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쇄기에 손가락 조심....!>

어젠 우리 동네에서 자주 왕래하는 친구인 '순희 씨'와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순희 씨'네는 우리 동네 원주민이고 농사를 우리와는 비교가 안되게 많이 짓는데, 애써 지은 농산물을 수시로 무시로 나눠준다. 우리 집 자그마한 텃밭을 보곤 농사 짓지 말고 자기네서 갖다 먹으라고 말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우리 아랫집 어르신네도 우리보고 텃밭 하지 말고 그냥 당신 집에서 갖다 먹으라고 하신다. 그래도 난 우리 작은 텃밭에서 나는 농산물이 가장 좋다. 서로 주신다고 하니 감사할 따름). 아무튼 어제는 '순희 씨"를 꼭 만나야만 했다!


지난 주 금요일에 '순희 씨'네가 김장을 담근다고 해서 그러지 않아도 언제 가서 도와줘야 하나 궁금해하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 앉아서 <신곡>을 읽다 보니 졸음이 몰려와 꾸벅꾸벅 졸고 있었는데 부재중 전화로 남편에게 전화가 와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전화해 보니 '순희 씨'네 남편이신 '한 회장님(남편이 활동하는 테니스 클럽의 회장님이시라 그리 부른다)'이 김장준비하면서 분쇄기를 쓰다 손가락이 절단되어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거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악 소리가 절로 났고 너무 떨리고 머리가 쭈뼛서면서 놀라고 말았다. 사고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순희 씨'가 어쩌고 있나였고 김장은 대체 어찌 하고 있는 건가였다. 놀란 마음에 '순희 씨'에게 무어라 위로의 말을 할 지 떠오르지도 않았지만 더 이상 전화를 미룰 수가 없었다. 전화를 했더니 '순희 씨'는 반쯤 넋이 나간 격앙된 목소리로 김장 속 간을 좀 맞춰 달라고 부탁하는 거였다. 알았다고 말하고 그날 따라 일찍 퇴근해 집에 와 있던 아들을 데리고 얼른 날아갔다. 


서둘러 갔더니 김장은 두 시동생네와 이웃과 나눠 먹는다고 배추를 100 포기나 절여서 씻어 물을 빼고 있었고 김장 속은 정말정말 커다란 빨간 타원형 통에 거의 가득 만들어 놓았는데 간을 보니 간이 하나도 안되어 있고 무슨 맛인지 약간 느끼하면서 맵고 너무 뻑뻑해서 이대로는 도저히 안되겠단 생각만 드는 거다. 그래서 새우젓, 액젓, 소금, 설탕, 생수를 좀 더 넣고 저어서 간도 맞추고 되직하게 만들었다. 사고가 났을 때 전원 코드가 끼워져 있는 걸 모르고 칼날 사이에 낀 양파 찌꺼기를 꺼내려다 잘못해서 버튼이 눌러져버렸고 순식간에 손가락 두 개(검지의 끝 마디 반이 절단 되었고 중지의 끝 살점이 뭉텅 떨어져 월욜 아침 일찍 접합 수술을 받으셨다. 아이고 주여~~!)가 순식간에 그리되어 피가 철철 나고 고통스러워하는 걸 봤는데 너무 정신이 없어 119 전화한단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옆집 친구네로 달려가 도와달라고 소리질렀다고 한다. 다행히 친구네 부부가 운전을 해서 '한 회장님'을 태우고 병원 응급실로 가게 됐는데 가는 중에 뒷 좌석에서 고통스러워하며 끙끙 앓는 소리를 내는데 그 짧은 시간이 정말 힘들었다고 한다. 


