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찬기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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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이야기란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과 화해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공물이라고 롤랑 바르트는 말했다. 바르트의 말대로라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주인공 베르테르가 이 세상과 화해하기 위해 지불한 공물인 셈이다. 그러나 베르테르가 세상과 화해하기 위해 지불하고 간 공물을 확인할 때 우리는 그가 세상과 끊임없이 불화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아야한다.

이성의 결정체 같은 알베르트와 불화하는 베르테르의 감성, 약혼자가 있는 여성을 사랑하는데서 생겨나는 윤리, 도덕과의 불화, 베르테르를 초대한 백작의 집에서 부딪치게 되는 계급제도, 관습과의 불화 등 베르테르는 개인과도 사회와도 불화했다. 그는 자신이 불화한 증거를 ‘빌헬름’이라는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세밀하게 적어두었다. 친구의 답장이 전혀 나타나지 않아 그것은 독백에 다름 아니다. 그의 독백은 1771년 5월 ‘싱싱한 청춘의 계절’에 시작된다. 그리고 1772년 12월의 크리스마스 직전에 오른쪽 관자놀이 위를 관통하여 뇌수가 밖으로 터져 나와 있는 몸과 로테에게 남긴 편지로 마무리 된다.

그가 남긴 편지형식의 독백은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모든 것은 로테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로테를 중심에 두고 그는 멀어지기도 하고 가까워지기도 하면서 로테를 향한 자신의 감정을 거울삼아 모든 사물을 본다. 한겨울에 꽃을 꺾으러 산 속을 헤매는 미치광이, 과부를 사랑하다가 자신의 연적을 죽인 하인의 모습에서 베르테르가 본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의 모습이었다. 이런 사랑의 실패자들을 지켜보면서 베르테르가 선택한 것은 자살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살은 실패가 아니라 영원한 자유라고 말한다. “귀한 혈통의 말은 무섭게 몰아대서 흥분하게 되면 본능적으로 스스로 혈관을 물어뜯어 숨을 돌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도 역시 스스로 혈관을 끊어서 영원한 자유를 얻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베르테르는 자신의 머리에 총알을 관통시켜 영원한 자유를 찾았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남은 이들에게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 알베르트의 총을 빌려 자살함으로써 그에게 영원히 안고 가야할 마음의 짐을 남겼다. 로테에게도 평생 새살이 돋지 않을 상처와 마르지 않는 슬픔의 샘을 팠다. 베르테르는 자유를 향해 떠났고 상처와 슬픔은 살아남은 자의 몫이다. 어쩌면 베르테르는 로테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로테를 사랑하는 자신의 사랑을 사랑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베르테르는 처음 로테와 춤을 출 때 푸른 연미복에 노란 조끼를 입었었다. 그는 같은 옷을 입고 주머니에는 처음 로테를 만났을 때 그녀의 가슴에 달려있던 분홍 리본을 넣고 자살했다.  베르테르의 사랑이야기를 읽은 많은 젊은이들이 자살에 감염되었다는 베르테르 효과에 대해 들은바 있다. 그들은 베르테르와 같은 복장을 했다고 한다. 자살을 감행한 사람들은 베르테르에게서 그 자신의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베르테르가 미치광이나 하인에게서 스스로의 모습을 보았듯이.  

사랑에 함유된 어떤 성분이 이들을 자살로 몰아갔는지 알 수 없지만, 자살은 짝사랑이 낳은 가장 치명적인 부작용이다. 나는 살갗이 벗겨진 채 소금밭을 뒹굴더라도 스스로 목숨을 끊고 상대방을 홀로 남겨두는 일은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자살한 영혼은 구원받을 수 없다는 기독교 교리 덕분에 탄생한 드라큘라백작도 혼자 남겨진 사랑 아니던가. 얼마나 많은 남겨진 사랑이 흡혈귀로 변했을까. 그러나 아무리 타인의 피를 빨아도 버림받은 사랑은 재생되지 않는다. 다만 사랑위에 또 다른 사랑을 덧칠하여 감출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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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생각쓰기
윌리엄 진서 지음, 이한중 옮김 / 돌베개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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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적으로 글쓴이가 팔아야 하는 것은 글의 주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가끔 내가 쓴 글들을 들여다보면 글 속에 내가 있다. 글 속의 자신을 마주하는 일은 부끄럽고 때로 아주 모진 일이다. 그 속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미숙한 시선이 있고, 삶과 사랑의 상처가 덕지덕지 붙어있기도 하다. 아무리 빛나는 수식어로 치장하려고 해도 감추어지지 않는 날것들이 뿜어내는 냄새도 있다.

