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드는 일에는 전혀 재능이 없는데 옷, 그릇 등에서부터 시작된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인테리어로 흘러가다보니 자연스럽게 원목가구로까지 눈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

여느 초보처럼 저도 신혼가구를 집성목이나 무늬목으로 디자인 예쁘게 뽑고 색깔도 포인트를 잘 주거나 화사하게 만든 공장 가구를 샀죠. 그런데 막상 4년을 써보니 그런 가구들은 흠집나면 못생겨지고, 레일이 뻑뻑해지거나, 짜맞춤이 부실해서 흔들흔들하더라구요.

그래도 책장과 협탁은 소나무 원목 공방에서 제대로 만든 물건을 샀더니 역시 가장 만족 스럽습니다. 공장 제품보다 두 배 비싼 이유가 괜한게 아니었죠. 물론, 카레 클린트처럼 고급스럽고 합리적인 가격의 가구 브랜드도 있지만요.

벼락부자가 속출하던 산업혁명시기 영국에서 귀족들이 새로 이사온 부르주아 이웃들을 뒷다마하던 소재 중 하나가 '저 집은 가구를 샀대.'였다는 말이 어떤 문화에서 나왔는지 알겠더군요.

이러던 차에 북미산 블랙 월넛 통판으로 만든 라이브엣지 테이블 실물을 보고 원목가구에 빠져들었습니다. 예술품은 바라보는 대상이지만 원목가구와 같은 공예품은 심미적인 만족과 함께 실제로 사용하는 만족감까지 주는 장점이 있어서 집에 예술품을 들이는 기분으로 살만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러다보니 요즘 2년 후에 입주할 아파트에 어울리는 원목가구로 뭐가 좋을지 미리 찾아보고 있고요. 우리나라의 원목가구 공방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14곳의 공방 또는 원목가구회사를 운영하는 오너의 과반수가 저보다 나이가 어린 젊은 목수들이더군요. 그래서 동년배들의 저와 다른 삶에 대해서 알아가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저는 소개된 곳들 중 '프레그셋'과 '밀로드'가 가장 인상깊고 업에 대한 철학이 와닿더군요. 실물로 못보긴 했지만 사진으로 본 개별 작품중에서는 프레그셋의 'Whale Daybed'와 'Cloud Desk' 그리고, 밀로드의 'G shelf', 컴플리트 파이브의 MS-AV Board_01 거실장, 메이앤 공방의 락킹 체어 ROO, 정재원 가구의 'Heel Stool' 등이 맘에 들었습니다. 기회가 되면 여기 나오는 원목가구 쇼룸도 구경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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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나무는 소중한 자원이다. 나무에게 미안하지 않으려면 그것으로 만든 가구를 오래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지론이다. 오래 쓸 수 있는 디자인은 과하지 않은 것이다.

41쪽

서비스에서도 큰 차별점이 있는데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가구와 함께하는)'시간'이다. 사람들이 가구를 5년 정도 사용하다 버리고, 교체하는 케이스가 많다. 이케아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그런 문화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올바른 소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바우처 제도라는 것을 도입하게 됐다. 가구를 오래 사용할수록 혜택이 돌아가는 제도다.

61쪽

디자인만 하면 가구를 예쁘게 잘 만드는 걸로 끝나지만 운영을 하고 배송까지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이 되면 각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특성과 사이즈까지도 고려하게 된다.

77쪽

의자의 경우 기성품을 많이 사신다. 나도 그렇게 권해 드린다. 왜냐하면, 금액대가 훨씬 비싸니까. 사실 의자를 만드는 게 테이블 하나 만드는 거랑 별반 다르지 않게 힘들다. 그렇다고 테이블 가격을 받을 수는 없다. 기성품들이 워낙 저렴하게 나온다.(공장제 카피 의자)

187쪽

보통 혼수를 여자가 해 가지 않나. 가구에 값을 지불하는 건 장모라 자연히 가구 디자인의 취향 역시 장모의 취향을 따를 수밖에 없다. 또 시댁 쪽에서는 "걔네 가구 어디서 해 왔대?"가 중요하다. (중략) 말하자면 디자인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 장모의 영향력이 조금씩 약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개개인의 취향이 많이 가미됐고 이제는 비로소 디자인을 보기 시작한 것 같다.

