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도 가까운 -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 반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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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읽는 책 중에 취향이 안맞아 읽기 힘들어 하는 분야가 시집과 내가 사적인 내용이 많은 에세이쪽입니다. 취향이 안맞아 잘 안읽다보니 점점 더 접하기가 어렵더라구요.

<맨즈플레인>으로 유명한 리베카 솔닛의 이 에세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버릴 부분이 없는 아름다은 문장과 마법같은 구조로 제가 경험하지 못했던 경지의 글쓰기를 보여줬습니다.

한 번 읽고서는 감상을 남길 엄두가 안나서 묵혀놨다가 다시 읽었고요. 지금도 그저 잘 쓴 에세이라서 또래나 손위의 지인들에게 읽도록 권하고 싶은 마음으로 타이핑하고 있네요.

이 책은 어린 시절 솔닛이 살았고 어머니가 사는 집에서 수확해온 살구 세 자루에서 시작해서 여전히 남아있는 두 개의 살구시럽병을 바라보며 끝납니다.

목차도 "살구-거울-얼음-비행-숨-감다-매듭-풀다-숨-비행-얼음-거울-살구" 순서로 시작과 끝이 목걸이처럼 이어지고요.

살구, 어머니의 치매, 유방암 수술, 친구의 죽음과 같은 가까이 있는 것들과 책을 통해서 만난 매리 셸리와 <프랑켄슈타인>, 체 게바라와 <모토사이클 다이어리>, 붓다에 관한 불교경전과 같이 멀리있는 것들이 표지에 그려진 실이 천으로 직조되는 과정처럼 이야기가 만들어집니다. 진부한 비유로 보이지만 실을 잣고, 베를 짜아내는 문장들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계속 감탄하느라 두 번째도 쉬엄쉬엄 읽게 되네요.

저도 이 책을 읽으면서 화분을 사서 베란다에 블루베리 나무를 심었고, 동네 마트에서 세 팩을 묶어 만 원에 팔던 설향 딸기를 사서 딸기잼을 담았습니다. 솔닛의 표현대로 절임은 '역사가의 요구와 요리사의 능력이 만나는 지점'인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제가 이 잼을 다먹을 때까지는 혀 끝에 닿는 딸기잼의 단맛 안에 잼을 만들 때 했던 생각들이 보존되어 있을테니까요.

읽기와 쓰기, 그리고 생활과 인간관계 등 여러 실타래를 풀어 짜낸 이 이야기를 통해 에세이의 가치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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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쪽

우리가 책이라고 부르는 물건은 진짜 책이 아니라, 그 책이 지닌 가능성, 음악의 악보나 씨앗 같은 것이다. 책은 읽힐 때만 온전히 존재하며, 책이 진짜 있어야 할 곳은 독자들의 머릿속, 관현악이 울리고 씨앗이 발아하는 그곳이다. 책은 다른 이의 몸 안에서만 박동하는 심장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쉬지 않고 책을 읽으며 말은 거의 하지 않았다. 의사소통의 가치를 회의했고 무시당하거나 벌을 받을까 봐, 무언가를 들킬까 봐 늘 두려워했다. 이해를 받고 용기를 얻고, 다른 사람에게 나를 알리고, 확신을 얻어야겠다는 생각은 좀처럼 들지 않았고, 내가 다른 사람에게 줄 만한 걸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책을 읽고, 많은 양의 글을 쓸어 담았다.(중략)

글쓰기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두에게 하는 행위이다. 혹은 지금은 아무에게도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훗날 독자가 될 수도 있는 누군가에게 하는 행위이다. 너무 민감하고 개인적이고 흐릿해서 평소에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는 것조차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를. 가끔은 큰 소리로 말해 보려 노력해 보기도 하지만, 입안에서만 우물거리던 그것을, 다른 이의 귀에 닿지 못했던 그 말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적어서 보여 줄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글쓰기는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침묵으로 말을 걸고, 그 이야기는 고독한 독서를 통해 목소리를 되찾고 울려 퍼진다. 그건 글쓰기를 통해 공유되는 고독이 아닐까. 우리 모두는 눈앞의 인간관계보다는 깊은 어딘가에서 홀로 지내는 것 아닐까? 그것이 둘만으로 구성된 관계일지라도. 말이 전하기에 실패한 것을 글이, 아주 길고 섬세하게 전할 수 있는 것 아닐까?