자기 자신을 팔자. 그러면 자신만의 주제가 호소력을 발휘할 것이다. 자기 자신과 자신의 생각을 믿자. 글쓰기는 자아행위다.

나는 나 자신을 팔려고 생각해본 적 없다. 다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고자 했을 뿐이다. 나의 삶이 월척 한 마리 낚아보겠다고 밤을 꼬박 새우는 낚시꾼과 하등 다를 것이 없었으므로 ‘부르튼 입술로 또 하루를 입질한다’고 썼다 <베드타임 스토리>. 

월세방을 전전하다 전셋집으로 옮겨 앉았을 때 누가 꽃사과나무 화분을 선물로 주었다. 나는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기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계절은 겨울을 노크하고 있는데 통통하던 줄기는 윤기를 잃고 점점 시들어갔다. 아주 죽어버린 것은 아닌지 작은 가지 하나를 꺾으려다가 물컹! 하고 손끝에 전해져오던 그 탄력 있는 이물감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내가 꺾은 것은 나뭇가지인척 붙어있었던 자벌레였기 때문이다. 나동그라진 자벌레를 보면서 나로 인해 누군가 꽃사과나무처럼 시들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나도 누군가의 것을 빨아먹는 자벌레일지 모른다는 느낌은 끔찍했다. 그래서 ‘어떤 보이지 않는 눈 있어 천연덕스레 나 꽃사과나무에 세 들어 살았네’라고 썼다<자벌레>. 가시를 세운 바람이 창문을 흔드는 겨울날 나는 갑자기 몸 둘 곳, 마음 둘 곳을 잃었다. 아마도 내 온기 결핍증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누구를 위해 글을 쓰는가. 글은 누구보다도 스스로의 즐거움을 위해 쓰는 일이다.

부르튼 입술로 하루를 입질하고 자신이 타인의 체액을 빠는 벌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결코 즐거운 일일 수 없다. 그럼에도 나는 쓴다.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을 쓰든 작가로서 내가 팔 것은 나 자신이다. 그리고 여러분이 팔 것은 여러분 자신이다.

내 글을 팔려고 의도하지 않았다. 나는 팔기보다는 소통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돈은 안 되지만 이 소통도 한편으론 내 글을 파는 행위이니 생각을 고쳐먹자. 지방에 계시는 어떤 분이 내 시를 읽고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올곧게 읽어 보내준 편지를 받았을 때의 그 기쁨을 단지 기쁨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소통의 기쁨 뒤에 낱낱이 내가 읽히는 두려움이 뒤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나는 평생 내 시의 첫 독자의 자리에 그를 모실 것이다.

어느 평론가가 내게 다섯 편의 시를 보내달라고 했다. 나는 기뻤고 내심 기대 또한 있었다. 전문가의 눈에 내 시가 어떻게 비치는지 몹시 궁금했다.  나는 누구에게도 내 시를 읽어달라고 부탁하거나 구걸한 적 없다. 시가 내 손을 떠나 지면에 발표되고 나면 그건 독자의 몫이라고 생각해왔다. 많은 이들의 관심을 사로잡을 명편을 써내는 것은 모든 작가의 희망이고 나 또한 그런 희망이 없지 않다. 그렇지만 독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과장하거나 엄살떨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비평가는 자신이 평가하는 매체에 애정을 가져야한다.

문학평론가는 기본적으로 문학에 애정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또 전문직이니 남들보다 더 많이 읽고 썼을 것이고 그러니 더 깊이 읽을 것으로 생각했다. 최근 ‘김현의 현현’이라는 세간의 상찬을 받고 있는 평론가가 있다. 나는 그의 글을 읽으면서 그가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기뻤다. 그의 글은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웠지만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그 마음이야말로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단의 어른들(신경림, 고은)께 올리는 공손한 회초리가 없었다면 나는 그를 신뢰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비평은 진지하고 지적인 행위다. 그것은 진지한 예술작품을 평가하고 그 작품을 같은 매체 또는 같은 예술가의 다른 작품들이라는 큰 맥락 속에 놓는 것이다.

