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하는 글쓰기 (특별판) - 스티븐 킹의 창작론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 김영사 / 2002년 2월
평점 :
품절


일요일님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본 책입니다. 작가쪽은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직업상 글쓸 일이 많고 여러 페친께서 추천해주신 책이어서 속성 글쓰기 교습을 받는 느낌으로 읽었습니다. 수업시간에 적었던 내용들을 복습해보는 셈치고 노트필기를 공유해봅니다.(저장용 목적도 있어서 좀 깁니다.)

 

그리고 문장론에 대한 세계적인 인기작가의 책을 번역하는 부담스러운 일을 수행해주신 김진준 번역가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책과는 연결이 잘 되지 않지만 제게 큰 영향을 줬던 <총,균,쇠>를 번역하셨던 분이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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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쪽

 

소설가가 해야 할 일은 아이디어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막상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그것이 좋은 아이디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68쪽

 

"어떤 이야기를 쓸 때는 자신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생각해라. 그리고 원고를 고칠 때는 그 이야기와 무관한 것들을 찾아 없애는 것이 제일 중요해."

 

94쪽

 

때로는 쓰기 싫어도 계속 써야 한다. 그리고 때로는 형펀없는 작품을 썼다고 생각했는데 결과는 좋은 작품이 되기도 한다.

 

141쪽

 

글쓰기에서 정말 심각한 잘못은 낱말을 화려하게 치장하려고 하는 것으로, 쉬운 낱말을 쓰면 어쩐지 좀 창피해서 굳이 어려운 낱말을 찾는 것이다. 그런 짓을 애완 동물에게 야회복을 입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애완 동물도 부끄러워하겠지만 그렇게 쓸데없는 짓을 하는 사람은 더욱더 부끄러워해야 마땅하다.

 

148쪽

 

능동태는 문장의 주어가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이다. 반면에 수동태는 문장의 주어에게 어떤 행동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주어는 그저 당하고 있을 뿐이다. '수동태는 한사코 피해야 한다.'

 

150쪽

 

부사를 많이 쓰는 작가는 대개 자기 생각을 분명하게 표현할 자신이 없다. 자신의 논점이나 어떤 심상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이다. (중략) 달리 표현하면 부사는 민들레와 같다. 잔디밭에 한 포기 돋아나면 제법 예쁘고 독특해 보인다. 그러나 이때 곧바로 뽑아버리지 않으면 이튿날엔 다섯 포기가 돋아나고... 그 다음날엔 50포기가 돋아나고...그러다 보면 여러분의 잔디밭은 철저하게(totally), 완벽하게(completely), 어지럽게(profligately) 민들레로 뒤덮이고 만다.

 

163쪽

 

소설의 목표는 정확한 문법이 아니라 독자를 따뜻이 맞이하여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그리고 가능하다면 자기가 소설을 읽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게 만드는 것이다. 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문단은 글보다 말에 더 가까운 것이고 그것은 좋은 일이다.

 

176쪽

 

작가가 되고 싶다면 무엇보다 두 가지 일을 반드시 해야 한다.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이다. 이 두가지를 슬쩍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지름길도 없다.

 

183쪽

 

꾸준히 책을 읽으면 언젠가는 자의식을 느끼지 않으면서 열심히 글을 쓸 수 있는 어떤 지점에(혹은 마음가짐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이미 남들이 써먹은 것은 무엇이고 아직 쓰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진부한 것은 무엇이고 새로운 것은 무엇인지, 여전히 효과적인 것은 무엇이고 지면에서 죽어가는(혹은 죽어버린) 것은 무엇인지 등등에 대하여 점점 더 많은 것들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책을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여러분이 펜이나 워드프로세서를 가지고 쓸데없이 바보짓을 할 가능성도 점점 줄어드는 것이다.

 

191쪽

 

여러분에게는 우선 방이 필요하고, 문이 필요하고, 그 문을 닫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아울러 구체적인 목표도 필요하다. 이렇게 기본적인 것들을 오래 실천하면 할수록 글쓰는 일이 점점 쉬워진다.

