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의 풍경 - 주한미군이 불러온 파문과 균열에 대한 조감도 메두사의 시선 3
엘리자베스 쇼버 지음, 강경아 옮김, 정희진 기획 / 나무연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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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우리의 혈맹 또는 우방으로 불렸던 주한 미군을 둘러싼 다양하고 복잡한 여러 담론을 풀어내고 있다. 

주한 미군이 주둔하는 지역의 기지촌, 이태원, 홍대라는 공간의 역사적 배경부터 시작하여, 민족주의, 젠더, 섹슈얼리티, 계급, 인종, 가부장제 등이 교차하면서 변화해온 각각의 양상들을 우리가 아닌 외국인의 시선으로 분석하여 보여주고 있다.

또한 주한 미군만이 아니라 기지촌 여성들, 그리고 그들과 경쟁하는 한국 이성애자 남성들, 퀴어 및 트랜스젠더, 홍대 펑크족뿐만 아니라 필리핀, 러시아 출신 기지촌 성노동자들의 목소리까지 골고루 담아내려 노력한 점이 돋보였다. 


한국의 성매매 여성들이 민족주의의 이름 아래 성토의 대상이 되고 희생양이 되었으면서 매번 사건이 있을 때마다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했던 역사적 사실들을 읽어나갈 때, 그리고 한국인 여성들의 자리를 메우고 빈곤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 한국이라는 타지에 들어와 미군과 만나고 성 노동을 하면서 이른바 '주시 걸'이라는 이름으로 불합리한 조항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필리핀 - 러시아 여성들이 합법적 존재로 인정받기 위하여 선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 '남성과의 결혼'이라는 사실을 읽어 나갈 때에도 드는 생각은 우리 여성들은 민족으로부터도 국가로부터도 그 존재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희생양이 되어야만 했던 것인지였다.

자신들의 선택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어야 하는 것인가. 그들을 그 자리로 내몬 불가피한 상황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자신들의 권리를 박탈 당하고 제도권의 폭력을 견디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하여 분투하는 여성들에게 그들의 자리를 찾아주는 것이 우리의 숙제가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편협한 민족주의, 군사주의, 가부장 주의에 저항하고 그들의 자리를 되찾아주는 공동체의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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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에덴은 호기심에 끌려 평생을 살아왔다. 알고 싶었다. 그를 세상 곳곳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가게 한 것도 호기심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는 자신이 아무것도 알지 못했음을, 그리고 배를 타고 영원히 떠돈다 한들 아무것도 알지 못할 것임을 스펜서로부터 배우고 있었다. 그는 그저 사물의 표면을 스쳐 지나면서 동떨어진 현상을 관찰하였고, 사실의 단편들을 축적하고, 피상적이고 하찮게 일반화해왔다. 
변덕과 우연뿐인 세상에서 모든 것들은 일관성도 질서도 없이 서로 무관해 보였다. 그는 날아다니는 새를 봐 왔고 그 비행 방식을 추론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새들이 유기적 비행기구로 발전하게된 과정을 설명해 보겠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었다. 그런 과정이 있었으리라는 생각은 꿈에도 해 보지 못했다. 새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는 생각할 거리가 아니었다. 새들은 언제나 있었고, 그냥 생겨난 것이었으니까. - P150

