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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늙어버린 여름 - 늙음에 대한 시적이고 우아한, 타협적이지 않은 자기 성찰
이자벨 드 쿠르티브롱 지음, 양영란 옮김 / 김영사 / 2021년 9월
평점 :
이자벨 드 쿠르티브롱의 <내가 늙어버린 여름>은 나의 늙음을 인지해버린 그해 여름과 내가 노인이 되는 동안 변한 것들, 나를 사랑했던 것들,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 관한 에세이다. 교사이자 학자이며 페미니스트였고, 무엇보다 자유롭고자 했던 한 여성이 받아들이는 노화의 과정은 쿨하면서도 저릿한 구석이 있다. 모두에게 주어지지만 그것이 내게 왔을 때만큼은 받아들이기 힘든 마음, 그렇지만 언젠가는 받아들이는 마음. 이자벨 드 쿠르티브롱의 에세이를 통해 나는 늙는다는 게 무엇이며 그것을 겪는다는 건 또 어떤 것인지, 그때의 마음은 어떠한지를 흐리게나마 그려볼 수 있었다.
'문제는 노화기에 접어들어서야 노화에 관한 의미 있는 글을 쓸 수 있다는 점이다.' 라는 인용글로 책의 문이 열린다. 인용글에서처럼 작가는 자신의 늙음을 인지한 후에야 자신이 늙어버린 그해 여름을 깨닫고 받아들이며, 지나간 것들을 추억한다. 하지만 동시에 작가는 여전히 마음속에 남아 있는 자신의 지난 날을 떠올리며 지금 젊은 세대가 겪고 얻는 것이 마냥 젊은이들의 것만은 아니라는 걸 말한다.
이자벨의 에세이엔 페미니스트로서 활동했던 젊은 날과 수많은 학생들을 가르쳤던 교수로서의 자신, 우울증을 달고 살던 어머니와 스스로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 많은 것이 달랐으나 진정으로 사랑했던 전 남편과 그 누구보다 사랑한 조카에 대한 애정이 가득 묻어 있다. 그런 과정에서 작가는 자신이 사랑했던 것들을 톺아본다.
앞서 언급한 인용글의 마지막은 '결과적으로 내 안의 젊음이 완전히 죽지 않았을 때여야만 늙음에 대해 말할 수 있다.'로 끝이 난다. 인간의 신체는 늙고 병들지만 과거에 대한 기억과 젊음은 손상되지 않는다. 늙음과 별개로 시간은 흐르고 과거는 지나간 것이지만 살아있는 것이기도 하므로. 나아가 나는 엄마의 기분을 지금 당장 느낄 수는 없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하게 느끼게 될 것이다. 그때에도 내 마음엔 젊음이 있을 것이고 그렇기에 나의 늙음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나이 든 사람에게도 잘 나갔던 과거가 있고 행복했던 시절이 있다. 젊어서 그가 온 마음을 바쳤던 존재와 신념과 나날들. 나이가 들고 노인이 되어간다는 것. 평생 기억하던 걸 잊게 되고 아픈 곳이 점점 많아진다는 것. 받아들이기 힘든 몸과 정신의 변화를 잘 받아들일 수 있는 나와 사회와 사람들이 되길, 그리하여 노인이 품고 있는 젊음이 존중받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