 

213쪽

 

묘사가 빈약하면 독자들은 어리둥절하고 근시안이 된다. 묘사가 지나치면 온갖 자질구레한 설명과 이미지 속에 파묻히고 만다. 중용을 지키는 것이 요령이다. 그리고 어떤 것은 묘사하고 어떤 것은 그냥 내버려둬야 하는지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 여러분의 주된 소임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220쪽

 

명료한 글쓰기란 신선한 이미지와 쉬운 말을 사용하는 것이다.

 

229쪽

 

사실적이고 공감을 주는 대화문을 쓰려면 '반드시' 진실을 말해야 한다. (중략) 여러분은 꾸며낸 이야기를 수단으로 삼아 사람들의 말과 행동의 진실을 표현하겠다고 이미 독자들에게 약속한 셈이니까.

 

247쪽

 

소설을 쓸 때 여러분은 나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확인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나 일이 다 끝나면 멀찌감치 물러서서 숲을 보아야 한다. 모든 책에 상징성과 아이러니와 음악적인 언어 따위를 잔뜩 퍼담을 필요는 없다(산문은 운문과 다르니까). 그렇지만 모든 책에는 -적어도 읽어볼 만한 책이라면- 뭔가 내용이 있어야 한다. 초고를 쓰는 도중이나 그 직후에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작품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일이다. 그리고 작품을 수정하면서 해야 할 일은 그 내용을 더욱 분명하게 만드는 일이다.

 

256쪽

 

처음부터 이런 문제나 주제 의식을 가지고 출발하는 형편없는 소설의 지름길이다. 좋은 소설은 반드시 스토리에서 출발하여 주제로 나아간다. 주제에서 출발하여 스토리로 나아가는 일은 좀처럼 없다.

 

258쪽
글을 빨리 써내려가면 - 즉 필요에 따라 이따금씩 등장 인물의 이름이나 배경스토리 따위를 다시 확인하는 일 말고는 줄곧 마음에 떠오르는 것들을 그대로 받아적고 있노라면 - 처음에 품었던 의욕을 유지할 수 있고 자신감을 잃어버리는 일도 없다.
이 초고 - 스토리만 있는 원고- 는 누구의 도움도(또는 방해도) 받지 않고 혼자서 써야 한다.

 

262쪽

 

처음 해보는 사람이라면 자기 원고를 6주 동안 묵혔대가 다시 읽어보는 일이 매우 신기하고 또한 신나는 경험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중략) 그 동안 6주의 회복기를 가졌으니 이제 플롯이나 등장 인물의 성격에서 명백한 허점들을 발견하는 일도 충분히 가능해졌을 것이다.
276쪽
내가 '수정본 = 초고 -10%' 공식에서 배운 것은 장편이든 단편이든 어느 정도는 압축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작품의 기본적인 스토리와 정취를 유지하면서도 10% 정도는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노력이 부족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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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단련법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박성관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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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느 페친님의 추천이었는지 기억이 안네요. 제가 소설을 쓸 일은 별로 없지만 보고서는 앞으로 계속 써나가야 하기 때문에 저널리스트인 다치다나 다카시씨의 이 책을 집어들었습니다. 별로 두껍지도 않긴 했지만 예상보다 짧은 30분밖에 안걸리더군요.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자 다치바나 다카시씨가 1983년도에 1년간 잡지에 연재한 글을 모아서 펴낸 책인데 그걸 우리나라에서는 무려 2009년에 번역해서 발간했거든요.

 

컴퓨터가 없던 시절의 스크랩법과 문구용품들에 대한 세세하지만 무쓸모한 설명을 읽느니 산타크로체님의 블로그를 보는게 훨씬 도움이 되지요.(예전 저널리스트들이 제대로 취재하는데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는 충분히 전달되긴 했습니다.) 이렇게 날린 부분이 절반은 됩니다. 게다가 무의식 운운하는 부분이 너무 많이 나와서 신뢰성이 떨어져 보이는 부분도 휙휙 넘겼고요.