나는 침묵에서 시작했다. 읽을 때만큼 조용하게 글을 썼고,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내가 쓴 것을 조금씩 읽었다. 몇몇 독자들이 나의 세상으로 들어오거나, 나를 그들의 세상으로 끌여들였다. 나는 침묵에서 시작했지만, 결국 긴 여정을 거쳐 아주 멀리서도 들리는 하나의 목소리를 내기에 이르렀다. 그 목소리는 처음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아서 읽을 수밖에 없었지만, 곧 큰 소리로, 더 큰 소리로 말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125쪽

파이는 오븐에서 꺼내자마자 만든 사람이 바로 먹을 수 있지만, 책은 쓰이고 몇 달 혹은 몇 년 후에, 그것도 작가가 없는 곳에서 읽힌다. 작가 본인도 자신이 무엇을 만들어 냈는지 절대 알 수 없다.
(중략)
요리란 그 재료를 먹어 버림으로써 사라지게 하는 일, 음식을 먹는 이의 몸 안에 묻는 흥겨운 장례식이다. 그렇게 먹는 이의 몸 안에 들어간 음식은 변신을 거쳐 다음 생을 맞이하고, 분비물을 통해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무언가를 보존하는 일은 그 변신 과정을 무한히 연기하는 일이다. 어쩌면 절임이란 역사가의 요구와 요리사의 능력이 만나는 지점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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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체 게바라 선집 2
체 게바라 지음, 홍민표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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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에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이야기가 나오길래 찾아봤습니다. 한국어판 서문을 쓴 체 게바라의 차녀 알레이다 게바라도 의사이자 작가라 신기했네요.

의대생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가 친구 알베르토 그라나도와 1951년부터 약 8개월 동안 아래 지도에 나온 남미 곳곳을 다닌 여행기인데 둘이 타고 간 오토바이 포데로사2가 중간에 퍼지는 바람에 반절은 히치하이킹으로 여행했더군요.

비록 영화로도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왜 별로 유명하지 않았나 의문이었는데 읽어보니 스물 셋의 체는 붙임성좋고 풍이 좀있는 평범한 중산층 젊은이 같았습니다. 혁명가의 불꽃이 보인다고 하기는 좀. ㅎㅎ

의사행세와 이를 기사로 실어준 신문덕분에 경찰서와 병원에서 숙식을 해결한 무용담보단 단돈 3만원 갖고 고철 자전거를 타고 떠난 노숙왕님의 <도전 땅끝, 망할 여행기>가 훨씬 재미있었거든요.

노숙왕님 여행기 맛보기 하실 분은 아래의 링크를 참조하셔요!

http://cafe.naver.com/biketravelers?iframe_url=http%3A%2F%2Fcafe.naver.com%2FArticleRead.nhn%3Fclubid%3D12007870%26articleid%3D6556%26networkMemberId%3Dvouwa%26networkSearchKey%3DArticle%26networkSearchType%3D7%26networkSearchPage%3D3

체의 여행기에서 등장하는 당시 세계 최대의 노천구리광산이었던 칠레의 추키카마타 광산에 대해 알게 된 것도 수확입니다. 아래 링크의 설명이 유익하더군요.

http://travellog.co.kr/entry/%EC%B9%A0%EB%A0%88-%EC%84%B8%EA%B3%84-%EC%B5%9C%EB%8C%80-%EB%85%B8%EC%B2%9C-%EA%B5%AC%EB%A6%AC%EA%B4%91%EC%82%B0-%EC%B6%94%ED%82%A4%EC%B9%B4%EB%A7%88%ED%83%80

세상에 400톤 짜리 몬스터 트럭이 다 있고 트럭 한 대 값이 400만달러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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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쪽

이밖에도 위생관념이 희박해서 화장실이 매우 더러웠다. 사용한 화장지를 바닥이나 비치된 통에 버리는 게 칠레인의 습관이었다.
(ㅠ.ㅠ 지금 우리나라도..)