258쪽

길종상가의 모든 가구는 평생 A/S가 보장된다. 이것도 물건을 더 튼튼하게 만들게 되는 원동력이다. 평생 A/S가 말이 쉽지, 꽤 번거로운 일이다. 그러니 아예 고칠 일이 생기지 않게 튼튼하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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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식당 - 요리사 박찬일의 노포老鋪 기행
박찬일 지음, 노중훈 사진 / 중앙M&B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TV없이 산지가 오래 되서 맛집객들이 러시안 룰렛처럼 방영을 두려워한다는 <수요미식회>는 한 번도 못봤는데 이렇게 믿을만한 노포탐방기가 있었네요. 기자출신 요리사님이라 문장이 좋아서 즐겁게 읽었습니다. (박권일님께서 버크셔 K 돼지로 맛을 냈다는 돼지국밥집을 가봐야하는데)

 

전 노포의 매력을 도통 모르다가 일본 여행을 다니다보니 눈을 뜨게 되더군요. 안타까워하는 저자와 달리 전 피맛골이 예전 모습 그대로 남아있었어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유보적이지만 살아있는 근대문화유산인(혹은 될) 노포들을 답사한 민속지 같은 책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예전에 <쟁이><>이라는 책을 보면서도 같은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났습니다. 책을 왜 쓰게 되었는지를 이렇게 잘 설명한 머리말도 접하기 쉽지 않아요.

 

저자는 백년 된 노포도 없는 우리나라에서 노포의 역사를 말하려면 결국 일본의 영향에 대해 말해야하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화월당 외에 일본인으로부터 전수받은 노포들에 대해서는 전수자를 일본인이라고만 기술하고 있는 점은 좀 아쉬웠습니다. 뭐 자세히 쓴다고 독자들이 좋아하진 않겠지만요.

 

제주도의 식문화와 의례에서 돼지가 차지하는 중요성은 인류학자가 관찰한 파푸아뉴기니의 마링족 문화(Roy A. Rappaport,<Pigs for the Ancestors>)와 비슷한 점이 많아 범 폴리네시아 문화권인가 싶었고, 우리나라에 Meat Carving 전통이 있었다니 신기했습니다.

 

박권일씨는 노포들의 공통적인 특징으로 다음의 세 가지 꼽네요. ‘첫째, 당연히 맛이 있고, 특별한 비법보다 값을 깎지 않고 고정 거래처에서 산 질 좋은 재료를 쓴다. 둘째, 주인이 직접 일하고 (상당수가) 매일 자기가 파는 음식을 먹는다. 셋째, 직원들이 오래(수십 년) 일한다.’

 

여기서 소개한 열여덟 곳의 노포 중에서 제가 가본 곳은 부산 할매국밥 뿐이더군요.(삼진어묵은 밥집은 아니니 제외) 아무 것도 모르고 일행이 가자고 해서 따라갔던 그곳에서 먹었던 토렴한 돼지국밥이 국밥의 원형처럼 느껴졌던 걸 떠올리니 저자가 추천한 식당들에 한 번 가보고 싶어서 구글맵에 좌표 찍으면서 읽었습니다.

 

다만 이 곳 노포들을 운영하시는 분들이 소명의식에 눌려 본인의 건강을 해치거나 직원들이 받아갈 적절한 급여까지 깎아서 맛을 추구하시지는 않으시면 좋겠네요. 생산자 잉여도 있어야죠. 그런 점에서 대구에서 차상남 사장님이 하시는 상주식당은 꼭 가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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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좋은 파를 사는 데 정성을 들인다. 그러고는 손질도 꼼꼼히 한다. 진액을 다 빼야 텁텁한 맛이 없어진다고 한다. 또 대파의 흰 부분만 쓴다. 그래야 달고 시원한 국물이 나온다.

 

32

 

아무 맛이 없어, 그게 냉면이야.”

우래옥에서 50년 넘게 봉직한 김 전무는 이 전설의 산증인이다. 그에게 냉면의 맛을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이다.

 

41

 

지금도 그는 냉면을 먹는다. 하루 한 그릇은 기본이다. 할아버지(창업주)냉면을 팔려면 늘 먹어보라!”했던 금언을 지키고 있다. 쉰두 해째 냉면을 먹는다. 그렇게 이 집의 맛은 지켜진다. 15000일 이상을 그는 냉면을 먹고 있는 것이다.

