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이름은
조남주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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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짧은 글들이 대체 뭐라고 이리 눈물이 날까! 담담하게 풀어낸 소설 같은 이야기들, 정말 소설일까 싶은 ‘그녀들의 이야기‘, 평범한 우리들의 이야기라서 더 공감이 된다. 어딘가의 시간 속에서 더 행복하게, 더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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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 안에서 - 페라라의 다섯 이야기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조르조 바사니 지음, 김운찬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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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 안에서》 조르조 바사니
조르조 바사니의 페라라는 그의 이야기의 원천이자 기억의 원형과 같은 곳이다. 상상의 공간이면서 실제하는 장소들이고 끊임없이 창조되는 동시에 유대인들의 집단적 기억이 깃든 장소이다. 그의 작품에서 ‘유대인‘과 ‘페라라‘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또한 1938년부터 1943년까지 유대인 인종법이 발효된 후 이탈리아 유대인들에 대한 차별이 공식화 된 5 년 동안의 페라라 유대인 사람들과 거리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 그 시절은 이미 한참 전에 지났지만 그의 이야기들은 그 시기를 벗어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듯 보인다. 이러한 경향은 그의 다른 작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각 작품은 독립적이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이 책에는 5개의 단편이 실려 있다.
‘리다 만토바니‘, ‘저녁 먹기 전의 산책‘, ‘마치니 거리의 추모 명판‘, ‘클렐리아 트로티의 말년‘, ‘1943년의 어느 날 밤‘ 등이다. 그가 말해주는 페라라 사람들과 거리와 추억들, 사랑, 과거와 현재, 역사와 사실들은 이미 지나가버려서 세피아빛, 혹은 흑백사진의 이미지처럼 색바랜 과거일지 모르지만 그래서 더 애잔한 그 이름과 거리들을 하나하나 불러보게 만든다.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버린 페라라의 거리 이름들, 조베카 대로, 살린궤라 거리, 포 강, 리다 만토바니와 오레스테 베네티, 마레 성문, 반파시시트, 젬마 브론디, 엘리아 코르코스, 델리 기아라 거리와 성벽 위 오솔길 지나 코르코스 박사의 저택, 마치니 거리, 에르베 광장, 그리고 ˝사백명 중 백팔십삼 명˝... 백팔심삼명의 추모명판과 수용소에서 살아돌아온 제오 요즈, 파르티잔들, 델라보르사 카페, 유대교 회당과 게토, 회유와 협박 당하고 감금당한 사람들, 클렐리아 트로티와 로비가티, 브루노, 로마 대로와 피노 바릴라리, 마침내 1943년 12월 15일의 학살, 데스테성의 해자와 미칠 듯한 폭력과 공포의 시간들, 시아구라, 금발의 안나 레페토의 삶...이 모든 거리와 역사와 이름들은 실제 역사와 사실 속에서 이야기로 형상화 되었다. 지금도 페라라에 간다면 이들의 흔적을 찾아 헤매게 될 지도 모른다. 어느 거리 어느 성문 앞이나 성벽 안에서 이들을 만나게 되는건 아닐지 기대하게 될 지도!
이야기를 읽다보면 사실과 허구가 뒤섞여 무엇이 사실이고 허구인지 구분이 잘 안되지만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단걸 곧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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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정경호 옮김 / 오픈하우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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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리처 컬렉션으로 다섯 번째 읽은 책. 역시 이번에도 홀로 멋있고 난리인데... 프랑스 대통령 저격 사건이라 긴장했는데 중간에 왜 살짝 지루했을까나... 종횡무진 활약은 여전했지만 용두사미꼴이라 좀 아쉬웠다. 잭 리처 잠시 쉬었다 다시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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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에서 인류애로 - 성적 지향과 헌법
마사 C. 누스바움 지음, 강동혁 옮김, 게이법조회 해제 / 뿌리와이파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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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 C. 누스바움의 <혐오에서 인류애로>에서 사회가 동성간의 성행위를 '범죄'로 취급하거나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가장 큰 이유를 '혐오'에서 찾는다. 그 동안 사회와 법률에서 동성애를 어떠한 방식으로 그들의 권리를 제한하고 정당화해왔는지의 과정을 밝히고 있으며, 사회와 대중의 인식이 변화하는 과정과 헌법의 변화하는 과정도 여러 법률 사건을 들어 세세히 밝혀 놓았다. (하지만 이 책의 리뷰를 쓰는 것은 너무 어렵다ㅠㅠㅠ  그렇지만 아무 것도 남기지 않는 것은 더 안될 말! 누스바움의 문장들로 대체할 수 밖에...)