김장 속이 준비가 되었으니 정신없어 우왕좌왕하는 '순희 씨' 대신 배추를 버무리는 게 낫겠단 생각이 들어 빠르게 버무리고 있는데 그러는 나를 보니 미안한 생각이 들었는지 내일 손님들 오면 해도 되니까 그만하라고 말하는데 나는 자꾸 찜찜한 생각이 들어 그만두기가 걱정스러웠다. 이 와중에 정신도 없는데 아픈 남편 병원에 두고 손님접대라니...(순희 씨네는 시동생네와 이웃이 김장하러 오면 식사를 접대하고 수육도 삶고 그 전 해 남은 쌀로 절편과 가래떡을 해서 나눠 먹는다는..) 말이 안된단 생각에 이 밤에라도 미리 김장을 끝내버리면 내일 손님들 통에 담아 바로 보내버리고 손님들 접대를 하지 않아도 된단 생각이 들어 나는 조금이라도 더 하고 싶었다. 그러고 있는데 병원에 동행했던 옆집 친구가 김장을 버무려주려고 왔다. 그 친구(알고보니 그 친구와 나와 '순희 씨"가 동갑이어서 친구 먹기로 했다)도 나와 같은 생각이어서 손이 빠른 그 친구와 내가 김치 속을 넣어 버무리고 '순희 씨'는 통에 넣어 두 시간이 채 못 되는 시간에 마무리를 해버렸다. 속이 다 시원했다. 대체 왜 김장은 남의 것까지 해주려고 애를 쓰는지... '순희 씨'는 이제 시동생들과 해마다 김장을 얻어가는 이웃에게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통보했다고 한다.



어제 꼭 만나야 했던 이유는 '순희 씨'를 내 차에 태우고 '한 회장님' 병문안을 가기 위해서였다. 자동차 운전이 안되는 '순희 씨'를 위하여 동행하기로 했던 거다. 병원에 도착해 병실 분들과 나눠 먹을 빵과 커피를 사서 병실로 올라 갔더니 며칠 사이에 정말 얼굴이 반쪽.... 넘의 남편이시지만 워낙 자주 만나니 금방 알겠더라는.... 병원에서 가장 불편한 게 뭐냐고 물어보니 머리가 너무 가렵다고 좀 감고 싶어서 저녁 때 친구 오면 부탁해야겠다고 하시길래 요즘 병원엔 미용실 의자처럼 머리 감기기 편한 곳도 있으니 친구 기다릴 거 없이 와이프가 해주면 되지 않냐고 '순희 씨' 옆구리 찔러 머리 감겨드리는 동안 기다렸다 병원을 나왔다. 나의 제안으로 병원을 나와 5 일장이 서는 용인중앙시장에 가서 점심으로 칼국수 먹고 족발 골목 가서 족발도 포장하고 김장 때 쓸 건어물도 좀 사고 구경하느라 돌아다녔는데 재밌었다. 아프신 분은 아프신 거고 우린 즐거워도 되지 않아요 순희 씨? 하면서 맑은 가을 날의 나들이를 즐겼다. '순희 씨'도 우울하던 마음 다 날아가고 넘넘 재밌었다고... 다음에 또 자기 데리고 나가 달라고 해서 우린 당연히 또 그러기로 했다! 


김장철이라 가장 많이 사용하지만 그게 또 제일 위험한 주방 기구이기도 한 분쇄기와 블렌더 칼날은 진짜 조심조심 다루기.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신곡> '지옥 편' 마무리...

지난 달 30 일부터 읽기 시작해서 아예 책상에 붙박이로 펼쳐 놓고 매일매일 조금씩이라도 읽으려고 노력했다. 어제와 그제는 제법 탄력이 붙어서일까 집중해서 읽었더니 생각보다 잘 읽혀서 <신곡> '지옥 편'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신곡>의 '지옥 편'은 총 34 곡으로 이루어진 대서사시이고, 단테 그가 보여주는 지옥은 지구의 중심을 향하여 원뿔의 형태를 이루며 만들어진 곳인데 각 원마다 죄를 지은 영혼들이 여러 기상천외하고 흉측한 지옥 악마들에 의해 벌을 받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신곡>의 '지옥 편' 34곡은 각 3행으로 이루어져 있어 매우 쉽게 읽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거기에는 수 많은 상징들과 비유들, 그리스 로마 신화와 베르길리우스의 대서사시인 <아이네이스>의 인용과  "중세 유럽의 사상과 관념, 의식 세계가 총체적으로 집약되어 있"고 벌을 받고 있는 수많은 영혼들의 삶의 궤적과 이야기들이 실감나게 펼쳐져 있어 그것들을 다 이해하며, 각 주를 하나하나 읽어가며, 귀스타브 도레의 그림을 참조해가며 읽다 보면 쉬운 듯 읽히는 글자들이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작고하신 이윤기 선생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한때 꼭 필요하단 생각에 열심히 읽었지만 단편적으로만 기억나고 책을 찾아보니 집에 없는 거 아닌가. 언제 팔아먹었는지... 너무 아쉬웠다. 절판되었던 이윤기 선생의 <그리스 로마 신화>가 지난 10월에 재출간 되었다. 그리고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도 여러 종류가 있었지만 열린책들본이 표지 가장 맘에 들고 책 가격도 맘에 드네...^^




























