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를 읽는 일이 만만치 않다. 중국사에 대한 기본 상식도 전무한데다가 기전체라는 형식도 한몫을 단단히 하는 듯하다. 본기를 읽을 때는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낳고, 낳고......’ 하는 마태복음을 읽고 있는 건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어려운 문장은 하나도 없다. 중간 중간 밑줄을 치지 않을 수 없는 보석 같은 문장들도 보인다. 그런데도 읽고 나서 정리가 되지 않는다. 매 행마다 사람이 죽고 서너 줄만 읽으면 한 나라가 무너지고 새 왕이 생겨난다. 52만 6500자로 총 130 편을 썼는데 죽은 사람이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항우와 진시황이 생매장한 사람만도 얼마냐.

무지한 내가 선택한 방법은 『사기』를 읽기 위한 참고서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고우영의 만화 <십팔사략>10권을 책꽂이에서 꺼냈고, 도서관에서 몇 권의 책을 빌렸다. 정작 『사기』는 제쳐두고 참고서만 뒤적이게 되었다. 꼬박 열흘을 뒤적이다보니 거칠게나마 기전체의 꼴이 잡히고 읽는 방법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이책은 앞으로도 몇번은 더 볼 것 같다. 사기와 함께 보면서 이 책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십팔사략'은  말 그대로 중국의 역사서 18권을 간략하게 그려놓은 것이다. 사마천이 중국땅을 샅샅이 밟고 다녔듯이 고우영도 그 넓은 중국 땅을 현장답사 했던 것 같다.  

사마천이 사기를 쓰면서 인물의 말을 마치 소설속 대화처럼 처리하는 부분이 있다. 나는 아직 본기 밖에 읽지 못했지만 본기에 나오는 대사가 만화에 똑같이 쓰여지고 있었다. 그림은 고우영의 상상력으로 그렸지만 그 대사 하나하나를 모두 역사에 나오는 그대로를 옮겨 놓은 것같다. 다른 것이라면 사마천이  감정을 배제한 채 사실만을 간결하게 나열하고 마지막 부분에 '태사공이 말하기를'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덧붙인 반면, 고우영의 만화는 재미를 위해서 고우영 개인의 도덕적 판단이나 현대인의 입장이 좀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앞부분은 사마천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이고 뒷부분은 사자성어 공부하기에 좋게 구성되어있다. '사기의 말과 인간군상'이라는 소제목에서 보이는 것처럼 사람들의 관계에서 생겨난 말 즉 주지육림, 관포지교, 와신상담, 합종연횡 등 낯익은 사자성어들을 주제로 사기속에 나오는 사람들의 사건을 기술했다. 
                                                                                                   사자성어의 말 뜻만 외우기보다 그 말이 생겨난 배경을 알 수 있어 학생들에게 유용할 듯하다.  

 

 

 

 저자는 미야자키 이치사다라는 이름의 일본인 학자다. 교토대학 교수로 60여 년 동안 중국사에 몰두했다고 한다. "나는 기록되어 있는 것이라면 그대로 믿는 사마천의 태도에 웃음이 난다. 또한 당연한 일이겠지만 나는 사마천이 써 놓은 것을 그대로 삼킬 수가 없다."는 저자의 말이 재미있다.  

우리나라의 '서동요'를 보면 선화공주에 대한 요상한 노래를 지어 부르는데 왕은 그 노래를 부른 사람을 찾아 벌하지 않고 선화공주를 내쫓아 버린다. 이것이 단지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이렇게 적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백성들의 말이 얼마나 큰 가치를 지녔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항우본기>와 <고조본기>는 항우와 유방을 다룬 이야기다. 항우없이 유방을 얘기할 수 없고 유방없이 항우를 다룰 수 없는데 왜 사마천은 한번에 다루지 않았을까? 각각의 관점을 달리해서 서술한 것은 아니었을까 꼼꼼이 짚어봐야 할 부분이다.  

