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겨가는 초원


그대와 나 사이 초원이나 하나 펼쳐놓았으면 한다

그대는 그대의 양떼를 치고, 나는 나의 야크를 치고 살았으면 한다

살아가는 것이 양떼와 야크를 치느라 옮겨다니는 허름한 천막임을 알겠으니

그대는 그대의 양떼를 위해 새로운 풀밭을 찾아 천막을 옮기고

나는 나의 야크를 위해 새로운 풀밭을 찾아 천막을 옮기자

오후 세시 지금 이곳을 지나가는 구름 그림자나 되어서

그대와 나도 구름 그림자 같은 천막이나 옮겨가며 살자

그대의 천막은 나의 천막으로부터 지평선 너머에 있고

나의 천막은 그대의 천막으로부터 지평선 너무에 두고 살자

서로가 초원 양편으로 멀찍멀찍이 물러나 외면할 듯이 살자

멀고 먼 그대의 천막에서 아스라이 저녁연기가 피어오르면

나도 그때는 그대의 저녁을 마주 대하고 나의 저녁밥을 지을 것이니

그립고 그리운 날에 내가 그대를 부르고 부르더라도

막막한 초원에 천둥이 구르고 굴러

내가 그대를 길게 호명하는 목소리를 그대는 듣지 못하여도 좋다

그대와 나 사이 옮겨가는 초원이나 하나 펼쳐놓았으면 한다




꽃 피우는 나무에게


이리저리 굽어 꺾였지만 천공(天空)을 향해 뻗어가는 한 그루의 나무가 있었다 평범한 대기 속에 꽃을 나눠주고 있었다 꽃을 나눠주고 나눠주어도 꽃이 줄어들지 않는 꽃나무가 있었다 어두운 예감이라곤 조금도 없는 색채였다 간혹 나처럼 옹색한 사람에게는 제일 높은 곳의 꽃을 내려주었다 가도 가도 우러르면 꽃나무 아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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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거짓말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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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어봤으면 대답해주었겠지만, R에게 왜 혼자 사느냐고 묻지 않았다. 내 기준에서는 그것이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R은 그걸 섭섭하게 느꼈을 수도 있겠다. 마음과 마음 사이 알맞은 거리를 측정하는 일은 그때나 지금이나 내겐 몹시 어렵기만 하다. (-삼풍백화점)-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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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풍경 - 김형경 심리 여행 에세이
김형경 지음 / 예담 / 2006년 10월
구판절판


우울증은 내 마음이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난장판이며, 정신의 착오일 뿐이었다.-77쪽

오클랜드 도메인의 파라솔 모양 나무 밑에서였다. 정지된 여행의 일상 속에서 문득 우울증이 오고, 바로 그 '멈춤'이 우울증의 원인이었음을 알았을 때 깨달았을 것이다. 생이란 본디부터 그렇게 유동적이고 불안정하고 소란스럽고 깨어지기 쉬운 것이라는 것을.-91쪽

타인의 성적 방종에 대해 유독 분노하는 사람은 성적으로 도덕적인 사람이겠지만 그의 내면에도 바람둥이가 되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이다. 수다스럽고 경솔한 사람을 경멸하는 과묵하고 진중한 사람도, 거짓말하는 사람을 경원시하는 정직한 사람도, 저마다의 내면에는 바로 그들이 인정하지 못한채 타인에게 전가하는 바로 그 부정적인 측면이 억압되어 있다. 그리하여 우리가 누군가를 혐오하거나 비난할 때 그 행위는 곧 자신에 대한 비난이 되는 셈이다.-1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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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성기 옮김 / 이레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도둑이 제발 저린다고 했던가.

우리가 어떤 잘못을 하게 되면, 그게 잘못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다. 누군가 내게 비난을 하고 욕을 하고 훈계를 할 때, 그 앞에서는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변명도 해보고, 핑계도 대보곤 하지만, 사실 우리는 우리가 잘못했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스물 다섯살 때였나. 짝사랑을 했던 적이 있다. 그러니까 그때는 그게 짝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 남자의 걷는 모습도, 냄새도, 농담까지도. 뭐 하나 맘에 들지 않는게 없었다. 그렇게 그를 혼자 좋아하고 있을 때, 후배가 내게 저 오빠 좋아해요, 라고 고백해왔다. 그러니 잘 되게 좀 도와달라는 식이었다. 아뿔싸, 나도 좋아하는데. 내가 그를 ‘먼저 알았고 먼저 좋아했’다는 것 쯤은 후배가 ‘먼저 고백’한데서 아무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표면적으로 나는 그 둘이 잘 되게 도와주려 애썼다. 사실 내 진실한 마음은 그 둘이 잘되는걸 원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여러명이 모여 술자리를 가지게 되었을 때, 후배는 내게 그를 불러달라고 했다. 고백을 할거라고. 나는 그를 불러내줬고, 계속 술을 마셨다. 다음날 후배에게 물어보니 그의 대답은 노, 였다고 한다. 그는 동갑의 다른 여자를 좋아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했다. 후배는 내게 혹시 그게 언니 아니예요? 라고 물었다. 나는 아니라고 했다. 아닐거라고. 그러나 사실은 그러길 바랐다.