 

다치바나식 속독법을 썼다면 이 책도 아예 사지 않았어야 했고, 샀더라도 몇 페이지 읽어보고 바로 던져버렸어야 하는 책이지만 나름 가치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수십년 동안 기자로서 취재해오면서 인터뷰나 정보의 가치를 판단해온 경험을 통해 들려주는 노하우들은 유용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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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쪽

 

독서는 정신적 식사다. 자신이 읽을 책 정도는 스스로 골라 스스로 사고 늘 곁에 두면서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방식으로 읽어야 한다.

 

101쪽

 

읽어나가는 중에 읽을 가치가 없는 시원찮은 책이라는 걸 알게 되면 그 책은 바로 읽기를 중단하고 버린다. 그래도 애써 산 것이니 뭐니 해서 쩨째한 근성을 발동하여 무리하게 다 읽으려고 하는 짓은 절대로 하지 않는 게 좋다. 돈을 손해보는 데 그치지 않고 시간마저 손해보게 된다. 앞으로 허접한 책을 사지 않을 수 있기 위해 지불한 수업료라고 여기고 깨끗이 버리는 게 낫다. 물론 앞서도 얘기했지만 차근차근 읽지는 않더라도 책의 마자믹까지 페이지를 넘겨보는 과정은 거친 다음 버리는 게 좋다.

 

122쪽

 

다른 사람으로부터 알맹이 있는 이야기를 들으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그 상대로부터 들어야 할 것을 미리 알아두는 일이다. 이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로,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들으려고 할 경우의 당연한 전제인지라, 뭐 특별히 주의를 할 필요가 있나 싶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 관점에서는 본질적으로 이보다 더 중요한 사항은 아무 것도 없고 그 나머지는 대부분 지엽적인 테크닉론이다.

 

125쪽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묻는다는 것을 너무 안이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질문할 때는 반드시 그 문제에 대해 자신도 질문을 받고 있는 것이다.

 

140쪽

 

'정중하게 정곡을!'이 가장 좋다. 그러나 이게 그렇게 잘 되지 않는다. 경험을 쌓지 않으면 안 된다. 경험을 쌓으면 '정중하게 정곡을!'이 가장 좋다는 것도 자연스레 알게 된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이해될 때까지 묻는다.

 

193족

 

문체는 옷이다. 문체에 의해 표면을 장식할 수는 있어도 실질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문체는 즐기는 대상이지 그로부터 정보를 끌어내는 대상은 아니다. 문장을 요약하면 문체는 사라지지만 정보는 남는다.

 

198쪽

 

보충 작업과 잘라내기는 병행하기보다는 따로 하는 게 좋다. 이 순서가 대단히 중요하다. 잘라내기가 목적인데 보충을 한다는 건 목적에 역행하는 일을 하고 있는 듯하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잘라내기와 보충은 전혀 다른 목적 하에 이뤄지는 행위다. 잘라내기는 양적인 삭감, 보충은 질적인 향상이 목적이다. 질의 수준을 변화시키지 않고 잘라내는 것은 가능하니까, 일단 질적 향상이 추구될 여지가 발견되면 우선 그 작업을 먼저 해야 한다. 가능한 질을 향상시켜두고 나서 가능한 한 질을 저하시키지 않도록 양을 줄여가는 것이다.

 

199쪽

 

사람은 타인의 것은 객관적으로 신속하게 가치판단을 할 수 있지만, 자신의 것에 대해서는 그게 참 안 되는 존재다. 그러니까 잘라내기는 다른 사람의 글을 잘라내면서 연습하는 게 좋다.

 

215쪽

 

프로 취지기자가 3차 정보 이하의 정보원을 접할 경우, 그 때 그는 누가 1차 정보의 소유자이고, 누가 2차 정보의 소유자인가를 최대한 알아내는 일을 한다. 즉, 3차 정보 이하의 정보원은 오로지 진정한 정보의 소재를 알기 위해서만 이용하는 것이다.

