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민주주의를 민주화라다.




우리가 제시하는 개혁안이 급진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덴마크와 독일, 핀란드, 뉴질랜드, 노르웨이, 스웨덴과 같은 큰 성공을 거둔 대다수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이미 자리를 잡았다. 투표를 더 쉽게 만들고, 게리맨더링을 없애고, 선거인단 제도를 직접적인 보통선거로 대체하고, 상원 필리버스터를 없애고, 상원을 보다 비례적으로 만들고, 대법원 종신제를 폐지하고, 헌법 수정을 좀 더 쉽게 만드는 개혁. 이 모든 변화를 통해 미국은 세상의모든 나라를 따라잡게 될 것이다. - P341

1920년 헌법 수정 제 19조로 이어졌던 (백인) 여성 참정권 운동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 운동은 단기적인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전미여성참정권연합 National AWoman Sutrage Association 대표이자 여성유권자연맹 설립자, 그리고 수정헌법 제19조의 주요 설계자인 캐리 채프먼 카트Camie Chapman Catt는 수정헌법 제19조가 "상상력이 부족한 거리의 남성들에게는 난데없이 등장한 것처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제19조는 난데없이 등장하지 않았다.
그것은 두 세대 이상을 아우르는 여성 운동가들이 벌인 투쟁의 산물이었다. 카트는 이렇게 주장했다. - P354

헌법에서 남성male 이라는 단어를 없애기 위해 이 나라의 여성은52년간 끊임없이 운동을 벌여야 했다. 그동안 여성들은 남성 유권자를 대상으로 56번의 국민투표 캠페인, 의회가 유권자에게 투표권 수정안을 내놓도록 촉구하는 480번의 캠페인, 여성 참정권을 주 헌법에 포함시키기 위해 주 헌법회의를 촉구하는 47번의 캠페인, 주정당 집회가 여성 참정권 조항을 상정하도록 설득하는277번의 캠페인, 대선 정당 회의가 여성 참정권 조항을 정당의 강령으로 채택하도록 촉구하는 30번의 캠페인, 19번의 연속적인 의회와 함께한 19번의 캠페인을 벌여야 했다. 수백 명의 여성이평생에 걸쳐 쌓아온 가능성을 보여줬고, 수천 명의 여성이 평생을바쳤으며, 수십만 명의 여성이 최선을 다해 끊임없는 관심과 지속적이고 끝이 없어 보이는 활동의 연속이었다. - P355

그 흐름의 마지막 고리를 연결하는데 기여한 젊은 나이에 젊은 여성 참정권론자들은 그 운동이 시작될 무렵에 태어나지도 않았다. 그리고그 연속의 첫 번째 고리를 만들어낸 나이 많은 여성 참정권론자들은 그 운동이 끝났을 때 이미 세상에 없었다." - P355

여성 참정권 운동이 직면한 또 하나의 과제는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백인 상류층 민족주의였다. 그러나 1900년 무렵부터 카트와 같은 지도자는 또 한 번의 전환을 통해 참정권이 문맹에서 열악한 공중위생, 그리고 아동 노동에 이르는 다양한 사회적 병폐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엘리트 상류층이 중심이 된운동을 노동조합 운동가와 최근 이민자, 여성 사회주의자, 인보관 운동settlement move
ment, 흑인 여성 클럽을 기반으로 조금씩 확장해
나가는 운동으로 바꿔 놨거든." - P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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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표준이하의 민주주의, 미국


당시 새롭게 떠오른 여러 민주주의 국가들 역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귀족적인 형태의 상원을 모두 폐지했다. 뉴질랜드는1950년에 상원과 유사한 역할을 하는 입법위원회를 없앴다. 그리고 덴마크는 국민투표를 거쳐 1953년에 19세기 상원Landsting을 폐지했다. 스웨덴도 1970년에 그 흐름을 따랐다. 21세기 초에 전세계의회의 2/3가 일원화되었다. 하지만 상원 제도를 옹호하는 이•들이 종종 경고했던 정치적 혼란과 마비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뉴질랜드와 덴마크, 스웨덴은 세계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민주적인 3대 국가로 거듭났다. - P302