211쪽

미라에서 병원 환자들이 우리에게 베풀어준 멋진 환송회로 우리는 여행을 계속해나가기에 충분한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들은 저희에게 캠핑용 가스 스토브를 주고 100솔이라는 돈까지 걷어서 주었습니다. 그들의 경제적인 여건을 고려하면 이것은 큰 돈입니다. 그들 중 몇몇은 작별인사를 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고마워하는 것은 저희가 가운을 입지 않고 장갑도 끼지 않은 채 마치 건강한 사람들을 대하듯이 자신들과 악수도 하고 앉아서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함께 축구를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든 일들이 무모한 허세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평소 마치 동물처럼 취급받아 왔던 이 불쌍한 사람들에게는 단지 정상인들처럼 대우받았다는 사실이 주는 심리적 고양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나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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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마음 - 나의 옳음과 그들의 옳음은 왜 다른가
조너선 하이트 지음, 왕수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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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에 일가견있는 분들께서 다들 손꼽아 추천하셨던 책이라 전부터 꼭 읽고 싶었는데 이번 연휴를 맞아 드디어 다 읽었습니다. 빌렸다가 그냥 반납한 게 두 번은 있는 것 같은데 왜 이런 책을 못알아보고 그랬는지 한탄스러울 지경이네요. 소장하고 싶은 책이라 새로 살 예정이고요.

 

책의 내용들도 좋지만 전문성의 수준을 희생하지 않는 가독성 측면에서 이런 책은 정말 드물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뛰어났습니다. 요즘 학문들이 워낙 깊게 파고 들어가다보니 일반인에게 자기의 연구내용에 대해서 쉽게 그리고 핵심 내용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조너선 하이트는 마치 독자 스스로 진화심리학 중 도덕심리학을 전공하고자 하는 석사과정 신입생이 되어서 랩에서 어떤 연구를 해왔는지 지도교수인 그로부터 차근차근 설명을 듣는 것처럼 느끼게 해주더군요(대학원 지도교수가 실제로 이런 설명을 해주는지는 모르지만요).

 

책의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집니다. 제가 이 책을 더 각별하게 읽었던 건 이 책을 읽으면서 제 도덕관이 얼마나 편협한지 제대로 깨닫게 되어서인 것 같습니다. <바른 마음> 5장은 제가 WEIRD(Western, Educated, Industrialized, Rich, Domestic)에 속하는 한정된 문화권(Rich는 전세계 평균기준으로 --;;) 속에 사는 사람이고 세상에는 다른 도덕체계가 많다는 사실을 거부할 수 없게 무장해제 시켰습니다.

 

9장을 읽으면서 인간의 진화가 현생인류의 출현이후에 멈추거나 느려지기는커녕 오히려 문화와 공진화하면서 가속도가 붙어왔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되었고요.

 

10장에서 하이트는 군집스위치라는 개념을 통해 왜 인간의 마음은 90%가 침팬지이고 10%가 벌이라고 묘사했는지 설득력있게 설명합니다.

 

그동안 저는 도킨스에 감화되어 신무신론자의 주장을 따라왔습니다. 그래서 종교는 일종의 바이러스 또는 기생충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숙주인 인간의 인지 체계의 부산물을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과학자와 인문주의자를 비롯하여 이 전염병에 걸리지 않아 여전히 이성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은 힘을 합쳐 주문을 깨고, 망상을 걷어내고, 신앙을 종식시켜야 한다는데 동의해왔지요. 하지만 종교는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구성원의 헌신을 이끌어내고 무임승차자를 억제하는 집단선택에서 효율적으로 작용해온 도덕의 외골격이라는 제11장에 나오는 하이트의 설명을 반박하기 어려웠습니다.

 

12장의 정치심리학 분석을 통한 좌파와 우파의 도덕체계 분석은 이미 제 자신이 약 2년 전부터 기존의 전형적인 진보주의자의 도덕매트리스에서 점차 벗어나오고 있었음을 확인하는 데 큰 도움을 줬습니다. 그런데 하이트가 말하는 것처럼 진보주의자가 보수주의자를 이해하는 것은 반대의 경우보다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만큼 제가 더 노력을 해야겠지요. 이 부분에서 페이스북을 통해 참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댓글없이 좋아요만 누르고 있는 우파 페친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책을 읽고 보니 부정청탁금지법이라는 진보주의자의 정책이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보수주의자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우리나라의 사회적 자본을 훼손하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스쳐가네요. 공공기관에 대한 경영평가가 좋은 취지와 긍정적 효과(비정규직 차별에 대한 감점부여, 양성평등 취업규칙 개정유도 등)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에게 아무런 효용이 없는 무의미한 사업 겉포장 병풍치기에서 한몫받으며 먹고사는 사람들을 만들어낸 것을 봐왔습니다. 