 

  

천퉁성이라는 중국작가의 사마천 평전이다. 사마천의 일대기가 마치 소설처럼 쓰여있어 쉽게 읽힌다. 한무제가 흉노 때문에 고심을 하고 있을 때 이릉이라는 자가 보병 5천을 이끌고 흉노족을 치러간다. 5천으로 1만이 넘는 흉노를 죽였으나 사지에서 보급품도 지원군도 없던 이릉은 투항하고 만다. 이를 변호했던 사마천은 한무제의 화를 돋우게 되어 궁형에 처해진다. 궁형은  '음탕한 행위' 즉 불법적인 성행위에 대한 벌이었다고 한다. 때문에 궁형을 받은 자는 그  치욕스러움을 견디기보다 차라리 자결을 하는 자가 더 많았다고 한다. 

궁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벌금으로 50만전이 있어야했지만 사마천의 집안에는 그만한 돈을 구할 능력이 없었다. 그가 궁형을 받은 것은 그의 나이 47세 때다. 사기는 초고가 거의 완성되어있을 때라고 한다. 아버지의 유언과 쓰다만 글에 대한 책임감이 그를 치욕속으로 내몰았을 것이다. 나머지 그의 생은 오로지 쓰는 것으로만 그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보임안서>에는 쓰지 않을 수 없었던 사마천의 절절함이 쓰여있다.   

 

사마천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들은 많지 않다. 사마천이 그의 친구 안임에게 보낸 편지 <보임안서>에 이릉 사건의 전모를 간략하게 밝히고 『사기』의 저술 동기와 목적을 밝혀두었다. 또 <태사공자서>에 집안의 내력과 아버지의 죽음, 본기, 세가, 열전,표, 서 등에 대한 요지를 밝혀두었다.  

『사기』는 구성의 특이함으로 인해 책읽기는 입체적으로 읽어야 제맛을 느낄 수 있을 듯 싶다. 『사기』의 구성은 본기가 종축을 이룬다면 세가는 횡축, 그리고 열전에 나오는 각각의 인물들이 각 시대별 좌표로 점점이 박혀있다. 마치 x, y 축과 각 분면 4개로 그려지는 함수의 형상이다. 그러니  『사기』를 제대로 읽으려면 본기, 세가, 열전을 함께 읽으면서 시간과 공간을 재구성해야 하는 형식이다.  도대체 사마천은 어떻게 이런 구성을 할 수 있었을까? 나는 감히 답을 구할 엄두를 내지도 못하고 또 감탄만이 내 몫임을 한탄 한다. 

최근 『사기』가 새로 번역되어 나왔다. 값도 만만치않고 가지고 있던 책이 있어서 이럭저럭 꿰어 맞춰 읽고 있다. 이래도 되는 건지는 모르겠다. 

       

아이고..알라딘은 상품넣기를 하면 왜 제대로 정열이 안되는 걸까? 왜 붙여넣기를 하면 키가 들쑥날쑥 이모양일까..할때마다 속터진다. '인간 사마천'옆에 붙어 있는 글은 왜 저장만 누르면 나란히가 제멋대로 정서가 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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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1-16 0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사기열전> 2권을 모셔두고 있는데 님의 글을 읽고나니 이번엔 제대로
읽어봐야겠다는 욕구가 드네요. 저도 가끔 페이퍼 쓸 때 상품넣기하면
들쑥날쑥해서 짜증나요.^^;;

반딧불이 2011-01-16 21:29   좋아요 0 | URL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재미가 달라질확률이 거의 백프롭니다. 남자분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에요.


비로그인 2011-01-16 0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독서법을 갖고 계시는군요. 오에 겐자부로도 주제나 작가별로 책과 자료들을 모아 섭렵하는 식으로 독서를 했다더군요. 주제별로 최소한 한 박스 분량이 될 때쯤이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전문적인 독서를 할 수 있었다나요. 이 페이퍼를 읽으니 문득 그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파에 별고 없으시죠?^^

반딧불이 2011-01-16 21:33   좋아요 0 | URL
새벽한파를 뚫고 담양에 갔다가 좀전에 도착했습니다. 식영정, 풍양정의 기문을 읽고 추위도 잠시 잊었네요. 후와님도 평안하시죠?