 

218쪽

 

정보 음미의 기본은 그 정보의 출처를 생각하는 일이다. 앞서 말했듯이 몇 차 정보인지를 생각해보는 데 그치지 말고, 그 정보를 그 정보 제공자가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우리지널 정보원으로부터 그 정보 제공자에게 정보가 흘러들기까지의 프로세스 전체를 상상한다든가, 따져 묻는다든가 해서 그 프로세스에 뭐낙 의심쩍은 부분은 없는지, 정보전달 과정에 문제는 없는지 등을 숙고해 본다. (중략) 또한 그 정보 제공자가 왜 그 정보를 제공해주는가, 그 동기도 생각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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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억울한가 - 법률가의 시선으로 본 한국 사회에서의 억울함
유영근 지음 / 타커스(끌레마) / 201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저처럼 학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신 부장판사님이 올 가을에 펴내낸 따끈따끈한 신간이네요. 로스쿨 입학하기 전 해에 국내에서 법률가들이 업계사람이 아닌 이들을 대상으로 펴낸 책들을 쟁여놓고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법은 시대상에 따라 계속 변하기 때문에 좋은 책들도 시간이 흐르면 낡아가는 느낌이 있으니 법학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에게도 추천할만 하네요.

 

굳이 내용이 탁월하지 않더라도 전 이렇게 사람들이 각자 자기의 업역에서 성실히 일하고 고민하면서 모아둔 심득(心得)을 책으로 펴내는 게 우리 사회에서 권장해야할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그 분야의 정말 가치있는 책은 아니기에 효율적인 독서는 못되더라도 누구나 높은 수준의 책들만 유람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낮은 단계부터 시작한 거북이과 노력파인 저같은 사람을 키운 건 팔 할이 이런 소박한 집밥같은 책들이거든요.

 

읽으면서 서두의 문제제기가 참신하다고 느꼈습니다. 한국사회에서는 왜 이렇게 억울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을까? 라는 화두를 던지며 시작하거든요. 심지어 훈련된 판사인 저자 본인도 억울함을 느꼈던 상황들을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그러면서 사건 케이스를 법률적으로 설명하며 어떤 경우가 보편적으로 억울한 경우이고, 공감받을 수 있는지, 억울함의 토로가 공동체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고 수용될 수 있는 한계선을 짚어가며 가끔은 확대경으로 정밀하게 들여다보게 해줍니다.

 

저도 얼마전 사람없는 시골 지방도에서 딴 생각하다가 횡단보도가 있는 것도 못보고 노란색 점멸등이 빨간색 정지 신호로 바뀌는 순간에 미처 정지 못하고 쌩하고 지나친 적이 있거든요. 카메라에 찍힌 느낌이 들어 각오는 하고 있었죠. 그런데, 알고보니 어린이 보호구역이라 과태료가 무려 13만원(범칙금으로는 12만원인데 벌점이 무려 30점이에요...사전납부 할인도 전혀 없고요. ㅠ.ㅠ ) 처음으로 받아본 과태료부과 사전통지서인데 13만원짜리라니 순간 저도 '억울'하더군요.

 

하지만 생각해보면 어른과 달리 시속 50km 이하로 주행하는 차량과 충돌해도 생명유지에 치명적인 장기손상을 입을 수 있는 어린이들의 신체적 취약성을 감안할 때, 어린이 보호구역에서의 신호위반은 중하게 처벌되는 것이 맞겠지요. 최근 5년 동안만 보더라도 어린이 통학로 안전에 대해 시설을 보강하고 처벌기준 및 단속을 강화해온 덕분에 연평균 어린이 교통사고 건수는 1만 2천여건 수준으로 정체되어 있는데도, 연간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자는 2011년 80명에서 2015년 65명까지 유의미하게 감소하고 있거든요. 결국 절대로 제가 억울할 일은 아닌거죠.(여러분도 저처럼 13만원 짜 리 과태료 부과 통지서 받지 않으시려면 어린이 보호구역에서의 신호위반 조심하세요. ㅎㅎ)

 

제3장 <사실과 다른 판결이 나는 이유>와 제4장 거짓과 오해는 법을 공부하면서 제가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렸던 것들이더군요. 현업의 변호사들이 의뢰인들을 이해하려고 하거나 납득시킬 때 참고하면 유용한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오랜 경험을 쌓은 판사가 직무 수행시 지니고 있는 정밀한 형량감각이 느껴졌고요.