 


단테는 <신곡>의 지옥 편', '연옥 편', '천국 편'의 총 1만 4,233 행(여기서 잠깐! '지옥 편' 34 곡은 총 몇 행이나 될까. 이러한 궁금증이 일었으니 당연히 세어봤다. 각 곡마다 3 행씩 숫자를 붙여 놓아 세어보기 편했다. 열심히 더해보니 총 4,720 행이었다. 아직 9,513 행이 남아있다. 아직 멀었구나... !)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 속에 저승 세계를 놀랍도록 기하학적이고 체계적으로 구현해 놓았다. 읽는 내내 정말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런 글을 내가 읽고 있다니...  


<신곡>의 줄거리는 어찌 보면 매우 단순하다. "1300년 봄 서른다섯 살의 단테는 어두운 숲속(인간의 죄악과 타락을 상징한다고 함)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햇살이 비치는 언덕(하느님의 구원과 은총을 상징한다고 함)으로 올라가려 하는데, 표범, 사자, 암늑대가 길을 가로 막는다. 그때 베르길리우스(로마 시대의 위대한 시인이며 로마의 건국 신화가 담긴 위대한 서사시 『아이네이스Aeneis』 를 남긴 그를 단테는 정신적 스승으로 여긴다)가 나타나 언덕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다른 길, 즉 저승 세계를 거쳐 가야 한다고 말한다." 단테는 산 자의 몸으로 베르길리우스의 영혼과 지옥, 연옥, 천국  등의 저승을 1주일 동안 차례로 여행한다는 줄거리이다. 그 중 나는 현재 '지옥 편'을 막 읽었을 뿐이고... 


귀스타브 도레의 그림은 '지옥 편'에 총 75 점이 수록이 되어 있다. 도레의 그림이 아니었다면 난 상상력의 한계를 겪으면서 이 책을 읽어나가는데 애를 먹었을 거 같다. 각 곡마다 보통 2~3점 정도의 그림이 수록이 되어 있어 각 지옥의 모습을, 그리고 형벌을 받는 영혼들의 모습을 실감나게 즐길 수 있다. 어찌나 생생하고 섬뜩하고 무서운 그림들인지.... 이 그림들도 역시 감탄사를 연발할 수 밖에 없었다. 


'지옥'편'에서의 지옥은 모두 9 개의 원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지옥의 원의 둘레마다, 그리고 원을 이루는 여러 구렁과 구역마다 다른 죄를 지은 영혼들이 벌을 받는 흉측한 모습들이 그려진다. 죄를 지으면 지옥에 가는 것이야 당연하다 생각하지만 1/3 쯤 읽었을 때 어떤 죄를 지었길래 이런 무서운 지옥에 빠져 허우적거리는지 적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다 읽고 보니 커다란 공책의 한 면을 채우고도 남을만큼 다양했다. 


