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땅의 야수들
김주혜 지음, 박소현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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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땅의 야수들

 

이 이야기는 무엇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것인가? 암울했던 우리의 과거에 전쟁이란 화마가 휩쓸고 간 들판에 피어난 잡초들의 인생을 누가 알아준단 말인가? 이렇게 말하면 분명히 나는 잡초보다 못한 인간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인생을 살기에 버거운 삶의 무게를 지고 있기에 말이다.

 

어둠이 깔린 한강의 도로를 운전을 하다가 보면 화려한 서울의 향연을 만끽하곤 한다. 수많은 빌딩과 아파트의 불빛들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부와 권력의 아치를 뽐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불과 100년 전에 아니 70여 년 전에 식민지와 전쟁에서 버티고 있는 가냘픈 촛불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으니 말이다.

 

가난한 소작농의 삶이나, 장안에서 내로라하는 부잣집 아들의 삶이나 다를 바가 없었던 세상. 꿈도 희망도 사랑도 개나 줘버려!’라고 외칠 수밖에 없던 그 세상. 그저 보리죽 한그룻과 물 한 대접만 있으면 잠을 잘 수 있던 세상. 꽃다운 15세의 나이에 순결을 쓰레기 같은 놈들에게 짓밟혀야 했던 소녀들의 세상. 그런 더러운 세상이 불과 얼마 전까지 있었단 말이다.

 

지금은 달라졌을까?

 

일본식민지 시절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라 하지만, 나는 언제나 그렇듯 소설 속의 라는 관점을 찾아보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먼 이야기가 아니었다. 저 광화문에서 아무 이유 없이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핵발전소를 반대하는 피켓을 든 사람들도, 점심시간에 바쁘게 움직이는 수많은 인파도 모두 같은 소리를 내고 있을 것이다.

 

나는 책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 가운데 공산주의자 이명보를 생각해 보았다. 순수 이상주의란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속에 허상을 키워낸다. 현실 부정이 강하게 자리잡히면 누구나 종교나 정치적 이상주의에 빠져들기 마련인 것이다. 나는 그를 비평하고 싶지는 않다. 무엇이 그를 그가 가지고 있는 부를 포기하게 만든 것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그의 선택은 존중한다. 프롤레타리아가 어떻고 레닌의 공산주의가 어떻고 노동자의 평등이 어떻든 상관없다. 어떤 선택이든 간에 그것은 오로지 그의 몫이다.

 

작은 땅의 야수들

 

작가는 3자의 관점에서 일본 장교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을 작은 땅의 야수들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호랑이가 시베리아 반도에서 혹독한 겨울을 견디고 살아가는 것처럼 어쩌면 그 사람들의 삶이 투영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남정호, 월향, 옥희, 연화, 단이, 한철의 삶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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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날 수 없는 관계는 없습니다 - 상처뿐인 관계를 떠나지 못하는 당신에게
임아영 지음 / 쌤앤파커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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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날 수 없는 관계는 없습니다.

 

결국 그거였구나. 그거였어.’ 내가 고통받고 힘들게 살아온 게, 그 이유였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즐거움을 느끼지만, 상처받기도 한다. 지나친 기대감도 아닌데 늘 힘든 건, 나 자신뿐이었다.

 

부모로서 자식에 대한 기대감은 어쩌면 나의 대리만족은 아니었는지. 아니, 책에서 작가님이 나를 제외한 타인은 모두 남이다.”라는 이 말이 왜 그리 위로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도무지 내가 무엇을 원하기에 늘 자식에게 참견 아닌 참견을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들러의 심리학을 가지고 세 명의 자녀가 각자의 위치에서 어떤 성향을 가졌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는데, 각자의 삶의 방식이 이해가 가는 것은 내가 자라온 방식과 너무나도 유사하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우리는 하나일 수 없다. 살아온 환경에서도 각자가 다른 목적을 가지고 살아간다.

 

완벽한 사랑도 없다. 우리가 가진 한계를 인정하고 그 자체로 살아가는 것만이 행복의 첫걸음이다. 다름을 인정하고 다양성을 배제하지 않는 법을 찾아야 한다. 나의 부정적인 면도 인정하고, 지나치게 자책하지 않는다. 작가님의 말씀대로 억지로 걸러내려 하지 않으면서 그것을 담는 그릇의 깊이와 넓이를 조정해나가자.