'혐오'의 감정이라는 것이 반드시 나쁜 감정만은 아니다. 타인의 혈액, 타액, 정액, 체액, 역겨운 냄새, 그리고 끈적거리는 물체나 생물(에를 들어 민달팽이를 보고 느끼는 걈정, 꿈틀거리는 벌레 등등)에 대해 드는 자연스러운 혐오감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공통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정도의 '혐오'라면 공공장소에 침을 뱉거나 배설을 하면 안된다거나 개방된 장소에서의 성행위를 금지하는 등의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하는데 있어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배설물, 타액, 체취, 혈액, 벌레 등을 보고 느끼는 1차적 대상과 이를 다른 대상이나 물체에 투사하여 느끼는 투사적 혐오projective disgust는 구분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투사적 혐오란, 혐오의 1차적 대상물과 관련성이 없는 자들에게 대해 혐오의 1차적 대상물의 성질 등을 투사함으로써 그들을 혐오하는 것을 말한다. 역사적으로 성소수자, 여성, 유대인 등에 가해진 비하 및 차별의 수단으로써 이와 같은 투사적 혐오를 사용하였다. 우리 사회에서도 전통적으로 여성들을 비하하는 방식으로 사용한 '부정탄다', 다문화 가정 자녀에게 '냄새가 난다', 그리고 역시 소수자들에게 '~~충蟲' 등의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혐오의 감정을 투사하였다. 이렇게 투사된 감정을 법에 실현함으로써 이들의 자유를 제한하는 '혐오의 정치'가 오랜 시간 존속되어 왔다.



'혐오의 정치'에 대비되는 개념이 바로 '인류애의 정치'이다. 미국의 건국과정으로부터 인정되어온 종교의 자우, 종교의 다양성에 대한 인정의 역사로부터 시작되는 자유와 평등의 의지가 바탕이 되어 형성된 의식, 그리고 타인이 나와 다르다고 하더라도 그를 하나의 존엄한 인간으로 인정함으로써 그를 존중하는 정치를 '인류애의 정치'라고 말한다. 



사람이 사람의 눈을 통해 본 세상을 어떤 식으로 볼 것인지, 거기에 평등한 인간성을 부여할 것이지, 아니면 그보다 못한 무언가를 덧씌울 것인지를 선택해아만 한다. 다른 사람을 혐오의 감정이 투사된 '무언가'가 아닌 '누군가'로 인식하는 지점, 소수 인종이나 게이, 레즈비언들의 삶을 바라보는 주류적 관점에 상상력을 동원하는 참여가 그동안 아프게도 결여되어 있었다.  



'제1장 혐오의 정치:실제, 이론, 역사'에서는 '혐오'라는 감정이 미국의 성 정치에 미친 영향을 역사적으로 고찰하고 있으며 대표적인 학자로 데블린과 카스의 이론을 비판하고 있다.  '제2장 인류애의 정치:종교,젠더,장애'에서는 미국 헌법의 고유한 가치인 평등, 박애, 자유, 행복에의 추구 등에 관한 권리를 언급하면서 성적지향과 인종, 젠더, 장애 등으로 인하여 소수자들이 차별받지 않을 권리에 대하여 투쟁해온 과정을 설명한다. "다양한 집단에 속한 사람들의 상황을 상상하고 그들의 관점에서 상황을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평등도, 평등한 존중도 존재할 수 없"으며 "타인이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지 상상할 수 있는 능력, 그 사람도 괴물이 아닌 진짜 사람이라는 점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은 미국적 전통의 중심으로 자리잡게 된, 평등한 자유를 사유하는 길로 나아갈 때 반드시 내디뎌야 할 한 걸음"으로 천명함으로써 상상력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오늘날에는 혐오와 맞서는 두 반대자가 있다. 사회적, 정치적, 심지어는 법적 영역에서도 점점 더 힘을 키워가고 있는 혐오의 반대자는 바로 '존중'과 '공감'이다. 미국 민주주의사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개념은 말할 것도 없이 개인을 평등하게 존중해야 한다는 이념, 그리고 사적 자유에 대한 높은 평가인데, 다수의 시민들은 이 두 이념이 결합되면 한 가지 결론에 다다른다고 생각한다. 즉 설령 다수 시민이 특정한 선택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지라도, 그 선택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면 인간에게는 누구나 개인적 선택을 할 여지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4쪽)


   혐오는 도덕적 둔감성에 의지한다. 다른 인간을 끈적거리는 민달팽이나 역겨운 쓰레기 조각으로 보는 일은, 그 사람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고 그 사람의 느낌을 경험해보고자 하는 진지하고도 선의에 찬 시도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을 때에나 가능하다. 혐오는 타인에게 인간 이하의 속성을 전가한다. 그렇다면 반대로, 다른 누군가를 인간으로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상력을 동원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다.(26쪽) 


   '인류애의 정치'는 그저 타인을 광범위한 목표를 추구하고 있는 인간, 평등한 존엄성 평등한 권리를 가진 인간으로 바라볼 것만을 요구한다. 어떤 경우에는 누군가가 추구하는 목표가 제3자에게 실제적 피해를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인류애의 정치'를 실현하는 사람은 타인의 평등한 인간성을 보지 못하는 위치로 결코 퇴각하지 않는다.(95쪽)