오늘날 독일에서 작은 규모의 주들은 세 명의 대표를, 중간 규모의 주들은 네 명을, 그리고큰 규모의 주들은 여섯 명의 대표를 상원으로 보낸다. 독일의 전후헌법 설계자들은 바로 이러한 방식을 바탕으로 연방주의 원칙과민주주의 원칙을 하나로 통합했다. - P303

20세기 민주주의 국가 대부분은 다수의 의결만으로 의회 토론을 끝낼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의회 ‘내부에서 소수의 방해를 제한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이는 ‘토론 종결cloture‘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원래 "토론 종결"이라는 용어는 프랑스 제3공화국 시절초기에 처음 사용되었다. - P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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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탄생

만일 리아 리가 가족과 친지들의 고향인 라오스 북서부 고지대에서 태어났더라면 그녀의 엄마 푸아 양은 남편 나오 카오리가 손수 지은 초가집 바닥에 쪼그려 앉아서 그녀를 출산했을 것이다. 초가집의 바닥은 흙이지만 깨끗했다. 먼지가 일지 않도록 푸아가 바닥에 수시로 물을 뿌리고 빗자루로 쓸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직접 만든 대나무 쓰레받기에다 아직 밖에서 용변을 못 보는 어린아이들의 똥을 담아 숲에다 버리곤 했다. 푸아가유난을 부리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갓난아기를 내버려둬 바닥 흙이 묻게 하는 일은 절대로 없었다.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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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족쇄를 찬 다수

원래 미국 상원에는 필리버스터가 없었다. 대신에 상원은 소위예전의 질의 제안이라고 하는 원칙을 채택했는데, 상원은 이를통해 다수의 찬성만으로 토론을 끝낼 수 있었다. 그러나 상원은 그 원칙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그리고 1806년에는 전 부통령 애런 버Aaron Bur의 권고를 받아들여 그 원칙을 폐지해버렸다.
역사적 기록이 부족하긴 하지만, 버가 내세운 근거는 그 원칙을사용한 사례가 거의 없으며 (존 퀸시 애덤스John Quincy Adams는 회고록에서지난 4년 동안 딱 한 번 사용했다고 언급했다). 사용했을 때도 전반적으로 특정 사안에 관한 논의를 ‘회피할 목적이었다는 것이었다."  - P235

 그래도 20세기 대부분에 걸쳐 필리버스터는 상대적으로 드물게 사용되었다. 한 가지 이유는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기 때문이었다. 상원 의원이 필리버스터를 하기 위해서는 발언을 계속해서 이어나가야 했다. 즉, 끊임없이 말을 해야 했다. 
그러나 1970년대 개편 이후로 상원 의원은 압도적 과반 원칙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하겠다는 뜻을 전화로, 혹은 오늘날에는 이메일로 정당 지도자에게 전하기만 하면 되었다.
이처럼 필리버스터가 쉬워지면서 예전에 드물었던 관행이 오늘날 일상적인 것으로 바뀌어버렸다. 그렇게 20세기 말과 21세기초에 필리버스터는 급증했고, 오늘날 "모든 중요한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적어도 60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널리 받아들여진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다시 말해, 필리버스터가 모든 상원 입법 과정에서 실질적인 압도적 다수 원칙으로 진화한 것이다. - P237

필리버스터 옹호론자들은 이를 미국의 근본적인 전통이라고 포장해서 말한다. 하지만 사실 필리버스터는 뜻하지 않게 생겨났으며, 미국 역사에서 대부분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절대적인 소수 거부권은 최근의 발명품이다. - P238

헌법에 대한 환상

미국인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헌법은 신성한 문헌이며, 그래서 존경의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배운다. 그리고 미국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여러 제도는 거대한 설계, 즉 공화국이 효율적으로 기능하도록 만들기 위해 치밀하게 구성한 청사진의 일부라고 믿는다. 하지만 이러한 믿음은 타협과 양보, 그리고 이를 위한 차선책의 역사를 흐릿하게 만든다. 또한 민주주의를 뒷받침하는 핵심 제도,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해 중요하지 않으며 심지어 반민주적이기까지 한 제도를 혼동하게 만든다.  - P238