"말도 안 돼, 너도 알잖아." 올니가 못마땅하게 말했다. "마틴은 교양이 아니라 직업을 원해요. 그의 경우에 그 직업을 위해 교양이 필요할 뿐이죠. 그가 화학자가 되려 한다면 교양은 필요 없겠죠. 마틴은 글을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어 해요. 하지만, 당신이 틀렸다는 게 드러날까 봐 그렇게 얘기하지 않는 거예요. 그런데 마틴은 왜글을 쓰는 일을 하고 싶어 할까요?" 그는 계속했다. 
"빈둥댈 만큼 재산이 없기 때문이죠. 당신은 왜 당신 머리를 색슨어와 일반교양으로 채울까요? 당신은 먹고살 길을 스스로 찾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에요. 당신 아버지가 알아서 마련해 주시겠죠. 당신한테 옷과 다른 모든 걸 사 주시잖아요. 우리가 받은 교육, 당신과 나와 아서와 노먼이 받은 교육이 대체 무슨 소용이 있죠? 우리는 일반교양에 푹 절어 있지만, 오늘 아버지들이 파산하신다면 내일 우리는 전락해서 교원 자격시험을 봐야 하겠죠. 그렇게 되면 루스, 당신이 얻을 수 있는 최상의 일자리는, 시골 학교 선생이나 여자 기숙학교의 음악 선생일 거예요." - P158

그날이 왔다. 골목에 나갔으나 치즈 페이스는 없었다. 그는 아예 오지 않았다. 아이들은 그가 치즈 페이스를 이겼다고 축하했다. 하지만 마틴은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치즈 페이스를 이기지 않았으며 치즈 페이스도 그를 이기지 않았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바로 그날, 치즈 페이스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음을, 그들은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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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호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2
외젠 다비 지음, 원윤수 옮김 / 민음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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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젠 다비의 <북호텔>은 1920 ~ 1930 년대 프랑스 파리의 북쪽 지역인 제마프 둑길에 있는 허름하고 값싼 호텔(이라고 하고 우리말로는 모텔 혹은 여관에 가까운?)이 배경으로, 거기에 숙박하는 프랑스 하층민들인 공장의 직공, 마차꾼, 인쇄공, 지하철 종업원, 아내를 삣기고도 모르는 경찰관, 폐병환자, 매춘부, 인정 못받는 하급 배우 등이 주인공이다. 

호텔을 새로 사서 정성스럽고 깨끗하게 운영하고자 애쓰는 르쿠브뢰르와 루이즈 부부는 나름대로 정이 넘치면서 다분히 인간적이다. 

또 이곳에 투숙하고 있는 무수히 많은 손님들의 삶도 어느 한 편으로는 비참하고 안쓰러운 모습이지만 작가가 철저히 감정은 배제하고 객관적인 사실만을 나열하듯 묘사를 하고 있어서 그런지 그 사람들이 처한 상활이나 하는 행동들이 그다지 문제적인 상황으로 비치지 않는다. 문제적인 상황으로 인식을 하느냐 안 하느냐는 순전히 책을 읽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고자 애쓴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도 남자들이 여자를 대하는 상황들은 혀를 차고 싶을 정도로 개탄스럽기 그지 없다. 여기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여자를 그저 한 번 후려서 가지고 놀다가 버려도 되는 것으로 인식을 하고 있고, 실제로 등장하는 남자들이 여자를 우습게 알고 희롱하고 쉽게 유혹하고 몸을 유린하고 같이 살다가 임신한 여자를 그냥 버려두고 줄행랑을 치고 하는 등등의 행동을 일삼는다. 그러한 모습이 너무 아무렇지 않게 묘사되어 있어서 이 당시에 정말 이랬을까 싶기도 했다. 

물론 그렇지 않는 남자들도 많이 등장한다. 그래서 나름 위안이 된다. 호텔의 주인 부부의 모습은 특히 그러하다.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모습도 그렇고 손님들에게도 또 이 곳을 거쳐간 하녀들에게도 그들의 처지에 공감하면서 도움을 주려고 노력한다. 작가의 부모님이 실제로 '북호텔'이라는 이름을 가진 호텔을 운영했다고 하던데, 책을 읽어 나갈 수록 작가가 이들 하층민의 모습을 그저 미화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그저 담담히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려 애쓴 것은 도시 변두리에서 작은 희망을 붙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무언가 좋은 쪽으로 변화가 있기를 바라는 희망을 투영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으면서 프랑스 하층민의 비참한 삶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강력한 힘에 끌려가듯 달려가 파국을 맞는 소설의 전형으로 추앙받는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이 떠올랐는데, <목로주점>에 등장하는 주인공이자 하층민인(그 당시에 파격적이게도 하층민을 주인공으로 전면에 내세워 독자들에게 충격을 안겼다고 하지 아마!) 세탁부 여인의 삶은, 외젠 다비의 <북호텔> 속 하층민들의 삶과는 다른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다. <북호텔> 속 하층민들의 삶이 좀 더 따듯한 시선으로 쓰여진 것이어서 - 순간적으로 개탄을 금치 못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 