 

136

 

흔히 제1갈비뼈에서 제5갈비뼈를 본갈비, 6갈비벼에서 제8갈비뼈를 꽃갈비, 9갈비뼈에서 제13갈비뼈를 참갈비라고 부른다. 꽃갈비가 가장 부드러워 최적의 구이용으로 보고, 참갈비는 구이용으로 적합하지 않아 대개 갈비탕으로 팔린다.

 

166

 

오뎅이란 일본에서는 두부, 어묵, , 곤약, 쇠심줄, 돼지고기, 소고기, 달걀 등의 온갖 재료를 가다랑어 포, 간장을 넣은 국물에 넣어 익혀 먹는 요리다. 어묵보다 다른 재료가 훨씬 많다. 어묵이란 오뎅에 들어가는 가마보코, 즉 생선 살을 갈아 익히고 굽거나 튀긴 재료를 말한다.

 

215

 

한국은 쫄깃함을 얻고 냄새도 없애기 위해 센 불에 삶고, 중국 족발은 오향으로 냄새를 잡고 은근하게 삶아 부드러움을 얻는 것이다.

 

310

 

다루멘은 비운(?)의 국수다. 원래 우동과는 아무 상관없는 중국의 겨울면이다. 뜨끈하게 맑은 육수에 말아낸 국수다. 한국에 들어와서 처음에는 본명을 고수하다가 이내 우동으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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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약파기
윤형중 지음 / 알마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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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임남택 변호사님께서 선물해주신 <공약파기>. 임변호사님의 지인께서 펴내신 책같아서 약간 부담스러운 책선물이었답니다. 차라리 저자로부터 선물받은 책이면 평을 하는 게 예의가 아닌 면이 있으니 혼자 정리해둬도 괜찮지만 이럴 땐 좀 애매하잖아요.

 

혹시 내용이 저와 안맞으면 어쩌나 고민하면서 집어 들었는데 예상(?)보다 매우 훌륭한 책이었습니다. 같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입장에서 가려운 부분들을 긁어주는 국내 저자를 만나는 건 참으로 즐거운 일입니다.

 

저자인 한겨레신문의 윤형중 기자님은 <공약파기>에서 지난 두 번의 정권이 대통령 선거를 하면서 발표한 공약집이 어떻게 이행이 되었는지를 추적하고 있습니다. 원래 소위 진보정권시기까지 다루고자 했는데 책의 분량이 넘쳐서 지난 두 정권으로 한정하셨다고 하네요.

 

지난 3월에 나온 따근따근한 신간이고 대통령 탄핵으로 인해 5월 대선을 앞둔 한국 유권자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책이 언론에도 좀 더 반향을 일으키면 좋겠는데 언론계에서 의외로 현직 동업자가 쓴 책을 조명하는데 인색하지 않나 싶었던 터라 걱정됩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저는 한국 정치가 구조적으로 바뀌려면,그 중심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제안하는 것은 간단합니다. 정치의 중심에 정책, 선거의 중심에 공약을 두자는 것입니다.” 저자 자신도 기자지만 정치의 중심을 파워게임으로, 선거의 중심을 인물과 판세로 경마장식으로 보도하는 기성언론의 정치보도에 진지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책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에이 공약이야 뭐 어차피 표를 얻기 위해 부풀리고 지킬 수 있는 이상으로 호언장담하는 거 다들 아닌거 아냐? 하는 마음으로 심드렁하게 읽기 시작했죠. 그런데 윤형중 기자님을 따라 공약의 이력을 추척해보니 해도 정말 너무 했고, 과연 대의제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를 이런 식의 공약(空約)으로 치러도 되는 건지 같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이 분의 다음 책도 기대되네요.

 

박근혜 전 대통령이야 뭐 할말 없지만 그래도 이명박 전 대통령은 많은 공약들을 정량적인 숫자로 제시한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이번 대선 때 TV토론 포맷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공약집을 텍스트로 해서 각 후보자들이 직접 선정한 시민 패널과 전문가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방식의 개인별 토론회도 도입하면 어떨까요?

 

그리고 저는 다음 대통령이 지난 두 전직 대통령처럼 화려한 공약들을 내세우기 보다는 지금 유효한 천 개가 넘는 법률들 중에서 우리 사회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필요하지만 사실상 규범력을 상실한 법률의 집행을 실효성있게 하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차피 국회 선진화법으로 야심한 공약 이행을 위한 추진력 확보도 어렵고, 대연정이나 의원빼가기 등 정치공학적인 논의에 매모될 필요 없이 국회가 제정한 법률을 집행하는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역할만 제대로 해달라는 거죠.