지옥의 첫째 원인 '림보'에서는 죄를 짓지 않았고 덕성있는 삶을 살았으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거나 세례를 받지 못하고 죽은 영혼들이 가는 곳을 시작으로 음란함과 애욕의 죄(둘째 원), 탐식의 죄(셋째 원), 재물의 낭비 또는 인색함의 죄(넷째 원), ...분노와 불화의 죄, 불타는 관 속에서 벌 받고 있는 이단의 죄를 지은 영혼들, 기만의 죄,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자신의 육체와 재산에 폭력을 가한 죄, 신성에 폭력을 가한 죄(자살자들), 남색의 죄, 돈놀이꾼(넷째 원 ~ 일곱째 원), ... 뚜쟁이와 유혹자들, 아첨꾼들, 돈을 받고 성직이나 성물을 거래한 죄, 점쟁이들, 지위를 이용하여 사리사욕을 채운 탐관오리들, 위선자와 도둑들, 사기와 기만을 교사한 죄, 온갖 수단으로 다른 사람을 속이거나 화폐를 위조한 자들(여덟째 원), 그리고 지옥의 마지막 아홉째 원에는 가족, 친척, 조국, 동료, 친구, 은혜를 배신한 영혼들이 벌을 받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지옥의 가장 밑바닥에 단테는 예수를 팔아먹은 유다, 카이사르를 배반하고 그를 암살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마르쿠스 브루투스, 카시우스 등의 배신자들을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지옥의 마왕 루키페르(루키페르는 하늘에서 쫓겨나기 전에는 뛰어난 용모의 천사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흉측하고 무서운, 빨간색, 노란색, 까만색으로 된 세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으며 그 몸은 꽁꽁 얼어붙은 코키토스 호수 속에 잠겨 얼어붙어 있다) 앞에 던져 놓았다. 하지만 열거한 수많은 죄목들 중에서 하나라도 해당하지 않는 사람이 이 우주에 한 명이라도 있긴 할까? 나도 예외는 아닌 듯하여 무섭긴 하다. 착한 행실과 회개하고 뉘우치면 상쇄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 엄청 단순한 사람인 거 같단 생각도!



                

북플로 이 많은 글을 썼다 백을 누르는 바람에 다 날려 먹고 다시 썼다. 대책 없는 내 손꾸락!!!!




우리 인생길의 한 중간에서
나는 어두운 숲속에 있었으니
올바른 길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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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11-06 16: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순희 님의 남편분 ㅠㅠ 빠른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으.. 너무 고통스러웠을 것 같아요 ㅠㅠ
이와중에 빠르게 김장까지 해내시다니, 은하수 님도 넘나 대단..

그나저나 지옥.. 편이 그런 이야기이군요. 그리고 지옥편을 다 읽으셨다니.. 전 아직 시작도 못했답니다?
근데 지옥편 다 읽으신 것보다 이토록 긴 글을 ‘다시‘ 쓰셨다니... 더 대단하십니다!!

자, 화이팅 입니다. 화이팅!!

은하수 2024-11-06 17:05   좋아요 0 | URL
어제 문병 갔을 때 진통제를 맞았는데도 힘들어 보였어요. 정말 얼매나 아팠을까요....ㅠ.ㅠ
얼굴보니 눈물이 나더라고요. 남의 남편인데도 그랬어요. 친한 동네 친구 부부니까... 어쩔 수가 없더라고요.
김장 끝내놓고 나니 제가 다 시원했어요. 속 시원해하는 순희 씨 보니 좋았구요.
그리고 이 글 ‘다시‘라니 진짜 뭐 이런.... 하면서 북플의 허술한 시스템을 욕했네요. 자동 저장이 안되나???
심하게 화가 나더라구요. 이러면 지옥 가는데....ㅠ.ㅠ


탄력 붙으니 금방 읽어지던데요~~~
얼른 시작하셔요.^^
금방 읽으실 수 있습니다.
파이팅~~~
 

1 알아차림의 기술

20세기 학문은 근대인의 자만심을 공고히 해나가는 한편, 여러 갈래로 나뉘고 층을 이루고 결합하는 과정을 통해 세계를 형성하는 프로젝트를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음모를 꾸몄다. 학자들은 다른 삶의 방식을 억압하면서 특정한 삶의 방식을 확산시키는 행위에 도취되었기에, 그 밖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에 관한 질문은 무시했다. 그러나 진보에 관한 이야기가 견인력을 잃자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는 것이 가능해졌다. - P56

배치assemblage는 유용한 개념이다. 생태학자는 때로 고정되고 제한된 함의를 갖는 생태적 ‘공동체‘를 벗어나 배치로 관심을 돌렸다. 하나의 배치 안에 존재하는 여러 생물종이 어떤 방식으로 서로서로 영향을 끼치는지는 결코 정해져 있지 않다. 어떤 것은 서로를 방해하고 (혹은 먹고) 어떤 것은 생존을 위해 협력한다. 또 어떤 것은 자신들이 같은 장소에 있음을 이제 막 우연히 알게 됐다.
배치는 열린 모임 gathering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편견 없이 공동의 영향에 대해 물을 수 있고, 형성 중인 잠재적 역사를 볼 수 있다. - P56