프레이야 2011-01-16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감탄합니다, 반딧불이님.
이번에 사마천이군요.
이런 페이퍼 보는 것만으로도 정돈되는 느낌을 받아요.
우선 님의 이어질 페이퍼에 좀 기대어볼래요.
새해도 어느덧 보름 지나 17일째에요.
마음의 평화 잃지 않는 한 해 되면 참 좋겠어요.^^

반딧불이 2011-01-16 21:36   좋아요 0 | URL
읽고 보고 쓰고 하는 프레이야님의 부지런함 앞에서 저는 늘 감탄하기도하고 부끄럽기도 합니다. 어머님도 건강하시고 프레이야님도 행복한 한해가 되시기 바래요.

blanca 2011-01-16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이님 응원하고 가요. 괜시리 제가 기대됩니다. 역사 기행의 그 노정에 동반하는 느낌입니다. 숟가락 하나만 더 얹고 가서 미안스럽네요--;;

반딧불이 2011-01-16 23:54   좋아요 0 | URL
네. 고맙습니다 블랑카님. 숟가락을 얹는 것은 아무 상관이 없는데 드실게 없으실까 외려 신경쓰이는 걸요.

라로 2011-01-17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알라딘 상품 넣기 할 때 상품을 넣을 장소를 잘 결정하신건가요???
저도 님처럼 그런 경험이 있어서 그 이후로는 (글 위)라고 된 것을 선택해서 넣으니까 좀 정리가 되는 듯한,,,뭐 글보다 너무 커서 공간은 많이 차지하지만 제가 원하는 곳에 넣어지니 그나마...아뭏든 늘 님의 서재에 오면 죽비로 얻어 맞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반딧불이 2011-01-17 09:50   좋아요 0 | URL
상품넣을 장소는 그냥 커서로 하고 있는데요. (글 위)라는 기능이 있는 줄 몰랐어요. 다음에 할 때는 찾아서 이용해봐야겠네요.
근데..내일 출근하실분이 이시간까지 안주무시면 어쩐데요?


양철나무꾼 2011-01-17 0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김영수 님 번역 본을 눈독 들이고 있어요.

대장정이 될 것 같으세요.
저도 뒤에서 응원할게요~^^

반딧불이 2011-01-17 09:53   좋아요 0 | URL
그 책에 <보임안서>와 <태사공자서>가 모두 실려있어요. 저는 이미 갖고 있는 것도 있고 책값도 만만찮고 해서 도서관에서 일별하고 말았네요.
 
인문/사회 분야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 주세요.

 가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사르트르의 말을 빌리면 죽음은 그 부재로 말미암아 빛난다.

운명소식을 듣고 너무나 오랫동안 이분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책 한 권 제대로 읽은 것이 없으면서 나는 이런분과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았던건 아니었나 반성해야했다. 

가시는 것과 거의 동시에 출간되었기 때문에 내게는 가셨다는 느낌보다도 오히려 오셨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사상의 은사'니 '의식화의 원흉'같은 상반된 평가는 접어두기로 하자. 그가 편향된 사고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라는 책의 제목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질병을 대하는 태도는 동양과 서양이 너무나 다르다. 서양의학은 질병을 제거해야할 적으로 보는 반면 동양의학은 질병도 역시 내 몸의 일부라는 것을 깨닫고 병이 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한다.  

이 책의 관점이 재미있다. 질병을 외부의 침입자로 보고 그것에서 생기는 병, 또 인체 내의 변화로 인한 질병으로 나누어보고 있는 것이다.   어렵고 심각한 이야기가 아니라니 더욱 관심이 간다. 

동의보감의 양생법에 따르면 병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최선의 방법이니 이 책을 통해 양생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각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 장르가 있다고 한다. 19세기는 소설의 시대였다. 그러나 '근대문학의 종언'을 말하는 가라타니 고진에 의하면 그 문학(소설)은 죽었다.  