   어떻게 보면 결혼의 미래는 앞으로도 예전과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계속 결합하고 가족을 꾸리고 아이를 낳을 것이며, 때로는 갈라설 것이다. 다만 국가는 이와 관련된 결정을 낼 때 반드시 평등에 기초해야만 한다. 그것이 헌법의 명령이다. 압도적인 국가의 법익이 걸려 있지 않는 한, 정부는 특정한 혜택이나 결혼의 존엄성이라는 의미의 표현으로부터 어떤 집단의 시민들도 배제시킬 수 없다. 어떻게 보면 동성커플을 결혼이라는 제도 안으로 완전히 포섭한다는 결정은 인종 간 결혼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결정이나 여성 및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유권자로서, 또한 시민으로서 인정한 결정에 견줄 만큼 거대한 변화다. 이 모든 변화는 헌법이 보장하는 약속의 진정한 실현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모든 변화를 같은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인류애의 정치'에 따라, 우리는 더 이상 동성결혼을 전통적 결혼을 더럽히거나 타락시키는 이유로 보지 말아야 한다. 대신 결혼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인간적 목적을 이해하고, 결국 이성애자들이 추구하는 목적과 동성애자들이 추구하는 목적이 유사하다는 점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동성결혼 금지는 인종간 결혼금지와 마찬가지로, 만인의 평등과 정의를 추구하는 사회에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차별이다. (232~233쪽)


   '인류애의 정치'란 평등한 존엄성과 평등한 행복 추구의 기회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284쪽)


   결혼만큼 뜻 깊은 관계는 없다. 왜냐하면 결혼은 사랑,충실,헌신,희생과 가족이라는 최고의 이상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혼인을 통해 결합함으로써 두 사람은 기존에 각각 존재했던 것보다 위대한 존재가 된다. 원고들의 일부가 이 사건에서 보여주듯, 결혼은 심지어 과거의 죽음을 이겨내는 사랑을 담고 있다. 이들 남성들과 여성들이 결혼의 이상을 무시한다고 주장한다면 이들을 오해하는 것이다. 원고들의 주장은 그들이 결혼의 이상을 존중한다는 것이고, 그토록 결혼의 이상을 깊이 존중하기에 그들 자신들도 결혼의 이상 속에서 충족을 구하고 있다. 그들의 바람은 문명의 가장 오래된 제도들 중 하나로부터 배제된 채 외로운 삶에 추방되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이들은 법 앞에 평등한 존엄을 구하고 있다. 헌법은 이들에게 그러한 권리를 부여한다.(300쪽, 미국 연방대법원의 동성혼 인정 판결문 중에서, 게이법조회 번역 참조.) 




2015년 6월, 미국 연방대법원은 오버거펠 대 호지스 사건에서 동성결혼 금지법 심리 사건에 있어 5대 4의 결정으로 동성결혼을 금지하는 것은 위법이며, 동성결혼이 가능한 주에서 공증된 동성결혼은 다른 모든 주에서도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위키백과 참조)을 내려, 사실상 미국 전역에서 동성결혼이 가능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동성결혼이 불법은 아니나 합법도 아니고 그에 대한 규정 자체가 없으며, 그에 대하여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불법은 아니지만 법 규정 자체가 없으니 혼인신고도 불가능하다. 



내 기억 속 최초의 커밍아웃이라면 당연히 홍석천 씨의 경우일 것이고 그 후 하리수 씨의 트랜스젠더 커밍아웃과 결혼이라는 뉴스를 접한 것이 불과 그 얼마 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호모'라는 말로 그를 비하하고 비난하던 시간들이 있었는데 20 년이 넘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홍석천 씨는 내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나타나 요즘 다시 방송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 사이 이태원에서 여러 음식점을 성공적으로 일궈내기도 했고 딸이 중학생이던 시절 그이가 운영하는 음식점에 일부러 찾아가 오징어 먹물 파스타를 맛있게 먹고 오기도 했다. 마침 우리가 갔을 때 홍석천 씨가 가게에 나와 있었다. 우린 기념 사진을 찍기도 했는데 그때도 그가 게이라는 것에 반감이 없었고 그의 선택이니만큼 내가 그것을 판단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자기 인생 자기가 선택하는데 왜 남이 왈가왈부야?! 하는 생각을 했었다. 반대를 반대한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자신의 인생이니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한 선택과 판단은 온전히 자신의 몫인 거 아닌가 하고 생각했을 뿐, 오히려 그 이유로 방송에서 퇴출되고 그의 부모님의 신상이 까발려지고 뭇매를 맞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안타깝고 속상했다. 홍석천 씨와 같은 사례들이 쌓이고 우리 사회도 좀 더 치열한 논의를 거쳐 다양성을 인정하고 법제화하는 그 날이 오기를 나도 두 눈 크게 뜨고 잘 지켜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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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세 자매 열린책들 세계문학 288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오종우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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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의 삶을 실천하고자 했던 안톤 체호프의 삶의 경험이 녹아있는 단편 ‘아내‘에서의 나탈리야 가브릴로브나, 현실의 벽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들의 일을 찾아 주체적으로 살고자 애쓰는 ‘세 자매‘인 올가, 마샤, 이리나 모두 그녀들의 남편과 오빠를 앞서간 주인공들이다. 단편,희곡의 최고봉 체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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