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드라마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Easy 고전 27
이정우 지음 / 삼성출판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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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까지만 해도 인간은 신의 피조물이었다. 탄생과 죽음, 고통과 행복 모두 신의 뜻이었다. 근대가 시작되면서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 한다’는 말은 그러므로 신에 대항하는 가장 불경스러운 말이 아닐 수 없었다. 나의 주인이 이제 더 이상 신이 아니라 나라고 외쳤으니 말이다. 그런데 여기 또 하나 불경을 저지르는 이가 있다. 바로 동물 행동학을 연구하는 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다. 그는 나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나의 주인은 유전자라고 외친다. 나는 다만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하는 ‘로봇’에 지나지 않으며 유전자를 몸에 간직하고 있는 ‘생존 기계’일 뿐이라고 한다. 덧붙여 이 유전자는 이기적이기까지 하다. 이타적으로 보이는 행동까지도 그 내면은 이기적이라는 것이다.

종교를 갖지 못한 나는 한번도 신에게 용서를 구한 적 없고, 감사의 기도를 올린 적도 없다. 나라는 개체가 엄마 아버지의 사랑의 행위의 결과물이라는 것은 중학교를 다닐 때쯤 알았던 것 같고 한참 반항기 때에는 뭣 때문에 나를 낳았냐고 부모 가슴에 못 깨나 박았었다. 철이 든 후에는 부실하긴 하지만 그나마 사지가 멀쩡하게 낳아 사람구실 하고 살게 해 준 부모님께 내놓고는 아니더라도 마음속으로 고마워하기도 했다. 그런데 도킨스를 읽고 나니 모든 것이 허무해져 버렸다. 내가 고마워해야할 대상이 있다면 그것은 부모가 아니라 만질 수도, 볼 수도 없이 내 몸속에 있는 유전자이니 말이다. 유전자는 내 부모의 몸을 빌려 내게 어떤 유전자를 전달했을까? 또 내 안의 유전자는 내 몸을 빌려 어떤 형질을 내 자식에게 전하려고 하는 걸까?

이 세계가 어떤 절대자에 의해 프로그램화 되어있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그 프로그램대로 살아간다는 내용의 영화를 볼 때만 해도 그 발상의 기발함에 찬탄하기만 했다. 마이클 폴란이 그의 책 <욕망하는 식물>에서 사과, 튤립, 대마초, 감자 등의 식물이 지구상에 번성하기 위해 인간으로 하여금 달콤함, 아름다움, 도취, 지배의 욕망을 가지도록 유도했다고 했을때도 인간과 식물이 뒤바뀐 관점의 차이때문에 신선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도킨스가 진화의 기준을 개체나 종이 아니라 유전자라고 하니까 갑자기 안팎으로 나의 존재 자체가 위협받는 느낌이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했으나 어른이 된 이후 인간의 유한성을 인식하게되고 갑자기 나라는 생명의 존재 이유는 무얼까 궁금해진것도 잠깐, 찰나 간에 스러지는 존재의 통증이 밀려와 눈이 흐릴 때도 있었다.  유전자가 자기생명을 복제하기 위해 잠시 '나'라는 개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니 나는 자동판매기의 일회용 종이컵과 다를바 없이 여겨진다.

동물행동학연구자인 도킨스가 윤리학의 용어와 생물학 용어를 접목시킨 “이기적인 유전자”는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고 읽는 사람을 매료시킨다. 도대체 인간이 파헤칠 수 있는 생물의 비밀이 더 있을까 싶기도 하고 식자우환이라는 말도 떠오르고 차라리 몰랐으면 더 좋았을걸 하는 생각도 든다.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를 저자의 의도를 따라 요약하고 도킨스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철학자 이정우가 덧붙인 글이 없었다면 아마 도킨스의 이야기에 빠져 오래 헤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정우의 이의제기가 있어 책읽기는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도킨스가 자신의 논지를 펴기 위해 예로 든 많은 동물행동에 관한 에피소드들이 <이기적인 유전자>에는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흥미보다는 400여쪽에 달하는 도킨스의 책을 100여쪽으로 의미의 변질 없이 요약하고 이의제기 까지 덧붙여 짧은 시간 내에 내용파악을 그것도 쉽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이기적인 유전자>를 읽기 전에 읽어도 좋고 읽고 난 후에 읽어도 큰 도움이 되는 책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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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벌이의 지겨움 - 김훈 世設, 두 번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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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더운 탓인지 모든 것이 살바도르 달리풍으로 늘어지고 있다. 글이 안써지는 것은 물론이고 책도 잘 안읽힌다. 그렇다고 바깥에서 시간을 죽이는 것도 아니다. 쥐고는 있지만 넘어가지 않는 책이 많아 부담없이 읽을 책을 고르다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꺼내들었다. 그런데 이 표지의 이미지는 알라딘에 없다. 다른 싸이트에서 이미지들을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거리의 인물풍경을 한컷 옮겨놓은 듯한 이 그림은 가까이에서보다 거리를 두고보아야 잘보인다. 투박한 듯한 질감과 풍성한 색감때문에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책을 읽었다.   

