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운 배 - 제21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이혁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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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주중 휴일은 책 읽기 참 좋은 날인데, 이렇게 훌륭한 한국소설과 반나절을 보내니 참 흐뭇하네. 겨우 몇 년 전인 2016년에 나왔고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데 한승혜님의 권유로 읽기까지 작가나 소설의 이름을 들어본 기억도 없었다.

내 독서습관이 비소설쪽으로 치우쳐 있지만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재작년에는 8대2, 작년엔 9대1로 소설의 비중이 낮아지더니 올해는 얼마 전 읽었던 이기호씨의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가 올해 읽은 첫 소설일 정도다. 그나마 몇 안되는 소설들도 대부분 외국 유명 작가의 작품이고.

왜 한국소설을 안읽냐고? 문학상 받았다는 작품들을 찾아봐도 사랑이나 가족사라는 사골 소재가 일주일 넘게 들통으로 고아 우린 곰국물처럼 다루고 있고, 소설에 나오는 조직들도 학교나 대학, 언론이나 출판계쪽들이 많아 물릴대로 물린 지가 한참이다.

외주제직사의 드라마작가가 쓴 회사생활 드라마의 설정이 어이없어 웃음이 나올 지경이라고 하지만 그나마 팀 단위로 일하는 방송쪽은 소설보다는 낫다. 아무리 각색과 위트의 재능이 있어도 조직생활의 경험이 없는 이들이 회사나 행정관청 내부의 생리를 어찌 알겠는가?

조선업이 활황이던 2000년대 중반에 중국에 진출한 한국의 중소조선소에서 일하는 실무자가 화자인 이 소설은 제조업종 중에 규모 대비 자동화율이 가장 낮아 인력의 중요성이 큰 조선업의 특성을 잘 살려서 회사 조직 내에서 사람들이 일을 해내기 위해 협업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물리와 힘'(누운 배를 읽으신 분들만 알 수 있는 ㅎㅎ)' 사이의 충돌과, 개인들이 그 충돌과정에서 이익을 얻거나 불운을 피해가기 위해 하는 행동들을 잘 묘사하고 있다. 중간에 등장하는 강렬한 인물인 황사장은 1998년 한국전기초자에 부임했던 서두칠 사장이 떠올랐고.

'누운 배'라는 흥미로운 소재가 책을 덮을 때 쯤이면 (한국)사회에서 노동력을 팔아 조직 내에서 분업하며 받는 대가로 살아가야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각자 다른 '상징'이 되리라 믿는다.

잘 짜여진 큰 회사에 다니는 분들보다 전 직원이 수백 명 단위인 회사나 조직에서 일하는 분들이 더 재미있게 읽으실 듯. 누가 공무원 조직(특히 구청 정도의 애매한 단위)이나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이런 소설 써주면 좋겠네.

나처럼 내수로 먹고사는 사람들도 풍족한 생활수준을 누리게 해준 공로자들인 조선업 종사자분들이 어떤 일을 하시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된 것도 이혁진 작가님 덕분에 소득이고.

무려 3년 동안 쓰셔서 이 소설을 완성했고, 지금도 글 쓰는 일로 생계를 꾸리고 계시는 이혁진 작가님을 위해, 맡은 일을 충실히 하려 노력하고, 그 와중에 다른 사람들도 배려해주는 소설은 거의 안보는, 내 직장 동료들에게 선물하고자 세 권을 주문했다.

훌륭하거나 저렴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가 이익을 얻고 더 성장해야 하는 것처럼 선배의 집에 더부살이하면서도 끝내 이 소설을 만들어낸 작가와 훌륭하지만 묻혀버린 책들을 발굴해주는 프로독서가가 마땅한 대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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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쪽

회장은 모든 일을 지시하는 사람이었지만 자신이 직접 그 일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으므로 모든 일에서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있었다.

82쪽

많은 사람이 굴욕과 손실을 지적하고 반발하는 대신 아량과 인정, 애사심이라는 것을 발휘했다.

97쪽

사람들은 많은 시간을 자잘한 기본 업무에 치여 정작 기본 업무를 정의하고 정리하는, 불필요한 일을 빼고 더 필요한 일을 집어넣는 작업은 하지 못했다. 어제 한 일을 오늘도 했고 내일도 모레도 해야 했으며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일은 줄지도 더 쉬워지지도 않았다. 그것이 빤히 보이자 사람들은 더 나갔다.

161쪽

(황사장의) 포화 속에서 무능한 임원들의 해명은 변명이 됐고 변명은 핑계가 됐으며 핑계는 무관심과 무책임으로, 무관심과 무책임은 이해력과 관찰력 부족, 관리 태만, 책임 회피, 분별력과 판단력 결여로 낱낱이 까발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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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가지 인생의 법칙 - 혼돈의 해독제
조던 B. 피터슨 지음, 강주헌 옮김 / 메이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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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오늘 법칙 11과 12를 다 읽었다. 한 번에 읽기보다는 성경처럼 소파테이블이나 전면책장에 올려놓고 틈틈히 조금씩 읽으면 좋다.

종교인들이 주기적으로 경전을 읽고 강독을 듣는 의식에 참여하는 것처럼 차분히 홀로 보내는 시간에 이런 “현대인을 위한 성경”(피터슨이 라이트펜을 가지고 궁극적으로 쓰려는 책이 이런 거라고 느꼈다.)을 보는거 좋지 않나?