 

다만, 현직 판사로서의 자기 검열 때문인지 지나치게 모범적이고 안전한 코스로만 서술하신 것 같다는 아쉬움은 드네요. 사람들이 억울함을 느끼는 이유는 교육과 문화를 통해서 형성된 여느 시민들의 억울함에 대한 형량감각이 고위공직자나 대기업집단의 오너 등에 대한 불합리한 판결들로 인해서 어그러지는 사례들은 지금도 계속 벌어지고 있거든요. 하지만 이 책에서는 '지강헌 사건'이나 '인혁당 사건' 등 과거에 그랬던 사례들을 다루고, 법이론적으로 불가피하게 일반인이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 나오는 케이스들 위주로 설명하고 있거든요.

 

물론 유영근 판사님께서 실제로 논란이 된 사건의 기록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판사의 판결에 대해서 비판하는 위험성을 잘 알고 계실테니 그렇게 서술하셨겠지만, 잘못된 입법(구멍이 있거나, 의도적으로 편파적인)과 법원 외적인 영향을 받은 판결로 인해 시민들이 자신들의 억울함이 수용될 수 있는 한계를 잘못 긋도록 소음을 내는 상황에 대해서도 내부자 입장에서도 비판할 부분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준사법기관인 검사의 권한 행사와 관련해서 그런 부분이 좀 많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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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종말 - 여성의 지배가 시작된다
해나 로진 지음, 배현 외 옮김 / 민음인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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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저자 해나 로진은 남자들이 사회경제적으로 도태되고 있고, 여자들이 집단적으로 소득과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는 현상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서 보여줍니다.로진은 많은 영역에서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젠더 격변이 임계점을 넘었다고 주장합니다. 기업 리더 등 남은 영역에서도 머지않아 넘게 될 것이라 전망하고요. 

에이미 추아의 타이거맘 테마처럼 센세이셔널한 접근이라는 느낌이 들지만 로진이 드는 논거들이 설득력이 없다고 물리칠 자신이 없었습니다. 딱히 개별 사례들의 타당성을 검증해야겠다는 생각도 안들었고요. 당장 제가 대학다닐 때도 여자 동기들이 평균적으로 훨씬 똑똑하고 성실했으며, 여성인 지인들이나 직장동료들이 불리한 차별과 육아 및 가사 부담을 안고서도 자기 입지를 구축해가는 모습을 많이 보고 있거든요. 

여성들이 ‘사회적 지능과 열린 소통, 차분히 앉아서 오래 집중하는 능력’ 등에서 태생적으로 남성보다 우위에 있어 현대사회에 잘 적응하는지는 뇌과학의 전초기지에 있는 연구자들에게 맡기렵니다. 전 요즘 십대나 이십대의 문화도 모르는데다 육아도 안하고, 저나 지인들이 인구 모집단에서 대표성이 있는 것도 아닌 듯 하니까요.

법정출산휴가나 유급육아휴직제도도 없지만 시간제 일자리가 많고 노동시장이 유연한 데다 가정 친화적인 문화가 자리잡은 미국과 한국은 사정이 다르지만 대신 한국엔 징병제가 있죠. 그래서 한국이 미국의 젠더 갭의 유사한 추세를 단순히 후행한다고 단정하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바르바로이, 흉노, 흑인, 쿨리, 生口, 달리트(불가촉천민) 등 역사상 인간들이 열등한 존재라고 비웃었던 어떠한 타집단에 대한 차별도 영속적이지 않았고, 특정한 민족이나 부족이 보편적으로 우수한 집단으로 검증된 바도 없는데 어떻게 인류의 절반이(그게 여성이건 남성이건) 일방적인 우위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여자들은 억울하겠지만 남자들이 지난 몇십 만년 동안 가졌던 우위를 같은 식으로 누리는 것도 요시나가 후미의 <오오쿠>에서 나오는 적면포창같은 특성 성별만 감염되는 치명적인 질병이 발생하지 않은 이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한 두 세대가 흐르면 남자들도 배우겠죠. 게다가 수요공급의 법칙도 작동할테니까요. 

저는 지금 1896년에 태어나 1948년 행려병자로 사망한 여성 나혜석씨에게 반세기 남짓 지난 지금 이런 책이 나왔고, 이 책에 한국여성들 이야기가 나온 걸 보여주고 싶을 뿐이에요. 조선 최초의 서양화가이자 최초로 구미를 여행해본 여성이라 칭해지는 반도 최초의 페미니스트께요.

