 한다고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말은 순 거짓말이거나 경험적 오류다. 우리 집에서는 내가 책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이들은 책에서 멀어져갔다. 책을 읽다가 혼자보기 아까운 내용이 있어 읽어보라고 하면 엄마는 왜 이렇게 재미없는 책만 보고 있냐고 되묻는다. 좀 더 커서는 세상에는 책보다 재미있는 일이 너무 많다고 외려 가르치려 든다. 

 아이들 뿐만아니라 내 주변의 사람들은 날보고 공부하는게 그렇게 좋냐고 비아냥 거린다.  공부라고 해봐야 정말 공부하는 분들과는 체급이 다른 이야기지만 말이다. 나는 정말 할줄 아는게 아무것도 없어서 그냥 책을 보는거다. 즐거울 때가 많지만 책을 보는 것이 언제나 즐거운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 그나마 가장 즐겁고 가치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투자 할 것이다. 나도 하루 일과 중에 책 보는 시간을 가장 많이 할애하려고 애쓴다. 이 말은 상대적으로 따로 시간을 내지 않으면 책볼 시간이 없다는 얘기와도 같다. 직장생활과 집안살림만으로도 시간은 늘 모자란다. 책과 함께 있을때는 신간이 편안하다. 죽을때까지 책을 읽을 수 있다면 좋겠다. 아마도  어릴때 남들은 귀에 닳도록 듣는 공부하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하고 자란  무의식의 발로인지도 모르겠다.  

대를 물려 듣기도 싫고 말하기도 싫은 공부라는 것을 강유원은 몸으로 하라고 한다. 아니 하라고 하지도 않는다. 공부하는 사람은 어때야 한다라거나 자신은 이렇게 공부하고 있다는 자신의 생각을 좀 다부지고 논리적인 문체로 적어놓았을 뿐이다.  그에게  책을 읽는 것은 죽을 때 후회하지 않겠다는 '인생의 알리바이' 라고 한다. 죽을 때까지 읽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그것도 양에 대한 의미보다는 깊이에 천착한 '인생의 알리바이'다. 한권의 책을 반복해서 읽으면서 그 텍스트의 의미를 정확하게 읽기를 그는 권하고 있다. 그러나 『몸으로 하는 공부』라는 이 책을 읽다보면 그는 독서의 깊이 못지 않게 넓이도 갖추고 있고 읽은 책에 대해 생각하고 정리하는 공부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다  짐작할 수 있다. 원전에 입각해서 수십번씩 읽고 생각을 모으고 정리했다는데까지 생각이 미치니 참 독한 사람이다 싶다. 그는 이런 방법을 그의 스승에게서 배웠다고 한다. 참 존경스러운 분이고 그것을 또 몸소 실천하고 있는 그도 마땅히 존경받아야할 사람이다.

 근대가 시작될 무렵의 시기를 계몽주의 시기라고 한다. 계몽주의의 모토는 '이성을 대중화하라'였다.  현대는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대중은 매체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다. 강유원은 대중을 우민화하는 대중매체에 대항하여 '대중을 이성화하라'고 외친다. 그것은 지식인의 몫이라는 것이다. 그가 지식인으로 꼽고 있는 대상은 소설가와 대학에 관련된 교수 혹은 그 주변인물들이다. 그는 어떤이가 명백하게 '돈을 위해서 소설을 쓴다면, 즉 소설을 하나의 상품으로서 생각하고 있다면 우리는 그를 소설가가라 부를 수는 없고 기업가라 불러야 마땅하다'고 한다.  대학의 지식인들이 그들을 먹여살려주는 학생들을 위해 공부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나 이를 해결하기 위해 '쿠폰제'를 적용해야한다는 제안은 너무나 가슴에 와 닿는다.  

 강유원은 세가지 학문하는 태도를 짚는다. 그것은 현존하는 것에 대한 의심에서 출발하는 인문학적 태도, 사태에 대한 객관적 파악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과학적 태도, 현실적으로 실현가능한 것을 찾고자하는 공학적 태도이다. 가장 좋은 학문하는 태도는 이 세가지 태도가 잘 어우러져야 한다는 것이다.

강유원은 이 밖에도 지식인과 매체와의 관계, 패스트푸드의 전체주의 등을 짚는다. 그는 매스미디어에 등장하는 지식인들에 대해 '명성에 굶주린 거지'라고 부르고 부르디외를 인용하여 '일회용 사고의 전문가들'이라고 꼬집는다. 이러한 단어들은 읽는이들에게도 자극적이지만 그가 지향하고 있는 지식인의 태도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해준다. 맥도날드는 패스트푸드의 대명사다. 맥도날드가 성공하게된 전략적 특성을 명료하게 요약 정리 한 그는,  전세계적으로 성공신화를 거둔 '맥도날드화'는  폭력과 억압, 독재자의 모습을 떠오르게 하는 정치적 형태의 전체주의보다 더 무서운 전체주의라는 경고를 잊지 않는다.

강유원의 『몸으로 하는 공부』를 읽으면서 나는 감동보다도 부끄러움을 먼저 느껴야했다. 무언가를 참 많이도 하고 있지만 제대로 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것 같은 자괴감이 몰려왔다. 나는 날날이 직장인이었고, 날날이 엄마, 주부였고, 순 날날이 원생이었다. 한마디로 순 날탕 인생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의 책은 무지한 나를 이성화 시키는데 단초가 되어주었다.  그가 궁금해졌고, 자신의 싸이트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www.armarius.net)  다양한 책들을 함께 읽어가는 독서클럽, 원전강독, 많은 리뷰들이 그대로 오픈되어 있었다. 내게는 버겁겠지만 자주 들러서 몸으로 하는 공부를 함께 해야할 것 같다. 한동안 강유원을 해바라기 할 것같은 불길한 예감으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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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를 정리하다가 그냥 버리기 아까운 책들이 있어, 혹시라도 유용하게 쓰실분들이 있을까 싶어 중고책 판매에 등록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분이 주문을 주셨는데 마땅히 쓸 봉투가 없었어요. 서류봉투에 넣자니 배송중에 찢어지지 않을까 염려되었고, 종이 상자를 이용하자니 한권넣고 덜렁거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마침 알라딘에 주문했을때 오던 봉투가 생각나서 검색했더니 이 봉투가 있더군요. 그런데 처음 한장을 주문해보니 200-300페이지 분량의 책 두권이 꼭 맞게 들어가서 요긴하게 사용했습니다. 마음에 들어 오늘 다시 5장을 주문했는데 처음받았던 봉투와 싸이즈가 다르네요.

봉투의 싸이즈가 두가지 있나봅니다. 오늘 받은 봉투는 처음 받았던 것보다 1.2배정도는 되는 것이 책 400여페이지 하드커버 책 두권도 넉넉하게 들어가는군요. 색상도 튀지 않으면서 찢어질 염려도 없어 안심하고 보낼 수 있네요. 값도 싸서 애용하게 될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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