근본적인 다양한 제도를 견제와 균형을 위한 일관적이고 고정된 하나의 집합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시민의 자유를 보호하고 경기장을 평평하게 만드는 규칙, 그리고 특권을 지닌 정치적 소수가 선거와 입법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도록 힘을 실어주는 규칙을 혼동하게 된다. 전자는 민주주의를 위해 꼭 필요하지만, 후자는 민주주의와 모순을 이룬다. - P238

여론조사 결과는 미국인 다수가 대단히 포괄적인 가치를 인정하며, 다인종 자유 민주주의 원칙을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러나 미국의 제도는 이러한 다수를 좌절시키고 있다. 한 유명 정치평론가는 약 75년 전 이렇게 지적했다. "미국인다수는 사자의 목줄에 영원히 묶인 채 살아가는 순한 양치기 개다. " 오늘날 우리를 위협하는 것은 해방된 다수가 아니다. 그것은 ‘족쇄를 찬 다수‘다. -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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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왜 공화당은 민주주의를 저버렸나~5장 족쇄를 찬 다수˝

2020년 재선 투표결과 패배를 거부하고 유권자들을 독려하여 사상 초유의 국회의사당 난입사건을 일으킨 트럼프와 미국 공화당의 행태를 알 수 있었다. 미국 민주주의의 기본원칙들을 어김으로써 민주주의를 한걸음 더 퇴보하게 만드는 트럼프와 공화당에 대해 알게 되었다. 폭력을 단호하게 거부해야 한다는 원칙, 패배를 깨끗이 인정해야 한다는 기본원칙, 정치적으로 손해가 날 때에도 충직한 민주주의자는 반민주적인 극단주의자와 관계를 끊는다는 민주주의 행동의 세번째 원칙도 어겼다. 이번 선거에서도 트럼프와 공화당의 노선은 바뀌지 않았다.

5장 족쇄를 찬 다수
민주주의의 기본인 다수결의 원칙이 꼭 옳은 선택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에 반하여 힘없는 소수를 무시해선 안된다는 원칙(반다수결주의 원칙)이 얼마나 큰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법인지를 알게 되어 흥미롭게 읽고 있다.


선거 결과를 부정한 트럼프와 측근들
앞서 우리는 민주적인 정당이 따라야 할 세 가지 기본 원칙을살펴봤다. 민주적인 정당은 승패를 떠나 공정한 선거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권력을 차지하거나 유지하기 위해 폭력을동원하는 방안을 분명하게 거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반민주적인 극단주의자와 손을 잡아서는 안 된다. 그런데 공화당은 어땠는가?
선거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원칙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패배를 받아들이는 것보다 중요한 민주주의 원칙은 없다. 선거에서 패했을 때, 정당은 경쟁자의 승리를 인정하고, 조직을 재편하고, 잃어버린 다수를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 그러나 공화당은 그러한 일을 하기 위한 능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 P175

도널드 트럼프가 패배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역사는 오래되었다.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는 지지자들에게 선거 제도가 자신에게 불리하게 훼손되었다고 계속해서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 대선 토론을 포함해서 여러 기회를 통해 자신이 패한다면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 P176

2016년 보통선거에서 패한 이후로 트럼프는 선거 결과를 부정하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불법적으로 투표한 사람들의 수백만 표를 제외한다면 나는 투표에서 이겼다." 또한 2018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를 거두자트럼프는 사기를 주장했다. " - P176

이러한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2020년 선거 결과를 부정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2020년 공화당 전당대회 연설에서 트럼프는 이렇게 주장했다. "그들이 우리에게서 이번 선거를 앗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부정 선거뿐입니다." 트럼프는 가을선거 운동 기간 내내 그 주장을 되풀이했다.
- P176

2020년 11월,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선거 패배에 대한 인정을 거부했다. 선거 당일 늦은 밤, 투표 집계 결과가조 바이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이번 선거는 "미국 사회에 대한 사기이며(・・・) 우리는 선거에서 이길 준비가 되어 있다. 솔직하게 말해서,우리는 이번 선거에서 이겼다. (...) 
이 선거는 우리나라에 대한 거대한 사기다" "트럼프는 자문들의 만류에도 선거 결과를 공식적으로 부인하면서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2개월 동안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고 했으며, 수십 명의 주지사와 선거관리위원회 위원들, 주 의회 간부들을 대상으로 선거 결과를조작하거나 무효화하도록 압박했다.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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