 

쉽지 않은 싸움이다. 인생은 그렇다. 내가 건전하고 건강한 정신과 마음을 가지려면, 우선 나부터 나 자신부터 되돌아보아야 한다. 늘 남을 비난하고, 남을 탓하는 삶은 발전성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자식도 내 맘대로 못 하는데, 하물며 남이랴?

 

나는 지나간 나의 잘못을 돌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그렇게 살아가지 못한다. 그러나, 이제부터 일어나는 일에 대한 나의 태도는 조정하거나 바꿀 수 있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다시 태어나보련다. 용기를 가지고 다시 시작하련다. 나 자신과 가족과 모두를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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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에디터스 컬렉션 12
다자이 오사무 지음, 오유리 옮김 / 문예출판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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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일본의 전설적인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 소설. 그보다는 자기의 비참한 삶의 회고록이라고 말하는 게 적당하겠다. ‘, 이렇게 삶이 비관적이야.?’ 읽는 내내 가시지 않는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다.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갈수록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인기피증과 우울증, 무기력함과 무저항. 이러한 감정들이 뒤섞여서 정신병이 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이 소설이 발간 된 지 100여 년이 지난 시점에도 수 많은 사람이 읽었다는 것은, 인간의 내면의 어두운 초상을 적나라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하므로, 많은 사람의 공감대를 이끈 것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아내의 겁탈을 지켜보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멍청이에게 할 말은 아니지만 말이다.

 

남자와 여자의 뒤엉킨 실타래. 인간관계에서 남녀는 불타는 사랑으로 사는 것도 아니고, 애처로운 연민으로 사는 것도 아니다. 목적에 의한 만남도 결국에는 파국에 이르고, 지나가는 바람처럼 스쳐 가고야 만다. 작가의 삶이 그러했다. 세 번의 동반자살이 가져온 결과는 참담했다. 그러한 일이 가능한 것도 제국주의에 빠진 일본에서 삶의 목적이 없는 현실이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그의 삶이란? 정답이 있을까? 애정이 없는 육체적 관계도, 매춘부와의 성관계의 타락한 쾌락도 아니다. 오히려, 그를 파괴할 뿐이었다. 그것은 시작도 잘못되었고, 끝도 잘못되었다. 만화를 기고하는 과부와 어린 딸의 안락한 가정생활도 그에게 있어서는 안정과 평화보다는 불안과 두려움뿐이었다.

 

나의 삶이란? 정답이 있을까? 내 마음속 어둠의 번민이 늘 꿈틀거릴지라도 일말의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은 종교의 힘도 아니고, 나의 의지도 아니다. 그저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기본적인 도리이기 때문이다. , 금욕주의자도 아니고 숭고한 순례자의 길을 가는 사람은 더욱더 아니지만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오늘을 사는 나의 삶이 헛되지 않도록, 나와 관계되는 모든 이를 진심으로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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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딕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4
허먼 멜빌 지음, 레이먼드 비숍 그림,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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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 딕

 

꿈꾸는가? 먼바다를 여행하고 석양이 파도를 가를 때, 창공을 향해 뛰어오르는 고래를 말이다. 형언할 수 없는 희열은 어느새 눈물이 뺨을 적시고 흐른다. 그 옛날 수많은 고래잡이는 어디로 갔을까? 어쩌면 그들의 영혼이 저 고래들이 아닐까? 아쉬운 세상과의 작별을 저렇게 포효하듯 뛰어오르는 것이 아닐까?

 

고래잡이 퀴커그는 세상을 모험한다. 자신만의 왕국에서 이교도의 삶을 쫓아서 그렇게 바다로 나갔다. 비루하고 초라하기 그지없는 자신의 처지도 세상에 대한 모험을 막지 못하였다.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야만인 퀴커그의 삶을 통해서 인간의 삶을 다시 한번 조명해본다. 안주하지 못한 나의 삶은 헛되지도 허망하지도 않았다. 따지고 보면 비루하고 힘든 삶이었지만 말이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고래와의 사투처럼 우리의 삶은 그렇게 힘들고 고단했다.

 

신은 우리에게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힘과 지혜도 사실 없다. 그런데도 세상의 거대한 파도와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거대한 향유고래를 향해 작살을 내던지는 것처럼 말이다.