 

레퍼런스는 없지만 정치인들의 말바꿈과 정책백서나 보도자료들이 대강 얼버무리고 언급하지 않는 정책집행 실적의 이면을 차근차근 헤쳐 나가는 좋은 책입니다. 오는 5월에 한 표를 행사하길 유권자들께 권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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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이미 존재하는 법이 현실에서 규범력을 회복하는 것이 경제민주화의 첫걸음이다. 이는 거꾸로 말해 제도화가 경제민주화를 담보하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국의 노동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처럼, 공정거래법이나, 유통법, 상생법 등도 많은 경우 지켜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입법 성과에 대한 자화자찬을 할 것이 아니라, 법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꾸준히 모니터링하고 냉철하게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158

 

물론 정부가 최저임금 위반 사업장에 대한 관리감독과 신고접수를 맡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현장에서는 정부의 관리감독을 체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2006년부터 2014년까지 최저임금 위반 사업장 가운데 사법처리가 된 이들은 전체의 0.12%에 불과할 정도다. 나머지 99.88%는 시정명령에 따라 임금 미지급분을 주고서 아무 처벌도 받지 않았다. 적발되는 일이 드문데, 적발이 되더라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 기업들로서는 최저임금법을 지킬 이유가 거의 없는 셈이다.

 

253

 

새로운 정책을 기획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재원 대책이다. 해마다 4조원이 넘게 들어가는 정책을 새로 만들며 이명박 정부는 재정부담을 지방교육청(3~5)과 지방정부(0~2)에 떠넘겼고, 박근혜 대통령은 선거 때엔 내가 내줄게라고 말했다가 당선 이후엔 그냥 네가 내라로 표변했다. “아까랑 말이 다르지 않냐고 지방교육청이 따지자, 박근혜 정부는 그럼 네가 반드시 내야 한다는 법을 만들 테니, 그 법을 지켜라고 윽박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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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모되는 남자 - 남녀차에 대한 새로운 사회진화적 해석
로이 F. 바우마이스터 지음, 서은국.신지은.이화령 옮김 / 시그마북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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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바우마이스터/서은국 역] 소모되는 남자(2010)

한참 전에 사놨던 걸 어제야 읽었습니다. 원래 해나 로진의 <남자의 종말> 읽고 바로 읽으려고 했었던 책인데 말이죠. <남자의 종말>을 보고 나서 이 책을 읽으시면 소금을 찍어먹고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처럼 이 책의 탁월함을 더 잘 느낄 수 있습니다.

요즘 아들을 키우는 어머니들에게 육아법 책보다 이 책을 권하고 싶네요. 개인적으로는 대학시절 학회 성세미나 자리에서 남성 일반을 불의한 가부장제 시스템의 수혜자로 치부하며 열변을 토했던 여학우들에게 이 책을 발제해서 성세미나 한 번 더 하자고 하고 싶습니다. ㅋㅋ

번역자가 <행복의 기원>을 쓰신 서은국 교수님이죠. 에세이라 가벼운 필치로 쓰고 있기 때문에 편하게 잘 읽힙니다. 아직 2월이지만 아마도 제 올해의 책 리스트에 올라갈 것 같네요.

기존의 성차에 대한 두 가지 견해는 '남성이 여성보다 본질적으로 우월하다는 관점'이 하나, 다른 하나는 '어떤 중요 영역에서도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지 않을 분 아니라 오히려 남성보다 우월할 수 있고, 가부장제라는 시스템이 여성을 억압하고 남성끼리만 보상을 분배해왔다'는 관점이지요.

그런데 둘 다 배척하면서 남녀는 동등하지만 다르다고 봅니다, 남녀의 차이는 기본적인 호불호와 관계모형 성향의 차이와 문화 시스템의 선택으로 인한 결과라고 설명하죠. 문화('집단 전체에 공유되어 있으며,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정보들을 바탕으로 학습된 생활양식')가 남성과 여성을 각각 다른 용도로 활용한다는 발상에서 출발합니다.

저자 로이 바우마이스터 교수 본인이 요즘의 세태에 대해 약간 억하심정이 쌓여서인지 남성을 감정적으로 변호하는 부분도 좀 있긴 합니다. 하지만,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의 주장도 경청할 필요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읽는 사람이 걸러 받아들이면 되지 않나 싶네요.

