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담을 넘은 아이 - 2019년 제25회 황금도깨비상 수상작 ㅣ 일공일삼 51
김정민 지음, 이영환 그림 / 비룡소 / 2019년 7월
평점 :
우리는 지금 남자와 여자로 나누고, 어느 동네에 사는 지로, 또 나이별로, 온가자 조건으로 편을 나누어 구분 짓습니다. 그러고는 우리 편이 아니면 배척하고 차별하며 싸우기도 합니다. 말은 거칠어지고 혐오를 담은 새로운 말들이 만들어집니다. 신분과 성별로 구분 짓고 차별하던 옛날과 지금의 상황이 제 눈에는 다르게 보이지 않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편을 가르지 않기를, 차별받지 않기를, 고통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썼습니다. 아기를 살리기 위해 성별, 신분, 나이를 떠나 마음을 합쳤던 푸실이와 효진, 선비처럼 모든 사람들이 세상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 모아 함께 나아가길 바랍니다.
모든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작가의 말 중에서-
주인공 푸실은 온갖 차별을 받아야만 했던 가장 비천한 신분을 지닌 집안의 맏딸이다. 유일한 아들인 남동생 귀손이의 목숨을 살린 값을 치르기 위해 어머니가 젖먹이 여동생을 나두고 부잣집에 젖어미로 가게 되면서 아버지도 나 몰라라 하는 이름도 없는 갓난아기의 목숨을 지키려는 푸실의 가슴 절절한 사투가 시작된다. 두 녀석을 내리 2년 동안 젖을 먹여 키워 그런지 책을 읽는 내내 아기가 젖을 빠는 모습이 아른아른했다.
푸실은 우연히 [여군자전]이라는 책을 주워 효진 아가씨를 통해 글을 깨우치며 '어찌 살 것입니까?'라는 책 속의 문장과 만나 힘을 얻게 된다. 현실은 매우 처참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힘차게 나아가는 푸실을 따라가며 왠지 모를 기시감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는데, 아마도 그건 까마득한 조선 시대나 지금이나, 그러니까 내가 딸로서, 여자로서의 살아온 삶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느낌 때문이었을까? 학창 시절 친구들에게 '후남'이라고 불리곤 했으므로.
혹자는 '에이,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라고 몹시 어이없어할지도 모르겠지만, 세상은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아픈 진실이다. 여전히 하루가 멀다 하고 데이트 폭력이나 가정 폭력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는 여성들이 뉴스에 심심찮게 나오고 있으며 소수자이거나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크고 작은 차별을 당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무수히 존재한다. 그런데도 '세상이 원래 그런 거지...'라며 타성에 젖은 우리에게 푸실이 씩씩하고 단호하게 말을 던진다.
"문이 막히면 담을 넘으면 되지 않습니까?"
아아! 나는 이 문장에서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동화책이 나를 울리다니! 아무래도 지금 그 어떤 담을 넘어야 할 시기이기 때문이라서였을까? 내가 넘어야 할 가장 힘든 담은 세상이 아니라 어쩌면 나 자신일 지도 모르겠다.
여성이 아니어도 그 누구든 닫힌 문 앞에서 절망을 느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 보시라. 어느새 눈물을 훔치며 담을 넘고 있는 자신을 발견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니.물론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음)이라고 외치는 아이들이 읽으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다.
세상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고 모든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다정하고 따스한 작가의 말에 마음을 포개는 날이다.
#담을넘은아이 #김정민글 #이영환그림
#제5회황금도깨비수상작 #비룡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