조던 피터슨 그 자신이 유툽 영상 속에서나 인터뷰에서 자신이 세운 원칙을 얼마나 잘 지키고 있나 떠올려 보며 읽었다. 그런데, 자꾸 <골든 아워>에서 이국종 교수님이 비춰보이네.

전체적으로 ‘성경’이라는 맥락 안에서 읽는 게 좋은 책이라 나처럼 성경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면 소화하기 버겁고 거슬리는 부분이 종종 보인다.

가장 개인주의에 기반한 종교는 불교인데 싶어 툴툴거렸지만 이건 피터슨 교수가 목표로한 독자층 때문인듯 싶다.

가구도 직접 만들어 쓰시는지 몰랐는데 역시 상남자! 피터슨의 집 인테리어도 궁금한데 언제 TV에서 공개안하나?

공동체주의 진보주의(특히 불란서뽕의 영향을 받은 포스트모던 맑스주의) 페미니즘 도덕적 상대주의 무신론 성향의 사람이라면 피터슨의 주장을 한 번 경청해보길 권하고 싶다.

그나저나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는 꼭 읽어봐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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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가지 인생의 법칙 - 혼돈의 해독제
조던 B. 피터슨 지음, 강주헌 옮김 / 메이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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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것보다는 못하지만 현대인을 위한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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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목 가구 제작 레시피 32 - 오픈 선반부터 작은 창고까지
마루바야시 사와코.이시카와 사토시 지음, 김윤경 옮김 / 더난출판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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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에 나온 완전 신간. 갈수록 대출을 옥죄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때문에 분양받은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을지 불투명해진 심란한 상황에 이런 책을 나오자 마자 사다니.

 

그래도 십년쯤 후에는 아파트 말고 가까운 시골 마을의 농가주택에서도 살아보고 싶다. 전원생활이 내 취향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나이가 너무 들면 집 관리하는 일도 힘드니 55세쯤에는 시도해볼 생각이다.

 

표지에서는 못질조차 서툴렀던 부부라고 했지만 미대를 나온 조형작가와 디자이너 부부라 아예 초짜인 일반인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저자들은 전문가의 도움으로 교외에 이층 벽돌집의 골격과 화장실을 완성하자마자 이사를 감행했다. 그리고 부엌부터 시작해서 3년 동안 차근차근 집 내부를 꾸미고 자신들이 사용할 가구를 만든다. 32개의 레시피는 이러한 작업의 부산물이고.

 

아직 허영끼가 가득한 내 취향에는 못이나 피스를 박은 자국이 고스란히 드러난 원목가구들이 그리 예뻐보이지는 않지만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을 준다. 이렇게 집을 꾸미고 자기한테 맞는 가구들을 만들어 유용하게 쓰면서 살면 더 행복해질 것 같고.

 

제작 노하우와 간략한 도구 사용법 및 부자재 추천이 딸려 있다. 간략한 수준이라 전문적인 가이드북 수준을 기대하면 안된다. 책 말미에 저자들처럼 손수 인테리어를 하고 가구를 만들어서 놓은 이바라키 현의 까페 두 곳을 소개하고 있다.

(아키타 현 센보쿠 시 가쿠노다테 마을의 멋진 빈티지 상점 겸 까페도 이런 느낌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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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샀을 때 가장 가치가 있는 집을 살 게 아니라, 우리의 취향을 담아 60, 70년 이상 오래오래 살 수 있는 집을 직접 만들자고요.

 

271

 

저도 해보고 실패했던 일이나 여기는 이렇게 하면 좋겠다는 부분도 있지만,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고, 직접 하면 실패에도 애착이 생기거든요. 가끔은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서가 아니고, 사용한 적이 없는 공구를 사용해보고 싶어서 만드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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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도둑 가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6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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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서 <어느 가족>을 보고 가족이라는 주제에 대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오랜 천착이 걸작을 만들어 냈구나 싶었다. 깐이 고레에다에게 괜히 황금종려상을 안겨준 게 아니구나 싶었고. 그래서 고레에다가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고쳐 쓴 이 소설을 보고 싶었다.

읽고 나니 영화볼 땐 두 시간 동안 온전히 집중해서 봤는데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머리 속에서 퍼즐처럼 맞물려 돌아가네. 영화에서는 흐릿하고 짧은 화면으로 처리되거나 전후 사정으로 관객들이 알아서 추측하도록 남겨둔 등장인물들의 과거들을 책이 채워줬다. 두어 달 시간이 흐른 후에 영화를 다시 보면 딱 좋을 듯.

영화를 보고서도 그랬지만 난 등장인물들 중에서 노부요에게 가장 애착이 가네.

 

연기설(緣起說)을 바탕으로 가족이라는 관계를 가지고 불교적으로 묘사한 느낌도 들었다. 불교의 핵심적인 교의를 압축한 삼법인(Three marks of existence:일체개고·제행무상·제법무아)’의 찍힌 것 같았다.

 

<어느 가족>726일에 극장에서 개봉했는데 아직도 상영관이 있다. 모레까지는 대한극장에서, 이달 말까지는 KU시네마테크와 필름포럼에서 하루에 1회 상영하니 보실 분들은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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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보통은 부모를 선택할 수 없는 법인데.”

근데…… 자기가 고르는 편이 강력하지 않겠어?”

 

226

 

누군가 버린 걸 주운 거예요. 버린 사람은 따로 있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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