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듣기론 여자가 먼저 남자한테 뭘 하자고 말하는 법이 없다면서요? 하지만 그건 정말 멍청한 짓이에요, 안그래요?"-103쪽
"입 다물라고 했지. 난 아무나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거든. 하지만 만일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다면, 그땐 시작부터 평등하고 정당하고 확실한 관계가 되도록 할 거야. 네가 제니퍼를 쫓아다닌 것처럼 그가 나를 쫓아다니게 하지는 않을 거라고. 다른 남자애들도 그런 식으로 제니퍼를 쫓아다니지만 말이야. 또 내가 너를 따라다녔던 것처럼 그를 따라다니지도 않겠어. 그건 정말 어리석은 방법이야. 이게 바로 사랑에 대한 내 생각이야. 평등하지 않다면, 그 사랑은 진짜가 아니야. 그리고 진짜가 아닌 사랑은 소유할 가치도 없는 거지. 난 저 버스를 타고 갈게."-117-118쪽
"제스, 내가 한 가지만 말해줄게. 사랑은 말이야, 키스하고 껴안고 하는 게 전부가 아니란다. 하지만 열일곱 살 먹은 젊디젊은 애가 그걸 이해할 리가 없지."-167쪽
그래, 소용없는 게 있다. 젖어버린 신발처럼, 범람하는 제방처럼, 누군가에게로 흘러가는 마음의 강물은 도저한 양츠강의 범람처럼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48쪽
지평선
김혜순
누가 쪼개놓았나
저 지평선
하늘과 땅이 갈라진 흔적
그 사이로 핏물이 번져 나오는 저녁
윗눈꺼풀과 아랫눈꺼풀 사이
바깥의 광활과 안의 광활로 내 몸이 갈라진 흔적
그 사이에서 눈물이 솟구치는 저녁
상처만이 상처와 서로 스밀 수 있는가
두 눈을 뜨자 닥쳐오는 저 노을
상처와 상처가 맞닿아
하염없이 붉은 물이 흐르고
당신이란 이름의 비상구도 깜깜하게 닫히네
흰낮과 검은밤
낮이면 그녀는 매가 되고
밤이 오면 그가 늑대가 되는
그 사이로 칼날처럼 스쳐 지나는
우리 만남의 저녁
꽃잎 지는 시간
문태준
겨우 밥술 뜰 만한 힘으로
늙은 손목에서 뛰는 가녀린 맥박과도 같이
가까이 아주 가까이에서,
나의 생각과 생각이 나를 어루만지다 잠시 떠나듯이
말려야겠다는 생각이 오기도 전에
"아마 그게 이유일거야, 조니. 아마 앨리사는 다른 아이들을 더 이상 죽게 하지 않기 위해 죽었을 거야."-537쪽
"지금 말해줘요. 내가 왔다 갔다고 말하지 말고. 지금 여기 있다고 말해줘요."-53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