다운율의 배치는 근대 정치경제가 아직 손을 뻗지 않은 영역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공장 노동은 조율된 진보적 시간의 전형이다. 그러나 상품 생산 및 공급사슬에도 다운율의 배치가 스며들어 있다. - P60

넬리 추Nellite Chu가 연구한 중국의 소규모 의류 봉제 공장을 생각해보자. 많은 경쟁사와 마찬가지로 이곳 역시 지방의 부티크 브랜드와 이름난 국제적 브랜드의 생산 주문, 그리고 나중에 브랜드 상품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상표 없는 제품 생산을 요구하는 회사의 주문까지, 여러 개의 보급로를 끊임없이 전전하면서 상품을 생산한다. 각각의 주문에는 서로 다른 기준, 재료, 노동이 요구된다. 이 공장이 하는 일은 산업적 조율을 공급사슬의 복잡한 리듬에 맞추는 것이었다.  - P60

공장을 벗어나 예측 불가능한 야생 산물 채집을 관찰해보면 리듬은 더욱 배가된다. 다운율의 배치와 산업 과정을 조율하는 활동은 수익 창출이라는 측면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의 주변부일수록 더욱 중요해진다. - P60

2 협력으로서의 오염
나는 다 괜찮을 거라고 말해주는 사람을 원했지만, 아무도 그렇게 말해주지 않았다.
-마이 넹 모우아Mai Neng Moua, 「메콩강으로 가는 길에

어떻게 모임은 그 부분들의 합보다 더 큰 ‘사건‘
이 되는가? 한 가지 답은 오염이다. 우리는 마주침을 통해 오염된다. 우리가 다른 존재들에게 길을 열어줌에 따라 마주침이 우리 존재를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오염을 통해 세계만들기 프로젝트가변화하면 상호적인 세계와 새로운 방향이 창발할 수도 있다. - P63

모든 존재는 오염의 역사를 수반한다. 순수성은 선택지에 없다. 불안정성을 유념하는 태도가 갖는 한 가지 장점은 상황에 맞게 변화하는것이 생존의 방식임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는 점이다. - P64

그러나 생존이란 무엇인가? 미국에서 유행하는 판타지를 살펴보면, 생존이란 항상 다른 존재와 싸워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을뜻한다. 미국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외계 행성 이야기에 등장하는 ‘생존‘은 정복과 팽창의 동의어다. 나는 생존을 그런 의미로 사용하지 않겠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열린 마음으로 다른 의미를생각해보기 바란다. 어떤 생물종이든 살아 있기 위해서는 살기에적합한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 책이 주장하는 바다. 협력이란차이를 수용하며 일한다는 의미로, 이것은 곧 오염으로 이어진다.
협력하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는 죽는다. -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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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끝이 보인다.

에필로그
고래를 보러 온 사람들

또 밀려온 고래뉴포트 해변의 모래는 오래된 케이크 부스러기처럼 굵었고 붉은색을띠었다. 모래성 쌓기에는 안 좋은 모래임에도 사람들은 성을 쌓았다.
파도가 사람들이 애써 만든 것을 흩뜨리고는 어느새 매끈한 모래사장으로 돌려놓았다.  - P419

견장이 달린 푸른 유니폼 차림의 한 택시 기사가 내앞에서 몸을 구부렸다. 밑창이 두꺼운 신발 끈을 풀더니, 신발 혀가위로 올라간 채로 신발을 둔 채 몽유병자처럼 빠져나갔다. 접힌 바짓단에 모래가 들어찼다. 몇 걸음 더 성큼성큼 가더니 양말을 벗고 공처럼 돌돌 말아 주머니 속에 넣는다. 그녀가 신발을 벗어 놓은 곳에 더많은 학생용 단화, 슬립온, 하이힐, 그리고 끈이 느슨한 부츠가 함께놓여 있었다. 백여 명의 다른 일행들과 함께 택시 기사와 나는 파도가이는 해안을 따라 걸어, 바닷가를 보고 있는 여러 채의 집을 지나쳐갔다. 늦은 오후였다. 갯완두콩과의 여러해살이풀. 바닷가 모래땅에 난다.
옮긴이)가 바람에 불려 정신없이 날아다니며 모래사장에 흔적을 남겼다. 해와 함께 하늘 저쪽에 희미한 달이 떠 있었다. - P419