 

국립대학 학자들에게 외부강의를 사전에 신고하게 하고 20~30만원의 허용된 수입금을 초과해서 수령하지 앟았는지 감시하고, 공무원들이 자신이 발주하는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입찰응모예정자들을 만나서 과업지시서의 완성도를 높여가면서  민원인과 결탁하지 않았는지 의심하는 주변의 의심을 해소해야하는 상황까지 감당하게 만드는 것들. 이런 규제들이 공동체에의 헌신과 고귀함에의 헌신이라는 사회적 자본을 감소시키는 부분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연구의 성과를 사회에 나누지 않는 학자, 절차만 지키는 공무원으로 과연 충분한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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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받을 용기 (반양장) -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한 아들러의 가르침 미움받을 용기 1
기시미 이치로 외 지음, 전경아 옮김, 김정운 감수 / 인플루엔셜(주)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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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많이들 읽으신 책인 것 같아서 봤는데 생각보다 영 실망했다. 무조건 300페이지를 채워야 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설명을 엿가락처럼 길게 늘이다보니 반복되는 부분이 많고 생각의 흐름이 너무 느리게 느껴져서 읽으면서 재미를 느끼기 힘들었다.

 

덕분에 알프레드 아들러라는 심리학자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프로이트의 인과론적 해석에 기반한 트라우마이론을 비판하며 대두된 아들러의 목적론적 해석이 있다는 사실은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 책이 소개하고 있는 기초적인 아이디어들을 이미 얇은 자기계발서적인 <The Present>와 개인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던 <행복한 이기주의자>를 통해서 접한 다음이라 그런지 별로 감흥이 없었다. KTX에서 볼 다른 책이 있었더라면 끝까지 읽지도 않았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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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쪽

 

아들러 심리학은 용기의 심리학일세. 자네가 불행한 것은 과거의 환경 탓이 아니네. 그렇다고 능력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자네에게는 그저 '용기'가 부족한 것뿐이야. 말하자면 '행복해질 용기'가 부족한 거지.

 

120쪽

 

스스로 손목을 긋는 아이를 보고 "도대체 왜 저런 짓을 하는 걸까?" 하면서 의문을 갖는 사람도 많을걸세. 하지만 손목을 긋는 행위를 했을 때 주변 사람 - 예를 들어 부모 -이 어떤 마음일지 헤아려보게. 그러면 저절로 행위의 배후에 있는 '목적'이 보일 걸세. 그리고 인간관계가 복수 단계에까지 이르게 되면 당사자끼리 해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권력투쟁을 위해 싸움을 걸어왔을 때는 절대 응해서는 안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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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공존 - 숭배에서 학살까지, 역사를 움직인 여덟 동물
브라이언 페이건 지음, 김정은 옮김 / 반니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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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주는 느낌이 참 좋았던 책이었습니다. The intimate bond라..번역판 제목도 괜찮고요. 브라이언 페이건 교수님의 <기후, 문명의 지도를 바꾸다>를 재미있게 읽으면서 많이 배웠던 터라 이 책도 재미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기대에 충분히 부응하는 책이네요.


이 책은 가축이 된 동물인 개, 염소, 양, 돼지, 소 당나귀, 말, 낙타를 다룹니다.(그런데 페이건 교수님은 돼지는 간략히만 언급하고 넘어가시고, 닭은 거의 안다루시더군요. 이미 <치킨로드>라는 책이 있어서 그러셨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여느 동물들에 대해서는 여타 인류학이나 생태학 책들을 통해 접할 기회가 있었지만 당나귀(고대의 픽업트럭)와 낙타(사막의 배)가 얼마나 유용한 동물이었는지는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았습니다. 알고보니 어릴 적 읽었던 동화책이나 <슈렉>에 괜히 당나귀가 나오는 게 아니었지만 시골 살면서도 당나귀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지라.