김우영과 결혼하면서 네 가진 조건을 걸었고, 그 중 하나인 요절한 약혼자 ‘최승구의 묘지에 비석을 세워줄 것’이라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신혼여행지를 전남 고흥에 있는 옛 남친의 묘지로 정했던 여성. 1930년 이혼 직후 ‘이혼의 비극은 여성 해방으로 예방해야 하고 시험 결혼이 필요하다.’고 했던 여성.

그녀에게 당신이 살던 때로부터 백년도 채 안지나서 조선땅에서 <남자의 종말>이라는 책이 공감을 얻고 있다고. 능력으로 평가받는 많은 영역에서 여성들이 약진하고 있어서 이젠 자라날 아들들이 걱정되는 시대라고 전해주고 싶네요. 

“현모양처는 이상을 정할 것도, 반드시 가져야 할 바도 아니다. 여자를 노예로 만들기 위하여 부덕(婦德)을 장려한 것이다.” - <학지광 1914년 12월호>
“오직 기생 세계에는 타인 교제의 충분한 경험으로 인물을 선택할 만한 판단의 힘이 있고 여러 사람 가운데 오직 한 사람을 좋아할 만한 기회가 있으므로... 조선여자로서 진정의 사랑을 할 줄 알고 줄 줄 아는 자는 기생계를 제외하고는 없다고 말할 수 있다.(1923년 6월)”
“결혼한 후에 다른 남자와 좋아하며 지내면 부도덕적이라기보다 오히려 자기 남편과 더 잘 지낼 수 있게 하는 활력을 얻는다.(1928년 제네바 체류 중 작성한 편지 중)”

책 중간(134쪽)에 <인생은 행운, 사랑은 불운: 일정하지 않은 수입의 충격이 결혼과 이혼에 미치는 영향(Lucky in Life, Unlucky in Love: The Effect of Random Income Shocks on Marriage and Divorce>란 연구 제목이 나오는데 빵 터졌습니다. 저도 제 글에 이런 매혹적인 제목을 붙여봤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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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쪽

바로 이것이 새로운 시소(seesaw) 결혼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부부들은 젠더평등이라는 외적인 잣대로 평가 받는 정의와 공정성 따위를 추구하지 않는다. 그들이 좇는 것은 개인의 자기성취이며, 배우자 각자가 결혼 생활 중 각자 다른 시점에 자기 성취를 이루고자 할 수 있다. 이런 삶의 방식이 이루어진 시대는 창의적인 중산층이 유동적으로 직업을 바꾸고, 같은 직장에서 평생 일하기를 아무도 기대하지 않게 된 때이다.

248쪽

가장 정확한 범죄 척도인 사법통계국의 ‘전민범죄피해조사’는 강간을 비롯하여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폭력 범죄가 지난 35년 동안, 특히 과거 10년 동안 급격하게 감소했음을 보여 준다. 과거 12년 동안, 성인 및 청소년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강간, 폭력, 미수, 위협을 포함해 공식으로 보고된 모든 폭력 범죄의 실현율이 급락했다. 

330쪽

어느 면접관은 이렇게 물었다. “상사가 커피를 타 오라고 시킨다면 그렇게 하겠습니까?” 용아가 대답했다. “상사가 제게도 커피를 타 준다면 저도 타겠습니다.”

“그 사람들이 그런 질문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한계가 있는 조직이라는 게 보였어요. 한국 기업에는 서열이 너무 많아요. 취업하면 문서 복사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거예요. 좋은 학교를 나와 문서 복사나 하고 싶지는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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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문화를 품다 - 벽을 허무는 소통의 매개체 맥주와 함께 하는 세계 문화 견문록
무라카미 미쓰루 지음, 이현정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1959년 현재 산토리의 전신인 회사에 입사하여 세계 각지의 공장에서 맥주 생산 및 연구 지도 업무를 담당했고 2003년에 퇴임하신 경력 44년의 일본 맥주 엔지니어 무라카미 미쓰루씨의 책입니다. 책 말미에 30페이지 가량 한국의 맥주에 관한 간략한 역사가 나오는데 출판사에서 따로 덧붙인 것 같고요.

