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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릴라 형과 오로라 - 제10회 정채봉 문학상 대상 수상작
이병승 지음, 조태겸 그림 / 샘터사 / 2021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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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릴라 형과 오로라>는 제10회 정채봉 문학상 대상 수상작으로 표제작을 포함해 총 세 편의 동화가 실린 동화집이다. '고릴라 형과 오로라'는 유튜브에 도전하려는 아이와 삶에 다양한 시행착오가 있었음에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그에 가까워지려 노력하는 고릴라 형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쁜 기억 삽니다'는 나쁜 기억에 관한 생각을 다시 한 번 재고할 수 있게 해준다. 귀에 대고 나쁜 기억을 털어놓으면 그것을 모조리 잊게 해주는 귀. 아이는 과연 어떤 선택을 내릴까. 마지막으로 '이상한 친구'는 아동학대 및 방임을 다루는 이야기다. 자신을 좀비라고 했다가 새라고도 하는 '운서'는 방임 아동이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계를 구축한다.
p.28 "너 오로라가 어떻게 생기는지 아냐? 나도 정확히는 몰라. 아무튼 태양에서 뭔가 빛의 에너지 같은 게 지구로 오는데, 지구에는 자기장 같은 게 있어서 서로 충돌을 한대. 그러니까 오로라는 충돌 때문에 생기는 거지. 충돌! 그 말을 듣는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 가위로 뒤통수를 맞을 때 나한테도 오로라가 생기면 좋겠다, 뭐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인데. 그때부터였어. 악착같이 돈을 모아서 언젠가는 진짜 오로라를 보고 가고야 말겠다고."
p.62 내가 팔아버린 나쁜 기억이 모두 돌아왔다. 그런데 그 느낌이 달랐다. 이제는 나쁜 기억도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애초에 나쁜 기억이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p.77 친구는 두 개의 레일처럼 나란히 가는 거야. 각도가 삐뚤어져서 너무 가까워지거나 멀어지면 기차가 달릴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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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편의 이야기 중 가장 마음에 남은 건 '이상한 친구'였다. 내게도 어린 시절 '운서'와 같은 친구가 있었기에 그 친구의 얼굴이 잠시 생각나기도 했다. 스스로를 좀비라고 불렀다가 새가 아닐까 생각하고, 스티븐 호킹의 환생이라고도 하는. 운서의 그러한 세계는 어른들이 잘못 세운, 삐딱한 세계에서부터 출발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공상과 생각은 현실에서부터 나를 잠시 탈출시키고 숨 고르게 해주므로, 눈앞에 놓인 현실을 잠시 잊게 해주므로. 그리고 이는 곧 아이가 마주할 현실이 만만치 않은 세상임을 반증하는 것이므로.
고릴라 형의 삶 역시 마음이 갔는데, 그건 내가 돈 버는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대학생에 알바생 신분이긴 하지만 돈을 번다는 건, 또 원하는 일에 다가서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조금은 배웠기에 오로라를 보러 가겠다는 형의 마음이 가깝게 다가왔다. 그거라도 없으면 못 버틴다는 말, 세상이 만만치 않다는 말. 어린 내게도 세상은 그러했나, 자주 뒤돌아보게 되는 지점이었다.
어린 시절의 내가 '운서' 같은 아이였다면 지금은 '고릴라 형' 같은 어른이 된 것 같다. 그리 평탄하지 않았던 가정에서의 나를 피해 공상으로 숨어들던 나와 세상이 녹록치 않다는 걸 깨닫게 된 지금의 나. 아이들에게 이 동화는 어떻게 읽힐까, 과거의 나라면 이 책을 어떻게 읽었을까,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