아래 부분은 이 책을 다 읽고 떠오른 생각들입니다.

1. 저자는 문화의 입장에서 여성은 소중한 자원이라는 가정을 계속 고수하는데 그걸로는 가임기가 지난 여성들에 대한 존중을 설명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역사속의 가부장제는 바로 그런 여성, 소위 '우두머리수컷의 아내'에 대한 사회적 역할 부여 차원에서 고안된 제도가 아닐까요? 잉여생산물이라고 해봤자 수레에 싣고 옮길 수 있는 물건들 뿐인 유목민에겐 가부장제가 없죠. 하지만, 정주문명에서는 그 자리를 유지하기 바쁜 우두머리수컷이 쌓아둔 부와 권력을 유지하고 활용하는 역할이 분명 필요하니 문화와 여성의 협력이 이뤄지기 좋은 상황이었다고 봅니다. 물론 쥐뿔도 없는 집 시어머니는 노화된 몸을 이끌고 계속 노동해야하니 물론 이러한 구조형성과 무관하지만요.

2. 지구상에는 이미 인구가 많습니다. 생태학적 한계에 있는 티벳에서 일처다부제를 통해 인구증가를 통제했던 것처럼 현대문명에서 사회의 보조를 받지 않는 출산과 양육이 포르쉐나 페라리를 능가하는 사치재가 되었습니다. 이제 남성들만이 아닌 여성들도 소모되는 존재로 투입하는 문화권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차피 전쟁도 인구 숫자는 의미없고 완편된 항공모함 전대 하나면 어지간한 나라는 다 쓸어버릴 수 있습니다.

포드의 가솔린 자동차 대량생산 이후 미국 내 수십만 마리의 말들이 경제학적으로 무가치해진 것처럼 제2의 기계시대가 임박해 있고, 인간노동력이 넘쳐난다고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감차보상금을 지급하면서 공급을 통제하는 택시총량제처럼 인간총량제가 필요한 상황이 될 수 있습니다. 선진국부터 닥치겠지만 개도국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폭스콘의 인건비가 아무리 저렴하더라도 갈수록 진보하는 화낙(FANUC) 로봇을 계속 압도하리라 장담할 수는 없으니까요.

페미니즘으로 인해 남성들은 좀 더 덜 소모될 수 있는 수혜를 얻었지만 기술진보를 선도하고 가장 많은 임금을 주는 기업들은 여성들도 소모되는 존재가 되도록 회유하고 있습니다. 직장 내 성차별의 철폐, 유급 출산휴가, 육아휴직과 유연근무제의 확충, 난자냉동비용 지원 등 말이죠. 문화는 필요하다면 육아를 전담하는 전업주부인 남성을 소방관이나 CEO처럼 매럭적으로 묘사하여 이런 우두머리암컷의 배우자 풀을 넓혀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3. 일부일처제의 정착, 안전한 피임수단을 확보한 상태에서의 성적 자기결정권의 확대, 전지구적 시장경제의 보급으로 소모되는 존재를 더 많이 갈아넣어 기술진보와 풍요로운 문화를 향유하는 경쟁친화적 문화집단이 승리하는 추세 등을 볼 때 지금까지의 선진국을 만들어낸 문화의 선택은 이제 여자들도 소모되는 존재로 만들거나 아니면 선별적으로 엘리트 이민자 남성을 받아들여 기존의 시스템을 고수하느냐의 선택이 남은 것으로 보입니다. 두 가지 전략 중 어느 쪽이 장기적으로 성공한 전략이 될지 상당히 기대되네요.

이 하는 인용한 문장들입니다. 인상깊었던 책이라 좀 많이 인용했습니다. 어줍잖은 요약보다는 낫겠지만 그래도 직접 이 책을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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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쪽

제이슨 와일더와 동료들의 DNA연구를 통해 오늘날 인류 조상의 약 67%가 여성이고 33%가 남성임이 밝혀졌다. (중략) 전문가들은 이 불균형이 더 심할 것으로 여겼으며, 대략 75~85% 정도가 여성일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일부일처제가 전세게적으로 퍼진 현대사회 이전의 대부분의 역사, 특히 선사시대에 심했을 것이며, 많은 동물 세계에서는 고작 20%의 수컷들이 90%에 육박하는 암컷들과 번식을 한다.
(전략) 결정적인 점은 남녀 삶의 보편적인 결말이 달랐다는 것이다. 성인기까지 생존했던 대부분의 여성들은 최소한 한 명 이상의 자식을 두었을 것이며, 그 후손들이 지금까지도 살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남성은 그렇지 않다. 생존했던 대부분의 남성들은 정상에 오르지 못했던 야생마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유전적 흔적을 남기지 못했다.