나는 혼자서 고래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드니 반대쪽까지 가려면 몇 시간은 걸릴 것이다. 두통을 핑계 삼아 친구에게 찾아와줘서 고맙다고 작별 인사를 하고, 몰래 떠날 생각을 했다. - P721

뉴포트의 능선 도로로 되돌아간 사람들 중에 몇 명 이상은 살짝눈가에 이슬이 맺힌 것으로 보였다. (왜 안 그러겠는가.) 한두 사람이 해변으로 향하는 접근 도로에서, 더 가기도 망설여지고 그렇다고 당장떠날 생각도 없는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서 있다. 내가 그곳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고 어디선가 레치타티브(오페라나 오라토리오에서 대사를 말하듯이 노래하는 형식-옮긴이)가 울리 퍼지듯 들리는 것같다. ‘오는 거니 아니며 가는 거니?" 멀리 바다 돌출부의 삐죽한 바위들이 풀장을 압도하며 솟았다. 풀장은 50미터 길이에 직사각형 모양이고 주변으로 쇠사슬 난간을 쳐 놓았다.  - P421

퍼스에서 어린 혹등고래가 숨을 거두고 그의 눈이 거무칙칙해졌을 때, 군중들은 고개를 돌렸다. (뉴포터의 군중보다 숫자는 적었다.) 누군가 ‘끝‘이라고 호루라기라도 분 것처럼 행동했다. 빠르게 그들의 물건을 챙기기 시작했다. 해변의 풀을 짓밟으며 달려가, 주차장 입구의 아카시아 나무 밑에서 잠깐 멈추더니 허겁지겁 고무 샌들을 신고 수건을 탈탈 털고는 차를 향해 달렸다. - P421

뺑소니, 집단적 철수, 내빼기, 헤어지면서 눈도 맞추지 않고 말 한마디도 없다. 아마도 죄책감 때문이리라. 그러나 그 단어로 모든 설명이 되지는 않는다. 일종의 굴욕감. 아니, 더 정확히. 당황. 구경거리 좋기에 너무 몰입해 있었다는 당황스러움. - P422

그러고 나서 우리는 그 놀라움으로부터 놓여난 것에 대해 안도했다. 놀라운 구경거리는 이제 그만 놀라움은 유한한 것임을 입증했을뿐 아니라 그 끝에는 권태가 기다린다. 공포와 경이를 뒤로 남겨 두고우리는 등을 돌렸다. - P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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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 단테 알리기에리

오늘 책이 왔다. 어마무시한 두께라 ..
들고다니는 건 꿈도 꾸지 말아야겠다!

어제 미리읽기로 읽었던 부분을 다시 읽었다.
각주가 바로 밑에 있으니 역시 바로바로 이해가 되어 읽기 수월하다.



「나의 스승, 주인이시여, 말해 주십시오.」모든 오류를 이기는 그 믿음을 확신하고 싶어서 나는 말을 꺼냈다.


「자기 공덕이나 타인의 공덕으로 이곳을
벗어나 축복받은 자가 있습니까?」
내 말을 알아차린 그분이 대답하셨다. - P48

「내가 여기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6
승리의 왕관을 쓴 권능 있는 분이
이곳에 오시는 것을 보았단다.

그분은 최초의 아버지 아담의 영혼,
그의 아들 아벨, 그리고 노아의 영혼,
율법학자이며 순종하던 모세의 영혼,

족장 아브라함과 다윗 왕, 야곱과
그의 아버지 이삭, 그의 자손들,
또한 그가 무척 정성을 쏟은 라헬,8

또 다른 많은 영혼들을 축복해 주셨지.
그들 이전에 구원받은 영혼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네가 알았으면 한다.」


6 베르길리우스는 기원전 19년에 사망하였고,
예수는 34년에 죽임을 당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뒤 지옥으로 내려가 림보의 영혼들 중에서
덕성 있는 자들을 구원하여 천국으로 데리고
올라갔다고 한다. 그 일에 대해서는 나중에 여덟째 원의 구렁에 있는 악마들도 이야기한다.
(지옥 21곡 112행)
7 예수 그리스도
8 야곱은 라헬을 아내로 얻기 위하여 그녀의 아버지 라반에게 무려 14년 동안이나 일을 해주었다.(창세기 29장 15~30절 참조)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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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11-01 07: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각주가 밑에 있다니 역시 이 책을 사야하나요..

