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겨울 꿈 ㅣ 쏜살 문고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23년 11월
평점 :
<겨울 꿈>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는 읽으려고 몇 번을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극찬하며 사랑한 작가라고 했지만 관심이 없었는데 민음사 쏜살문고 시리즈로 나온 단편집 <겨울 꿈>은 이러한 여러번의 실패를 보상해 주었다. 결과적으로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날 <위대한 개츠비>도 읽어낼 수 있을 거 같으니 말이다.
5편의 단편과 ‘작가를 꿈꾸는 딸에게 보내는 편지‘, 그리고 ‘헤밍웨이에게 보내는 편지‘ 두 편까지 합쳐 민음사 쏜살문고 시리즈로 출판되었다.
할리우드 인물들의 권태와 일상을 다룬 ‘광란의 일요일‘, 역시 권태로운 미국 중산층 부부의 비극적인 결혼 생활을 다룬 ‘컷글라스 그릇‘ 등이 좋았다.
특히 분량은 단편이 분명한데, 마치 한 권의 장편을 읽은 듯한 착각을 불러오는 ‘오월제‘는 영화로 만들어져도 극적요소가 다분한 작품으로 탄생할 수 있을거 같다. 다양한 인물들의 묘사와 스토리 전개가 돋보였고 무엇보다 짧은 시간 동안 벌어지스는 여러 인물들의 얽히고 설킴을 보면서 피츠제럴드가 단편에서 뛰어난 작가임을 인정하게 되었다. 최고 최고!
표제작인 ‘겨울 꿈‘은 그의 대표작 <위대한 개츠비>의 주제의식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 작품임을 느낄 수 있었다. 다 읽진 못했으나 읽다보면 <위대한 개츠비>에서 보여주었던 주제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부富에 의해 잔혹하게 나뉘는 계층 문제, 성공과 사랑에 얽힌 참담한 환멸을 정교한 구성과 서정적인 문장으로 완벽하게 담아낸 걸작 단편이다(책 소개 발췌)˝
이 단편에서 주인공인 덱스터가 이뤄낸 성공, 그리고 이미 지나가버린 먼 과거의 사랑에 대한 환멸의 감정을 너무도 아름다운 ˝서정적인 문장˝으로 표현해내고 있는데 정말 문장이 다 너무 아름다워서 머릿 속에 그림이 그려지는 기분, 그리고 그가 느끼는 감정을 나도 그대로 느끼고 너무 잘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거. 피츠제럴드는 정말 너무.. 너무 ... 대단한 작가잖아 하고 그만 인정해 버리고 말았다는 것. 잊지 못할 거 같다.
덱스터는 이제 더 잃어버릴 것이 없기 때문에 마침내 상처받을 일도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마치 주디 존스와 결혼해서 그녀가 시들어 가는 모습을 직접 바라보기라도 하는 듯이, 그 이상의 다른 무언가를 잃어버렸음을 잘 알았다. (248)
이제 꿈은 사라졌다. 그에게서 무언가가 없어져 버렸다 그는 공포 비슷한 감정을 느끼며 두 손바닥을 두 눈에 가져다 대고 셰리아일랜드를 찰싹찰싹 때리던 물결, 달빛에 비친 베란다, 그녀가 골프장에서 입었던 깅엄 골프복, 그녀의 목덜미에 나 있던 부드러운 황금빛 솜털을 떠올리고자 애썼다. 그리고 키스할 때 촉촉이 느껴지던 그녀의 입술이며, 우수憂愁에 젖어 있던 서글픈 두 눈이며, 아침이면 느낄 수 있었던 새로 짠 리넨 같은 그녀의 신선함까지 말이다. 아, 그런 것들은 이제 더 이상 이 세상에 남아 있지 않구나! 그것들은 과거에 머물러 있을 뿐 이제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248)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눈물이 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러나 지금 그것은 자신을 위해 흘리는 눈물이었다. 그는 눈과 입, 달달 떨리는 손에 대해서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는 이미 멀리 떠나왔으며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없었던 것이다. 문들은 굳게 닫혔고, 해 역시 저물었으며, 모든 시간을 견뎌 내는 강철의 잿빛 말고는 이제 아름다움이란 없었다. 심지어 그가 인내할 수 있었던 슬픔조차 그의 겨울 꿈이 활짝 날개를 펼치던 환상의 나라, 청춘의 나라, 풍요로운 삶의 나라 뒤쪽으로 멀리 사라져 버렸다. (248)
˝오래전에,˝ 그는 말했다. ˝오래전에 내게는 무엇인가가 있었지만 이제는 사라지고 없어. 이제 그건 영영 사라져 버렸어. 아예 없어져 버렸다는 말이지. 그런데 나는 울 수가 없고, 그것에 마음을 기울일 수조차 없어. 이제 그것은 결코 돌아오지 않을 테지.˝ (249)
내가 좋아하는 이 문장들을 이렇게 옮겨적으니 웬지 그 느낌이 반감되는거 같아 아쉽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아름다운 문장들은 여기에 이렇게 홀로 있어서는 안된다고 느끼게 된다. 역시 작품 속에 위치해 있을 때 그 기능을 다하는 거 아닐까 생각한다. 작품 전체 속에 놓여 있을 때 가장 아름다운건 뭐 말로 하나마나겠지. 피츠제럴드의 문장들도 마찬가지. 덱스터의 감정을 오롯이 느끼기 위해서, 그리고 이 문장들의 진가를 알기 위해서라도 직접 작품으로 읽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