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역사
이현승
악을 쓰고 역기를
들어 올리는 사람의 얼굴로
꽃은 핀다.
실핏줄이 낱낱이 터진 얼굴로 아내는
산모휴게실에 혼자
차갑게 식어 누워 있었다
죽자고 벌인 사투의
끝은 죽음 같았다.
있는 힘을 다
뽑아낸 몸은 죽은 거나 다름없었다.
뼈마디까지 낱낱이
헤쳐진 몸으로 까맣게 가라앉았다.
백일홍 백일동안
핀다고 누가 그랬나.
백일홍은 백일동안
지는 꽃이다.
꽃은 떨어져 내려
시나브로 색이 시들고
그 곁에서 매미가
악을 쓰고 우는
백일은 얼마나
긴가.
어혈이 빠지기도
전에 다시 어혈을 입는
백일은 얼마나
더딘가.
먼 바다는 아이들이
가라앉아 아직 시퍼렇고
사람죽은 소리에
질린 하늘 아래
백일동안 멍든
얼굴로 누운 그늘을 보면서
생각한다. 용서가
먼저인지 망각이 먼저인지.
견디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견딤에
대해.
사람들이 곡기를
끊고 시나브로 제 생을 말리는
이곳은
어디인가.
죽은 사람이 떠나지
못하는 세상은 구천 같다.
세월은 더 흘릴
눈물도 없는 사람들을 울려서 눈물을 짜낸다.
사람이, 역기를
들어 올리는 사람의 얼굴로 간신히.
편집주간이
쓴 권두시론의 제목이 '혁신호를 펴내며'다. 어떤 혁신일까. 편집진과 표지가 모두 바뀌었다. 장기적인 기획도 보인다. 이번 혁신호에서는
<우리 시의 미래를 위한 제언>이라는 제목의 기획특집을 꾸렸다. 평론가 및 시인들에게 몇가지 질문을 하고 그에 대한 답을 실었다. 그
질문 중의 하나가 '좋은 시와 그렇지 못한 시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입니까?'다. 당연히 답은 모두 다르다. 예술에 문학에 시에 어떤 정답이
있으랴. 수학문제를 풀어 정답을 얻듯이 시의 답이 하나라면 어떻게 될까? 수학문제의 답이 하나이듯이 유일무이한 오직 한 작품만이 시로
남게되나? 어쨌든 저 질문에 대한 답으로 나는 이현승 시인의 시를 꼽았다. 물론 현시시학 10월호에 실린 시 중에서 골랐다. 개인과
공동체의 문제가 하나로 여며지며 문장마다 콕콕 찍힌 마침표가 아프다. 시인의 환하고 선한 얼굴이 오버랩되면서.
'최근 가장
주목하고 있는 시인은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에 10명중 두명이 이영광 시인을 꼽았다. 그의 첫시집을 만났을때 서점에서 선채로 통독하고는 다른
책은 보지도 않고 사서 돌아와 며칠을 끼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이후 두권의 시집을 더 내는동안 그는 한번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내
눈썰미가 대견하기도 하지만 '내 몸도 모르는 영역에 가서 낯선 말을 영접하는 모험'을 매편마다 감행하는 시인이 존경스럽다.
파장 짧은 햇살은
시들어 가고, 차가운 바람은 목덜미를 파고들고, 초록이 지쳐가는 10월, 오후의 들길을 걷다가 울컥했다. 슬프다는 느낌도 들기전에 눈물부터 먼저
차오르는 이 난관은 아마도 이 모든 사물들이 자아내는 분위기에서 나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었던 것 같다. 사적으로는 오감이 반응하면서 사회적
일에서 똑같은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