나는 등단한지 이제 겨우 일년 남짓 되었고 발표한 원고래야 등단작 포함 고작 20여 편에 불과하다. 시집 한 권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나도 저자의 말처럼 ‘비평은 진지하고 지적인 행위’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제 전문가의 눈에 띄었으니 ‘같은 매체 또는 같은 예술가의 다른 작품들이라는 큰 맥락 속에 놓’이기를 기대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내가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단 한 줄도 읽혀지지 않고 있었다. 그 평론가는 S대 출신에 모 대학교 인문학부 교수님이시다.  S대 출신에 교수님이시고 평론가인 분이 내 시를 못 읽어냈다고 말한다면 그건 나의 오만일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시인이 하고자하는 이야기를 교묘하고도 알뜰하게 비껴 읽는 이 탁월한 능력이 전문가의 능력이라니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시와 시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것들과 그들이 표현하자고 하였던 것, 그리고 그것이 읽는 자에게 야기시킨 심리적 동요를 다같이 파악한다는 것에 다름아니다(김현).  그 평론가에게 나의 시가 심리적 동요를 불러일으키지 않았을 것은 명백하다. 시인에 대한 이해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러나 평문을 쓰고자했다면 최소한 자신이 쓰려고 하는 시에 대해서는 이해하려고 노력해야하지 않았을까. 그의 글은 '표층적인 진단'에 불과하고 '어느 하나에도 진지한 관찰과 인식이 뒤따르지 않고 있다.' 그의 말대로라면 이렇게 '문제의식의 결여'로 엮은 시가 어떻게 신춘문예 최종심에서 두번씩  거론되었는지 역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글쓰기는 강력한 탐구 수단이며 자신의 일생과 화해하는 기쁨을 준다. 또 상실, 슬픔, 병, 중독, 실의, 실패, 등 살아오면서 겪었던 커다란 좌절을 되짚어보면서 이해와 위안을 발견할 수도 있다. 
 

두 달 동안 화도 나지 않았다. 단지 기분이 나빴다. 그리고 나는 바라지도 않았는데 그들은 왜 일면식도 없는 나를 뽑았고 병아리 눈물만큼의 애정도 없으면서 읽고 썼을까가 궁금했다. 땀구멍만큼의 애정이라도 느껴졌더라면 동기부여도 되고 오기로라도 시 쓰기에 전념했을 것이다. 그 글을 읽은 어떤 분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이 글을 쓰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위로의 말을 듣는 순간 감정이 복받쳐 하루 종일 눈가에 수평선이 넘실거렸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을 상처로 받아들였던 것 같고 스스로 자신과의 화해의 제스추어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 글을 쓰는 내내  기쁘지도 않았고 이해와 위안을 발견하지도 못했다. 나는 이번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시는 학벌이나 지식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는 것. 삶과 인간과 언어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시에  흐르는 피와 온기를 느낄 수 없다는 것.  또 하나, 나는 감정을 가라앉히고 그들에게 바라는 것이 생겼다. 아예 뽑지를 말든가 뽑았거든 제발 애정을 가지고 깊이, 푸욱 찔러 주기를 부탁하고 싶다. 그렇다면 나는 독을 머금고 다시 태어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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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집 화장실에 거미 한 마리가 산다. 그런데 이 거미는 상당히 수다스럽다. 자기 얘기뿐만 아니라 집 주인의 내밀한 비밀까지 다 누설한다.  한 달 전에 이 집에 누군가 새로 이사를 왔다. 이삿짐이 나가고 들어오는 북새통 속에 용케 살아남은 거미는 불안하다. 새 주인이 집 청소를 하면서 자기 집을 헐어 버릴까봐. 눈여겨 살펴보니 새 주인의 직업은 시인이다. 거미는 안도한다. 왜? 시인은 게으르니까 빗자루로 거미집을 걷어낼 일이 없기 때문이다.  