 <김훈 世說, 두번째>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世說이 수필 혹은 에세이라는 말과 어떻게 다른지 모르겠다. 남과는 다르고 싶은 김훈의 미적 감수성이 느껴지는 듯해서 또 못마땅하다. 작가라면 응당 자신만의 문체를 가지려하고 또 그래야하지만 유독 김훈에게만은 그것이 왜 밉살맞게 느껴지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왜 나는 그에게 성난 고슴도치처럼 털을 세우는 걸까? 불편해하면서도 꾸역꾸역 그를 읽는건 또 뭔가? 작품에서는 늘 이쪽편도 저쪽 편도 아닌 양비론을 펴다가 정치적으로는 언제나 극우, 보수의 편에 서는 이문열처럼 싸잡아 욕할만한 빌미를 제공하지 않는 탓에 밉살맞은 것일까? 일면식도 없는 김훈에게 까닭도 없이 생긴 내 마음의 미운털을 뽑아보자는 심정으로 그의 글을 읽었다. 

 총 4부로 나누어진 이 책은 김훈이라는 한 개인의 또 작가로서의, 기자로서의 다양한 면모들을 생각하게 해준다. 이 책은 그가 기계문명에서 애써 스스로를 왕따시키려는 중년의 한 사내라는 것, 작가적 능력을 갖추고 상업적 성공을 거둔 소설가라는 것, 어떤 이념에 갇히지 않고 리버럴리스트로서 소신껏 기사를 쓰고 싶어하는 기자라는 것을 낱낱이 증거하고 있는 듯하다. 그는 컴퓨터나 자동차 등 문명의 이기에 편승하지 않고 자신의 몸이 부딪히는 정직성을 믿고 그곳에 가치를 부여한다. 때문에 그는 아직도 연필과 지우개로 글을 쓰고 지우며, 나침반을 들고 자전거로 여행을 하고 인라인스케이트를 탄다. 기자로서의 그는 제네바 협정은 추악한 위선이라고 외치고 황사바람을 맞으며 밥을 먹는 전경들의 식판에서 히딩크 감독의 어퍼컷 세리머니로, 더이상 이념이 작동되지 않는 대학 현수막과 파업현장 등을 넘나든다.

내게 가장 돋보이는 것은 일하기보다 놀기 좋아하는 소설가로서의 그가 사물에 천착할 때이다. 그의 '놀이'는 돈쓰며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혼자 마주하는 일이다. 그가 발 딛고 있는 어디에서나 세상과 혼자 놀면서 만난 풍경들이 마음에 와 닿는다. 건물이 무너지고 둑방이 터지는 폭우속에서도 온전하게 남아있는 새들의 둥지를 보고 그는 쉽게 눈에 띄지는 않지만 그 헐거움 속에 내장된 강력함을 읽어낸다. 그가 자전거 여행길에 만났을 경기도 서해안의 소금창고는 '존재의 형식을 이 세상에 드러내 보이지 않으려는 퇴행의 건축물이'며, 11월의 임진강가에서 만난 바람속의 나비는 '바람에 날개를 뜯기면서 애초에 바람이었던 것처럼 풍화'하는 등 그가 만나는 사물들은 그의 언어로 새롭게 형상화되고 빛난다. 

 
그의 책 표지의 그림은 오치균이라는 화가의 아크릴화라고 뒷표지에 밝혀져 있다. 그는 손가락으로 물감을 찍어 그림을 그린다고 하는데 거친듯 하면서도 부드러운 그의 그림들이 마음에 와닿는다. 연필로 글을 쓰는 작가와 붓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그리는 화가와의 만남이 이 책을 한정특별판으로 발행한 까닭인듯 하다. 한정특별판을 살 의도는 전혀 없었다. 아마 이런 정보를 알았다면 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모르고 산 책이 내게 배달되어와 마치 김훈이 보내온 뜻밖의 선물인 것만 같다. 아무 까닭도 없이 그에게 곧추세웠던 고슴도치의 털이 조금 누그러드는 기분이다. 책표지의 그림은 찾지 못했지만 오치균의 싸이트가 있어 링크해둔다. 