이 책 속의 선생님도 아가씨를 먼저 알았고, 먼저 마음에 품었다. 그러나 뒤늦게 알게 된 친구가 ‘먼저 고백’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그를 말린다. 아가씨를 좋아하지 말라고. 그리고 자신은 아가씨에게 청혼한다.

그리고 며칠 뒤 친구는 자살한다. 유서에는 선생님을 원망하는 어떤 문장도 없다. 친구가 자살하기 전에도, 친구를 말렸던 자신이 아가씨에게 청혼했단 사실에 대해 내내 불편해했던 선생님은, 친구가 자살하자 그 마음속의 짐을 덜어놓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아가씨에게도 말할 수가 없다.

모든 감정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친구의 애인을 뺏어놓고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가 한 여자와 잘되기 위해 친구를 말린 누군가는 평생 편안한 마음을 갖지 못할 수도 있다. 그때 말할걸. 그때 말했어야 했어. 내가 그러는게 아니었어.
그를 힘들게 하는건 타인의 비난이 아니었다. 원래 악한 사람으로 태어나는게 아니라 상황이 되면 인간은 모두가 악해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았던 자기 자신이었다. 자신이 가장 경멸했던 행동을 자신이 하고 있었다.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는 기분. 그는 그런 마음상태로 도무지 세상에 나갈 수가 없다.

나도 몇번. 아니 어쩌면 아주 많이.
타인의 어떤 행동들을 보고 경멸해놓고서는 내가 저지른 적이 있다. 그리고 그런 자신에 대해 치를 떨기도 했다. 어떻게 내가 이래, 어떻게…
어쩌면 이 책속에서 선생님이 말했듯이, 그 상황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같은 상황이어도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 수 있었겠지만.

이제와서 내가 저질렀던 잘못들을 후회해봐야 무얼할까. 다 부질없는 짓. 그저 나는 그 잘못들을 다시 또 반복하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뿐이다. 그러나 그렇게 노력한다고 해서 내 마음의 빚이 덜어지는 건 아니다. 나는 여전히 어떤 것들에 대해서는 마음이 늘 무겁다. 내 마음이 무거운 건 다른 누군가의 탓이 아니다. 그저 내가 스스로 알아서 느끼는 것 뿐이다.

어쩌면 마음은 그래서 존재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잘못을 잘못으로 인식하게 하기 위해서. 다시는 그런일을 반복하지 않도록 도와주기 위해서. 그게 마음이 존재하는 이유중의 하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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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여인과의 하루
한스 카노사 감독, 헬레나 본햄 카터 외 출연 / 기타 (DVD)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결혼식 피로연에서 남자는 여자에게 샴페인을 권하며 다가간다. 그들은 자신들의 과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춤을추고 웃는다. 그들은 조금 더 시간을 함께 하고 싶지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밤이 깊어가는 그 시간, 여자는 새벽 네시에 일어나 런던으로 가기 위한 비행기를 타야 한다.

결혼식 피로연이 끝나고 둘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여자가 묵고 있는 방으로 올라간다. 남자가 방안의 불을 끄는 순간 여자는 그를 기억해냈다고 말한다.

사실, 그들은 서로의 15년전 모습을 알고 있다. 15년전 그들은 함께 걸었고 함께 웃었고 아침저녁으로 한번씩, 혹은 두번 섹스를 나눴다. 남자는 여자에게 너의 섹스는 정말 끝내줬었지, 라고 말한다. 그 둘이 각자 자신의 과거를 말했을 때, 사실 그 과거는 ‘그들’의 과거였다.

15년전, 그들은 어렸었다. 철이 없었다. 처음 본 순간 키스를 했던 그들은 얼마 못가 결혼생활의 종지부를 찍고 여자는 런던으로 날아갔으며 남자는 여자를 찾곤 했다. 지금은 여자에게도 남편이 있고 남자에게도 애인이 있다.