과학문명의 식민지가 되어버린  21세기. 예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예술의 사회 참여는 무슨 의미인가? 과연 그것은 예술의 본질에 어긋나는 것일까?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듯 싶다.  

 

 

  

 

   

커피를 즐겨 마셔왔다. 갓볶은 원두를 직접 갈아서 핸드드립을 하는 일을 오래 해왔다. 최근에는 두드러기가 극성을 부려 유일하게 즐기는 이 커피를 멀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양들이 뜯어먹고 카니발을 벌이는 것을 보고 그 열매가 커피였다는 걸 알았다던데.... 

이런 커피가 세계의 경제 정치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한다. 오랫동안 커피를 즐겨 마신 것에 대한 예의로라도 읽어봐야 할 듯 싶다. 

 

  

 

나는 신의 존재여부가 궁금하지 않다. 그러나 각 문화마다 신은 다르지만 존재하고 있고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 또한 지대하다는 것을 간과할 수는 없다.    

책소개를 보니 신에 대한 모든 것이 담겨 있는것 같다.  나는 오래전 이 선생님의 강의를 가까이서 몇달 동안 들었었는데 강의 보다는 글이 훨씬 더 설득력 있는 분이시다. 이번 책은 선생님께서 아주 큰 맘을 잡수신듯 하다.  다루고 있는 범위도 분량도 방대하다.  펴내시는 책들이 점점 깊이를 더해가는 듯 해서 여간 기쁘지 않다. 선생님의 경제에도 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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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1-01-12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이님은 인문,사회학 분야 책을 잘 챙겨 보시는 군요. 저는 너무 편중된 독서를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무래도 인문,사회학 책은 항상 입구에서만 서성대는 것 같습니다.두드러기가 의외로 신경이 많이 쓰이는데 빨리 없어지셔야 할 텐데요. 아이가 초코렛, 아몬드를 먹고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나서 엄청 걱정했던 생각이 납니다.

반딧불이 2011-01-12 23:33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 장하준과 마이클 샌댈 책 읽으셨던걸요. 그렇게 짬짬이 읽으시는 게 더 좋을 것 같은걸요.

저 역시 편향된 독서만을 했어요. 그걸 피하기 위해서 신간평가단을 신청했더니 좀 빡세기는 해도 이것저것 살펴보기도 하고 읽게도 되네요.

그런데 늘 일정에 좇기다보니 뭔가 생각하고 정리하고 할 시간이 별로 없는 것이 아쉽네요.

비로그인 2011-01-13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커피를 더 이상 드시지 못하게 된 건가요?
오랫동안 유일한 낙으로 삼으셨다면
다른 대체물을 찾기도 쉽지 않을 텐데요
'유일하게 즐기는 커피'라고 하시니 마음이 안됐네요...

반딧불이 2011-01-13 10:50   좋아요 0 | URL
정 마시고 싶을 때 며칠 가려울 각오하고 먹어요. 제발 얼굴에만 나지 말아다오 빌면서요.
말씀처럼 대체물 찾기가 쉽지 않더라구요. 좋은 차 있으면 소개 좀 해주세요.

hnine 2011-01-13 0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리하라의 몸이야기, 지금 막 리뷰를 쓰려던 참이었어요.
제목으로 보면 우리 몸과 질병에 대한 저자의 사상을 담은 책으로 보일 수도 있겠는데, 저는 참 잘 쓰여진 과학 상식 책이라고 생각하며 읽었어요.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 쉬운 말로 잘 풀어쓰는, 제가 부러워하는 과학 저술가라서 이 저자의 책은 나오기만 하면 일단 사고 본답니다.

반딧불이 2011-01-13 10:52   좋아요 0 | URL
아..나인님 리뷰 기대할께요.
저는 저자의 글을 아직 못 접해봤거든요.

파고세운닥나무 2011-01-13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성탄절에 친구들과 리영희 선생 묘소를 찾았습니다. 아직 비석도 세워지지 않은 상태였구요.
한국 현대사에서 '사상'을 말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분들 가운데 한 분이셨죠.
자전적 에세이 <역정>을 읽으며 그 솔직함과 자신을 끝도 없이 방외인으로 밀어넣는 의지에 많이 놀랐습니다.
남겨진 글들을 뒤적여야겠습니다.
맹추위에 건강 유의하세요!