 


거미


한달만의 식사다
나방은 즙이 많아서 좋다
위턱과 아래턱을 놀린 지 오래여서
입이 좀 뻐근하다 집주인이 들어온다
저 남자는 시를 쓴다
한달 전, 저 남자가 이사를 왔을 때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인은 게을러서
화장실 귀퉁이에 세 들어 사는 내 집을
빗자루로 걷어낼 일이 없기 때문이다
간만의 식사 탓일까
소화가 잘 되지 않아 자꾸 신트림이 나온다
밥 먹는 내 모습을 처음 보았겠지, 남자가
칫솔을 문 채 한참이나 나를 쳐다보고 있다
날개라도 한쪽 떼어줄까
남자도 나처럼 오랫동안 굶었는지 깡말라간다
생각하면 저 남자가 있어 외롭지 않았다
이곳에 들어올 때마다 지금처럼
내가 잘 있는지 먹이는 언제쯤이나 잡게 될는지
쳐다보곤 하던 따뜻한 눈길, 알기나 할까?
남자가 아픈 배를 누르며 변기에 앉아있을 때나
양치질을 하다가 욱욱거릴 때면 나는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다는 것조차 잊은 채
내가 대신 뒤틀려주고 싶었다
남자가 알몸을 씻을 날은
주린 아랫입에 손가락을 물려 또 다른 허기를 달랬다
남자가 밖으로 나간다
다시 지루한 기다림이 시작된 것이다

 한 달 동안 주인을 관찰한 거미의 수다에 의하면 시인은 깡말랐다. 시인은 칫솔을 물고 들어와 천장에 붙은 거미를 한참씩 지켜본다. 가끔 아픈 배를 누르며 변기에 앉아있기도 하고, 양치질을 하다가 욱욱거리기도 한다. 아무래도 시인은 위장이 안 좋은 모양이다. 그리고 목욕을 한 날은 수음도 한다.(근데 이거 순서가 거꾸로 된 거 아닌가?)


거미는 집주인의 신상명세서를 수다스럽게 전하면서 주인에 대한 연민을 테트리스 조각 맞추듯 배치해두었다. ‘칫솔을 문 채 한참이나 나를 쳐다보고 있다/날개라도 한쪽 떼어줄까’ ‘내가 대신 뒤틀려주고 싶었다’ 등. 이 거미는 수다스러울 뿐만 아니라 영악하기까지 하다.‘이곳에 들어올 때마다 지금처럼/내가 잘 있는지 먹이는 언제쯤이나 잡게 될는지/쳐다보곤 하던 따뜻한 눈길, 알기나 할까?’ 그러니까 거미는 시인이 자기를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게 자기가 알고 있다는 사실은 시인은 알기나 할까? 라고 되물을 만큼.

한달씩 굶으면서 화장실 벽을 지키고 있던 거미가 어쩌다 시의 화자로까지 등장했지만 거미는 거미다. 거미는 양치질을 하며 한참씩 자기를 쳐다보는 시인과 눈을 맞추고 연민을 느낀다.  하지만 거미여, 경계하라. 오로지 살아있는 너를 포획하기 위해 언어의 그물을 짜고 있는 시인을. 아니 그대는 이미 시인이 짠 언어의 그물에  포획되어 시집 속에 갇혔다. 이 시집 속에서 그대는 영원히 안도하리라.  

박성우 시인은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거미>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첫 시집 제목도 『거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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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9-04-03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미를 생포하기 위해 언어의 그물을 짜고 있는 시인이라...크아, 반딧불이님의 정체가 슬슬 궁금해져부렀습니다. 이런 글을 쓰시는 당신은...그 시인의 친구의 친구시죠?!^^

반딧불이 2009-04-04 0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여우님. 여우님이 나타나면 왜 자꾸 장난이 하고 싶어지는 걸까요? 머 제가 여우님의 정체가 궁금해 오래 지켜보았던 것과 같은 이유로 궁금해하시니 영광입니다요.
 

 

 

시인들이 자신과 동일시하는 동물들을 살펴보는 일은 재미있다. 낮게는 구더기에서 높게는 기린까지 그 층위가 참으로 다양하다. 한 시인의 시 속에 자주 등장하는 동물이미지를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면 그 시인이 보이는 듯도 하다. <풀> <폭포>등으로 우리에게는 누구보다도 강인한 이미지로 알려져 있는 김수영은 자신을 거미와 동일시했다. 

거미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으스러진 설움의 풍경마저 싫어진다.