저자가 중언부언 하는 부분들이 많아 편집이 좀 아쉽고 책에 나오는 에피소드들의 출처를 확인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아 아쉽긴 했지만 맥주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들을 스크랩할 참고서 정도로 괜찮네요.

직접 만들어봐야 확실히 알겠지만 일반 상면발효와 하면발효의 차이는 알겠네요. 상면발효는 표면에 떠오른 효모를 건져서 술밑으로 쓰고, 하면발효는 가라앉은 효묘를 모아 술밑을 쓴 차이라니.

이탈리아에서 뮌헨으로 이주한 수도사들이 북유럽의 이른 봄인 사순절 40일 동안 오싹한 돌건물에서 살면서 금식 계율을 지키기 힘든 상황에서 고문서에서 찾아낸 '액체 섭취는 금식에 반하지 않는다.'는 구절에 근거해서 맥주를 빚어내 마시면서 금식기간을 넘겼던 것에서 유래한 파울라너(마트에서 할인행사를 많이 해서 애정합니다.ㅋㅋ)가 제가 즐겨마시는 맥주라니 빵 터졌습니다.

중세 독일에서 맥주는 소위 '액체빵'으로 시민의 영향식품이라 한자 동맹 도시들의 경우 맥주양조권이 시민들에게 있었는데 바이에른은 영주권이 강력해서 맥주순수령이 포고되고 전파됨에 따라 품질이 신속하게 올라갈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기억에 남네요. (EC시절 프랑스가 맥주순수령을 비관세장벽으로 제소해서 분쟁조정위원회에서 1987년에 승소 결정을 받았다네요.)

호프브로이 하우스가 북독일 맥주 수준을 따라잡기 위한(=맥주 수입비용을 줄여보려 한)  바이에른의 빌헬름 5세가 영지의 부속양조장으로 건축하고, 아들 막시밀리안 1세가 북독일에서 양조기술자를 초빙해 와서 품질을 개선했고 이후에 시민 양조장으로 개방되었다는군요. 웨이터도 없고 신분에 상관없이 모두 줄을 서서 잔을 받고 또 다시 줄을 서서 맥주를 따르고 돌아다니며 안주를 파는 상인에게서 안주를 사는 양조장에 딸린 대규모 술집이라니. 이런 역사를 알고 가서 호프브로이 하우스에서 1리터 크뤼그 가득 한 잔 마시면 맥주 맛이 더 좋을 것 같네요.

이 책을 읽고나니 기회가 되면 비싸더라도 '메르첸 비어(Marzen Bier)'와 '복 비어(Bock bier)' , 맥주 중 유일하게 AOC가 있다는 '퀠슈맥주(Kolsch bier)는 꼭 마셔보고 싶습니다.

읽고서 제가 기억하고 싶어서 메모할만한 부분들을 남겨봅니다. 좀 많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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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곡물은 과일류(포도, 체리, 나무딸기, 사과) 등과는 달리 자연적으로는 발효하지 않는다. 그래서 곡물의 녹말을 효모가 발효시킬 수 있는 당으로 분해하는 '당호'라는 과정이 필요하다.

25쪽

함부라비 법전 중 "맥주에 이물질을 섞어 판매한 자는 술통에 지어놓고 익사할 때가지 맥주를 붓는 형에 처한다."

40쪽

홉이 맥주의 맛을 내는 재료로 쓰이기 전에는 다양한 종류의 약초와 향료를 섞은 '구르트(Grutre)'라는 것이 쓴맛과 떫은 맛을 내는데 쓰였다. 여기에 들어간 식물로는 선버들, 서양톱풀, 담쟁이덩굴의 일종인 긴병꽃풀, 샐비어, 백산차, 로즈마리, 노간주나무 열매, 생강, 캐러웨이, 파슬리, 호두, 향쑥 등이 있다.
- 구르트 말고도 맥주맛을 개선시킨다고 첨가된 물질도 아스팔트, 소 쓸개즙, 분필, 매연, 석탄 등도 있다고 합니다.(189쪽)

44쪽

페일은 '옅은 색'이라는 뜻으로, 페일 에일은 '담색 맥주'를 의미한다. 담색이라고 하면 약간 옅은 호박색을 떠올리는데, 사실 페일 에일은 필스너 맥주에 비해 색이 더 짙다. (중략) 페일 에일의 색은 영국식 스타우트인 포터의 진갈색과 비교했을 때 색이 더 엷다는 의미이다.