<목로주점>에 비하면 전체적으로는 좀 더 편안하게 읽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더 빨리 읽을 수 있었던 거 같다.(그렇다고 <목로주점>이 재미가 없느냐 한다면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다. <목로주점>은 정말 명작이다! 30 년도 더 전에 읽었지만 내가 그 소설의 대략적인 줄거리를 아직 기억할 정도로! 단지 프랑스 하층민을 묘사한 소설이라는 소재가 비슷한데 다른 시각으로 쓰여져서 나도 모르게 기억이 났고 본의 아니게 비교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북호텔의 임대 기간 8 년이 끝나갈 무렵 호텔의 토지가 팔리면서 북호텔은 종말을 고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나지만 호텔을 거쳐간 수많은 인물들 중에 어느 누군가의 모습은 잔잔하게 내 마음 속에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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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3-10-11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목로주점을 연상시키는 소설이라니 정말 궁금한데요?! 찜해두겠습니다.

은하수 2023-10-11 13:04   좋아요 0 | URL
목로주점 같은 대작, 명작고전은 아니지만 소소하게 잘 읽힙니다~~^^

yamoo 2023-10-11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 책을 오랫동안 소장만 해 온 저로서는 아직도 읽지 않은 게 후회스럽긴 합니다. 얼른 읽어야지 하는데 계속 후순위로 밀려서....리뷰를 보니 얼른 읽어야 겠습니다!

은하수 2023-10-11 13:06   좋아요 0 | URL
읽기 시작하시면 아마 금방 끝낼수 있으실걸요?
비참한 하층민들의 삶이라길래 목로주점처럼 힘들줄 알았는데-사실 곰곰 생각해보면 정말 비참한 삶들을 살고 있긴 하죠-그런데 의외로 잘, 술술 읽히는건 두 작가의 시점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토종백제인 2023-10-11 22: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자체 도서관 갑니다

은하수 2023-10-11 23:43   좋아요 0 | URL
네~~^^
저도 도서관에서~~!
즐거운 독서 되시길 바랍니다.
 
너의 안부
성현주 지음 / 몽스북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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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정보도 없이 생각없이 그냥 빌려왔는데... 읽는 내내 정말 펑펑 울었다.

이렇게 펑펑 울 줄 알았다면 빌려오지 않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물 콧물 짜내면서 어쩔 수 없이 욕도 나왔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작가이자 개그맨 성현주의 엄마로서의 시간들에 백 번 공감하게 될 거다.

감히 상상 속에서조차도 내 아이를 나보다 먼저 내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곳으로 보낸다는 생각은 할 수조차 없고, 그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지는데...

 놓고 싶지 않지만 아이가 홀로 감당하고 있을 고통을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를 그만 보내주어야 한다는 사실이, 그러한 결정을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힘든 현실이었을지 나는 감히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어떠한 치료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몸의 변화를 나는 동생을 보내면서 보았기에 그 심정이 더 절절하게 와 닿았다.

지금은 그녀가 부디 무대에서, 평범한 생활 속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응원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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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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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나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 주인공인 요한네스도 느낀 -뭔가 몽환적이고 의문스러운 감정의 이유를 깨닫게 된다. 그러면서 마침표 없는 문체와 끊어질 듯 이어지는 짧고 단조로운 문장과 분위기가 글의 내용과 더없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내 취향은 아니지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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