반딧불이 2011-01-13 20:31   좋아요 0 | URL
닥나무님도 건강 조심하시구요. 묘소까지 다녀오셨군요. 이거 갑자기 부끄러워지는걸요. 책읽고나면 불현듯 가게될지도 모르겠네요.

cyrus 2011-01-13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들을 소개해주셨네요. 박이문 씨의 신간도서가 도서관 신간도서 코너에서
봤는데,, 어려울거 같아서 그냥 지나쳤는데,, 한 번 읽어봐야겠어요.
페이퍼 잘 읽었습니다. ^^

반딧불이 2011-01-14 01:04   좋아요 0 | URL
사이러스님과 겹치는 책도 있지 않나요? 박이문 선생의 책은 예술이 지향해야할 바를 알려주지 않을까 싶어요. 예술관련 일을 하시는 분들이 읽으면 좋을 듯 싶은데....확인을 아직 못해봤네요.

릴케 현상 2011-01-15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뵙네요. 알찬 관심도서들도 반갑고요^^ 어휴 다양하네요...요즘 저는 동양철학에 조금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그쪽에서는 역시 몸이나 양생이 따라나오더군요.

반딧불이 2011-01-15 23:51   좋아요 0 | URL
산책님. 동양학 산책하고 계세요? 저는 음양오행과 동의보감을 살피다가 원형탈모증이 생겨서 좀 쉬었다 하려구요. 좋지도 않은 머리로 공부하려니까 머리에 서리가 내리고 죄다 빠져버리기도 하네요. 열심히 하셔서 저도 좀 나눠주세요.
 

 

고등학교 때 국사 선생님이 조금만 잘 생겼었더라면, 아니 구멍 난 양말에 슬리퍼를 신지만 않았어도 국사든 세계사든 내가 역사에 이렇게 무관심한 채로 살지는 않았을 것 같다. 국사시간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고 키가 작아 맨 앞줄에 앉은 나는 분필가루가 앉은 선생님의 낡은 슬리퍼와 구멍 난 양말 그리고 도저히 선생님의 것이라고 믿을 수 없을만큼 하얗고 깨끗한 발가락을 신기하게 바라보아야했다. 가끔은 내 앞에서 한참씩 머물렀기 때문에 말씀 중에 침이 튀기도 했고 담배 댓진 내 때문에 호흡을 참고 견뎌야 하는 날도 많았다. 내가 무언가를 외우지 못하는데 특별한 재능을 타고난 것도 한 몫을 했겠지만 역사라는 단어자체를 싫어하게 된 것은 순전히 이 선생님 때문이다.


최근 역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들을 공부하면서 새로운 재미를 느끼고 있다. 이렇게 재미있는 과목을 어떻게 그렇게 재미없게 가르칠 수 있었는가 하는 것도 새삼 재미있게 느껴질 정도다. 긴즈부르크가 말하는 '무지가 주는 행복감'이란 것이 이런 걸까? 어쨌거나 인류의 역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들을 접하면서 조국의 역사나 내 짧은 삶을 역사적(?)으로 바라보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나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면서 자랐다. 독재정치가 막을 내리고 광주민주화 운동, 문민정부, 참여정부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격변기를 살았지만 이것은 내게 역사라기보다 삶 그 자체였다. 

 
인류의 역사, 조국의 역사 그리고 한 개인의 삶의 역사는 어떤 관계를 가지는 걸까? 나는 헤겔이 말하는 '세계사적 개인'도 부르크하르트가 말하는 '위대한 인물'도 아니다. 그들이 말하는 인물은 인류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부르크하르트가 꼭 집어 말하진 않았지만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인물들은 많다. 우리나라의 역사에도 이런 인물들은 많다. 그러나 내 삶에 있어서의 위대한 인물은 나 이외에 무엇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인류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오롯하게 내 삶이 돋을새김 되는 이 아이러니라니! 어쩌면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방법을 배우고 거리를 확보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역사의 각주나 부록조차도 되지 못하는, 그러니까 아무도 써주지 않을 나의 역사를 내가 쓰는 것. 이 쓸쓸한 작업에 발을 담근 셈이다.