59쪽

런던의 물은 중탄산염이 많은 일시경도수로 포터처럼 짙은 색의 맥주를 만드는 데 적합한 수질이다. (중략) 기네스는 포터의 양조법을 독자적으로 개발하고 포터보다 더욱 강한 '스타우트 포터'를 개발한다. 스타우트 포터는 원거리 수송에도 끄떡없는 품질 안정성을 완비하고 있었다.

69쪽

19세기 후반이 되면 에일과 라거의 위치를 역전시키는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루이 파스퇴르'이다. 그는 <맥주 연구>에서 뮌헨에서 개발된 저온저장 하면발효법은 영국의 상면발효법에 비해 '산패 방지' 면에서 우위에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또 산패의 원인이 미생물에 있음을 밝힌다.
파스퇴르의 조사에 따르면, 에일의 성공률은 높게 잡아야 80%였다. 즉 양조장 100곳 중에 20곳은 맥주가 산패하여 폐기해야 했다. 맥주양조업은 매년 약 20%의 양조장이 폐업에 몰릴 정도로 위험도가 높았다. 그런데 하면발효법이 맥주양조가가 꿈꾸던 성공률 100%를 실현시킨 것이다.

93쪽

바이엔슈테판 수도원은 바이에른 주 프라이징 시 서쪽의 작은 산 위에 있다. 8세기 초에 프랑크 왕의 재상 피핀이 성곽을 쌓을 때, 이 산 위에 예배당을 세우고 신약성서에 나오는 순교자 슈테판을 기렸다. 바이엔이란 독일어로 '축성하다'는 의미다. 그래서 이 산은 두 단어를 합해 바이엔슈테판(Weihenstephan)이라 부른다 .

113쪽

바에에른의 막시밀리안 1세는 바이에른을 카톨릭의 강력한 근거지로 만들기 위해 이탈리아에서 성 파울라(St. Francis Paula)의 제자 수도사들을 초빙한다. 그들(Paulaner)은 뮌헨에 수도원을 건설하는데, 이곳이 바로 파울라너 수도원이다.

129쪽

3월에 담근 맥주는 여름이 긑날 대까지 버틸 수 있게 정성을 들여 만들었다. 따라서 3월에 제조된 맥주는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며 비싼 가격에 거래되었다. 이것이 바로 지금도 고급 맥주에 속하는 3월 맥주, '메르첸 비어'다.

163쪽

1843년 카를 폰 린데가 냉매로 암모니아를 사용한 냉동기를 발명한 것은 시대의 한 획을 그은 기술의 혁신이었다. 린데는 슈파텐 양조장의 가브리엘 제들마이어 2세의 협력으로 제1호기를 슈파텐 양조장에 설치한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슈파텐 양조장은 지금까지도 린데의 암모니아식 냉동기 제1호기를 그대로 보전하여 전시하고 있다.

맥주의 역사에서 냉동기 발명이 갖는 의미는, 라거 맥주를 섹적으로 급격하게 보급시키고, 라거를 맥주의 왕자 자리에 앉히는 원동력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냉동기는 라거 맥주를 세계 어디에서든 계절에 상관없이 아무 때나 제조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195쪽

1960년대에 비로소 지금의 쾰슈스타일 맥주가 완성되었다. 그리고 쾰른 길드의 후예인 쾰른의 맥주양조자 조합은 '쾰슈의 명칭을 쾰른산 맥주에만 붙일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1985년 처음부터 쾰슈를 양조하던 지역을 인정하기로 하고 그 지역 외에는 '쾰슈'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리하여 쾰슈는 맥주로는 유일하게 와인처럼 원산지 증명 명칭(AOC:Appelation d'origine controlee)을 허가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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