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

그에게는 ‘바라는 것’이 있다.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은 탓에 그는 설움에 몸을 태운다. 설움에 자주 몸을 태우다보니 이제 자신의 모습이 풍경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그는 설움에서 빠져나와 있는 것이다. 설움에 몸을 태우고 있을 때는 몰랐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자 그 모습이 싫다. 그리고 다시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은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몸이 까맣게 타버린 거미의 모습이다. 

‘바라는 것’과 ‘설움’의 두 세계에 끼여 있는 자의 고통이 거미로 형상화되어있다. 거미는 모기와는 달리 공격적이기 보다 수동적이다. 먹이가 올만한 곳에 거미줄을 쳐놓고 그저 기다리는 존재다. 때문에 우리는 모기는 기를 쓰고 잡아도 거미는 대충 쫓아내고 만다. 그런데 김수영의 아내는 거미를 잡는다. 한 마리도 아니고 두 마리도 아니고 자꾸자꾸 잡는다. 참다못해 시인은 소리친다. ‘야 고만 죽여라 고만 죽여/나는 오늘 아침에 서약한 게 있다니까/남편은 어제의 남편이 아니라니까/정말 어제의 네 남편이 아니라니까’라고.

거미잡이

폴리號颱風이 일기 시작하는 여름밤에
아내가 마루에서 거미를 잡고 있는
꼴이 우습다

하나 죽이고
둘 죽이고
넷 죽이고
…………

야 고만 죽여라 고만 죽여
나는 오늘 아침에 서약한 게 있다니까
남편은 어제의 남편이 아니라니까
정말 어제의 네 남편이 아니라니까 

 아마도 거미들은 태풍을 피해 집안으로 몰려든것 같다. 아내는 일삼아 거미를 잡는다. 김수영은 아내를 돈만 아는 속물취급하기도하고 길바닥에서 비닐우산으로 때려 눕히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구경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시인은  비닐우산을 버리고 왔음을 후회한다. 그리고는 그 상황을 시로 쓴다.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지 않고 사람들의 비난을 감수한다. 나는 김수영의 이런 솔직함에 반했다.  

 

그리곤 언제나 아내에겐 큰소리친다. 김수영은 이 시를 1960년 7월 28일에 탈고했다. 4.19혁명으로 잠깐의 희망을 본 듯하다가 5.16 군사정권이 들어섰다. 4.19와 5.16은 시인에게 폴리호 태풍과 다름 아니었다. 거미인 시인은 태풍을 피해 집안으로 파고든다. 그렇지만 그곳 역시 안전하지 않다. 거미잡이로 변한 아내가 있기 때문이다.  아내의 손에 죽어가는 거미를 지켜보는 거미시인. 아마도 시인은 다시 설움에 몸을 태우고 까맣게 타들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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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9-04-03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수영 시인의 결혼사 아세요? 그 부인되시는 분의 집안에서 반대했는데 보따리 하나만 들고 도망쳐 결혼했지요. 재봉틀 하나로 자녀 교육에 가장역할까지 도맡아했지만 한번도 남편을 남에게 험담하지 않았다더군요. 천생연분입니다.

반딧불이 2009-04-04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내에 대한 호칭이 애처로운 처-보석같은 아내-문명된 아내-여보- 적을 거쳐 '여편네'에 이르기까지 그의 산문과 시에 나타난 아내가 제가 아는 전부에요. 양계장도 했다죠? 아무튼 김수영에겐 없는 생활력은 아주 강했던 것 같더라구요.


반딧불이 2009-04-04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어떻게 저렇게 말도 안되는 문장을 썼을까요? 원래 하고싶었던 이야기는 이래요. "아내에 대한 호칭이 애처로운처-보석같은 아내-문명된 아내-여보-적을 거쳐 여편네로 변해가는걸 그의 산문과 시에서 확인한 것이 제가 아는 김수영 아내의 전부여요. 양계장도 했다죠? 아무튼 김수영에겐 없는 생활력은 아주 강했던 것 같더라구요."
 

 

쓰기와 관련된 책을 읽은 기억이 없다. 거의 동물적인 본능으로 써왔던 듯 싶다. 책을 읽는다고해서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을 지 알 수 없다. 그래도 읽어두기로 하자. 책장을 뒤져보니 책은 이미 몇 권 준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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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찬, 설흔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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