         

 

 

헤겔이 인류의 역사를 관통하고 있는 보편의 법칙과 원리를 이성으로 내세웠듯이 찌질한 내 삶을 관통하는 어떤 정신이 있을까? 아니 있기는 한 걸까? 부르크하르트가 국가와 종교, 문화의 상호작용이 역사라고 말한 것처럼 내 삶은 어떤 것들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졌을까? 그리고 그것들의 어떤 작용으로 지금 여기의 내가 있는 것일까? 또 이것은 어떻게 순환 반복되는 걸까? 사회의 전형이 다른 전형으로 바뀌는 발전과정에 주목했던 마르크스의 이론처럼 내 삶의 전형이나 양식이 바뀌었을까? 바뀌었다면 그것은 언제이고 어떻게 바뀌었을까? 카를로 긴즈부르크가 주목했던 중세의 한 방앗간집 주인 메노키오처럼 재판에 회부되었을 때 생명을 걸고 항변해야할 신앙 같은 무엇을 나도 가졌을까?


이런 끝도 없는 질문에 어떤 대답이 놓일지 알 수 없지만 질문은 이미 그 안에 대답을 내재하고 있다는 말을 믿는다. 부르크하르트는 모든 분야에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지만 많은 분야에 아마추어가 되는 일은 자신의 인식을 넓히고 관점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부르크하르트의 딜레탕티슴에 힘입어 그리고 모든 책을 詩論으로 읽어야겠다는 다짐대로라면 이같은 질문에 대한 답은 창작을 통해 드러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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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0-12-08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에 대해서 독서를 통해서 공부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덕분에
반딧불이님이 소개하신 좋은 책들도 알게 되었습니다. <엥겔스 평전>을
이번 신간도서 페이퍼에 후보로 소개하고 싶은데, (이 책이 선정될지는 모르겠지만)
먼저 <공산당 선언>을 읽어봐야겠네요. 좋은 페이퍼 잘 읽었습니다.^^

반딧불이 2010-12-08 16:23   좋아요 0 | URL
엥겔스 평전이 겹치는 책중의 하나군요. 기대해봐야겠는걸요.

비로그인 2010-12-10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대됩니다. 반딧불이님이 얻을 답.
아니 바꿔 말해야겠네요. 반딧불이님의 예리한 질문이 가 닿게 될 그곳, 이라고 말이죠^^

반딧불이 2010-12-10 01:52   좋아요 0 | URL
질문을 할때는 몰랐는데 해답을 구하려고보니 예리한 칼에 베인듯 마음이 쓰립니다. 덕지덕지 딱지가 앉거나 벚꽃같은 새살이 돋거나....겠죠?

2010-12-14 0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딧불이 2010-12-14 00:48   좋아요 0 | URL
제게는 다른것과 같은 크기로 보이는데요..어떻게 해결을 해야하는지 모르겠네요.

blanca 2010-12-20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반딧불이님 진짜 멋있어요. 정말.

반딧불이 2010-12-21 14:17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 눈이 높으시군요~ ㅋㅋ
 
인문/사회 분야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어릴때부터 보고 듣고 읽은 옛이야기들은 그 재미에 힘입어 우리를 권선징악으로 인도해왔다. 착한 것을 권하고 악한 것을 징벌한다는 이런 이야기들은 알게 모르게 우리의 의식구조를 지배해 온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은 이렇게 우리가 당연하게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한 재해석으로 보여진다. 심청의 희생에서 효 이데올로기를, 춘향전에서 도덕의 폭력 등을 이끌어낸다. 

