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이성복
우리 육체의 집을 지어도 그 문가에서 서성거리는 것은
마음의 집이 멀리 있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의 집을 찾아
가도 그 문가에서 머뭇거리는 것은 우리가 집이라 부르는
그것도 제 집을 찾아 멀리 떠났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비울수록 무겁고 다가갈수록 멀어라
집이 경매에 의해 남의 집이 되었다. 지난 12월이었다. 두 달을 주인의 얼굴도 모른 채 세도 안 내고 살았다. 며칠전 건장한 세 사내가 들이닥치더니 '부동산 인도 강제집행 예고'라고 적힌 종이 한 장을 주고 갔다. 23일. 흔히 말하는 집달리가 들이닥칠 예정이다.
그동안 읽던 책들이 길바닥에 패대기쳐질지도 모르겠다. 이제 내가 읽어야할 것은 책이 아닐 것이다. 아마도 '당신'이라고 존칭을 써드려야할 '삶'을 읽어야 할 것이다. 행간마다 내 몸을 책갈피 삼아 꽂아 읽고 또 읽어야 하는, 나의 가장 적극적인 독법이 언제나 당당한 오독이 되는, 당신, 삶이라는 책.
영혼의 집은 커녕 육체를 누일 집도 없이 떠돌아야 하는가. 세상 어디에도 마음 붙이 곳이 없다는 것이, 두 발을 가진 짐승이 갈 곳이 없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보면 인간이란 영혼의 집이든 육체의 집이든, 그 집이 있든 없든, 이 지구 위의 노숙자 아닌가. 시인에게 '그 여름의 끝'이 있었듯이 이 혹독한 겨울을 '그 겨울의 끝'이라 말할 날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