129쪽

진화의 핵심은 생존이 아닌 '재생산'에 있다. 진화를 이끄는 자연선택의 결론은 결국 재생산을 위함이다. (중략) 진짜 핵심은 더 많은 자손을 성공적으로 '낳을 수 있는' 자식들을 낳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이 일을 해낸다면 당신의 수명과는 관계없이 유전자를 전달하는 진화론적 관점에서 성공한 사람이다.

169쪽

여성들은 일대일로 연결된 가까운 관계의 작은 영역에 맞게 설계된 반면 남성들은 많은 사람들과 연결된 대규모 영역에 더 잘맞게끔 설계되었다. 남성들의 이런 관계는 여성들의 전문 분야는 일대일 관계만큼 친밀하거나 강렬하지는 않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중요하다.

177쪽

어느 쪽도 더 우월하지 않다. 단지 다를 뿐이다. 각각의 대인관계 방식은 한 종류의 관계에 더 적합하기 때문에 자연히 다른 종류의 관계에는 덜 적합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트레이드오프(trade-off)다.

250쪽

큰 규모의 집단은 더 많은 정보와 지식을 축적할 수 있었으며, 훨씬 더 광범위한 노동분업과 전문화가 이루어졌다. 때로는 친근하고 때로는 잔인한 경쟁을 통해 새롭고 다양한 생각들을 시도할 수 있었고, 승자가 누구든 이 같은 경쟁은 집단 전체에 이득을 가져왔다.

312쪽

남편의 독점을 원하는 여성도 일부다처제 하에서 더 잘 살 수 있다. 일부다처제는 미혼 여성 수는 부족하게 하고, 미혼 남성 수는 넘쳐나게 한다. 그래서 일부다처제 하에서는 일부일처 관계의 남편을 원하는 여성도 훨씬 많은 남성들 중에서 자신의 남편을 고를 수 있다.

377쪽

사람들은 대개 위대함을 추구하기 위한 희생이 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많은 여성과 남성들이 낮은 확률을 뚫고 위대한 성취를 달성하는 데 그들의 삶을 바치지 않는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다소 비합리적인 이런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해야 한다.

383쪽

살펴보았듯이 자연은 위대함을 추구하지 않는 남성들을 별로 필요로 하지 않으며, 야망이 없는 대부분의 남성들은 결국 생식의 종말을 맞이했다.

429쪽

대부분의 현대문화가 내놓은 해결 방법은 이혼하더라도 남성이 계속 전처와 자녀들에게 자신의 부를 전달하도록 요구하는 것이었다. 남성이 전처와 새로운 아내 모두를 재정적으로 지원할 경제적 능력이 있는 경우 이것은 일부다처제와 비슷하게 작동한다. 남편으로서 전처에게 가졌던 권리만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435쪽

문화와 여성은 이 부분에서 서로 협력할 필요가 있다. 남성이 열정적인 사랑의 최고치에 있을 때 문화와 여성은 남성의 착각이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 이 소중한 사랑이 영원할 거라는 착각 덕분에 남성은 기꺼이 영구적인 재정적 지원을 약속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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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은 끝났다 -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곳, 다시 집을 생각한다
김수현 지음 / 오월의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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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춘욱 박사님의 추천덕분에 읽게 된 책입니다. 추천이 없었더라면 이런 선정적인 제목에 2011년에 나와서 벌써 6년이나 된 부동산 책을 읽을 일은 없었을 것 같은데 말이죠.

저자인 세종대 김수현 교수님은 20대엔 판자촌 철거반대운동을 30대엔 빈곤연구, 40대엔 서울시정연(서울연구원)에서 일하다가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비서관과 환경부 차관으로 주로 부동산 정책의 수립과 집행에 참여하셨던 경력의 분이시더군요.