 

http://www.ohchigyun.com/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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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갔다가 찾는 책이 없어 주위를 살피던 중 손택의 <문학은 자유다>라는 책을 집어 들었다. 주말인데도 열람실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빈자리가 없는 탓에 바닥에 퍼질러 앉아 책을 보는 사람도 있고, 벽을 등받이 삼아 기대고 보는 사람, 서서 보는 사람 등 한여름 도서관의 풍경은 기온을 높이는데 한 몫 단단히 하고 있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35도를 넘는 더위를 식히는데 도서관만큼 유용한 곳도 없는듯 싶다. 냉방 잘 되고, 보고 싶은 책 널려 있고, 문만 열면 싼 값에 시원한 음료며 뜨거운 커피를 입맛대로 고를 수  있고, 문하나를 더 열면 고목들이 우거지고 다람쥐가 가끔 시선을 잡아채는 숲에서 자연의 맛도 느껴볼 수 있다. 

좋아하는 작가가 참 많은 것 같은데도 여성작가로는 손택이 유일하다. 아껴 읽는다는 것을 나는 유일하게 이 여성에게 적용하고 있다. 한번 손을 대면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끝을 봐야하는 극장안에서의 팝콘같은 독서는 손택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녀의 글은 오징어를 씹듯이 꼭꼭 씹어야 제맛을 느낄 수 있지만 오징어처럼 뻣세고 질기지 않다. 그녀의 글은 가슴을 뜨겁게 하기보다 정수리에 얼음물이 한 방울씩 떨어지듯 나를 긴장하게 만든다.  

마침 한 학생이 짐정리를 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는 여유있게 자리를 잡고 앉아 잠깐 동안 손택의 글을 읽었다. 아름다움에대한 그녀의 정리는 깔끔하다. 그녀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그녀의 아들이 어머니를 추억하며 쓴 글도 가슴에 와 닿는다. 평생을 두고 만나야할 것 같은 운명을 예감하면서 그녀의 리스트를 만들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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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자유다- 수전 손택의 작가적 양심을 담은 유고 평론집
수잔 손택 지음, 홍한별 옮김 / 이후 / 2007년 12월
16,500원 → 14,850원(10%할인) / 마일리지 82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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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로서의 질병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2년 12월
16,500원 → 14,850원(10%할인) / 마일리지 82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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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4년 1월
16,500원 → 14,850원(10%할인) / 마일리지 82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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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의 연인
수잔 손택 지음 / 한나래 / 1993년 12월
6,800원 → 6,800원(0%할인) / 마일리지 34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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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우울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염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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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번째 만나는 일본의 소설가다. 『책을 읽는 방법』이라는 실용서로 처음 만났고, 우연히 헌 책방에서 『문명의 우울』을 발견했다. 책 제목에서 현대문명을 바라보는 소설가의 시선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집으로 가져오는데 크게 망설이지 않았다. 하드커버의, 옮긴이의 말까지 다 합쳐도 130여쪽도 안되는 작은 책이다. 이 책은 일본에서 발행되는 『Voice』라는 월간지에 연재된 「寫眞抄」라는 에세이를 묶은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寫眞抄」의 편집인의 의도가 재미있다. 편집부에서 매월 이삼십장 정도의 사진을 작가에게 보내고, 작가는 거의 직감적으로 사진을 골라내고 그 사진의 기사조차 읽지 않고 느낀대로 글을 쓰는 방법이었다.

 편집자의 의도는 재미있지만 작가에게는 무모한 글쓰기 방식이기도 할 것이다. 정말 작가의 말대로 자신이 선택한 사진에 대한 기사조차 읽지 않고 글을 써야한다면 상당한 위험을 무릎써야 할 것같다. 사진과 그 사진이 담고 있는 사건이 물위에 기름 뜨듯 따로 놀 수도 있을 것이고, 사진이 요구하는 사건의 핵심에 다다르지 못하는건 아닐까 하는 불안 또한 만만치 않을 것 같다.

 나는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이런 편집진의 의도를 알았다.  그래서 책의 차례와 글을 대강 다시 훑으면서 이 글을 쓸 때 작가는 무슨 사진을 보았을까를 거꾸로 상상해보았다. 거기에는 영화 포스터도 있고, 게임기의 광고, 낙서, 9.11테러, 장기이식, 휴대전화 등 현대문명을 지칭하는 다양한 이미지들이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러면서 작가의 역량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작가는 작가 개인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지만 그것이 히라노 게이치로라는 작가에게만 그치지 않고 소설가로, 일본사회로, 그리고 현대사회로 확장되고 있다.