여자는 남편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너와 섹스는 하겠지만, 이것이 잘 하는 짓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현재의 남편을 사랑하고 식구를 사랑한다고 했다. 남자는 애인에게 큰 정이 없다. 남자는 여자로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말을 듣고 싶다.

15년이 흘렀고 그들은 지금 서른여덟. 여자는 추억은 추억일 뿐, 지금와서 그 무엇도 되돌릴 수 없음을 안다. 그래서 여자는 시종일관 시니컬한 말투를 버리지 못한다. 여자는 나이에 대한 언급이 싫고, 조금 지쳐있다. 과거에 열정을 쏟았던 남자가 눈앞에 있어서 그때가 떠올라 가끔 웃긴 하지만, 시종일관 그녀의 눈에는 삶에 대한 피로가 역력하다.

그래서 남자의 눈빛이 인상적이다. 여자가 하는 말를 들어주는 그의 눈빛은 밝게 빛나고 있다. 따뜻하다. 그는 원래 미소를 머금은 얼굴인걸까. 지친 여자의 시니컬한 말들을 들으면서도 그는 내내 따뜻한 눈빛을 유지한다. 어쩌면 그래서 지친 여자도 계속 얘기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눈빛으로 날 보는데야 무시할 수가 없지.

『프랑켄슈타인』에서였던가. 나는 ‘헬레나 본햄 카터’를 보고 전형적인 미를 가진 여자라고 생각했었다. 그녀는 작고 하얗고 예뻤다. 그런데 서른 여덟을 연기하는 지금, 아니 그녀는 현재 그정도의 나이이겠지만, 그녀는 더이상 예쁜 소녀가 아니다.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을 가진 소녀가 아니다. 그녀는 삶에 지친 여자다. 이 영화속의 남자가 그녀에게 얘기하듯이 15년전의 살결이 조금 더 부드러웠을 것이다.

서른여덟이 되어 15년전의 그와 섹스를 하려고 옷을 벗는 여자는 더이상 예쁘고 탱탱한 몸매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리고 남자는 15년전보다 조금 더 살이 쪘다. 살을 빼야겠다고 생각한다. 시간은 그들의 모습을 변화시켰고, 되살아난 추억속으로 기꺼이 걸어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진 않는다.

영화는 남자의 시선과 여자의 시선을 따로따로 쫓아간다. 화면의 절반속에는 남자가 있고 또 화면의 절반 속에는 여자가 있다. 한쪽에는 여자가 보는 남자가 있고 한쪽에는 남자가 보는 여자가 있다. 그들은 쉽게 한 화면속에 잡히지 않는다. 때로 그들이 한 화면속에 잡힐 일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을 때이다.

그래서 처음엔 이 필름이 혹시 망가진 필름은 아닐까 생각했었다. 왜 절반으로 뚝 떼어놓아서 나로 하여금 그 둘을 동시에 보게 할 수 없는걸까. 참 신기하다. 화면은 하나인데 둘로 나눠 놓으니 나는 여자를 보거나 혹은 남자를 보거나 해야 한다. 그 둘을 동시에 보는 것이 어렵다. 나는 주로 여자의 시니컬한 표정을 보았지만, 가끔 시종일관 따뜻한 눈빛을 지니는 남자를 보면서 그에게는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일종의 ‘희망’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 희망이 한쪽만의 것이라면, 그 희망의 최종 목적지가 사랑일때, 이루어질 수가 없다.

화면은 나뉘어져있고, 등장인물도 거의 없다. 때때로 그들이 함께 화면의 한쪽을 차지하고 얘기할 때, 다른 한쪽에서는 그들의 애인이나 혹은 그들의 과거가 보여진다. 아, 물론 각자의 현재의 말과 마음속의 마음들이 보여지기도 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독특하다.

3시 15분. 여자는 샤워를 한다. 들러리 옷을 두고 일상복으로 갈아 입는다. 헤어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느라, 남자가 내뱉는 말들을 전혀 들을 수 없다. 이제 공항으로 가야 할 시간. 그들의 하룻밤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같이 웃는 시간이 조금 더 길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몇시간전에 한 침대에서 웃었던 것 처럼 계속 웃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안에서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어쩌면 상대가 앉아있을지도 모를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왜 우리는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을까. 시행착오를 거쳐 우리가 조금 더 나은 사람은 되겠지만, 우리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서 만나게 될 상대는 그때의 그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어쩌면 내내, 낯선 사람을 만나 한순간 웃다가, 조금 더 오랫동안 씁쓸하고 지친 표정으로 살아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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