그렇다보니 중앙정부가 주택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을 이해하기에 좋았습니다. 2011년에 나온 책이다보니 이미 과거가 된 이야기들이지만 지금의 부동산 정책이 형성되어온 경로를 확인하기에 좋고 해외사례들도 도움이 많이 됩니다. 참여정부의 주택정책에 대한 변호와 이명박 정권의 주택정책 비판 등이 도드라지는 느낌은 있지만 적당히 걸러 보시면 됩니다.

저자는 제2부에서 주택의 공급에 영향을 주는 요소로 정부와 지자체의 도시계획(국토계획법에 따른 용적률, 건폐율, 높이), 금융(금리, DTI와 LVT DSR등의 대출조건, 세제(양도세, 취득세, 재산세, 종부세), 공급규칙(분양가 상한제, 전매금지 기간, 청약제도) 등의 요인들과 개별 시장 플레이어들의 입장을 간결하게 분석하고 있습니다. 특히 제3부에서 '남의 떡이 커 보인다, 외국의 주택정책'은 피상적으로 외국 주택정책의 좋은 부분만 따와서 도입하자는 주장의 허점을 잘 지적하고 있더군요.

저는 이 책을 통해 앞으로 우리나라의 주택공급 정책은 기업형 임대주택(뉴스테이) 위주로 갈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습니다.(자세한 내용은 채상욱 연구위원님의 <뉴스테이 시대, 사아야 할 집 팔아야할 집>을 참고하셔요.), 기존처럼 다주택소유자를 통한 민간임대 위주를 유지하려면 선진국처럼 임대전용주택 등록, 임대소득세 부과, 자동계약갱신제, 임대로 인상 상한제, 임대료 불복신고제, 임대료 보조제도, 가옥주 지원제도 등이 패키지로 바뀌어야 할텐데 뉴스테이보다 훨씬 지난한 길로 보여서요.

수요정책과 관련하여 주택의 수급조절에 조세제도를 활용하는 방법이 생각보다 어려움이 많다는 점을 알게 되어서 유익했습니다. LH가 세계 최대의 주택공기업이란 사실에 깜짝 놀랐고요. ㅎㅎ

무조건 자가소유와 공공주택 비율이 많다고 주거안정이 보장되는 것도 새로 알았고요. 이 책덕분에 앞으로 분양가 상한제와 원가 공개, 반값아파트(토지임대부주택)나 후분양제를 도입하면 주택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무조건 거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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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쪽

1970년대 이후 서울의 아파트 허용 용적률은 100% -> 200% -> 400% -> 200% -> 300%로 시대 상황, 대중적 요구에 따라 변해왔다. 대체로 집값이 급등하는 시기에는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논리에 따라 용적률도 올라가는 경향이 있으며, 그렇지 않은 시기에는 환경, 도시밀도 등에 대한 고려가 커진다. (중략) 도시계획은 특정한 절대적인 기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압력, 사회적 요구 변화에 따라 함께 바뀌는 것이다.

134쪽

선진국 대부분은 다양한 방식으로 양도세를 감면하고 있다. 우리는 '1세대 1주택, 9억원 이하'의 방식이지만 다른 여러 국가에서는 '주된 1개 주택', '일정액 이하 양도 차익 감면', '생애 합산 양도차익 한도' 등의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137쪽

(주택에 대한) 임대소득세가 사실상 없는 상황에서는 매각 단계에서 가격이 오른 부분을 환수하는 방식으로 일종의 사후 소득세 개념을 적용할 수밖에 없다. 이는 다주택자에 대해 양도세 중과를 하는 중요 논리이기도 하다.

178쪽

세계적인 대도시권 규모를 보면 서울은 아직 더 발전할 여지가 있다. 이는 수도권 집중이라는 문제와는 조금 다른 차원으로, 수도권 내부 연결교통망과 결집도가 아직 선진국 대도시에 비해 현격히 떨어지는 것이다. (중략) 도쿄나 런던 등이 대개 80km까지 통근권으로 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 40km 범위에 있는 2기 신도시를 연결하는 것은 결코 무리한 구상이 아니다.

312쪽

노동-상품-금융시장의 글로벌화는 고용불안을 상시화하면서도 과잉유동성이 모기지로 확대되는 모순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자가 소유의 안정성 구조 자체를 위협하게 된다.

338쪽

우리나라는 공공임대주택을 너무 늦게 시작했다는 점이 큰 걸림돌이다. 도시 내에는 이미 집지을 땅이 거의 없는데다 국공유지마저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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