 좋은 글에 대한 기준은 다양하겠지만 작가의 세계인식이라는 것에 한 표를 주고 싶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부터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 그것들을 자기만의 어법으로 다시 쓰는 능력 등은 눈여겨 보야할 것이었다. 작가는 도시 아이들의 목에 걸려 있는 열쇠에서 "작은 금속제의 부재" 혹은 "그 아이들 집의 공허"를 읽어내고, 장기이식이라는 의료기술의 진보를 보면서 인간이 죽으면 그것들을 분해하여 새로 이용한다는 발상에 대해 그는 "인체의 리사이클"이라는 말과 함께 어디까지가 "인간 자신"인가를 묻기도한다. "어쩌면 인간을 자신이라는 통일된 성 안에 가두어두는 것은 윤곽이라는 극히 단순한 것뿐일지도 모르겠다."는 그의 말은 곱씹어보게된다. 문명은 그것의 빛으로 그늘을 감추지만 『문명의 우울』은 빛과 그늘을 함께 보게 해준다.  

 소설가의 소설은 읽지 않고 에둘러 가고 있다. 그의 작품을 독서 목록에 추가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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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권장 한림신서 일본학총서 70
후쿠자와 유키치 지음, 남상영 옮김 / 소화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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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 일본에  다녀온 후 몇장의 지폐를 환전하지 않고 아직 보관하고 있다. 잘 꺼내보지도 않지만 나쓰메 소세키의 얼굴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일만 엔에는 후쿠자와 유키치의 초상이 실려 있다고 하는데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이 사람을 몰랐었다. 지금 살펴보니, 게을러서 환전을 하지 않고 갖고 있는 각국의 지폐는 각양각색의 인물열전이기도 하다.

지폐에 얼굴이 있는 사람의 책을 읽는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자하는 것은 아니지만, 후쿠자와의 얼굴이 일본의 최고액 지폐인 10000엔에 실린 것은 1984년이라고 한다. 일본 근대 문학의 대표라 할 수 있는 나쓰메 소세키의 사진과 일본의 근대화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는 후쿠자와의 사진이 나란히 지폐에 실리게 된 것은 좀 의미가 있지 않나 싶다.

흔희 우리의 근대를 이야기 할 때 일본으로부터 이식된 근대라고 한다. 이식된 근대는 많은 문제를 야기했지만, 가장 큰 문제는 근대가 이식되는데 있어서 근대의 정신보다 물질적인 면이 주류를 이루는 외형만이 이식되었다는 것일 것이다. 일본에 의해 우리의 근대가 이식되었는데, 그렇다면 일본의 근대화는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1854년 일본 역시 미국의 무력에 굴복해 불평등조약을 맺고 개항을 했다. 그 후 서구 열강들이 몰려왔고 일본은 빠른 속도로 근대화를 추진해 나갔다. 일본의 근대적인 문명개화의 추진과 독립을 지키는데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이 바로 후쿠자와 유키치다. 후쿠자와는 밀려들어오는 서구문명으로부터 외형적인 면만이 아니라 일본인들의 내면 역시 문명화를 이루어야한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학문을 권장하고 있다. 후쿠자와가 권하는 학문은 단순히 문자를 익히는 일에 그치지 않고 익힌 내용을 실생활에서 실천하는 실학에 기초를 두고 있다. 후쿠자와 스스로도 처음 형의 권유로 난어(蘭語)와 난학(蘭學)을 익혔지만 후에 영어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독학으로 영어를 익힌다. 서양의 문물이 마구잡이로 쏟아져 들어오는 근대화의 시기에 그는 실학을 실천한 것이다. 또한 그는 유치원 및 대학을 설립하고 다양한 서양학술 서적들을 번역하는데 앞장섰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많은 어휘들 문명(civilization). 연설(speech). 저작권(copyright)등도 모두 그의 번역어라고 한다.

 

 

후쿠자와는 一身獨立, 一家獨立, 天下國家獨立를 강조하는데 이는 『대학』의 修身齊家治國平天下와 맞닿아 있다. 그는 국민들 개개인의 독립을 특히 강조했다. 그가 이 책을 쓴 이유도 이와 같은 이유이다. 당시의 근대화는 지금 내가 느끼는 세계정세보다도 더 급변하게 돌아갔을 것이다. 시대의 급류 속에서 올곧게 독립된 민족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들 개개인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닫고 몸소 실천했던 학자의 긴장감과 절실함이 느껴졌다.  일본과 따로 생각할 수 없는 우리의 근대화에 후쿠자와의 이런 정신이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가 의문으로 남는다. 후쿠자와의 초기 저작인 이 책의 내용과는 달리 1894년 청일전쟁 발발 당시 군비 명목으로 만엔을 정부에 지원했다는 후기사상의 변화 역시 짚어야할 것으로 남는다. 일본인들은 현재의 만엔짜리 지폐에 그의 초상을 남겨 그가 전쟁지원금으로 낸 만엔을 기념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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