책 한 권을 읽는다고 해서 내 의식이 개조될지는 의문이다.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길이 가장 먼 길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고 또 다른 생각을 엿보는 것조차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최근 <공산당 선언>을 다시 읽을 기회가 있었다.  인류의 역사를 이성(정신)의 역사로 본 헤겔과는 달리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계급투쟁의 역사로 보았다. 여기에서 부르조아와 프롤레타리아트라는 계급으로 구분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주의 이론이 탄생한다. 

그들은 정작 자신들이 말하는 프롤레타리아도 아니었다. 오히려 부르조아 계급에 속한 이들이 관계성을 강조하며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을 주장한 것은 어떻게 생성되었을까? 이들의 이러한 이론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이 평전으로 가늠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평전이나 자서전을 거의 읽지 않았던 내 독서편력을 고치는  계기가 된 것은 발자크 평전과 융 자서전 때문이었다.  

작가를 알고 작품을 읽는 것이 작품의 이해에 훨씬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안 것은 최근의 일이다. 평전과 자서선의 리스트는 이미 오래전에 만들어두었지만 아직 시작을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앙드레 지드의 이 책이 선정된다면 평전읽기의 시작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읽어야할 요네하라 마리의 책이 자꾸만 쌓여가고 있다. 이 책은 <전을 범하다>와 같은 맥락에서 읽어볼 수 있을 것같다. 내가 당연하다고 믿고 있는 것들,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 반대였던 것, 보이는 것 이면에 이미 있었지만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고 생각해보게 만들어 줄 듯싶다. 

 

 

 

 

   

  

자유를 본질적으로 논쟁적인 개념으로 파악하는 조지 레이코프의 책이다.  

 “자유에는 동의하는 완전히 합의된 핵심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핵심은 애매하다. 다른 중요한 부분들은 모두 채워야 할 여백으로 남아 있다. 자유에 대한 해석은, 이 여백을 진보주의자가 채우는가 아니면 보수주의자가 채우는가에 따라 근본적으로 다르게 도출된다. 바로 여기서 전쟁이 시작된다." 

"여백이 진보적인 방식으로 채워지는가 아니면 보수적인 방식으로 채워지는가에 따라 ‘자유’라는 동일한 낱말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른 해석이 도출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여백 때문에, 자유라는 개념을 둘러싼 진보와 보수의 치열한 개념 쟁탈전이 벌어진다." 는 소개글을 본문을 읽으면서 확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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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0-12-08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페이퍼 도서들 중에 저도 제 페이퍼에 꼭 소개하고 싶은 책이 무려
세 권이나 있네요.^^

반딧불이 2010-12-08 16:22   좋아요 0 | URL
어떤 책인지 궁금해지는 걸요.~
 

 

  

 

 

 

 

 

 

 

이옥 전집 2권에는 <봉성문여>에 실린 글 67편이 수록되어 있다. 2편을 제외한 모든 글이 삼가현으로 귀양갔을 때의 풍속을 정리한 글이다.   지방마다 다른 사투리, 경상도에서는 여자 이름에 심(心)자를 많이 쓴다는 것, 사당패와 도둑의 이야기, 다리가 여섯 달린 쥐이야기 등 보고 겪은 모든 일을 낱낱이 적어두었다. 당시로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었을 것이지만 민속연구자들에게는 자료로서 톡톡한 값을 하지 않을까 싶다. 

재미난 글들이 많지만 특히 마음에 관한 글들이 도드라진다. 

     
 

 걱정이란 마음 가운데 있는 것인데 마음이 몸에 있으면 몸을 걱정하고, 마음이 처하는 곳에 있으면 처하는 곳을 걱정하고, 마음이 만난 때에 있으면 만난 때를 걱정하는 것이니, 마음이 있는 곳이 걱정이 있는 곳이다. 그러므로 그 마음을 이동하여 다른 곳으로 가면 걱정이 따라오지 못한다. 지금 내가 술을 마시면서 술병을 잡고 흔들어보면 마음이 술병에 있게 되고, 안주를 덜어 목구멍으로 넘기면 마음이 안주에 있게 되고, 손님에게 잔을 돌리면서 나이를 따지면 마음이 손님에게 있게 되어, 손을 펼칠 때부터 입술을 닦는 데에 이르기까지 잠시 걱정이 없다. 신변에 걱정이 없어지고 처한 곳에 걱정이 없어지고 때를 잘못 만난 것에 대한 걱정이 없어지니, 이것이 내가 술을 마시면서 걱정을 잊는 방법이요, 술을 많이 마시는 까닭이다.