 

부와 행복을 꿈꾸며 모험을 떠나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죽음의 사투에서 그가 잡은 고래는 그의 꿈을 실현해 주었을까? 소리 없이 저 바다는 고래의 거품을 거침없이 내뿜는다.

 

독자로서 감동적인 명작을 만나서 정말 기쁘다. 가끔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와 혼동하곤 하지만 모비딕은 인간의 야망과 욕망, 꿈을 녹아내고 있다. 인생의 허무주의나 이상주의가 아닌 또 다른 현실 세계에 눈을 뜨게 해주는 작품이다. 고래잡이의 꿈을 안고 바다로 나가는 청년과 야만인 퀴커그의 우정도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의 고독과 외로움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제 나도 세상을 향해 돛을 내리고 나아갈 것이다. 혼자가 아닌 나의 동료와 함께 말이다. 그리고 꿈을 꾸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기다. 바로 저기에 고래가 보인다. 작살을 던져 퀴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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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의 역설 - 관계, 사랑, 인생이 내 마음처럼 안 되는 이유
강현식 지음 / 유노책주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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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의 역설

 

누구라도 이해가 가는 공감이 가는 심리학. 9가지의 심리에서 오판하는 것들을 알기 쉽게 풀어낸 심리학 서적. 미처 생각하지 못한 진실을 대할 때, 가끔 불편해질 수도 있다.

 

칭찬의 역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를 믿었던 내가 왜 작가의 역설에 공감하는 것일까? 칭찬받기 위해 하는 행동들이 열등감의 표현이 아닐까? 특히, 칭찬해도 공부 성적이 떨어지는 이유가 불안과 스트레스로 나타날 수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2. 긍정의 역설.

 

암 환자에게 긍정적인 말만 하면 그가 어떻게 행동할까? 섭생이라든가, 자연 치료가 수술이나, 병원에서 처방받는 것보다 훨씬 좋다고 판단하면 그에게 무조건 좋은 일일까? 실제로 보았다. 각자가 판단할 일이지만, 긍정적인 사고방식만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3. 비판의 역설.

 

부모가 자식에게 거는 기대는 남다르다. 그럴 수밖에. 자식은 나의 분신이고 세상에 나의 유전자를 가진 유일한 존재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런데도 자식들은 부모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 때로는 반항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출한다. 자식의 입장에서 소통하고, 들어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실제로 나는 효과를 보고 있다.

 

4. 배움의 역설.

 

배움에서 메타인지가 왜 나오지? 책을 읽으면서 궁금했던 점은 금방 해결된다. 우리 아이들은 공부를 하는 것이지, 배움을 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하는 공부는 숙제이지, 내가 만드는 과제가 아니다. 그저 기계적이며, 의무적이며, 골치가 아픈 일이다. 이런 학습은 늘 반복되고,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위한 수단으로 공부를 하고 있다. 불쌍한 아이들. 메타인지 공부법은 공부의 주체가 누구인지 알게 해 준다. 내가 풀고 있는 수학 문제가 인간의 실생활의 어떤 부면에 사용되는지도 이해하게 된다면, 메타인지 공부를 실천한다고 말할 수 있다.

 

5. 착함의 역설.

 

작가는 착함이란 복종과 권위에 순종하는 삶이란 인식에서 벌어지는 참담한 결과를 말하고 있다. 세월호와 같은 참담한 사건에서 일어났던 선장과 선원들의 태도가 얼마나 나쁜 것인지 말하는 것이다. 권위에 복종하는 태도가 나쁜 것은 아니다. 유교적 사상을 가진 우리에게는 미덕이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독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의미로 착함의 역설을 강조한다.

 

6. 두려움의 역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공황장애와 같이 불편한 정신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아니, 겉으로 보이지 않기에, 그게 무슨 병일까? 하는 생각에 놓치고 만다. 실제로 이러한 경험은 평생을 괴롭힌다. 빼낼 수 없는 못처럼, 우리의 감정에 깊숙이 박혀버린다. 치료가 필요하다. 심리적으로도 힘들다면, 약물치료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 밖에도, 통제의 역설, 사랑의 역설, 외로움의 역설이 있다. 보편적으로 일반적인 관념을 깨버리는 파격적인 얘기는 아니다. 그저 반대로 생각해볼 충분한 여지가 있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리 부담스럽지도, 가볍지도 않게 말이다. 어떤 것이든, 우리가 이러한 문제가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실천할 필요가 있다. 용기가 있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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