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채 시작하기도 전에, 여름을 기다리면서, 나는 당신으로부터 튕겨져 나왔다. 그 순간 내 여름은 지독해졌고, 그것은 끝이었다. 그 아침, 당신으로부터 튕겨져 나오던. 나는 쪼그려 앉아 훌쩍였다.  저녁 나절 내내 걸었다. 종아리가 당기고 발바닥이 욱신거릴 때까지 걸었다. 걷는것 만이 그 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매해 여름은 다시 온다. 그리고 다시 간다. 매해 여름은 끝나지만 그것이 여름의 영원한 끝은 아니다. 그러나 그 모든 여름이 그 해의 여름과는 같지 않다. 그 여름은 박살났지만, 나는 살아남았다.




여름의 끝


오래된 시간 앞에서 새로 돋아난 시간이 움츠린다

머리에 조그만 뿔이 두 개 돋아나고

자꾸 만지작거린다

결국 도깨비가 되었구나, 내 사랑



신발이 없어지고 발바닥이 조금 단단해졌다

일렁이는 거울을 삼킬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수천 조각으로 너울거리는 거울 속에

엉덩이를 비추어 보는 일은

이젠 그만하고 싶다



두 손으로 만든 손우물 위에

흐르는 당신을 올려놓는 일

쏟아져도, 쏟아져도 자꾸 올려놓는 일



배 뒤집혀 죽어 있는 풀벌레들,

촘촘히 늘어선 참한 죽음이

여름의 끝이었다고

징- 징- 징-

파닥이는 종소리





쏟아져도, 쏟아져도 나는 당신을 자꾸 올려놓고

올려놓는대로 당신은 다시 쏟아지고

그렇게 여름이 끝났다.


아니, 내 여름은 끝날줄을 모르는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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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조너선 프랜즌 지음, 홍지수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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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티는 리처드가 먼저 연락을 하지 않는 한 자기가 먼저 연락을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고, 그를 과거에 묻어버렸다.-252쪽

랄리사가 오늘 아침 패티에게 그리고 월터에게 화를 내는 건 당연했다. 거부당하고 외롭지 않았겠는가. 월터가 랄리사의 쌀쌀맞은 모습을 본 건 처음이었다. 월터는 자신과 같은 위치에 있는 남성이 등장하는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며 그런 남성에 대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은 점이 지금 분명하게 보였다. 누군가로부터 전폭적으로 계속 사랑을 받으려면 어느 시점에 사랑으로 보답을 해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단순히 좋은 사람인 것만으로는 점수를 얻을 수 없었다. -440쪽

3년 동안 날 행복하게 해주지도 않을 것을 얻기 위해 무척 애썼지. 그래도 포기가 안 되더라. 넌 끊을 수 없는 마약 같아. 난 내게 끔찍한 약인 줄 알면서도 그걸 손에 넣지 못해 슬퍼하느라 평생을 낭비했어. 말 그대로 어제, 실제로 널 본 후에야 나한테 그 약이 필요 없다는 걸 깨달았어.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더라. '제정신이야? 리처드는 월터 때문에 온 거라고.'"-491쪽

월트는 항상 코니가 마음에 들었다(그리고 그에게 꼬리를 친 코니의 엄마를 남몰래 좋아하기까지 했다). 코니는 위태로울 정도로 굽이 높은 구두를 신었고, 특별한 날을 위해 눈 화장도 짙게 했다. 나이 들어 보이려고 애쓰는 걸 보니 아직 어렸다.-6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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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왼손 그리폰 북스 3
어슐러 K. 르 귄 지음, 서정록 옮김 / 시공사 / 2002년 9월
구판절판


예언자 두 사람이 아무 말 없이 뒤로 물러 나왔다. 그리고 그 중 한 사람이 자신의 왼손을 들어 간간이 마룻바닥을 열 번, 또는 스무 번씩 쳤다. 그리고는 다시 제자리로 가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들을 전에는 본 적이 없었다. 그들은 '광대'라고 고스가 말해 주었다. 그들은 정상이 아니었다. 고스는 그들을 '시간분해자'라고 불렀다. 그것은 정신분열증을 의미하는 말 같았다. 카르하이드의 정신분석자들은-비록 마음의 언어를 가지고 있지 않아 좀 눈먼 외과의사 같은 점이 없진 않지만- 약이나 최면술, 국부충격, 한랭요법 그리고 다양한 정신적 치료법 등을 재치 있게 사용하고 있었다. 나는 이들 두 정신병 환자를 치료할 수 없는지 물어보았다.
"치료라고요? 가수의 목소리를 치료하시겠다는 겁니까?"-93쪽

"이것은 에큐멘의 관습이고 거기에는 이유가 있지요. 물론 제가 그 이유를 다 헤아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적어도 여러분을 위해서인 것만은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제가 이렇게 혼자 옴으로써, 즉 이렇게 완전 무방비 상태로 나타남으로써 당신들에게 위협을 주는 일도 없을 것이고 균형을 깨뜨릴 일도 없게 됩니다. 다시 말해 침입자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사신의 입장인 것이지요. 사실 여기에는 그 의상의 의미가 있어요. 즉 저혼자서는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가 없지요. 오히려 제가 변화되면 되었지 말입니다. 혼자이기 때문에 나는 내 입장을 설명하기에 앞서 여러분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지요. 혼자인 내가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면 그것은 절대로 비인격적인 관계가 될 수 없습니다. 또 정치적이 될 수도 없고요.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관계, 그래서 정치 이상의 고나계, 아니면 그 이하의 관계가 될 뿐입니다. '우리'와 '그들'의 관계도 아니고 '나'와 '그것'의 관계도 아닙니다. 바로 '나'와 '너'의 관계이지요.-3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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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5구의 여인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2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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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말을 하고싶은지도 알겠고 재미도 있지만, 허탈하고 허무하다. 이 작가는 도무지 좋아할래야 좋아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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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오즈
요헨 틸 지음, 정지현 옮김 / 낭기열라 / 2006년 5월
절판


콘스탄체는 아주 자연친화적이었다. 이 말로 충분할 것이다. 그리고 콘스탄체는 콘스탄체라 불리길 고집하며, 코니 따위로 불리길 거부했다. 내가 조금 전에 시도해봤다가 금방 그만뒀듯이.
"내가 코니라고 불릴 거라면 우리 부모님이 코니라고 이름을 지었겠지. 콘스탄체가 아니고 말이야."-2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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