 
     

 

     
 

 마음이란 한 몸을 주재하는 군주이다. 매어두지 않으면 달아나고, 막지 않으면 허둥거린다. 지인(至人)은 그것을 융해시키고, 성인(聖人)은 그것을 억제한다. 평범한 사람은 쉽게 움직이므로 잘 간직하지 않으면 잃어버려서 모든 병이 이로부터 나와 허를 엿보고 실을 덮친다. 마음을 존양하는 방법은 반드시 일(一)에 속해 있어야한다.

 
     

 

     
 

 집을 꾸미는 것은 그 몸을 꾸미는 것만 못하고, 그 몸을 밝게 하는 것은 그 정신을 밝게 하는 것만 못하다. 그 집이 얼음같이 맑더라도, 그 마음은 먼지와 같이 탁할 수 있다. 또 나는 우리 시골 사람이라, 기(氣)가 그 거처에 따라 변하는 것임에 본래 비루하고 가난하나, 한 개의 경연(벼루의 일종)을 쓰고 하나의 부들자리를 깔 뿐이다.

 
     

 

일생동안 마음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을것이지만 특히 이옥은 이 충군의 기간동안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려 몹시 애를 쓴 듯하다. 마음이 어디에서 생겨나는지 그 마음을 어떻게 간직해야 하는지, 먹고 입는 육체의 평안보다 또 정신보다도 마음을 맑게 하는 일에 혼신의 힘을 쏟았던 듯 싶다. 그가 이렇게 마음에 집착했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임금에 대한 원망의 말은 한마디로 나오지 않지만 밖으로는 자신의 욕망을 다스리는 노력의 일환이었으리라. 그리고 안으로는 마음을 비워 천지만물이 자신을 통과해 표현되고 활동되는 것으로 믿었던 때문일 것이다.  

이옥에게 있어 글은 자신이 주체적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천지만물이 자신의 몸을 빌어 쓰여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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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9 1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9 15: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9 16: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0-11-10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읽었던 옛 문장을 모아놓은 책들은 선집 형식이라서 좋은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그 작가에 대한 더 좋은 글을 접할 수 없어서 아쉬웠답니다. 그런데 반딧불이님 덕분에 이옥
전집을 알게 되면서 읽는 내내 정말 주옥같은 글과 재미있는 글들이 많이 있어서 좋습니다. 이 책, 4권까지 있던데 반딧불이님은 완독하실거 같습니다.^^

반딧불이 2010-11-10 10:13   좋아요 0 | URL
이옥의 전집은 전부5권으로 되어있더라구요. 4권은 한문, 5권은 영인본이에요. 그러니 제가 읽을 수 있는 건 3권뿐이죠. 2권을 보고있지만 궁금해서 3권도 여기저기 마구 들여다보면서 읽고 있는 중이에요. 사이러스님도 제법 읽으셨지요?

cyrus 2010-11-10 14:34   좋아요 0 | URL
영인본까지 포함해서 다섯권으로 이루져있군요.
도서관에는 영인본이 소장되지 않았는가보네요.
저도 이제 2권을 읽으려고 합니다. 어떤 내용이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blanca 2010-11-10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정결하고 위로까지 주는 페이퍼입니다. 마음 가는 데 걱정이 따라간다,는 말 너무 와닿네요. 부는 마음대로 흐느적대지 말고 마음 단속도 잘 해야 할까봐요.

반딧불이 2010-11-10 10:15   좋아요 0 | URL
이옥은 이 글에서 마음은 일(一), 즉 하나에 묶어두어야한다고 해요. 블랑카님은 이미 일(一)에 묶어두고 계시잖아요. 이미 단속의 대상이 아닌듯 한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