 

책은 두 가지 포인트에 대한 메시지를 주는데 첫번째가 인간과 가축이 된 동물과의 관계의 양상을 되짚어 보는 내용이라면, 두번째는 인간과 가축이 된 동물과의 관계가 역사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입니다. 특히 전 신석기혁명을 농업으로 인해 인류의 정착생활이 시작되었다고만 생각했었습니다. 인간이 가축떼를 거느리게 되면서 동물을 관리하기 위한 영구 정착지, 동물에 대한 소유권(혼인 등 여러 관계를 맺는 징표로 사용될 수 있는 처분권을 포함하는), 상속의 문제, 목초지의 통제와 방목권, 와 같은 것들이 필요했고, 역사의 방향타로 작용했다는 사실을 책을 읽기 전해는 인식하지 못했네요.

인류가 농업을 시작했더라도 잉여생산력 자체가 형편없었던 시절에 가축이라는 수단이 없었더라면 과연 유력자가 출현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 들더군요. 홍기빈씨의 <소유는 춤춘다>을 읽었을 때처럼 재산법의 근간이 되는 소유권의 연원을 생각해보게 되는 즐거운 독서였습니다.

 

책을 읽고 나니 영화 <아바타>나 <늑대와 춤을>에 등장하는 수준으로 동물들과 친밀한 유대를 맺으며 공준하는 생태주의적인 삶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려면 인간들이 축력과 바이오매스 외에 모든 현대적인 에너지원을 포기해야 실현가능할 듯 싶은데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과연 자발적으로 그러한 고단한 삶을 선택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더군요.

 

설령 생태학적인 한계로 인해 그러한 삶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인구는 지급의 십분의 일이나 될까 싶습니다.게다가 저도 인간 족속인지라 인간 노예 30명의 가치가 훈련된 말 한 마리와 등가로 교환되었던 힛타이트와 같은 시대에 살고 싶지는 않거든요.

 

여담인데 이 책에 등장하는 가축화된 동물들에 예외없이 적용되는 '여분의 수컷들 솎아내기'가 있던데 인간 수컷으로서 남의 일 같지가 않더군요. 그리고 한무제 때 장건이 대완국(우즈베키스탄의 페르가나계곡)에서 발견한 한혈마(汗血馬)가 기생충에게 피를 빨리는 고통때문에 여느 말보다 더 질주했던 말이라니..적토마에 대한 환상이 확 깨졌습니다.(혼자 망할 수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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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쪽

 

결국 가축은 강력한 사회적 수단이었다. 매우 단시간 내에, 새로 사육을 시작한 가축 무리에서 나온 여분의 수컷들은 중요한 상징이 되었다. 특히 마을 축제에서 산 채로, 혹은 도살되어 의미 있는 선물로 쓰였다. 나날이 불어나는 가축 떼를 보유한 사람은 사회적 지위와 덕망을 얻었고, 가축은 살아 있는 재산이 되었다.

 

여기서 재산은 문제를 일으켰다. 또한 가축과 그 가축이 풀을 뜯는 목초지의 상속도 민감한 문제였다. 사냥감과 달리 동물은 집과 목초지처럼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는 유형의 자산이었다. 땅에 대한 소유권은 부계 또는 모계를 따라 다음 세대가 물려받았다. 상속 과정은 확고한 규칙으로 자리 잡고 사회적, 경제적 지위에 영향을 미쳤다. 땅의 소유권과 방목권은 처음부터 세심하게 보호되었다. 특히 먹성 좋은 가축이 주변 경관을 얼마나 황폐화시킬 수 있는지 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깨달은 사람들은 이 문제를 더 확실하게 대처했다.

 

312쪽

 

가장 유명한 경주마는 이클립스(Eclipse)다 1754년에 컴벌랜드 공작인 윌리엄 오거스터스 왕자가 교배한 무적의 경주마는 18회나 우승을 차지했고, 경마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2,250km를 걸었다. 이클립스는 17개월 동안의 경주마 생활을 마치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종마가 되었다. 이후 이클립스의 새끼들이 자라 350~400마리가 경주에서 우승마가 되었다. 오늘날 영국 순혈마의 약 95%가 이클립스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다.

 

346쪽

 

1860년 무렵에는 저렴한 강철이 대량 생산되면서 승합마차가 선로 위를 달릴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비포장도로를 달릴 때보다 마차의 승차감이 훨씬 좋아졌다. 이제 말은 더 먼거리를 이동할 수 있었고 3~10배 더 많은 사람을 운반할 수 있었다.
(영국에서 철도의 표준궤가 마차의 궤간에서 유래했던 연유를 이제야 제대로 알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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