그레이스 2024-11-01 09:09   좋아요 0 | URL
주석이 뒤에 있는 것은 넘 불편해요^^

은하수 2024-11-01 13:41   좋아요 1 | URL
각주 바로 아래 있는거 넘넘 편해요~~~
걱주 뒤에 있는데..
근데 특히 민음사책이면
그냥 .... 아 쫌 죽음이죠
펴지지도 않구...ㅠㅠ
어쩌죠...

잠자냥 2024-11-01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그래도 생각보다는 가볍지 않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은하수 2024-11-01 13:43   좋아요 0 | URL
네 정말요
맘 잡고 읽으면 휘리릭도 가능할 듯해요.
3행씩이라 따지고 보면 한페이지에 그냥 열줄 정도나 되려나요~~^^
 

고래가 내는 소리가 전달되기 위해서는 물이라는 매체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표류한 수염고래는 대체로 조용한 것이다. 육상의 공기는 그들 소리의 폭과 주파수를 유지시키기에는 너무 밀도가 낮다. 이빨고래는 물 밖에서도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지만 그들 또한 소리를 맘껏 내려면 바닷속이어야 한다. 범고래, 흰고래, 돌고래, 참돌고래, 쇠돌고래, 그리고 향고래는 머릿속에 있는 소위 지방질 확성기인 변환기로 소리를 낸다-몇몇 종의 경우 이 부분을 멜론이라고 부르고, 19세기 상업 포경이 한창일 때, 향고래의 이 부분은 ‘정크‘라고 불렸다. (영어 정크의 가장 보편적 의미는 쓰레기이다-옮긴이)  - P261

대부분의 이빨고래의 경우 멜론 뒤로, 그리고 분수공 아래로 굳게 다문 새까만 입술처럼 생긴, 고래 머릿속에 든 내부 장기가 있다. 이 입술은 쉬잇, 하는 소리를 내도록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소리는 멜론으로 들어갔다가 다른 방향으로 향한다. 고래 내부의 경뇌유와 블러버 속 지방 꾸러미는 인간의 눈에서 눈동자가 하는 작용을 한다. 그것은 고래 소리와 반향 위치 측정을 위한 소리에 초점을 맞추어, (먹잇감이 몰린 곳을 확인하기 위해, 그리고 해빙 사이를 항해하기 위해 소리를 낸다)빛이 없어 볼 수 없는 환경에서 청각적 ‘시계‘를 확보해 준다.
- P261

빛이 미약해서 캄캄한 바다에 서식하고, 때때로 반향 위치 축정을 위해 딸랑이는 소리를 울려 사냥을 하며, 다른 소리로 사회적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는 동물로서 고래는 섬세한 소리에 에워싸여 살아간다.

그래서 해양에서 분주히 다니는 배의 굉음, 탄성파 탐사(지표면이나 해수면, 시추공 등에 설치한 탄성파 발생 장치를 작동시켜 얻은 파동으로 지하지질 구조와 지층을 탐사하는 것-옮긴이), 그리고 물속에 기반 시설을 건설하는 것이 고래에게는 끔찍한 사태인 것은 조금도 놀랍지 않다. 

한 캐나다 과학자가 말했듯이, ‘지나친 벌목이 회색곰의 서식처를 감소시키는 것처럼 소음은 고래의 청각적 서식처를 줄어들게 한다.‘  - P262

그러나 고래 서식처의 문제는 벌목만큼은 우리에게 죄책감을 주지는 않는다.
그곳은 바다이고 물속인 데다 피해란 것도 청각적이어서 눈으로 확인이 어렵다. 그런 소음 공해 지역은 잘 인식되지 않는다. 우리가 그 죽음의 냄새를 맡아 볼 수만 있다면 전율스러웠을 산호초의 죽음처럼 -죽어 가는 산호가 바다가 아닌 육지에 있으면 부패한 물고기 냄새가난다-바닷속 소음 공해로 인한 고통의 크기도 우리의 감각이 제한적이어서 과소평가된다. 
인위적 소음으로 인한 피해의 규모를 실감하려면 우리가 고래의 감각 기관 속으로 스스로를 투사할 수 있어야 한다. -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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