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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행은 끝났다 - 좋은 날 다 가면 다른 좋은 날이 온다
김소망 지음 / 꿈꾸는인생 / 2021년 9월
평점 :
지난해 7월, 학기가 끝남과 동시에 휴학을 선택했다. 스물셋이었고 졸업을 한 학기 앞둔 사학년이던 나. 오래 전부터 마음먹고 있던 휴학이었음에도 후련함보단 불안감이 들었다. 불안의 기저엔 졸업 후의 상황에 대한 두려움과 수도권으로 가기 위해 돈을 모아야 한다는 마음, 그러면서도 취업 준비를 잊지 않아야 한다는 조급함이 있었다. 일 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돈을 모으고 국내여행도 짧게 다녀왔으며, 하고 싶던 프로그램에도 참가하고 책도 조금씩 읽었다. 졸업 후의 상황이 무서워 도망치듯 선택한 휴학은 내게 '내가 누구인지'를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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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행은 끝났다>는 여행 에세이다. 좀 더 정확히는 '좋은 날 다 간 뒤의 또 다른 좋은 날'에 관한 이야기, 즉 여행 후의 일상에 대한 에세이다. 서른 셋, 남편과 함께 세계여행을 떠난 저자는 부득이한 사정(조카의 건강 악화)으로 계획보다 일찍 귀국하게 된다. 저자는 한국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한국에서의 삶을 떠올리고 적응하며, '이런 게 싫었지' 라고 생각하지만 예전만큼 그것들을 미워하진 않는다. 그저 열심히 놀고 취업을 준비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그렇지만 마음 한 곳엔 여행에 대한 불을 꾸준히 지피며 다시 한국에서의 삶을 살아간다.
p.48 한국에 돌아왔다는 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 때문에 매우 행복했다가 때때로 마음이 어려워지기도 한다는 것, 그리고 기피하고 싶은 순간들을 맞이하리라는 걸 뜻하는 것이었다.
p.65 집에 돌아올 때는 보슬비가 내렸다. 가방에는 이력서를 내려고 마음먹은 출판사의 책이 한아름 들어 있지만 우산을 쓰고 집까지 걸었다. 혼자 골목길을 걸어도 아무도 추파를 던지지 않고, 혹시 누가 내 가방을 낚아챌까 봐 긴장하지 않아도 되는 이 한 시간을 소중히 야금야금 보내고 싶은 마음에서.
p.122 우리가 그들의 삶을 살아낼 수 없는 것처럼 그들도 우리의 삶을 살아낼 수 없을 것이다. 역시 각자의 삶이라는 게 있는 거니까 우리는 그저 우리 페이스대로 사는 게 최선이다.
p.198 여행을 떠나기 전, 시아버지의 "너는 지금 도피하는 거다" 라는 말에 그런 게 아니라고 큰 소리로 반박했던 창연이, 여행 도중 "이게 도피라는 걸 인정한다" 라고 내게 얘기했던 것처럼, 나는 여행이 끝나는 날까지 '도피가 뭐가 나빠. 넌 그래도 돼. 그런데 난 도피한 게 아니야'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잘 모르겠다. 정말 단 1%도 아닌 것인지. 만약 도피가 맞다면 우리 영혼이 조금은 가난해지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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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이 책의 서포터즈를 모집하는 글을 올렸을 때, "좋은 날 다 가면 다른 좋은 날이 온다"는 문장이 눈에 띄었다. 대개 좋은 날 후엔 고생이 온다고 생각하는데 좋은 날 후에 또 다른 좋은 날이라니. 문장을 읽는 자체만으로 위로가 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정말, 저자와 남편에겐 또 다른 좋은 날이 기다리고 있었다.
책의 마지막에서 저자는 자신과 남편의 여행을 도피였나 아닌가 생각한다. 마치 내가 휴학을 선택할 때 '시간을 번다'는 핑계로 도망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휴학 혹은 여행의 이유가 도피이든 뚜렷한 목표에서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일상과 분리된 '쉼'이 주는 것은 그 어떤 완벽한 계획보다도 나를 더 알게 하고 나를 더 느낄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더이상 내 휴학의 이유를 내게 묻지 않는다. 나는 그저 열심히 일했고 돈을 모았으며 틈틈이 사람들도 만나고 국내여행도 하며 잘 지냈으니. 그러는 사이 진로의 방향도 정해졌고 노력하고 있으니 그거면 된 게 아닐까 싶다.
여행에 관련된 에세이는 많지만 그 이후의 삶을 보여주는 에세이는 흔하지 않다. 저자의 솔직한 감정과 문장으로 여행과 여행 이후의 삶을 경험할 수 있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